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연애 상담 해줄래요?
조회 : 956 추천 : 2 글자수 : 4,969 자 2022-10-03
신부 대기실 안_
어느 순간 보다 눈부시게 빛나야 할 신부가 오만상을 쓰고 있다. 그녀를 위해 비추는 조명은 비극의 여주인공의 무대로 만들어버렸다. 그 옆에 죄인처럼 신랑이 서 있었다.
“진짜 잃어버린거 아니지? 근데 송 실장한테 반지를 왜 맡긴건데?”
“아.. 그게..”
그때 신부 대기실로 석진과 여울이 함께 들어왔다.
신부는 여울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소리쳤다.
“실장님! 나 엿 먹이는거예요? 빨리 반지 내놔요!!!”
온 몸에 핏대를 세우고 난리치는 신부를 향해 석진이 말했다.
“송여울 실장님이 가져간거 아닙니다. 진정하세요.”
“우리 신랑이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거예요? 아님 직원이라고 감싸는 거예요?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구요!!!”
석진은 대답 대신 조용히 신부대기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아까 만났던 여자가 들어왔다. 고개를 숙이고 한껏 움츠린 채 들어온 여자를 향해 신부가 물었다.
“누구시죠?”
여자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주머니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내 내밀었다.
“어? 내 반지 케이스? 도대체 누구신데 반지를 갖고 계시는거죠?”
여자는 머뭇거리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테이블 위에 있었어요.”
신부는 뭔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신랑을 향해 말했다.
“자기 뭐해? 반지 받지 않고?”
신랑은 경직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여자에게 반지를 건네받았다. 떨리는 손으로 반지를 건네준 여자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몸을 돌렸다.
여자가 문고리를 잡고 나가려는 순간 신부가 소리쳤다.
“잠깐만요!”
모두가 숨죽여 있는 순간.
“제 손님은 아닌 거 같으신데 신랑 쪽 손님이세요?”
신부의 물음에 여자는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이 덜덜 떨려왔다. 여자가 대답하지 않자 신부는 신랑을 향해 다시 물었다.
“자기 아는 분이셔?”
“어..?”
신랑은 불안한 몸짓으로 격하게 두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니야!! 난 모르는 사람.. 이야.”
“그게 말이 돼? 우리 결혼식에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라는거야? 뭐야?”
신부 대기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여자에게 쏠리자 여자는 고개를 돌려 신랑을 바라봤다. 여자는 신랑을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눈물이 한가득 맺혀있었다.
신부는 그 모습을 보자 잔뜩 찌푸린 얼굴로 윗입술은 점점 더 위로 올라갔다. 무거운 드레스를 양손에 쥐고 휘청거리며 몇 걸음 걷다 멈췄다.
퍼억-!!!
신부는 부캐를 있는 힘껏 신랑에게 내던졌다.
“쓰레기.. 새끼...”
신랑에게 욕설을 퍼붓고 여자를 강렬하게 노려본 후 신부대기실을 나갔다. 신랑은 내던져진 부캐를 들고 신부에 뒤를 쫓아나갔다.
남겨진 세 사람.
여자가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여울은 조용히 다가가 여자의 어깨를 토닥였다.
“조상이 도왔다는 말 있죠? 저런 남자 때문에 울지말아요. 눈물도 아까운 놈이니까.”
여자는 흐느끼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 남자 때문에 우는 거 아니에요. 진심이라고 믿었던 내 사랑이 가여워서 우는 거예요. 내 모든 걸 내어줄 만큼 사랑한 사람에게 당한 배신이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거예요. 죽고 싶은 마음을..”
“죽긴 왜 죽어요? 보란 듯이 더 잘 살아야지.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고 하잖아요. 못된 인간 거르는 법 배웠으니 이제 좋은 사람 만날 거예요.”
여자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다시 읊조렸다.
“그 전에 자신부터 챙겨요. 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같은 실수 반복할 수 있으니까요.”
