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공지수가 돌아왔다
조회 : 998 추천 : 2 글자수 : 4,591 자 2022-09-29
“옷 벗으세요!”
“네?!”
.
.
드레스실 피팅룸 안_
촤아아악-
커튼이 열리면서 새로운 화이트 셔츠로 갈아입은 석진이 나왔다. 화이트 셔츠만 입었을 뿐인데 넓은 어깨와 상체가 더 눈에 띄었다.
피팅룸 앞에 서 있던 여울이 표정이 밝아졌다.
“다행히 잘 맞으시네요. 마침 신랑 셔츠가 새로 들어오는 날이어서 다행이에요.”
석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소매 단추를 채우고 있었다. 자신과 부딪히고 셔츠까지 망쳐놨으니 석진이 충분히 짜증 날 만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여울은 얼룩진 셔츠를 만지작거리며 석진의 눈치만 살폈다.
“죄송해요. 이 셔츠는 제가 깨끗이 세탁해서 갖다드리겠습니다.”
여울의 사과에도 그의 말투는 한 겨울날 고드름처럼 날카롭기만 했다.
“아까 꽤 세게 부딪힌 거 알아요?”
석진의 싸늘한 말투에 여울은 더 주눅들어 고개를 푹 숙였다.
‘많이 아팠나? 그런데 셔츠까지 망쳐놨으니... 옷도 엄청 비싼 옷일텐데..’
여울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자 석진이 여울 앞에 가까이 다가섰다.
고개 숙인 여울의 시선에 그의 구두 끝이 보이자 어쩔 줄 몰라 손끝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까는 정말 죄송.. 하...”
고개 숙인 여울의 볼에 그의 손 끝이 닿았다.
!!!
흠칫 놀란 여울이 고개를 들어올리자 석진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은 여울의 볼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아프지 않았어요?”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순간 여울의 심장은 바닥을 한번 치고 올라온 기분이었다.
쿵쾅쿵쾅-
“정말 괜찮아요? 많이 아팠을거 같은데...”
그는 부드러운 손길로 여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정작 여울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만 꿈뻑였다. 그러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바라보다 석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는.. 미안했어요. 데려다 주지도 못해서 마음이 쓰였거든요.”
“아.. 괜찮아요.”
어제의 일도 잠시, 석진의 손이 닿은 여울의 볼이 먼저 타들어 갈 거 같았다. 여울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신경 쓰지 마세요.”
돌아서는 여울을 잡으려 할 때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호영 비서실장이었다.
“이사장님, 사무실로 빨리 가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게.. 공지수씨가 오셨답니다.”
티 내진 않았지만 두 사람은 동시에 놀란 듯 했다.
“이만 가볼게요.”
“네.”
석진과 비서실장이 나가고 난 뒤 괜스레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여울은 손에 쥔 그의 셔츠를 세게 움켜쥐었다.
‘공지수가.. 돌아왔다고?’
.
.
석진이 사무실을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있는 공지수가 보였다. 마음을 정리한 듯 보이는 짧아진 단발머리 말고는 얼굴은 전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여전히 당당한 모습 그대로였다. 석진은 자리에 앉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
“네. 연락할까 하다가 얼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왔어요.”
“굳이 얼굴 보러 온 이유는?”
석진은 안부조차 묻지 않은 채 곧바로 용건부터 물었다. 지수 역시 자신을 반기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차가운 석진의 태도에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나한테 용건을 묻는 거 보니까 아직 연락을 못 받았나보네요.”
“연락?”
“집안에서 우리 결혼 다시 얘기 나누고 계세요.”
차분함을 잘 유지하던 석진도 이 얘기에 곧바로 미간이 일그러졌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곧 석진씨한테 연락 갈거예요.”
태연하게 말하는 지수가 이해 되지 않았다. 그 날 자기 발로 나간 당사자였으니까.
