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조회 : 1,385 추천 : 0 글자수 : 4,323 자 2022-09-29
서준이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일하는 레스토랑 매니저인 이든이 말을 걸어왔다.
"오늘 서준이 덕분에 살았네."
이든의 어른스러우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는 가게와 잘 어울렸다. 물론 일할 때의 그는 조금 엄격한 면이 있었지만 세심한 배려에 힘들지 않았다.
"괜찮아요. 어차피 시급 든든히 챙겨주실 거잖아요"
서준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든은 그걸 노리고 도와준 거냐며 그의 뽀얀 볼을 살짝 꼬집었다. 통증이 느껴질 리 없었지만 서준은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배배 꼬았다. 그 모습이 재밌기라도 하듯 이든이 풋 하고 웃었다.
"얼른 들어가서 쉬도록 해."
"네. 그럼 저 이만 갈게요"
가게 문을 열고 나가려는 서준을 향해 이든이 말했다.
"서준아. 괜히 옆길로 새지 말고 집으로 바로 가."
퇴근 때마다 하는 소리였지만 귀찮거나 지겹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자신을 챙겨준다는 사실이. 서준은 자기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형은 너무 걱정이 많다니까요. 지금도 이마에 주름 많은데~"
내가 몇 살인데 그런 말 하냐는 듯 손에 든 접시를 던지려 하자 서준은 서둘러 문을 닫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하아...여기서 일하게 된 지도 벌써 1년인가??'
알바할 곳을 찾던 서준은 아는 형의 밥 한 끼 하자는 연락 받고 레스토랑으로 갔다.
형은 서준을 앉혀놓곤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을 데리고 앞에 앉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든형이었다. 그는 대뜸 물었다. 레스토랑에서 일한 적은 있는지. 일주일에 몇 번 일할 수 있는지. 마치 알바 면접이라도 보는듯한. 힐끔 올려다본 형의 얼굴에 지어진 미소. 알바 소개라고 하면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 형이 꾸민 일이란 걸 깨닮았다.
그날 바로 채용이 된 서준은 경험도 없는 자신을 뽑아주었다는 사실이 마냥 기쁘기만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기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력이 3년 이상. 자신이 뽑힌 이유는 잘생겨서?! 라는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였지만 서준은 여기서 일하게 된 걸 후회한 적은 없었다.
"그럼 얼른 집에 가서 쉬어볼까? 내일 학교도 가야 하고."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레스토랑은 한적하고 조용했지만, 한 블록 넘어서면 그곳은 여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
탁한 공기와 코를 찌르는 퀴퀴한 냄새. 술에 취해 잠들거나 비틀거리는 남자들. 여기저기 싸움이 난 듯 괴성을 지르는 사람들. 1년을 봐도 적응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걷던 서준에게 덩치큰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180센티 정도 되는 키에 떡 벌어진 어깨. 허리띠를 넘겨버린 뱃살. 입고 있는 정장은 터져 나갈 듯 아슬아슬해 보였다.
야구모자를 푸욱 눌러쓰고는 성큼성큼 걷던 서준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발걸음이 멈췄다. 깜짝 놀라 어깨를 바라보는 서준의 눈에 엄지손톱만 한 싸구려 보석이 박힌 금반지가 보였다. 순간 돼지족발에 반지를 끼워 넣은 걸로 보였다.
"너 저기 라비에벨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녀석이지??"
술과 담배에 절여진 그 남자의 몸과 입에선 시큼하고 지린 썩은 내가 코를 찔렀다.
대체 며칠이나 목욕을 안 한 걸까.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구역질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아뇨. 사람을 잘못 본 거 같은데요."
이든형의 가게를 안다는 건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던 건 분명했다.
단, 원인제공은 이 남자겠지만 말이다. 남자의 미간에 깊고 짙은 주름이 하나둘 생기더니 서준의 멱살을 잡아챘다. 밀어내려고 했지만 자신보다 15센치미터는 큰 남자의 힘을 이기긴 부족했다.
"야. 너 내 눈이 눈깔로 안 보이냐??"
서준은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부라리는 시선을 마주보며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거 놓고 얘기하세요."
싸움 구경이라도 하듯 하나둘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서준이 도와달라는 시선을 보냈다. 시선을 마주친 사람은 모두 싸움에 휘말리기 싫다는 듯 인파 속으로 숨었다.
'역시 도와줄 사람은 없나.어쩌지.'
"그때 내가 당한 만큼 너도 당해봐."
