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우리들의 보스, 지국장을 위하여! 건배!
조회 : 1,301 추천 : 0 글자수 : 4,972 자 2022-10-09
해산물 뷔페처럼. 광어회부터, 도미찜, 갈치 조림, 꽃게탕도 모자라 랍스터까지 그야말로 해산물 천국이었다.
“해산물 뷔페에 온 것 같네요. 장 집사님.”
“우리 애들이 좀 하지요. 도련님. 각각 맛보시고, 점수 매겨주세요.”
“미식가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각 지역의 팀장들이 앞접시에 음식을 덜어주면서 하나같이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시식 전에 보시고, 맛 평가해주세요. 대표님.”
부담스러운 시선에 숟가락을 놓고 서류를 훑어봤다.
‘치정에 유산 다툼, 성희롱 이혼 사유 등등. 이건 뭐~완전 찌라시 수준인데. 거기다가 주주들의 명단은 공시하지만, 사모펀드 명단는 물론 페이퍼 컴퍼니까지 파악했다고?’
더는 볼 필요가 없어 서류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언더커버, 국세청 직원이나, 검사? 그것도 아니면 경찰? 아! 흥신소? 이거 다~ 불법인데. 이쪽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사임하겠습니다. 장 집사님.”
내 비아냥거림이 눈에 거슬렸는지, 제일 혈기 왕성한 야구 모자를 뒤집어쓴 주현성 팀장이 도발했다.
“대표 형님~ 실력이 뽀록날까 봐, 도망가는 건 아니고요? 회장님, 정말 대표깜 맞아요?”
장 집사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내가 노망이 아니라면, 이만한 보스는 없지.”
장 집사의 말이 고깝게 들린 나와 주현성 팀장은 ‘이게 무슨 개소리야’라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중년의 팀장들은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관망하며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이기는 편 우리 편!”
“누가 이기나? 판돈 걸어요. 대표님은 왼쪽, 주현성 팀장은 오른쪽.”
“오만 원 빵? 십만 원 빵?”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짜증을 넘어 화가 났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쏘아붙였다.
“병신이 육갑 떨지 마시고! 개콘 찍고 싶으면 나 빼고, 그쪽들만 하세요. 나름 바쁜 사람 불러내지 말고.”
“오~ 카리스마!”
“대표님에게 십만 원 빵!”
애송이 대표를 얕잡아 보는 수준을 넘어 모욕에 가까운 언행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장 집사님! 이런 식이면 다시는 안 볼 겁니다.”
일순간 시선이 집중된 장 집사의 눈치를 살피며, 시장 바닥처럼 시끄러웠던 낚시터가 조용해졌다.
관망하던 장 집사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뗐다.
“야외라서 그런지, 더 맛있네. 자네들의 보기에 부족한가?”
스포츠머리 김용수 팀장이 입을 열었다.
“합격입니다. 회장님.”
장발에 박문수 팀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식구들 앞에서 큰소리치기 힘든데. 역시 사내는 깡다구라고. 합격입니다.”
하나로 묶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돌돌 말던 이미수 팀장이 귀엽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무턱대고 덥석 안 무는 걸 보니, 유혹에 약하지 않고, 사리 분별도 할 줄 알고. 불만 없습니다. 회장님.”
졸지에 혼자 장구 치고 북 치는 꼴에 진이 빠진 얼굴로 입을 닫았다. 어차피 여기서 더 이야기 해봤자, 쫌스러워 보일 뿐이었다.
나랑 대치하던 주현성 팀장은 성공한 몰래카메라에 뿌듯한 얼굴로 너스레를 떨었다.
“탁월한 안목을 가지신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다행히 노망이 아니신 걸로, 판명됐습니다. 지국장 대표님.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무언의 압박하듯 장 집사를 쳐다봤다.
‘더는 없죠? 이걸로, 끝이죠. 장. 집. 사. 님.’
장 집사가 고개를 끄덕이었다.
“잔 들고, 건배하자. 우리들의 보스, 지국장을 위하여! 건배!”
울며 겨자 먹기로 잔을 들어 건배했다.