“네가 결혼 못 하겠다고 도망친 건데 다시 결혼 하자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비즈니스 결혼인데 안될 건 뭐 있어요?”
아무리 사랑 없는 결혼이라지만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지수의 모습은 기가 막힐 뿐이었다.
“그 날은.. 내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모든게 다.. 며칠 혼자 지내면서 생각 정리도 했고 아버지랑도 충분히 이야기 나누고 내린 결론이에요. 결혼 다시 진행해요, 우리.”
그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잘 유지하는 석진이었지만, 지수의 말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우리 관계가 철저한 비즈니스에 의한 결혼이라지만 난 이렇게 일방적인 행동을 좋아하지 않아. 비즈니스는 그렇게 기분으로 하는 게 아니거든.”
예상은 했지만 단호한 석진의 반응에 지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입안을 살짝 깨물고는 다른 카드를 꺼내보였다.
“JW그룹에서 웨딩 사업 진행하고 있는 건 알고 있죠? 우리의 결혼 후에는 노블레스와 협업해서 세계적으로 넓히려는 거고요. 그런데 이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JW그룹은 단독으로 웨딩 사업을 진행할 거예요. 그럼 노블레스의 지금 위치가 위험해지는건 알고 말하는거죠?”
지수의 협박 아닌 협박에 입꼬리를 올렸다. 석진은 몸을 소파 뒤로 기대고 지수를 쳐다봤다.
“무서워라도 해야 하나? 위험해질지 어떨지는 두고보면 알겠지.”
석진은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지수의 눈빛이 불안해보였다. 살짝 떨리는 입술을 힘주며 말했다.
“조금의 여지도 없어요? 그날은 내가!”
“지수야. 그날의 너에 선택을 존중할게. 그러니까 아버지 말에 휘둘리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아.”
“!”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한 석진의 말에 지수의 동공이 커졌다. 아버지... JW그룹 회장인 공대철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나 뿐인 외동딸일지라도.
아버지라는 한마디가 지수를 떨리게 만들었다.
“아빠 성격 알면.. 다시 생각해줄수 없어요? 더 상황 곤란해지기 전에...”
“무슨 상황이 어떻게 곤란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집안 문제는 알아서 해결해. 결혼식날 상황은 내가 정리했으니까. 지수도 그 정도는 해줘야지?”
지수는 더는 말이 통할거 같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석진을 날카롭게 째려봤다.
“근데! 실수 한번쯤 넘어갈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이게 그렇게 용서 할 수 없는 일인가?”
자신의 잘못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해해주지 못하는 석진이 너무 매정하다고 느껴졌다. 석진이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자 지수는 계속 이어 말했다.
“혹시.. 그새 다른 여자 생겼어요?”
안하무인인 줄 알고 있었지만 지수의 태도에 석진도 헛웃음을 내뱉었다.
“결혼이라는 게 우리 둘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지만 그 날 결혼식에 오신 몇천 명의 하객들에게는 민폐를 끼친거라고. 그 말은 양가 부모님 얼굴에 먹칠했다는 말이야. 지수가 똑똑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설명을 다 해줘야 했나? 그리고 남자관계가 복잡한 네가 나한테 물어볼 말은 아닌거 같은데.”
“무슨 말이에요? 남자라니?”
“그 전에 만났던 남자들 하나도 관심은 없는데 그래도 최소한 웨딩 촬영하는 날 내 직장에서 내 직원과의 키스는 너무 한거 아닌가?”
!!!
너무 놀란 지수는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봐.. 봤어요?”
“내가 본 건 아니지만.. 뭐. 당사자한테 직접 들었으니 확실한거지.”
참았던 말을 강하게 쏟아낸 석진은 바로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석진의 뒷모습을 보며 일그러지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수도 떨리는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
콰앙-!
석진도 화를 누르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운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잠시 뒤 전화벨이 울렸다.
지이이이잉-
.
.
