24. 인도(引導)(3)
조회 : 1,150 추천 : 0 글자수 : 5,256 자 2022-11-28
*이 작품에는 혐오와 차별, 그에 따른 폭력, 기타 부상과 유혈, 사망이 묘사되어있습니다. 해당 요소를 보기 힘드신 경우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언니!”
이 솔은 평소보다 발 빠르게 하람의 집에 도착했다.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 솔의 얼굴은 티가 날 정도로 기뻐 보였다. 덩치 큰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떠올라 하람은 작게 웃었다.
“솔아, 어서 와.”
“많이 기다렸어요?”
“우리 솔이야 언제나 기다리지.”
“헤헤.”
이 솔이 수줍게 웃고는 부엌에 짐을 내려놓았다. 이 솔의 어머니가 하람에게 정기적으로 지원해주는 물건들은 생활용품부터 음식 재료까지 다양한 물품이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쓰라며 정해진 날마다 용돈을 넣어주기도 했다. 용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가 문제지만.
“오늘도 고생했어. 피곤하지는 않고?”
“괜찮아요. 저 체력 좋은 거 알면서.”
이 솔은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사냥꾼 일족. 게다가 걸음마를 뗐을 때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 웬만한 일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
“알아도 늘 걱정이지.”
하람은 말없이 웃으며 이 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솔이 사냥꾼에서도 강한 축에 속한다는 건 하람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소중한 사람이니만큼 걱정되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솔은 적도 많으니까.
“오늘은 뭐 먹고 싶어?”
“음……. 그럼 언니가 먹고 싶은 걸로.”
“하하, 뭐야 그게!”
하람이 장난스럽게 이 솔의 볼을 꼬집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졸도할 광경이었다. 사냥꾼은 장난으로라도 절대 제 몸에 장난치는 일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그게 이 솔일 경우 더욱.
사냥꾼 일족은 그 특수성과 능력을 인정받아 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는 독자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다. 아무리 상급 능력자라도 사람을 죽이면 나라에서 법으로 심판할 수 있으나, 사냥꾼은 심판할 수 없다. 사냥꾼에게 간섭할 수 있는 건 같은 사냥꾼과 가온교 뿐. 하지만 가온교와 사냥꾼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손을 대지 않는다. 결국, 사냥꾼에 관한 일은 사냥꾼 일족에서 모두 처리하는데 이와 높은 자부심이 맞물려 폐쇄적인 사회를 만들게 되었다.
육체적 능력으로 급을 나누는 사냥꾼들은 힘으로 모든 것을 겨루기 시작했고, 사냥꾼이 가지는 권력이 높아질수록 서로 짐승처럼 물어뜯기 시작했다. 현대에 와서도 죽고 죽이는 건 다반사. 약육강식의 체계로 죽은 자는 약한 자이니 죽는 것이 당연한 세계. 친지라 할지라도 모두 경쟁자이며, 제거해야 하는 존재. 시간이 흐르며 대놓고 죽이려 드는 모습은 없어졌으나, 더욱 음습한 방법으로 발전했다.
가령,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는 행위나, 손을 잡고 악수하는 행위도 사냥꾼 일족에게는 일종의 우위를 과시하는 행동일 만큼. 그래서 사냥꾼들은 신체 접촉을 최대한 피한다. 더군다나 이 솔은 사냥꾼 일족에서도 이단인 이 한의 딸로 태어나 날 때부터 주변에 적이 가득했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라도 이 솔을 제 밑에 두고 싶어 했고, 이 때문에 많은 일이 있었던 이 솔은 특히나 신체접촉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아무리 마음을 연 사림이라도 제 몸에 손을 대게 두지 않았다.
단, 하람만은 제외하고.
이 솔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단순히 하람에게 허락하는 의미가 아니라 하람에게라면 무릎을 꿇어도 좋다는 의미이다. 하람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정작 본인은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전 가리는 거 없으니까요.”
“그럼 솔이가 좋아하는 고기로 하자.”
“도와드릴까요?”
“그래, 그럼 같이하자.”
능숙하게 칼을 쓰는 이 솔을 보며, 하람은 이 솔과 처음 만난 그날을 생각했다.
‘그땐 저렇게 귀엽지는 않았지.’