***
재현 본부장이 부임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부서별 주요 업무 파악한다는 명분으로 아침마다 박 부장을 불러준 덕에, 임수는 한동안 평화로운 회사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박 부장은 본부장실만 갔다 오면 초췌한 얼굴로 사표만 만지작거렸다.
임수는 콧노래를 부르며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 한동안 잠잠했던 박 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금방 가겠습니다. 김 과장! 빨리 본부장실로 가봐.”
사색이 된 김 과장은 벌벌 떨면서 옷 매무새를 만지며 박 부장에게 지명된 이유를 캐물었다.
“무슨 일로? 제가 왜요? 보고서 때문이라면, 부장님께 결재받고 올렸는데요. 부장님을 건너뛰고 저한테만…….”
물귀신처럼 책임을 전가하는 김 과장이 언짢은 박 부장이 쏘아붙였다.
“난들 알아? 위에서 가라면 까야지.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김 과장을 믿고, 내가 결재한 거지. 안 봐도, 문제없다며!”
길길이 날뛰는 박 부장의 태도에 김 과장은 입을 다물었다.
***
본부장실 문 앞에서 긴장한 김 과장은 윤 비서에게 본부장의 심기를 물었다.
“본부장님 안에 계시지? 혹시 심기가 많이 불편하셔?”
김 과장의 물음에 윤 비서는 무시하듯 내선을 돌렸다.
“김 과장님 오셨습니다. 본부장님.”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 김 과장은 윤 비서에게 화풀이하듯 비꼬았다.
“요즘 것들은 기본이 안 됐어! 그러니까, 비정규직이나 하지. 쯧쯧쯧.”
키보드에 손을 뗀 윤 비서가 서류철을 냅다 치며 신경질적으로 일어났다.
“어디서 파리가 와서, 윙윙거려! 전기 파리채로 훈제라도 만들어 버릴까.”
“너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지. 이게 어디서, 인턴 나부랭이가! 과장한테.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어!”
“어머! 과장님, 제가 언제 과장님이라고 했어요. 위생상 파리가 날려서, 잡으려고 했는데요. 제 부모님 이야기 왜 나오죠!”
겁도 없이 본부장실 앞에서 큰소리치는 부하 직원이 불쾌한 재현 본부장은 냉담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인턴이 아니라, 내 정식 비서인 윤세라 사원을 소개합니다. 인사하세요. 김. 과. 장. 님.”
재현 본부장의 매서운 눈매에 김 과장이 개미 목소리로 윤 비서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 정규직…축…축하해. 본부장님의 비서가 돼서…”
“감사합니다. 김 과장님.”
“김 과장님, 보고서 가지고 오셨죠.”
“아! 네.”
“들어오세요.”
본부장실에 들어가던 재현 본부장이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참, 김 과장님.”
“아. 네. 말씀하십시오.”
“사과 안 하세요?”
“네? 무슨 사과를…….”
재현 본부장은 김 과장을 추궁하듯 지적했다.
“윤 비서님의 부모님을 거론하신 거! 위계에 의한 직장 상사의 괴롭힘으로 신고당할 수 있습니다. 사과하세요.”
수치심에 김 과장은 주먹을 불끈 쥐어보지만, 본부장 앞이라 마지못해 사과했다.
“… 미… 미안해. 윤 비서.”
“김 과장님, 미안합니다. 이왕 사과하는 거, 정중하게 하세요.”
“… 네. 본부장님. 윤 비서,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사과받겠습니다. 김 과장님, 앞으로 저희 부모님 언급하지 않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들어가죠. 김 과장님.”
***
김 과장은 긴장한 얼굴로 보고서를 재현 본부장에게 건넸다.
재현 본부장의 먹잇감이 된 것처럼 김 과장은 내리깔고 정자세로 앉아 납작 엎드린 시늉을 했다.
‘사람 쫄리게, 빨리 말하지. 똥 품 잡고 있어.’
말없이 보고서를 살펴보던 재현 본부장은 책상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김 과장님, 설마 만년 과장님을 꿈꾸시는 건 아니시죠.”
