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특별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조회 : 917 추천 : 1 글자수 : 5,392 자 2022-09-24
시끄러운 세상이었다.
피부는 붉게 물들고, 태양은 가라앉았으며, 시야는 죽어갔다.
아니, 난 처음부터 죽어있던 걸 수도 있겠다. 난 ‘그런 놈’이니까.
그러나ㅡ.
‘살만한 곳이었지.’
어린나이로 인해 차별받고, 인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이 더러운 ‘탑’에서 희망이 담긴 말을 내뱉는다니 참으로 웃기다.
허나 웃기지만···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것 같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겐 한 여자가 있었으니까. 누구도 나이를 먹지 않는 이 공간에서 우리 둘끼리 어린 모습을 유지한 채 무려 10년 동안 위기를 극복했으니까.
단지, 그 시간동안 서로를 바라보며ㅡ
사랑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사랑이 시들어 버린다면.
“안, 돼··· 하연아·· 제발, 제발···! 너가 없으면 난···.”
이곳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 없어져, 내 모든 게.
‘무너져.’
단 한 방울도 안 남고 증발해버릴 거야.
내 마음이, 내 아픔이···· 구름이 되어 내릴 거야 이 감정에···,
그때였다.
“···· 유진, 울지 말아요.”
그렇게 눈물이 뚝, 뚝 떨어지는 걸 보면 내 맘이 너무 아프잖아.
울컥해 버릴 것 같잖아.
안하연은 웃지 못했다.
웃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 상황이, 그와 헤어진다는 이 슬픔이 그녀의 감정을 요동쳤다.
그야말로 슬픔이었다. 이별이었다. 후련하지 못한 사랑이었다.
무엇보다 뜨겁지만 슬프게 다가오는 사랑.
그게 안하연이 느끼면서도 말해주고 싶었던 감정이었다.
····.
서글퍼지는 침묵 속에서, 그녀가 죽어가는 것을 증명하듯 차가워져가는 피부를 느끼던 유진은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뭔가를 말하듯 눈빛을 흘린다.
단지, 눈빛뿐이었다. 그러나 그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가뿐히 그것도 아주 간단히 알아낼 수 있던 안하연이었다.
눈빛의 내용은 이랬다.
‘내게 원하는 걸 말해.’
마치, 사랑하는 관계라고 묘한.
마치 죽기 전 마지막으로 듣는 부탁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이해한 하연은.
“안아줘요.”
라고, 말했다.
아무런 떨림도 슬픔도 없이 한 글자씩.
‘··· 젠장.’
이 말을 들은 나는, 도저히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아주 약간의 무음에 갑작스레 덮쳐오는 불안감.
“안, 안아줄 거예요?”
만약 자신을 안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유진은 가볍게.
“아니, 그럴 리가.”
라고 답했다. 꽤나 애정을 담은 듯이.
“헤헤··· 그래요. 당신이 내게 그럴 리가 없는데. ·····고마워요.”
“고맙기는. 내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지금껏 널 부려먹기만 했는ㅡ.’
“아뇨. 전 부려 먹힌 적이 없어요. 제가 직접 부린 거죠. 당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 또 맘대로 생각을.”
“뭐 어때요. 사실 굳이 읽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요. 뭘.”
하연은 쿡쿡 웃었다. 죽기 일보직전인 사람이 뭐가 그리 좋다고···.
난 무표정한 상태로 그녀에게서 눈을 땠다.
참으로 그녀에게 미안한 행동이었으나 하연은 알고 있었기에 그런 내 행동을 깔끔히 넘겨댔다.
“정말··· 끈, 질기네요.”
ㅡ저기 있는 ‘마지막 보스’가 다시 한 번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통을 참을 수 없는지 지속적으로 -크릉 -크으응! 하며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고 있는 보스가 우릴 노려봤다.
난 잠시 머뭇거렸다.
이 상황을 어떡해야 라는 생각보단 하연에게 가진 걱정이 내 공격의지보다 앞질렀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그러나.
“절 내려놓아도, 당신이 날 지켜주지 않아도···· 난 괜찮아요.”
그녀는 날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나 보다.
“····고마웠다.”
