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캐피탈 대표 지국장? 내가?
조회 : 1,938 추천 : 0 글자수 : 5,024 자 2022-10-08
복잡한 임수의 속내를 읽었는지 재현 본부장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H 푸드에서 내놓은 ‘커피의 꽃’이라는 디저트 돌풍을 일으키신 홍 대리님의 활약을 익히 들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 한번 꼭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실례를 범했네요.”
임수는 이제껏 봐왔던 고압적인 상사와 달리 정중함으로 돌려 까는 재주를 선보이는 재현 본부장에게 강한 경계심이 생겼다.
버퍼링 걸린 애처럼 넋 놓고 있는 임수가 거슬렸는지. 그것도 아니면 재현 본부장의 찬사가 못마땅했는지, 박 부장이 임수를 밀치고 숟가락을 얹혔다.
“그 기사 보셨구나. 그게 다~저희 식품개발팀이 한마음 한뜻으로 십시일반! 개발한 제품입니다. 안 그래 홍 대리?”
다 지나간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끼어들 생각이 없는 임수는 맞장구쳤다.
“아~네. 박 부장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영혼 없는 임수의 대답에 재현 본부장은 피식거리며 박 부장을 떠보듯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역시~소문은 믿을 게 못 되네.”
화들짝 놀란 박 부장은 재현 본부장에게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무슨 소문을 말씀하시는지?”
“업계에 짝~퍼졌는데. 정말 모르세요?”
“무슨?”
“박 부장님의 결사반대로 빛도 못 보고 폐기될 제품이었는데. 공장근로자 해고 문제로 시끄러워지자, 회사 차원에서 무마용으로 던져준 제품이 대박 나서, 박 부장님이 곤란해졌다는 소문이요.”
박 부장은 뜨악한 표정으로 입만 뻐끔거렸다.
“…….”
“당연히 헛소문이죠. 박 부장님.”
창백해진 박 부장을 변호하듯 김 과장이 완강히 부인했다.
“헛소문입니다. 본부장님. 당사자인 홍 대리가 증인입니다. 내 말이 맞지. 홍 대리.”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게 생긴 임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네. 김 과장님, 말씀대로입니다.”
그제야 아차 싶은 박 부장은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읍소했다.
“억울합니다. 재현 본부장님 모함입니다.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직원들이 증인입니다. 제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사랑하는 우리 직원 여러분들이 말해줄 겁니다.”
박 부장의 생쇼를 보는 직원들이 다 민망했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직원들은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박 부장님 열심히 하셨습니다. 우리가 보증합니다. 본부장님.”
“맞아요. 휴일도 반납…….”
재현 본부장은 더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말을 돌렸다.
“인사는 이쯤 했으니까. 저도 제 사무실로 일하러 가겠습니다. 수고들 하사요.”
사무실에서 나가던 재현 본부장이 발걸음을 멈추자, 박 부장이 득달같이 달려갔다.
“본부장님, 혹시 업무보고 때문에 그러시면,”
“아니요. 첫 출근부터 코피 흘렸다는 상사로 입방아 신세가 되기 싫어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아~ 네! 재현 본부장님, 우리 식품개발팀 직원들의 입은 무겁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본부장님.”
재현 본부장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경고했다.
“그럼 박 부장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혹시 소문이라도 나면, 그 출저가 박 부장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네?”
“농담. 농담입니다. 박 부장님.”
“하하하. 농담 센스가 끝내줍니다. 본부장님.”
간담이 서늘한 농담에 김 과장은 직원들에게 박수를 강요했다.
“본부장님 덕분에 우리 직원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네요. 하하하. 다들 재미있지.”
“제 농담이 그렇게 재미있으면, 종종 하겠습니다. 그럼 다들 일들 보세요.”
진이 빠진 직원들이 털썩 주저앉은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
성큼성큼 걸어가던 재현 본부장은 오리 새끼처럼 배웅하는 박 부장과 김 과장에게 상사의 위엄을 인식시켰다.
“물가에 내놓은 얘처럼 불안한 본부장님처럼 보일지라도, 제가 사무실 정도는 찾아갈 수 있는 지적 능력은 있습니다.”
화들짝 놀란 박 부장과 김 과장은 눈치를 살피며 삼보로 뒤로 물러났다.
“아! 본부장님 이만 가보겠습니다.”
박 부장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김 과장도 따라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박 부장과 김 과장의 배려심에 안심이 되네요. 앞으로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박 부장과 김 과장에게 돌려 깎기 선공을 보이듯 재현 본부장이 머리가 땅에 닿게 고개를 숙였다.
당황한 박 부장과 김 과장은 맞절하듯 고개 숙인 채, 재현 본부장의 머리가 들리기만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핸드폰 진동에 그제야 고개를 든 재현 본부장은 통화하며 제 갈 길을 갔다.
“여보세요. H 푸드 재현 본부장님입니다. 네. 화환 잘 받았습니다. 부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장 회장님.”
시야에서 재현 본부장이 사라지자, 박 부장과 김 과장이 험담을 시작했다.
“아이고~ 목이야! 어린놈 때문에 또 헛짓거리하게 생겼다!”
“그렇게 말입니다. 헛짓거리만 하면 다행이죠. 문제는 꼴에 본부장 꽃 패 놀이에 저희만 죽어 나갈까, 그게 걱정입니다.”
“이놈의 팔자! 내 목도 뻣뻣하게 언제! 저렇게 세울 수 있으려나. 그래도 우리에겐 그 카드가 있으니까. 걱정 없어.”
“아! 역시 진정한 위너는 부장님이십니다. 부장님만 따르겠습니다.”
“김 과장을 챙겨준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거, 잊지 말게. 가자고. 김 과장.”