석진의 사무실을 나온 지수는 여전히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날 정우림과의 키스 사건을 알게 됐다면 약점을 잡힌 셈이 됐으니까.
혹시라도 아버지 귀에 들어갈까 조바심이 생겼다.
어젯밤 공지수의 집_
살벌한 중압감이 감도는 아버지의 서재. 짙은 오크색 나무 책상 앞에 앉아있는 지수의 아버지 공대철 회장과 그 앞에 고개 숙이고 있는 지수가 있었다.
공대철 회장은 일그러진 얼굴로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콰아앙-!
“내가 어떻게 만들어낸 계획인데 네가 그걸 망쳐놔? 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거야?”
지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어깨가 살짝 떨려왔다.
“도저히 결혼만은 그렇게 못하겠어요. 결혼만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못난 놈. 그 사랑한다는 놈이 결국 카메라나 들고 다니는 놈이냐? 그렇게 만나는 놈이 시원찮으니까 괜찮은 남자 짝으로 맺어준 거 아니야!”
지수의 떨리던 어깨가 멈추고 발끈하며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없으시잖아요. 단지 집안이 안좋다는 이유로 별로인 사람 취급하는 거잖아요.”
“멍청한 소리 집어치워!! 결혼이 무슨 소꿉장난인지 알아? 석진이한테 사과하고 결혼 다시 진행시켜. 차회장은 내가 설득 시킬거야. 이 결혼 또 한번 망치는 날엔 너만 쫓겨날거라고 생각하지마. 그 놈도 같이 가만두지 않을거니까!!!”
“아..버지...”
어제의 기억이 생생하게 기억나면서 온몸이 떨려왔다. 결혼식날 벗어나려 용기냈지만 결국 모든 지원이 끊기자 자신의 발로 다시 돌아왔다.
아버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낀 지수는 이 결혼을 다시 하려고 한다.
그러다 문득 석진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직접 본건 아니고.. 당사자한테 들어?’
그렇다면 정우림이 자신의 관계를 까발렸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지수는 곧장 우림이 있는 스튜디오실로 향했다.
빠른 걸음으로 정우림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지수. 바닥을 부슬 듯 그녀의 분노가 발걸음에서도 느껴졌다. 넓은 스튜디오를 들어와 이리저리 둘러보며 정우림을 찾았다.
조명이 다 꺼진 조용한 스튜디오 안에 지수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정우림이 보이지 않자 지수는 포효하듯 소리를 질렀다.
“정우림!! 정우림 어딨어!! 당장 나와아아아!!!”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며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을 집어던졌다. 그러나 자신의 목소리만 빈 허공에 울릴 뿐 아무도 있지 않았다. 그 순간 알수 없는 감정들의 휩싸여 눈물이 터져버린 지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으윽... 흑..”
터벅- 터벅-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발걸음은 지수의 가까이에서 멈췄다. 지수는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눈앞에는 그토록 찾아다닌 정우림이 서 있었다.
“여기서 뭐하는 짓이야?”
.
.
정우림은 지수를 데리고 스튜디오 안 사무실로 들어왔다.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네주었고 지수는 티슈로 눈물을 닦아냈다.
“파혼한걸로 아는데 여기 왜 있는거야?”
지수는 파혼이라는 말에 눈을 부릅떴다.
“파혼한 걸 잘 알고 있네?”
“당연한거 아냐? 내가 그 날 사진 작가였는데 모를 리가 있나.”
“내가 파혼한 거 다 너 때문이야!”
그 날의 일을 뻔히 다 알고 있는 정우림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자신 때문이라니?
“네가 차석진한테 우리 사이 다 말했지? 그 날 키스한 것 까지!!! 그걸 굳이 말해야 했어?”
무슨 말인지 알아 챈 우림은 맨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가 뭐하러 우리.. 아니. 후우.. 우리 키스한 날 본 사람은 따로 있어.”
“그게 누군데?”
“.....”
