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갈 데 없으면, 우리 집으로 올래요?
조회 : 1,920 추천 : 1 글자수 : 4,926 자 2022-09-13
소득냄새와 바쁘게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의사와 간호사는 한숨을 돌리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학생 정신이 들어요? 이름이 뭐 예요?
"...켁켁 ...."
의사는 못마땅한 얼굴로 핀잔을 줬다.
"아무리 어린다고 생각이 없다고 해도, 물놀이 하려면 구명조끼도 입고! 진짜 저 누나만 아니었으면, 황천길 갔어요. 저 누나 덕에 살아 있으니까.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요."
의사의 시선이 머무른 곳을 쳐다봤다. 물에 빠진 고양이처럼 처량하게 서 있는 단발머리 여자를 보자 헛웃음이 나왔다.
'고맙긴 개뿔! 젠장.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네.'
응급의사의 손짓에 그 여자가 물에 빠져 처량한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왔다. 실 바닥에 떨어진 물기를 보자, 가라앉은 내 목덜미를 필사적으로 끌고 가던 그 여자의 울부짖음이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죽지 마. 죽으면 안돼! 눈 떠! 제발 살아줘!]
[이거 놔! 놓으라고! 제발 죽게 놔 둬!]
[사람 살려!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제발 누구 좀 도와줘요.]
[어푸어푸....엄마한테...가게... 어푸어푸]
힐끔거리며 훑어보던 그 여자가 불안한 눈빛으로 의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을까요? 죽....죽지 않겠죠. 의사 선생님."
"저체온증도 잡았고, 특별한 이상도 없으니까. 수액마저 맞고 집에 가면 됩니다. 이 놈아 누나한테 잘해라~"
명의라도 되는 양 거만하게 대꾸하던 의사가 사라진 후에, 강가에 돌멩이처럼 굴러온 누나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쭙잖은 호구조사를 한답시고 입을 놀리지 않고 조용히 날 응시만 했다. 그 덕분에 나도 눈을 조용히 감을 수가 있었다.
말하지 알아요 듯, 평화협정을 맺던 우리들의 정적을 간호사가 깼다.
"응급실 수납때문에 물어보는 건데, 누나 말고 다른 보호자분 없나요? "
"...없는데요."
간호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떠보듯 되물었다.
"정말 없어요? 그럼 친 누나가 맞죠? "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누나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하리 심정으로 입술을 떼려는 순간.
지켜보던 누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사..사촌 누나예요. 아까 접수한데에서 수납하면 되죠."
***
계절의 여왕 5월이라고 하더라도, 새벽녘 차가운 공기만은 온기로 데울 수 없었다. 저절로 몸이 움츠려지는데, 축축한 빨래처럼 무겁게 걸어오는 누나는 오죽할까 싶어 뒤를 돌았다.
"...누나, 병원비는 계좌로 송금할 게요. 핸드폰 번호와 계좌번호 좀 가르쳐 주세요."
깊은 눈동자로 말해요처럼, 멀뚱하게 쳐다보던 누나가 혼잣말 하듯 내뱉었다.
"...괜찮아. 살아준 것만으로 됐어. 그거면 돼. 잘 가."
" 혹시 내가 귀찮게 할까 봐, 그래요. 정 싫으면 계좌번호만 알려줘요. 빚지고 가기 싫으니까."
불안감에 흔들리는 눈동자로 필사적으로 저지하듯 내 팔을 잡은 누나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빚지고? 또 가려고. 그 강에..."
'언제 봤다고, 이렇게까지... 누나라고 불러주니까. 정말 내 누나라도 되는 거 마냥, 귀찮게 오지랖을 부리네. 꼭 버려진 고양이처럼 생겨 가지고. 입술은 또 왜 파래가지고... 응급실에 다시 가야 하나? 찝찝하게...거슬리네.'
잡힌 팔목을 빼며 가식적인 눈웃음으로 안심시켰다.
"물놀이는 그 정도 했으면 됐죠. 애도 아니고. 누나, 빨리 계좌번호라도 불러줘요."
"...없어."
"네?"
"핸드폰도 없고... 통장도 없어. 약속이 있어. 먼저 갈게. 잘 가."
