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stock
조회 : 820 추천 : 0 글자수 : 5,215 자 2022-10-19
문요한을 따라 올라탄 차는 차 본인에게서 나는 소리 말고는 그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굳이 귀찮게 문요한과 이야기할 필요성도 없었고, 그냥 내기의 조건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와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었다.
"자기야."
문요한이 조용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
"좀 잘게, 때리지는 마."
그 말 이후 문요한은 창가에서 자리를 옮겨 서한재의 옆에 붙어 앉아 서한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서한재는 그런 문요한의 뻔뻔하다 못해 얼굴에 철판을 깐듯한 태도에 진심으로 한 대 때리려 했다. 하지만 그놈의 잘생긴 외모가 뭐라고 눈에 밟혀 결국 한숨을 쉬며 들었던 손을 내렸다.
서한재는 제 옆을 지나가는 가로등과 건물, 사람, 차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때웠다. 이대로 자고 싶기는 했지만, 자신이 자는 사이 일어난 문요한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문요한의 비서는 문요한의 집에 도착했는지 차를 세우고는 차 뒷좌석을 향해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문요한의 비서가 먼저 차에서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었고, 서한재는 문요한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며 문요한을 깨웠다.
"... 자기야, 때리지 말라 그랬잖아."
"그럼 다정하게 깨우리?"
서한재가 먼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다정하게 깨워주지, 그래~?"
서한재의 뒤로 문요한이 따라 내리며 말했다.
문요한은 다정하게 서한재의 허리를 감싸며 방긋 웃었고, 서한재는 제 허리를 감싼 손을 -탁 치며 새침하게 문요한의 비서를 따라 걸어갔다.
문요한은 서한재에게 맞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이게 맞나... 싶었다. 그러는 와중에 서한 재가 안 따라오면 두고 간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문요한은 -피식 웃으며 서한재의 뒤를 따라갔다.
"근데, 자기야."
"응?"
서한재는 문요한의 말에 고개를 돌려 문요한을 바라봤다.
"내 집으로 가는데 왜 자기가 날 두고 가...?"
"음... 그냥 네가 너무 벙쪄있길래."
그리고는 설마 진짜 그게 궁금했나 싶은 서한재는 잠시 생각하다가 금방 문요한이 생각보다 순수하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는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문요한과 집에 올라갈 때까지 이래저래 티격태격하며 문요한의 집에 들어간 서한재는 뭔지 모를 한기를 느꼈다.
사람이 직접 꾸미고, 정리한 것이 분명함에도 뭔가 귀신이 실 것만 같은 그런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요한."
서한재가 거실에 들어선 문요한을 불러세웠다.
"응?"
문요한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뒤로 돌아 서한재를 바라봤다.
"너 여기 사는 거 맞아?”
“뭐... 일단은?”
어깨를 으쓱이는 문요한을 보며 서한재는 진짜 얘가 이상한 놈이 맞는구나 싶었다. 이게 어딜 봐서 사람이 사는 곳이겠는가, 아무리 봐도 그냥 모델링 된 집이었다.
문요한의 집을 둘러보던 서한재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은 천장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자 2층, 그러니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보였다.
복층, 움직이기 싫어하는 문요한과는 맞지 않는 집의 구조였다.
“야, 여기 진짜 네 집 맞아?”
“... 사실, 그냥 회사에서 준 집이야.”
그럼 그렇지, 서한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밥 먹을 때 말고는 절대 2층으로 올라오지 말라는 경고만을 남긴 뒤 홀연히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서한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졸지에 한 집에서 다른 집 생활을 하게 된 문요한은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는 그냥 거실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앉아 뭔가를 고민하던 문요한은 핸드폰을 집어 들어 자신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서님.”
-네?
“형씨 아직 지하에 안 들어갔죠?”
-네, 이제 막 가는 길입니다.
“그... 지하 말고 그냥 잘 가둬두고 잘 먹여요. 자기가 내건 조건이 마음에 걸려서 못 넣겠어요.”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네.”
-뚝, 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생각보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일에 문요한은 그냥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문요한은 그냥 지금 이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서한재와 붙어있을 수 없는 것까지 전부 말이다.