“네?”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상사와 다른 재현 본부장의 남다른 질책에 김 과장은 당혹스러워 잠자코 있었다.
눈치만 살피는 김 과장을 추궁해봤자, 더는 들을 말이 없을 것 같아, 선수를 쳤다.
“승진이 빠른 편이시니, 견제를 많이 받았을 겁니다. 이해합니다. 그래서 남들처럼, 대충! 적당히 보고서를 올린 겁니까?”
“네?”
“아니면, 미덥지 못한 본부장을 테스트용으로? 물론 윗전의 뜻이고요?”
새로 부임한 본부장의 꼬투리 잡기용 질책으로만 생각한 김 과장은 아차 싶어,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이사님 라인이라는 알고서? 아니지. 알았다면, 저 성질에 들쑤시고 다녔겠지. 부르려면, 박 부장을 불러야지. 피라미인 나를 왜 불러?’
김 과장은 오만가지 변명을 생각했지만, 어떤 감언이설로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촉 때문에 선택적인 시치미 공법으로 나갔다.
“죄송합니다. 본부장님의 정도에 실력이 아니라서요. 시기를 받아 본 적도 없습니다. 제가 보기보다 머리가 나빠서, 본부장님이 무슨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재현 본부장은 싱긋 웃어 보였다.
‘이렇게 엉망인 보고서를 올렸다는 건. 전 본부장을 제물 삼아, 윗선에 개입했다는 소리인데. 그걸 또 내가 나름 주워 먹었고. 여러 가지로 재미있네.’
재현 본부장의 미소가 무서운 김 과장은 도망갈 개구멍을 파고 있었다.
“본부장님, 다시 보고서 올리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오늘 중으로. 아니 오전 중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머리 숙여 읍소하는 김 과장에게 너그러운 미소를 보이며 일갈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simple is best’라고 실무자 홍 대리를 불렀습니다. 그러니, 김 과장은 신경 쓰지 마세요. 그만 나가보세요.”
똑 똑똑!
“들어오세요.”
임수는 김 과장을 무시한 채, 재현 본부장에게 인사했다.
“본부장님, 부르셨습니까?”
“네. 일단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하죠. 김 과장 뭐해요? 안 나가세요.”
“아. 네. 그럼.”
가시적인 미소로 본부장실에서 나가면서 김 과장은 화풀이하듯 중얼거렸다.
“어차피 구색 맞추기용이야! 본부장도 한철이야! 이 사람아.”
손님용 소파에 앉아 임수가 가져온 서류를 훑어보던 재현 본부장은 내선으로 지시했다.
“윤 비서, 아메리카노 2잔 부탁해요.”
똑똑
윤 비서가 임수 앞에 아메리카노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맛있는 아메리카노 드시면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네. 대기하겠습니다.”
사무적인 임수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재현 본부장이 말본새를 지적했다.
“대기가 아니라, 여유롭게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날 기다려줬으면 좋겠는데요.”
싱글거리는 재현 본부장의 호의가 하나도 반갑지 않은 임수가 최상의 공격인 철벽을 쳤다.
“본부장님. 어휘 선택에 각별히 주의 부탁드립니다. 기다려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은 공적인 자리에서 사용하기엔 오해 살 수 있는 말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위력을 이용한 성희롱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본부장님.”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말이지만.
소개팅한 남자가 직장 상사로 앉아 있는 임수의 입장에선 결코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재현 본부장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임수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깜박했네요. 우리가 소개팅한 사실을. 홍 대리님 입장에서 충분히, 그렇게 들릴 수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재현 본부장의 깔끔하고 담백한 사과에 임수는 놀란 눈치였다.
“…네. 본부장님의 사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사과도 받아주셨으니, 우리 일 이야기 해 볼까요.”
“해산물 뷔페에 온 것 같네요. 장 집사님.”
“우리 애들이 좀 하지요. 도련님. 각각 맛보시고, 점수 매겨주세요.”
“미식가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각 지역의 팀장들이 앞접시에 음식을 덜어주면서 하나같이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시식 전에 보시고, 맛 평가해주세요. 대표님.”
부담스러운 시선에 숟가락을 놓고 서류를 훑어봤다.
