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당신들이 아는 그사람.. 똘아이라고
조회 : 1,370 추천 : 2 글자수 : 4,677 자 2022-09-26
“여울씨가 원하는 그 사랑. 나랑 하자고요. 그러면 되는 거 아닙니까?”
포기한 게 아니었다니.. 석진과는 더 이상 말이 통할 거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여울은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말했다.
“사랑은 다짐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힘든 순간에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다짐이면 모를까..”
여울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석진이 곧바로 여울에 뒤를 따라 나갔다.
그사이 여울은 엘리베이터를 탔고 문이 닫히려는 순간, 석진이 손을 뻗었다.
터억-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고 석진이 옆으로 다가서자 여울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데려다 줄게요.”
“아뇨. 괜찮습니다.”
티잉-
1층 도착음이 울리고 내리려는 여울의 팔을 그가 잡았다. 여울은 고개를 돌려 석진을 흘기듯 쳐다봤다.
“이렇게 가면 우리 둘 다 편하진 않을거예요.”
아련하게 여울을 바라보는 석진의 눈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오늘 이야기를 깨끗이 끝내는 게 좋겠어.
자동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여울의 시선은 팔을 향했다. 석진은 그제야 천천히 잡은 손을 놓았다.
“미안합니다.”
여울은 대답하지 않은 채 닫힌 문을 향해 서 있었고, 석진의 시선은 그런 여울의 뒷모습을 향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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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의 집으로 오는 내내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짧지 않은 시간을 달려 도착한 여울의 집 앞.
낮은 담장이 있는 이층 주택이었다. 석진은 시동을 끄고 고개를 돌려 여울을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이다.
“궁금한게 있는데.. 지금 화난 이유가 결혼을 하자는 말 때문입니까 아니면 사랑입니까?”
여울은 앞만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둘 다 아니에요.”
“그럼?”
“사랑을 믿지 않는 이사장님에게 화가 나는 거예요.”
대답을 듣지 않은 채 차에서 내리려는 여울의 팔을 잡았다. 미간을 찌푸리며 석진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그게 그렇게 화가 날 일이라면 내가 사랑을 믿을 수 있게 당신이 만들어보던가.”
“!!!”
.
.
집으로 들어와 생각이 많아진 여울은 옷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푹 쓰러졌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차석진의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내가 사랑을 믿을 수 있게 만들어보던가...’
아니.. 내가 왜! 라는 생각과 동시에 여울은 괜스레 달아오른 얼굴을 이불에 파묻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석진 역시 머릿속엔 송여울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처음으로 여울의 차가운 눈빛이 계속 신경 쓰였다. 그리곤 혼자 조용히 읊조렸다.
‘참.. 신경 쓰이는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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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갈색의 넓직한 책상 위에 차석진 이사장 명패가 놓여져있다. 아침 일찍 출근한 차석진은 집중해서 서류를 확인 중이었다.
똑똑-
“네.”
이호영 비서가 다가와 두꺼운 자료를 내밀며 말했다.
“말씀하신 각 시즌 별 웨딩 트랜드 자료입니다. 각 분야별로 세분화 시켰습니다.”
“응.”
서류를 받는 차석진의 얼굴이 꽤나 진지했다. 많은 양의 자료를 하나씩 훑어보기 시작했다. 시선은 자료에 둔 채로 짧게 말했다.
“나가봐.”
이호영 비서는 인사를 했지만 발걸음이 쉽게 떼지지 않았다. 차석진은 일이 주어지면 무섭게 파고드는 스타일이라 주변사람들이 걱정 할 정도였다.
이번에도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게 돼서 이호영 비서는 걱정부터 앞섰다.
“저.. 이사장님. 이번 웨딩 박람회 때문에 체력 소모가 꽤 크실거 같습니다. 한의원 박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기력보강을 위한 약을 좀 준비해둘까요?”
“됐어.”
“아니면 하루 30분이라도 운동 하실 수 있게 pt선생님 연락해 둘까요?”
탁-
걱정하는 이호영 비서의 말을 끊으려는 듯 펜을 책상에 세게 내려놓았다. 그제야 이호영 비서의 얼굴을 쳐다봤다.
