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나랑.. 뭘 해요? <수정>
조회 : 1,321 추천 : 2 글자수 : 6,394 자 2022-09-25
“우리라면 가능성 있을 거 같네요.”
우리라는 말에 여울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우리..라뇨?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거예요?”
여울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그런 그녀와는 다르게 차석진의 표정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송여울씨. 나랑 결혼 할래요?”
여울은 너무 놀라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잘못 들은 거라고 하기엔 너무 또렷하게 들렸다. 하도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 설마 날 만나러 온 이유가 이거였어요?”
차석진은 가벼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삼일 전에 파혼한 사람이 결혼을 하자고 하다니. 제 정신이야? 이런 마음이 들었다가 혹시 파혼의 충격이 너무 커서 미친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혼란스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뒤집고 있을 때 차석진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결혼 합시다.”
'!!!'
.
.
차석진의 사무실_
차석진의 비서인 이호영이 서류를 하나 건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송여울에 관한 자료입니다. 노블레스의 입사한지 5년 차가 됐으며 입사 후 1년이 지나면서부터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4년 전부터 웨딩 트렌드에서 유행하는 헤어, 메이크업은 물론 장식이며 드레스 까지 많은 유행을 만든 인물입니다. 서비스도 뛰어나 고객들에게 평판도 아주 좋습니다.”
차석진은 송여울의 이력서를 쭉 훑으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호영 비서는 잠시 머뭇 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부모님이 4년전에 같은 날 돌아가셨습니다. 사고로...”
"아.."
석진이 안타까움에 낮은 탄성을 뱉었다.
"작은 주택에 1층에는 할머님과 할아버님이 사시고, 2층에 송여울 실장이 지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
차석진은 궁금했는지 그제야 시선이 이호영 실장에게 옮겼다.
“연애 경험이 없다고 합니다.”
“뭐? 설마.. 연애 경험이 한번도 없다는 건가?”
“네. 모태 솔로인 것 같습니다.”
.
.
“아니거든!!!”
여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사무실 밖에까지 울렸다. 여울은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강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나 연애 많이 해봤거든! 나연씨도 인정했었잖아! 나보고 연애 전문가라고!”
실내 촬영용 부케를 만들기 위해 테이블 위에는 조화들이 쌓여 있었고 그 사이에 여울과 나연은 서로 티격태격 중이었다. 나연은 느긋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죠. 사실을 몰랐을 때는. 생각해보면 송실장님 전남친 이야기 한번도 한적 없거든요?”
“하아! 전남친이야 넘치고 넘쳤지! 그리고 내 연애 솔루션이 그냥 나온거라고 생각하는거야?”
“글쎄요. 요즘들어 실장님의 연애 경험이야기가 조금 의심이 드는건 어쩔 수 없네요. 제가 근무한지 2년이 넘었는데 남친 한번도 없었잖아요.”
“그거야... 근래 내 맘에 쏙 드는 사람이 안나타나서 그렇지. 남자는 많이 만나봤어.”
강한 어필에도 나연은 시큰둥한 얼굴로 반응하지 않았다.
“회사 사람들도 의심하고 있다고요. 솔직히 말해서 송 실장님 근무 하는 5년 동안 회사 앞에 남자가 찾아 온 적이 한번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합리적 의심을 하는거죠.”
하긴 함께 근무하는 동안 남자친구는커녕 썸도 없었으니 눈치 챌만 했다. 그래도 여울은 끝까지 아닌 척 하고 싶었다. 모태 솔로는 너무 창피했다.
‘실전 경험이 없긴 하지.. 내가.’
그러면서 문득 어제 기억이 떠올랐다.
.
.
차석진의 프로포즈.
“나랑 결혼 할래요?”
너무 헛소리 같아서 결국엔 화를 냈지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미친놈이 틀림없어!!!’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서 나랑.. 뭘 해? 연애도 아니고 결혼? 정신 빠진 이야기라고 떨쳐 버리고 싶었기만 쉽지 않았다.