눈을 감고 생각하고 있자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 서한재 내려온다.’
문요한은 젖히고 있던 고개를 다시 올리고는 계단을 바라봤다. 그리곤 자신의 생각대로 밑으로 내려오는 서한재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 징그러운 얼굴 좀 치우지?”
“헐... 어떻게 자기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ㄹ... 야.”
문요한과 티격태격하던 서한재가 냉장고 문을 열더니 사색이 되어 문요한을 바라봤다.
“응?”
갑작스레 굳어진 서한재의 목소리에 문요한은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달고는 서한재에게로 다가가 냉장고 안을 바라봤다.
“왜... 냉장고 안에 아무것도 없냐?”
“어? 그야... 난 여기에서 잠만 자니까?”
“너 또 밥 안 챙겨 먹고 다니지?”
문요한은 그제야 문요한에게 항상 자상하고, 다정한 서한재는 밥 잘 먹는 문요한 한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한재를 만나기 전의 문요한은 정말 살기 위해 밥을 먹었다. 그래서 지금보다는 조금 체구가 작았었다.
그러다 서한재를 만나고 아무런 이유 없이 음식들을 먹기 시작하며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는 것도 함께 생각났다.
문요한은 조심히 뒷걸음질 치며 도망갈 도주로를 만들었다. 금방 서한재에게 손목을 잡혀 실패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내가 너 밥 잘 챙겨 먹으라고 몇 번을 말해, 몇 번을.”
“그, 저... 자기야...”
“안 되겠다. 너 당장 따라 나와.”
서한재는 화가 많이 난 듯 문요한을 끌고 집 밖으로 나왔다.
“야.”
“네?”
서한재의 낮고, 화난 말투에 문요한은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주변에 식자재마트 어디 있어.”
“그거... 아마, 차 타고 나가야...”
“차 키 내놔.”
“네...”
문요한은 자신에게 차 키를 내놓으라고 손을 내민 서한재의 손에 자신의 차 키를 건냈다.
문요한이 알려준 차의 운전석에 올라탄 서한재와 얌전히 조수석에 올라탄 문요한은 함께 식자재마트로 향했다.
식자재마트로 향하는 차 안은 생각보다 더 조용했다. 엔진소리가 너무 시끄러울 지경이었다.
빨간불에 멈춰선 서한재는 고개를 돌려 문요한을 바라봤다.
“문요한.”
“응?”
“음식 취향 바뀐 거 있냐?”
“없는데?”
“그래.”
문요한은 내심 감동했다. 자신의 음식 취향을 다 기억하고 있는 서한재에 역시 자신에게 미련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서한재에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옛날이기는 하지만 열심히 잡아놓은 문요한의 하루 삼시세끼가 다 망가진 것이 그 화근이었다.
이것만큼은 헤어져도 지킬 줄 알았는데 그냥 자신에게 맞춰주고 있다는 것뿐이었다는 것이 충격적이기도 했다.
문요한의 음식 취향은 기억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단순하면서도 까다로운 그의 취향을 까먹는 것이 더 이상했다. 옛날에는 그걸 다 외워서 음식을 골라 데이트할 때마다 먹었으니까 말이다.
식자재마트에 도착한 둘은 아무 말도 없이 식자재를 카트에 담았다. 카트 안에는 전부 문요한의 취향인 식자재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문요한은 문득 서한재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 대한 결론은 자신은 서한재가 좋아하는 음식을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자기야”
아까보다 기분이 더 다운된 문요한이 신중하게 식자재를 고르던 서한재를 불러세웠다.
“응?”
여전히 식자재를 보던 서한재가 문요한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는 문요한의 물음에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식자재 고르는 것에 집중한 서한재가 문요한의 목소리 톤을 캐치하는 것은 어려웠다.
“자기는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문요한의 물음에 식자재에 손을 뻗던 서한재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서한재는 놀란 토끼 눈으로 문요한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연애하는 내내 자신이 제일 듣고 싶어 하는 말이었다. 좋아하는 음식 말이다.
계속 문요한의 입맛에만 맞추던 서한재는 항상 음식을 몇 입 먹지도 못하고 내려놓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제야 그게 궁금해?”