"도대체 뭘 당했는 겁니까."
"그때 니네가 날 기분나쁘게 쳐다봤잖아!!"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건데요??"
서준은 그쪽이 피해망상이 있는건 아니구요? 라고 쏘아 붓고 싶었지만 기름에 물을 부으면 어떻게 되는가. 꺼지지 않고 폭발해버리지 않던가.
지금은 우선 눈앞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남자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서준의 말에 그것까진 생각하지 못 한듯 머뭇거리던 남자는 서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남자의 얼굴이 점점 다가왔다. 마치 귀신이 티비 속에서 기어 나오는 것 처럼.
'뭐야..왜 이렇게 얼굴을 들이밀어. 안 그래도 숨쉬기 힘들어 죽겠는데.'
비어있는 손으로 서준의 모자를 툭 하고 치자 모자는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모자에 감춰져 있던 얼굴이 드러나자 남자는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음흉하게 미소지었다. 침만 안흘렸지 미친개 같았다.
등줄기가 오싹해지고 온몸의 털이 바싹바싹 섰다.
"헤에...가까이서 보니 곱상하게 생겼네. 남자가 맞긴해?"
모자에 가려졌던 서준의 외모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긴 속눈썹과 촉촉한 붉은 입술. 비칠 듯한 투명한 피부. 장난기 가득한 천진난만한 소년의 얼굴.
서준의 머릿속에는 도망쳐야 한다는 경고등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대책 없이 도망치다 잡혔다가는 더 한꼴을 당할지도 모른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훑어보던 서준은 남자의 어깨너머에 있는 누군가에게 시선이 꽂혔다.
180센티를 넘는 큰 키에 짙은 감색의 정장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자신과는 다른 성숙한 남자의 색기가 묻어나는 듯했다.
저런 남자를 자신이 알리가 없다. 하지만 분명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함.
'누구지?'
떠오를 듯 말듯 생각이 나지 않자 눈가에 옅은 주름이 졌다.
"뭐야. 이새끼가 내 말이 기분 더럽다는 거야??"
말할 때마다 터져나오는 시궁창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럴 때 학교 사람이라도 만나면... 아!!그제서야 생각이 난 듯 서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차민우!!"
머릿속에서 떠오른 이름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같은 학교 4학년 차민우. 서준이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알았던 존재.
멀리서 그를 처음 봤을 때는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왕자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유명 호텔 건물 앞에 서 있어서 그런가. 호텔 CEO 같은 어른스럼움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근데 왜 여기 있지? 누구만나나?'
혹시 이건 불쌍한 자신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이 아닐까. 내가 이런 일 당할 줄 알고 보내주신!
서준은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드디어 나는 살았다.라는 표정으로 이름을 불렀다.
"차.민.우.선배님."
키우는 강아지가 주인을 보면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듯 서준도 힘껏 팔을 흔들어 보였다.
자신의 이름을 들었는지 차민우는 서준을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못 들으신 건가..서준은 다시 있는 힘껏 차.민.우 세글자를 또렷또렷하게 불렀지만 차민우의 고개가 살짝움직일 뿐 금세 오뚜기처럼 제자리로 돌아갔다.
설마 자신이 잡은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일지도 모른다는 오싹함에 몸이 살짝 떨려왔다.
'그럼 내가 아는척하러 갈 수밖에..'
서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여전히 자신의 멱살을 잡고 노려보는 남자를 한번 쳐다보고는 축구공을 차듯 한 다리를 뒤로 뻗었다가 그대로 그의 정강이를 후려갈겼다.
악! 하며 허리가 살짝 수그러지며 손에 힘이 살짝 풀리자 서준은 차민우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서준이 차민우의 팔을 잡자 그의 몸이 살짝 휘청하나 싶더니 이내 움직임이 없었다.
차마 그를 바라볼 자신이 없던 서준은 뒤에서 소리치며 달려오는 남자를 바라봤다.
무거운 몸을 끌고 뛰어온 남자는 숨이 끊어질듯 헐떡이며 다가왔다.
"야! 너 좋은 말할 때 와라."
얼굴을 찌그러트리자 더 못생기진 얼굴로 손가락하나를 오라는듯 까딱까딱 거렸다.
차민우의 팔에 매달린 서준은 옷 위로 느껴지는 단단한 근육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서준의 입이 말썽을 부렸다.
"아저씨. 자꾸 저한테 작업 걸면 우리 달링이 가만 안둘걸요??"
