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이제부터 내가 남자로 보일 거야!
조회 : 1,656 추천 : 0 글자수 : 4,875 자 2022-10-01
움찔하는 누나의 엄지손가락을 놓칠세라 내 혀의 압력을 이용해 세차게 빨았다.
내 입안의 점막 열기에 누나는 얼어버렸다.
누나의 숨소리마저 삼키고 싶은 농염한 늑대의 눈빛으로 갈무리하자, 위험을 감지한 누나가 내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아무리 배고파도! 누나는 먹는 게 아니야! 드럽게 침 범벅은 어떡해. 이놈의 댕댕아.”
“앗! 아프다고. 누나.”
아픈 이마를 문지르면서도 피가 새어 나오는 누나의 엄지손가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준비해온 소독솜으로 닦아주고 반창고를 붙여줬다.
순진무구한 댕댕이의 눈빛에 안심이 되는지, 누나가 습관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많이 컸네. 우리 댕댕이! 애인 생기면 자상하게 잘하겠다. 이 누나가 키운 보람이 있다.”
얘 취급에 욱해서, 머리를 뒤로 저치고 단호하게 말했다.
“누가 누굴 키워. 내가 누나를 키웠지!”
“어~후! 그러셨어요. 우리 댕댕이님.”
“언제까지 얘 취급할 거야! 누나, 나도 이젠 30살이라고. 달걀 한 판! 골라 먹는 재미 하나가 모자란 30!”
“야~ 나는 35살인데. 이게 어디서! 누나한테 눈을 부릅뜰까. 이리 와봐!”
사춘기 접어든 아들의 반항을 참을 수 없다는 듯 누나가 내 구레나룻 잡아당겼다.
“아! 아~ 놔! 놓으라고. 진짜~ 아프다고.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이러지 맙시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구레나룻 뽑아버릴까. 아니지. 이왕 뽑는 거, 머리카락을 뽑아주마. 이 댕댕아.”
“몇 번을 말해. 남자의 패션에 완성은 헤어 스타일이야! 풍성한 머리채 잡을 생각하지 말고, 내 입술을 뽑아버릴 정도로 뽀뽀해줘.”
현실 남매의 티격태격 덕분인지, 민간요법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누나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체기가 내려간 누나가 홀가분한 위장을 자축하려는 듯 핸드백 속에 꺼낸 캔맥주를 마시려는 순간.
찍~퍽!
잽싸게 캔맥주를 땅바닥에 내던졌다.
“체한 주제에! 무슨 맥주야.”
처참하게 찌그러진 캔맥주에 이성을 잃은 누나가 내 귀청이 떨어져 나가 정도로 분노했다.
“야! 이~ 개장수에게 된장 발려서 꼴 까닥하고 싶지! 이 댕댕아. 내 피 같은 내 맥주를 왜! 왜! 왜!~ 버려. 죽고 싶지.”
“아~귀 아파. 목청 하나 끝내준다. 속이 뻥~ 뚫렸네. 우리 철없는 누나야! 물이나 마시고 발 닦고 잠이나 자자.”
내가 얄미웠는지. 핸드백 속에서 꺼낸 초코송이를 내 얼굴에 냅다 던졌다.
“나이스 캐치! 고마워. 누나~ 잘 먹을게.”
“으~ 아! 된장에 발라서 보신탕집에 입양 보내 버린다. 이놈의 댕댕아!”
약이 바짝 오른 누나가 내 가슴팍을 때린다고 때리는데.
가냘픈 누나의 손목이 허공만 휘젓고, 애처롭게 내 품에 갇히고 만다.
“이것 안 놔! 버릇없는 댕댕아. 진짜 화낸다. 이 손, 놓으라고.”
누나의 머리 위에서 초코송이를 야무지게 씹어 먹었다.
“진짜 맛있다. 누나가 사줘서 그런가? 누나도 먹어 볼래? 아주 입에서 살살 녹아. 아~”
내 품에 갇힌 누나가 두더지 게임처럼 펄쩍 뛰면서 화를 내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좋은 말로 할 때 내 팔, 풀어. 야! 네가 나한테 무슨 행복을 빼앗은 줄 알아! 저놈의 댕댕이를 내다 버릴 수 없고! 아~ 내 팔자야.”
