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Jasmint
조회 : 932 추천 : 0 글자수 : 4,982 자 2022-10-13
달빛도 들어오지 않는 한 창고 안. -깜빡깜빡하는 고장 난 조명 밑으로 피와 시체로 잔뜩 더럽혀진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위에 묶여서 덜덜 떨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방면 여유롭게 지포 라이터를 열어다 닫았다 만을 반복하며 덜덜 떨고 있는 사람을 내려다보는 사람 즉 문요한이 있었다.
문요한은 아무 말도 없이 그 사람을 내려다보더니 이내 이것마저 질렸는지 담배를 꺼내 손에 쥐었다. 하지만 필 생각은 없었는지 그저 손에만 쥐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곧 이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형씨. 내가 그 쪽한테 어려운 거 부탁했어요?”
청테이프로 입이 막혀있는 사람이 대답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문요한도 대답을 듣고 싶어서 한 질문은 아니기에 그냥 자기가 할 말을 이어갔다.
“있잖아요, 나는 형씨한테 간단한 일을 부탁했어요.”
문요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런데 형씨는 그거 하나 못 해냈어요. 그래서 제가 그에 대한 벌로 형씨 아들~, 을 죽이려고 하거든요?”
남자의 눈이 심하게 요동치더니 이내 막힌 소리를 내며 묶인 몸으로 발악했다. 문요한은 그쪽을 조금 더 즐겼다. 이길 수도 없으면서 끝까지 발악하는 모습, 이것보다 재미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 가 문요한의 생각이니까 말이다.
문요한이 담배에 라이터 불을 붙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얼굴을 가린 한 청년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문요한은 제 장갑을 낀 손으로 남성의 테이프를 뗐다.
“봐봐요, 형씨가 일을 잘 못 해서 형씨 아들이 잡혀 왔잖아요. 아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
“저놈이 내 아들이라는 증거도 없잖아.”
남성은 문요한을 향해 -퉤 하고 침을 뱉었다. 그 모습을 본 문요한은 -피식하고 웃으며 얼굴을 가리고 있는 천을 걷으라며 손짓했다.
천을 벗기자 남성의 아들인 서한재가 얼굴을 드러냈다. 서한재와 문요한의 시선이 맞물리자 문요한은 -허, 하는 웃음소리를 냈고, 서한재의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허, 형씨 아들이 진짜 서한재였어? 나는 이름만 같은 줄 알았는데... 이게 웬 떡이래.”
문요한은 -성큼성큼 걸어 서한재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자신이 그토록 찾던 그 서한재였다. 한때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그 서한재가 맞았다. 문요한은 서한재의 턱을 잡아, 들어 올렸다.
“그래, 그러면 되겠네. 있잖아, 형씨~. 이렇게 하지 않을래?”
남성이 어이없다는 듯한 눈으로 문요한을 바라봤다.
“형씨 아들을 나한테 주면, 형씨 살려줄게. 어때?”
이것은 분명히 협박이었다. 거래라는 감투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협박이었다. 서한재를 자신에게 달라는 것, 남성이 거절할 방법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남성을 아무 말도 없었다.
“우와~, 한재야. 너희 아빠가 너를 버렸어.”
문요한이 서한재 입에 붙은 테이프를 뗐다.
“넌 진짜 그때나 지금이나 제정신이 아니구나?”
“칭찬 고마워, 자기야.”
문요한은 가볍게 서한재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서한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문요한은 다 피워 꺼져가는 담배꽁초를 구둣발로 밟아 죽였다. 그리고는 고장 난 전등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짝하는 문요한의 박수 소리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온 창고 안을 울렸다.
“좋았어. 우리 자기는 나랑 같이 집에 가고, 형씨는 지하로 가자.”
‘지하’라는 소리에 남성은 겁에 질려 차라리 자신을 죽이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문요한이 말하는 ‘지하’라는 곳은 흔히 말해 차라리 죽는 게 더 편한 곳이다. 그걸 서한재가 알리 만무했고, 서한재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도 버거웠다.