지수의 물음에 대답이 없자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지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날이라면... 혹시.. 송..여울?”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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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실 피팅룸 안_
촤아아악-
커튼이 열리면서 새로운 화이트 셔츠로 갈아입은 석진이 나왔다. 화이트 셔츠만 입었을 뿐인데 넓은 어깨와 상체가 더 눈에 띄었다.
피팅룸 앞에 서 있던 여울이 표정이 밝아졌다.
“다행히 잘 맞으시네요. 마침 신랑 셔츠가 새로 들어오는 날이어서 다행이에요.”
석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소매 단추를 채우고 있었다. 자신과 부딪히고 셔츠까지 망쳐놨으니 석진이 충분히 짜증 날 만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여울은 얼룩진 셔츠를 만지작거리며 석진의 눈치만 살폈다.
“죄송해요. 이 셔츠는 제가 깨끗이 세탁해서 갖다드리겠습니다.”
여울의 사과에도 그의 말투는 한 겨울날 고드름처럼 날카롭기만 했다.
“아까 꽤 세게 부딪힌 거 알아요?”
석진의 싸늘한 말투에 여울은 더 주눅들어 고개를 푹 숙였다.
‘많이 아팠나? 그런데 셔츠까지 망쳐놨으니... 옷도 엄청 비싼 옷일텐데..’
여울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자 석진이 여울 앞에 가까이 다가섰다.
고개 숙인 여울의 시선에 그의 구두 끝이 보이자 어쩔 줄 몰라 손끝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까는 정말 죄송.. 하...”
고개 숙인 여울의 볼에 그의 손 끝이 닿았다.
!!!
흠칫 놀란 여울이 고개를 들어올리자 석진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은 여울의 볼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아프지 않았어요?”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순간 여울의 심장은 바닥을 한번 치고 올라온 기분이었다.
쿵쾅쿵쾅-
“정말 괜찮아요? 많이 아팠을거 같은데...”
그는 부드러운 손길로 여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정작 여울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만 꿈뻑였다. 그러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바라보다 석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는.. 미안했어요. 데려다 주지도 못해서 마음이 쓰였거든요.”
“아.. 괜찮아요.”
어제의 일도 잠시, 석진의 손이 닿은 여울의 볼이 먼저 타들어 갈 거 같았다. 여울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신경 쓰지 마세요.”
돌아서는 여울을 잡으려 할 때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호영 비서실장이었다.
“이사장님, 사무실로 빨리 가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게.. 공지수씨가 오셨답니다.”
티 내진 않았지만 두 사람은 동시에 놀란 듯 했다.
“이만 가볼게요.”
“네.”
석진과 비서실장이 나가고 난 뒤 괜스레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여울은 손에 쥔 그의 셔츠를 세게 움켜쥐었다.
‘공지수가.. 돌아왔다고?’
.
.
석진이 사무실을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있는 공지수가 보였다. 마음을 정리한 듯 보이는 짧아진 단발머리 말고는 얼굴은 전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여전히 당당한 모습 그대로였다. 석진은 자리에 앉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
“네. 연락할까 하다가 얼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왔어요.”
“굳이 얼굴 보러 온 이유는?”
석진은 안부조차 묻지 않은 채 곧바로 용건부터 물었다. 지수 역시 자신을 반기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차가운 석진의 태도에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나한테 용건을 묻는 거 보니까 아직 연락을 못 받았나보네요.”
“연락?”
“집안에서 우리 결혼 다시 얘기 나누고 계세요.”
차분함을 잘 유지하던 석진도 이 얘기에 곧바로 미간이 일그러졌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곧 석진씨한테 연락 갈거예요.”
태연하게 말하는 지수가 이해 되지 않았다. 그 날 자기 발로 나간 당사자였으니까.
“네가 결혼 못 하겠다고 도망친 건데 다시 결혼 하자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비즈니스 결혼인데 안될 건 뭐 있어요?”