'누굴 바보로 아나! 수납할 때 핸드폰 번호와 신용카드도 봤는데. 아~씨. 몰라! 난 분명히 갚는다고 했는데, 자기가 안 받는다고 했는데. 내가 뭐 어떻게 하겠어. 저러다가 길바닥에 쓰리지 않겠지. 몰라. 그냥 가자. '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까지 선을 긋고 싶다는데, 굳이 캐물을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귀찮기도 하고, 나름 흑역사가 될 만남인데. 오히려 없는 일처럼 지나가면 고맙다는 생각으로 멀어지는 누나를 쳐다봤다.
막상 집에 들어갈 생각하니, 집에다 놓고 온 지갑과 핸드폰이 떠올랐다.
" 장 집사 할아버지한테 전화할까... 잔소리에 내 귀만 아프지. 그냥 걸어가자."
고개를 숙이고 무거운 몸을 끌고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검은 그림자에 막혀 고개를 들었다.
"생각해보니까. 집에 갈 차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귀찮은 표정으로 누나를 쳐다보자, 기다렸다는 듯 내 손에 오만 원을 집어 줬다.
'나랑 뭐 하자는 건지. 진짜. 누가 누굴 걱정해? 바람 불면 날아갈 게 생겨서. 손목은 또 왜 이렇게 얇아? 배곯은 사람처럼.'
거지가 구걸한 돈을 갈취하는 양아치가 되는 기분이었다. 딱 봐도 수중에 있는 돈이 전부 같는데, 돌려 줄 새도 없이도망을갔다.
'눈도 고양이처럼 생겨 가지고, 행동도 경계심 많은 길 고양이 같네. '
병원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버스 정류장의 벤치에 길 고양이처럼 그녀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모른 척 지나가려고 했지만, 웬일이지 붙박이장처럼 길바닥에 딱 붙었다. 그녀를 한참을 바라보고 있잖니. 하염없이 착한 집사를 기다리는 불쌍한 고양이처럼 보였다.
' 불쌍한 고양이 좋아하네. 이런 미친! 누가 누굴 불쌍하다고. 웃기고 있다.'
쓴웃음이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오고 있지만, 어느새 누나 쪽으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흠칫 놀란 고양이의 퇴로를 막듯 누나 옆으로 바짝 당겨 앉으면, 입밖으로 나오는 대로 말했다.
"갈 데 없으면 우리집 갈래요?"
고양이처럼 동그랗게 눈을 치켜 세운 누나가 벌떡 일어나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싫어! 네가 누굴 줄 알고 따라가! 상관하지 말고 네 갈 길 가."
"좋아! 내가 누굴 알려 줄 테니까. 상관해도 되죠. 사촌 누나!"
당연한 반응인데, 약간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황천길 가고 싶은 사람을 억지로 살려 놓은 심통일까? 아무튼 보따리 내놓으라는 못된 심보. 아니 오기가 발동했다.
"뭐?"
"그렇게, 귀찮게도 물에 빠진 사람을 왜 살려서... 은혜 갚는 제비라고 치고. 가죠. 우리 집에."
"........"
생각보다 빨리, 내가 잡은 택시에 올라탔다. 무심한척 창가를 봤지만, 룸미러로 누나의 표정을 힐끔거렸다. 불안한 눈빛을 애써 감추려는 듯 택시 창문을 올렸다 내렸 다를 반복했다.
'초등학생 같네. 하긴 , 생판 모른 사람을 쫓아가면서 불안하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하지.'
***
택시에 내린 누나가 정말 이집이 너의 집 맞아? 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합니다. 현수막이라도 걸어 둘 걸 그랬나?"
"어?"
"높다란 담벼락에 촌스러운 초록색 대문이 달려 있는 2층 주택이 우리 집입니다. 들어가죠. 누나."
우리집의 촌스러운 초록색 대문을 성의 관문인 성문 보듯 누나는 망설이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철컥
마지막 관문에서 망설이듯 안절부절 못하는 누나를 끌어당겨, 우리 집 대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누나는 경계심이 가득한 고양이처럼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다, 이내 뒷걸음질쳤다. 이 상태로 있다 간 대문을 붙잡고 밤새울 것 같아, 무심한 부동산 중개인 마냥 떠들어댔다.
"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잡초가 무성한 마당에 장독대처럼 작은 항아리들이 잔뜩 늘어져 있을 거예요. 우리 엄마가 키우던 들꽃들인데, 관리를 못해서 다 죽었지만...."
