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이 남자의 정체가 뭐야?
조회 : 1,977 추천 : 0 글자수 : 5,118 자 2022-10-06
“뭐야? 이 썩은 동태 눈깔은…설마? 아니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강제로… 그럴 생각은 없는데. 질투심에 눈이 돌아서. 누나한테 못 할 짓했다.”
“야! 이 버터 새끼야. 내가 미친X이지. 누님 소개팅 장소를 괜히 가르쳐줘서, 이 사단을 만들었네. 그래도 이건 아니지.”
“반성하고 있어. 나도. 내 바닥이 이렇게 금방 드러날 줄 몰랐다.”
“너 그거, 성추행이야! 알지. 누나가 고소하면, 감옥 갈 수도 있어.”
“그렇게.”
덤덤하게 말하는 내가 못마땅한지, 등짝 스매싱을 날린 정우가 버럭 화를 냈다.
“이 자식 봐라. 남 일 아니야! 뭐가 이렇게 태평해. 누님은 뭐래? 신고하신대?”
“아직 몰라. 신고해도 할 말 없지. 그보다…….”
앞으로 닥쳐올 폭풍에 입을 닫자, 정우가 되묻듯이 다그쳤다.
“말하다 말아. 그보다 뭐?”
“누나가 나, 평생 안 본다고 하면 어떡하지. 정우야.”
코 빠뜨린 내가 불쌍했는지, 정우가 한숨을 내뱉듯 말했다.
“뭘 어떡해. 무조건 빌어야지. 손이 족발이 되도록. 너 혼자 빌길 뭐하면, 나도 같이 무릎 꿇고 빌어야지. 한우 먹은 죄로.”
“한우 먹인 보람 있네.”
“이 버터 새끼, 이 와중에도 생색을 내고 싶냐!”
“그렇게. 너도 알지. 여자한테 관심 없는 거.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나한테만 그렇게 안 되더라.”
“이 버터 새끼, 걱정을 자랑질처럼 하는 버릇 또 나왔다. 재수 없게. 그러니까, 친구가 없는 거야.”
“이런 난대. 어느새 내 시선은 누나한테 머물고.”
“늘 재수 없는 너도 대단하지만. 너의 자랑질을 듣고 있는 나 자신의 인내심에 경의를 표한다.”
“누나의 몸짓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기분. 너는 모르겠지만. 난 그랬어.”
“오글거리는 삼류 청춘 드라마의 주인공도 너처럼 말 안 해. 민망하지 않냐?”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답답한 속내를 털어내듯 정우에게 우정의 헤드록 기술을 선보였다.
“잔멸치! 먹은 한우 다 토해 내!”
시뻘게진 정우가 캑캑거리며 놀려댔다.
“있는 놈들이 더 한다고. 치사한 버터 새끼야. 그러니까, 네가 누나한테 거시기나 차였지.”
“너 어떻게 알았냐? 우리 집에 CCTV라도 달아났어?”
“이거 놔! 꼭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냐! 삼류 드라마 주인공처럼 헛소리나 해댔는데, 딱 보면 알지!”
“어~휴 도사 나셨네. 그럼 오늘 내 손에 죽는 것도 알겠네.”
얼굴 빨개진 정우가 내 손을 다급하게 탭을 치면서 소리쳤다.
“숨…숨 막힌다고! 평생 혼자 살아라! 이 버터 새끼야. 캑캑.”
“네 위장에서 한우 숨은그림찾기 한다. 먹은 거, 다 뱉어. 개념 없는 잔멸치!”
***
시장통 국밥집에 백발의 장 집사가 앉아있다.
나이 드신 할머니가 손수 컵을 가져다주면, 반갑게 인사했다.
“오래간만에 오셨구먼. 하도 안 와서. 나 또 황천길 가셨나 걱정했는데. 다행이구먼.”
장 집사는 사람 좋은 미소로 맞장구쳤다.
“이 나이에 반겨주는 곳도 있고. 이 맛에 단골손님이 되나 봅니다. 어르신.”
국밥집 할머니와 안부 인사를 주고받던 장 집사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할아버지! 저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건강하시죠.”
내 인사에 장 집사가 일어나 깍듯하게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도련님. 여기 앉으세요.”
“제발! 나와서는 이러지 마세요.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쳐다봐요.”
“잘 생겨서 보는 거지. 안 그래요. 장 씨.”
“그죠. 우리 도련님이 한 인물 하죠.”