“...”
“뭐... 딸기?”
잠시 고민하던 서한재가 내놓은 답은 딸기였다. 문요한은 딸기라는 소리를 듣더니 그 자리에서 굳었다.
“뭐야, 왜 그래.”
“무슨 대답이 그렇게 귀여워?...”
“지X.”
문요한의 예상치 못한 얼빠진 대답에 서한재는 외마디 욕을 내뱉고는 문요한을 버려둔 채 급히 자리를 떴다.
문요한은 급히 자리를 뜨는 서한재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급하게 과일코너에 가 딸기를 집어 들고는 카트에 딸기를 집어넣고 서한재를 바라보며 웃었다.
“ㅁ, 뭐.”
“아무것도~, 오늘 저녁 뭐야?”
누가 보면 몇 년은 사귄 커플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음... 파스타랑 스테이ㅋ... 손때.”
“넵.”
저녁을 고민하는 서한재의 어깨에 조심히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곧 떨어진 불호령에 조용히 손을 떼고는 멋쩍은지 뒷짐을 지고는 서한재의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지 식자재마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가격이 많이 나왔다.
서한재는 본인이 내는 돈 아니라며 문요한의 카드로 시원하게 긁고는 한층 기분 좋아진 듯 짐을 문요한에게 떠넘기고는 차로 향했다.
“왜 나한테 줘?...”
“내가 밥 해주잖아.”
“... 그래.”
툴툴거리는 것 치고는 생각보다 얌전하게 차 뒷좌석에 짐을 싣고는 운전석에 올라탄 문요한은 서한재가 안전벨트까지 매는 것을 보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집에 와인 있는데 같이 먹을래?”
“개수작 부리지 마.”
“왜~, 같이 먹으면 분위기나고 좋잖아.”
“너 같으면 먹고 싶겠냐? 같이 밥 먹는 것도 싫구만...”
“우리 자기는 옛정이 너무 많아서 큰일이야~.”
서한재는 차마 문요한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옛정이 많은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자신은 혼자 먹을 것만 사 와서 먹고 있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서한재는 그냥 조용히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또 한 번 두 사람 사이의 커다란 침묵이 생겨났다.
굳이 귀찮게 문요한과 이야기할 필요성도 없었고, 그냥 내기의 조건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와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었다.
"자기야."
문요한이 조용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
"좀 잘게, 때리지는 마."
그 말 이후 문요한은 창가에서 자리를 옮겨 서한재의 옆에 붙어 앉아 서한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서한재는 그런 문요한의 뻔뻔하다 못해 얼굴에 철판을 깐듯한 태도에 진심으로 한 대 때리려 했다. 하지만 그놈의 잘생긴 외모가 뭐라고 눈에 밟혀 결국 한숨을 쉬며 들었던 손을 내렸다.
서한재는 제 옆을 지나가는 가로등과 건물, 사람, 차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때웠다. 이대로 자고 싶기는 했지만, 자신이 자는 사이 일어난 문요한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문요한의 비서는 문요한의 집에 도착했는지 차를 세우고는 차 뒷좌석을 향해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문요한의 비서가 먼저 차에서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었고, 서한재는 문요한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며 문요한을 깨웠다.
"... 자기야, 때리지 말라 그랬잖아."
"그럼 다정하게 깨우리?"
서한재가 먼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다정하게 깨워주지, 그래~?"
서한재의 뒤로 문요한이 따라 내리며 말했다.
문요한은 다정하게 서한재의 허리를 감싸며 방긋 웃었고, 서한재는 제 허리를 감싼 손을 -탁 치며 새침하게 문요한의 비서를 따라 걸어갔다.
문요한은 서한재에게 맞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이게 맞나... 싶었다. 그러는 와중에 서한 재가 안 따라오면 두고 간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문요한은 -피식 웃으며 서한재의 뒤를 따라갔다.
"근데, 자기야."
"응?"
서한재는 문요한의 말에 고개를 돌려 문요한을 바라봤다.
"내 집으로 가는데 왜 자기가 날 두고 가...?"
"음... 그냥 네가 너무 벙쪄있길래."
