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쪽파림은 순간이니까, 비뇨기과 가자.
조회 : 1,833 추천 : 0 글자수 : 6,485 자 2022-10-05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는 누나의 눈빛에 열중쉬어 자세로 다시 한번 용서를 구했다.
“잘못했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어. 미안해. 용서해 달라고 말하지 않을게. 누나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게. 그러니까 제발 이 집에서 나간다는 말은 하지 말아줘.”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은 누나가 냉담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내가 죽으면 죽는다는 애가 집은 나가지 말라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다면서도 할 말은 다 하네. 그게 사과하는 자세야?”
경멸하는 누나의 눈빛에 다급하게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했다.
“누나…미안해. 잘못했어. 내가 나간다고! 내가 잘못했으니까…내가 나갈게.”
“일어나! 이렇게 조른다고 해결된 문제 아니야. 이건 명백히 성…성…성폭행이라고. 알아?”
“…….”
하늘이 무너지고,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누구보다 누나를 지켜주고 싶었는데.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누나한테 상처를 주다니. 숨소리조차도 낼 수가 없었다.
그저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어나!”
상처받은 누나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떨구고 일어났다.
“…….”
“용서하던, 고소하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당분간 집에 들어올 생각 하지 마.”
“어! 알았어. 누나가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밖에서 지낼게. 걱정하지 마.”
“피해자가 가해자를 왜 걱정 해! 그리고, 이건! 누나를 우습게 본 대가라고 생각해.”
“어?”
한숨을 내쉰 누나가 정색하며 급소에 니킥을 날렸다.
“악! ”
절규와 함께 고슴도치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눈물을 질끔거렸다.
“으~아.~씁~읍.”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낑낑거리는 내가 걱정스러운지 누나가 조금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급소의 안부를 물었다.
“…괜찮아? 그렇게 세게 차지 않았는데.”
‘입술 꽉 깨물고 찼으면서…….’
짓은 죄가 있어 아프다고 드러누울 수도 없어, 멋쩍게 웃었다.
“…씁~읍. 괜찮아. 괜찮을 거야. 잠시만…이렇게… 이 자세로 있을게. 미안한데, 누나 다른데 좀 봐줄래.”
“엉덩이라도 때려 줄까? TV에서 그렇게 하던데.”
“아니야! 됐어. 그렇게 안 해도 돼!”
손사래 치며 완강하게 거부하는 내 모습에 웃음을 참으려는 듯 누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흠흠. 진짜 괜찮아? 나중에 여자친구와 관계에서 문제 되거나. 2세 문제로 나중에 손해배상 청구하지 말고. 내일 비뇨기과에 가봐.”
누나도 15년을 동고동락한 정으로 쉽사리 내치지 못하고, 내 살길을 열어주듯 은근슬쩍 농담으로 넘어 가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고맙고 미안했다.
‘이래서 누나는 누나인가!’
“쪽팔림은 순간이고. 여자친구와 관계적인 행복은 창창하니까! 누나가 손잡고, 내일 피부과에 같이 가 줄게.”
“됐어! 피부에서 비뇨기과도 보잖아. 누굴 바보 알아! 싫어! 죽어도 싫어.”
“괜찮는지, 육안 점검할 수 없는 노릇이고. 병원 가라는 소리잖아.”
“괜찮다고. 누나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튼튼해! 걱정하지 마.”
“굳이 내가 알 필요가 있을까? 그래, 네가 좋으실 대로 하세요.”
은근슬쩍 깔보는 듯한 누나의 비아냥거림에 자존심이 상했다.
“누나라면 내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어. 얼마나 튼튼하고 훌륭한데! 누나를 사랑하니까! 기대 이상일 거야.”
벨트 푸는 시늉에 기겁하며 누나가 도망갔다.
“야! 이게 미쳤나 봐! 버클에서 손 떼! 뭘 보여줄 게 있다고! 오지 마!”