불안해 보이는 여자의 어깨를 꽉 잡으며 말했다.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저 남자 만났을 때가 피폐해질 만큼 가장 힘들었을 때예요. 힘든 내 마음 기댈 곳이 저 남자뿐이라고 믿었는데.”
과거를 회상하는 여자는 다시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여울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누구나 힘든 순간은 있어요. 그래도 이겨내는 힘을 길러야 해요. 날 위해서.”
꽉 잡은 여울의 손을 바라보며 그녀는 가까스로 울음을 삼켰다.
“고마워요...”
.
.
오늘의 신랑 신부에 결혼은 끝이 날 줄 알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식은 진행됐다. 신부는 신랑에게 화가 났지만, 신부는 오늘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예식이 진행되는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여울의 마음은 씁쓸했다. 이 모습을 함께 보고 있는 석진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신부가 뛰쳐나가고 결혼식은 무산될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의외네요.”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상할 것도 없죠.”
석진은 아무런 동요도 없는 듯 했다. 이런 상황을 덤덤하게 말하는 걸 보니.
“냉정하시네요. 하지만 전 이런 결말 좋아요. 끼리끼리 만나 잘 결혼했습니다라는 결말. 남들에게 피해 안 주고 주변인들에게 얼마나 해피엔딩이에요?”
석진은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종알대는 여울을 지긋이 바라봤다.
“아까 보니까 진짜 연애 전문 상담가 같던데요?”
“직접 보니까 믿어지시는 모양이죠? 훗.”
어깨가 우쭐해진 여울은 턱을 한껏 치켜올렸다.
“그럼 나도 연애 상담 해줄래요?”
‘?’
.
.
그렇게 조용히 예식이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예식이 끝나고 난 뒤 상담실에서 불안한 기운이 감돌더니 더 큰 소란이 벌어졌다.
“이 정도는 식장에서 책임지고 막았어야지!! 아무나 막 들여보내면 어쩌자는 거야? 고객 초대장은 괜히 만든 줄 알아? 나 가만히 안 있어. 소송 들어갈 테니까 그런 줄 알아!!”
신랑이었다. 이 소란의 책임은 노블레스 웨딩에 있다면서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신랑과 달리 냉담한 눈빛으로 석진이 말했다.
“책임? 어느 결혼식장에서 전 여친.. 아니 양다리 걸치고 있던 현 여친을 무슨 수로 가려 받아? 신랑 뒷조사라도 미리 했어야했나?”
“친구라고 봐줬더니.. 말을 너무 막하네. 우리 집 태성 그룹이야. 막말로 네가 공지수랑 결혼 했다면 JW 그룹 등에 업고 콧대 세우면 할 말 없지만 지금 넌... 바짝 엎드려야 할 판 아니냐?”
석진은 가벼운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비스듬히 돌렸다.
“봐주지 마. 너 같은 친구 필요 없으니까. 싹싹 빌 사람은 두 여자에게 상처 준 네가 해야 할 일이고.”
“뭐? 이 새끼가 진짜... 친구랍시고 이 코딱지 만한 웨딩홀에서 해줬으면 감사하다고 해야지. 직원도 건방지기 짝이없고.”
“직원?”
“메이크업 걔.”
대충 흘려듣던 신랑의 말에 석진이 반응했다.
“송여울 실장 말하는 거야?”
“여울인지 여우인지 어쨌든. 반지 보여주니까 아주 헤벌쭉 해가지고.”
석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반응 좀 보려고 했던 건데 아주 노골적이더라. 재미없게.”
신랑의 말이 끝나자 석진은 표정이 싸늘하게 변해있었다.
“너 송실장한테도 추근거렸어?”
“풉. 야, 나도 보는 눈이 있지. 내가 미쳤다고 그런 애한테 추근? 푸하하하.”
