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저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조회 : 1,024 추천 : 1 글자수 : 4,924 자 2022-10-03
1836년 6월 25일.
한밤중 케렌시아 교황국에 신탁이 내려졌다.
헬라오스 교황은 급하게 로제타를 찾았다.
로제타는 한밤중에 시종에게 끌려
교황의 침소에 내던져지게 되었다.
교황청 밖에 사람들은 로제타를 성녀라 칭송하였으나
교황청 안에서는 꿰다 만 보릿자루 같은 신세였다.
침실에는 교황과
그녀의 측근 제임스 추기경이 로제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 부르셨나요?”
헬라오스 교황은 매우 극도로 흥분을 한 상태였다.
로제타는 쿵쾅거리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이렇게 갑자기 자신을 찾을 때
교황이 매우 흥분한 상태일 때가 가장 두려웠다.
교황은 교황의 위치에 알맞지 않은 성품을 지닌 자였다.
그녀는 로제타가 자신이 정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언제나 로제타에게
폭력적이진 않은 폭력을 가했다.
“로제타. 너는 들었으냐?”
교황의 목소리는 화가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네?”
“쯧쯧.”
교황이 혀를 차대었다.
“로제타 성녀.
성하께서는 신탁을 들으셨는지 여쭤보고 계신 겁니다.”
교황의 측근인 제임스 추기경이 교황을 대신해 말을 이었다.
“아...”
로제타는 신탁은 듣지 못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00년 만에 갑자기 신탁이라니.
“정녕 듣지 못한 게냐?”
그녀의 물음에 로제타는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몸 아래로 떨리는 손을 숨겼다.
“성녀라는 자가. 교황의 딸이! 신의 목소리 듣지 못한다니!”
교황의 분노한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내가 너를 어찌 키웠는데!
내 친아들까지 내치며, 너를 내 양녀로 키웠는데!
네가 아니라 클로나였다면 신의 목소리를 들었을 것을.”
클로나라는 이름이 들리자 로제타의 몸이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흔들렸다.
”지금 이 기적 같은 순간에까지.
너는 왜 클로나의 발끝만도 도달하지 못하는 게냐!”
그녀의 폭력적이지 않은 폭력은
바로 지금처럼
누군가와 비교하며 로제타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하여....”
“변명 집어치우거라! 듣고 싶지 않다!!!”
교황의 흥분은 가라앉을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자중하시옵소서. 성하. 화는 몸에 좋지 않습니다.
교황 성하께서 믿음으로 기도하셨으니
신께서 응답해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제임스가 교황의 흥분을 가라앉히고자 아부를 떨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왜 로제타는 신탁을 듣지 못해!”
“어머니. 제가....”
“로제타 성녀께서도 매일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성하.”
제임스가 항변하려는 로제타의 말을 가로채었다.
“열심히 하면 뭐하냔 말이야.
신탁도 듣지 못하고,
신도를 끌어드리지도 못해.
클로나의 성력을 이어 받았으면 뭐해!
성력도 이제껏 성녀들 중에 제일 하찮기나 하고.
모로스를 보거라.
신도들의 믿음을 이끌어내지 않느냐!
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냔 말이야.
사람들에게서 루카신에 대한 믿음을 이끌어내야
평화를 유지된다고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는냐!
내가 너를 볼 때마다 답답해. 답답!
클로나였다면 이런 꼴을 보지 않았을 텐데. 쯧쯧”
“성하. 고정하시옵소서.
로제타 성녀와 비교하기에는 모로스님이나 클로나 성녀님이
워낙 뛰어나셨지 않습니까. 태생이 다른 분들이지요.”
그들의 대화에는 로제타의 심정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로제타는 죄인이 된 마냥 가만히 그 자리에 엎드려 모든 대화를 들어야만 했다.
“클로나가 떠나는 것을 말렸어야 했어.
네가 아니라 모로스를 더 예뻐해야 했어.
내 그날 너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었어.
이리 쓸모 없다니....”