기겁하며 집 안으로 들어가는 누나를 보며 한숨 돌리며 읊조렸다.
“이렇게 넘어 가줘서 정말 고마워. 누나. 미안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야. 약속해.”
***
시장 골목길로 들어가 문 닫힌 정육점의 셔터를 두드렸다.
“사장님, 지국장입니다.”
셔터가 반쯤 올려진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민 정육점 사장이 반갑게 인사했다.
“왔구먼. 밥은 먹었어? 안 먹었으면, 한 숟가락 뜨고 가던가.”
“먹고 왔어요. 저 때문에 퇴근도 못 하시고. 죄송해요. 사장님.”
“젊은 사람이 바쁘면 좋지. 나야 집에 가 봤자,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고마울 나이야.”
정육점의 쪽방에 소반에 소주 한 병과 제육볶음이 눈에 들어왔다.
걱정스러운 내 눈빛을 읽었는지, 정육점 사장님이 농담했다.
“저래도, 고기 반찬이야. 내 아들이 천하의 진미라고 극찬한 제육볶음이야. 한 젓가락 먹고 말해.”
나무젓가락을 내민 사장님의 권유에 소반 앞에 앉았다. 나무젓가락으로 제육 한 점을 씹으며 넉살 좋게 웃었다.
“자랑할 만하네요. 사장님, 저랑 프랜차이즈 창업해요. 상호 뭐라고 할까요?”
“뭐, 또 그렇게까지, 맛있지. 하하하. 상호는 창식이 제육 덮밥이라고. 우리 창식이…….”
먼저 보낸 자식의 이름에 억장이 무너진 정육점 사장님이 고개를 떨구었다.
“…창식이 제육 덮밥 좋네요. 사장님.”
“…….”
위로의 말조차 상처가 될 수 있기에 말없이 소주잔을 채워 사장님 앞에 내밀었다.
내민 소주에 애통한 울음을 넘기듯 사장님이 애달프게 웃어 보였다.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나는 게, 노안 때문이래. 그나저나 찾는 게, 이것 맞나?”
전화기 밑에서 숨겨둔 검은 봉지를 내밀었다.
둘둘 말려 있는 검은 봉지를 펼치자 손바닥만 한 수첩이 나왔다.
정신없이 수첩을 훑어보는 나에게 사장님이 넌지시 물었다.
“이걸로 내 아들 잡아먹은 놈 찾을 수 있을까?”
수첩을 덮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혹시 작은 단서라도 있을까 해서요.”
“나한테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지만, 벌써 10년 넘은 뺑소니 사고니. 찾는다는 게, 말이 안 되지…….”
본의 아니게 희망 고문으로 사장님을 피 말려 죽이는 것 같아 죄스러웠다.
“최선을 다해, 범인 잡겠습니다. 사장님.”
공허한 하나 마나 한 이야기가 민망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사장님, 한우 투뿔로 2세트 주문 가능한가요?”
애써 절망을 털어냈듯 사장님은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탁’치면 일어났다.
“오늘 소 잡은 날이라서, 고기 하나는 끝내주는데. 포장이 좀~거시게 해서. 그래도 괜찮으면 주고.”
“고기만 좋으면 상관없어요. 주세요. 사장님.”
이제야 사장님의 얼굴에 먹구름이 사라졌다.
“비싼 만큼 맛은 끝내줘! 맛없으면, 환불보장!”
투박하게 랩으로 싼 고깃덩어리를 검은 봉지에 넣고 다시 냉온 백에 담아줬다.
“일시불로 시원하게 긁어주세요.”
“옜다! 시원하게 긁어주마. 이건 서비스야.”
냉장고에 넣어둔 양념 된 제육볶음을 냉온 백에 넣어줬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또 찾아뵐게요. 건강하세요.”
“몸조심하고, 제육 먹고 싶으면 또 와.”
“네. 사장님. 그럼 가보겠습니다.”