계단 끝에 마당에서 조심스럽게 올라오는 누나의 시선을 맞추듯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꽃 좋아해요?"
서넛 계단을 남겨놓고 날 올려다 보던 누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 응."
"그럼 잘 됐네. 말라 죽고 축 처진 잡초들 다 뽑아버리고, 누나가 좋아하는 꽃들로 꾸미면 되겠네."
"어머님이 정성스럽게 가꾸신 꽃들인데... 어떻게 내가?"
"죽이는 게 특기인 나를 잘 알고 계셔서. 다 이해해주실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황량한 폐가처럼 버려진 마당보다 생기 있는 정원을 더 좋아하세요. 아마 잘했다고, 손뼉을 칠 거예요. 우리 엄마는....."
마당에 발걸음을 내딛은 누나가 말라 비틀어져 죽어가는 꽃들을 살펴보며, 안타까운 얼굴로 응답했다.
"최대한 어머님이 아끼시던 꽃들을 최대한 살려보고, 나머지는 내가 좋아하는 꽃들로 심어 볼 게. 혹시 싫어하는 꽃 있어?
"없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를 포함해 이 마당을 불태우고 싶었다. 잡초 무성한 마당을 볼 때면, 돌아가신 엄마의 부재를 뼈저리게 실감했고. 혼자 살아남아 죄책감에 바짝 말라가는 꽃들이 꼭, 나 같아서 싫었다. 무엇보다 내 손으로 엄마의 흔적을 지우는 것 같아서 못 본 척, 방치했다. 이젠 엄마 대신 가꿔줄 사람이 생겼다는 안심과 쓸쓸함 그리고 그리움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그렇구나...."
고개를 갸우뚱하던 누나의 표정으로 봐서는 더 물어 볼만한데, 고맙게도 입을 닫았다. 애써 괜찮은 척, 아무일 없다는 듯 현관문의 도어락을 꾹꾹 눌렀다.
삐삐삐~틱!
현관물에서 직진으로 걸어가서 무성한 잡초가 나뒹구는 마당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통창이 시원하게 펼쳐진 거실의 소파에 누나를 앉혔다. 목도 마르고, 낯선 공간에 적응할 시간을 줄 생각으로 주방으로 걸어갔다. 냉장고에서 포도 주스를 따라 거실 탁자에 올려놓고 말을 이어갔다.
"마셔요. 누나. 현관 왼쪽으로 주방, 그 옆에는 다이닝룸. 오른쪽으로는 안방 그리고 서재. 여기 1층은 누나가 사용하고, 거실 가운데 계단으로 올라가면 내방이 나와요. 화장실과 욕실은 2층에도 있으니까. 걱정 말고. 참고로 이 집엔 나 혼자만 살고 있죠."
" 정말 이 큰 집에 혼자 살아? 부모님은?"
"부모님은 .... 뺑소니 사고로 돌아가시고. 혼자 살아남았어요."
"그래서... 그랬구나. 나도 그 강에... 익사 사고로 동생을 잃고 혼자 살아남았어."
"네?"
"그렇다고. 나도."
'그렇다고 나도' 라는 말의 무게에 목이 메였다.
계약서라고 누나에게 내밀었지만. 실상은 A4용지에 각자의 이름과 주민번호, 그리고 핸드폰 번호를 작성한 각서 정도라 할까. 나름 계약 흉내 낸다고 지장까지 찍었다.
"20살이고, 홍 임수네요. 진짜 누나네요."
"너는 15살, 지국장. 중2? 맞지."
"네. 그 무서운 중 2병인데, 무서우면 언제든지 계약 파기해도 됩니다."
"안 무서워. 평생 중2 병도 아니고. 진짜 무서운 건, 갈 데가 없다는 사실이지."
그렇게 우린 15년을 친남매처럼 지냈다. 그건 순전히 누나만의 생각이다. 실상은 나와 누나가 동거한 세월이었다. 누나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의사와 간호사는 한숨을 돌리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학생 정신이 들어요? 이름이 뭐 예요?
"...켁켁 ...."
의사는 못마땅한 얼굴로 핀잔을 줬다.
"아무리 어린다고 생각이 없다고 해도, 물놀이 하려면 구명조끼도 입고! 진짜 저 누나만 아니었으면, 황천길 갔어요. 저 누나 덕에 살아 있으니까.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요."
