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기차에서 생긴 일>
조회 : 1,502 추천 : 7 글자수 : 4,728 자 2022-11-13
제물포. 도하와 세연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잠입한 이곳은 일본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장소였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게 된 시발점도 이 근처에서 발발한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이었다. 게다가 막대한 양의 일본 군수물자가 이곳 제물포를 거쳐 이동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항구가 삼엄하게 통제되고 있었고, 그러한 장소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의거에 운이 따르고 있다 할 수 있었다.
“우선 거사 장소에서 말이 통한다는 점이 가장 편하네요.”
“그렇습니까. 하긴 그동안 일본과 중국에서만 활동했지요.”
“세연 씨는 두 나라말을 모두 잘하지 않습니까. 저는 일본어 중국어 둘 다 영 아닙니다.”
“다른 나라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도록 얼른 독립을 이뤄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두 사람은 어느새 제물포 기차역에 도착했다.
“경성역 두 장이요.”
도하가 자신만만하게 경성역으로 가는 표를 끊었다. 표를 건네받고 기차에 탑승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서 서성거렸다. 그리 큰 기차가 아니었기에 어렵지 않게 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었다. 그때 같은 칸 끝자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더러운 조센징! 어디 남의 자리에 앉아!”
콧수염을 기르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일본인 중년 남자가 웬 한복 차림의 노인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조선놈들 눈깔은 장식이야?! 여기가 네놈 자리야?!”
“아이고... 죄송합니다...”
자신이 배정받은 자리에 눈이 침침한 조선 노인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때 찰진 소리가 기차 안을 울렸다.
‘짝!’
일본 남자가 조선 노인의 뺨을 힘껏 올려친 것이었다. 노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았다.
“더러운 조센징. 썩 꺼져!”
노인은 주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부어오른 뺨을 부여잡고 처량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 떠났다. 도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순간, 세연이 그의 손목을 꽉 잡았다.
“아니 됩니다. 우리는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중입니다.”
“후... 이 꼴을 보고도 참아야 한다니...”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도하는 분을 삭이기 어려웠다. 세연이 극구 만류한 탓에 도하는 멀찌감치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세연의 말이 옳기도 했다. 여기서 섣불리 나섰다가는 거사를 치르기도 전에 계획이 틀어질 수 있었다. 분을 억지로 삭이는 사이 기차는 출발했다.
‘뿌우우우우-’
힘찬 소리를 내며 기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두 사람 모두에게 낯설었다. 어릴 적 조선을 떠난 세연에게는 달라진 고향의 모습이었고, 평생을 한국에서 살다 온 도하에게는 생전 처음 보는 낙후된 나라였다. 이유는 달랐으나 둘 모두에게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창밖을 한참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아까 있었던 소동은 머릿속에서 잠시 지워져 갔다. 그러나 곧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악! 이 손 놓으세요!”
조선 여인의 비명이었다. 날카로운 소리에 도하와 세연은 동시에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아까 조선 노인을 폭행하던 일본 남자였다. 적막한 기차 안이 심심했는지 그 일본인은 괜히 근처에 있는 조선 여학생을 희롱하고 있었다.
“조센징 계집 주제에 감히 천황 폐하의 신민을 거부해?”
“살려주세요!”
곱게 땋은 댕기를 잡아당기며 여학생의 몸에 손을 대려 하고 있었다. 도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옆에 앉아있는 세연에게 말했다.
“이젠 말리지 마시오. 내 저놈을 먼저 죽이지 못하면 거사를 치르기도 전에 화병으로 죽겠...”
‘퍽!’
도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여인이 공중을 날아 일본인 남자의 얼굴에 정확한 킥을 꽂았다. 도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자신의 옆에 앉아있던 여인이 한인 애국단에서 가장 빠르고 민첩한 몸놀림을 지닌 자라는 사실을. 세연 역시 조선 노인을 때리고 이제는 여학생마저 괴롭히는 일본인에 대해 분노를 더이상 숨기기 어려웠다.