“헉! 고맙다니. 그 천하의 유진이 제게 고맙다고 한 거예요? 아이고 기뻐라!”
“그리고 좋아했다.”
“····.”
“사랑했고, 행복했고, 너에게 모든 걸 주고 싶었다. 그리고 처음에 동양인 주제라고 했던 건 사과하지. 내가 널 이렇게 원하게 될지 몰랐거든.”
“····그럼 저 외의 동양인은?”
“아직도 내겐 쓰레기뿐이다.”
“하하핳! 그거 참 싫어해야 되는 부분인 건지.”
좋아해야 되는 부분인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행복하게 웃으며 내 두 손을 잡았다. 그녀에게는 이젠 약간의 힘조차 낼 수 없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걸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하연은 약간 미간을 좁혔으나 잠시 후 “상관없겠구나.” 하고 중얼거리고는.
내게 눈빛을 보냈다.
‘제가 뭘 원하는지는··· 잘 아시죠?’
그래, 아주 잘 안다. 이젠 질릴 정도··· 아니, 이런 거라면.
“질릴 일 같은 건 없으려나.”
그녀에게 입술을 내어줬다.
가벼운 입맞춤이 아닌, 마치 새벽빛이 가득한 해변에서나 할 것 같은 그런 진한 키스를 깊게 해댄다.
달콤하기는커녕 쓰라리기만 한. 피 맛을 느끼며 그녀에게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을 이어질도록 아니, 죽기 전까지는 영원히 행복함만 느낄 수 있게.
나의 숨결을 뱉어냈다.
이젠 완전히 차가워진, 그리고 온 몸에 진동이 사라진 그녀를 꽉 안으며.
“···· 제기랄.”
역시ㅡ
“크르으윽! 크릉! 감히·· 감아아아아히!! 이 나를··.”
ㅡ쉽게 되는 법이 없다니까,
-쿠웅!
최종보스가 땅을 벅차고 날아오른다. 과연 저런 상처를 입고도 저 정도 신체능력이라니 이쯤 되니 무서울 정도다.
“나르으으으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반쯤 신체능력이 돌아온 내게는.
“야.”
-콰카카카카쾅!
“넌 최종보스면서 삼류악당 같은 대사를 뱉고 지랄이야?”
단지, 일반 몬스터일 뿐이다.
“커헉! 마, 말도 안 돼는···.”
“말이 안 되긴 왜 안 돼. 그리고 나 원래 이게 정상이거든? 이 망할 저주충 새끼야.”
갑작스레 뒤바뀐 말투는 그 누구 하나 신경 쓰진 않았다만 만약 하연이 내 말을 듣고 있었다면 “그거 병이예요. 병! 중2병일 거라고요!” 라고 했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너 한정이다.” 라고 했겠지.
나는 피식 웃고는 조심스레 내 품에 안겨 있던 하연을 내려놓았다.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듯이, 더 이상 그녀의 맘이 아프지 안 토록.
“····미치겠군.”
몸속에서 요동치는 이 감정은, 심장은 날 미친 듯이 괴롭히고 있는데.
[특성, ‘초월적 정신체제’ 가 당신을 지킵니다.]
머릿속은 그 누구보다 차갑다니.
“쿠어어어어어!”
참으로 짜증나는 일이다.
-콰앙!
이번엔 진심을 담은 주먹질. 분명 내 신체능력을 생각했을 때 이 보스에겐 정말 죽을 맛일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내겐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아서 입을 나불대지만.
뭐, 어쩌겠는가.
“아무리 뭐라 해도, 얼마나 강해지던 안하연이 돌아오는 게 아닌데.”
보스 네가 내 모든 걸 잃게 했다고 하든, 최소한 날 집중적으로 공격했으면 라고하든 간에 그게 의미 없는 말, 행동인 걸 내 머리로 곧장 이해하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너무 미련한 것 같기도 해.
“켁! 케, 케에겍··· 이 인간 같지도 않은 놈··· 인간보다 괴물 같은 노오옴!”
녀석은 지치지도 않는 걸까. 아,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다시 한 번 내게 달려오는 저 모습이 너무 추해보였으니까.
