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역사를 바꾸고 싶은 남자>
조회 : 4,263 추천 : 13 글자수 : 4,564 자 2022-09-30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황 조교는 잠깐 내 연구실로 따라오게.”
머리가 희끗한 김 교수의 말을 끝으로 강의가 끝이 났다. 황 조교라고 불린 학생의 이름은 도하, 모 대학 사학과 16학번이다. 졸업할 나이지만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휴학을 반복하다 보니 어영부영 학교에 남아있었다.
“네 교수님.”
도하는 주섬주섬 짐을 싸 강의실을 나왔다. 그때 뒤에서 후배 하나가 말을 걸었다.
“형, 오늘 끝나고 철학과랑 축구 한판 붙기로 했는데, 같이 뛰실래요?”
“아, 또 교수님이 연구실로 오래. 너희끼리 해라.”
“에이 형 없으면 수비는 누가 해요? 그럼 끝나고 바로 오세요.”
“일찍 끝날 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 알겠어. 이따 보자.”
거의 매일 수업이 끝나면 도하는 교수실로 불려가 대학원에 오라는 설득을 가장한 강요를 들어야 했다. 더군다나 이번 학기에 써야 하는 졸업논문 주제가 ‘1930년대 무장 독립운동 연구’였고, 이는 김 교수의 전공 분야였다.
‘하필 주제를 골라도 교수님 전공 분야일 게 뭐람.’
도하는 이날도 교수 연구실에서 밤늦게까지 교수님의 설교를 들었다. 후배와의 약속은 지킬 수 있을리가 없었다. 지루한 설득을 듣다 보니 더디게 흐르는 시간도 어느덧 저녁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 보게나.”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아, 가기 전에 이것 좀 가져가겠나?”
김 교수는 웬 낡은 노트를 건넸다. 마치 20세기 초반에나 유행했을 법한 디자인이었다.
“자네는 역사를 바꾸는 방법이 뭔지 아나?”
“음... 역사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아. 우리가 경험한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그게 곧 역사가 바뀌는 것 아닐까? 분명 있었던 일인데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그만큼 역사 공부가 중요하단 말이지. 암튼 그 노트에다가 공부하라는 의미에서 주는 것이야.”
얼른 대답하지 않으면 또다시 지루한 설교가 시작될 분위기였다. 도하는 재빨리 김 교수의 말을 끊고 대답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이제 진짜 들어가 보겠습니다.”
도하는 김 교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린 채 연구실에서 나왔다.
“휴... 오늘도 하루 날려 먹었네...”
.
.
.
도하의 집은 학교에서 2시간 넘는 거리였다. 군 휴학을 포함해 7년째 학교에 몸을 담고 있었으나 단 한 번도 자취나 기숙사를 이용한 적이 없다. 통학 시간이 마냥 지루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지루한 버스에서 그를 달래주는 것은 역시 유튜브였다. 유튜브로 역사 유튜버들의 동영상을 시청하면 2시간은 금방이었다.
도하는 습관처럼 유튜브를 켜 새롭게 업데이트된 영상들을 살폈다. 그리고 그의 눈을 사로잡은 제목은 이러했다.
‘꿀잼 역사 이야기 – 홍커우 공원에서 생긴 일’
딱 봐도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미 다 아는 스토리지만 그래도 흥미로웠다. 도하는 자연스럽게 영상 재생을 누르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윤봉길 의사는 이마에 총을 맞은 후 13분 후 사망했습니다.’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똑같은 내용을 여러 번 들어도 매번 슬펐다.
“젠장, 내가 가서 독립운동을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미리 퇴로를 알려주고 결과도 말해주고 했을 텐데... 그랬다면 윤봉길 의사나 이봉창 의사께서도 편히 사셨을 텐데...”
그때 도하의 가방에서 진동이 울렸다. 이상했다. 도하의 가방에는 진동이 울릴만한 물건이 없었다. 유일하게 진동이 울리는 물체인 핸드폰은 손에 들고 있었다. 친구가 실수로 자신의 가방에 아이패드라도 넣었나 싶어 가방을 뒤적거렸다.