“으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일본인 남자가 고꾸라졌다. 그러나 완전히 허접한 샌님은 아닌 듯 보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재빨리 일어서며 세연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세연은 몸을 뒤로 빼며 이리저리 주먹을 피했다.
“열등한 조센징이 감히 대일본제국의 황국 신민에게 발길질을 해? 이 기차가 네년 무덤이다!”
세연이 모든 주먹을 날렵하게 피하자 일본인 남자는 분노가 극에 달했는지 안주머니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 그러자 천하의 여장부인 세연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차에 앉은 사람들은 덜덜 떨며 구경만 하고 있었다.
“도하 씨! 우리 옛날 오두막에서 일본 순사 두 놈과 싸운 일 기억하지요?”
세연이 도하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리고 몸을 슬슬 뒤로 빼며 도하가 앉아있는 곳까지 그 남자를 끌고 왔다. 오두막에서 일본 순사 둘과 싸운 기억. 그때 분명 도하가 총을 든 순사의 팔에 잔을 던져 총을 제압했었다. 그때도 이번처럼 무언가를 던지라는 뜻이었다. 도하는 순간적으로 던질만한 물건을 찾았다. 그러나 기차에 찻잔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
세연이 소리쳤다. 지금 일본인 남자를 제압하라는 뜻이었다.
“야! 여기다!”
도하는 순간적으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집어 남자에게 던졌다. 그러자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물체가 날아간 쪽을 쳐다보았다. 그때 도하는 재빨리 남자의 팔을 뒤로 꺾었다. 그사이 세연이 다가와 급소를 때려 기절시켰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기차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이 박수로 두 사람에게 환호를 보냈다.
“와아아아!!”
“짝짝짝!!”
“멋져요!!”
그리고 일본인 남자에게 희롱당할 뻔했던 소녀는 다가와서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저...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하와 세연은 무사한 서로의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세연은 도하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까 무엇을 던지셨습니까?”
“아? 사실 아무것도 던질 게 없었습니다. 그냥 소리를 지르면서 던지는 시늉만 했죠. 다행히 놈이 속아주었네요. 하하.”
“와, 어떻게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누구에게 빈 총으로 협박을 당한 적이 있어서요. 그걸 응용해봤습니다.”
“하하하.”
상해에서 첫날밤 일본 낭인들에게 쫓기던 도하를 세연이 구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 세연이 빈 총을 들고 도하가 밀정인지 아닌지 알아내려 협박을 했었다. 도하는 그때를 이야기한 것이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추억은 추억에서 멈추지 않고 의거에 도움을 주는 소중한 경험이 되어있었다.
“그보다 이놈을 이 꼴로 만들어 놨으니, 역에 도착하자마자 도망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죠. 마침 거의 다 왔으니, 도착하면 바로 뛰는 겁니다.”
“목적지는요?”
“종로입니다. 우선 경성역을 나서는 순간 인력거를 타야 합니다. 종로 YMCA 건물 근처로 가면 우릴 도와줄 사람이 있어요.”
“알겠습니다.”
때마침 경성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후면 경성역에 도착할 모양이었다.
“슬슬 준비합시다.”
“그래요.”
그런데 그때 기절했던 일본인 남자가 조용히 눈을 떴다. 그는 굳은 몸을 꿈틀거리며 정신을 차리려 했다. 도하와 세연은 내릴 생각에 초긴장 상태라 기절한 상대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눈을 뜬 남자는 벌떡 일어나며 바닥에 있는 칼을 주웠다.
“죽어라 조센징!”
그리고는 세연의 얼굴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촤악-’
예리한 칼날에 옷과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
.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습적으로 날아든 칼날에 도하가 본능적으로 세연의 얼굴을 자신의 오른팔로 막았다.
“크악!”
도하는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놀란 세연은 곧바로 품에서 총을 꺼내어 남자의 이마에 발사했다.
“탕!”