문요한은 자기 구두로 남성의 복부를 가격했다. 남성이 -컥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기절했다. 창고의 안은 다시 한번 조용해졌다. 서한재의 절규만 빼면 말이다.
자신의 가족이 당하는 것을 본 그 누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서한재는 자신을 잡고있는 사람들을 떨쳐내고는 곧장 문요한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문요한에게 뒷머리를 잡아서 당겨지는 바람에 멈추어 설 수 밖에 없었다.
“있잖아, 자기야.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거야. 내가 지금 자기를 만나서 너무 기쁘거든? 그래서 저 형씨도 살려주는 거고, 만약 잡혀 온 애가 자기가 아니었다면 여기서 둘 다 죽었어, 알아?”
서한재에게 그건 알 바가 아니었다. 차라리 둘 다 죽이면 죽였지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내몰려고 하고 있는데 그런 게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제 손에 수갑만 없었어도 서한재는 이미 문요한을 때리고도 남았다.
“왜, 우리 고등학교 때 좋았잖아. 안 그래?”
“그래, 네 덕에 편하게 보내기는 했지. 네가 지시한 거니까.”
“오... 자기 멍청한 줄 알았는데 알고 있었나 봐?”
“네 덕에 반쯤 죽을 뻔했는데 어떻게 몰라.”
“확실히... 그 점은 내 잘못이지만 그 상황을 즐긴 건 자기잖아?”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 들어주지, 작작 해.”
“헐... 자기야, 나 상처받았어.”
문요한은 잔뜩 서운한 투로 말했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서한재는 문요한의 이런 모습이 싫었다. 저를 위한 척하면서 결국 자신이 즐기기 위한 그 모습, 이제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다.
“자기 아직 담배 피워?”
서한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시가 최고의 대처법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문요한은 그런 서한재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자기야, 혀 깨물고 죽기라도 하게?”
서한재는 -허, 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네 머리에는 그런 것밖에 안 들었냐?”
“아니 보통 아무 말도 안 하면 혀 깨물길래. 우리 자기도 그러나 싶어서.”
“언제까지 자기라고 부를 생각이야?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아니, 우리는 오늘부터 아주 가까운 사이야, 연인보다 더.”
“이쪽에서 거절할게.”
“너희 아빠 대신 널 데려온 거니까 그 거절은 다시 거절할 게~.”
서한재는 거의 반쯤 포기한 듯싶었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었다. 자신만의 세계가 아주 확실하신 문요한에게 자신의 하소연이 통할 리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요한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손발이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서한재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 가볍게 안아 들기는 했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보다는 가벼워진 느낌에 눈썹을 살짝 들썩였다.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떠버린 서한재는 놀라 자기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그리곤 곧 본인의 상황을 파악한 뒤 문요한을 향해 본인을 내려놓으라며 소리쳤다.
"악!"
문요한은 서한재의 말을 듣고 잠깐 고민하더니 그대로 서한재를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고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제 엉덩이를 만졌다. 이 상황을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진짜 자신을 이렇게 내려놓을 줄은 몰랐기에 당황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왜~? 내려놓으라고 해서 내려놓은 건데?"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의 문요한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바라보던 서한재는 어이없다는 듯한 코웃음을 쳤다. 서한재는 문요한의 저런 성격도 싫었다.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수한 척하는 그 모습이 말이다.
서한재가 문요한의 얼굴을 째려보자 문요한은 그 표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서한재의 앞에 쪼그려 앉아 그의 얼굴을 감상했다.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던 문요한은 이번에는 또 무슨 생각이 떠오른 것인지 천천히 입을 뗐다.
"있잖아, 자기야. 내기하지 않을래?"
"내기? 무슨 내기?"
"서한재가 문요한을 다시 사랑할지 안 할지."
"그럼, 내가 이기겠네. 하자."
서한재는 자신이 말하고도 아차 싶었다. 내기의 내용만 듣고 그 가벼운 도발에 넘어간 것이었으니 말이다.