셔터를 반쯤 내린 사장님의 구슬픈 한탄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옆쪽으로 몸을 숨기고 조용히 듣고 있었다.
“썩을 놈… 썩어 문드러질 놈, 뭐가 그리 급하다고. 빨리 떠나. 늙은 아비 혼자 놔두고. 누굴 탓해. 그날 배달만 안 시켰어도…놀러 갔다는 놈 고이 보내줄걸. 몇 푼 더 벌겠다고, 내가 죽일 놈이지.~ 다 내 죄지.”
철커덕!
셔터가 완전히 내려지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사장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 우리 부모님 뺑소니 목격자로 증언해달라고 해서……죄송합니다. 사장님. 지금 다 말씀드릴 수 없지만. 형 죽인 범인 꼭 찾아서, 죗값 받게 하겠습니다.”
****
시장 골목길을 지나 오르막길로 올라갔다. 언덕 중반쯤 허름한 3층 주택의 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옥탑으로 올라갔다.
초인종을 대신해 발길질로 옥탑 문을 두드렸다.
요란한 발길질에 옥탑 문이 벌컥 열렸다.
“어떤 놈이! 오밤중에, 죽으려고~씨.”
편의점 조끼를 입은 정우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프라이팬을 휘두르며 나왔다.
“그렇게 맨발로 나와서, 영접할 것이지. 꿈지럭거린 네 잘못이지.”
“이 교양 머리를 삶아 먹고 왔네! 남의 집 쳐들 와서 그게 할 소리인가!”
“비켜!”
제집처럼 들어가는 내가 얄미웠는지, 정우가 한쪽 발로 옥탑 방문을 가로막아 섰다.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맨발로 영접할 인간을 만나보지 못해서. 아무래도 잘못 찾아오신 것 같네요.”
비아냥거린 정우가 옥탑방 문을 걸어 잠그고 매정하게 들어갔다.
문전박대 당해 오기가 생긴 나는 약 올리듯 응수했다.
“아~ 잘못 찾아왔구나! 죄송합니다. 투플러스 한우를 사 왔는데, 아쉽게도 정우가 아니라고 하시니! 혼자 먹어야지. 한우~마블링이 예술인데~아~후.”
가시적인 미소로 곱게 단정한 정우가 맨발로 뛰쳐나와 평상에 다소곳하게 앉아 너스레를 떨었다.
“어!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너무 잘생김이 묻어나서! 그만 내가 몰라봤네. 친구야~내가 왜 프라이팬을 들고 마중 나왔겠니. 다~우정의 텔레파시로, 한우를 맛깔나게 구워주려고 준비했지.”
내 손에 들린 냉온 백을 가로챈 정우가 동경의 눈빛으로 랩에 쌓인 한우를 살펴봤다.
“이 빛깔과 마블링이 예술이다! 어쩜, 이리도 아름다울까.”
정우의 어이는 감상평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가지가지 한다. 그래. 먹자.”
“어떻게 알았어? 가지랑 한우가 궁합이 그렇게 좋단다! 아쉽게도 거지는 없고, 저기 내 텃밭 보이지. 상추랑 고추, 대파만 있다. 유기농이야!”
“쌈장과 휴대용 가스버너 그리고 밑반찬. 아! 프라이팬은 이걸로 됐고. 상추 씻고, 마늘도 먹어야지”
한우 먹을 생각에 신난 정우가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옥탑방을 들락날락했다.
평상에 자리 잡고 앉은 정우가 설레는 눈빛으로 한우를 들어 정성스럽게 불판 위에 올려놓았다.
별생각 없이 한우 한 점을 젓가락을 집어 올리자, 정우가 내 손목에 집게 스매싱을 날렸다.
“이건 아니지. 영롱한 빛깔의 한우를 이딴 식으로 대접하면 안 되지! 유즙이 터질락 말락 할 때~앙!”