경박하게 웃고 있는 신랑을 향해 석진은 무거운 톤으로 한마디 했다.
“우리 회사 직원이야. 말 조심해.”
“오호~ 왜? 네가 눈도장 찍어 놓은 애냐? 하긴 뭐. 그 정도면 잠깐 놀아줄 만은 하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석진은 신랑의 멱살을 잡았다.
“창피한 줄 알아야지. 우리 직원에게 도둑 누명 씌우는 것도 모자라서 추근대? 뭐, 잠깐 놀아줘?”
“으으윽... 이거 놔.. 못 놔?”
멱살을 잡은 손이 점점 조여오자 신랑은 답답한 듯 고통스러워했다. 상담실 안이 소란스러워지자 직원들이 들어왔다. 그러자 석진은 신랑의 멱살을 잡아 밀쳤다.
“끄윽.. 차석진.. 너 미쳤어? 그 여자 뭘 안다고 네가 나한테 이래? 난 네 친구야!!!”
“네 말 믿지도 않지만 송 실장이 노골적으로 나왔으면 재미 없는 게 아니라 넌 좋아했겠지. 부끄러운 줄 알아. 사랑하는 사람 제대로 책임지지 못할 거면서 입만 나불대기는. 소송은 꼭 하고 우리 법무팀으로 내용증명 보내.”
재벌가 아들의 기를 꺾어놓은 석진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
.
여울의 퇴근길. 오늘 하루도 어지러울 정도로 다이나믹한 하루인 건 틀림없다. 머리가 지끈지끈한지 관자놀이를 누르며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덧 선선해진 가을 바람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내 연애 상담도 해줄 수 있어요?]
석진의 말이 떠올랐다.
‘뭐야.. 다른 여자 생긴건가? 아니면.. 공지수와?’
잠깐이나마 청혼 받은 남자의 연애 상담이라니 솔직히 썩 기분 좋진 않았다.
원래 거절 하려고 했었고 다행이다 싶다가도 오늘 신부 대기실 환한 조명에 빛나던 석진의 모습이 선명하게 생각났다.
‘정신차려. 송여울! 넌 그저 공지수의 빈자리에 잠시 일어난 헤프닝이니까.’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휴우..”
잠시 뒤 여울의 앞에서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빠앙-
깜짝 놀란 여울은 눈을 떴다. 여울의 눈 앞에는 석진이 차 창문을 내리고 쳐다보고 있었다.
“어? 이사장님.”
“데려다 줄게요. 타요.”
여울은 양손을 빠르게 흔들며 사양했다.
“괜찮습니다. 버스 한번타면 금방이에요.”
“많이 피곤했을 텐데 어서 타요.”
때마침 버스가 석진의 뒤에 섰고 여울은 난처한 표정으로 석진의 차를 탔다.
“오늘 힘들었죠? 미안해요.”
“이사장님이 왜 미안하세요. 괜찮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에 여울은 의아했다.
“도둑으로 몰린 것도 모자라.. 흠. 웨딩일 많이 힘들죠?”
석진은 신랑이 추근댄 사실을 알았지만 말은 꺼내지 않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다른 말로 돌렸다.
“웨딩일이 서비스직이다 보니 사람 상대하는게 좀.. 그래도 이제 괜찮아졌어요. 히.”
여울은 별 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러다 뭔가 생각 났는지 손을 마주치며 석진을 향해 물었다.
“이사장님, 궁금한 거 있어요. 그 여자가 반지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어떻게 알았어요?”
“아.. 잘 차려 입은 하객들 사이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한껏 움츠려진 어깨, 그리고 마치 자신을 보호 하려는 듯 코트를 목까지 다 잠근 모습이 눈에 띄더라고요.”
“오~ 눈썰미 좋으신데요? 겉모습만 보고 알아채다니.”
여울은 운전하는 석진을 슬쩍 쳐다보고는 칭찬했다.