아무리 사랑 없는 결혼이라지만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지수의 모습은 기가 막힐 뿐이었다.
“그 날은.. 내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모든게 다.. 며칠 혼자 지내면서 생각 정리도 했고 아버지랑도 충분히 이야기 나누고 내린 결론이에요. 결혼 다시 진행해요, 우리.”
그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잘 유지하는 석진이었지만, 지수의 말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우리 관계가 철저한 비즈니스에 의한 결혼이라지만 난 이렇게 일방적인 행동을 좋아하지 않아. 비즈니스는 그렇게 기분으로 하는 게 아니거든.”
예상은 했지만 단호한 석진의 반응에 지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입안을 살짝 깨물고는 다른 카드를 꺼내보였다.
“JW그룹에서 웨딩 사업 진행하고 있는 건 알고 있죠? 우리의 결혼 후에는 노블레스와 협업해서 세계적으로 넓히려는 거고요. 그런데 이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JW그룹은 단독으로 웨딩 사업을 진행할 거예요. 그럼 노블레스의 지금 위치가 위험해지는건 알고 말하는거죠?”
지수의 협박 아닌 협박에 입꼬리를 올렸다. 석진은 몸을 소파 뒤로 기대고 지수를 쳐다봤다.
“무서워라도 해야 하나? 위험해질지 어떨지는 두고보면 알겠지.”
석진은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지수의 눈빛이 불안해보였다. 살짝 떨리는 입술을 힘주며 말했다.
“조금의 여지도 없어요? 그날은 내가!”
“지수야. 그날의 너에 선택을 존중할게. 그러니까 아버지 말에 휘둘리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아.”
“!”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한 석진의 말에 지수의 동공이 커졌다. 아버지... JW그룹 회장인 공대철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나 뿐인 외동딸일지라도.
아버지라는 한마디가 지수를 떨리게 만들었다.
“아빠 성격 알면.. 다시 생각해줄수 없어요? 더 상황 곤란해지기 전에...”
“무슨 상황이 어떻게 곤란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집안 문제는 알아서 해결해. 결혼식날 상황은 내가 정리했으니까. 지수도 그 정도는 해줘야지?”
지수는 더는 말이 통할거 같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석진을 날카롭게 째려봤다.
“근데! 실수 한번쯤 넘어갈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이게 그렇게 용서 할 수 없는 일인가?”
자신의 잘못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해해주지 못하는 석진이 너무 매정하다고 느껴졌다. 석진이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자 지수는 계속 이어 말했다.
“혹시.. 그새 다른 여자 생겼어요?”
안하무인인 줄 알고 있었지만 지수의 태도에 석진도 헛웃음을 내뱉었다.
“결혼이라는 게 우리 둘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지만 그 날 결혼식에 오신 몇천 명의 하객들에게는 민폐를 끼친거라고. 그 말은 양가 부모님 얼굴에 먹칠했다는 말이야. 지수가 똑똑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설명을 다 해줘야 했나? 그리고 남자관계가 복잡한 네가 나한테 물어볼 말은 아닌거 같은데.”
“무슨 말이에요? 남자라니?”
“그 전에 만났던 남자들 하나도 관심은 없는데 그래도 최소한 웨딩 촬영하는 날 내 직장에서 내 직원과의 키스는 너무 한거 아닌가?”
!!!
너무 놀란 지수는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봐.. 봤어요?”
“내가 본 건 아니지만.. 뭐. 당사자한테 직접 들었으니 확실한거지.”
참았던 말을 강하게 쏟아낸 석진은 바로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석진의 뒷모습을 보며 일그러지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수도 떨리는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
콰앙-!
석진도 화를 누르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운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잠시 뒤 전화벨이 울렸다.
지이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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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의 사무실을 나온 지수는 여전히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날 정우림과의 키스 사건을 알게 됐다면 약점을 잡힌 셈이 됐으니까.