‘치정에 유산 다툼, 성희롱 이혼 사유 등등. 이건 뭐~완전 찌라시 수준인데. 거기다가 주주들의 명단은 공시하지만, 사모펀드 명단는 물론 페이퍼 컴퍼니까지 파악했다고?’
더는 볼 필요가 없어 서류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언더커버, 국세청 직원이나, 검사? 그것도 아니면 경찰? 아! 흥신소? 이거 다~ 불법인데. 이쪽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사임하겠습니다. 장 집사님.”
내 비아냥거림이 눈에 거슬렸는지, 제일 혈기 왕성한 야구 모자를 뒤집어쓴 주현성 팀장이 도발했다.
“대표 형님~ 실력이 뽀록날까 봐, 도망가는 건 아니고요? 회장님, 정말 대표깜 맞아요?”
장 집사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내가 노망이 아니라면, 이만한 보스는 없지.”
장 집사의 말이 고깝게 들린 나와 주현성 팀장은 ‘이게 무슨 개소리야’라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중년의 팀장들은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관망하며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이기는 편 우리 편!”
“누가 이기나? 판돈 걸어요. 대표님은 왼쪽, 주현성 팀장은 오른쪽.”
“오만 원 빵? 십만 원 빵?”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짜증을 넘어 화가 났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쏘아붙였다.
“병신이 육갑 떨지 마시고! 개콘 찍고 싶으면 나 빼고, 그쪽들만 하세요. 나름 바쁜 사람 불러내지 말고.”
“오~ 카리스마!”
“대표님에게 십만 원 빵!”
애송이 대표를 얕잡아 보는 수준을 넘어 모욕에 가까운 언행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장 집사님! 이런 식이면 다시는 안 볼 겁니다.”
일순간 시선이 집중된 장 집사의 눈치를 살피며, 시장 바닥처럼 시끄러웠던 낚시터가 조용해졌다.
관망하던 장 집사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뗐다.
“야외라서 그런지, 더 맛있네. 자네들의 보기에 부족한가?”
스포츠머리 김용수 팀장이 입을 열었다.
“합격입니다. 회장님.”
장발에 박문수 팀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식구들 앞에서 큰소리치기 힘든데. 역시 사내는 깡다구라고. 합격입니다.”
하나로 묶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돌돌 말던 이미수 팀장이 귀엽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무턱대고 덥석 안 무는 걸 보니, 유혹에 약하지 않고, 사리 분별도 할 줄 알고. 불만 없습니다. 회장님.”
졸지에 혼자 장구 치고 북 치는 꼴에 진이 빠진 얼굴로 입을 닫았다. 어차피 여기서 더 이야기 해봤자, 쫌스러워 보일 뿐이었다.
나랑 대치하던 주현성 팀장은 성공한 몰래카메라에 뿌듯한 얼굴로 너스레를 떨었다.
“탁월한 안목을 가지신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다행히 노망이 아니신 걸로, 판명됐습니다. 지국장 대표님.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무언의 압박하듯 장 집사를 쳐다봤다.
‘더는 없죠? 이걸로, 끝이죠. 장. 집. 사. 님.’
장 집사가 고개를 끄덕이었다.
“잔 들고, 건배하자. 우리들의 보스, 지국장을 위하여! 건배!”
울며 겨자 먹기로 잔을 들어 건배했다.
***
재현 본부장이 부임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부서별 주요 업무 파악한다는 명분으로 아침마다 박 부장을 불러준 덕에, 임수는 한동안 평화로운 회사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박 부장은 본부장실만 갔다 오면 초췌한 얼굴로 사표만 만지작거렸다.
임수는 콧노래를 부르며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 한동안 잠잠했던 박 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금방 가겠습니다. 김 과장! 빨리 본부장실로 가봐.”
사색이 된 김 과장은 벌벌 떨면서 옷 매무새를 만지며 박 부장에게 지명된 이유를 캐물었다.
“무슨 일로? 제가 왜요? 보고서 때문이라면, 부장님께 결재받고 올렸는데요. 부장님을 건너뛰고 저한테만…….”