난 그런 그를 힐끔 바라보고는.
“···· 그걸 욕이라 하는 거냐.”
라고 말하며 깊게 아주 깊게···.
하아····.
한숨을 깊게 뱉었다.
여러 가지의 감정이 담긴 한숨이었으나 겉으로 보기엔 누구보다 귀찮아 한다는 듯한 모습이었고. 그런 모습이라는 사실은 이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한 가지. 명확하게 원하는 것이 있었고 그 중 하나가··.
‘이 망할 특성만 없었더라면.’
이었다더라.
-쿠우우웅!
“쿨럭! 케에에에엑! 제, 젠장·· 젠장 제에에에기라라라아알!! 이 비열한 인간이···.”
“···· 비열?”
내가 잘 못 들었나? 비열? 비열하다고?
“웃기는군.”
-콰직!
그의 발을 강하게 밟았다.
옛날처럼 힘조절 할 필요 없다는 듯이 미친 듯이, 온 힘을 담아.
더욱 더 강하게.
-쾅, 쾅, 쾅, 쾅, 콰아앙!
녀석의 비명소리조차 나올 틈새 없이.
“어때.”
아직도 너가.
“내가 비열하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너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나.”
“·····.”
그래····.
“말할 수 없겠지.”
이미·· 죽은 자이니까.
그때.
-띠링!
[업적, ‘최후의 발판’을 달성하셨습니다. 앞으로의 남은 업적은 없습니다!]
[특별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 글쎄. 집이나 보내주던가. 아니면···.”
유진은 입술을 씹었다. 어떻게든 슬프다는 표정을 내보이기에 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감정을 요동쳤다.
그리고 그 노력이 통했던 것일까.
“아···. 아아아·· 아··! 난··!”
지금껏 단 한 번도 내게 내리지 못했던.
이 어두운 슬픔이 내게 내려왔다.
-투, 툭툭···.
땅바닥에 눈물을 떨어뜨리며.
그러면서 생각한다.
비참하게도.
‘나는.’
도대체 왜, 왜 그랬지 못했지?
“왜 살리지 못했던 거지···?”
이렇게 강하면서도 강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약하다. 미친 듯이 약해.
우울할 정도로, 난 평생 우울해진다는 생각조차 못했는데 이런 끔찍하다고 불리는 ‘탑’에서도 나는 누구보다 이성적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착각이었어. 단지 내가 생각했던 결정은···.
“나의 이 거지같은 특성 때문이었어.”
이 *같은 새끼 때문에···!! 난··.
[특별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유진 플레이어님.]
ㅡ!
‘어?’
잠시만, 뭔가가.
유진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이 어두컴컴한.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위를 바라봤다.
단지, 매일 같이 보았던 작은 ‘푸른 목소리, 메시지’를 보기 위해서.
“···· 특별 보상을···?”
뭐야.
이상하잖아.
“너, 왜 마치 감정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건데?
[···· 대답해주세요.]
이 멸망한 탑에서 유일한 인간인 당신에게 달린 한 가지 선택. 결정.
[특별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
지구의 일생과 살아온 날짜가 비슷해져가는 나에게 들려온 그 말은.
‘무척이나··.’
어색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만약 지금껏 나쁜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이가 갑작스레 내가 잘해준다면 드는 생각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의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더더욱 머리가 골치 아파질 수밖에 없다. 솔직히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기분은 아니었다. 이 10년 동안 매번 겪었던, 익숙해지다 못해 당연하게 여기는 기분이었으니까.
‘뭐, 그것도···.’
유진은 하연에게 눈빛을 보내며.
저 여자 덕에 바뀌었지만.
“후우···.”
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내 머릿속은 이미 복잡하다. 나 참 이 특성을 얻을 후 이런 적은 단연코 없었는데···.
어떡하지.
어찌해야 할까.
믿을까?
좀 더 고민해볼까. 차라리 조금이라도 조사를 해본다면ㅡ.
-‘그래도 가끔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걸 그만둬 보시는 게 어때요?’
-‘왜지?’
-‘아니·· 뭐 꼭 이성적으로 생각한다고 사람이 차가워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언제든 따뜻한 사람이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면 그만큼 의지도 커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유진은 맨날 하지 않아도 될 일은 안 하고 해야 되는 것만 하는 성격. 딱 그렇잖아요?’