자꾸만 눈앞에서 따뜻한 미소를 짓던 차석진의 얼굴이 떠올라 몇 번이고 머리를 흔들었다.
여울은 연애관이 확실했다. 자신의 현실 로맨스를 실현 시켜 줄 남자를 기다리는 중이다. 여울이 모솔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남자와의 만남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썸을 타던 중 늘 환상이 와장창 깨는 경우가 허다했을 뿐.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스킨쉽 진도를 빠르게 진행하는 늑대 같은 남자.
“우리 집에 강아지 보러 갈래?”
데이트할 땐 젠틀한 척하면서 운전만 하면 깡패로 변하는 남자.
“내 앞을 껴들어? 이런 삼대가 빌어먹을 새끼들! 삐리리리릭 삐익-!!!”
입만 열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남자 그리고 가장 최악은 몇 번 만나고 바로 애인인 척 집착하는 남자 등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로망인 로맨스도 없이 결혼한다는 건 여울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바라던 연애를 다짐하며 여울은 주먹을 꼭 쥐었다.
"난 꼭 내 사랑을 찾을거야!"
그때,
지이이이잉-
핸드폰 진동음에 여울은 정신을 차렸다.
“여보세요.”
[송여울씨, 오늘 저녁에 시간 있습니까?]
“누구시죠?”
다짜고짜 자신의 스케줄을 묻는 낯선 목소리에 그제야 휴대폰 발신자를 확인했다.
-차석진 이사장님-
“허업!!!”
여울은 놀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차석진입니다. 제 연락처 저장 해놨을 줄 알았는데.]
“아! 제가 지금 정신없이 전화를 받는 바람에 발신자 확인을 못했...”
[저녁에 시간 괜찮으면 잠깐 만납시다. 주소 보내줄테니 저녁 7시까지 이리로 와요.]
“그게.. 전 오늘 야근이 있어서...”
[스케줄 없는 거 확인 했습니다. 이따 봐요.]
“네? 아니.. 저기!”
......
이미 끊어진 전화기에 대고 말해 봤자 소용없었다. 차석진의 대한 의심이 사라지지 않은 여울은 점점 더 확신 하고 있는 듯 했다.
‘진짜 똘아이가 확실해!’
.
.
퇴근 시간이 다가올수록 여울은 점점 불안해져갔다. 모른척 하기도 그냥 무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앞으로 영영 안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직장 상사였기 때문이다.
“아아악. 어쩌지?”
자신의 머리를 휘집고 있는 여울은 테이블에 머리를 푹 박았다. 그때 커피를 들고 들어온 나연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실장님, 무슨 일 있어요? 왜 그래요?”
테이블에 커피를 내려놓고 여울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넋이 나가보이는 여울의 얼굴을 본 나연은 깜짝 놀랐다.
“어머!”
“놀라지마. 아무 일도 아니야.”
여울은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차마 말할 수 없어 말로라도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나 여울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아니, 이 얼굴을 보고 어떻게 아무일도 아닌 걸 믿으래요?”
“나연씨, 미안. 지금 말고 나중에.. 나중에..”
평소와 너무 다른 여울의 모습에 걱정스러웠지만 더는 물어 볼 수 없었다.
.
.
스카이 라운지 레스토랑_
눈이 부시게 빛나는 조명에 잔잔한 클래식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레스토랑 안.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따라 들어가니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차석진이 보였다.
회사가 아닌 곳에서 차석진을 만난다는게 조금은 어색했다.
“어서와요. 여울씨.”
“네.”
여울씨라는 낯선 호칭에 여울은 차마 석진과 눈을 맞추지 못했다. 자리에 앉았지만,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랐다.
여울의 불편한 모습이 보였는지 석진이 먼저 말을 건넸다.
“불편해하지 말아요. 같이 편하게 밥 먹고 싶어서 부른 거니까.”