문요한은 이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건지 내기 성립. 이라는 말과 함께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에게서 종이와 펜 그리고 작은 협탁을 가져와 서한재의 맞은편에 앉아 받아온 것을 세팅하고는 본인이 원하는 내기의 조건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 이 정도면 마음에 들지?"
문요한이 다 썼다며 보여준 내기의 조건은 이러했다.
'문요한과 서한재는 한 집에서 일 년간 같이 동거한다.'
'서한재가 내기에서 이길 시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주고, 일절 터치하지 않는다.'
'문요한이 내기에서 이길 시 아버지는 돌려주되, 서한재는 문요한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영원히.'
찬찬히 이 내용들을 내려다보던 서한재는 진심이냐는 얼굴로 문요한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신체접촉은 서한재가 원할 때만 허락한다. 추가 조항은 둘의 합의로 새로 작성한다. 서한재가 도망가지 않는 대신 그 누구도 서한재를 감금 및 구속하지 못한다."
문요한은 묵묵히 서한재가 내세운 조건들을 받아 적었다. 자신에게도 그리 나쁜 조항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첫 번째만 빼고는 말이다.
"문요한은 서한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뭘 당연한 걸 가지고..."
"마지막으로."
"응~."
"서한재와 문요한은 각방을 사용한다."
-툭, 문요한은 조건을 받아적다 말고 그대로 자신의 펜을 떨궜다. 진심인가, 진짜 정말로 그러는 건가. 재차 확인 겸 서한재의 얼굴을 바라봤지만, 너무 확고한 탓에 하는 수 없이 그 조항도 울며 겨자 먹기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문요한은 나름 서한 쟤에게 만은 약하기 때문인 것도 있었고, 헤어지기 싫은 마음이 제일 컸던 탓도 있다.
"이걸로 내기 성립인 거지?"
"어, 일단은."
문요한은 계약서 하단에 서명란을 만들고는 서명했다. 그리고는 내기 내용에 따라 묶여있던 서한재를 풀어주었고, 서한재 또한 서명란에 서명했다.
"일 년간 잘 부탁해, 자기야~?"
"아빠 때문에 하는 거야..."
"물론 알지~."
여전히 문요한은 웃는 얼굴이었다. 서한재 또한 여전히 기분 나쁜 얼굴이었다.
문요한은 아무 말도 없이 그 사람을 내려다보더니 이내 이것마저 질렸는지 담배를 꺼내 손에 쥐었다. 하지만 필 생각은 없었는지 그저 손에만 쥐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곧 이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형씨. 내가 그 쪽한테 어려운 거 부탁했어요?”
청테이프로 입이 막혀있는 사람이 대답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문요한도 대답을 듣고 싶어서 한 질문은 아니기에 그냥 자기가 할 말을 이어갔다.
“있잖아요, 나는 형씨한테 간단한 일을 부탁했어요.”
문요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런데 형씨는 그거 하나 못 해냈어요. 그래서 제가 그에 대한 벌로 형씨 아들~, 을 죽이려고 하거든요?”
남자의 눈이 심하게 요동치더니 이내 막힌 소리를 내며 묶인 몸으로 발악했다. 문요한은 그쪽을 조금 더 즐겼다. 이길 수도 없으면서 끝까지 발악하는 모습, 이것보다 재미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 가 문요한의 생각이니까 말이다.
문요한이 담배에 라이터 불을 붙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얼굴을 가린 한 청년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문요한은 제 장갑을 낀 손으로 남성의 테이프를 뗐다.
“봐봐요, 형씨가 일을 잘 못 해서 형씨 아들이 잡혀 왔잖아요. 아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
“저놈이 내 아들이라는 증거도 없잖아.”
남성은 문요한을 향해 -퉤 하고 침을 뱉었다. 그 모습을 본 문요한은 -피식하고 웃으며 얼굴을 가리고 있는 천을 걷으라며 손짓했다.