낯 뜨거운 대화를 참을 수 없어, 서둘러 주문했다.
“할머니, 국밥 주세요. 파전도 주시고요.”
“내 정신 좀 봐. 배고프지. 우선 파전부터 줄게.”
국밥집 할머니가 가자, 장 집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직 이렇다 할 증거를 찾지를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착잡한 심정까지는 숨길 수가 없었다.
“강산이 한 번 바뀌는 시간인데. 당연히 그렇겠죠. 장 집사님의 잘못도 아닌데. 장 집사님이 의기소침하면 제가 더 죄송스럽죠.”
애써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나를 빤히 보던 장 집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도련님, 확실하지 않지만… 수첩에 적은 숫자는 차량 번호판과 한전 전봇대 위치 정보는 조서 정보와 같습니다.”
“네? 정말이요?”
“도련님 예상대로 창식 씨가 뺑소니 사고 목격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럼, 유일한 목격자 사망에 증거도 없고. 결국 또 빈손이네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다만, 또 다른 목격자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다른 목격자요?”
“네. 수첩에 적힌 차 번호가 낯익다고 생각했는데. 부도나기 직전에 T 식품의 사장이 어음 할인해달라고 도련님의 아버님을 찾아와 읍소했을 때, 그 차량 번호와 같습니다.”
“그 차량 번호랑 같은 번호지 어떻게 자신하죠?”
“회장님의 수첩에는 만날 사람과 시간 장소. 그리고 교통편까지 적어 놓으세요. 특히 궁지에 몰린 사람에 대한 정보는 깨알같이 정리하셨습니다.”
장 집사가 보자기에 싸인 노트와 장부를 꺼내 보였다.
뒤통수를 맞은 표정으로 장 집사를 책망하듯 쳐다봤다.
“이 장부와 노트를 지금 내놓은 이유가 뭐예요? 좋게 말해서, 회장님 깜이 되는지, 안 되는지 테스트하고 있었네요. 장 집사님.”
“네. 도련님.”
“우와~ 연기력 한번 대단하시네요. 입으로는 도련님이고, 실상은 하룻강아지로 보고 있다는 소리네요.”
배신감에 비아냥대는 나와 달리 장 집사는 여유롭게 되받아쳤다.
“도련님이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렇겠죠.”
“아~ 장 집사의 테스에 통과한 기념으로 감사의 절이라도 올릴 줄 알았어요. 내가.”
“그건 도련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도련님을 처음 만나는 날에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회장님 사람이라고. 그래도 괜찮습니까? 물었습니다.”
뺑소니 당한 부모님에 그날의 행적을 찾겠다고 미치듯이 헤매고 다닐 때. 시치미 뗀 장 집사를 어떻게 받아 들려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장 집사를 믿었던 만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 기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 집사는 때마침 나온 국밥을 천연덕스럽게 떠먹었다.
“늙은이가 밉다고 굶으시면, 도련님만 손해이십니다. 맛있네요.”
“장 집사님은 속 편해서, 만수무강하시겠네요.”
“그런 편이죠. 드시고, 같이 갈 때가 있습니다. 도련님.”
“납치라도 하시게요? 장 집사님.”
“취임식이라고 해두죠. 축하드립니다. 도련님.”
아직도 장 집사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했다. 꽁한 마음에 안 간다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라 더 짜증이 났다.
어쨌든 아버지가 끝까지 믿었던 장 집사라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보살펴주지 않았다고 따지기엔 너무 찌질했다.
국밥에 화풀이하듯 밥 말아 먹었다.
다 먹을 때쯤, 국밥집 할머니가 노란 봉투를 내밀었다.
“머리털 나고, 주식이지 뭔지를 사서, 양도라는 거도 해보고. 나도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네. 내가 늦복이 있어. 귀하신 건물주님 덕분에.”
건네받은 서류를 훑어보며 웃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절대 어르신께 손해 보지 않게 하겠습니다.”
국밥집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코듯이 시리신지, 킁킁거렸다.
“은혜는 내가 갚아야지. 하루아침에 사기당하고, 길바닥에 나앉을 처지에… 세상에나 부모님의 생명 보험금으로 이 국밥집 지켜줬는데. 이보다 더한 것도, 해야지. 해드려야지. 내 은인인데.”