“아뇨. 사실 그 여자의 표정을 보고 알았던 거 같아요.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울음을 꾹 참고 있는 얼굴이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사람 같지 않았거든요.”
진지하게 대답하는 석진을 바라보며 의외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의외네요. 이사장님은 감정을 잘 읽는 스타일이 아닌 거 같았는데.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그런 거 해본 적 없습니다.”
“아...”
여울의 호기심은 칼답하는 석진으로 인해 더 이상 이어 나가지 못했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차 안. 여울은 오늘 일을 회상하듯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5년을 일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신랑 신부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 같아요.”
“신랑 신부 비위를 맞추는 게 쉽지 않죠?”
“그래도 평생 한 번 특별한 결혼식을 위해 결정해야 할 것만 백 가지가 넘을 거니까. 얼마나 예민해질지 이해는 되죠.”
“나랑 결혼하면 그런 고민은 없을 겁니다.”
석진의 틈새 어필이었다. 여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죠. 그 고민을 신부는 안 하겠지만 직원들이 다 떠안게 되죠. 그래서 이사장님 결혼 때도 얼마나 힘들... 헙!”
순간 여울은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반쯤 나간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생각 없이 떠들다 자신도 놀랐다. 커다란 눈을 천천히 굴려 석진의 표정을 살폈다.
“괜찮아요. 편하게 말해도 돼요. 근데 그때 많이 힘들었군요?”
“아..아뇨. 죄송합니다.”
여울은 고개를 돌려 자기 입을 때렸다. 석진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
어느덧 여울의 집 앞에 도착했다. 말실수로 인해 여울은 오는 내내 가시방석이었다.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요. 푹 쉬어요.”
“네.. 이사장님 아까 제 말은 못 들은 거로 해주세요. 힘들었다기보다는 음.. 그냥...”
여울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미안함에 손끝을 잡아 뜯고 있었다. 불편했을 여울을 보며 가벼운 미소로 말했다.
“훗. 오히려 고마워요. 여러 힘든 일을 겪으면서 노블레스에서 잘 견뎌줘서.. 기특하게.”
‘?’
어느 순간 보다 눈부시게 빛나야 할 신부가 오만상을 쓰고 있다. 그녀를 위해 비추는 조명은 비극의 여주인공의 무대로 만들어버렸다. 그 옆에 죄인처럼 신랑이 서 있었다.
“진짜 잃어버린거 아니지? 근데 송 실장한테 반지를 왜 맡긴건데?”
“아.. 그게..”
그때 신부 대기실로 석진과 여울이 함께 들어왔다.
신부는 여울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소리쳤다.
“실장님! 나 엿 먹이는거예요? 빨리 반지 내놔요!!!”
온 몸에 핏대를 세우고 난리치는 신부를 향해 석진이 말했다.
“송여울 실장님이 가져간거 아닙니다. 진정하세요.”
“우리 신랑이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거예요? 아님 직원이라고 감싸는 거예요?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구요!!!”
석진은 대답 대신 조용히 신부대기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아까 만났던 여자가 들어왔다. 고개를 숙이고 한껏 움츠린 채 들어온 여자를 향해 신부가 물었다.
“누구시죠?”
여자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주머니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내 내밀었다.
“어? 내 반지 케이스? 도대체 누구신데 반지를 갖고 계시는거죠?”
여자는 머뭇거리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테이블 위에 있었어요.”
신부는 뭔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신랑을 향해 말했다.
“자기 뭐해? 반지 받지 않고?”
신랑은 경직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여자에게 반지를 건네받았다. 떨리는 손으로 반지를 건네준 여자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몸을 돌렸다.
여자가 문고리를 잡고 나가려는 순간 신부가 소리쳤다.
“잠깐만요!”
모두가 숨죽여 있는 순간.
“제 손님은 아닌 거 같으신데 신랑 쪽 손님이세요?”