“흠.. 걱정해주는 거 알겠는데 새로운 일 시작 할때마다 이러는 거 그만하지. 내 건강은 내가 알아서 챙길테니까.”
이호영 비서는 걱정스런 마음에 또 한번 입을 뗐지만 이내 말을 아꼈다. 이 이야기보다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이사장님.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슨?”
“이번 웨딩 박람회에 JW그룹이 제이웨딩으로 참여 한다던데요.”
“알고있어.”
공지수의 결혼 목적이 JW그룹의 웨딩 분야 확장 사업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차석진은 덤덤하게 대답하고 다시 서류를 집어들었다.
“그럼 공지수씨가 다시 돌아오신것도 알고 계십니까?”
이호영 비서의 물음에 잠시 멈칫 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이제 상관 없는 일이야. 알고 싶지도 않고.”
차석진의 대답은 깔끔했다. 마음의 정리가 끝난 것을 알아 챈 이호영 비서도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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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홀의 회의실_
내년 초에 열리는 웨딩 박람회 때문에 각 팀별 관리자들이 모였다. 드레스와 메이크업에 송여울, 사진작가 정우림, 웨딩홀 고상운이 자리 했고 그 외에 식음료, 마케팅등 담당자들이 앉아있었다. 웨딩홀 총괄 매니저를 맡고 있는 고상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 오늘 자리는 웨딩 박람회 준비를 앞두고 각 분야 계획 발표를 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회의 내용은 대표님 및 임원진들에게 보고 되는 내용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어느 분부터 발표 하시겠습니까?”
매년 열리는 웨딩 박람회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행사로 새로운 디자인의 드레스, 소품, 헤어, 메이크업 등 트랜드를 제시하는 박람회이다.
하지만 다른 해와 달리 이번엔 특별히 웨딩 패션쇼가 진행 된다. 많은 업체가 참여하는 만큼 이 한번의 무대에서 한 해 예약건 비중이 달라진다.
“안녕하세요? 헤어, 메이크업에 송여울 실장입니다. 이번 트랜드 컨셉은...”
회사에서의 기대하는 바가 큰 만큼 직원들의 열정도 높아졌다. 그리고 회의실 작은 창 사이로 차석진이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지금 발표하는 송여울을 향해 있었다.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번졌다.
헉헉...
나연이 자신의 턱 끝 높이까지 쌓아 올린 자료를 들고 회의실로 바쁘게 걸어가고 있다.
회의실 문앞에 있는 차석진을 보며 의아했지만 지금 들고 있는 자료들이 무거워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나연의 인사에 석진은 고개를 돌렸다. 인사를 하려다 무겁게 들고 있는 자료를 보며 놀라 물었다.
“아, 네. 무슨 자료가 이렇게 많습니까?”
“오늘 각 부서에서 다 모인 회의라서 자료가 좀 많네요. 헉.. 죄송한데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힘들어하는 나연을 보며 재빨리 문을 열어줬다. 나연이 들어가자 문을 닫으며 고개를 들었는데 앞에서 발표하던 여울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 깜짝 놀라며 눈만 커질 뿐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이사장님이 여기.. 왜?’
석진은 머쩍은 표정으로 문을 닫았고 여울도 놀란 마음을 진정한 뒤 다시 발표를 이어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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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웨딩홀은 시즌이기도 하면서 곧 다가올 웨딩 박람회 준비 때문에 분주했다. 출근길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직원들의 이야기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너도 받았어? 이번에 이사장님이 웨딩 박람회 때문에 직원들 고생한다고 커피 쿠폰 쏘셨더라? 완전 센스있어. 우리 이사장님.”
“그러게. 잘 생겼는데 센스도 있고. 차갑게 생겼는데 은근 츤데레네. 파혼한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 정도는 다 안고 사귈 수 있는데. 크큭.”
츤데레. 훗.
이사장 칭찬 일색에 여울은 코웃음을 쳤다. 아직 실체를 모르니 저렇게 떠들어대는 것이라 생각했다.