고기 한 점에 유난 떠는 정우가 못마땅해 구시렁거렸다.
“별 꼴값 다 떤다. 육회도 먹는 마당에 앞면 찍, 뒷면 찍. 옆면 찍! 삼세판 찍~불판에 익혀 먹으면 되지. 돼지도 아니고. 한우데, 뭐가 문제야.”
비장한 표정으로 집게를 내려놓은 정우가 열변을 토해냈다.
“그래. 네 말처럼, 비싼 한우라서. 우리가 어떻게 뜯고, 씹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가! 한의 맛에 본질을 논하는 거잖아! 한우의 향연에 대해서! 이 무식한 혀야!”
“달밤에 자라 콧구멍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됐고. 반찬가게 준비는 하긴 하냐?”
시답지 않은 시식 평에 코웃음을 치듯 불판에 놓인 고기를 내 입속으로 몰아넣었다.
허망하게 사라진 한우를 보며 격분한 정우가 집게 던졌다.
“네가 한우 맛을 알아! 맛도 모르는 놈이, 감히 내 한우를! 입안에서 육즙이 터지면서 사르르 놓아 내리는 나의 한우! 내 한우를!”
멱살 잡힌 나는 흥분한 정우에게 나머지 한우를 던져줬다.
“다 먹어라. 이 돼지야. 이 안에 제육볶음도 있다. 잔멸치 주제에, 쓸데없이 힘만 좋아서.”
한우를 받아 들고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정우가 나긋하게 대답했다.
“늘 말했잖아. 돈이 없어 준비만 준비하고 있다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뭐가 중요한데?”
“입속에 팡팡 터지는 육즙에 내 혀는 천국 갔다. 이게 다~다녀간 고깃집 알바로 다져진 불 조절 덕분이지.”
미슐랭 요리사처럼 으쓱대는 정우가 어처구니가 없어 면박을 줬다.
“자라 콧구멍 같은 소리만 하고 있네. 너는 밥만 사주면 형이고 친구지.”
“당연하지! 급식 먹으려고 학교 다녔는데. 새삼 왜 이럴까? 그래서 꼽냐?”
대수롭지 않게 응수하는 정우의 당당함이 아주~살짝 멋있어 보였다.
낯간지럽지만, 나름 멋있는 정우에게 무심하게 파채를 얹혀줬다.
“난 검정고시 출신이라 친구도 없는데, 친구 있는 네가 부럽다.”
한우에 얹혀 놓은 파채를 걷어낸 정우가 핀잔줬다.
“몇 번을 말해! 한우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다고! 맛도 모른 놈한테 말을 말아야지. 쯧쯧쯧. 나도 친구 없거든. 한우 사다 주는 집주인은 있어도.”
겸연쩍은 듯 정우가 한우를 씹어 넘겼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한우를 맛깔나게 구워줄 세입자는 있지.”
오글거리는 분위기에 민망해진 우리는 서로의 시신을 야경으로 돌렸다.
배가 불렀는지, 아껴 먹으려고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한 얼굴로 젓가락을 멈춘 정우가 평상에 드러누워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한우까지 들고 온 걸 보니, 심란한 일이라도 생겼어?”
“…정우야, 나… 사고 쳤다. 누나한테.”
현실 남매의 투닥거림으로 치부하듯, 정우가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또 캔맥주 갖고 실랑이라도 했어? 설마 누님이 또 캔맥주 과음했다고, 집 나왔냐? 이 쪼잔한 버터 새끼야?”
“…….”
“안 봐도, 비디오다. 네가 그렇게 찔찔 하게 구니까, 동생 취급이나 받지. 여유롭게 연상처럼!”
쓴웃음을 짓고 고해성사했다.
“…누나의 목에… 키스했다.”
배불러 널브러져 있던 정우가 물 틀어 놓은 샤워기처럼 요동치며 벌떡 일어났다.