누나의 헤딩으로 닿을 수 없는 거리감에 나보다 짧은 다리로 뒷발길질을 날렸지만, 그 역시도 역부족이었다.
“뭔 놈의 다리는 왜 이렇게 길어! 인간적으로 너무하잖아. 진짜~ 짜증 나. 짜증이 난다고.”
“미안! 롱다리로 태어난 걸 어떡해! 그리고 분명히 짚고 넘어갈 대목은 내가 집주인이라 쫓아낼 수 없다는 사실.”
“아~ 얄미워. 얄밉게도 말하는 것도 재주다. 건물주 덕분에 원샷으로 소주 마시고 싶다.”
“미안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지. 이럴 때 우리는 보통, 세입자의 개꿈이라 말하지.”
“뭐? 개꿈! 하느님 위에 건물주라고 하더니. 시건방이 하늘을 찌른다.”
“당연하지. 건물주인데! 내 눈에 흙이 들어가 전에 어림도 없는 소리 그만하시고. 꿈 깨셔!”
약이 바짝 오른 누나가 초코송이를 낚아채, 부스러기를 내 얼굴에 뿌렸다.
“앗! 눈에 들어갔어. 이거 어떡해!”
“흙 대신 과자 부스러기라도 눈에 들어갔으니까! 개꿈 꿔도 되지. 하! 이 악덕 집주인아! 먼저 간다.”
눈도 못 뜨는 내가 불쌍했는지. 누나가 일회용 식염수를 내 손에 쥐여주고 도망갔다.
“이러니, 사랑하지 않으려고 해도, 사랑할 수밖에 없지.”
식염수로 씻어내 맑은 눈으로 누나를 쫓아갔다.
유치찬란한 ‘나 잡아, 봐라’ 연인 놀이에 짝사랑의 슬픔도 눈 녹듯이 사라졌다.
“누나가 조금만 놀아줘도 이렇게 좋다고 꼬리 흔드니! 댕댕이 취급이나 받아도 싸다 싸. 이 배알도 없는 새끼야! 그래도 좋은 걸 어떻게!”
***
도망가던 누나가 뒤돌아보다가 그만, 대문 턱에 걸려 대짜로 뻗었다.
“엄마야!”
식겁해 달려온 내가 누나를 살펴봤다.
팔, 다리를 쭉 뻗고 죽은 해부실 개구리처럼 미동조차 없는 누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피범벅으로 죽어가던 엄마와 누나가 겹쳐 보여 눈앞이 캄캄하고 덜컥 겁이 났다.
“… 누나…누나 …119! 내 핸드폰 어디 있지.”
떨리는 손으로 허둥지둥 주머니 속에서 찾은 핸드폰으로 119로 신고하는 순간.
시체처럼 누워 있던 누나가 벌떡 일어나 내 핸드폰을 빼앗았다.
“유난 떨지 마! 넘어졌다고 누가 119를 불러. 창피하게.”
안도감에 버럭 화를 냈다.
“장난도 정도껏 쳐야지! 놀래잖아. 정말 머리라도 다칠 줄 알고…….”
“다친 사람은 난 데! 네가 왜 화를 냈는데. 아픈 것보다, 쪽팔려서 일어나지 못했다. 됐냐!”
털썩 주저앉아 맥 빠진 얼굴로 한숨 돌렸다. 뱃속도 긴장이 풀렸는지, 배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꼬르르~ 꼬르르.
“너 설마? 내가 점심 약속 취소했다고, 한 끼도 안 먹은 거야?”
“어.”
“자랑이다. 일어나. 냉장고에 미역국 있으니까. 데워서 먹자.”
투덜거리면서 챙겨주는 누나의 관심이 좋아서 어린양을 피웠다.
“미역국 말고, 누나의 마음에 내가 있다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댕댕이가 풀 뜯어먹는 소리 하지 말고, 미역국 먹기 싫으면 먹지 마!”
“너무 좋아서 그러지. 누나가 끓여주는 미역국은 이상하게도 안 질려. 364일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 있어. 정말이야!”