‘당신들이 아는 그 이사장. 사실 똘아이라고.’
여울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여직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야! 헛소리하지마! 우린 이사장님을 가질 순 없지만 대표님이 내 건 특전을 욕심 내보는 건 어때?”
“특전이라니?”
“이번 웨딩 박람회 아이디어 공모전에 채택되면 풀패키지 해외 여행권 준데.”
“와! 대박. 근데 너 좋은 아이디어 있어?”
“아니.”
여직원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아이디어 채택되면 여행권을 준다고?’
띠잉-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울리는 동시에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여울은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러다 회사 입구 쪽에서부터 키 큰 두 남자가 걸어오는 걸 보게됐다.
‘어..?’
차석진과 이호영 비서 였다. 웨딩홀과 사무동은 출입문이 달라서 차석진이 마주치는 게 이상한 상황이긴 했다. 여울의 눈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 차석진은 점점 가까이 여울을 향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송여울 팀장님.”
깍듯한 인사에 여울은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정신을 차리려 했다. 놀란건 여울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출근하던 직원들도 아침부터 이사장의 등장에 모두들 긴장하는 듯 보였다. 여울은 뒤늦게 인사를 건넸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이사장님이 왜 웨딩홀로 출근을...?”
“아! 송여울 팀장 보려고 왔습니다.”
여울은 깜짝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사람들도 많은데 자신을 보러 왔다는 말에 혼자 얼굴이 뜨거워졌다.
‘뭐야.. 이제 대놓고 대시 하겠다는건가?’
괜스레 흘러내려 오지도 않은 옆머리를 귀 뒤로 자꾸 쓸어넘겼다. 차석진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이번 웨딩박람회 진행 관련해서 몇 가지 이야기 좀 하려고요.”
“네?”
아! 웨딩박람회!
달아오른 얼굴은 찬물을 끼얹은 듯 금세 가라 앉았고 차석진과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
.
나연이 가져 온 커피를 앞에 두고 차석진, 이호영 비서, 이나연, 여울은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여울은 차석진의 얼굴을 마주하는 게 불편했지만, 차석진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녀를 마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만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아 살짝 자존심 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침부터 찾아온 이유는 웨딩 박람회 드레스 쇼를 준비 때문입니다. 우리 노블레스에서 늘 최고급 드레스를 수입해 왔었어요. 이번엔 웨딩 디자이너를 한 명 영입했습니다.”
“아.. 그래요?”
“그래서 송여울 실장이 그 웨딩 디자이너와 함께 협업을 했으면 합니다.”
“네? 제가 무슨...”
여울과 함께 덩달아 나연의 눈도 튀어나올만큼 커졌다.
“드레스 제작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드레스의 맞는 소품을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는 겁니다. 매 시즌 송여울 팀장이 만든 소품들이 유행을 주도 했으니까요. 이번에도 새로운 소품 구상안이 있겠죠?”
“네. 새로 나온 웨딩 원단이 나와서 구상해놓은 게 있긴 한데요...”
여울의 말이 끝나자 차석진과 이호영 비서는 궁금한 눈빛으로 여울을 바라봤다.
“그게.. 드레스 실에 자료들이 있어서..”
그러자 나연이 일어서며 말했다.
“제가 가져올게요. 드레스 실 안쪽에 산더미 같은 자료 다예요?”
“응. 생각보다 많으니까..”
여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이호영 비서가 일어나 나연을 향해 말했다.
“저랑 같이 가시죠.”
나연은 이호영의 얼굴을 보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좋아요.”
이호영 비서와 나연이 사무실을 나가고 난 뒤 둘만 남은 상황. 어색한 공기가 두 사람을 짓누르는 듯 했다.
여울은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주변만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차석진의 시선은 한 곳을 향해 있었다.
“아직도 나한테 화나 있어요?”
“네?”
피하고 싶은 그 날의 기억을 차석진이 기어코 꺼내놨다. 여울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손끝만 매만졌다.
“무슨.. 화를 내나요. 제가.. 그날은.”
“그 날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은데요. 오늘 시간 어때요?”
‘!!!’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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