“이게 뭐야?”
그런데 도하의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김 교수가 건네준 낡은 노트가 진동 소리를 내며 부르르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놀란 도하는 재빨리 노트를 꺼내 펼쳤다. 노트 첫 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역사를 바꾸고 싶습니까?’
도하는 당황스러웠다. 마치 자신의 생각을 노트가 읽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속는 셈 치고 노트에 대고 말했다.
“네. 바꾸고 싶어요.”
노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바꾸고 싶다고요!”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치자 버스 안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머쓱해진 도하는 다시 속삭였다.
“바꿀래요. 어떻게 바꿀 수 있나요?”
‘...’
여전히 노트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러자 도하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볼펜을 꺼내 노트에 무어라 끄적였다.
‘네. 바꾸고 싶습니다.’
그러자 도하가 쓴 글씨는 마법처럼 사라지고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어떤 역사를 바꾸고 싶나요?’
도하는 자신도 모르게 헉 소리를 냈다. 꿈인가 싶어 볼을 꼬집어 봤지만 아픈 통증이 느껴졌다.
‘꿈이 아니구나. 진짜 바꿀 수 있는 것일까? 한번 해볼까? 나에게 이런 일이?’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 가운데 잠시 고민했다. 바꾸고 싶은 역사는 너무나도 많았다. 당장 지난달에 있었던 지방선거 결과도 썩 맘에 들지 않아 그걸 바꿔버릴까 하다가, 곧 써야 하는 졸업논문이 생각났다.
“그래. 내가 바꾼 역사가 진짜 역사가 된다면 졸업논문도 쓰기 쉬워질 거야. 내 맘대로 쓰는 역사니까 내가 교수님보다도 전문가가 되겠다!”
이내 망설임 없이 글씨를 써 내려갔다.
‘1930년대 무장투쟁, 한인 애국단의 역사를 바꾸고 싶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노트에서는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그럼 역사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셨나요?’
도하는 당황했다. 내가 글로 써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직접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고? 그 서슬퍼런 시대에 홀로 던져지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았다. 그래서 노트에 써서 정확히 물어보기로 했다. ‘내가 직접 그 시대로 돌아가는 것인가요?’라고 쓰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버스가 과속방지턱을 덜컹거리면서 넘어갔다.
“쿵!”
“악!”
노트에 글씨를 쓰다가 흔들리는 버스 때문에 도하의 손이 실수를 저질렀다. ‘내’라고 써야 할 것을 ‘네’라고 써버린 것이다. 그러자 노트에서 알 수 없는 빛이 나와 주변을 비추었고, 도하는 그 빛을 보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
.
.
“으...으윽... 뭐야...”
의식을 차린 도하는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옛날 가구들로 가득한 웬 사무실로 보였다. 그때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게 동지, 괜찮은가?”
“네? 누구...”
“이런, 크게 다친 모양이네. 일단 편히 누워보게.”
도하에게 말을 건 사람은 웬 거구의 청년이었다. 아니, 청년이라기보다는 중년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목소리는 낯선 반면 얼굴은 어딘가 익숙했다. 동그란 얼굴, 주름진 이마, 듬성듬성한 머리, 동그란 안경까지.
‘누구였더라...’
그때 웬 남자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선생님, 동지는 깨어났습니까?”
저 사람도 어딘가 낯이 익었다. 살짝 주걱진 턱, 웃는 인상, 튀어나온 입술. 하지만 곧 밀려오는 두통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도하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도하는 마침내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렸다.
“조금 살 것 같네. 와... 그보다 진짜 역사 속으로 들어온 건가...?”
눈을 뜨자마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뭔가 떠오른 듯 주변을 뒤적이며 무언가를 찾았다. 자신의 손에 들려있어야 할 노트가 없어진 것이다. 그때 아까 본 거구의 남자가 가까이 와 말을 걸었다.
“일어났는가 보오.”
“앗, 네. 안녕하세요. 누구...시죠?”