-‘당연한 거다. 그리고, 지금 네가 내게 그런 말을 뱉는 이유는 좀 더 자신에게 감정적으로 다가와 줬으면 좋겠다는 의미인가? 그것도 남자로서의?’
-‘···· 우씨, 너무하시네. 솔직히 당신 남의 생각 읽는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는 거 아네요? 어찌 날 이리 잘 알까.’
-‘다시 말하지만 당연한 거다. 몇 년 동안 널 봐왔으니···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내게 얼굴을 붉히고 있는 걸 보니 더더욱 당연한 것이겠지.’
-‘끄으으··· 보통 그런 말은 피식 웃거나 하는 것도 정상인데···! 당신은 정말 비정상이예요! 알아욧!?’
-‘알다마다.’
-‘보통 제가 이러면 화내는 것도 당연한 거라고요. 이 모습만 15살인 아저씨야아아!’
-‘시간상 내가 27살이고 너가 나보다 한 살 어리니까·· 그럼 넌 아줌마라고 해도···.’
-‘아 진짜 짜증나게 하시네.’
-우씨···.
‘아무튼 들어봐요. 다시 한 번, 머릿속에 깊게 기억해놓으시라고요! 가끔은 감정대로 맘가는 대로 즐기라고요! 인생을!’
“···· 그래.”
유진은 조금 길게 회상을, 그리고 현실에서 잃어버린 그녀는 매우 길게 뚫어다 보며 결심조차 하지 않은 채 단순히 몸을 일으켰다.
[특별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이젠 전처럼 완벽하게 돌아온. 그런 감정없는 목소리만이 진동하는 메시지가 내게 말을 걸었지만.
아까와 다르기에 의심스럽다는 이성은 잠재운 채 곧장, 단 1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서.
“받겠어.”
무엇인지 모를 그 ‘특별 보상’이라는 걸.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난 [YES]를 눌렀다.
단지, 그녀만이 돌아와 줬으면 하는 마음을 깊게 빌며.
피부는 붉게 물들고, 태양은 가라앉았으며, 시야는 죽어갔다.
아니, 난 처음부터 죽어있던 걸 수도 있겠다. 난 ‘그런 놈’이니까.
그러나ㅡ.
‘살만한 곳이었지.’
어린나이로 인해 차별받고, 인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이 더러운 ‘탑’에서 희망이 담긴 말을 내뱉는다니 참으로 웃기다.
허나 웃기지만···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것 같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겐 한 여자가 있었으니까. 누구도 나이를 먹지 않는 이 공간에서 우리 둘끼리 어린 모습을 유지한 채 무려 10년 동안 위기를 극복했으니까.
단지, 그 시간동안 서로를 바라보며ㅡ
사랑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사랑이 시들어 버린다면.
“안, 돼··· 하연아·· 제발, 제발···! 너가 없으면 난···.”
이곳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 없어져, 내 모든 게.
‘무너져.’
단 한 방울도 안 남고 증발해버릴 거야.
내 마음이, 내 아픔이···· 구름이 되어 내릴 거야 이 감정에···,
그때였다.
“···· 유진, 울지 말아요.”
그렇게 눈물이 뚝, 뚝 떨어지는 걸 보면 내 맘이 너무 아프잖아.
울컥해 버릴 것 같잖아.
안하연은 웃지 못했다.
웃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 상황이, 그와 헤어진다는 이 슬픔이 그녀의 감정을 요동쳤다.
그야말로 슬픔이었다. 이별이었다. 후련하지 못한 사랑이었다.
무엇보다 뜨겁지만 슬프게 다가오는 사랑.
그게 안하연이 느끼면서도 말해주고 싶었던 감정이었다.
····.
서글퍼지는 침묵 속에서, 그녀가 죽어가는 것을 증명하듯 차가워져가는 피부를 느끼던 유진은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뭔가를 말하듯 눈빛을 흘린다.
단지, 눈빛뿐이었다. 그러나 그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가뿐히 그것도 아주 간단히 알아낼 수 있던 안하연이었다.
