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독립군 구출 작전>
조회 : 1,286 추천 : 7 글자수 : 4,457 자 2022-11-15
생기 넘치는 경성의 거리, 그곳에 이방인 아닌 이방인인 두 남녀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아주 멀끔한 차림새였다. 두 사람은 역시 부부로 위장한 도하와 세연이었다. 세연의 말대로 종로 YMCA 건물 옆에는 독립운동 세력의 은밀한 근거지가 있었다. 둘은 그곳에서 자금과 복장을 지원받았고, 거사에 필요한 정보를 모으기로 했다. 종로 한복판에 다다르자 도하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연 씨. 서울, 아니 경성의 지형은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나만 믿으세요.”
“도하 씨가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내가 어릴 적부터 이곳 근처에서 일을 많이 했거든요.”
오늘날 광화문, 종로, 안국동, 창경궁에 이르는 길은 도하가 눈감고도 다닐 수 있는 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안국동 근처에서 2년간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모처럼 자신만만한 분야가 나오자 의기양양하게 세연의 손을 잡고 경성 시내로 발을 디뎠다. 그런데 도하가 바라본 종로의 모습은 오늘날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어라...? 여기에 길이 왜 없지...?”
“도하 씨, 분명 자신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그게...”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상황이었다. 도하가 기억하는 2022년 종로 일대의 지리는 1930년대 이후 수백 번도 더 바뀐 것이었다. 2020년대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도로 정비, 청계천 복원, 각종 재개발, 도시화가 있었으며 1950년대에는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전쟁도 있었다. 도하의 머릿속에 그려진 모습과 다른 것이 당연했다.
“미안합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랑 완전히 달라요.”
“하하, 괜찮아요. 천천히 돌아보면서 길을 익힙시다.”
도하와 세연은 먼저 광화문 쪽으로 걷기로 했다. 광화문 안에 조선 총독부가 있었고, 창경원에서 열리는 행사에 가려면 지금 이들이 걷는 길을 우가키 총독이 지나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총독부에서 종로까지는 한 30분이 걸리네요.”
“종로에서 창경원까지도 30분이 걸려요. 대략 한 시간 정도 우가키 총독이 움직인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아니 황 동지, 총독이 걸어서 가겠습니까? 당연히 차를 타고 가지요.”
“아, 그렇긴 하네요. 그렇다면 차로 한 30분?”
“그렇게 오래 걸릴까요?”
“아마도 천천히 행차할 것 같아요. 총독부 밖으로 나다닐 때마다 권력을 과시하려고 온갖 허세를 다 부린다고 하더라고요.”
도하의 추측은 설득력이 있었다. 총독이 행사에 참여한다면 보통 모든 군중을 통제하고 전차도 운행을 중단시키곤 한다. 세연이 도하의 추측을 듣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이제 정해야 합니다.”
“무엇을요?”
“총독부에서 창경원으로 갈 때 놈을 처단할지, 창경원에서 총독부로 돌아올 때 놈을 처단할지를 말입니다.”
“음... 그 부분은 조금 더 생각해봅시다.”
추후에 계획을 확정하기로 하고 두 사람은 다시 종로를 거쳐 창경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종로 거리가 끝나는 지점쯤에서 둘은 발걸음을 멈춰서야 했다. 어디선가 고통에 찬 비명과 노랫소리가 동시에 들려왔기 때문이다.
“끄아아아아악!!!”
“신대한국!!!! 독립군의!!! 끄아아아악!!!”
차라리 지옥의 선율이 더 아름다울 것만 같았다. 그들이 발길을 멈춘 곳은 종로경찰서 고문실 옆이었다. 아무래도 독립군 몇 명이 붙잡혀와 고초를 겪고 있는 것 같았다. 도하가 또다시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주먹을 쥐었다. 금방이라도 경찰서로 달려가려는 자세를 취하자 또다시 세연이 붙잡았다.
“도하 씨. 이건 아닙니다.”
“기차에서 세연 씨도 나서시지 않으셨습니까! 말리지 마세요!”
“지금이랑 그때가 같습니까? 그때는 한 놈이었지만, 이곳은 왜놈들이 가득한 경찰서입니다!”
“저런 놈들을! 내가 보고만 있어야 하나요?!”
“그래야 해요! 우리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잖아요!”
“X발... 젠장... 알겠어요.”
도하는 허공에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마음이 상했는지 다시 종로로 발길을 돌렸다. 세연은 그런 도하의 뒷모습을 슬프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도하와 반대편인 창경원으로 향했다.
.
.
.
은신처로 돌아온 도하가 누워있는 방은 독립운동 단체에서 내준 자그마한 숙소였다. 두어 시간을 누워있으니 세연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하는 세연을 흘깃 바라보고는 짧게 인사를 했다.