편하게 라니. 여울은 식사하기도 전에 벌써 체한 기분이었다.
“식사 전에 이야기를 좀 했으면 좋겠어요. 이 상태로 밥 먹기는 힘들거 같거든요.”
여울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석진은 알고 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따뜻한 차를 시켜두고 석진은 먼저 입을 뗐다.
“궁금한 거 물어봐요.”
여울은 비장한 표정으로 석진을 바라봤다.
“그냥 제 생각을 말씀드릴게요. 일단 전 사랑없는 결혼은 할 수 없어요. 제가 꿈꾸는 사랑이라는게 있기 때문에 그걸 먼저 실현해야하거든요. 결혼은 나중 일이구요.”
작은 입으로 또박또박 말하는 여울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석진은 간신히 입꼬리를 잡으며 말했다.
“사랑이라.. 아직도 사랑을 믿어요?”
“그럼요! 평생 함께 할 사랑은 분명히 존재 한다구요.”
너무나 당당하고 확신에 찬 여울의 대답에 석진은 이번만큼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후.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군요?”
“비꼬는 건가요?”
“아뇨. 아이 같이 순수한 면이 있네요. 재밌어요.”
“사랑은 재미가 아니에요. 진심이고 정직한거예요. 누군가는 사랑의 유효기간을 논하면서 영원한 사랑은 절대 없다고 부정하겠지만 전 알아요. 제가 봐왔으니까.”
그저 로맨스를 꿈꾸는 사춘기 소녀 같은 여울이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자 석진은 미소가 사라지고 진지해졌다.
“봐왔다니? 어떻게?”
진지하게 물어보는 석진의 태도에 여울은 턱끝이 살짝 올라갔다.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를 보면서 컸거든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지금도 서로만 챙기는 모습보면 20대 커플들 못지 않다구요. 우리 엄마, 아빠는 지금도 닭살스러울 정도로 사랑하시구요.”
“아.. 대대로 내려오는 로맨스 유전자를 장착하셨으니 본인도 그런 사람을 만날 것이다 라는 희망적인 케이스군요.”
“그렇죠.”
여울의 대답은 확고했다. 여울의 대답에 의문이 들었지만, 대대로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라면 이보다 더한 연구 결과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석진의 표정은 더 환하게 밝아졌다.
“난 더 마음에 드네요. 나에게는 없는 유전자를 가진 당신이라는게.”
‘!!!’
여울은 결혼을 거절하려는 대답이었는데 더 마음에 든다는 석진의 말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 두근거림은 질척이는 남자라는 싫은 느낌 때문일까? 아니면 긍정의 설레임일까?
제 멋대로 쿵쾅이는 심장 때문에 여울은 더 혼란스러웠다.
여울 앞에 앉아 있는 차석진은 여지껏 볼 수 없던 환한 미소로 앉아있다. 첫인상부터 어제까지 늘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이었는데.
“난 그런 따뜻함은 없어요. 그대신 당신의 마음을 움직일 제안을 할게요.”
“제안..?”
“송여울 실장에 대해 알아보니 회사에 기여한 업적이 꽤나 많더군요. 그래서 빠르게 승진할 수 있던거겠지만. 여울씨의 많은 아이디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게 해줄게요. 더 높은 자리에서.”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비즈니스였다. 여울은 기대감도 없었지만 실망스러운 기분이었다.
“결혼을 하면 승진기회가 생긴다는 말인가요?”
“단순히 승진 기회가 아니라 노블레스를 운영할 수도 있죠. 난 노블레스를 좀 더 확장해보고 싶은 생각이에요. 우리나라 결혼식의 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거든요.”
여울은 낮게 탄식했다.
“사업 파트너를 원하시는군요. 예나 지금이나.”
여울의 눈빛을 보니 그녀가 원한 마음에 드는 대답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많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 후에 경력 단절이 되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던데. 난 그걸 해결해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큰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요. 그리고 여울씨는 그런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고요.”