이마를 향해 총알이 정확히 날아가 박혔고, 남자는 힘없이 쓰러졌다.
“꺅!!!”
“무슨 일이야?!”
“총이다!”
기차에 타고 있던 손님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도하는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오른팔을 또다시 베여 고통스러웠다. 다행히 깊게 베이지는 않았으나 똑같은 곳을 다시 다치니 통증이 없을 수는 없었다.
“도하 씨! 괜찮으세요?”
“으으... 참을 수 있습니다. 곧 정차할 것 같으니까 얼른 뛰어요.”
‘뿌우-’
때마침 기차가 경성역에 들어서며 멈췄다. 문이 열리자 세연은 도하의 왼쪽 팔을 잡고 뛰었다. 기차 안에 있던 순사들과 일본 군인들이 뒤늦게 총소리가 들린 칸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쓰러진 남자를 보며 무어라 욕을 내뱉었다. 다행히 기차가 정차하자마자 달려 나온 덕에 두 사람은 순사들과 군인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인력거를 구한 뒤 종로로 출발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도하의 상처를 바라보는 세연과 달리 도하는 어딘가 신나는 표정이었다. 마치 방학식을 마치고 집에 가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런 도하의 표정을 보며 세연이 퉁명스럽게 꾸짖었다.
“도하 씨는 이 상황이 재밌어요?!”
“헤헤. 저도 이 상황은 무서웠죠. 그래도 세연 씨를 구해주었다는 생각에 입이 귀에 걸리네요. 이걸로 빚은 갚은 거죠?”
“하, 참나... 알겠어요. 얼른 종로로 가서 상처부터 돌봅시다.”
“그래요. 역시 거사가 쉬우면 한인 애국단이 아니죠. 이런 빅 이벤트가 하나씩 있어야 허전하지 않죠?”
“빅 이벤트...? 그게 무엇입니까?”
“아, 그런 것이 있어요. 인력거 아저씨! 더 빨리 부탁드려요!”
항주에서 제물포로, 또 제물포에서 경성으로. 매 순간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그러나 숱한 난관을 뚫고 두 사람은 어느새 최종 목적지인 경성에 도착하게 되었다.
“우선 거사 장소에서 말이 통한다는 점이 가장 편하네요.”
“그렇습니까. 하긴 그동안 일본과 중국에서만 활동했지요.”
“세연 씨는 두 나라말을 모두 잘하지 않습니까. 저는 일본어 중국어 둘 다 영 아닙니다.”
“다른 나라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도록 얼른 독립을 이뤄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두 사람은 어느새 제물포 기차역에 도착했다.
“경성역 두 장이요.”
도하가 자신만만하게 경성역으로 가는 표를 끊었다. 표를 건네받고 기차에 탑승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서 서성거렸다. 그리 큰 기차가 아니었기에 어렵지 않게 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었다. 그때 같은 칸 끝자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더러운 조센징! 어디 남의 자리에 앉아!”
콧수염을 기르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일본인 중년 남자가 웬 한복 차림의 노인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조선놈들 눈깔은 장식이야?! 여기가 네놈 자리야?!”
“아이고... 죄송합니다...”
자신이 배정받은 자리에 눈이 침침한 조선 노인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때 찰진 소리가 기차 안을 울렸다.
‘짝!’
일본 남자가 조선 노인의 뺨을 힘껏 올려친 것이었다. 노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았다.
“더러운 조센징. 썩 꺼져!”
노인은 주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부어오른 뺨을 부여잡고 처량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 떠났다. 도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순간, 세연이 그의 손목을 꽉 잡았다.
“아니 됩니다. 우리는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중입니다.”
“후... 이 꼴을 보고도 참아야 한다니...”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도하는 분을 삭이기 어려웠다. 세연이 극구 만류한 탓에 도하는 멀찌감치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세연의 말이 옳기도 했다. 여기서 섣불리 나섰다가는 거사를 치르기도 전에 계획이 틀어질 수 있었다. 분을 억지로 삭이는 사이 기차는 출발했다.