“본국에 있는 약산 선생이 요원을 하나 보낸다고 했는데, 자네가 맞는가?”
도하는 ‘약산’이라는 단어에 흠칫 놀랐다.
‘약산이라면...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그렇다면 저분은...’
그제야 거구의 남자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바로 독립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김구 선생님이었다. 어디선가 김구가 190cm에 육박하는 키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것 같았다.
“혹시 김구 선생님 되십니까?”
“그렇네. 아, 그리고 이건 자네가 들고 온 서책일세.”
김구는 도하에게 노트를 건넸다. 도하는 노트를 받아 들자마자 첫 페이지를 펼쳤다. 거기에는 義(옳을 의)라는 글자와 함께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김원봉의 소개로 상해(상하이) 한인 애국단 가입. 당신은 지금부터 한인 애국단 소속입니다.’
노트를 유심히 살펴보는 도하를 향해 김구가 말했다.
“자네 서책에 쓰여있는 글자 덕분에 자네가 약산 선생이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네. 義라는 글자는 오래전부터 약산 선생이랑 내가 주고받는 편지에 항상 적어놓던 글자거든.”
‘그렇구나. 노트가 이런 서비스도 해주네. 꽤 센스 있는걸?’
노트의 세심한 배려에 내심 감탄하는 도하였다.
“선생님, 정식으로 인사 올리겠습니다. 황도하라고 합니다.”
도하는 얼떨떨한 마음이었다. 평소 위인으로 알려진 김구 선생님을 실물로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와줘서 고맙네. 아, 이 동지! 자네도 와서 인사하게.”
도하는 이 동지라고 불린 인물도 누군지 알아챘다. 바로 이봉창 의사였다.
“이봉창 동지시죠? 안녕하세요. 존경합니다.”
“나를 아시오? 하하. 이거 큰일이네. 언제 의거를 해야 할지 모르는데 참. 이렇게 유명해서야. 아무튼 반갑소. 나 경성 사람 이봉창이오.”
소탈하게 웃는 그의 얼굴은 교과서에서 보던 모습과 똑같았다.
머리가 희끗한 김 교수의 말을 끝으로 강의가 끝이 났다. 황 조교라고 불린 학생의 이름은 도하, 모 대학 사학과 16학번이다. 졸업할 나이지만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휴학을 반복하다 보니 어영부영 학교에 남아있었다.
“네 교수님.”
도하는 주섬주섬 짐을 싸 강의실을 나왔다. 그때 뒤에서 후배 하나가 말을 걸었다.
“형, 오늘 끝나고 철학과랑 축구 한판 붙기로 했는데, 같이 뛰실래요?”
“아, 또 교수님이 연구실로 오래. 너희끼리 해라.”
“에이 형 없으면 수비는 누가 해요? 그럼 끝나고 바로 오세요.”
“일찍 끝날 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 알겠어. 이따 보자.”
거의 매일 수업이 끝나면 도하는 교수실로 불려가 대학원에 오라는 설득을 가장한 강요를 들어야 했다. 더군다나 이번 학기에 써야 하는 졸업논문 주제가 ‘1930년대 무장 독립운동 연구’였고, 이는 김 교수의 전공 분야였다.
‘하필 주제를 골라도 교수님 전공 분야일 게 뭐람.’
도하는 이날도 교수 연구실에서 밤늦게까지 교수님의 설교를 들었다. 후배와의 약속은 지킬 수 있을리가 없었다. 지루한 설득을 듣다 보니 더디게 흐르는 시간도 어느덧 저녁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 보게나.”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아, 가기 전에 이것 좀 가져가겠나?”
김 교수는 웬 낡은 노트를 건넸다. 마치 20세기 초반에나 유행했을 법한 디자인이었다.
“자네는 역사를 바꾸는 방법이 뭔지 아나?”
“음... 역사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아. 우리가 경험한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그게 곧 역사가 바뀌는 것 아닐까? 분명 있었던 일인데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그만큼 역사 공부가 중요하단 말이지. 암튼 그 노트에다가 공부하라는 의미에서 주는 것이야.”