그리고는 설마 진짜 그게 궁금했나 싶은 서한재는 잠시 생각하다가 금방 문요한이 생각보다 순수하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는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문요한과 집에 올라갈 때까지 이래저래 티격태격하며 문요한의 집에 들어간 서한재는 뭔지 모를 한기를 느꼈다.
사람이 직접 꾸미고, 정리한 것이 분명함에도 뭔가 귀신이 실 것만 같은 그런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요한."
서한재가 거실에 들어선 문요한을 불러세웠다.
"응?"
문요한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뒤로 돌아 서한재를 바라봤다.
"너 여기 사는 거 맞아?”
“뭐... 일단은?”
어깨를 으쓱이는 문요한을 보며 서한재는 진짜 얘가 이상한 놈이 맞는구나 싶었다. 이게 어딜 봐서 사람이 사는 곳이겠는가, 아무리 봐도 그냥 모델링 된 집이었다.
문요한의 집을 둘러보던 서한재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은 천장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자 2층, 그러니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보였다.
복층, 움직이기 싫어하는 문요한과는 맞지 않는 집의 구조였다.
“야, 여기 진짜 네 집 맞아?”
“... 사실, 그냥 회사에서 준 집이야.”
그럼 그렇지, 서한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밥 먹을 때 말고는 절대 2층으로 올라오지 말라는 경고만을 남긴 뒤 홀연히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서한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졸지에 한 집에서 다른 집 생활을 하게 된 문요한은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는 그냥 거실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앉아 뭔가를 고민하던 문요한은 핸드폰을 집어 들어 자신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서님.”
-네?
“형씨 아직 지하에 안 들어갔죠?”
-네, 이제 막 가는 길입니다.
“그... 지하 말고 그냥 잘 가둬두고 잘 먹여요. 자기가 내건 조건이 마음에 걸려서 못 넣겠어요.”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네.”
-뚝, 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생각보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일에 문요한은 그냥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문요한은 그냥 지금 이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서한재와 붙어있을 수 없는 것까지 전부 말이다.
눈을 감고 생각하고 있자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 서한재 내려온다.’
문요한은 젖히고 있던 고개를 다시 올리고는 계단을 바라봤다. 그리곤 자신의 생각대로 밑으로 내려오는 서한재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 징그러운 얼굴 좀 치우지?”
“헐... 어떻게 자기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ㄹ... 야.”
문요한과 티격태격하던 서한재가 냉장고 문을 열더니 사색이 되어 문요한을 바라봤다.
“응?”
갑작스레 굳어진 서한재의 목소리에 문요한은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달고는 서한재에게로 다가가 냉장고 안을 바라봤다.
“왜... 냉장고 안에 아무것도 없냐?”
“어? 그야... 난 여기에서 잠만 자니까?”
“너 또 밥 안 챙겨 먹고 다니지?”
문요한은 그제야 문요한에게 항상 자상하고, 다정한 서한재는 밥 잘 먹는 문요한 한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한재를 만나기 전의 문요한은 정말 살기 위해 밥을 먹었다. 그래서 지금보다는 조금 체구가 작았었다.
그러다 서한재를 만나고 아무런 이유 없이 음식들을 먹기 시작하며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는 것도 함께 생각났다.
문요한은 조심히 뒷걸음질 치며 도망갈 도주로를 만들었다. 금방 서한재에게 손목을 잡혀 실패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내가 너 밥 잘 챙겨 먹으라고 몇 번을 말해, 몇 번을.”
“그, 저... 자기야...”
“안 되겠다. 너 당장 따라 나와.”
서한재는 화가 많이 난 듯 문요한을 끌고 집 밖으로 나왔다.
“야.”
“네?”
서한재의 낮고, 화난 말투에 문요한은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주변에 식자재마트 어디 있어.”
“그거... 아마, 차 타고 나가야...”
“차 키 내놔.”
“네...”
문요한은 자신에게 차 키를 내놓으라고 손을 내민 서한재의 손에 자신의 차 키를 건냈다.
문요한이 알려준 차의 운전석에 올라탄 서한재와 얌전히 조수석에 올라탄 문요한은 함께 식자재마트로 향했다.