“한우만 안 먹었으면, 팰 수 있는데! 그놈의 한우 때문에. 자랑질은 금지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읊조렸다.
“나도. 그게 자랑질이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잘못했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어. 미안해. 용서해 달라고 말하지 않을게. 누나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게. 그러니까 제발 이 집에서 나간다는 말은 하지 말아줘.”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은 누나가 냉담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내가 죽으면 죽는다는 애가 집은 나가지 말라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다면서도 할 말은 다 하네. 그게 사과하는 자세야?”
경멸하는 누나의 눈빛에 다급하게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했다.
“누나…미안해. 잘못했어. 내가 나간다고! 내가 잘못했으니까…내가 나갈게.”
“일어나! 이렇게 조른다고 해결된 문제 아니야. 이건 명백히 성…성…성폭행이라고. 알아?”
“…….”
하늘이 무너지고,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누구보다 누나를 지켜주고 싶었는데.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누나한테 상처를 주다니. 숨소리조차도 낼 수가 없었다.
그저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어나!”
상처받은 누나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떨구고 일어났다.
“…….”
“용서하던, 고소하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당분간 집에 들어올 생각 하지 마.”
“어! 알았어. 누나가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밖에서 지낼게. 걱정하지 마.”
“피해자가 가해자를 왜 걱정 해! 그리고, 이건! 누나를 우습게 본 대가라고 생각해.”
“어?”
한숨을 내쉰 누나가 정색하며 급소에 니킥을 날렸다.
“악! ”
절규와 함께 고슴도치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눈물을 질끔거렸다.
“으~아.~씁~읍.”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낑낑거리는 내가 걱정스러운지 누나가 조금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급소의 안부를 물었다.
“…괜찮아? 그렇게 세게 차지 않았는데.”
‘입술 꽉 깨물고 찼으면서…….’
짓은 죄가 있어 아프다고 드러누울 수도 없어, 멋쩍게 웃었다.
“…씁~읍. 괜찮아. 괜찮을 거야. 잠시만…이렇게… 이 자세로 있을게. 미안한데, 누나 다른데 좀 봐줄래.”
“엉덩이라도 때려 줄까? TV에서 그렇게 하던데.”
“아니야! 됐어. 그렇게 안 해도 돼!”
손사래 치며 완강하게 거부하는 내 모습에 웃음을 참으려는 듯 누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흠흠. 진짜 괜찮아? 나중에 여자친구와 관계에서 문제 되거나. 2세 문제로 나중에 손해배상 청구하지 말고. 내일 비뇨기과에 가봐.”
누나도 15년을 동고동락한 정으로 쉽사리 내치지 못하고, 내 살길을 열어주듯 은근슬쩍 농담으로 넘어 가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고맙고 미안했다.
‘이래서 누나는 누나인가!’
“쪽팔림은 순간이고. 여자친구와 관계적인 행복은 창창하니까! 누나가 손잡고, 내일 피부과에 같이 가 줄게.”
“됐어! 피부에서 비뇨기과도 보잖아. 누굴 바보 알아! 싫어! 죽어도 싫어.”
“괜찮는지, 육안 점검할 수 없는 노릇이고. 병원 가라는 소리잖아.”
“괜찮다고. 누나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튼튼해! 걱정하지 마.”
“굳이 내가 알 필요가 있을까? 그래, 네가 좋으실 대로 하세요.”
은근슬쩍 깔보는 듯한 누나의 비아냥거림에 자존심이 상했다.
“누나라면 내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어. 얼마나 튼튼하고 훌륭한데! 누나를 사랑하니까! 기대 이상일 거야.”
벨트 푸는 시늉에 기겁하며 누나가 도망갔다.
“야! 이게 미쳤나 봐! 버클에서 손 떼! 뭘 보여줄 게 있다고! 오지 마!”
기겁하며 집 안으로 들어가는 누나를 보며 한숨 돌리며 읊조렸다.