의사의 시선이 머무른 곳을 쳐다봤다. 물에 빠진 고양이처럼 처량하게 서 있는 단발머리 여자를 보자 헛웃음이 나왔다.
'고맙긴 개뿔! 젠장.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네.'
응급의사의 손짓에 그 여자가 물에 빠져 처량한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왔다. 실 바닥에 떨어진 물기를 보자, 가라앉은 내 목덜미를 필사적으로 끌고 가던 그 여자의 울부짖음이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죽지 마. 죽으면 안돼! 눈 떠! 제발 살아줘!]
[이거 놔! 놓으라고! 제발 죽게 놔 둬!]
[사람 살려!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제발 누구 좀 도와줘요.]
[어푸어푸....엄마한테...가게... 어푸어푸]
힐끔거리며 훑어보던 그 여자가 불안한 눈빛으로 의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을까요? 죽....죽지 않겠죠. 의사 선생님."
"저체온증도 잡았고, 특별한 이상도 없으니까. 수액마저 맞고 집에 가면 됩니다. 이 놈아 누나한테 잘해라~"
명의라도 되는 양 거만하게 대꾸하던 의사가 사라진 후에, 강가에 돌멩이처럼 굴러온 누나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쭙잖은 호구조사를 한답시고 입을 놀리지 않고 조용히 날 응시만 했다. 그 덕분에 나도 눈을 조용히 감을 수가 있었다.
말하지 알아요 듯, 평화협정을 맺던 우리들의 정적을 간호사가 깼다.
"응급실 수납때문에 물어보는 건데, 누나 말고 다른 보호자분 없나요? "
"...없는데요."
간호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떠보듯 되물었다.
"정말 없어요? 그럼 친 누나가 맞죠? "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누나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하리 심정으로 입술을 떼려는 순간.
지켜보던 누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사..사촌 누나예요. 아까 접수한데에서 수납하면 되죠."
***
계절의 여왕 5월이라고 하더라도, 새벽녘 차가운 공기만은 온기로 데울 수 없었다. 저절로 몸이 움츠려지는데, 축축한 빨래처럼 무겁게 걸어오는 누나는 오죽할까 싶어 뒤를 돌았다.
"...누나, 병원비는 계좌로 송금할 게요. 핸드폰 번호와 계좌번호 좀 가르쳐 주세요."
깊은 눈동자로 말해요처럼, 멀뚱하게 쳐다보던 누나가 혼잣말 하듯 내뱉었다.
"...괜찮아. 살아준 것만으로 됐어. 그거면 돼. 잘 가."
" 혹시 내가 귀찮게 할까 봐, 그래요. 정 싫으면 계좌번호만 알려줘요. 빚지고 가기 싫으니까."
불안감에 흔들리는 눈동자로 필사적으로 저지하듯 내 팔을 잡은 누나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빚지고? 또 가려고. 그 강에..."
'언제 봤다고, 이렇게까지... 누나라고 불러주니까. 정말 내 누나라도 되는 거 마냥, 귀찮게 오지랖을 부리네. 꼭 버려진 고양이처럼 생겨 가지고. 입술은 또 왜 파래가지고... 응급실에 다시 가야 하나? 찝찝하게...거슬리네.'
잡힌 팔목을 빼며 가식적인 눈웃음으로 안심시켰다.
"물놀이는 그 정도 했으면 됐죠. 애도 아니고. 누나, 빨리 계좌번호라도 불러줘요."
"...없어."
"네?"
"핸드폰도 없고... 통장도 없어. 약속이 있어. 먼저 갈게. 잘 가."
'누굴 바보로 아나! 수납할 때 핸드폰 번호와 신용카드도 봤는데. 아~씨. 몰라! 난 분명히 갚는다고 했는데, 자기가 안 받는다고 했는데. 내가 뭐 어떻게 하겠어. 저러다가 길바닥에 쓰리지 않겠지. 몰라. 그냥 가자. '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까지 선을 긋고 싶다는데, 굳이 캐물을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귀찮기도 하고, 나름 흑역사가 될 만남인데. 오히려 없는 일처럼 지나가면 고맙다는 생각으로 멀어지는 누나를 쳐다봤다.
막상 집에 들어갈 생각하니, 집에다 놓고 온 지갑과 핸드폰이 떠올랐다.
" 장 집사 할아버지한테 전화할까... 잔소리에 내 귀만 아프지. 그냥 걸어가자."