“나도 이상하다는 소리를 종종 들은 입장이라 말하기 좀 민망한데. 내가 봐도, 너는 정말 이상해.”
“앗싸! 우리가 천생연분이라는 소리네.”
오글거림에 진저리 치던 누나가 현관 도어록을 누르며 잔소리했다.
띠띠띠띠~탁
“말을 말자. 그나저나 나 없다고, 굶어? 너만 손해야. 냉장고에 반찬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으면 되잖아. 뭐가 어려운데? 그것도 귀찮으면 배달 민족답게 시켜 먹던가.”
“누나가 있는데. 왜?”
믿음이 충만한 되물음에 누나가 헛웃음 흘렸다.
“꿈 깨! 나도, 너 늙기 전에 독립해야지. 언제까지 너한테 빌 불을 수는 없잖아.”
뻔히 내 마음을 알면서, 저렇게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태평하게 하는 누나가 밉다 못해 화가 났다.
‘그놈한테는 파스타까지 챙겨줬으면서!’
신발을 던지듯 벗고 쿵쾅거리며 다이닝룸으로 걸어갔다.
***
“미역국 준다며. 빨리 줘. 배고파 죽겠다고!”
“그러니까. 죽기 전에 알아서 차려 드시라고요. 아니면 늙어가는 누나에게 효도한다고 생각하고 사 먹고 오던가! 귀찮게 하지 말고. 동생아~.”
누나가 귀찮은 아들 밥상을 차려주듯,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통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무신경한 누나에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따지고 싶었다.
‘처음 만난 그놈한테는 파스타까지 덜어주면서. 15년을 같이 산, 나에게 밥 한 끼 차려주는 게 그렇게 귀찮아? 너무하잖아!’
서러움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 울어? 야! 이게 울 일이야? 내가 이해가 안 돼서 묻는 건데. 어느 부분에서 눈물이 나는데.”
“안 울어. 누나가 귀찮아하는 건 알겠는데. ~ 하! 월세 대신 내 밥 차려주기로 했으면서. 누나가 이러는 거, 계약 위반이야.”
“계약 위반? 야! 그래 말 잘했다. 그렇게 따지면, 밥 한 끼만이잖아. 그런데 실상은 아침 점심 저녁까지 차려 줄 때는 아무 말 없이, 잘 받아 드시고. 오늘 일 때문에 하루 안 차려줬다고, 계약 위반을 운운해.”
“정말로 일 때문에 점심 약속을 취소했다고?”
“그래! 일 때문이다. 야 잠깐만! 너 낮에 전화도 그렇고, 이상하다. 너 혹시…,”
“됐어. 나 며칠 못 들어오니까. 누나 귀찮게 하는 일 없을 거야. 문단속 잘해.”
“혼자만 말 끝내면 다야!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너, 뒤늦게 오는 뭐, 오춘기라도 와서 그래? 그런 거야?”
“진짜 몰라서 이래? 끝까지 말하면, 누나 도망가지 않을 자신은 있고?”
가랑비 옷 젖듯 다가간다는 다짐도 질투심 앞에선 여지없이 무너졌다.
벽치기로 누나를 한쪽으로 몰아넣고, 내 숨결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도발했다.
“피도 안 섞인, 남남인데. 남동생으로만 보인다고? 내가?”
나와의 거리를 1cm라도 더 떨어질 기세로 벽에 찰싹 붙은 누나가 되받아쳤다.
“다섯 살이나 어린 남동생을 보인다. 어쩔래! 15년 동안 볼꼴 못 볼 꼴 봤으면, 남동생이지. 꼭 피를 나눠야만 가족이야!”
“15년 동안 나는! 누나와 동생이 아닌, 여자와 남자로 동거했어.”
맹수가 낮게 하울링 하듯 옴짝달싹 못 하는 누나를 내려다보며 들뜬 날숨으로 느른하게 읊조렸다.
“이제부터 내가 남자로 보일 거야.”
“…무…무슨 소리야! 장난 지치마.”
누나의 목덜미에 입맛을 다시는 야수처럼 내 입술을 혀로 핥았다.