얼른 대답하지 않으면 또다시 지루한 설교가 시작될 분위기였다. 도하는 재빨리 김 교수의 말을 끊고 대답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이제 진짜 들어가 보겠습니다.”
도하는 김 교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린 채 연구실에서 나왔다.
“휴... 오늘도 하루 날려 먹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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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의 집은 학교에서 2시간 넘는 거리였다. 군 휴학을 포함해 7년째 학교에 몸을 담고 있었으나 단 한 번도 자취나 기숙사를 이용한 적이 없다. 통학 시간이 마냥 지루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지루한 버스에서 그를 달래주는 것은 역시 유튜브였다. 유튜브로 역사 유튜버들의 동영상을 시청하면 2시간은 금방이었다.
도하는 습관처럼 유튜브를 켜 새롭게 업데이트된 영상들을 살폈다. 그리고 그의 눈을 사로잡은 제목은 이러했다.
‘꿀잼 역사 이야기 – 홍커우 공원에서 생긴 일’
딱 봐도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미 다 아는 스토리지만 그래도 흥미로웠다. 도하는 자연스럽게 영상 재생을 누르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윤봉길 의사는 이마에 총을 맞은 후 13분 후 사망했습니다.’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똑같은 내용을 여러 번 들어도 매번 슬펐다.
“젠장, 내가 가서 독립운동을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미리 퇴로를 알려주고 결과도 말해주고 했을 텐데... 그랬다면 윤봉길 의사나 이봉창 의사께서도 편히 사셨을 텐데...”
그때 도하의 가방에서 진동이 울렸다. 이상했다. 도하의 가방에는 진동이 울릴만한 물건이 없었다. 유일하게 진동이 울리는 물체인 핸드폰은 손에 들고 있었다. 친구가 실수로 자신의 가방에 아이패드라도 넣었나 싶어 가방을 뒤적거렸다.
“이게 뭐야?”
그런데 도하의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김 교수가 건네준 낡은 노트가 진동 소리를 내며 부르르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놀란 도하는 재빨리 노트를 꺼내 펼쳤다. 노트 첫 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역사를 바꾸고 싶습니까?’
도하는 당황스러웠다. 마치 자신의 생각을 노트가 읽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속는 셈 치고 노트에 대고 말했다.
“네. 바꾸고 싶어요.”
노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바꾸고 싶다고요!”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치자 버스 안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머쓱해진 도하는 다시 속삭였다.
“바꿀래요. 어떻게 바꿀 수 있나요?”
‘...’
여전히 노트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러자 도하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볼펜을 꺼내 노트에 무어라 끄적였다.
‘네. 바꾸고 싶습니다.’
그러자 도하가 쓴 글씨는 마법처럼 사라지고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어떤 역사를 바꾸고 싶나요?’
도하는 자신도 모르게 헉 소리를 냈다. 꿈인가 싶어 볼을 꼬집어 봤지만 아픈 통증이 느껴졌다.
‘꿈이 아니구나. 진짜 바꿀 수 있는 것일까? 한번 해볼까? 나에게 이런 일이?’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 가운데 잠시 고민했다. 바꾸고 싶은 역사는 너무나도 많았다. 당장 지난달에 있었던 지방선거 결과도 썩 맘에 들지 않아 그걸 바꿔버릴까 하다가, 곧 써야 하는 졸업논문이 생각났다.
“그래. 내가 바꾼 역사가 진짜 역사가 된다면 졸업논문도 쓰기 쉬워질 거야. 내 맘대로 쓰는 역사니까 내가 교수님보다도 전문가가 되겠다!”
이내 망설임 없이 글씨를 써 내려갔다.
‘1930년대 무장투쟁, 한인 애국단의 역사를 바꾸고 싶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노트에서는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그럼 역사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셨나요?’
도하는 당황했다. 내가 글로 써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직접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고? 그 서슬퍼런 시대에 홀로 던져지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았다. 그래서 노트에 써서 정확히 물어보기로 했다. ‘내가 직접 그 시대로 돌아가는 것인가요?’라고 쓰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버스가 과속방지턱을 덜컹거리면서 넘어갔다.