“이렇게 넘어 가줘서 정말 고마워. 누나. 미안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야. 약속해.”
***
시장 골목길로 들어가 문 닫힌 정육점의 셔터를 두드렸다.
“사장님, 지국장입니다.”
셔터가 반쯤 올려진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민 정육점 사장이 반갑게 인사했다.
“왔구먼. 밥은 먹었어? 안 먹었으면, 한 숟가락 뜨고 가던가.”
“먹고 왔어요. 저 때문에 퇴근도 못 하시고. 죄송해요. 사장님.”
“젊은 사람이 바쁘면 좋지. 나야 집에 가 봤자,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고마울 나이야.”
정육점의 쪽방에 소반에 소주 한 병과 제육볶음이 눈에 들어왔다.
걱정스러운 내 눈빛을 읽었는지, 정육점 사장님이 농담했다.
“저래도, 고기 반찬이야. 내 아들이 천하의 진미라고 극찬한 제육볶음이야. 한 젓가락 먹고 말해.”
나무젓가락을 내민 사장님의 권유에 소반 앞에 앉았다. 나무젓가락으로 제육 한 점을 씹으며 넉살 좋게 웃었다.
“자랑할 만하네요. 사장님, 저랑 프랜차이즈 창업해요. 상호 뭐라고 할까요?”
“뭐, 또 그렇게까지, 맛있지. 하하하. 상호는 창식이 제육 덮밥이라고. 우리 창식이…….”
먼저 보낸 자식의 이름에 억장이 무너진 정육점 사장님이 고개를 떨구었다.
“…창식이 제육 덮밥 좋네요. 사장님.”
“…….”
위로의 말조차 상처가 될 수 있기에 말없이 소주잔을 채워 사장님 앞에 내밀었다.
내민 소주에 애통한 울음을 넘기듯 사장님이 애달프게 웃어 보였다.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나는 게, 노안 때문이래. 그나저나 찾는 게, 이것 맞나?”
전화기 밑에서 숨겨둔 검은 봉지를 내밀었다.
둘둘 말려 있는 검은 봉지를 펼치자 손바닥만 한 수첩이 나왔다.
정신없이 수첩을 훑어보는 나에게 사장님이 넌지시 물었다.
“이걸로 내 아들 잡아먹은 놈 찾을 수 있을까?”
수첩을 덮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혹시 작은 단서라도 있을까 해서요.”
“나한테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지만, 벌써 10년 넘은 뺑소니 사고니. 찾는다는 게, 말이 안 되지…….”
본의 아니게 희망 고문으로 사장님을 피 말려 죽이는 것 같아 죄스러웠다.
“최선을 다해, 범인 잡겠습니다. 사장님.”
공허한 하나 마나 한 이야기가 민망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사장님, 한우 투뿔로 2세트 주문 가능한가요?”
애써 절망을 털어냈듯 사장님은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탁’치면 일어났다.
“오늘 소 잡은 날이라서, 고기 하나는 끝내주는데. 포장이 좀~거시게 해서. 그래도 괜찮으면 주고.”
“고기만 좋으면 상관없어요. 주세요. 사장님.”
이제야 사장님의 얼굴에 먹구름이 사라졌다.
“비싼 만큼 맛은 끝내줘! 맛없으면, 환불보장!”
투박하게 랩으로 싼 고깃덩어리를 검은 봉지에 넣고 다시 냉온 백에 담아줬다.
“일시불로 시원하게 긁어주세요.”
“옜다! 시원하게 긁어주마. 이건 서비스야.”
냉장고에 넣어둔 양념 된 제육볶음을 냉온 백에 넣어줬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또 찾아뵐게요. 건강하세요.”
“몸조심하고, 제육 먹고 싶으면 또 와.”
“네. 사장님. 그럼 가보겠습니다.”
셔터를 반쯤 내린 사장님의 구슬픈 한탄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옆쪽으로 몸을 숨기고 조용히 듣고 있었다.