늑대의 욕정에 사로잡혀 먹힐 것 같은 공포심에 누나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 비켜…비…비키라고!”
'누나의 죽은 동생에 그림자 노릇도 지친다. 그냥 나 좀 봐주면 안 돼?’
내 망막에 비친 누나의 겁먹은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화가 났다.
묻고 싶은 말을 삼킨 채, 맹수가 영역을 표시하듯 누나의 목선을 따라 들숨을 들이키며 내 얼굴을 비벼댔다.
다정다감한 댕댕이의 가면을 벗어던진 늑대의 색기에 누나는 머릿속이 정전된 것처럼 넋을 놓았다.
들숨과 날숨 사이로 일렁이는 누나의 체향에 마취가 되듯 머릿속이 몽롱해졌다.
“흠~음”
정염에 물든 내 입술로 누나의 목동맥을 탐지하듯, 지그시 누르고 지근거렸다.
누나의 헝클어진 블라우스 사이로 보이는 쇄골에 각인하듯, 느른하게 이를 세워 잘근거렸다.
“앗!…으응…….”
가슴골로 내려가는 내 입술의 열기에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에 화들짝 놀란 누나가 울먹였다.
“…싫어! 하지 마! 싫다고! 흑흑흑”
공포심에 일그러진 누나의 눈물에 흠칫 놀란 뒷걸음질 쳤다.
‘미친놈! 아무리 이성을 잃어도… 이 죽일 놈아, 누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떨리는 손으로 목을 감싸고 절망한 누나의 표정에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흐흐흑…….”
죽일 놈, 이 나쁜 놈이라고 욕이라도 하던가. 파렴치한 놈이라고 때리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텐데.
그저 울기만 하는 누나를 보며, 피가 마르고 심장이 찢기는 것 같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누나. 내가 정말 나쁜 놈이고. 죽일 놈이니까. 분이 풀이 때까지 나 때려도 좋으니까. 제발~울지 말고, 입술 깨물지 마. 피가 나잖아.”
좀처럼 멈추지 않는 누나의 눈물에 나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죄 짓은 놈이라 누나의 눈물을 닦아줄 자격은 없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흠칫 놀란 누나가 내 손을 매정하게 쳐냈다.
“됐어! 떨어져.”
내 입안의 점막 열기에 누나는 얼어버렸다.
누나의 숨소리마저 삼키고 싶은 농염한 늑대의 눈빛으로 갈무리하자, 위험을 감지한 누나가 내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아무리 배고파도! 누나는 먹는 게 아니야! 드럽게 침 범벅은 어떡해. 이놈의 댕댕아.”
“앗! 아프다고. 누나.”
아픈 이마를 문지르면서도 피가 새어 나오는 누나의 엄지손가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준비해온 소독솜으로 닦아주고 반창고를 붙여줬다.
순진무구한 댕댕이의 눈빛에 안심이 되는지, 누나가 습관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많이 컸네. 우리 댕댕이! 애인 생기면 자상하게 잘하겠다. 이 누나가 키운 보람이 있다.”
얘 취급에 욱해서, 머리를 뒤로 저치고 단호하게 말했다.
“누가 누굴 키워. 내가 누나를 키웠지!”
“어~후! 그러셨어요. 우리 댕댕이님.”
“언제까지 얘 취급할 거야! 누나, 나도 이젠 30살이라고. 달걀 한 판! 골라 먹는 재미 하나가 모자란 30!”
“야~ 나는 35살인데. 이게 어디서! 누나한테 눈을 부릅뜰까. 이리 와봐!”
사춘기 접어든 아들의 반항을 참을 수 없다는 듯 누나가 내 구레나룻 잡아당겼다.
“아! 아~ 놔! 놓으라고. 진짜~ 아프다고.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이러지 맙시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구레나룻 뽑아버릴까. 아니지. 이왕 뽑는 거, 머리카락을 뽑아주마. 이 댕댕아.”
“몇 번을 말해. 남자의 패션에 완성은 헤어 스타일이야! 풍성한 머리채 잡을 생각하지 말고, 내 입술을 뽑아버릴 정도로 뽀뽀해줘.”