***
장 집사의 차가 외곽으로 빠졌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저수지 낚시터였다.
황당한 내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장 집사는 물 만난 고기처럼 들떠 차에서 내렸다.
트렁크에서 준비해온 낚싯대를 꺼낸 장 집사가 나를 버려두고, 저수지 한가운데에 놓인 낚시 의자에 앉았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불만 가득한 눈초리로 장 집사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강태공 놀이에 빠진 장 집사는 콧노래를 부르며 낚싯대를 저수지에 던졌다.
휴일에 낚시터에 억지로 끌려온 손자처럼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장 집사와 가까운 낚시 의자에 앉았다.
“장 집사님, 여기 온”
“쉿!”
이유도 모른 채, 느닷없이 끌려온 낚시터에서 묵언 수행하자니, 짜증이 밀려왔다.
“장 집사님!”
버럭 하자 장 집사가 어금니를 물고 조용히 경고했다.
“아무리 낚시 대회를 주최하신 도련님이라고 해도! 입질한 내 붕어가 도망가면, 국물도 없습니다. 낚시 대회를 주최하신 도련님이시면 공정하게 임해주십시오. 도련님.”
온 신경을 낚싯대에 고정한 장 집사의 손가락이 가르킨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행복한 서민 캐피탈 낚시 대회? 캐피탈 대표 지국장? 내가? 왜?”
헛웃음이 나왔다.
내 의견 따위는 중요치 않듯 바지사장으로 앉혀 놓인 장 집사의 추진력에 혀를 내둘리고 있을 때.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한 했던 저수지에 흙먼지를 날리면서 검은 세단이 연달아 들어왔다.
하나같이 험상궂은 건달처럼 생긴 사람들이 고개가 땅에 닿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지국장 대표님! 만나서 영광입니다.”
뜬금없는 건달의 인사행렬에 들이마신 들숨에 헛기침이 나왔다.
“캑캑캑… 네. 안녕하세요.”
낚싯대의 입질에 장 집사가 벌떡 일어나자, 저마다 뜰채를 가지고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회장님. 대어 낚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전국구 깡패 두목이 출신이라고 절대로 장 집사한테 까불지 말라고 하던 아버지의 입버릇이 새삼 떠올랐다.
장 집사가 뜰채에 잡힌 붕어를 들어 오늘의 낚시왕 포즈를 취하자, 기다렸다는 듯 사진을 찍기 바빴다.
“월척입니다. 회장님. 딱 봐도 6짜입니다. 회장님. 박수~”
여기는 어디요?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정작 그들의 눈에 내가 안 보이는 모양인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애써 잡은 붕어를 저수지에 다시 돌려보낸 장 집사가 내 옆으로 왔다.
“지국장 대표님께 인사 제대로 올려라.”
“네. 회장님.”
그제야 그들의 눈에 내가 들어왔는지, 스포츠머리에 뚱뚱한 중년의 남자가 골목대장처럼 나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서울 북부 캐피탈 김용수 팀장입니다. 애들아, 대표님께 인사 올려라.”
“안녕하십니까. 지국장 대표님.”
“네. 안녕하세요. 지국장입니다.”
장발 머리에 호리호리한 남자가 나와서 소개했다.
“서울 남부 캐피탈 박문수 팀장입니다. 우리 식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지국장 대표님.”
“안녕하세요. 지국장입니다. ”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중년의 여자가 나긋하게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경상도 남도 팀장, 이미수입니다. 우리 직원들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지국장 대표님.”
야구모자를 뒤로 쓴 20대 후반의 남자가 애교스럽게 소개했다.
“대표 형, 안녕하세요. 전라도 북도 팀장, 주현성입니다. ~ 대표 형님. 우리 친구들입니다.”
“안녕하세요. 대표 형님~.”
“팀장 동생들 안녕하세요. 지국장입니다.”
듣도 보도 못한 캐피탈 대표로, 그것도 낚시터에서 취임한 모양새도 기가 찰 노릇인데.
장 집사는 캠핑용 의자를 가져와 나를 앉히고, 그들에게 명령했다.
“시작하자.”
“네. 회장님.”
고개를 숙여 대답하고, 팀장들의 지시에 캠핑용 테이블이 일렬 행대로 펼쳐졌다.
그 주위로 캠핑용 조리도구와 제주도, 동해에서 공수 해온 각종 생선이 올려졌다.
하도 어이가 없어 장 집사에게 따지듯 물었다.
“낚시 대회가 아니라, 이건 요리 대회 같은데요? 장 집사님.”
“저는 손맛만 보면 되고. 쟤들은 안 좋아하는 낚시 대회에 걸맞게 생선 요리하는 걸로 친목을 다지는 거죠. 도련님.”
“아~ 참신하다 못해 까무러치겠습니다. 장 집사님.”
“나중에 시상식 부탁드립니다. 도련님.”
“기준은 청결, 맛?”
“청결, 맛은 기본이고. 도련님의 귀가 쫑긋 서는 정보를 가져온 팀이 이기는 거죠.”
“예를 들면?”
“홍임수 아가씨가 H 그룹의 상속녀라는 거.”
“알고 계셨네요. 장 집사님. 그래서요?”
“그래서는 제가 묻고 싶은데요. 도련님.”
한 번도 반문하지 않던 장 집사의 마지막 관문 같아서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더욱이 누나의 마음도 잡지 못한 상태라, 거기까지 생각할 겨들이 없었다.
“…글쎄요?”
“아직 준비가 안 되셨군요.”
‘무슨 준비?’
더는 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 장 집사가 일어났다.
“얼추 끊인 거 같으니, 가져와 봐라.”
“네.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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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댕댕이가 아니라 늑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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