“다녀오셨습니까.”
“네.”
“아까는 마음대로 돌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도하 씨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리 말해주시니 고맙네요. 사실 괜히 세연 씨에게 짜증을 낼 문제가 아닌데. 미안해요.”
“그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암튼 창경원까지 가는 길은 제가 완벽히 외웠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이제 이틀이 남았으니, 폭탄을 던지는 시점은 내일 아침에 이야기합시다.”
“그래요. 편히 주무세요.”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 등을 맞대고 누워 잠을 청했다. 하루 동안 많은 걸음을 걸었던 세연은 생각보다 쉽게 잠들 수 있었다. 그러나 도하는 그렇지 않았다. 낮에 들은 독립군의 소름 끼치는 비명이 선명하게 기억되었다.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저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은 누가 구해줄 수 있을까.’
홀로 상념에 잠긴 도하였다. 그리고 새벽의 감성이 더해지자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독립운동가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이곳에 왔지. 그런데 아직 아무도 구하지 못했어. 종로경찰서에서 고통받는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지? 그저 유명하지 않다는 점?’
도하의 생각은 결국 그의 몸을 일으켰다.
‘그래. 저들도 똑같은 독립운동가들이야. 다만 사람들이 알지 못할 뿐이지. 그러니 저들을 구해야 해.’
미친 생각이었다. 아무리 숱한 죽음의 위기를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도하는 그냥 평범한 대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경찰서를 뚫고 고문실로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소한의 이성이 남아있었던 도하는 종이와 펜을 들어 잠든 세연에게 남기는 짤막한 편지를 적었다.
‘결코 세연 씨를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지들의 비명을 외면하기 어렵네요. 혹시라도 제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혼자서라도 이 폭탄으로 의거를 성공시켜주세요. 종로경찰서에서, 황도하 드림’
그리고는 편지 옆에 자신이 늘 품고 다니는 폭탄을 내려놓았다. 그 대신 권총 한 자루만을 챙겨 종로경찰서로 걸어갔다. 10분쯤 걸으면 금방 도착하는 거리였기에 금방 다다를 수 있었다. 경찰서에 도착하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혼자 경찰서를 나와 어디론가 향하는 순사 하나를 발견했다. 도하는 조심스럽게 뒤를 밟았다. 아무래도 퇴근하는 모양이었다.
‘저놈이 내 열쇠다.’
도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신발을 벗었다. 신발을 신으면 발소리가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발소리를 죽인 채 순사의 뒤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뒤에서 목을 졸랐다.
“끅...끅...”
숨통이 조여진 순사는 한 30초 정도 열심히 버둥거리다가 도하의 억센 완력에 굴복했다. 몸이 축 늘어져 기절했다. 풍족한 21세기에서 살다 온 190cm의 거구가 1930년대의 키 작은 일본인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도하는 쓰러진 순사를 골목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옷을 전부 벗기고 자신의 옷과 바꿔입었다. 발목이 드러날 정도로 바지가 짧았으나 몸을 욱여넣으니 봐줄 만했다.
“자, 가볼까?”
더이상 뒤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기절한 순사가 깨어나기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다시 종로경찰서 앞으로 온 도하는 가장 낮아 보이는 담을 훌쩍 뛰어넘었다. 우연하게도 그곳은 바로 고문실 창문 옆이었다. 일본 경찰들은 조선인들이 고문당하는 소리를 더 널리 퍼지게 하여 공포심을 조성하기 위해 고문실 옆 담장을 낮게 쌓곤 했다.
“이곳이 바로 고문실이구나.”
창틈으로 지켜보니 고문실은 붙잡힌 독립운동가 두 명 외에는 아무도 없는 듯 보였다. 도하는 빠르게 창문을 깨기 위해 권총 손잡이로 창문을 세게 두드렸다.
‘쿵, 쿵-’
창문을 깨려는 소리에 고문실 안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창문을 바라보았다.
‘파삭-’
오래된 창문인지 깨질 때 큰 소리가 나지 않았다. 행운의 여신이 도하와 함께하는 것 같았다. 도하는 비좁은 창틈으로 몸을 쑤셔 넣었다.
“동지들, 난 독립운동하는 사람입니다. 그쪽들은 어디 소속인가요?”
“일본 순사... 아닌가...”