교황의 자조 섞인 문장이 실체화되어 로제타의 위를 짓눌렀다.
“죄송합니다.”
자신을 입양해준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하는 자신이 싫었다.
왜 구해줬냐고.
이렇게 매 순간, 매번, 매일 비교하고 탐탁지 않아 할 것이라면
왜 자신을 구해줬냐고 속으로 수도 없이 되물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교황은 로제타를 향해 사랑한다고 했었다.
자신에게 보여주던
인자한 미소, 칭찬, 손에 꼭 쥐어 준 따뜻한 음식을 잊지 못했다.
그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인정받으면 다시 그가 자신을 향해
‘사랑하는 내 딸’이라고 불러줄 것 같았다.
그렇기에 로제타가 할 수 있는 건 교황에게 사죄를 구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도 친히 내가 너를 위해 신탁이 너에게도 내려왔다고 하겠다.”
“베풀어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로제타는 그제야 허리를 들어 교황에게 웃어보았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교황은 화가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
대신 그녀의 눈에는 광기가 떠올랐다.
저 광기는 로제타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클로나와 똑 닮은 로제타의 얼굴을 보고, 클로나를 향한 광기였다.
“쯧. 얼굴만 클로나를 닮아서는.
썩 나가! 지금은 꼴도 보기 싫으니.”
“네. 어머니.”
로제타는 자신의 침실을 향해 몇 발자국 걷다가
기둥에 잠시 몸을 기대고 숨을 들이켰다.
교황의 침소에 나와서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크게 숨을 고르며 떨리는 몸을 진정하고 있었다.
“또 한 건 저질렀나봐?”
그녀에게 말을 건 사람은 모로스였다.
그는 케렌시아 대륙이 사랑하는 성기사이자, 교황의 친아들이기도 했다.
“아. 오라버니. 밤공기가 좋아서 잠시 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로제타는 불안한 기색을 지우고 사랑스럽게 웃으며 그에게 답했다.
그는 재밌는지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다 봤어. 성하께서 어찌나 목소리가 크시던지.
신전 안에 쩌렁쩌렁 울리던데?”
로제타는 여전히 사랑스럽게 웃고 있었지만
뒤로 숨긴 손은 꽉 주먹 쥐었다.
“아... 들으셨군요. 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제가 못나서 오라버니의 단잠까지 깨웠군요.”
로제타의 눈매가 급속도로 쳐졌다.
“교황 성하께서는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혼내시는 걸 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언제나 그렇듯이 저를 먼저 부르신 거겠죠.
못난 저를 성하께서는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오라버니께서는 걱정하지 않고 주무셔도 돼요.
저를 걱정하시는 마음에 여기까지 오시다니.
너무 감동했답니다.”
또 한 번 표정을 바꾼 로제타는
진심으로 감동했다는 듯이 모로스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래. 교황에게 언제나 일 순위는 로제타였다.
친아들 모로스가 아니라 언제나 자신이었다.
로제타는 이 정도 비꼬아 줬으면
모로스가 얼굴을 구기며 갈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모로스의 잡은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고개를 올렸다.
누가 그를 간지럽히고 있는 것처럼 웃음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아하하. 야. 진짜 웃긴다. 너를 사랑하시는 교황 성하?”
그의 웃음소리가 로제타의 미소를 점점 가져갔다.
“내가 지금 네가 사랑하는 교황 성하에게
무슨 말을 듣고 온 지는 아냐?”
“네?”
“너. 그 교황 성하의 사랑하는 딸 위치도 위태로운 것 같더라.”
“오라버니...그게 무슨 말...”
“바샤 파르케.”
“그분은 서후 제국의 마법사잖아요.”
로제타는 갑자기 마법사의 이름이 왜 나오는지 의아했다.
“걔가 신탁의 주인이래.
우리 사랑스러운 동생님은 성하께 신탁에 대해서 듣지 못했나 보네.”
로제타가 했던 것처럼 모로스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내가 이제 그 지겨운 오라버니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왜?”
로제타의 얼굴에는 사랑스러움 따윈 사라졌다.