눈빛의 내용은 이랬다.
‘내게 원하는 걸 말해.’
마치, 사랑하는 관계라고 묘한.
마치 죽기 전 마지막으로 듣는 부탁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이해한 하연은.
“안아줘요.”
라고, 말했다.
아무런 떨림도 슬픔도 없이 한 글자씩.
‘··· 젠장.’
이 말을 들은 나는, 도저히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아주 약간의 무음에 갑작스레 덮쳐오는 불안감.
“안, 안아줄 거예요?”
만약 자신을 안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유진은 가볍게.
“아니, 그럴 리가.”
라고 답했다. 꽤나 애정을 담은 듯이.
“헤헤··· 그래요. 당신이 내게 그럴 리가 없는데. ·····고마워요.”
“고맙기는. 내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지금껏 널 부려먹기만 했는ㅡ.’
“아뇨. 전 부려 먹힌 적이 없어요. 제가 직접 부린 거죠. 당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 또 맘대로 생각을.”
“뭐 어때요. 사실 굳이 읽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요. 뭘.”
하연은 쿡쿡 웃었다. 죽기 일보직전인 사람이 뭐가 그리 좋다고···.
난 무표정한 상태로 그녀에게서 눈을 땠다.
참으로 그녀에게 미안한 행동이었으나 하연은 알고 있었기에 그런 내 행동을 깔끔히 넘겨댔다.
“정말··· 끈, 질기네요.”
ㅡ저기 있는 ‘마지막 보스’가 다시 한 번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통을 참을 수 없는지 지속적으로 -크릉 -크으응! 하며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고 있는 보스가 우릴 노려봤다.
난 잠시 머뭇거렸다.
이 상황을 어떡해야 라는 생각보단 하연에게 가진 걱정이 내 공격의지보다 앞질렀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그러나.
“절 내려놓아도, 당신이 날 지켜주지 않아도···· 난 괜찮아요.”
그녀는 날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나 보다.
“····고마웠다.”
“헉! 고맙다니. 그 천하의 유진이 제게 고맙다고 한 거예요? 아이고 기뻐라!”
“그리고 좋아했다.”
“····.”
“사랑했고, 행복했고, 너에게 모든 걸 주고 싶었다. 그리고 처음에 동양인 주제라고 했던 건 사과하지. 내가 널 이렇게 원하게 될지 몰랐거든.”
“····그럼 저 외의 동양인은?”
“아직도 내겐 쓰레기뿐이다.”
“하하핳! 그거 참 싫어해야 되는 부분인 건지.”
좋아해야 되는 부분인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행복하게 웃으며 내 두 손을 잡았다. 그녀에게는 이젠 약간의 힘조차 낼 수 없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걸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하연은 약간 미간을 좁혔으나 잠시 후 “상관없겠구나.” 하고 중얼거리고는.
내게 눈빛을 보냈다.
‘제가 뭘 원하는지는··· 잘 아시죠?’
그래, 아주 잘 안다. 이젠 질릴 정도··· 아니, 이런 거라면.
“질릴 일 같은 건 없으려나.”
그녀에게 입술을 내어줬다.
가벼운 입맞춤이 아닌, 마치 새벽빛이 가득한 해변에서나 할 것 같은 그런 진한 키스를 깊게 해댄다.
달콤하기는커녕 쓰라리기만 한. 피 맛을 느끼며 그녀에게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을 이어질도록 아니, 죽기 전까지는 영원히 행복함만 느낄 수 있게.
나의 숨결을 뱉어냈다.
이젠 완전히 차가워진, 그리고 온 몸에 진동이 사라진 그녀를 꽉 안으며.
“···· 제기랄.”
역시ㅡ
“크르으윽! 크릉! 감히·· 감아아아아히!! 이 나를··.”
ㅡ쉽게 되는 법이 없다니까,
-쿠웅!
최종보스가 땅을 벅차고 날아오른다. 과연 저런 상처를 입고도 저 정도 신체능력이라니 이쯤 되니 무서울 정도다.
“나르으으으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반쯤 신체능력이 돌아온 내게는.
“야.”
-콰카카카카쾅!