하람은 중급 능력자인 부모님에게서 태어났다. 그들은 하나뿐인 딸이 무능력자라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다. 하람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딸의 인생에 고난만이 존재할 것이라 알았기에. 사회의 시선, 세상 사람들의 인식. 어린 하람을 가온교의 보육기관에 넘기는 선택을 할 수 있었으나, 자신들이 평생 사랑해주는 길을 택했다. 넘치도록 사랑을 주고, 딸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울타리가 되어주겠다고 맹세했다.
다행히 주변 이웃들도 좋은 사람뿐이었다. 하람을 동정하기는 해도 대놓고 욕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끔 보이는 동정 어린 시선, 새벽에 소리 없이 우는 부모님의 모습. 하람은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처지를 이해했다. 그래도 불행하지는 않았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부모님과 좋은 이웃 어른들. 하람은 그에 만족하고 살기로 했다. 평탄하고 단조로운 일상이 깨진 건 9살의 그날부터였다.
“너 울어?”
심부름하고 돌아가던 길, 하람은 거주지에서 처음 보는 또래 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안 울어. 보면 몰라?”
돌아온 건 싸가지없는 대답이었다. 하람은 기분이 나빠져 그냥 돌아가려 했다. 실제로 아이는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고, 울음소리를 내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얼굴이 어딘가 슬퍼 보여서, 가끔 부모님의 얼굴에서 보이는 그림자를 보는 것 같아서, 하람은 아이의 옆에 앉아 손을 잡아주었다.
“내 눈에는 네가 울고 있는 것 같아.”
아이는 아까처럼 톡 쏘며 대답하지도, 손을 떨쳐내지도 않았다. 머뭇거리다 손을 맞잡은 아이는 그제야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슬픔을 삼키고 있는 어린아이. 하람은 그 아이를 안고 토닥여주었다. 제 옷이 젖어가도 신경 쓰지 않으면서.
그게 이 솔과의 첫 만남이었다. 길을 잃은 이 솔을 처음 경찰서에 데려다 주었을 때, 사냥꾼 일족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하람도 사냥꾼이 어떤 사람인지는 안다. 평생 마주칠 일이 없을 아득히 높은 신분.
‘이젠 안 울면 좋겠는데.’
하람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그 아이가 슬퍼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 그땐……감사했습니다.”
이 솔이 감사 인사를 핑계로 찾아왔을 때는 솔직히 기뻤다.
이 솔은 그 뒤로도 계속 찾아왔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함께였던 것처럼 붙어있는 게 당연해졌다. 감정 표현을 절제하던 이 솔은 점차 솔직해지더니, 웃는 일이 많아졌다. 이 솔은 하람을 좋아했고, 하람도 이 솔이 좋았다.
“너 싫어! 너 때문에 괴롭힘당하는 거잖아! 이제 오지 마!”
“하, 하람 언니…….”
두 아이에게 마냥 행복한 나날만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사냥꾼과 연결이 생기자 동정의 시선을 거두고 질투하던 몇몇 이웃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솔과 어울리지 말라며 다른 사냥꾼 아이들이 괴롭힐 때는 너무 무서웠다. 그런 괴롭힘이 이어지자, 버티지 못한 하람은 이 솔에게 화를 냈다. 괜히 자신에게 찾아와 나쁜 일을 당하게 한 이 솔이 너무 미웠다. 잔뜩 화를 내고 엉엉 울기도 했다.
“어, 언니! 가지 마세요! 무슨 일인지 저랑 얘기라도 해요!”
“싫어! 오지 마! 솔이 미워!”
어린 하람은 절 붙잡는 이 솔을 뿌리치고 뺨을 내려쳤다. 처음으로 하람이 이 솔을 때린 날이었다. 맞은 이 솔은 멀쩡하고 하람만 손이 얼얼했지만, 이 솔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혔다는 건 알았다. 그날의 충격받은 표정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 이, 이건…….”
“……언니, 이제, 나 미워요?”
하람은 울고 있는 이 솔을 버려두고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때려버렸어.’
잘못한 건 이 솔이 아닌데. 그런 이유로 괴롭히는 사람들이 잘못된 건데.
‘게네들한테는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했으면서.’
하람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숨죽여 울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한테는 겁먹고 아무것도 못 했으면서, 이 솔에게 화를 냈다. 더 최악인 건, 이 솔은 절대 자신에게 화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화풀이를 한 것이다.