“쿵!”
“악!”
노트에 글씨를 쓰다가 흔들리는 버스 때문에 도하의 손이 실수를 저질렀다. ‘내’라고 써야 할 것을 ‘네’라고 써버린 것이다. 그러자 노트에서 알 수 없는 빛이 나와 주변을 비추었고, 도하는 그 빛을 보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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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윽... 뭐야...”
의식을 차린 도하는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옛날 가구들로 가득한 웬 사무실로 보였다. 그때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게 동지, 괜찮은가?”
“네? 누구...”
“이런, 크게 다친 모양이네. 일단 편히 누워보게.”
도하에게 말을 건 사람은 웬 거구의 청년이었다. 아니, 청년이라기보다는 중년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목소리는 낯선 반면 얼굴은 어딘가 익숙했다. 동그란 얼굴, 주름진 이마, 듬성듬성한 머리, 동그란 안경까지.
‘누구였더라...’
그때 웬 남자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선생님, 동지는 깨어났습니까?”
저 사람도 어딘가 낯이 익었다. 살짝 주걱진 턱, 웃는 인상, 튀어나온 입술. 하지만 곧 밀려오는 두통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도하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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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지났을까. 도하는 마침내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렸다.
“조금 살 것 같네. 와... 그보다 진짜 역사 속으로 들어온 건가...?”
눈을 뜨자마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뭔가 떠오른 듯 주변을 뒤적이며 무언가를 찾았다. 자신의 손에 들려있어야 할 노트가 없어진 것이다. 그때 아까 본 거구의 남자가 가까이 와 말을 걸었다.
“일어났는가 보오.”
“앗, 네. 안녕하세요. 누구...시죠?”
“본국에 있는 약산 선생이 요원을 하나 보낸다고 했는데, 자네가 맞는가?”
도하는 ‘약산’이라는 단어에 흠칫 놀랐다.
‘약산이라면...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그렇다면 저분은...’
그제야 거구의 남자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바로 독립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김구 선생님이었다. 어디선가 김구가 190cm에 육박하는 키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것 같았다.
“혹시 김구 선생님 되십니까?”
“그렇네. 아, 그리고 이건 자네가 들고 온 서책일세.”
김구는 도하에게 노트를 건넸다. 도하는 노트를 받아 들자마자 첫 페이지를 펼쳤다. 거기에는 義(옳을 의)라는 글자와 함께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김원봉의 소개로 상해(상하이) 한인 애국단 가입. 당신은 지금부터 한인 애국단 소속입니다.’
노트를 유심히 살펴보는 도하를 향해 김구가 말했다.
“자네 서책에 쓰여있는 글자 덕분에 자네가 약산 선생이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네. 義라는 글자는 오래전부터 약산 선생이랑 내가 주고받는 편지에 항상 적어놓던 글자거든.”
‘그렇구나. 노트가 이런 서비스도 해주네. 꽤 센스 있는걸?’
노트의 세심한 배려에 내심 감탄하는 도하였다.
“선생님, 정식으로 인사 올리겠습니다. 황도하라고 합니다.”
도하는 얼떨떨한 마음이었다. 평소 위인으로 알려진 김구 선생님을 실물로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와줘서 고맙네. 아, 이 동지! 자네도 와서 인사하게.”
도하는 이 동지라고 불린 인물도 누군지 알아챘다. 바로 이봉창 의사였다.
“이봉창 동지시죠? 안녕하세요. 존경합니다.”
“나를 아시오? 하하. 이거 큰일이네. 언제 의거를 해야 할지 모르는데 참. 이렇게 유명해서야. 아무튼 반갑소. 나 경성 사람 이봉창이오.”