“넌 최종보스면서 삼류악당 같은 대사를 뱉고 지랄이야?”
단지, 일반 몬스터일 뿐이다.
“커헉! 마, 말도 안 돼는···.”
“말이 안 되긴 왜 안 돼. 그리고 나 원래 이게 정상이거든? 이 망할 저주충 새끼야.”
갑작스레 뒤바뀐 말투는 그 누구 하나 신경 쓰진 않았다만 만약 하연이 내 말을 듣고 있었다면 “그거 병이예요. 병! 중2병일 거라고요!” 라고 했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너 한정이다.” 라고 했겠지.
나는 피식 웃고는 조심스레 내 품에 안겨 있던 하연을 내려놓았다.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듯이, 더 이상 그녀의 맘이 아프지 안 토록.
“····미치겠군.”
몸속에서 요동치는 이 감정은, 심장은 날 미친 듯이 괴롭히고 있는데.
[특성, ‘초월적 정신체제’ 가 당신을 지킵니다.]
머릿속은 그 누구보다 차갑다니.
“쿠어어어어어!”
참으로 짜증나는 일이다.
-콰앙!
이번엔 진심을 담은 주먹질. 분명 내 신체능력을 생각했을 때 이 보스에겐 정말 죽을 맛일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내겐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아서 입을 나불대지만.
뭐, 어쩌겠는가.
“아무리 뭐라 해도, 얼마나 강해지던 안하연이 돌아오는 게 아닌데.”
보스 네가 내 모든 걸 잃게 했다고 하든, 최소한 날 집중적으로 공격했으면 라고하든 간에 그게 의미 없는 말, 행동인 걸 내 머리로 곧장 이해하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너무 미련한 것 같기도 해.
“켁! 케, 케에겍··· 이 인간 같지도 않은 놈··· 인간보다 괴물 같은 노오옴!”
녀석은 지치지도 않는 걸까. 아,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다시 한 번 내게 달려오는 저 모습이 너무 추해보였으니까.
난 그런 그를 힐끔 바라보고는.
“···· 그걸 욕이라 하는 거냐.”
라고 말하며 깊게 아주 깊게···.
하아····.
한숨을 깊게 뱉었다.
여러 가지의 감정이 담긴 한숨이었으나 겉으로 보기엔 누구보다 귀찮아 한다는 듯한 모습이었고. 그런 모습이라는 사실은 이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한 가지. 명확하게 원하는 것이 있었고 그 중 하나가··.
‘이 망할 특성만 없었더라면.’
이었다더라.
-쿠우우웅!
“쿨럭! 케에에에엑! 제, 젠장·· 젠장 제에에에기라라라아알!! 이 비열한 인간이···.”
“···· 비열?”
내가 잘 못 들었나? 비열? 비열하다고?
“웃기는군.”
-콰직!
그의 발을 강하게 밟았다.
옛날처럼 힘조절 할 필요 없다는 듯이 미친 듯이, 온 힘을 담아.
더욱 더 강하게.
-쾅, 쾅, 쾅, 쾅, 콰아앙!
녀석의 비명소리조차 나올 틈새 없이.
“어때.”
아직도 너가.
“내가 비열하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너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나.”
“·····.”
그래····.
“말할 수 없겠지.”
이미·· 죽은 자이니까.
그때.
-띠링!
[업적, ‘최후의 발판’을 달성하셨습니다. 앞으로의 남은 업적은 없습니다!]
[특별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 글쎄. 집이나 보내주던가. 아니면···.”
유진은 입술을 씹었다. 어떻게든 슬프다는 표정을 내보이기에 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감정을 요동쳤다.
그리고 그 노력이 통했던 것일까.
“아···. 아아아·· 아··! 난··!”
지금껏 단 한 번도 내게 내리지 못했던.
이 어두운 슬픔이 내게 내려왔다.
-투, 툭툭···.
땅바닥에 눈물을 떨어뜨리며.
그러면서 생각한다.
비참하게도.
‘나는.’
도대체 왜, 왜 그랬지 못했지?
“왜 살리지 못했던 거지···?”
이렇게 강하면서도 강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약하다. 미친 듯이 약해.