‘나는 나쁜 사람이야. 솔이도 나를 미워할 거야.’
하람은 이 솔이 더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에 놀란 부모님께서 방에 들어올 정도로.
“흐어엉, 사실은, 안 싫어해! 그보다 더 좋아한단 말이야! 쿨쩍, 으아앙!”
세상에 인정받는 재능, 빛나는 미래. 자신과는 다른 이 솔을 질투하기도 했고, 미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컸다. 처음 이 솔과 싸운 그날 밤, 하람은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울었다. 무능력자인 하람은 사과하고 싶어도 사냥꾼들의 거주 구역에 들어가거나 먼저 연락할 수는 없었다. 며칠이나 이 솔에게 연락이 없자, 하람은 그대로 이 솔과의 연이 끊어졌다고 생각했다.
“언니, 진짜로 저 미워요……?”
“……안 미워. 흑, 미안해, 때려서 미안해…….”
“어, 언니! 울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
하지만 언제나 이 솔은 하람을 찾아왔다. 싸우고, 화해하고, 울고, 웃고……. 긴 시간 동안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이 솔은 하람의 옆을 지켰다. 서로 싸우고 며칠이나 얼굴을 보지 않던 때에도, 하람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녀가 혼자 남았을 때도.
“언니, 제가 옆에 있을게요. 절대 떠나지 않아요.”
어린 이 솔은 울고 있는 하람을 끌어안고 달래주었다. 처음 만난 그날, 하람이 그랬던 것처럼. 목소리는 떨림을 감추지 못했고, 안긴 그 품은 너무 작았지만, 그 누구보다 든든했다. 혼자가 아니었기에 하람은 슬픔에 먹히지 않고 자신을 지탱할 수 있었다. 빈집에 혼자 남아도 외롭지 않았다. 이 솔은 절대로 떠나지 않을 테니까. 하람에게 이 솔은 그런 사람이었다. 늘 옆에 있는 사람, 항상 든든하고 고마운 사람, 그리고 참 귀여운 사람.
“오늘도 잘 먹고 가요.”
“내일도 먹고 가~”
이 솔과 함께 있는 시간은 늘 빨리 흘러가는 듯했다. 떠나지 않았으면 해서, 좀 더 함께하고 싶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이제 저 가볼게요. 내일은 수업이 오후부터 시작이라 아침에 올게요.”
“응, 기다릴게. 조심히 들어가.”
“문단속 꼭 잘하시고요,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저한테 연락하고, 급하면 제가 준 호신용품으로…….”
“알았어, 알았어.”
하람은 문밖으로 나서려는 이 솔을 바라보았다. 떠나는 뒷모습을 보는 마음이 구멍이 뚫린 듯 허전했다.
“솔아.”
“네, 언니.”
하람은 두 팔을 벌리고 이 솔을 끌어안았다. 당황한 이 솔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떨쳐내지는 않았다.
“어, 어, 언니?”
“정말 많이 컸다.”
작았던 그 품은, 저를 감쌀 정도로 자랐다. 키는 저를 넘긴 지 오래고. 단 하나 변하지 않은 건, 마주 보며 웃는 얼굴. 하람은 이 솔을 놔주고는 손을 흔들었다.
“잘 가.”
“……네.”
이 솔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흐느적거리며 걸어갔다. 하람은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며 배웅했다. 오늘도 하루가 저문다. 이거면 된다. 하람은 더는 욕심이라 생각했다. 평생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 이대로 소중한 사람과 함께라면.
“언니!”
이 솔은 평소보다 발 빠르게 하람의 집에 도착했다.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 솔의 얼굴은 티가 날 정도로 기뻐 보였다. 덩치 큰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떠올라 하람은 작게 웃었다.
“솔아, 어서 와.”
“많이 기다렸어요?”
“우리 솔이야 언제나 기다리지.”
“헤헤.”
이 솔이 수줍게 웃고는 부엌에 짐을 내려놓았다. 이 솔의 어머니가 하람에게 정기적으로 지원해주는 물건들은 생활용품부터 음식 재료까지 다양한 물품이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쓰라며 정해진 날마다 용돈을 넣어주기도 했다. 용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가 문제지만.