여울은 답답한 듯 천천히 다시 설명했다.
“그런 좋은 뜻이라면 다른 여성분을 찾으시면 되겠네요. 전 경력 단절보다 사랑없는 결혼이 더 끔찍한 사람이거든요. 그렇다면 굳이 제가 아니어도 되는 거잖아요?”
눈에 힘을 주고 한치에 물러섬이 없는 여울의 당당함은 차석진에게 신선했다.
“아! 그 얘길 안했군요. 왜 송여울 이여야 하는지. 그건... 나의 치부를 잘 알고 있잖아요.”
“내가.. 무슨? 혹시.. 파혼 말씀하시는건가요?”
조심스럽게 묻는 여울을 보며 석진은 슬픈 눈으로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눈이 동그레진 여울은 주변을 살피며 테이블 가까이 몸을 당겨 소곤거리듯 조용히 말했다.
“요즘 그런 일은 흠이 아니에요. 그런 이유라면 용기를 가지셔도 돼요.”
“그런데 월요일 아침부터 나에 대한 파혼 이야기로 회사가 시끄럽지 않던가요? 그래도 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역시... 흠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여울씨 뿐이군요.”
그 말에 아침부터 엘리베이터 안에서 파혼 이야기로 수군대던 여직원들이 떠올랐다. 여울은 아무 대답 못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그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해서 이사장님의 결혼 상대가 되어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돼요.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계약 결혼 제안을... 하.”
완강하게 거절하는 여울의 말에 석진은 고개를 떨구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 모습에 석진이 포기한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울은 석진이 단념하기를 간절히 바랬다.
‘이 정도면 알아들은 건가? 아.. 제발..’
석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촉촉한 눈으로 여울을 바라봤다. 그리고 강한 어조로 힘주어 말했다.
“나랑 해봅시다.”
“네? 뭐.. 뭘요?”
밑도 끝도 없는 석진의 말에 많은 것들을 상상하게 했다. 여울은 정확한 단어를 듣기 위해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석진의 입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자 그의 입이 천천히 움직였다.
“여울씨가 원하는 그 사랑. 나랑 하자고요.”
“!!!”
우리라는 말에 여울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우리..라뇨?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거예요?”
여울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그런 그녀와는 다르게 차석진의 표정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송여울씨. 나랑 결혼 할래요?”
여울은 너무 놀라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잘못 들은 거라고 하기엔 너무 또렷하게 들렸다. 하도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 설마 날 만나러 온 이유가 이거였어요?”
차석진은 가벼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삼일 전에 파혼한 사람이 결혼을 하자고 하다니. 제 정신이야? 이런 마음이 들었다가 혹시 파혼의 충격이 너무 커서 미친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혼란스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뒤집고 있을 때 차석진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결혼 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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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석진의 사무실_
차석진의 비서인 이호영이 서류를 하나 건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송여울에 관한 자료입니다. 노블레스의 입사한지 5년 차가 됐으며 입사 후 1년이 지나면서부터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4년 전부터 웨딩 트렌드에서 유행하는 헤어, 메이크업은 물론 장식이며 드레스 까지 많은 유행을 만든 인물입니다. 서비스도 뛰어나 고객들에게 평판도 아주 좋습니다.”
차석진은 송여울의 이력서를 쭉 훑으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호영 비서는 잠시 머뭇 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부모님이 4년전에 같은 날 돌아가셨습니다. 사고로...”
"아.."
석진이 안타까움에 낮은 탄성을 뱉었다.
"작은 주택에 1층에는 할머님과 할아버님이 사시고, 2층에 송여울 실장이 지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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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석진은 궁금했는지 그제야 시선이 이호영 실장에게 옮겼다.
“연애 경험이 없다고 합니다.”
“뭐? 설마.. 연애 경험이 한번도 없다는 건가?”
“네. 모태 솔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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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거든!!!”