“썩을 놈… 썩어 문드러질 놈, 뭐가 그리 급하다고. 빨리 떠나. 늙은 아비 혼자 놔두고. 누굴 탓해. 그날 배달만 안 시켰어도…놀러 갔다는 놈 고이 보내줄걸. 몇 푼 더 벌겠다고, 내가 죽일 놈이지.~ 다 내 죄지.”
철커덕!
셔터가 완전히 내려지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사장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 우리 부모님 뺑소니 목격자로 증언해달라고 해서……죄송합니다. 사장님. 지금 다 말씀드릴 수 없지만. 형 죽인 범인 꼭 찾아서, 죗값 받게 하겠습니다.”
****
시장 골목길을 지나 오르막길로 올라갔다. 언덕 중반쯤 허름한 3층 주택의 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옥탑으로 올라갔다.
초인종을 대신해 발길질로 옥탑 문을 두드렸다.
요란한 발길질에 옥탑 문이 벌컥 열렸다.
“어떤 놈이! 오밤중에, 죽으려고~씨.”
편의점 조끼를 입은 정우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프라이팬을 휘두르며 나왔다.
“그렇게 맨발로 나와서, 영접할 것이지. 꿈지럭거린 네 잘못이지.”
“이 교양 머리를 삶아 먹고 왔네! 남의 집 쳐들 와서 그게 할 소리인가!”
“비켜!”
제집처럼 들어가는 내가 얄미웠는지, 정우가 한쪽 발로 옥탑 방문을 가로막아 섰다.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맨발로 영접할 인간을 만나보지 못해서. 아무래도 잘못 찾아오신 것 같네요.”
비아냥거린 정우가 옥탑방 문을 걸어 잠그고 매정하게 들어갔다.
문전박대 당해 오기가 생긴 나는 약 올리듯 응수했다.
“아~ 잘못 찾아왔구나! 죄송합니다. 투플러스 한우를 사 왔는데, 아쉽게도 정우가 아니라고 하시니! 혼자 먹어야지. 한우~마블링이 예술인데~아~후.”
가시적인 미소로 곱게 단정한 정우가 맨발로 뛰쳐나와 평상에 다소곳하게 앉아 너스레를 떨었다.
“어!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너무 잘생김이 묻어나서! 그만 내가 몰라봤네. 친구야~내가 왜 프라이팬을 들고 마중 나왔겠니. 다~우정의 텔레파시로, 한우를 맛깔나게 구워주려고 준비했지.”
내 손에 들린 냉온 백을 가로챈 정우가 동경의 눈빛으로 랩에 쌓인 한우를 살펴봤다.
“이 빛깔과 마블링이 예술이다! 어쩜, 이리도 아름다울까.”
정우의 어이는 감상평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가지가지 한다. 그래. 먹자.”
“어떻게 알았어? 가지랑 한우가 궁합이 그렇게 좋단다! 아쉽게도 거지는 없고, 저기 내 텃밭 보이지. 상추랑 고추, 대파만 있다. 유기농이야!”
“쌈장과 휴대용 가스버너 그리고 밑반찬. 아! 프라이팬은 이걸로 됐고. 상추 씻고, 마늘도 먹어야지”
한우 먹을 생각에 신난 정우가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옥탑방을 들락날락했다.
평상에 자리 잡고 앉은 정우가 설레는 눈빛으로 한우를 들어 정성스럽게 불판 위에 올려놓았다.
별생각 없이 한우 한 점을 젓가락을 집어 올리자, 정우가 내 손목에 집게 스매싱을 날렸다.
“이건 아니지. 영롱한 빛깔의 한우를 이딴 식으로 대접하면 안 되지! 유즙이 터질락 말락 할 때~앙!”
고기 한 점에 유난 떠는 정우가 못마땅해 구시렁거렸다.