‘뿌우우우우-’
힘찬 소리를 내며 기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두 사람 모두에게 낯설었다. 어릴 적 조선을 떠난 세연에게는 달라진 고향의 모습이었고, 평생을 한국에서 살다 온 도하에게는 생전 처음 보는 낙후된 나라였다. 이유는 달랐으나 둘 모두에게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창밖을 한참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아까 있었던 소동은 머릿속에서 잠시 지워져 갔다. 그러나 곧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악! 이 손 놓으세요!”
조선 여인의 비명이었다. 날카로운 소리에 도하와 세연은 동시에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아까 조선 노인을 폭행하던 일본 남자였다. 적막한 기차 안이 심심했는지 그 일본인은 괜히 근처에 있는 조선 여학생을 희롱하고 있었다.
“조센징 계집 주제에 감히 천황 폐하의 신민을 거부해?”
“살려주세요!”
곱게 땋은 댕기를 잡아당기며 여학생의 몸에 손을 대려 하고 있었다. 도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옆에 앉아있는 세연에게 말했다.
“이젠 말리지 마시오. 내 저놈을 먼저 죽이지 못하면 거사를 치르기도 전에 화병으로 죽겠...”
‘퍽!’
도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여인이 공중을 날아 일본인 남자의 얼굴에 정확한 킥을 꽂았다. 도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자신의 옆에 앉아있던 여인이 한인 애국단에서 가장 빠르고 민첩한 몸놀림을 지닌 자라는 사실을. 세연 역시 조선 노인을 때리고 이제는 여학생마저 괴롭히는 일본인에 대해 분노를 더이상 숨기기 어려웠다.
“으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일본인 남자가 고꾸라졌다. 그러나 완전히 허접한 샌님은 아닌 듯 보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재빨리 일어서며 세연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세연은 몸을 뒤로 빼며 이리저리 주먹을 피했다.
“열등한 조센징이 감히 대일본제국의 황국 신민에게 발길질을 해? 이 기차가 네년 무덤이다!”
세연이 모든 주먹을 날렵하게 피하자 일본인 남자는 분노가 극에 달했는지 안주머니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 그러자 천하의 여장부인 세연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차에 앉은 사람들은 덜덜 떨며 구경만 하고 있었다.
“도하 씨! 우리 옛날 오두막에서 일본 순사 두 놈과 싸운 일 기억하지요?”
세연이 도하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리고 몸을 슬슬 뒤로 빼며 도하가 앉아있는 곳까지 그 남자를 끌고 왔다. 오두막에서 일본 순사 둘과 싸운 기억. 그때 분명 도하가 총을 든 순사의 팔에 잔을 던져 총을 제압했었다. 그때도 이번처럼 무언가를 던지라는 뜻이었다. 도하는 순간적으로 던질만한 물건을 찾았다. 그러나 기차에 찻잔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
세연이 소리쳤다. 지금 일본인 남자를 제압하라는 뜻이었다.
“야! 여기다!”
도하는 순간적으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집어 남자에게 던졌다. 그러자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물체가 날아간 쪽을 쳐다보았다. 그때 도하는 재빨리 남자의 팔을 뒤로 꺾었다. 그사이 세연이 다가와 급소를 때려 기절시켰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기차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이 박수로 두 사람에게 환호를 보냈다.
“와아아아!!”
“짝짝짝!!”
“멋져요!!”
그리고 일본인 남자에게 희롱당할 뻔했던 소녀는 다가와서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저...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하와 세연은 무사한 서로의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세연은 도하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까 무엇을 던지셨습니까?”
“아? 사실 아무것도 던질 게 없었습니다. 그냥 소리를 지르면서 던지는 시늉만 했죠. 다행히 놈이 속아주었네요. 하하.”
“와, 어떻게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누구에게 빈 총으로 협박을 당한 적이 있어서요. 그걸 응용해봤습니다.”
“하하하.”