자신이 달링이라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전신에 경련이 일어나며 온몸에 닭살이 돋아났다.
차민우와 서준의 앞으로 다가온 남자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네가 이놈 달링이냐며 손가락으로 그의 어깨를 쿡쿡 찌르며 조롱하듯 비웃었다.
서준은 그를 힐끔 올려다봤다.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무서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뭐야..이 선배는 무섭지도 않나?자기보다 덩치도 크고 키는.. 뭐 비슷하지만..'
"술 취하셨으면 그냥 가던 길 가시죠."
무뚝뚝한 어조 때문일까. 위압감이 느껴졌다.
차민우의 말에 남자는 주먹을 쥐고는 그를 치려고 손을 들어 올렸지만 그는 때리려면 때려보라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준이 그의 팔을 꽉 붙들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응? 왜 이렇게 조용하지?'
"야. 너!"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자 서준은 질끈 감은 눈을 뜨며 좌우를 훑어봤다.
자신을 괴롭히던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미간에 주름을 잡고 불쾌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차민우의 얼굴이 시선에 들어왔다.
깜짝 놀란 서준은 팔을 풀며 차민우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소문으로 들었던 상냥한 차민우는 어디로 간 걸까. 멋쩍게 뒤통수를 긁으며 입술을 달싹이려던 순간이었다. 가슴골을 반쯤 드러낸 붉은 드레스에 고급 실크 숄을 어깨에 걸친 여자가 다가와 차민우의 뺨을 후리쳤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요? 하...짜증나."
불쾌하다는 듯 서준과 차민우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이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사라졌다.
'응? 뭐...뭐지? 왜...?'
다시 서준의 머릿속에 경고등이 울렸다. 조금 전보다 더 빠르고 시끄럽게.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저....음.....감사했습니다."
서준은 그대로 집을 향해 뛰었다. 이렇게 뛰는 것도 얼마만인지. 그의 얼굴을 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지 상상이 갔다.
'아씨.역시 이건 썩은 동아줄이었어.'
"오늘 서준이 덕분에 살았네."
이든의 어른스러우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는 가게와 잘 어울렸다. 물론 일할 때의 그는 조금 엄격한 면이 있었지만 세심한 배려에 힘들지 않았다.
"괜찮아요. 어차피 시급 든든히 챙겨주실 거잖아요"
서준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든은 그걸 노리고 도와준 거냐며 그의 뽀얀 볼을 살짝 꼬집었다. 통증이 느껴질 리 없었지만 서준은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배배 꼬았다. 그 모습이 재밌기라도 하듯 이든이 풋 하고 웃었다.
"얼른 들어가서 쉬도록 해."
"네. 그럼 저 이만 갈게요"
가게 문을 열고 나가려는 서준을 향해 이든이 말했다.
"서준아. 괜히 옆길로 새지 말고 집으로 바로 가."
퇴근 때마다 하는 소리였지만 귀찮거나 지겹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자신을 챙겨준다는 사실이. 서준은 자기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형은 너무 걱정이 많다니까요. 지금도 이마에 주름 많은데~"
내가 몇 살인데 그런 말 하냐는 듯 손에 든 접시를 던지려 하자 서준은 서둘러 문을 닫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하아...여기서 일하게 된 지도 벌써 1년인가??'
알바할 곳을 찾던 서준은 아는 형의 밥 한 끼 하자는 연락 받고 레스토랑으로 갔다.
형은 서준을 앉혀놓곤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을 데리고 앞에 앉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든형이었다. 그는 대뜸 물었다. 레스토랑에서 일한 적은 있는지. 일주일에 몇 번 일할 수 있는지. 마치 알바 면접이라도 보는듯한. 힐끔 올려다본 형의 얼굴에 지어진 미소. 알바 소개라고 하면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 형이 꾸민 일이란 걸 깨닮았다.
그날 바로 채용이 된 서준은 경험도 없는 자신을 뽑아주었다는 사실이 마냥 기쁘기만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기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력이 3년 이상. 자신이 뽑힌 이유는 잘생겨서?! 라는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였지만 서준은 여기서 일하게 된 걸 후회한 적은 없었다.
"그럼 얼른 집에 가서 쉬어볼까? 내일 학교도 가야 하고."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레스토랑은 한적하고 조용했지만, 한 블록 넘어서면 그곳은 여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
탁한 공기와 코를 찌르는 퀴퀴한 냄새. 술에 취해 잠들거나 비틀거리는 남자들. 여기저기 싸움이 난 듯 괴성을 지르는 사람들. 1년을 봐도 적응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걷던 서준에게 덩치큰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180센티 정도 되는 키에 떡 벌어진 어깨. 허리띠를 넘겨버린 뱃살. 입고 있는 정장은 터져 나갈 듯 아슬아슬해 보였다.