“별말씀이요. 누가 들으면, 공짜로 국밥집 제가 차려준 줄 알잖아. 다 할머니가 일궈놓은 식당인데. 맛있는 국밥 먹을 수 있게, 건강하세요. 저는 그걸로 만족해요. ”
“그래 까짓것. 내가 100세까지 살아서 국밥 말아줄게.”
노란 봉투에 다시 서류를 넣고 국밥집 할머니에게 돌려줬다.
“할머니 이거, 장독대에 묻어주세요.”
“그래. 장은 3년 묵어야, 제맛이 나지. 나한테 맡겨둬.”
***
평소대로 제일 먼저 출근하는 임수인데. 오늘따라 일찍 출근한 직원들 때문에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우리 사무실 맞아? 왜들 바쁘게 움직이는데? 정리 해고 공고 떠나?”
마치 장학사가 학교에 방문한 것처럼. 임수만 빼고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바쁘게 움직였다.
허둥지둥 물걸레질과 과잉 친절을 이행 연습하는 직원들의 웅성거림에 임수까지 파김치가 된 기분이었다
‘지진 전조현상처럼 쥐 떼처럼 직원들이 복도에 몰려가네.’
어차피 가라앉은 난파선이라면 귀찮은 쪽보다 평온함이 낫다는 생각에 임수는 자리에 앉아 묵묵히 일했다.
“일보다 사람들에게 시달리게, 더 힘드니. 이렇게 조용하면, 회사를 행복하게 다닐 텐데.”
한껏 일에 집중하던 임수는 이상한 낌새에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는데.
“엄마야~ 악!”
검은 그림자에 놀란 임수가 일어나는 순간, 허리 숙여 모니터를 보던 남자의 코와 부딪혔다.
졸지에 박치기당한 그 남자의 코에서 붉은 액체가 흘렀다.
시베리아 급, 냉기에 얼어버린 사무실 사람들과 달리 행커칩으로 코피를 닦은 그 남자가 멋쩍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일하는데, 방해한 제가 잘못이죠.”
그제야 정신이 임수는 책상에 놓인 갑 티슈를 뽑아 그 남자에게 건넸다.
“죄송합니다…이거라도…정말 죄송합니다.”
건네받은 티슈로 코를 막은 남자가 부드러운 미소로 인사했다.
“괜찮습니다. 또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 마음에 그만. 미안합니다. 홍 대리님.”
임수는 그제야 그 남자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어! 이 남자의 정체가 대체 뭐야?’
이제야 자신을 알아본 임수의 표정이 반가운지, 활짝 웃으며 다시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H 푸드 본부장으로 발령받은 최재현입니다. 반갑습니다. 홍 대리님.”
임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재현을 쳐다봤다.
‘본부장이라고! 이 회사에 다니는 걸 알면서도 나랑 소개팅했다고? 단순한 우연이 아니겠지. 목적이 뭐야? 그런데, 왜 하필 나야!’
평온한 재현 본부장과 달리 임수의 머릿속은 전쟁이 났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번 생은 망했다.’
행여 임수 때문에 불똥이 튈까 무서운 직원들은 숨죽여 본부장의 안색을 살폈다.
임수의 복잡한 표정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현 본부장은 너그러운 상사처럼 악수를 청했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홍 대리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툭 치고 들어오는 재현 본부장의 의도를 몰라 임수는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속 사정을 알지 못하는 직원들은 개선장군처럼 뻣뻣하게 서 있는 임수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라는 눈빛으로 째려봤다.
새파랗게 질린 박 부장은 임수에게 사과를 강요했다.
“뭐해요! 홍 대리. 재현 본부장님이 내민 손 민망하게! 빨리 사고하고 악수하세요.”
억울해도 공개 수모를 당하느니, 거센 비는 피하는 편이 좋다는 생각에 정식으로 사과했다.
“재현 본부장님을 몰라뵙고, 감히 다치게 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차후에도 병원에 가시면 제가,”
“엄밀히 따지면 제 잘못이죠. 홍 대리님 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
‘뭘 기대해? 무섭게.’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강제로… 그럴 생각은 없는데. 질투심에 눈이 돌아서. 누나한테 못 할 짓했다.”
“야! 이 버터 새끼야. 내가 미친X이지. 누님 소개팅 장소를 괜히 가르쳐줘서, 이 사단을 만들었네. 그래도 이건 아니지.”
“반성하고 있어. 나도. 내 바닥이 이렇게 금방 드러날 줄 몰랐다.”