물귀신처럼 책임을 전가하는 김 과장이 언짢은 박 부장이 쏘아붙였다.
“난들 알아? 위에서 가라면 까야지.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김 과장을 믿고, 내가 결재한 거지. 안 봐도, 문제없다며!”
길길이 날뛰는 박 부장의 태도에 김 과장은 입을 다물었다.
***
본부장실 문 앞에서 긴장한 김 과장은 윤 비서에게 본부장의 심기를 물었다.
“본부장님 안에 계시지? 혹시 심기가 많이 불편하셔?”
김 과장의 물음에 윤 비서는 무시하듯 내선을 돌렸다.
“김 과장님 오셨습니다. 본부장님.”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 김 과장은 윤 비서에게 화풀이하듯 비꼬았다.
“요즘 것들은 기본이 안 됐어! 그러니까, 비정규직이나 하지. 쯧쯧쯧.”
키보드에 손을 뗀 윤 비서가 서류철을 냅다 치며 신경질적으로 일어났다.
“어디서 파리가 와서, 윙윙거려! 전기 파리채로 훈제라도 만들어 버릴까.”
“너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지. 이게 어디서, 인턴 나부랭이가! 과장한테.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어!”
“어머! 과장님, 제가 언제 과장님이라고 했어요. 위생상 파리가 날려서, 잡으려고 했는데요. 제 부모님 이야기 왜 나오죠!”
겁도 없이 본부장실 앞에서 큰소리치는 부하 직원이 불쾌한 재현 본부장은 냉담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인턴이 아니라, 내 정식 비서인 윤세라 사원을 소개합니다. 인사하세요. 김. 과. 장. 님.”
재현 본부장의 매서운 눈매에 김 과장이 개미 목소리로 윤 비서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 정규직…축…축하해. 본부장님의 비서가 돼서…”
“감사합니다. 김 과장님.”
“김 과장님, 보고서 가지고 오셨죠.”
“아! 네.”
“들어오세요.”
본부장실에 들어가던 재현 본부장이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참, 김 과장님.”
“아. 네. 말씀하십시오.”
“사과 안 하세요?”
“네? 무슨 사과를…….”
재현 본부장은 김 과장을 추궁하듯 지적했다.
“윤 비서님의 부모님을 거론하신 거! 위계에 의한 직장 상사의 괴롭힘으로 신고당할 수 있습니다. 사과하세요.”
수치심에 김 과장은 주먹을 불끈 쥐어보지만, 본부장 앞이라 마지못해 사과했다.
“… 미… 미안해. 윤 비서.”
“김 과장님, 미안합니다. 이왕 사과하는 거, 정중하게 하세요.”
“… 네. 본부장님. 윤 비서,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사과받겠습니다. 김 과장님, 앞으로 저희 부모님 언급하지 않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들어가죠. 김 과장님.”
***
김 과장은 긴장한 얼굴로 보고서를 재현 본부장에게 건넸다.
재현 본부장의 먹잇감이 된 것처럼 김 과장은 내리깔고 정자세로 앉아 납작 엎드린 시늉을 했다.
‘사람 쫄리게, 빨리 말하지. 똥 품 잡고 있어.’
말없이 보고서를 살펴보던 재현 본부장은 책상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김 과장님, 설마 만년 과장님을 꿈꾸시는 건 아니시죠.”
“네?”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상사와 다른 재현 본부장의 남다른 질책에 김 과장은 당혹스러워 잠자코 있었다.
눈치만 살피는 김 과장을 추궁해봤자, 더는 들을 말이 없을 것 같아, 선수를 쳤다.
“승진이 빠른 편이시니, 견제를 많이 받았을 겁니다. 이해합니다. 그래서 남들처럼, 대충! 적당히 보고서를 올린 겁니까?”
“네?”
“아니면, 미덥지 못한 본부장을 테스트용으로? 물론 윗전의 뜻이고요?”
새로 부임한 본부장의 꼬투리 잡기용 질책으로만 생각한 김 과장은 아차 싶어,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이사님 라인이라는 알고서? 아니지. 알았다면, 저 성질에 들쑤시고 다녔겠지. 부르려면, 박 부장을 불러야지. 피라미인 나를 왜 불러?’