신부의 물음에 여자는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이 덜덜 떨려왔다. 여자가 대답하지 않자 신부는 신랑을 향해 다시 물었다.
“자기 아는 분이셔?”
“어..?”
신랑은 불안한 몸짓으로 격하게 두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니야!! 난 모르는 사람.. 이야.”
“그게 말이 돼? 우리 결혼식에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라는거야? 뭐야?”
신부 대기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여자에게 쏠리자 여자는 고개를 돌려 신랑을 바라봤다. 여자는 신랑을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눈물이 한가득 맺혀있었다.
신부는 그 모습을 보자 잔뜩 찌푸린 얼굴로 윗입술은 점점 더 위로 올라갔다. 무거운 드레스를 양손에 쥐고 휘청거리며 몇 걸음 걷다 멈췄다.
퍼억-!!!
신부는 부캐를 있는 힘껏 신랑에게 내던졌다.
“쓰레기.. 새끼...”
신랑에게 욕설을 퍼붓고 여자를 강렬하게 노려본 후 신부대기실을 나갔다. 신랑은 내던져진 부캐를 들고 신부에 뒤를 쫓아나갔다.
남겨진 세 사람.
여자가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여울은 조용히 다가가 여자의 어깨를 토닥였다.
“조상이 도왔다는 말 있죠? 저런 남자 때문에 울지말아요. 눈물도 아까운 놈이니까.”
여자는 흐느끼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 남자 때문에 우는 거 아니에요. 진심이라고 믿었던 내 사랑이 가여워서 우는 거예요. 내 모든 걸 내어줄 만큼 사랑한 사람에게 당한 배신이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거예요. 죽고 싶은 마음을..”
“죽긴 왜 죽어요? 보란 듯이 더 잘 살아야지.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고 하잖아요. 못된 인간 거르는 법 배웠으니 이제 좋은 사람 만날 거예요.”
여자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다시 읊조렸다.
“그 전에 자신부터 챙겨요. 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같은 실수 반복할 수 있으니까요.”
불안해 보이는 여자의 어깨를 꽉 잡으며 말했다.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저 남자 만났을 때가 피폐해질 만큼 가장 힘들었을 때예요. 힘든 내 마음 기댈 곳이 저 남자뿐이라고 믿었는데.”
과거를 회상하는 여자는 다시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여울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누구나 힘든 순간은 있어요. 그래도 이겨내는 힘을 길러야 해요. 날 위해서.”
꽉 잡은 여울의 손을 바라보며 그녀는 가까스로 울음을 삼켰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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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신랑 신부에 결혼은 끝이 날 줄 알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식은 진행됐다. 신부는 신랑에게 화가 났지만, 신부는 오늘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예식이 진행되는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여울의 마음은 씁쓸했다. 이 모습을 함께 보고 있는 석진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신부가 뛰쳐나가고 결혼식은 무산될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의외네요.”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상할 것도 없죠.”
석진은 아무런 동요도 없는 듯 했다. 이런 상황을 덤덤하게 말하는 걸 보니.
“냉정하시네요. 하지만 전 이런 결말 좋아요. 끼리끼리 만나 잘 결혼했습니다라는 결말. 남들에게 피해 안 주고 주변인들에게 얼마나 해피엔딩이에요?”
석진은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종알대는 여울을 지긋이 바라봤다.
“아까 보니까 진짜 연애 전문 상담가 같던데요?”
“직접 보니까 믿어지시는 모양이죠? 훗.”
어깨가 우쭐해진 여울은 턱을 한껏 치켜올렸다.
“그럼 나도 연애 상담 해줄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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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조용히 예식이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예식이 끝나고 난 뒤 상담실에서 불안한 기운이 감돌더니 더 큰 소란이 벌어졌다.
“이 정도는 식장에서 책임지고 막았어야지!! 아무나 막 들여보내면 어쩌자는 거야? 고객 초대장은 괜히 만든 줄 알아? 나 가만히 안 있어. 소송 들어갈 테니까 그런 줄 알아!!”