야구모자를 푸욱 눌러쓰고는 성큼성큼 걷던 서준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발걸음이 멈췄다. 깜짝 놀라 어깨를 바라보는 서준의 눈에 엄지손톱만 한 싸구려 보석이 박힌 금반지가 보였다. 순간 돼지족발에 반지를 끼워 넣은 걸로 보였다.
"너 저기 라비에벨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녀석이지??"
술과 담배에 절여진 그 남자의 몸과 입에선 시큼하고 지린 썩은 내가 코를 찔렀다.
대체 며칠이나 목욕을 안 한 걸까.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구역질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아뇨. 사람을 잘못 본 거 같은데요."
이든형의 가게를 안다는 건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던 건 분명했다.
단, 원인제공은 이 남자겠지만 말이다. 남자의 미간에 깊고 짙은 주름이 하나둘 생기더니 서준의 멱살을 잡아챘다. 밀어내려고 했지만 자신보다 15센치미터는 큰 남자의 힘을 이기긴 부족했다.
"야. 너 내 눈이 눈깔로 안 보이냐??"
서준은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부라리는 시선을 마주보며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거 놓고 얘기하세요."
싸움 구경이라도 하듯 하나둘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서준이 도와달라는 시선을 보냈다. 시선을 마주친 사람은 모두 싸움에 휘말리기 싫다는 듯 인파 속으로 숨었다.
'역시 도와줄 사람은 없나.어쩌지.'
"그때 내가 당한 만큼 너도 당해봐."
"도대체 뭘 당했는 겁니까."
"그때 니네가 날 기분나쁘게 쳐다봤잖아!!"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건데요??"
서준은 그쪽이 피해망상이 있는건 아니구요? 라고 쏘아 붓고 싶었지만 기름에 물을 부으면 어떻게 되는가. 꺼지지 않고 폭발해버리지 않던가.
지금은 우선 눈앞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남자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서준의 말에 그것까진 생각하지 못 한듯 머뭇거리던 남자는 서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남자의 얼굴이 점점 다가왔다. 마치 귀신이 티비 속에서 기어 나오는 것 처럼.
'뭐야..왜 이렇게 얼굴을 들이밀어. 안 그래도 숨쉬기 힘들어 죽겠는데.'
비어있는 손으로 서준의 모자를 툭 하고 치자 모자는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모자에 감춰져 있던 얼굴이 드러나자 남자는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음흉하게 미소지었다. 침만 안흘렸지 미친개 같았다.
등줄기가 오싹해지고 온몸의 털이 바싹바싹 섰다.
"헤에...가까이서 보니 곱상하게 생겼네. 남자가 맞긴해?"
모자에 가려졌던 서준의 외모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긴 속눈썹과 촉촉한 붉은 입술. 비칠 듯한 투명한 피부. 장난기 가득한 천진난만한 소년의 얼굴.
서준의 머릿속에는 도망쳐야 한다는 경고등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대책 없이 도망치다 잡혔다가는 더 한꼴을 당할지도 모른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훑어보던 서준은 남자의 어깨너머에 있는 누군가에게 시선이 꽂혔다.
180센티를 넘는 큰 키에 짙은 감색의 정장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자신과는 다른 성숙한 남자의 색기가 묻어나는 듯했다.
저런 남자를 자신이 알리가 없다. 하지만 분명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함.
'누구지?'
떠오를 듯 말듯 생각이 나지 않자 눈가에 옅은 주름이 졌다.
"뭐야. 이새끼가 내 말이 기분 더럽다는 거야??"
말할 때마다 터져나오는 시궁창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럴 때 학교 사람이라도 만나면... 아!!그제서야 생각이 난 듯 서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차민우!!"
머릿속에서 떠오른 이름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같은 학교 4학년 차민우. 서준이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알았던 존재.
멀리서 그를 처음 봤을 때는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왕자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유명 호텔 건물 앞에 서 있어서 그런가. 호텔 CEO 같은 어른스럼움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근데 왜 여기 있지? 누구만나나?'
혹시 이건 불쌍한 자신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이 아닐까. 내가 이런 일 당할 줄 알고 보내주신!