“별 꼴값 다 떤다. 육회도 먹는 마당에 앞면 찍, 뒷면 찍. 옆면 찍! 삼세판 찍~불판에 익혀 먹으면 되지. 돼지도 아니고. 한우데, 뭐가 문제야.”
비장한 표정으로 집게를 내려놓은 정우가 열변을 토해냈다.
“그래. 네 말처럼, 비싼 한우라서. 우리가 어떻게 뜯고, 씹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가! 한의 맛에 본질을 논하는 거잖아! 한우의 향연에 대해서! 이 무식한 혀야!”
“달밤에 자라 콧구멍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됐고. 반찬가게 준비는 하긴 하냐?”
시답지 않은 시식 평에 코웃음을 치듯 불판에 놓인 고기를 내 입속으로 몰아넣었다.
허망하게 사라진 한우를 보며 격분한 정우가 집게 던졌다.
“네가 한우 맛을 알아! 맛도 모르는 놈이, 감히 내 한우를! 입안에서 육즙이 터지면서 사르르 놓아 내리는 나의 한우! 내 한우를!”
멱살 잡힌 나는 흥분한 정우에게 나머지 한우를 던져줬다.
“다 먹어라. 이 돼지야. 이 안에 제육볶음도 있다. 잔멸치 주제에, 쓸데없이 힘만 좋아서.”
한우를 받아 들고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정우가 나긋하게 대답했다.
“늘 말했잖아. 돈이 없어 준비만 준비하고 있다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뭐가 중요한데?”
“입속에 팡팡 터지는 육즙에 내 혀는 천국 갔다. 이게 다~다녀간 고깃집 알바로 다져진 불 조절 덕분이지.”
미슐랭 요리사처럼 으쓱대는 정우가 어처구니가 없어 면박을 줬다.
“자라 콧구멍 같은 소리만 하고 있네. 너는 밥만 사주면 형이고 친구지.”
“당연하지! 급식 먹으려고 학교 다녔는데. 새삼 왜 이럴까? 그래서 꼽냐?”
대수롭지 않게 응수하는 정우의 당당함이 아주~살짝 멋있어 보였다.
낯간지럽지만, 나름 멋있는 정우에게 무심하게 파채를 얹혀줬다.
“난 검정고시 출신이라 친구도 없는데, 친구 있는 네가 부럽다.”
한우에 얹혀 놓은 파채를 걷어낸 정우가 핀잔줬다.
“몇 번을 말해! 한우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다고! 맛도 모른 놈한테 말을 말아야지. 쯧쯧쯧. 나도 친구 없거든. 한우 사다 주는 집주인은 있어도.”
겸연쩍은 듯 정우가 한우를 씹어 넘겼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한우를 맛깔나게 구워줄 세입자는 있지.”
오글거리는 분위기에 민망해진 우리는 서로의 시신을 야경으로 돌렸다.
배가 불렀는지, 아껴 먹으려고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한 얼굴로 젓가락을 멈춘 정우가 평상에 드러누워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한우까지 들고 온 걸 보니, 심란한 일이라도 생겼어?”
“…정우야, 나… 사고 쳤다. 누나한테.”
현실 남매의 투닥거림으로 치부하듯, 정우가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또 캔맥주 갖고 실랑이라도 했어? 설마 누님이 또 캔맥주 과음했다고, 집 나왔냐? 이 쪼잔한 버터 새끼야?”
“…….”
“안 봐도, 비디오다. 네가 그렇게 찔찔 하게 구니까, 동생 취급이나 받지. 여유롭게 연상처럼!”
쓴웃음을 짓고 고해성사했다.
“…누나의 목에… 키스했다.”
배불러 널브러져 있던 정우가 물 틀어 놓은 샤워기처럼 요동치며 벌떡 일어났다.
“한우만 안 먹었으면, 팰 수 있는데! 그놈의 한우 때문에. 자랑질은 금지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읊조렸다.
“나도. 그게 자랑질이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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