사랑스럽고 여유로웠던 얼굴은 의아함으로.
의아한 표정은 분노로 바뀌었다.
“듣자 하니 그 여자를 양녀로 들이실 모양이야.”
로제타의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아닐 것이다.
아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자신은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잠시.
아주 잠시 멈추어 있던 것이다.
조금만 성하께서 기다려주시면 다시 사랑스러운 딸로 돌아갈 텐데.
양녀라니?
“아니에요. 성하께서는 그러실 분이 아니에요!”
로제타가 모로스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한 번 친자식을 내팽개친 사람이
양녀는 왜 버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네가 그렇게나 존경하는 교황 성하는
마물 구더기에 검이나 하나 던져주고 알아서 기어 올라오라고 했던 사람이야.”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교황은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날 버려서는 안 되잖아.
“그럴 리 없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내가 얼마나 예쁨 받으려고 노력했는데. 그깟 신탁 하나에 날 버린다고?”
“그깟 신탁이라니. 바샤 파르케가 메시아라는데.”
메시아.
신의 사자.
세상이 어지러울 때,
멸망의 직전의 순간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온다던 신의 사자. 메시아.
“아직 못 믿겠다는 얼굴이네?
그렇게나 사랑하는 교황 성하에게 여쭤봐.”
모로스는 그 말을 끝으로
로제타의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로제타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샤 파르케가 메시아라고? 왜?
가장 신에게 가까웠다던 클로나도 아니고 왜?
왜? 내가 아니라?
매번 클로나와 비교 당하면서 내가 여기에 왜 버텼는데.
교황의 기준에 맞추려고,
예쁨 받으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내 자리를 빼앗겨야해?
내가 얼마나 발버둥 쳤는데!
로제타는 계속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아닐 것이라고 교황은 자신을 버릴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세뇌 시킬 만큼 되새겼다.
1836년 7월 7일.
그녀의 현실 부정은
바샤 파르케가
클로나의 친딸임을 알게 되었을 때 산산 조각 나버렸다.
바샤가 편지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로제타 성녀와 나탈리에 황녀에게 답장이 왔다.
[당신이 제가 주체하는 건국제에 저의 손님으로 와준다니 기쁘군요.]
길게 늘여진 의미없는 미사구어를 제외한 내용이었다.
편지에서조차 나탈리에의 나르시즘적 면모가 보였다.
바샤는 얼굴을 구기며 편지를 불태웠다.
1836년 8월 5일.
로제타 성녀는 직접 답변을 들고
메르헨스타인 수도 저택으로 찾아왔다.
그녀의 방문에 키르헨이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하였으나
바샤의 친우라는 말을 되새기며 환대 아닌 환대를 하였다.
키르헨은 성녀의 체질을 고려해
성수 분수가 있는 아끼는 온실 정원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바샤는 자신의 방 창가에 걸터앉아
로제타가 온실로 들어서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의 손길을 따라 카로가 갸르릉 소리를 내며
바샤의 품 안에 안겨 있었다.
“냥? 저 인간.
그... 저 그림 속 인간이랑 비슷하게 생겼다냥!”
카로가 앞발로 사진을 가리켰다가
머쓱한 듯 앞발을 그대로 올려 자신의 얼굴을 긁었다.
“비슷하지.”
“냥아아앙????? 주인님. 동생 있었냥?????”
카로가 귀를 쫑긋 세웠다.
바샤가 양귀비 같은 이미지라면,
로제타는 한 떨기의 분홍색 수국 같은 여자였다.
로제타의 외향은
바샤의 어머니인 클로나의 동생 또는 분신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클로나의 색과 닮아 있었다.
연한 분홍빛을 띤 머리,
사랑스러운 딸기색의 눈동자. 동그란 눈과 선한 눈동자. 부드러운 얼굴선.
성녀라는 칭호까지 완벽히 클로나와 비슷했다.
“아니. 쟤는 클로나의 복제품이야.”
로제타는 진짜 클로나의 분신이자 복제품이 맞았다.