여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사무실 밖에까지 울렸다. 여울은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강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나 연애 많이 해봤거든! 나연씨도 인정했었잖아! 나보고 연애 전문가라고!”
실내 촬영용 부케를 만들기 위해 테이블 위에는 조화들이 쌓여 있었고 그 사이에 여울과 나연은 서로 티격태격 중이었다. 나연은 느긋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죠. 사실을 몰랐을 때는. 생각해보면 송실장님 전남친 이야기 한번도 한적 없거든요?”
“하아! 전남친이야 넘치고 넘쳤지! 그리고 내 연애 솔루션이 그냥 나온거라고 생각하는거야?”
“글쎄요. 요즘들어 실장님의 연애 경험이야기가 조금 의심이 드는건 어쩔 수 없네요. 제가 근무한지 2년이 넘었는데 남친 한번도 없었잖아요.”
“그거야... 근래 내 맘에 쏙 드는 사람이 안나타나서 그렇지. 남자는 많이 만나봤어.”
강한 어필에도 나연은 시큰둥한 얼굴로 반응하지 않았다.
“회사 사람들도 의심하고 있다고요. 솔직히 말해서 송 실장님 근무 하는 5년 동안 회사 앞에 남자가 찾아 온 적이 한번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합리적 의심을 하는거죠.”
하긴 함께 근무하는 동안 남자친구는커녕 썸도 없었으니 눈치 챌만 했다. 그래도 여울은 끝까지 아닌 척 하고 싶었다. 모태 솔로는 너무 창피했다.
‘실전 경험이 없긴 하지.. 내가.’
그러면서 문득 어제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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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석진의 프로포즈.
“나랑 결혼 할래요?”
너무 헛소리 같아서 결국엔 화를 냈지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미친놈이 틀림없어!!!’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서 나랑.. 뭘 해? 연애도 아니고 결혼? 정신 빠진 이야기라고 떨쳐 버리고 싶었기만 쉽지 않았다.
자꾸만 눈앞에서 따뜻한 미소를 짓던 차석진의 얼굴이 떠올라 몇 번이고 머리를 흔들었다.
여울은 연애관이 확실했다. 자신의 현실 로맨스를 실현 시켜 줄 남자를 기다리는 중이다. 여울이 모솔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남자와의 만남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썸을 타던 중 늘 환상이 와장창 깨는 경우가 허다했을 뿐.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스킨쉽 진도를 빠르게 진행하는 늑대 같은 남자.
“우리 집에 강아지 보러 갈래?”
데이트할 땐 젠틀한 척하면서 운전만 하면 깡패로 변하는 남자.
“내 앞을 껴들어? 이런 삼대가 빌어먹을 새끼들! 삐리리리릭 삐익-!!!”
입만 열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남자 그리고 가장 최악은 몇 번 만나고 바로 애인인 척 집착하는 남자 등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로망인 로맨스도 없이 결혼한다는 건 여울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바라던 연애를 다짐하며 여울은 주먹을 꼭 쥐었다.
"난 꼭 내 사랑을 찾을거야!"
그때,
지이이이잉-
핸드폰 진동음에 여울은 정신을 차렸다.
“여보세요.”
[송여울씨, 오늘 저녁에 시간 있습니까?]
“누구시죠?”
다짜고짜 자신의 스케줄을 묻는 낯선 목소리에 그제야 휴대폰 발신자를 확인했다.
-차석진 이사장님-
“허업!!!”
여울은 놀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차석진입니다. 제 연락처 저장 해놨을 줄 알았는데.]
“아! 제가 지금 정신없이 전화를 받는 바람에 발신자 확인을 못했...”
[저녁에 시간 괜찮으면 잠깐 만납시다. 주소 보내줄테니 저녁 7시까지 이리로 와요.]
“그게.. 전 오늘 야근이 있어서...”
[스케줄 없는 거 확인 했습니다. 이따 봐요.]
“네? 아니.. 저기!”
......