상해에서 첫날밤 일본 낭인들에게 쫓기던 도하를 세연이 구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 세연이 빈 총을 들고 도하가 밀정인지 아닌지 알아내려 협박을 했었다. 도하는 그때를 이야기한 것이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추억은 추억에서 멈추지 않고 의거에 도움을 주는 소중한 경험이 되어있었다.
“그보다 이놈을 이 꼴로 만들어 놨으니, 역에 도착하자마자 도망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죠. 마침 거의 다 왔으니, 도착하면 바로 뛰는 겁니다.”
“목적지는요?”
“종로입니다. 우선 경성역을 나서는 순간 인력거를 타야 합니다. 종로 YMCA 건물 근처로 가면 우릴 도와줄 사람이 있어요.”
“알겠습니다.”
때마침 경성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후면 경성역에 도착할 모양이었다.
“슬슬 준비합시다.”
“그래요.”
그런데 그때 기절했던 일본인 남자가 조용히 눈을 떴다. 그는 굳은 몸을 꿈틀거리며 정신을 차리려 했다. 도하와 세연은 내릴 생각에 초긴장 상태라 기절한 상대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눈을 뜬 남자는 벌떡 일어나며 바닥에 있는 칼을 주웠다.
“죽어라 조센징!”
그리고는 세연의 얼굴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촤악-’
예리한 칼날에 옷과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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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습적으로 날아든 칼날에 도하가 본능적으로 세연의 얼굴을 자신의 오른팔로 막았다.
“크악!”
도하는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놀란 세연은 곧바로 품에서 총을 꺼내어 남자의 이마에 발사했다.
“탕!”
이마를 향해 총알이 정확히 날아가 박혔고, 남자는 힘없이 쓰러졌다.
“꺅!!!”
“무슨 일이야?!”
“총이다!”
기차에 타고 있던 손님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도하는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오른팔을 또다시 베여 고통스러웠다. 다행히 깊게 베이지는 않았으나 똑같은 곳을 다시 다치니 통증이 없을 수는 없었다.
“도하 씨! 괜찮으세요?”
“으으... 참을 수 있습니다. 곧 정차할 것 같으니까 얼른 뛰어요.”
‘뿌우-’
때마침 기차가 경성역에 들어서며 멈췄다. 문이 열리자 세연은 도하의 왼쪽 팔을 잡고 뛰었다. 기차 안에 있던 순사들과 일본 군인들이 뒤늦게 총소리가 들린 칸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쓰러진 남자를 보며 무어라 욕을 내뱉었다. 다행히 기차가 정차하자마자 달려 나온 덕에 두 사람은 순사들과 군인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인력거를 구한 뒤 종로로 출발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도하의 상처를 바라보는 세연과 달리 도하는 어딘가 신나는 표정이었다. 마치 방학식을 마치고 집에 가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런 도하의 표정을 보며 세연이 퉁명스럽게 꾸짖었다.
“도하 씨는 이 상황이 재밌어요?!”
“헤헤. 저도 이 상황은 무서웠죠. 그래도 세연 씨를 구해주었다는 생각에 입이 귀에 걸리네요. 이걸로 빚은 갚은 거죠?”
“하, 참나... 알겠어요. 얼른 종로로 가서 상처부터 돌봅시다.”
“그래요. 역시 거사가 쉬우면 한인 애국단이 아니죠. 이런 빅 이벤트가 하나씩 있어야 허전하지 않죠?”
“빅 이벤트...? 그게 무엇입니까?”
“아, 그런 것이 있어요. 인력거 아저씨! 더 빨리 부탁드려요!”