현실 남매의 티격태격 덕분인지, 민간요법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누나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체기가 내려간 누나가 홀가분한 위장을 자축하려는 듯 핸드백 속에 꺼낸 캔맥주를 마시려는 순간.
찍~퍽!
잽싸게 캔맥주를 땅바닥에 내던졌다.
“체한 주제에! 무슨 맥주야.”
처참하게 찌그러진 캔맥주에 이성을 잃은 누나가 내 귀청이 떨어져 나가 정도로 분노했다.
“야! 이~ 개장수에게 된장 발려서 꼴 까닥하고 싶지! 이 댕댕아. 내 피 같은 내 맥주를 왜! 왜! 왜!~ 버려. 죽고 싶지.”
“아~귀 아파. 목청 하나 끝내준다. 속이 뻥~ 뚫렸네. 우리 철없는 누나야! 물이나 마시고 발 닦고 잠이나 자자.”
내가 얄미웠는지. 핸드백 속에서 꺼낸 초코송이를 내 얼굴에 냅다 던졌다.
“나이스 캐치! 고마워. 누나~ 잘 먹을게.”
“으~ 아! 된장에 발라서 보신탕집에 입양 보내 버린다. 이놈의 댕댕아!”
약이 바짝 오른 누나가 내 가슴팍을 때린다고 때리는데.
가냘픈 누나의 손목이 허공만 휘젓고, 애처롭게 내 품에 갇히고 만다.
“이것 안 놔! 버릇없는 댕댕아. 진짜 화낸다. 이 손, 놓으라고.”
누나의 머리 위에서 초코송이를 야무지게 씹어 먹었다.
“진짜 맛있다. 누나가 사줘서 그런가? 누나도 먹어 볼래? 아주 입에서 살살 녹아. 아~”
내 품에 갇힌 누나가 두더지 게임처럼 펄쩍 뛰면서 화를 내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좋은 말로 할 때 내 팔, 풀어. 야! 네가 나한테 무슨 행복을 빼앗은 줄 알아! 저놈의 댕댕이를 내다 버릴 수 없고! 아~ 내 팔자야.”
누나의 헤딩으로 닿을 수 없는 거리감에 나보다 짧은 다리로 뒷발길질을 날렸지만, 그 역시도 역부족이었다.
“뭔 놈의 다리는 왜 이렇게 길어! 인간적으로 너무하잖아. 진짜~ 짜증 나. 짜증이 난다고.”
“미안! 롱다리로 태어난 걸 어떡해! 그리고 분명히 짚고 넘어갈 대목은 내가 집주인이라 쫓아낼 수 없다는 사실.”
“아~ 얄미워. 얄밉게도 말하는 것도 재주다. 건물주 덕분에 원샷으로 소주 마시고 싶다.”
“미안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지. 이럴 때 우리는 보통, 세입자의 개꿈이라 말하지.”
“뭐? 개꿈! 하느님 위에 건물주라고 하더니. 시건방이 하늘을 찌른다.”
“당연하지. 건물주인데! 내 눈에 흙이 들어가 전에 어림도 없는 소리 그만하시고. 꿈 깨셔!”
약이 바짝 오른 누나가 초코송이를 낚아채, 부스러기를 내 얼굴에 뿌렸다.
“앗! 눈에 들어갔어. 이거 어떡해!”
“흙 대신 과자 부스러기라도 눈에 들어갔으니까! 개꿈 꿔도 되지. 하! 이 악덕 집주인아! 먼저 간다.”
눈도 못 뜨는 내가 불쌍했는지. 누나가 일회용 식염수를 내 손에 쥐여주고 도망갔다.
“이러니, 사랑하지 않으려고 해도, 사랑할 수밖에 없지.”
식염수로 씻어내 맑은 눈으로 누나를 쫓아갔다.
유치찬란한 ‘나 잡아, 봐라’ 연인 놀이에 짝사랑의 슬픔도 눈 녹듯이 사라졌다.
“누나가 조금만 놀아줘도 이렇게 좋다고 꼬리 흔드니! 댕댕이 취급이나 받아도 싸다 싸. 이 배알도 없는 새끼야! 그래도 좋은 걸 어떻게!”