서준은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드디어 나는 살았다.라는 표정으로 이름을 불렀다.
"차.민.우.선배님."
키우는 강아지가 주인을 보면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듯 서준도 힘껏 팔을 흔들어 보였다.
자신의 이름을 들었는지 차민우는 서준을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못 들으신 건가..서준은 다시 있는 힘껏 차.민.우 세글자를 또렷또렷하게 불렀지만 차민우의 고개가 살짝움직일 뿐 금세 오뚜기처럼 제자리로 돌아갔다.
설마 자신이 잡은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일지도 모른다는 오싹함에 몸이 살짝 떨려왔다.
'그럼 내가 아는척하러 갈 수밖에..'
서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여전히 자신의 멱살을 잡고 노려보는 남자를 한번 쳐다보고는 축구공을 차듯 한 다리를 뒤로 뻗었다가 그대로 그의 정강이를 후려갈겼다.
악! 하며 허리가 살짝 수그러지며 손에 힘이 살짝 풀리자 서준은 차민우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서준이 차민우의 팔을 잡자 그의 몸이 살짝 휘청하나 싶더니 이내 움직임이 없었다.
차마 그를 바라볼 자신이 없던 서준은 뒤에서 소리치며 달려오는 남자를 바라봤다.
무거운 몸을 끌고 뛰어온 남자는 숨이 끊어질듯 헐떡이며 다가왔다.
"야! 너 좋은 말할 때 와라."
얼굴을 찌그러트리자 더 못생기진 얼굴로 손가락하나를 오라는듯 까딱까딱 거렸다.
차민우의 팔에 매달린 서준은 옷 위로 느껴지는 단단한 근육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서준의 입이 말썽을 부렸다.
"아저씨. 자꾸 저한테 작업 걸면 우리 달링이 가만 안둘걸요??"
자신이 달링이라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전신에 경련이 일어나며 온몸에 닭살이 돋아났다.
차민우와 서준의 앞으로 다가온 남자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네가 이놈 달링이냐며 손가락으로 그의 어깨를 쿡쿡 찌르며 조롱하듯 비웃었다.
서준은 그를 힐끔 올려다봤다.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무서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뭐야..이 선배는 무섭지도 않나?자기보다 덩치도 크고 키는.. 뭐 비슷하지만..'
"술 취하셨으면 그냥 가던 길 가시죠."
무뚝뚝한 어조 때문일까. 위압감이 느껴졌다.
차민우의 말에 남자는 주먹을 쥐고는 그를 치려고 손을 들어 올렸지만 그는 때리려면 때려보라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준이 그의 팔을 꽉 붙들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응? 왜 이렇게 조용하지?'
"야. 너!"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자 서준은 질끈 감은 눈을 뜨며 좌우를 훑어봤다.
자신을 괴롭히던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미간에 주름을 잡고 불쾌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차민우의 얼굴이 시선에 들어왔다.
깜짝 놀란 서준은 팔을 풀며 차민우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소문으로 들었던 상냥한 차민우는 어디로 간 걸까. 멋쩍게 뒤통수를 긁으며 입술을 달싹이려던 순간이었다. 가슴골을 반쯤 드러낸 붉은 드레스에 고급 실크 숄을 어깨에 걸친 여자가 다가와 차민우의 뺨을 후리쳤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요? 하...짜증나."
불쾌하다는 듯 서준과 차민우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이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사라졌다.
'응? 뭐...뭐지? 왜...?'
다시 서준의 머릿속에 경고등이 울렸다. 조금 전보다 더 빠르고 시끄럽게.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저....음.....감사했습니다."
서준은 그대로 집을 향해 뛰었다. 이렇게 뛰는 것도 얼마만인지. 그의 얼굴을 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지 상상이 갔다.
'아씨.역시 이건 썩은 동아줄이었어.'
작가의 말
등록된 작가의 말이 없습니다.
닫기그날밤 잡은 동아줄의 끝은. [BL]
17.17화조회 : 77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95 16.16화조회 : 77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757 15.15화조회 : 86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81 14.14화조회 : 87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30 13.13화조회 : 80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92 12.12화조회 : 91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53 11.11화조회 : 95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04 10.10화조회 : 73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99 9.9화조회 : 24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28 8.8화조회 : 38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52 7.7화조회 : 30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66 6.6화조회 : 24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27 5.5화조회 : 33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60 4.4화조회 : 23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3,683 3.3회조회 : 25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3,876 2.2화조회 : 31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033 1.1화조회 : 1,39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