천을 벗기자 남성의 아들인 서한재가 얼굴을 드러냈다. 서한재와 문요한의 시선이 맞물리자 문요한은 -허, 하는 웃음소리를 냈고, 서한재의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허, 형씨 아들이 진짜 서한재였어? 나는 이름만 같은 줄 알았는데... 이게 웬 떡이래.”
문요한은 -성큼성큼 걸어 서한재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자신이 그토록 찾던 그 서한재였다. 한때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그 서한재가 맞았다. 문요한은 서한재의 턱을 잡아, 들어 올렸다.
“그래, 그러면 되겠네. 있잖아, 형씨~. 이렇게 하지 않을래?”
남성이 어이없다는 듯한 눈으로 문요한을 바라봤다.
“형씨 아들을 나한테 주면, 형씨 살려줄게. 어때?”
이것은 분명히 협박이었다. 거래라는 감투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협박이었다. 서한재를 자신에게 달라는 것, 남성이 거절할 방법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남성을 아무 말도 없었다.
“우와~, 한재야. 너희 아빠가 너를 버렸어.”
문요한이 서한재 입에 붙은 테이프를 뗐다.
“넌 진짜 그때나 지금이나 제정신이 아니구나?”
“칭찬 고마워, 자기야.”
문요한은 가볍게 서한재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서한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문요한은 다 피워 꺼져가는 담배꽁초를 구둣발로 밟아 죽였다. 그리고는 고장 난 전등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짝하는 문요한의 박수 소리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온 창고 안을 울렸다.
“좋았어. 우리 자기는 나랑 같이 집에 가고, 형씨는 지하로 가자.”
‘지하’라는 소리에 남성은 겁에 질려 차라리 자신을 죽이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문요한이 말하는 ‘지하’라는 곳은 흔히 말해 차라리 죽는 게 더 편한 곳이다. 그걸 서한재가 알리 만무했고, 서한재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도 버거웠다.
문요한은 자기 구두로 남성의 복부를 가격했다. 남성이 -컥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기절했다. 창고의 안은 다시 한번 조용해졌다. 서한재의 절규만 빼면 말이다.
자신의 가족이 당하는 것을 본 그 누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서한재는 자신을 잡고있는 사람들을 떨쳐내고는 곧장 문요한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문요한에게 뒷머리를 잡아서 당겨지는 바람에 멈추어 설 수 밖에 없었다.
“있잖아, 자기야.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거야. 내가 지금 자기를 만나서 너무 기쁘거든? 그래서 저 형씨도 살려주는 거고, 만약 잡혀 온 애가 자기가 아니었다면 여기서 둘 다 죽었어, 알아?”
서한재에게 그건 알 바가 아니었다. 차라리 둘 다 죽이면 죽였지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내몰려고 하고 있는데 그런 게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제 손에 수갑만 없었어도 서한재는 이미 문요한을 때리고도 남았다.
“왜, 우리 고등학교 때 좋았잖아. 안 그래?”
“그래, 네 덕에 편하게 보내기는 했지. 네가 지시한 거니까.”
“오... 자기 멍청한 줄 알았는데 알고 있었나 봐?”
“네 덕에 반쯤 죽을 뻔했는데 어떻게 몰라.”
“확실히... 그 점은 내 잘못이지만 그 상황을 즐긴 건 자기잖아?”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 들어주지, 작작 해.”
“헐... 자기야, 나 상처받았어.”
문요한은 잔뜩 서운한 투로 말했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서한재는 문요한의 이런 모습이 싫었다. 저를 위한 척하면서 결국 자신이 즐기기 위한 그 모습, 이제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다.
“자기 아직 담배 피워?”
서한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시가 최고의 대처법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문요한은 그런 서한재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자기야, 혀 깨물고 죽기라도 하게?”
서한재는 -허, 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네 머리에는 그런 것밖에 안 들었냐?”
“아니 보통 아무 말도 안 하면 혀 깨물길래. 우리 자기도 그러나 싶어서.”
“언제까지 자기라고 부를 생각이야?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아니, 우리는 오늘부터 아주 가까운 사이야, 연인보다 더.”
“이쪽에서 거절할게.”