항주에서 제물포로, 또 제물포에서 경성으로. 매 순간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그러나 숱한 난관을 뚫고 두 사람은 어느새 최종 목적지인 경성에 도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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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연재 후기조회 : 1,614 추천 : 5 댓글 : 1 글자 : 2,332 35.<35화. 돌아오다>조회 : 1,421 추천 : 7 댓글 : 0 글자 : 4,732 34.<34화. 마지막 의거 2>조회 : 1,248 추천 : 5 댓글 : 0 글자 : 4,513 33.<33화. 마지막 의거>조회 : 1,218 추천 : 7 댓글 : 0 글자 : 4,549 32.<32화.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조회 : 1,265 추천 : 8 댓글 : 0 글자 : 4,384 31.<31화. 독립군 구출 작전 2>조회 : 1,355 추천 : 8 댓글 : 0 글자 : 4,415 30.<30화. 독립군 구출 작전>조회 : 1,286 추천 : 7 댓글 : 0 글자 : 4,457 29.<29화. 기차에서 생긴 일>조회 : 1,511 추천 : 7 댓글 : 0 글자 : 4,728 28.<28화. 조선을 향하여>조회 : 265 추천 : 5 댓글 : 0 글자 : 4,432 27.<27화. 새로운 계획>조회 : 359 추천 : 5 댓글 : 0 글자 : 5,072 26.<26화. 재회>조회 : 292 추천 : 4 댓글 : 0 글자 : 4,431 25.<25화. 한밤중의 소동>조회 : 366 추천 : 5 댓글 : 0 글자 : 4,431 24.<24화. 다시>조회 : 333 추천 : 3 댓글 : 0 글자 : 4,465 23.<23화. 포기>조회 : 695 추천 : 4 댓글 : 0 글자 : 4,586 22.<22화. 육삼정의 함정>조회 : 324 추천 : 4 댓글 : 0 글자 : 4,296 21.<21화. 잠시만 안녕>조회 : 361 추천 : 4 댓글 : 0 글자 : 4,366 20.<20화. 일본 공사 암살 모의>조회 : 381 추천 : 4 댓글 : 0 글자 : 4,274 19.<19화. 아나키스트들을 만나다>조회 : 293 추천 : 5 댓글 : 0 글자 : 4,279 18.<18화. 돌아온 상해>조회 : 337 추천 : 6 댓글 : 0 글자 : 4,107 17.<17화. 약속>조회 : 301 추천 : 7 댓글 : 2 글자 : 4,241 16.<16화. 이별>조회 : 299 추천 : 6 댓글 : 0 글자 : 4,562 15.<15화. 사형장에 울린 총성>조회 : 369 추천 : 6 댓글 : 0 글자 : 4,721 14.<14화. 거짓 정보>조회 : 334 추천 : 7 댓글 : 0 글자 : 4,235 13.<13화. 훙커우 공원 의거>조회 : 817 추천 : 5 댓글 : 0 글자 : 4,853 12.<12화. 최후의 대화>조회 : 309 추천 : 6 댓글 : 0 글자 : 4,344 11.<11화. 도피>조회 : 563 추천 : 6 댓글 : 0 글자 : 4,440 10.<10화. 잘생긴 청년>조회 : 591 추천 : 8 댓글 : 0 글자 : 4,152 9.<9화. 동경 탈출>조회 : 437 추천 : 7 댓글 : 0 글자 : 4,716 8.<8화. 잔인한 밤>조회 : 506 추천 : 9 댓글 : 0 글자 : 4,354 7.<7화. 천운>조회 : 853 추천 : 11 댓글 : 0 글자 : 4,259 6.<6화. 동경으로 가는 길>조회 : 584 추천 : 10 댓글 : 0 글자 : 4,955 5.<5화. 봉창과의 하루>조회 : 872 추천 : 9 댓글 : 0 글자 : 4,523 4.<4화. 여행 준비>조회 : 995 추천 : 11 댓글 : 0 글자 : 4,385 3.<3화. 일왕 암살 계획>조회 : 875 추천 : 11 댓글 : 0 글자 : 4,517 2.<2화. 상해에서의 첫날 밤>조회 : 1,308 추천 : 12 댓글 : 0 글자 : 5,940 1.<1화. 역사를 바꾸고 싶은 남자>조회 : 4,309 추천 : 13 댓글 : 3 글자 : 4,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