이미 끊어진 전화기에 대고 말해 봤자 소용없었다. 차석진의 대한 의심이 사라지지 않은 여울은 점점 더 확신 하고 있는 듯 했다.
‘진짜 똘아이가 확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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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이 다가올수록 여울은 점점 불안해져갔다. 모른척 하기도 그냥 무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앞으로 영영 안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직장 상사였기 때문이다.
“아아악. 어쩌지?”
자신의 머리를 휘집고 있는 여울은 테이블에 머리를 푹 박았다. 그때 커피를 들고 들어온 나연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실장님, 무슨 일 있어요? 왜 그래요?”
테이블에 커피를 내려놓고 여울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넋이 나가보이는 여울의 얼굴을 본 나연은 깜짝 놀랐다.
“어머!”
“놀라지마. 아무 일도 아니야.”
여울은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차마 말할 수 없어 말로라도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나 여울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아니, 이 얼굴을 보고 어떻게 아무일도 아닌 걸 믿으래요?”
“나연씨, 미안. 지금 말고 나중에.. 나중에..”
평소와 너무 다른 여울의 모습에 걱정스러웠지만 더는 물어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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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라운지 레스토랑_
눈이 부시게 빛나는 조명에 잔잔한 클래식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레스토랑 안.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따라 들어가니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차석진이 보였다.
회사가 아닌 곳에서 차석진을 만난다는게 조금은 어색했다.
“어서와요. 여울씨.”
“네.”
여울씨라는 낯선 호칭에 여울은 차마 석진과 눈을 맞추지 못했다. 자리에 앉았지만,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랐다.
여울의 불편한 모습이 보였는지 석진이 먼저 말을 건넸다.
“불편해하지 말아요. 같이 편하게 밥 먹고 싶어서 부른 거니까.”
편하게 라니. 여울은 식사하기도 전에 벌써 체한 기분이었다.
“식사 전에 이야기를 좀 했으면 좋겠어요. 이 상태로 밥 먹기는 힘들거 같거든요.”
여울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석진은 알고 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따뜻한 차를 시켜두고 석진은 먼저 입을 뗐다.
“궁금한 거 물어봐요.”
여울은 비장한 표정으로 석진을 바라봤다.
“그냥 제 생각을 말씀드릴게요. 일단 전 사랑없는 결혼은 할 수 없어요. 제가 꿈꾸는 사랑이라는게 있기 때문에 그걸 먼저 실현해야하거든요. 결혼은 나중 일이구요.”
작은 입으로 또박또박 말하는 여울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석진은 간신히 입꼬리를 잡으며 말했다.
“사랑이라.. 아직도 사랑을 믿어요?”
“그럼요! 평생 함께 할 사랑은 분명히 존재 한다구요.”
너무나 당당하고 확신에 찬 여울의 대답에 석진은 이번만큼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후.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군요?”
“비꼬는 건가요?”
“아뇨. 아이 같이 순수한 면이 있네요. 재밌어요.”
“사랑은 재미가 아니에요. 진심이고 정직한거예요. 누군가는 사랑의 유효기간을 논하면서 영원한 사랑은 절대 없다고 부정하겠지만 전 알아요. 제가 봐왔으니까.”
그저 로맨스를 꿈꾸는 사춘기 소녀 같은 여울이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자 석진은 미소가 사라지고 진지해졌다.
“봐왔다니? 어떻게?”
진지하게 물어보는 석진의 태도에 여울은 턱끝이 살짝 올라갔다.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를 보면서 컸거든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지금도 서로만 챙기는 모습보면 20대 커플들 못지 않다구요. 우리 엄마, 아빠는 지금도 닭살스러울 정도로 사랑하시구요.”
“아.. 대대로 내려오는 로맨스 유전자를 장착하셨으니 본인도 그런 사람을 만날 것이다 라는 희망적인 케이스군요.”
“그렇죠.”
여울의 대답은 확고했다. 여울의 대답에 의문이 들었지만, 대대로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라면 이보다 더한 연구 결과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석진의 표정은 더 환하게 밝아졌다.