***
도망가던 누나가 뒤돌아보다가 그만, 대문 턱에 걸려 대짜로 뻗었다.
“엄마야!”
식겁해 달려온 내가 누나를 살펴봤다.
팔, 다리를 쭉 뻗고 죽은 해부실 개구리처럼 미동조차 없는 누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피범벅으로 죽어가던 엄마와 누나가 겹쳐 보여 눈앞이 캄캄하고 덜컥 겁이 났다.
“… 누나…누나 …119! 내 핸드폰 어디 있지.”
떨리는 손으로 허둥지둥 주머니 속에서 찾은 핸드폰으로 119로 신고하는 순간.
시체처럼 누워 있던 누나가 벌떡 일어나 내 핸드폰을 빼앗았다.
“유난 떨지 마! 넘어졌다고 누가 119를 불러. 창피하게.”
안도감에 버럭 화를 냈다.
“장난도 정도껏 쳐야지! 놀래잖아. 정말 머리라도 다칠 줄 알고…….”
“다친 사람은 난 데! 네가 왜 화를 냈는데. 아픈 것보다, 쪽팔려서 일어나지 못했다. 됐냐!”
털썩 주저앉아 맥 빠진 얼굴로 한숨 돌렸다. 뱃속도 긴장이 풀렸는지, 배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꼬르르~ 꼬르르.
“너 설마? 내가 점심 약속 취소했다고, 한 끼도 안 먹은 거야?”
“어.”
“자랑이다. 일어나. 냉장고에 미역국 있으니까. 데워서 먹자.”
투덜거리면서 챙겨주는 누나의 관심이 좋아서 어린양을 피웠다.
“미역국 말고, 누나의 마음에 내가 있다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댕댕이가 풀 뜯어먹는 소리 하지 말고, 미역국 먹기 싫으면 먹지 마!”
“너무 좋아서 그러지. 누나가 끓여주는 미역국은 이상하게도 안 질려. 364일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 있어. 정말이야!”
“나도 이상하다는 소리를 종종 들은 입장이라 말하기 좀 민망한데. 내가 봐도, 너는 정말 이상해.”
“앗싸! 우리가 천생연분이라는 소리네.”
오글거림에 진저리 치던 누나가 현관 도어록을 누르며 잔소리했다.
띠띠띠띠~탁
“말을 말자. 그나저나 나 없다고, 굶어? 너만 손해야. 냉장고에 반찬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으면 되잖아. 뭐가 어려운데? 그것도 귀찮으면 배달 민족답게 시켜 먹던가.”
“누나가 있는데. 왜?”
믿음이 충만한 되물음에 누나가 헛웃음 흘렸다.
“꿈 깨! 나도, 너 늙기 전에 독립해야지. 언제까지 너한테 빌 불을 수는 없잖아.”
뻔히 내 마음을 알면서, 저렇게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태평하게 하는 누나가 밉다 못해 화가 났다.
‘그놈한테는 파스타까지 챙겨줬으면서!’
신발을 던지듯 벗고 쿵쾅거리며 다이닝룸으로 걸어갔다.
***
“미역국 준다며. 빨리 줘. 배고파 죽겠다고!”
“그러니까. 죽기 전에 알아서 차려 드시라고요. 아니면 늙어가는 누나에게 효도한다고 생각하고 사 먹고 오던가! 귀찮게 하지 말고. 동생아~.”
누나가 귀찮은 아들 밥상을 차려주듯,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통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무신경한 누나에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따지고 싶었다.
‘처음 만난 그놈한테는 파스타까지 덜어주면서. 15년을 같이 산, 나에게 밥 한 끼 차려주는 게 그렇게 귀찮아? 너무하잖아!’
서러움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 울어? 야! 이게 울 일이야? 내가 이해가 안 돼서 묻는 건데. 어느 부분에서 눈물이 나는데.”
“안 울어. 누나가 귀찮아하는 건 알겠는데. ~ 하! 월세 대신 내 밥 차려주기로 했으면서. 누나가 이러는 거, 계약 위반이야.”