고개를 숙이고 무거운 몸을 끌고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검은 그림자에 막혀 고개를 들었다.
"생각해보니까. 집에 갈 차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귀찮은 표정으로 누나를 쳐다보자, 기다렸다는 듯 내 손에 오만 원을 집어 줬다.
'나랑 뭐 하자는 건지. 진짜. 누가 누굴 걱정해? 바람 불면 날아갈 게 생겨서. 손목은 또 왜 이렇게 얇아? 배곯은 사람처럼.'
거지가 구걸한 돈을 갈취하는 양아치가 되는 기분이었다. 딱 봐도 수중에 있는 돈이 전부 같는데, 돌려 줄 새도 없이도망을갔다.
'눈도 고양이처럼 생겨 가지고, 행동도 경계심 많은 길 고양이 같네. '
병원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버스 정류장의 벤치에 길 고양이처럼 그녀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모른 척 지나가려고 했지만, 웬일이지 붙박이장처럼 길바닥에 딱 붙었다. 그녀를 한참을 바라보고 있잖니. 하염없이 착한 집사를 기다리는 불쌍한 고양이처럼 보였다.
' 불쌍한 고양이 좋아하네. 이런 미친! 누가 누굴 불쌍하다고. 웃기고 있다.'
쓴웃음이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오고 있지만, 어느새 누나 쪽으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흠칫 놀란 고양이의 퇴로를 막듯 누나 옆으로 바짝 당겨 앉으면, 입밖으로 나오는 대로 말했다.
"갈 데 없으면 우리집 갈래요?"
고양이처럼 동그랗게 눈을 치켜 세운 누나가 벌떡 일어나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싫어! 네가 누굴 줄 알고 따라가! 상관하지 말고 네 갈 길 가."
"좋아! 내가 누굴 알려 줄 테니까. 상관해도 되죠. 사촌 누나!"
당연한 반응인데, 약간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황천길 가고 싶은 사람을 억지로 살려 놓은 심통일까? 아무튼 보따리 내놓으라는 못된 심보. 아니 오기가 발동했다.
"뭐?"
"그렇게, 귀찮게도 물에 빠진 사람을 왜 살려서... 은혜 갚는 제비라고 치고. 가죠. 우리 집에."
"........"
생각보다 빨리, 내가 잡은 택시에 올라탔다. 무심한척 창가를 봤지만, 룸미러로 누나의 표정을 힐끔거렸다. 불안한 눈빛을 애써 감추려는 듯 택시 창문을 올렸다 내렸 다를 반복했다.
'초등학생 같네. 하긴 , 생판 모른 사람을 쫓아가면서 불안하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하지.'
***
택시에 내린 누나가 정말 이집이 너의 집 맞아? 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합니다. 현수막이라도 걸어 둘 걸 그랬나?"
"어?"
"높다란 담벼락에 촌스러운 초록색 대문이 달려 있는 2층 주택이 우리 집입니다. 들어가죠. 누나."
우리집의 촌스러운 초록색 대문을 성의 관문인 성문 보듯 누나는 망설이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철컥
마지막 관문에서 망설이듯 안절부절 못하는 누나를 끌어당겨, 우리 집 대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누나는 경계심이 가득한 고양이처럼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다, 이내 뒷걸음질쳤다. 이 상태로 있다 간 대문을 붙잡고 밤새울 것 같아, 무심한 부동산 중개인 마냥 떠들어댔다.
"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잡초가 무성한 마당에 장독대처럼 작은 항아리들이 잔뜩 늘어져 있을 거예요. 우리 엄마가 키우던 들꽃들인데, 관리를 못해서 다 죽었지만...."
계단 끝에 마당에서 조심스럽게 올라오는 누나의 시선을 맞추듯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꽃 좋아해요?"
서넛 계단을 남겨놓고 날 올려다 보던 누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 응."
"그럼 잘 됐네. 말라 죽고 축 처진 잡초들 다 뽑아버리고, 누나가 좋아하는 꽃들로 꾸미면 되겠네."
"어머님이 정성스럽게 가꾸신 꽃들인데... 어떻게 내가?"
"죽이는 게 특기인 나를 잘 알고 계셔서. 다 이해해주실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황량한 폐가처럼 버려진 마당보다 생기 있는 정원을 더 좋아하세요. 아마 잘했다고, 손뼉을 칠 거예요. 우리 엄마는....."