“오늘도 고생했어. 피곤하지는 않고?”
“괜찮아요. 저 체력 좋은 거 알면서.”
이 솔은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사냥꾼 일족. 게다가 걸음마를 뗐을 때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 웬만한 일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
“알아도 늘 걱정이지.”
하람은 말없이 웃으며 이 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솔이 사냥꾼에서도 강한 축에 속한다는 건 하람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소중한 사람이니만큼 걱정되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솔은 적도 많으니까.
“오늘은 뭐 먹고 싶어?”
“음……. 그럼 언니가 먹고 싶은 걸로.”
“하하, 뭐야 그게!”
하람이 장난스럽게 이 솔의 볼을 꼬집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졸도할 광경이었다. 사냥꾼은 장난으로라도 절대 제 몸에 장난치는 일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그게 이 솔일 경우 더욱.
사냥꾼 일족은 그 특수성과 능력을 인정받아 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는 독자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다. 아무리 상급 능력자라도 사람을 죽이면 나라에서 법으로 심판할 수 있으나, 사냥꾼은 심판할 수 없다. 사냥꾼에게 간섭할 수 있는 건 같은 사냥꾼과 가온교 뿐. 하지만 가온교와 사냥꾼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손을 대지 않는다. 결국, 사냥꾼에 관한 일은 사냥꾼 일족에서 모두 처리하는데 이와 높은 자부심이 맞물려 폐쇄적인 사회를 만들게 되었다.
육체적 능력으로 급을 나누는 사냥꾼들은 힘으로 모든 것을 겨루기 시작했고, 사냥꾼이 가지는 권력이 높아질수록 서로 짐승처럼 물어뜯기 시작했다. 현대에 와서도 죽고 죽이는 건 다반사. 약육강식의 체계로 죽은 자는 약한 자이니 죽는 것이 당연한 세계. 친지라 할지라도 모두 경쟁자이며, 제거해야 하는 존재. 시간이 흐르며 대놓고 죽이려 드는 모습은 없어졌으나, 더욱 음습한 방법으로 발전했다.
가령,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는 행위나, 손을 잡고 악수하는 행위도 사냥꾼 일족에게는 일종의 우위를 과시하는 행동일 만큼. 그래서 사냥꾼들은 신체 접촉을 최대한 피한다. 더군다나 이 솔은 사냥꾼 일족에서도 이단인 이 한의 딸로 태어나 날 때부터 주변에 적이 가득했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라도 이 솔을 제 밑에 두고 싶어 했고, 이 때문에 많은 일이 있었던 이 솔은 특히나 신체접촉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아무리 마음을 연 사림이라도 제 몸에 손을 대게 두지 않았다.
단, 하람만은 제외하고.
이 솔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단순히 하람에게 허락하는 의미가 아니라 하람에게라면 무릎을 꿇어도 좋다는 의미이다. 하람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정작 본인은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전 가리는 거 없으니까요.”
“그럼 솔이가 좋아하는 고기로 하자.”
“도와드릴까요?”
“그래, 그럼 같이하자.”
능숙하게 칼을 쓰는 이 솔을 보며, 하람은 이 솔과 처음 만난 그날을 생각했다.
‘그땐 저렇게 귀엽지는 않았지.’
하람은 중급 능력자인 부모님에게서 태어났다. 그들은 하나뿐인 딸이 무능력자라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다. 하람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딸의 인생에 고난만이 존재할 것이라 알았기에. 사회의 시선, 세상 사람들의 인식. 어린 하람을 가온교의 보육기관에 넘기는 선택을 할 수 있었으나, 자신들이 평생 사랑해주는 길을 택했다. 넘치도록 사랑을 주고, 딸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울타리가 되어주겠다고 맹세했다.
다행히 주변 이웃들도 좋은 사람뿐이었다. 하람을 동정하기는 해도 대놓고 욕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끔 보이는 동정 어린 시선, 새벽에 소리 없이 우는 부모님의 모습. 하람은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처지를 이해했다. 그래도 불행하지는 않았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부모님과 좋은 이웃 어른들. 하람은 그에 만족하고 살기로 했다. 평탄하고 단조로운 일상이 깨진 건 9살의 그날부터였다.
“너 울어?”
심부름하고 돌아가던 길, 하람은 거주지에서 처음 보는 또래 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안 울어. 보면 몰라?”