“너 그거, 성추행이야! 알지. 누나가 고소하면, 감옥 갈 수도 있어.”
“그렇게.”
덤덤하게 말하는 내가 못마땅한지, 등짝 스매싱을 날린 정우가 버럭 화를 냈다.
“이 자식 봐라. 남 일 아니야! 뭐가 이렇게 태평해. 누님은 뭐래? 신고하신대?”
“아직 몰라. 신고해도 할 말 없지. 그보다…….”
앞으로 닥쳐올 폭풍에 입을 닫자, 정우가 되묻듯이 다그쳤다.
“말하다 말아. 그보다 뭐?”
“누나가 나, 평생 안 본다고 하면 어떡하지. 정우야.”
코 빠뜨린 내가 불쌍했는지, 정우가 한숨을 내뱉듯 말했다.
“뭘 어떡해. 무조건 빌어야지. 손이 족발이 되도록. 너 혼자 빌길 뭐하면, 나도 같이 무릎 꿇고 빌어야지. 한우 먹은 죄로.”
“한우 먹인 보람 있네.”
“이 버터 새끼, 이 와중에도 생색을 내고 싶냐!”
“그렇게. 너도 알지. 여자한테 관심 없는 거.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나한테만 그렇게 안 되더라.”
“이 버터 새끼, 걱정을 자랑질처럼 하는 버릇 또 나왔다. 재수 없게. 그러니까, 친구가 없는 거야.”
“이런 난대. 어느새 내 시선은 누나한테 머물고.”
“늘 재수 없는 너도 대단하지만. 너의 자랑질을 듣고 있는 나 자신의 인내심에 경의를 표한다.”
“누나의 몸짓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기분. 너는 모르겠지만. 난 그랬어.”
“오글거리는 삼류 청춘 드라마의 주인공도 너처럼 말 안 해. 민망하지 않냐?”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답답한 속내를 털어내듯 정우에게 우정의 헤드록 기술을 선보였다.
“잔멸치! 먹은 한우 다 토해 내!”
시뻘게진 정우가 캑캑거리며 놀려댔다.
“있는 놈들이 더 한다고. 치사한 버터 새끼야. 그러니까, 네가 누나한테 거시기나 차였지.”
“너 어떻게 알았냐? 우리 집에 CCTV라도 달아났어?”
“이거 놔! 꼭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냐! 삼류 드라마 주인공처럼 헛소리나 해댔는데, 딱 보면 알지!”
“어~휴 도사 나셨네. 그럼 오늘 내 손에 죽는 것도 알겠네.”
얼굴 빨개진 정우가 내 손을 다급하게 탭을 치면서 소리쳤다.
“숨…숨 막힌다고! 평생 혼자 살아라! 이 버터 새끼야. 캑캑.”
“네 위장에서 한우 숨은그림찾기 한다. 먹은 거, 다 뱉어. 개념 없는 잔멸치!”
***
시장통 국밥집에 백발의 장 집사가 앉아있다.
나이 드신 할머니가 손수 컵을 가져다주면, 반갑게 인사했다.
“오래간만에 오셨구먼. 하도 안 와서. 나 또 황천길 가셨나 걱정했는데. 다행이구먼.”
장 집사는 사람 좋은 미소로 맞장구쳤다.
“이 나이에 반겨주는 곳도 있고. 이 맛에 단골손님이 되나 봅니다. 어르신.”
국밥집 할머니와 안부 인사를 주고받던 장 집사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할아버지! 저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건강하시죠.”
내 인사에 장 집사가 일어나 깍듯하게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도련님. 여기 앉으세요.”
“제발! 나와서는 이러지 마세요.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쳐다봐요.”
“잘 생겨서 보는 거지. 안 그래요. 장 씨.”
“그죠. 우리 도련님이 한 인물 하죠.”
낯 뜨거운 대화를 참을 수 없어, 서둘러 주문했다.
“할머니, 국밥 주세요. 파전도 주시고요.”
“내 정신 좀 봐. 배고프지. 우선 파전부터 줄게.”
국밥집 할머니가 가자, 장 집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직 이렇다 할 증거를 찾지를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착잡한 심정까지는 숨길 수가 없었다.
“강산이 한 번 바뀌는 시간인데. 당연히 그렇겠죠. 장 집사님의 잘못도 아닌데. 장 집사님이 의기소침하면 제가 더 죄송스럽죠.”