한밤중 케렌시아 교황국에 신탁이 내려졌다.
헬라오스 교황은 급하게 로제타를 찾았다.
로제타는 한밤중에 시종에게 끌려
교황의 침소에 내던져지게 되었다.
교황청 밖에 사람들은 로제타를 성녀라 칭송하였으나
교황청 안에서는 꿰다 만 보릿자루 같은 신세였다.
침실에는 교황과
그녀의 측근 제임스 추기경이 로제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 부르셨나요?”
헬라오스 교황은 매우 극도로 흥분을 한 상태였다.
로제타는 쿵쾅거리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이렇게 갑자기 자신을 찾을 때
교황이 매우 흥분한 상태일 때가 가장 두려웠다.
교황은 교황의 위치에 알맞지 않은 성품을 지닌 자였다.
그녀는 로제타가 자신이 정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언제나 로제타에게
폭력적이진 않은 폭력을 가했다.
“로제타. 너는 들었으냐?”
교황의 목소리는 화가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네?”
“쯧쯧.”
교황이 혀를 차대었다.
“로제타 성녀.
성하께서는 신탁을 들으셨는지 여쭤보고 계신 겁니다.”
교황의 측근인 제임스 추기경이 교황을 대신해 말을 이었다.
“아...”
로제타는 신탁은 듣지 못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00년 만에 갑자기 신탁이라니.
“정녕 듣지 못한 게냐?”
그녀의 물음에 로제타는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몸 아래로 떨리는 손을 숨겼다.
“성녀라는 자가. 교황의 딸이! 신의 목소리 듣지 못한다니!”
교황의 분노한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내가 너를 어찌 키웠는데!
내 친아들까지 내치며, 너를 내 양녀로 키웠는데!
네가 아니라 클로나였다면 신의 목소리를 들었을 것을.”
클로나라는 이름이 들리자 로제타의 몸이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흔들렸다.
”지금 이 기적 같은 순간에까지.
너는 왜 클로나의 발끝만도 도달하지 못하는 게냐!”
그녀의 폭력적이지 않은 폭력은
바로 지금처럼
누군가와 비교하며 로제타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하여....”
“변명 집어치우거라! 듣고 싶지 않다!!!”
교황의 흥분은 가라앉을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자중하시옵소서. 성하. 화는 몸에 좋지 않습니다.
교황 성하께서 믿음으로 기도하셨으니
신께서 응답해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제임스가 교황의 흥분을 가라앉히고자 아부를 떨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왜 로제타는 신탁을 듣지 못해!”
“어머니. 제가....”
“로제타 성녀께서도 매일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성하.”
제임스가 항변하려는 로제타의 말을 가로채었다.
“열심히 하면 뭐하냔 말이야.
신탁도 듣지 못하고,
신도를 끌어드리지도 못해.
클로나의 성력을 이어 받았으면 뭐해!
성력도 이제껏 성녀들 중에 제일 하찮기나 하고.
모로스를 보거라.
신도들의 믿음을 이끌어내지 않느냐!
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냔 말이야.
사람들에게서 루카신에 대한 믿음을 이끌어내야
평화를 유지된다고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는냐!
내가 너를 볼 때마다 답답해. 답답!
클로나였다면 이런 꼴을 보지 않았을 텐데. 쯧쯧”
“성하. 고정하시옵소서.
로제타 성녀와 비교하기에는 모로스님이나 클로나 성녀님이
워낙 뛰어나셨지 않습니까. 태생이 다른 분들이지요.”
그들의 대화에는 로제타의 심정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로제타는 죄인이 된 마냥 가만히 그 자리에 엎드려 모든 대화를 들어야만 했다.
“클로나가 떠나는 것을 말렸어야 했어.
네가 아니라 모로스를 더 예뻐해야 했어.
내 그날 너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었어.
이리 쓸모 없다니....”
교황의 자조 섞인 문장이 실체화되어 로제타의 위를 짓눌렀다.
“죄송합니다.”
자신을 입양해준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하는 자신이 싫었다.