마당에 발걸음을 내딛은 누나가 말라 비틀어져 죽어가는 꽃들을 살펴보며, 안타까운 얼굴로 응답했다.
"최대한 어머님이 아끼시던 꽃들을 최대한 살려보고, 나머지는 내가 좋아하는 꽃들로 심어 볼 게. 혹시 싫어하는 꽃 있어?
"없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를 포함해 이 마당을 불태우고 싶었다. 잡초 무성한 마당을 볼 때면, 돌아가신 엄마의 부재를 뼈저리게 실감했고. 혼자 살아남아 죄책감에 바짝 말라가는 꽃들이 꼭, 나 같아서 싫었다. 무엇보다 내 손으로 엄마의 흔적을 지우는 것 같아서 못 본 척, 방치했다. 이젠 엄마 대신 가꿔줄 사람이 생겼다는 안심과 쓸쓸함 그리고 그리움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그렇구나...."
고개를 갸우뚱하던 누나의 표정으로 봐서는 더 물어 볼만한데, 고맙게도 입을 닫았다. 애써 괜찮은 척, 아무일 없다는 듯 현관문의 도어락을 꾹꾹 눌렀다.
삐삐삐~틱!
현관물에서 직진으로 걸어가서 무성한 잡초가 나뒹구는 마당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통창이 시원하게 펼쳐진 거실의 소파에 누나를 앉혔다. 목도 마르고, 낯선 공간에 적응할 시간을 줄 생각으로 주방으로 걸어갔다. 냉장고에서 포도 주스를 따라 거실 탁자에 올려놓고 말을 이어갔다.
"마셔요. 누나. 현관 왼쪽으로 주방, 그 옆에는 다이닝룸. 오른쪽으로는 안방 그리고 서재. 여기 1층은 누나가 사용하고, 거실 가운데 계단으로 올라가면 내방이 나와요. 화장실과 욕실은 2층에도 있으니까. 걱정 말고. 참고로 이 집엔 나 혼자만 살고 있죠."
" 정말 이 큰 집에 혼자 살아? 부모님은?"
"부모님은 .... 뺑소니 사고로 돌아가시고. 혼자 살아남았어요."
"그래서... 그랬구나. 나도 그 강에... 익사 사고로 동생을 잃고 혼자 살아남았어."
"네?"
"그렇다고. 나도."
'그렇다고 나도' 라는 말의 무게에 목이 메였다.
계약서라고 누나에게 내밀었지만. 실상은 A4용지에 각자의 이름과 주민번호, 그리고 핸드폰 번호를 작성한 각서 정도라 할까. 나름 계약 흉내 낸다고 지장까지 찍었다.
"20살이고, 홍 임수네요. 진짜 누나네요."
"너는 15살, 지국장. 중2? 맞지."
"네. 그 무서운 중 2병인데, 무서우면 언제든지 계약 파기해도 됩니다."
"안 무서워. 평생 중2 병도 아니고. 진짜 무서운 건, 갈 데가 없다는 사실이지."
그렇게 우린 15년을 친남매처럼 지냈다. 그건 순전히 누나만의 생각이다. 실상은 나와 누나가 동거한 세월이었다. 누나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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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댕댕이가 아니라 늑대라고!
11.11화- 감언이설을 팩트로 만들면 홍 대리님, 저에게 오실래요?조회 : 1,57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57 10.10화- 우리들의 보스, 지국장을 위하여! 건배!조회 : 1,3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72 9.9화-캐피탈 대표 지국장? 내가?조회 : 1,94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24 8.8화- 이 남자의 정체가 뭐야?조회 : 1,98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18 7.7화-쪽파림은 순간이니까, 비뇨기과 가자.조회 : 1,83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485 6.6화- 이제부터 내가 남자로 보일 거야!조회 : 1,66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75 5.5화- 남자는 나 하나로 만족해!조회 : 1,01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58 4.4화- 반갑다. 꼬맹이!조회 : 1,57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46 3.3화- 스위트 룸이면! 밤새도록 누나를 끌어안고 자도 돼?조회 : 64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65 2.2화- 댕댕이도 누나의 목덜미를 물 수 있다는 거, 알아?조회 : 79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790 1.1화- 갈 데 없으면, 우리 집으로 올래요?조회 : 1,928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