애써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나를 빤히 보던 장 집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도련님, 확실하지 않지만… 수첩에 적은 숫자는 차량 번호판과 한전 전봇대 위치 정보는 조서 정보와 같습니다.”
“네? 정말이요?”
“도련님 예상대로 창식 씨가 뺑소니 사고 목격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럼, 유일한 목격자 사망에 증거도 없고. 결국 또 빈손이네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다만, 또 다른 목격자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다른 목격자요?”
“네. 수첩에 적힌 차 번호가 낯익다고 생각했는데. 부도나기 직전에 T 식품의 사장이 어음 할인해달라고 도련님의 아버님을 찾아와 읍소했을 때, 그 차량 번호와 같습니다.”
“그 차량 번호랑 같은 번호지 어떻게 자신하죠?”
“회장님의 수첩에는 만날 사람과 시간 장소. 그리고 교통편까지 적어 놓으세요. 특히 궁지에 몰린 사람에 대한 정보는 깨알같이 정리하셨습니다.”
장 집사가 보자기에 싸인 노트와 장부를 꺼내 보였다.
뒤통수를 맞은 표정으로 장 집사를 책망하듯 쳐다봤다.
“이 장부와 노트를 지금 내놓은 이유가 뭐예요? 좋게 말해서, 회장님 깜이 되는지, 안 되는지 테스트하고 있었네요. 장 집사님.”
“네. 도련님.”
“우와~ 연기력 한번 대단하시네요. 입으로는 도련님이고, 실상은 하룻강아지로 보고 있다는 소리네요.”
배신감에 비아냥대는 나와 달리 장 집사는 여유롭게 되받아쳤다.
“도련님이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렇겠죠.”
“아~ 장 집사의 테스에 통과한 기념으로 감사의 절이라도 올릴 줄 알았어요. 내가.”
“그건 도련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도련님을 처음 만나는 날에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회장님 사람이라고. 그래도 괜찮습니까? 물었습니다.”
뺑소니 당한 부모님에 그날의 행적을 찾겠다고 미치듯이 헤매고 다닐 때. 시치미 뗀 장 집사를 어떻게 받아 들려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장 집사를 믿었던 만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 기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 집사는 때마침 나온 국밥을 천연덕스럽게 떠먹었다.
“늙은이가 밉다고 굶으시면, 도련님만 손해이십니다. 맛있네요.”
“장 집사님은 속 편해서, 만수무강하시겠네요.”
“그런 편이죠. 드시고, 같이 갈 때가 있습니다. 도련님.”
“납치라도 하시게요? 장 집사님.”
“취임식이라고 해두죠. 축하드립니다. 도련님.”
아직도 장 집사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했다. 꽁한 마음에 안 간다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라 더 짜증이 났다.
어쨌든 아버지가 끝까지 믿었던 장 집사라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보살펴주지 않았다고 따지기엔 너무 찌질했다.
국밥에 화풀이하듯 밥 말아 먹었다.
다 먹을 때쯤, 국밥집 할머니가 노란 봉투를 내밀었다.
“머리털 나고, 주식이지 뭔지를 사서, 양도라는 거도 해보고. 나도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네. 내가 늦복이 있어. 귀하신 건물주님 덕분에.”
건네받은 서류를 훑어보며 웃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절대 어르신께 손해 보지 않게 하겠습니다.”
국밥집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코듯이 시리신지, 킁킁거렸다.
“은혜는 내가 갚아야지. 하루아침에 사기당하고, 길바닥에 나앉을 처지에… 세상에나 부모님의 생명 보험금으로 이 국밥집 지켜줬는데. 이보다 더한 것도, 해야지. 해드려야지. 내 은인인데.”
“별말씀이요. 누가 들으면, 공짜로 국밥집 제가 차려준 줄 알잖아. 다 할머니가 일궈놓은 식당인데. 맛있는 국밥 먹을 수 있게, 건강하세요. 저는 그걸로 만족해요. ”
“그래 까짓것. 내가 100세까지 살아서 국밥 말아줄게.”
노란 봉투에 다시 서류를 넣고 국밥집 할머니에게 돌려줬다.
“할머니 이거, 장독대에 묻어주세요.”
“그래. 장은 3년 묵어야, 제맛이 나지. 나한테 맡겨둬.”
***
평소대로 제일 먼저 출근하는 임수인데. 오늘따라 일찍 출근한 직원들 때문에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우리 사무실 맞아? 왜들 바쁘게 움직이는데? 정리 해고 공고 떠나?”