김 과장은 오만가지 변명을 생각했지만, 어떤 감언이설로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촉 때문에 선택적인 시치미 공법으로 나갔다.
“죄송합니다. 본부장님의 정도에 실력이 아니라서요. 시기를 받아 본 적도 없습니다. 제가 보기보다 머리가 나빠서, 본부장님이 무슨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재현 본부장은 싱긋 웃어 보였다.
‘이렇게 엉망인 보고서를 올렸다는 건. 전 본부장을 제물 삼아, 윗선에 개입했다는 소리인데. 그걸 또 내가 나름 주워 먹었고. 여러 가지로 재미있네.’
재현 본부장의 미소가 무서운 김 과장은 도망갈 개구멍을 파고 있었다.
“본부장님, 다시 보고서 올리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오늘 중으로. 아니 오전 중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머리 숙여 읍소하는 김 과장에게 너그러운 미소를 보이며 일갈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simple is best’라고 실무자 홍 대리를 불렀습니다. 그러니, 김 과장은 신경 쓰지 마세요. 그만 나가보세요.”
똑 똑똑!
“들어오세요.”
임수는 김 과장을 무시한 채, 재현 본부장에게 인사했다.
“본부장님, 부르셨습니까?”
“네. 일단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하죠. 김 과장 뭐해요? 안 나가세요.”
“아. 네. 그럼.”
가시적인 미소로 본부장실에서 나가면서 김 과장은 화풀이하듯 중얼거렸다.
“어차피 구색 맞추기용이야! 본부장도 한철이야! 이 사람아.”
손님용 소파에 앉아 임수가 가져온 서류를 훑어보던 재현 본부장은 내선으로 지시했다.
“윤 비서, 아메리카노 2잔 부탁해요.”
똑똑
윤 비서가 임수 앞에 아메리카노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맛있는 아메리카노 드시면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네. 대기하겠습니다.”
사무적인 임수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재현 본부장이 말본새를 지적했다.
“대기가 아니라, 여유롭게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날 기다려줬으면 좋겠는데요.”
싱글거리는 재현 본부장의 호의가 하나도 반갑지 않은 임수가 최상의 공격인 철벽을 쳤다.
“본부장님. 어휘 선택에 각별히 주의 부탁드립니다. 기다려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은 공적인 자리에서 사용하기엔 오해 살 수 있는 말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위력을 이용한 성희롱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본부장님.”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말이지만.
소개팅한 남자가 직장 상사로 앉아 있는 임수의 입장에선 결코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재현 본부장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임수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깜박했네요. 우리가 소개팅한 사실을. 홍 대리님 입장에서 충분히, 그렇게 들릴 수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재현 본부장의 깔끔하고 담백한 사과에 임수는 놀란 눈치였다.
“…네. 본부장님의 사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사과도 받아주셨으니, 우리 일 이야기 해 볼까요.”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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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댕댕이가 아니라 늑대라고!
11.11화- 감언이설을 팩트로 만들면 홍 대리님, 저에게 오실래요?조회 : 1,57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57 10.10화- 우리들의 보스, 지국장을 위하여! 건배!조회 : 1,3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72 9.9화-캐피탈 대표 지국장? 내가?조회 : 1,93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24 8.8화- 이 남자의 정체가 뭐야?조회 : 1,98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18 7.7화-쪽파림은 순간이니까, 비뇨기과 가자.조회 : 1,83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485 6.6화- 이제부터 내가 남자로 보일 거야!조회 : 1,66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75 5.5화- 남자는 나 하나로 만족해!조회 : 1,00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58 4.4화- 반갑다. 꼬맹이!조회 : 1,57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46 3.3화- 스위트 룸이면! 밤새도록 누나를 끌어안고 자도 돼?조회 : 64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65 2.2화- 댕댕이도 누나의 목덜미를 물 수 있다는 거, 알아?조회 : 79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790 1.1화- 갈 데 없으면, 우리 집으로 올래요?조회 : 1,920 추천 : 1 댓글 : 0 글자 : 4,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