우울할 정도로, 난 평생 우울해진다는 생각조차 못했는데 이런 끔찍하다고 불리는 ‘탑’에서도 나는 누구보다 이성적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착각이었어. 단지 내가 생각했던 결정은···.
“나의 이 거지같은 특성 때문이었어.”
이 *같은 새끼 때문에···!! 난··.
[특별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유진 플레이어님.]
ㅡ!
‘어?’
잠시만, 뭔가가.
유진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이 어두컴컴한.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위를 바라봤다.
단지, 매일 같이 보았던 작은 ‘푸른 목소리, 메시지’를 보기 위해서.
“···· 특별 보상을···?”
뭐야.
이상하잖아.
“너, 왜 마치 감정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건데?
[···· 대답해주세요.]
이 멸망한 탑에서 유일한 인간인 당신에게 달린 한 가지 선택. 결정.
[특별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
지구의 일생과 살아온 날짜가 비슷해져가는 나에게 들려온 그 말은.
‘무척이나··.’
어색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만약 지금껏 나쁜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이가 갑작스레 내가 잘해준다면 드는 생각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의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더더욱 머리가 골치 아파질 수밖에 없다. 솔직히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기분은 아니었다. 이 10년 동안 매번 겪었던, 익숙해지다 못해 당연하게 여기는 기분이었으니까.
‘뭐, 그것도···.’
유진은 하연에게 눈빛을 보내며.
저 여자 덕에 바뀌었지만.
“후우···.”
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내 머릿속은 이미 복잡하다. 나 참 이 특성을 얻을 후 이런 적은 단연코 없었는데···.
어떡하지.
어찌해야 할까.
믿을까?
좀 더 고민해볼까. 차라리 조금이라도 조사를 해본다면ㅡ.
-‘그래도 가끔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걸 그만둬 보시는 게 어때요?’
-‘왜지?’
-‘아니·· 뭐 꼭 이성적으로 생각한다고 사람이 차가워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언제든 따뜻한 사람이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면 그만큼 의지도 커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유진은 맨날 하지 않아도 될 일은 안 하고 해야 되는 것만 하는 성격. 딱 그렇잖아요?’
-‘당연한 거다. 그리고, 지금 네가 내게 그런 말을 뱉는 이유는 좀 더 자신에게 감정적으로 다가와 줬으면 좋겠다는 의미인가? 그것도 남자로서의?’
-‘···· 우씨, 너무하시네. 솔직히 당신 남의 생각 읽는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는 거 아네요? 어찌 날 이리 잘 알까.’
-‘다시 말하지만 당연한 거다. 몇 년 동안 널 봐왔으니···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내게 얼굴을 붉히고 있는 걸 보니 더더욱 당연한 것이겠지.’
-‘끄으으··· 보통 그런 말은 피식 웃거나 하는 것도 정상인데···! 당신은 정말 비정상이예요! 알아욧!?’
-‘알다마다.’
-‘보통 제가 이러면 화내는 것도 당연한 거라고요. 이 모습만 15살인 아저씨야아아!’
-‘시간상 내가 27살이고 너가 나보다 한 살 어리니까·· 그럼 넌 아줌마라고 해도···.’
-‘아 진짜 짜증나게 하시네.’
-우씨···.
‘아무튼 들어봐요. 다시 한 번, 머릿속에 깊게 기억해놓으시라고요! 가끔은 감정대로 맘가는 대로 즐기라고요! 인생을!’
“···· 그래.”
유진은 조금 길게 회상을, 그리고 현실에서 잃어버린 그녀는 매우 길게 뚫어다 보며 결심조차 하지 않은 채 단순히 몸을 일으켰다.
[특별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이젠 전처럼 완벽하게 돌아온. 그런 감정없는 목소리만이 진동하는 메시지가 내게 말을 걸었지만.
아까와 다르기에 의심스럽다는 이성은 잠재운 채 곧장, 단 1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서.
“받겠어.”
무엇인지 모를 그 ‘특별 보상’이라는 걸.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난 [YES]를 눌렀다.
단지, 그녀만이 돌아와 줬으면 하는 마음을 깊게 빌며.
작가의 말
재밌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