도하의 물음에 의심으로 대답한 사내는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혼절했다. 고문의 여파가 심한 듯 보였다. 사실 독립운동가들은 도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도하의 옷은 지금 순사 복이었다. 그러나 사정을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도하는 얼른 바닥에 놓인 열쇠를 찾아 벽관에 갇힌 사람, 천장에 손목이 묶인 사람까지 두 명의 수갑을 풀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탁탁탁탁-’
순사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고문실로 뛰어 들어오는 것이 분명했다. 빠르게 들리는 발소리보다 도하의 심장이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
“세연 씨. 서울, 아니 경성의 지형은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나만 믿으세요.”
“도하 씨가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내가 어릴 적부터 이곳 근처에서 일을 많이 했거든요.”
오늘날 광화문, 종로, 안국동, 창경궁에 이르는 길은 도하가 눈감고도 다닐 수 있는 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안국동 근처에서 2년간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모처럼 자신만만한 분야가 나오자 의기양양하게 세연의 손을 잡고 경성 시내로 발을 디뎠다. 그런데 도하가 바라본 종로의 모습은 오늘날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어라...? 여기에 길이 왜 없지...?”
“도하 씨, 분명 자신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그게...”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상황이었다. 도하가 기억하는 2022년 종로 일대의 지리는 1930년대 이후 수백 번도 더 바뀐 것이었다. 2020년대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도로 정비, 청계천 복원, 각종 재개발, 도시화가 있었으며 1950년대에는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전쟁도 있었다. 도하의 머릿속에 그려진 모습과 다른 것이 당연했다.
“미안합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랑 완전히 달라요.”
“하하, 괜찮아요. 천천히 돌아보면서 길을 익힙시다.”
도하와 세연은 먼저 광화문 쪽으로 걷기로 했다. 광화문 안에 조선 총독부가 있었고, 창경원에서 열리는 행사에 가려면 지금 이들이 걷는 길을 우가키 총독이 지나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총독부에서 종로까지는 한 30분이 걸리네요.”
“종로에서 창경원까지도 30분이 걸려요. 대략 한 시간 정도 우가키 총독이 움직인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아니 황 동지, 총독이 걸어서 가겠습니까? 당연히 차를 타고 가지요.”
“아, 그렇긴 하네요. 그렇다면 차로 한 30분?”
“그렇게 오래 걸릴까요?”
“아마도 천천히 행차할 것 같아요. 총독부 밖으로 나다닐 때마다 권력을 과시하려고 온갖 허세를 다 부린다고 하더라고요.”
도하의 추측은 설득력이 있었다. 총독이 행사에 참여한다면 보통 모든 군중을 통제하고 전차도 운행을 중단시키곤 한다. 세연이 도하의 추측을 듣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이제 정해야 합니다.”
“무엇을요?”
“총독부에서 창경원으로 갈 때 놈을 처단할지, 창경원에서 총독부로 돌아올 때 놈을 처단할지를 말입니다.”
“음... 그 부분은 조금 더 생각해봅시다.”
추후에 계획을 확정하기로 하고 두 사람은 다시 종로를 거쳐 창경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종로 거리가 끝나는 지점쯤에서 둘은 발걸음을 멈춰서야 했다. 어디선가 고통에 찬 비명과 노랫소리가 동시에 들려왔기 때문이다.
“끄아아아아악!!!”
“신대한국!!!! 독립군의!!! 끄아아아악!!!”
차라리 지옥의 선율이 더 아름다울 것만 같았다. 그들이 발길을 멈춘 곳은 종로경찰서 고문실 옆이었다. 아무래도 독립군 몇 명이 붙잡혀와 고초를 겪고 있는 것 같았다. 도하가 또다시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주먹을 쥐었다. 금방이라도 경찰서로 달려가려는 자세를 취하자 또다시 세연이 붙잡았다.
“도하 씨. 이건 아닙니다.”
“기차에서 세연 씨도 나서시지 않으셨습니까! 말리지 마세요!”
“지금이랑 그때가 같습니까? 그때는 한 놈이었지만, 이곳은 왜놈들이 가득한 경찰서입니다!”
“저런 놈들을! 내가 보고만 있어야 하나요?!”
“그래야 해요! 우리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잖아요!”
“X발... 젠장... 알겠어요.”
도하는 허공에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마음이 상했는지 다시 종로로 발길을 돌렸다. 세연은 그런 도하의 뒷모습을 슬프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도하와 반대편인 창경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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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신처로 돌아온 도하가 누워있는 방은 독립운동 단체에서 내준 자그마한 숙소였다. 두어 시간을 누워있으니 세연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하는 세연을 흘깃 바라보고는 짧게 인사를 했다.
“다녀오셨습니까.”
“네.”
“아까는 마음대로 돌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도하 씨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리 말해주시니 고맙네요. 사실 괜히 세연 씨에게 짜증을 낼 문제가 아닌데. 미안해요.”