“너희 아빠 대신 널 데려온 거니까 그 거절은 다시 거절할 게~.”
서한재는 거의 반쯤 포기한 듯싶었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었다. 자신만의 세계가 아주 확실하신 문요한에게 자신의 하소연이 통할 리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요한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손발이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서한재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 가볍게 안아 들기는 했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보다는 가벼워진 느낌에 눈썹을 살짝 들썩였다.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떠버린 서한재는 놀라 자기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그리곤 곧 본인의 상황을 파악한 뒤 문요한을 향해 본인을 내려놓으라며 소리쳤다.
"악!"
문요한은 서한재의 말을 듣고 잠깐 고민하더니 그대로 서한재를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고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제 엉덩이를 만졌다. 이 상황을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진짜 자신을 이렇게 내려놓을 줄은 몰랐기에 당황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왜~? 내려놓으라고 해서 내려놓은 건데?"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의 문요한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바라보던 서한재는 어이없다는 듯한 코웃음을 쳤다. 서한재는 문요한의 저런 성격도 싫었다.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수한 척하는 그 모습이 말이다.
서한재가 문요한의 얼굴을 째려보자 문요한은 그 표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서한재의 앞에 쪼그려 앉아 그의 얼굴을 감상했다.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던 문요한은 이번에는 또 무슨 생각이 떠오른 것인지 천천히 입을 뗐다.
"있잖아, 자기야. 내기하지 않을래?"
"내기? 무슨 내기?"
"서한재가 문요한을 다시 사랑할지 안 할지."
"그럼, 내가 이기겠네. 하자."
서한재는 자신이 말하고도 아차 싶었다. 내기의 내용만 듣고 그 가벼운 도발에 넘어간 것이었으니 말이다.
문요한은 이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건지 내기 성립. 이라는 말과 함께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에게서 종이와 펜 그리고 작은 협탁을 가져와 서한재의 맞은편에 앉아 받아온 것을 세팅하고는 본인이 원하는 내기의 조건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 이 정도면 마음에 들지?"
문요한이 다 썼다며 보여준 내기의 조건은 이러했다.
'문요한과 서한재는 한 집에서 일 년간 같이 동거한다.'
'서한재가 내기에서 이길 시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주고, 일절 터치하지 않는다.'
'문요한이 내기에서 이길 시 아버지는 돌려주되, 서한재는 문요한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영원히.'
찬찬히 이 내용들을 내려다보던 서한재는 진심이냐는 얼굴로 문요한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신체접촉은 서한재가 원할 때만 허락한다. 추가 조항은 둘의 합의로 새로 작성한다. 서한재가 도망가지 않는 대신 그 누구도 서한재를 감금 및 구속하지 못한다."
문요한은 묵묵히 서한재가 내세운 조건들을 받아 적었다. 자신에게도 그리 나쁜 조항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첫 번째만 빼고는 말이다.
"문요한은 서한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뭘 당연한 걸 가지고..."
"마지막으로."
"응~."
"서한재와 문요한은 각방을 사용한다."
-툭, 문요한은 조건을 받아적다 말고 그대로 자신의 펜을 떨궜다. 진심인가, 진짜 정말로 그러는 건가. 재차 확인 겸 서한재의 얼굴을 바라봤지만, 너무 확고한 탓에 하는 수 없이 그 조항도 울며 겨자 먹기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문요한은 나름 서한 쟤에게 만은 약하기 때문인 것도 있었고, 헤어지기 싫은 마음이 제일 컸던 탓도 있다.
"이걸로 내기 성립인 거지?"
"어, 일단은."
문요한은 계약서 하단에 서명란을 만들고는 서명했다. 그리고는 내기 내용에 따라 묶여있던 서한재를 풀어주었고, 서한재 또한 서명란에 서명했다.
"일 년간 잘 부탁해, 자기야~?"
"아빠 때문에 하는 거야..."
"물론 알지~."
여전히 문요한은 웃는 얼굴이었다. 서한재 또한 여전히 기분 나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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