혹시라도 아버지 귀에 들어갈까 조바심이 생겼다.
어젯밤 공지수의 집_
살벌한 중압감이 감도는 아버지의 서재. 짙은 오크색 나무 책상 앞에 앉아있는 지수의 아버지 공대철 회장과 그 앞에 고개 숙이고 있는 지수가 있었다.
공대철 회장은 일그러진 얼굴로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콰아앙-!
“내가 어떻게 만들어낸 계획인데 네가 그걸 망쳐놔? 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거야?”
지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어깨가 살짝 떨려왔다.
“도저히 결혼만은 그렇게 못하겠어요. 결혼만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못난 놈. 그 사랑한다는 놈이 결국 카메라나 들고 다니는 놈이냐? 그렇게 만나는 놈이 시원찮으니까 괜찮은 남자 짝으로 맺어준 거 아니야!”
지수의 떨리던 어깨가 멈추고 발끈하며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없으시잖아요. 단지 집안이 안좋다는 이유로 별로인 사람 취급하는 거잖아요.”
“멍청한 소리 집어치워!! 결혼이 무슨 소꿉장난인지 알아? 석진이한테 사과하고 결혼 다시 진행시켜. 차회장은 내가 설득 시킬거야. 이 결혼 또 한번 망치는 날엔 너만 쫓겨날거라고 생각하지마. 그 놈도 같이 가만두지 않을거니까!!!”
“아..버지...”
어제의 기억이 생생하게 기억나면서 온몸이 떨려왔다. 결혼식날 벗어나려 용기냈지만 결국 모든 지원이 끊기자 자신의 발로 다시 돌아왔다.
아버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낀 지수는 이 결혼을 다시 하려고 한다.
그러다 문득 석진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직접 본건 아니고.. 당사자한테 들어?’
그렇다면 정우림이 자신의 관계를 까발렸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지수는 곧장 우림이 있는 스튜디오실로 향했다.
빠른 걸음으로 정우림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지수. 바닥을 부슬 듯 그녀의 분노가 발걸음에서도 느껴졌다. 넓은 스튜디오를 들어와 이리저리 둘러보며 정우림을 찾았다.
조명이 다 꺼진 조용한 스튜디오 안에 지수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정우림이 보이지 않자 지수는 포효하듯 소리를 질렀다.
“정우림!! 정우림 어딨어!! 당장 나와아아아!!!”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며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을 집어던졌다. 그러나 자신의 목소리만 빈 허공에 울릴 뿐 아무도 있지 않았다. 그 순간 알수 없는 감정들의 휩싸여 눈물이 터져버린 지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으윽... 흑..”
터벅- 터벅-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발걸음은 지수의 가까이에서 멈췄다. 지수는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눈앞에는 그토록 찾아다닌 정우림이 서 있었다.
“여기서 뭐하는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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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림은 지수를 데리고 스튜디오 안 사무실로 들어왔다.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네주었고 지수는 티슈로 눈물을 닦아냈다.
“파혼한걸로 아는데 여기 왜 있는거야?”
지수는 파혼이라는 말에 눈을 부릅떴다.
“파혼한 걸 잘 알고 있네?”
“당연한거 아냐? 내가 그 날 사진 작가였는데 모를 리가 있나.”
“내가 파혼한 거 다 너 때문이야!”
그 날의 일을 뻔히 다 알고 있는 정우림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자신 때문이라니?
“네가 차석진한테 우리 사이 다 말했지? 그 날 키스한 것 까지!!! 그걸 굳이 말해야 했어?”
무슨 말인지 알아 챈 우림은 맨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가 뭐하러 우리.. 아니. 후우.. 우리 키스한 날 본 사람은 따로 있어.”
“그게 누군데?”
“.....”
지수의 물음에 대답이 없자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지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날이라면... 혹시.. 송..여울?”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결혼 말고 다른 걸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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