돌아온 건 싸가지없는 대답이었다. 하람은 기분이 나빠져 그냥 돌아가려 했다. 실제로 아이는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고, 울음소리를 내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얼굴이 어딘가 슬퍼 보여서, 가끔 부모님의 얼굴에서 보이는 그림자를 보는 것 같아서, 하람은 아이의 옆에 앉아 손을 잡아주었다.
“내 눈에는 네가 울고 있는 것 같아.”
아이는 아까처럼 톡 쏘며 대답하지도, 손을 떨쳐내지도 않았다. 머뭇거리다 손을 맞잡은 아이는 그제야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슬픔을 삼키고 있는 어린아이. 하람은 그 아이를 안고 토닥여주었다. 제 옷이 젖어가도 신경 쓰지 않으면서.
그게 이 솔과의 첫 만남이었다. 길을 잃은 이 솔을 처음 경찰서에 데려다 주었을 때, 사냥꾼 일족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하람도 사냥꾼이 어떤 사람인지는 안다. 평생 마주칠 일이 없을 아득히 높은 신분.
‘이젠 안 울면 좋겠는데.’
하람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그 아이가 슬퍼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 그땐……감사했습니다.”
이 솔이 감사 인사를 핑계로 찾아왔을 때는 솔직히 기뻤다.
이 솔은 그 뒤로도 계속 찾아왔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함께였던 것처럼 붙어있는 게 당연해졌다. 감정 표현을 절제하던 이 솔은 점차 솔직해지더니, 웃는 일이 많아졌다. 이 솔은 하람을 좋아했고, 하람도 이 솔이 좋았다.
“너 싫어! 너 때문에 괴롭힘당하는 거잖아! 이제 오지 마!”
“하, 하람 언니…….”
두 아이에게 마냥 행복한 나날만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사냥꾼과 연결이 생기자 동정의 시선을 거두고 질투하던 몇몇 이웃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솔과 어울리지 말라며 다른 사냥꾼 아이들이 괴롭힐 때는 너무 무서웠다. 그런 괴롭힘이 이어지자, 버티지 못한 하람은 이 솔에게 화를 냈다. 괜히 자신에게 찾아와 나쁜 일을 당하게 한 이 솔이 너무 미웠다. 잔뜩 화를 내고 엉엉 울기도 했다.
“어, 언니! 가지 마세요! 무슨 일인지 저랑 얘기라도 해요!”
“싫어! 오지 마! 솔이 미워!”
어린 하람은 절 붙잡는 이 솔을 뿌리치고 뺨을 내려쳤다. 처음으로 하람이 이 솔을 때린 날이었다. 맞은 이 솔은 멀쩡하고 하람만 손이 얼얼했지만, 이 솔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혔다는 건 알았다. 그날의 충격받은 표정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 이, 이건…….”
“……언니, 이제, 나 미워요?”
하람은 울고 있는 이 솔을 버려두고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때려버렸어.’
잘못한 건 이 솔이 아닌데. 그런 이유로 괴롭히는 사람들이 잘못된 건데.
‘게네들한테는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했으면서.’
하람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숨죽여 울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한테는 겁먹고 아무것도 못 했으면서, 이 솔에게 화를 냈다. 더 최악인 건, 이 솔은 절대 자신에게 화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화풀이를 한 것이다.
‘나는 나쁜 사람이야. 솔이도 나를 미워할 거야.’
하람은 이 솔이 더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에 놀란 부모님께서 방에 들어올 정도로.
“흐어엉, 사실은, 안 싫어해! 그보다 더 좋아한단 말이야! 쿨쩍, 으아앙!”
세상에 인정받는 재능, 빛나는 미래. 자신과는 다른 이 솔을 질투하기도 했고, 미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컸다. 처음 이 솔과 싸운 그날 밤, 하람은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울었다. 무능력자인 하람은 사과하고 싶어도 사냥꾼들의 거주 구역에 들어가거나 먼저 연락할 수는 없었다. 며칠이나 이 솔에게 연락이 없자, 하람은 그대로 이 솔과의 연이 끊어졌다고 생각했다.
“언니, 진짜로 저 미워요……?”
“……안 미워. 흑, 미안해, 때려서 미안해…….”