식자재마트로 향하는 차 안은 생각보다 더 조용했다. 엔진소리가 너무 시끄러울 지경이었다.
빨간불에 멈춰선 서한재는 고개를 돌려 문요한을 바라봤다.
“문요한.”
“응?”
“음식 취향 바뀐 거 있냐?”
“없는데?”
“그래.”
문요한은 내심 감동했다. 자신의 음식 취향을 다 기억하고 있는 서한재에 역시 자신에게 미련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서한재에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옛날이기는 하지만 열심히 잡아놓은 문요한의 하루 삼시세끼가 다 망가진 것이 그 화근이었다.
이것만큼은 헤어져도 지킬 줄 알았는데 그냥 자신에게 맞춰주고 있다는 것뿐이었다는 것이 충격적이기도 했다.
문요한의 음식 취향은 기억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단순하면서도 까다로운 그의 취향을 까먹는 것이 더 이상했다. 옛날에는 그걸 다 외워서 음식을 골라 데이트할 때마다 먹었으니까 말이다.
식자재마트에 도착한 둘은 아무 말도 없이 식자재를 카트에 담았다. 카트 안에는 전부 문요한의 취향인 식자재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문요한은 문득 서한재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 대한 결론은 자신은 서한재가 좋아하는 음식을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자기야”
아까보다 기분이 더 다운된 문요한이 신중하게 식자재를 고르던 서한재를 불러세웠다.
“응?”
여전히 식자재를 보던 서한재가 문요한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는 문요한의 물음에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식자재 고르는 것에 집중한 서한재가 문요한의 목소리 톤을 캐치하는 것은 어려웠다.
“자기는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문요한의 물음에 식자재에 손을 뻗던 서한재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서한재는 놀란 토끼 눈으로 문요한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연애하는 내내 자신이 제일 듣고 싶어 하는 말이었다. 좋아하는 음식 말이다.
계속 문요한의 입맛에만 맞추던 서한재는 항상 음식을 몇 입 먹지도 못하고 내려놓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제야 그게 궁금해?”
“...”
“뭐... 딸기?”
잠시 고민하던 서한재가 내놓은 답은 딸기였다. 문요한은 딸기라는 소리를 듣더니 그 자리에서 굳었다.
“뭐야, 왜 그래.”
“무슨 대답이 그렇게 귀여워?...”
“지X.”
문요한의 예상치 못한 얼빠진 대답에 서한재는 외마디 욕을 내뱉고는 문요한을 버려둔 채 급히 자리를 떴다.
문요한은 급히 자리를 뜨는 서한재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급하게 과일코너에 가 딸기를 집어 들고는 카트에 딸기를 집어넣고 서한재를 바라보며 웃었다.
“ㅁ, 뭐.”
“아무것도~, 오늘 저녁 뭐야?”
누가 보면 몇 년은 사귄 커플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음... 파스타랑 스테이ㅋ... 손때.”
“넵.”
저녁을 고민하는 서한재의 어깨에 조심히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곧 떨어진 불호령에 조용히 손을 떼고는 멋쩍은지 뒷짐을 지고는 서한재의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지 식자재마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가격이 많이 나왔다.
서한재는 본인이 내는 돈 아니라며 문요한의 카드로 시원하게 긁고는 한층 기분 좋아진 듯 짐을 문요한에게 떠넘기고는 차로 향했다.
“왜 나한테 줘?...”
“내가 밥 해주잖아.”
“... 그래.”
툴툴거리는 것 치고는 생각보다 얌전하게 차 뒷좌석에 짐을 싣고는 운전석에 올라탄 문요한은 서한재가 안전벨트까지 매는 것을 보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집에 와인 있는데 같이 먹을래?”
“개수작 부리지 마.”
“왜~, 같이 먹으면 분위기나고 좋잖아.”
“너 같으면 먹고 싶겠냐? 같이 밥 먹는 것도 싫구만...”
“우리 자기는 옛정이 너무 많아서 큰일이야~.”
서한재는 차마 문요한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옛정이 많은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자신은 혼자 먹을 것만 사 와서 먹고 있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서한재는 그냥 조용히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또 한 번 두 사람 사이의 커다란 침묵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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