왜 구해줬냐고.
이렇게 매 순간, 매번, 매일 비교하고 탐탁지 않아 할 것이라면
왜 자신을 구해줬냐고 속으로 수도 없이 되물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교황은 로제타를 향해 사랑한다고 했었다.
자신에게 보여주던
인자한 미소, 칭찬, 손에 꼭 쥐어 준 따뜻한 음식을 잊지 못했다.
그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인정받으면 다시 그가 자신을 향해
‘사랑하는 내 딸’이라고 불러줄 것 같았다.
그렇기에 로제타가 할 수 있는 건 교황에게 사죄를 구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도 친히 내가 너를 위해 신탁이 너에게도 내려왔다고 하겠다.”
“베풀어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로제타는 그제야 허리를 들어 교황에게 웃어보았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교황은 화가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
대신 그녀의 눈에는 광기가 떠올랐다.
저 광기는 로제타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클로나와 똑 닮은 로제타의 얼굴을 보고, 클로나를 향한 광기였다.
“쯧. 얼굴만 클로나를 닮아서는.
썩 나가! 지금은 꼴도 보기 싫으니.”
“네. 어머니.”
로제타는 자신의 침실을 향해 몇 발자국 걷다가
기둥에 잠시 몸을 기대고 숨을 들이켰다.
교황의 침소에 나와서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크게 숨을 고르며 떨리는 몸을 진정하고 있었다.
“또 한 건 저질렀나봐?”
그녀에게 말을 건 사람은 모로스였다.
그는 케렌시아 대륙이 사랑하는 성기사이자, 교황의 친아들이기도 했다.
“아. 오라버니. 밤공기가 좋아서 잠시 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로제타는 불안한 기색을 지우고 사랑스럽게 웃으며 그에게 답했다.
그는 재밌는지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다 봤어. 성하께서 어찌나 목소리가 크시던지.
신전 안에 쩌렁쩌렁 울리던데?”
로제타는 여전히 사랑스럽게 웃고 있었지만
뒤로 숨긴 손은 꽉 주먹 쥐었다.
“아... 들으셨군요. 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제가 못나서 오라버니의 단잠까지 깨웠군요.”
로제타의 눈매가 급속도로 쳐졌다.
“교황 성하께서는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혼내시는 걸 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언제나 그렇듯이 저를 먼저 부르신 거겠죠.
못난 저를 성하께서는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오라버니께서는 걱정하지 않고 주무셔도 돼요.
저를 걱정하시는 마음에 여기까지 오시다니.
너무 감동했답니다.”
또 한 번 표정을 바꾼 로제타는
진심으로 감동했다는 듯이 모로스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래. 교황에게 언제나 일 순위는 로제타였다.
친아들 모로스가 아니라 언제나 자신이었다.
로제타는 이 정도 비꼬아 줬으면
모로스가 얼굴을 구기며 갈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모로스의 잡은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고개를 올렸다.
누가 그를 간지럽히고 있는 것처럼 웃음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아하하. 야. 진짜 웃긴다. 너를 사랑하시는 교황 성하?”
그의 웃음소리가 로제타의 미소를 점점 가져갔다.
“내가 지금 네가 사랑하는 교황 성하에게
무슨 말을 듣고 온 지는 아냐?”
“네?”
“너. 그 교황 성하의 사랑하는 딸 위치도 위태로운 것 같더라.”
“오라버니...그게 무슨 말...”
“바샤 파르케.”
“그분은 서후 제국의 마법사잖아요.”
로제타는 갑자기 마법사의 이름이 왜 나오는지 의아했다.
“걔가 신탁의 주인이래.
우리 사랑스러운 동생님은 성하께 신탁에 대해서 듣지 못했나 보네.”
로제타가 했던 것처럼 모로스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내가 이제 그 지겨운 오라버니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왜?”
로제타의 얼굴에는 사랑스러움 따윈 사라졌다.
사랑스럽고 여유로웠던 얼굴은 의아함으로.