“어, 언니! 울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
하지만 언제나 이 솔은 하람을 찾아왔다. 싸우고, 화해하고, 울고, 웃고……. 긴 시간 동안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이 솔은 하람의 옆을 지켰다. 서로 싸우고 며칠이나 얼굴을 보지 않던 때에도, 하람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녀가 혼자 남았을 때도.
“언니, 제가 옆에 있을게요. 절대 떠나지 않아요.”
어린 이 솔은 울고 있는 하람을 끌어안고 달래주었다. 처음 만난 그날, 하람이 그랬던 것처럼. 목소리는 떨림을 감추지 못했고, 안긴 그 품은 너무 작았지만, 그 누구보다 든든했다. 혼자가 아니었기에 하람은 슬픔에 먹히지 않고 자신을 지탱할 수 있었다. 빈집에 혼자 남아도 외롭지 않았다. 이 솔은 절대로 떠나지 않을 테니까. 하람에게 이 솔은 그런 사람이었다. 늘 옆에 있는 사람, 항상 든든하고 고마운 사람, 그리고 참 귀여운 사람.
“오늘도 잘 먹고 가요.”
“내일도 먹고 가~”
이 솔과 함께 있는 시간은 늘 빨리 흘러가는 듯했다. 떠나지 않았으면 해서, 좀 더 함께하고 싶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이제 저 가볼게요. 내일은 수업이 오후부터 시작이라 아침에 올게요.”
“응, 기다릴게. 조심히 들어가.”
“문단속 꼭 잘하시고요,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저한테 연락하고, 급하면 제가 준 호신용품으로…….”
“알았어, 알았어.”
하람은 문밖으로 나서려는 이 솔을 바라보았다. 떠나는 뒷모습을 보는 마음이 구멍이 뚫린 듯 허전했다.
“솔아.”
“네, 언니.”
하람은 두 팔을 벌리고 이 솔을 끌어안았다. 당황한 이 솔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떨쳐내지는 않았다.
“어, 어, 언니?”
“정말 많이 컸다.”
작았던 그 품은, 저를 감쌀 정도로 자랐다. 키는 저를 넘긴 지 오래고. 단 하나 변하지 않은 건, 마주 보며 웃는 얼굴. 하람은 이 솔을 놔주고는 손을 흔들었다.
“잘 가.”
“……네.”
이 솔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흐느적거리며 걸어갔다. 하람은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며 배웅했다. 오늘도 하루가 저문다. 이거면 된다. 하람은 더는 욕심이라 생각했다. 평생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 이대로 소중한 사람과 함께라면.
작가의 말
꾸준히 올리고 싶은데 그게 안 되는...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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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9. 두 개의 날개조회 : 1,05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05 29.28. 인도(引導)(7)조회 : 98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78 28.27. 인도(引導)(6)조회 : 95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28 27.26. 인도(引導)(5)조회 : 1,02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1 26.25. 인도(引導)(4)조회 : 96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85 25.24. 인도(引導)(3)조회 : 1,15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6 24.23. 인도(引導)(2)조회 : 99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82 23.22. 인도(引導)조회 : 1,05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35 22.21. 파도(5)조회 : 39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62 21.20. 파도(4)조회 : 94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535 20.19. 파도(3)조회 : 8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61 19.18. 파도(2)조회 : 50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70 18.17. 파도조회 : 54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07 17.16. 파문(波紋)(4)조회 : 46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35 16.15. 파문(波紋)(3)조회 : 70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50 15.14. 파문(波紋)(2)조회 : 47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45 14.13. 파문(波紋)조회 : 50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70 13.12. 기억(4)조회 : 54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39 12.11. 기억(3)조회 : 51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34 11.10. 기억(2)조회 : 4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67 10.9. 기억조회 : 49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79 9.8. 혼돈조회 : 45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274 8.7. 변화(4)조회 : 41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25 7.6. 변화(3)조회 : 6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700 6.5. 변화(2)조회 : 51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91 5.4. 변화조회 : 51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17 4.3. 하늘 아래(3)조회 : 585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572 3.2. 하늘 아래(2)조회 : 655 추천 : 2 댓글 : 0 글자 : 5,117 2.1. 하늘 아래조회 : 680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972 1.0. 기도조회 : 2,457 추천 : 1 댓글 : 2 글자 : 4,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