신랑이었다. 이 소란의 책임은 노블레스 웨딩에 있다면서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신랑과 달리 냉담한 눈빛으로 석진이 말했다.
“책임? 어느 결혼식장에서 전 여친.. 아니 양다리 걸치고 있던 현 여친을 무슨 수로 가려 받아? 신랑 뒷조사라도 미리 했어야했나?”
“친구라고 봐줬더니.. 말을 너무 막하네. 우리 집 태성 그룹이야. 막말로 네가 공지수랑 결혼 했다면 JW 그룹 등에 업고 콧대 세우면 할 말 없지만 지금 넌... 바짝 엎드려야 할 판 아니냐?”
석진은 가벼운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비스듬히 돌렸다.
“봐주지 마. 너 같은 친구 필요 없으니까. 싹싹 빌 사람은 두 여자에게 상처 준 네가 해야 할 일이고.”
“뭐? 이 새끼가 진짜... 친구랍시고 이 코딱지 만한 웨딩홀에서 해줬으면 감사하다고 해야지. 직원도 건방지기 짝이없고.”
“직원?”
“메이크업 걔.”
대충 흘려듣던 신랑의 말에 석진이 반응했다.
“송여울 실장 말하는 거야?”
“여울인지 여우인지 어쨌든. 반지 보여주니까 아주 헤벌쭉 해가지고.”
석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반응 좀 보려고 했던 건데 아주 노골적이더라. 재미없게.”
신랑의 말이 끝나자 석진은 표정이 싸늘하게 변해있었다.
“너 송실장한테도 추근거렸어?”
“풉. 야, 나도 보는 눈이 있지. 내가 미쳤다고 그런 애한테 추근? 푸하하하.”
경박하게 웃고 있는 신랑을 향해 석진은 무거운 톤으로 한마디 했다.
“우리 회사 직원이야. 말 조심해.”
“오호~ 왜? 네가 눈도장 찍어 놓은 애냐? 하긴 뭐. 그 정도면 잠깐 놀아줄 만은 하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석진은 신랑의 멱살을 잡았다.
“창피한 줄 알아야지. 우리 직원에게 도둑 누명 씌우는 것도 모자라서 추근대? 뭐, 잠깐 놀아줘?”
“으으윽... 이거 놔.. 못 놔?”
멱살을 잡은 손이 점점 조여오자 신랑은 답답한 듯 고통스러워했다. 상담실 안이 소란스러워지자 직원들이 들어왔다. 그러자 석진은 신랑의 멱살을 잡아 밀쳤다.
“끄윽.. 차석진.. 너 미쳤어? 그 여자 뭘 안다고 네가 나한테 이래? 난 네 친구야!!!”
“네 말 믿지도 않지만 송 실장이 노골적으로 나왔으면 재미 없는 게 아니라 넌 좋아했겠지. 부끄러운 줄 알아. 사랑하는 사람 제대로 책임지지 못할 거면서 입만 나불대기는. 소송은 꼭 하고 우리 법무팀으로 내용증명 보내.”
재벌가 아들의 기를 꺾어놓은 석진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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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의 퇴근길. 오늘 하루도 어지러울 정도로 다이나믹한 하루인 건 틀림없다. 머리가 지끈지끈한지 관자놀이를 누르며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덧 선선해진 가을 바람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내 연애 상담도 해줄 수 있어요?]
석진의 말이 떠올랐다.
‘뭐야.. 다른 여자 생긴건가? 아니면.. 공지수와?’
잠깐이나마 청혼 받은 남자의 연애 상담이라니 솔직히 썩 기분 좋진 않았다.
원래 거절 하려고 했었고 다행이다 싶다가도 오늘 신부 대기실 환한 조명에 빛나던 석진의 모습이 선명하게 생각났다.