소탈하게 웃는 그의 얼굴은 교과서에서 보던 모습과 똑같았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역사 소설 작가 지망생 첫 작품입니다. 어느 정도의 고증도 체크했으니 흥미롭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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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연재 후기조회 : 1,587 추천 : 5 댓글 : 1 글자 : 2,332 35.<35화. 돌아오다>조회 : 1,394 추천 : 7 댓글 : 0 글자 : 4,732 34.<34화. 마지막 의거 2>조회 : 1,235 추천 : 5 댓글 : 0 글자 : 4,513 33.<33화. 마지막 의거>조회 : 1,208 추천 : 7 댓글 : 0 글자 : 4,549 32.<32화.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조회 : 1,248 추천 : 8 댓글 : 0 글자 : 4,384 31.<31화. 독립군 구출 작전 2>조회 : 1,330 추천 : 8 댓글 : 0 글자 : 4,415 30.<30화. 독립군 구출 작전>조회 : 1,254 추천 : 7 댓글 : 0 글자 : 4,457 29.<29화. 기차에서 생긴 일>조회 : 1,486 추천 : 7 댓글 : 0 글자 : 4,728 28.<28화. 조선을 향하여>조회 : 265 추천 : 5 댓글 : 0 글자 : 4,432 27.<27화. 새로운 계획>조회 : 359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072 26.<26화. 재회>조회 : 292 추천 : 4 댓글 : 0 글자 : 4,431 25.<25화. 한밤중의 소동>조회 : 354 추천 : 5 댓글 : 0 글자 : 4,431 24.<24화. 다시>조회 : 333 추천 : 3 댓글 : 0 글자 : 4,465 23.<23화. 포기>조회 : 657 추천 : 4 댓글 : 0 글자 : 4,586 22.<22화. 육삼정의 함정>조회 : 324 추천 : 4 댓글 : 0 글자 : 4,296 21.<21화. 잠시만 안녕>조회 : 361 추천 : 4 댓글 : 0 글자 : 4,366 20.<20화. 일본 공사 암살 모의>조회 : 381 추천 : 4 댓글 : 0 글자 : 4,274 19.<19화. 아나키스트들을 만나다>조회 : 293 추천 : 5 댓글 : 0 글자 : 4,279 18.<18화. 돌아온 상해>조회 : 337 추천 : 6 댓글 : 0 글자 : 4,107 17.<17화. 약속>조회 : 301 추천 : 7 댓글 : 2 글자 : 4,241 16.<16화. 이별>조회 : 299 추천 : 6 댓글 : 0 글자 : 4,562 15.<15화. 사형장에 울린 총성>조회 : 369 추천 : 6 댓글 : 0 글자 : 4,721 14.<14화. 거짓 정보>조회 : 334 추천 : 7 댓글 : 0 글자 : 4,235 13.<13화. 훙커우 공원 의거>조회 : 817 추천 : 5 댓글 : 0 글자 : 4,853 12.<12화. 최후의 대화>조회 : 309 추천 : 6 댓글 : 0 글자 : 4,344 11.<11화. 도피>조회 : 563 추천 : 6 댓글 : 0 글자 : 4,440 10.<10화. 잘생긴 청년>조회 : 591 추천 : 8 댓글 : 0 글자 : 4,152 9.<9화. 동경 탈출>조회 : 437 추천 : 7 댓글 : 0 글자 : 4,716 8.<8화. 잔인한 밤>조회 : 506 추천 : 9 댓글 : 0 글자 : 4,354 7.<7화. 천운>조회 : 853 추천 : 11 댓글 : 0 글자 : 4,259 6.<6화. 동경으로 가는 길>조회 : 584 추천 : 10 댓글 : 0 글자 : 4,955 5.<5화. 봉창과의 하루>조회 : 872 추천 : 9 댓글 : 0 글자 : 4,523 4.<4화. 여행 준비>조회 : 995 추천 : 11 댓글 : 0 글자 : 4,385 3.<3화. 일왕 암살 계획>조회 : 875 추천 : 11 댓글 : 0 글자 : 4,517 2.<2화. 상해에서의 첫날 밤>조회 : 1,307 추천 : 12 댓글 : 0 글자 : 5,940 1.<1화. 역사를 바꾸고 싶은 남자>조회 : 4,265 추천 : 13 댓글 : 3 글자 : 4,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