“그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암튼 창경원까지 가는 길은 제가 완벽히 외웠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이제 이틀이 남았으니, 폭탄을 던지는 시점은 내일 아침에 이야기합시다.”
“그래요. 편히 주무세요.”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 등을 맞대고 누워 잠을 청했다. 하루 동안 많은 걸음을 걸었던 세연은 생각보다 쉽게 잠들 수 있었다. 그러나 도하는 그렇지 않았다. 낮에 들은 독립군의 소름 끼치는 비명이 선명하게 기억되었다.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저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은 누가 구해줄 수 있을까.’
홀로 상념에 잠긴 도하였다. 그리고 새벽의 감성이 더해지자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독립운동가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이곳에 왔지. 그런데 아직 아무도 구하지 못했어. 종로경찰서에서 고통받는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지? 그저 유명하지 않다는 점?’
도하의 생각은 결국 그의 몸을 일으켰다.
‘그래. 저들도 똑같은 독립운동가들이야. 다만 사람들이 알지 못할 뿐이지. 그러니 저들을 구해야 해.’
미친 생각이었다. 아무리 숱한 죽음의 위기를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도하는 그냥 평범한 대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경찰서를 뚫고 고문실로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소한의 이성이 남아있었던 도하는 종이와 펜을 들어 잠든 세연에게 남기는 짤막한 편지를 적었다.
‘결코 세연 씨를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지들의 비명을 외면하기 어렵네요. 혹시라도 제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혼자서라도 이 폭탄으로 의거를 성공시켜주세요. 종로경찰서에서, 황도하 드림’
그리고는 편지 옆에 자신이 늘 품고 다니는 폭탄을 내려놓았다. 그 대신 권총 한 자루만을 챙겨 종로경찰서로 걸어갔다. 10분쯤 걸으면 금방 도착하는 거리였기에 금방 다다를 수 있었다. 경찰서에 도착하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혼자 경찰서를 나와 어디론가 향하는 순사 하나를 발견했다. 도하는 조심스럽게 뒤를 밟았다. 아무래도 퇴근하는 모양이었다.
‘저놈이 내 열쇠다.’
도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신발을 벗었다. 신발을 신으면 발소리가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발소리를 죽인 채 순사의 뒤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뒤에서 목을 졸랐다.
“끅...끅...”
숨통이 조여진 순사는 한 30초 정도 열심히 버둥거리다가 도하의 억센 완력에 굴복했다. 몸이 축 늘어져 기절했다. 풍족한 21세기에서 살다 온 190cm의 거구가 1930년대의 키 작은 일본인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도하는 쓰러진 순사를 골목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옷을 전부 벗기고 자신의 옷과 바꿔입었다. 발목이 드러날 정도로 바지가 짧았으나 몸을 욱여넣으니 봐줄 만했다.
“자, 가볼까?”
더이상 뒤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기절한 순사가 깨어나기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다시 종로경찰서 앞으로 온 도하는 가장 낮아 보이는 담을 훌쩍 뛰어넘었다. 우연하게도 그곳은 바로 고문실 창문 옆이었다. 일본 경찰들은 조선인들이 고문당하는 소리를 더 널리 퍼지게 하여 공포심을 조성하기 위해 고문실 옆 담장을 낮게 쌓곤 했다.
“이곳이 바로 고문실이구나.”
창틈으로 지켜보니 고문실은 붙잡힌 독립운동가 두 명 외에는 아무도 없는 듯 보였다. 도하는 빠르게 창문을 깨기 위해 권총 손잡이로 창문을 세게 두드렸다.
‘쿵, 쿵-’
창문을 깨려는 소리에 고문실 안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창문을 바라보았다.
‘파삭-’
오래된 창문인지 깨질 때 큰 소리가 나지 않았다. 행운의 여신이 도하와 함께하는 것 같았다. 도하는 비좁은 창틈으로 몸을 쑤셔 넣었다.
“동지들, 난 독립운동하는 사람입니다. 그쪽들은 어디 소속인가요?”
“일본 순사... 아닌가...”
도하의 물음에 의심으로 대답한 사내는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혼절했다. 고문의 여파가 심한 듯 보였다. 사실 독립운동가들은 도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도하의 옷은 지금 순사 복이었다. 그러나 사정을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도하는 얼른 바닥에 놓인 열쇠를 찾아 벽관에 갇힌 사람, 천장에 손목이 묶인 사람까지 두 명의 수갑을 풀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탁탁탁탁-’
순사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고문실로 뛰어 들어오는 것이 분명했다. 빠르게 들리는 발소리보다 도하의 심장이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
작가의 말
어느덧 30화입니다! 여기까지 오도록 응원해주신 많은 독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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