‘정신차려. 송여울! 넌 그저 공지수의 빈자리에 잠시 일어난 헤프닝이니까.’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휴우..”
잠시 뒤 여울의 앞에서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빠앙-
깜짝 놀란 여울은 눈을 떴다. 여울의 눈 앞에는 석진이 차 창문을 내리고 쳐다보고 있었다.
“어? 이사장님.”
“데려다 줄게요. 타요.”
여울은 양손을 빠르게 흔들며 사양했다.
“괜찮습니다. 버스 한번타면 금방이에요.”
“많이 피곤했을 텐데 어서 타요.”
때마침 버스가 석진의 뒤에 섰고 여울은 난처한 표정으로 석진의 차를 탔다.
“오늘 힘들었죠? 미안해요.”
“이사장님이 왜 미안하세요. 괜찮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에 여울은 의아했다.
“도둑으로 몰린 것도 모자라.. 흠. 웨딩일 많이 힘들죠?”
석진은 신랑이 추근댄 사실을 알았지만 말은 꺼내지 않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다른 말로 돌렸다.
“웨딩일이 서비스직이다 보니 사람 상대하는게 좀.. 그래도 이제 괜찮아졌어요. 히.”
여울은 별 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러다 뭔가 생각 났는지 손을 마주치며 석진을 향해 물었다.
“이사장님, 궁금한 거 있어요. 그 여자가 반지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어떻게 알았어요?”
“아.. 잘 차려 입은 하객들 사이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한껏 움츠려진 어깨, 그리고 마치 자신을 보호 하려는 듯 코트를 목까지 다 잠근 모습이 눈에 띄더라고요.”
“오~ 눈썰미 좋으신데요? 겉모습만 보고 알아채다니.”
여울은 운전하는 석진을 슬쩍 쳐다보고는 칭찬했다.
“아뇨. 사실 그 여자의 표정을 보고 알았던 거 같아요.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울음을 꾹 참고 있는 얼굴이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사람 같지 않았거든요.”
진지하게 대답하는 석진을 바라보며 의외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의외네요. 이사장님은 감정을 잘 읽는 스타일이 아닌 거 같았는데.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그런 거 해본 적 없습니다.”
“아...”
여울의 호기심은 칼답하는 석진으로 인해 더 이상 이어 나가지 못했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차 안. 여울은 오늘 일을 회상하듯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5년을 일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신랑 신부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 같아요.”
“신랑 신부 비위를 맞추는 게 쉽지 않죠?”
“그래도 평생 한 번 특별한 결혼식을 위해 결정해야 할 것만 백 가지가 넘을 거니까. 얼마나 예민해질지 이해는 되죠.”
“나랑 결혼하면 그런 고민은 없을 겁니다.”
석진의 틈새 어필이었다. 여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죠. 그 고민을 신부는 안 하겠지만 직원들이 다 떠안게 되죠. 그래서 이사장님 결혼 때도 얼마나 힘들... 헙!”
순간 여울은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반쯤 나간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생각 없이 떠들다 자신도 놀랐다. 커다란 눈을 천천히 굴려 석진의 표정을 살폈다.
“괜찮아요. 편하게 말해도 돼요. 근데 그때 많이 힘들었군요?”
“아..아뇨. 죄송합니다.”
여울은 고개를 돌려 자기 입을 때렸다. 석진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
어느덧 여울의 집 앞에 도착했다. 말실수로 인해 여울은 오는 내내 가시방석이었다.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요. 푹 쉬어요.”
“네.. 이사장님 아까 제 말은 못 들은 거로 해주세요. 힘들었다기보다는 음.. 그냥...”
여울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미안함에 손끝을 잡아 뜯고 있었다. 불편했을 여울을 보며 가벼운 미소로 말했다.
“훗. 오히려 고마워요. 여러 힘든 일을 겪으면서 노블레스에서 잘 견뎌줘서.. 기특하게.”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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