의아한 표정은 분노로 바뀌었다.
“듣자 하니 그 여자를 양녀로 들이실 모양이야.”
로제타의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아닐 것이다.
아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자신은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잠시.
아주 잠시 멈추어 있던 것이다.
조금만 성하께서 기다려주시면 다시 사랑스러운 딸로 돌아갈 텐데.
양녀라니?
“아니에요. 성하께서는 그러실 분이 아니에요!”
로제타가 모로스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한 번 친자식을 내팽개친 사람이
양녀는 왜 버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네가 그렇게나 존경하는 교황 성하는
마물 구더기에 검이나 하나 던져주고 알아서 기어 올라오라고 했던 사람이야.”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교황은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날 버려서는 안 되잖아.
“그럴 리 없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내가 얼마나 예쁨 받으려고 노력했는데. 그깟 신탁 하나에 날 버린다고?”
“그깟 신탁이라니. 바샤 파르케가 메시아라는데.”
메시아.
신의 사자.
세상이 어지러울 때,
멸망의 직전의 순간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온다던 신의 사자. 메시아.
“아직 못 믿겠다는 얼굴이네?
그렇게나 사랑하는 교황 성하에게 여쭤봐.”
모로스는 그 말을 끝으로
로제타의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로제타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샤 파르케가 메시아라고? 왜?
가장 신에게 가까웠다던 클로나도 아니고 왜?
왜? 내가 아니라?
매번 클로나와 비교 당하면서 내가 여기에 왜 버텼는데.
교황의 기준에 맞추려고,
예쁨 받으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내 자리를 빼앗겨야해?
내가 얼마나 발버둥 쳤는데!
로제타는 계속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아닐 것이라고 교황은 자신을 버릴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세뇌 시킬 만큼 되새겼다.
1836년 7월 7일.
그녀의 현실 부정은
바샤 파르케가
클로나의 친딸임을 알게 되었을 때 산산 조각 나버렸다.
바샤가 편지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로제타 성녀와 나탈리에 황녀에게 답장이 왔다.
[당신이 제가 주체하는 건국제에 저의 손님으로 와준다니 기쁘군요.]
길게 늘여진 의미없는 미사구어를 제외한 내용이었다.
편지에서조차 나탈리에의 나르시즘적 면모가 보였다.
바샤는 얼굴을 구기며 편지를 불태웠다.
1836년 8월 5일.
로제타 성녀는 직접 답변을 들고
메르헨스타인 수도 저택으로 찾아왔다.
그녀의 방문에 키르헨이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하였으나
바샤의 친우라는 말을 되새기며 환대 아닌 환대를 하였다.
키르헨은 성녀의 체질을 고려해
성수 분수가 있는 아끼는 온실 정원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바샤는 자신의 방 창가에 걸터앉아
로제타가 온실로 들어서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의 손길을 따라 카로가 갸르릉 소리를 내며
바샤의 품 안에 안겨 있었다.
“냥? 저 인간.
그... 저 그림 속 인간이랑 비슷하게 생겼다냥!”
카로가 앞발로 사진을 가리켰다가
머쓱한 듯 앞발을 그대로 올려 자신의 얼굴을 긁었다.
“비슷하지.”
“냥아아앙????? 주인님. 동생 있었냥?????”
카로가 귀를 쫑긋 세웠다.
바샤가 양귀비 같은 이미지라면,
로제타는 한 떨기의 분홍색 수국 같은 여자였다.
로제타의 외향은
바샤의 어머니인 클로나의 동생 또는 분신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클로나의 색과 닮아 있었다.
연한 분홍빛을 띤 머리,
사랑스러운 딸기색의 눈동자. 동그란 눈과 선한 눈동자. 부드러운 얼굴선.
성녀라는 칭호까지 완벽히 클로나와 비슷했다.
“아니. 쟤는 클로나의 복제품이야.”
로제타는 진짜 클로나의 분신이자 복제품이 맞았다.
작가의 말
제 부족한 첫 작품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닫기대공님, 집착 말고 날 죽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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