“계약 위반? 야! 그래 말 잘했다. 그렇게 따지면, 밥 한 끼만이잖아. 그런데 실상은 아침 점심 저녁까지 차려 줄 때는 아무 말 없이, 잘 받아 드시고. 오늘 일 때문에 하루 안 차려줬다고, 계약 위반을 운운해.”
“정말로 일 때문에 점심 약속을 취소했다고?”
“그래! 일 때문이다. 야 잠깐만! 너 낮에 전화도 그렇고, 이상하다. 너 혹시…,”
“됐어. 나 며칠 못 들어오니까. 누나 귀찮게 하는 일 없을 거야. 문단속 잘해.”
“혼자만 말 끝내면 다야!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너, 뒤늦게 오는 뭐, 오춘기라도 와서 그래? 그런 거야?”
“진짜 몰라서 이래? 끝까지 말하면, 누나 도망가지 않을 자신은 있고?”
가랑비 옷 젖듯 다가간다는 다짐도 질투심 앞에선 여지없이 무너졌다.
벽치기로 누나를 한쪽으로 몰아넣고, 내 숨결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도발했다.
“피도 안 섞인, 남남인데. 남동생으로만 보인다고? 내가?”
나와의 거리를 1cm라도 더 떨어질 기세로 벽에 찰싹 붙은 누나가 되받아쳤다.
“다섯 살이나 어린 남동생을 보인다. 어쩔래! 15년 동안 볼꼴 못 볼 꼴 봤으면, 남동생이지. 꼭 피를 나눠야만 가족이야!”
“15년 동안 나는! 누나와 동생이 아닌, 여자와 남자로 동거했어.”
맹수가 낮게 하울링 하듯 옴짝달싹 못 하는 누나를 내려다보며 들뜬 날숨으로 느른하게 읊조렸다.
“이제부터 내가 남자로 보일 거야.”
“…무…무슨 소리야! 장난 지치마.”
누나의 목덜미에 입맛을 다시는 야수처럼 내 입술을 혀로 핥았다.
늑대의 욕정에 사로잡혀 먹힐 것 같은 공포심에 누나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 비켜…비…비키라고!”
'누나의 죽은 동생에 그림자 노릇도 지친다. 그냥 나 좀 봐주면 안 돼?’
내 망막에 비친 누나의 겁먹은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화가 났다.
묻고 싶은 말을 삼킨 채, 맹수가 영역을 표시하듯 누나의 목선을 따라 들숨을 들이키며 내 얼굴을 비벼댔다.
다정다감한 댕댕이의 가면을 벗어던진 늑대의 색기에 누나는 머릿속이 정전된 것처럼 넋을 놓았다.
들숨과 날숨 사이로 일렁이는 누나의 체향에 마취가 되듯 머릿속이 몽롱해졌다.
“흠~음”
정염에 물든 내 입술로 누나의 목동맥을 탐지하듯, 지그시 누르고 지근거렸다.
누나의 헝클어진 블라우스 사이로 보이는 쇄골에 각인하듯, 느른하게 이를 세워 잘근거렸다.
“앗!…으응…….”
가슴골로 내려가는 내 입술의 열기에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에 화들짝 놀란 누나가 울먹였다.
“…싫어! 하지 마! 싫다고! 흑흑흑”
공포심에 일그러진 누나의 눈물에 흠칫 놀란 뒷걸음질 쳤다.
‘미친놈! 아무리 이성을 잃어도… 이 죽일 놈아, 누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떨리는 손으로 목을 감싸고 절망한 누나의 표정에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흐흐흑…….”
죽일 놈, 이 나쁜 놈이라고 욕이라도 하던가. 파렴치한 놈이라고 때리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텐데.
그저 울기만 하는 누나를 보며, 피가 마르고 심장이 찢기는 것 같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누나. 내가 정말 나쁜 놈이고. 죽일 놈이니까. 분이 풀이 때까지 나 때려도 좋으니까. 제발~울지 말고, 입술 깨물지 마. 피가 나잖아.”
좀처럼 멈추지 않는 누나의 눈물에 나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죄 짓은 놈이라 누나의 눈물을 닦아줄 자격은 없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흠칫 놀란 누나가 내 손을 매정하게 쳐냈다.
“됐어!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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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댕댕이가 아니라 늑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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