마치 장학사가 학교에 방문한 것처럼. 임수만 빼고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바쁘게 움직였다.
허둥지둥 물걸레질과 과잉 친절을 이행 연습하는 직원들의 웅성거림에 임수까지 파김치가 된 기분이었다
‘지진 전조현상처럼 쥐 떼처럼 직원들이 복도에 몰려가네.’
어차피 가라앉은 난파선이라면 귀찮은 쪽보다 평온함이 낫다는 생각에 임수는 자리에 앉아 묵묵히 일했다.
“일보다 사람들에게 시달리게, 더 힘드니. 이렇게 조용하면, 회사를 행복하게 다닐 텐데.”
한껏 일에 집중하던 임수는 이상한 낌새에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는데.
“엄마야~ 악!”
검은 그림자에 놀란 임수가 일어나는 순간, 허리 숙여 모니터를 보던 남자의 코와 부딪혔다.
졸지에 박치기당한 그 남자의 코에서 붉은 액체가 흘렀다.
시베리아 급, 냉기에 얼어버린 사무실 사람들과 달리 행커칩으로 코피를 닦은 그 남자가 멋쩍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일하는데, 방해한 제가 잘못이죠.”
그제야 정신이 임수는 책상에 놓인 갑 티슈를 뽑아 그 남자에게 건넸다.
“죄송합니다…이거라도…정말 죄송합니다.”
건네받은 티슈로 코를 막은 남자가 부드러운 미소로 인사했다.
“괜찮습니다. 또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 마음에 그만. 미안합니다. 홍 대리님.”
임수는 그제야 그 남자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어! 이 남자의 정체가 대체 뭐야?’
이제야 자신을 알아본 임수의 표정이 반가운지, 활짝 웃으며 다시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H 푸드 본부장으로 발령받은 최재현입니다. 반갑습니다. 홍 대리님.”
임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재현을 쳐다봤다.
‘본부장이라고! 이 회사에 다니는 걸 알면서도 나랑 소개팅했다고? 단순한 우연이 아니겠지. 목적이 뭐야? 그런데, 왜 하필 나야!’
평온한 재현 본부장과 달리 임수의 머릿속은 전쟁이 났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번 생은 망했다.’
행여 임수 때문에 불똥이 튈까 무서운 직원들은 숨죽여 본부장의 안색을 살폈다.
임수의 복잡한 표정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현 본부장은 너그러운 상사처럼 악수를 청했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홍 대리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툭 치고 들어오는 재현 본부장의 의도를 몰라 임수는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속 사정을 알지 못하는 직원들은 개선장군처럼 뻣뻣하게 서 있는 임수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라는 눈빛으로 째려봤다.
새파랗게 질린 박 부장은 임수에게 사과를 강요했다.
“뭐해요! 홍 대리. 재현 본부장님이 내민 손 민망하게! 빨리 사고하고 악수하세요.”
억울해도 공개 수모를 당하느니, 거센 비는 피하는 편이 좋다는 생각에 정식으로 사과했다.
“재현 본부장님을 몰라뵙고, 감히 다치게 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차후에도 병원에 가시면 제가,”
“엄밀히 따지면 제 잘못이죠. 홍 대리님 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
‘뭘 기대해? 무섭게.’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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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댕댕이가 아니라 늑대라고!
11.11화- 감언이설을 팩트로 만들면 홍 대리님, 저에게 오실래요?조회 : 1,56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57 10.10화- 우리들의 보스, 지국장을 위하여! 건배!조회 : 1,30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72 9.9화-캐피탈 대표 지국장? 내가?조회 : 1,93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24 8.8화- 이 남자의 정체가 뭐야?조회 : 1,98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18 7.7화-쪽파림은 순간이니까, 비뇨기과 가자.조회 : 1,83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485 6.6화- 이제부터 내가 남자로 보일 거야!조회 : 1,66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75 5.5화- 남자는 나 하나로 만족해!조회 : 1,00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58 4.4화- 반갑다. 꼬맹이!조회 : 1,57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46 3.3화- 스위트 룸이면! 밤새도록 누나를 끌어안고 자도 돼?조회 : 64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65 2.2화- 댕댕이도 누나의 목덜미를 물 수 있다는 거, 알아?조회 : 79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790 1.1화- 갈 데 없으면, 우리 집으로 올래요?조회 : 1,920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