“난 더 마음에 드네요. 나에게는 없는 유전자를 가진 당신이라는게.”
‘!!!’
여울은 결혼을 거절하려는 대답이었는데 더 마음에 든다는 석진의 말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 두근거림은 질척이는 남자라는 싫은 느낌 때문일까? 아니면 긍정의 설레임일까?
제 멋대로 쿵쾅이는 심장 때문에 여울은 더 혼란스러웠다.
여울 앞에 앉아 있는 차석진은 여지껏 볼 수 없던 환한 미소로 앉아있다. 첫인상부터 어제까지 늘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이었는데.
“난 그런 따뜻함은 없어요. 그대신 당신의 마음을 움직일 제안을 할게요.”
“제안..?”
“송여울 실장에 대해 알아보니 회사에 기여한 업적이 꽤나 많더군요. 그래서 빠르게 승진할 수 있던거겠지만. 여울씨의 많은 아이디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게 해줄게요. 더 높은 자리에서.”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비즈니스였다. 여울은 기대감도 없었지만 실망스러운 기분이었다.
“결혼을 하면 승진기회가 생긴다는 말인가요?”
“단순히 승진 기회가 아니라 노블레스를 운영할 수도 있죠. 난 노블레스를 좀 더 확장해보고 싶은 생각이에요. 우리나라 결혼식의 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거든요.”
여울은 낮게 탄식했다.
“사업 파트너를 원하시는군요. 예나 지금이나.”
여울의 눈빛을 보니 그녀가 원한 마음에 드는 대답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많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 후에 경력 단절이 되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던데. 난 그걸 해결해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큰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요. 그리고 여울씨는 그런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고요.”
여울은 답답한 듯 천천히 다시 설명했다.
“그런 좋은 뜻이라면 다른 여성분을 찾으시면 되겠네요. 전 경력 단절보다 사랑없는 결혼이 더 끔찍한 사람이거든요. 그렇다면 굳이 제가 아니어도 되는 거잖아요?”
눈에 힘을 주고 한치에 물러섬이 없는 여울의 당당함은 차석진에게 신선했다.
“아! 그 얘길 안했군요. 왜 송여울 이여야 하는지. 그건... 나의 치부를 잘 알고 있잖아요.”
“내가.. 무슨? 혹시.. 파혼 말씀하시는건가요?”
조심스럽게 묻는 여울을 보며 석진은 슬픈 눈으로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눈이 동그레진 여울은 주변을 살피며 테이블 가까이 몸을 당겨 소곤거리듯 조용히 말했다.
“요즘 그런 일은 흠이 아니에요. 그런 이유라면 용기를 가지셔도 돼요.”
“그런데 월요일 아침부터 나에 대한 파혼 이야기로 회사가 시끄럽지 않던가요? 그래도 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역시... 흠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여울씨 뿐이군요.”
그 말에 아침부터 엘리베이터 안에서 파혼 이야기로 수군대던 여직원들이 떠올랐다. 여울은 아무 대답 못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그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해서 이사장님의 결혼 상대가 되어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돼요.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계약 결혼 제안을... 하.”
완강하게 거절하는 여울의 말에 석진은 고개를 떨구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 모습에 석진이 포기한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울은 석진이 단념하기를 간절히 바랬다.
‘이 정도면 알아들은 건가? 아.. 제발..’
석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촉촉한 눈으로 여울을 바라봤다. 그리고 강한 어조로 힘주어 말했다.
“나랑 해봅시다.”
“네? 뭐.. 뭘요?”
밑도 끝도 없는 석진의 말에 많은 것들을 상상하게 했다. 여울은 정확한 단어를 듣기 위해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석진의 입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자 그의 입이 천천히 움직였다.
“여울씨가 원하는 그 사랑. 나랑 하자고요.”
“!!!”
작가의 말
- 수정부분 : 여울의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추가로 넣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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