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조회 : 946 추천 : 0 글자수 : 5,004 자 2022-11-06
건물 앞 입구에서 몇몇 사람들이 어디론가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우리 안에 갇힌 동물을 바라보는듯 호기심 가득한 수 백개의 눈동자. 그 시선 가운데 민우와 여자 한 명이 서 있었다. 그 상대가 민우라서일까.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까지 멈추게 했다. 입술 끝에 망설임이 가득 맺힌 여자는 결심이라도 한 듯 바닥에 시선을 둔 채 입술을 달싹였다.
"저기. 민우야. 나랑 사귈래?"
"우리 계속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는데."
"친구....왜? 여자친구도 없잖아."
'여자친구...'
여자친구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다가왔다. 민우는 언제부터인지 연애라는 단어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누군가와 오래 사귀어본 적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그녀들이 뒤돌아서며 자신에게 내뱉은 말들 때문일까.
'민우 넌 사귀기 전과 사귀고 난 후 너무 다른 거 같아.'
대체 뭐가 다르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들이 자신에게 고백한 이유조차 이젠 모르겠다. 그녀들을 아꼈고 하고 싶은 대로 따라줬지만 기대치에 못 미쳤던 걸 수도 있다. 이젠 사귄다는 것 자체에 흥미조차 일지 않았다. 자신이 고백한다면 또 다를까....
'아....'
민우는 서준을 떠올렸다. 자신이 처음 고백한 상대. 장난으로 내뱉은 고백을 서준이 받아준 건 예상 밖이었다. 과제가 그만큼 녀석에게 중요한 모양이다. 식당으로 오라고 했다고 바로 온 것도 그렇고. 사실 처음 만났던 그날 밤부터 녀석은 흥미 그 자체였다. 물론 아주 짧은 호기심일 거라고. 7일이면 충분히 즐길만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처음처럼 제자리에 머물러있는 듯한 건 기분 탓일까. 아니. 아직 발걸음도 떼지 않은듯했다. 수호도 간 적 없는 서점까지 데려간걸 보면 말이다. 대체 뭐가 이렇게까지 녀석에게 끌리는 거지.
"민우야?"
민우는 자신을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에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안. 가볼게."
민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지. 무슨 얘기를 나눌 건지 아무 관심도 없다. 어느 정도 선까지 친절을 베풀면 흥밋거리는 사라질 테니까.
"대체 누구랑 사귀려고 매번 거절하냐? 이제 적당히 타협 할때도 된 거 같은데."
고개를 좌우로 젓던 수호가 민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귀는 걸 타협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지금은 누구와 사귈 마음도 없고."
"왜?.... 아. 뭐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그런 헛소리는 하지 마라. 넌 집중 안 해도 충분히 여유롭게 학점 딸 놈인 거 알고 있으니까"
"그냥...."
무심코 도서관 건물 쪽을 바라보던 민우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 도서관 쪽으로 걸어가는 서준의 뒷모습이 보였다. 문득 어제 서점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보며 헤실헤실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가로등 불빛만 가득한 그 아래 서준의 뽀얀 얼굴이 반짝였다. 자신의 한마디에 삐쭉 내민 붉은 입술. 고작 손 하나 잡았다고 움찔거리는 어깨. 만약 키스라도 하면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해졌다. 도망갈까. 아니면 받아줄까.
"지금은 이대로도 재밌을 것 같아서."
"재미?"
옆에서 물어보는 수호의 질문에도 민우의 시선은 서준의 작아지는 등을 바라봤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둘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향한 건 민우를 부르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건물을 빠져나오는 무리 속에서 손을 흔드는 지현이 보였다.
"민우선배. 안녕하세요."
살짝 상체를 숙이자 앞으로 흘러 내려온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녀의 눈가엔 웃음이 점점 짙어졌다.
"안녕."
"밥 먹으러 가시는 거예요?"
"어. 너는?"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수호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지현의 얼굴 가까이로 가져갔다. 놀란 지현이 꺅하는 외침과 함께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야. 이지현 너는 볼 때마다 날 투명 인간 취급하냐? 네 눈에는 이 자식밖에 안 보이지?"
"선배도 있었어요?"
민우 앞에서 활짝 웃던 미소는 사라지고 밋밋한 눈동자로 수호를 쳐다봤다. 티격태격하는 두사람을 내버려 두고 민우가 식당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어? 선배 같이 가요."
멀어지는 민우의 모습을 발견한 지현이 먼저 빠른 걸음으로 민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뒤이어 따라온 수호와 다시 시작된 유치한 싸움이 또 시작되었다. 자신이랑 먼저 밥 먹기로 했다는 수호. 저랑 먹을거라는 지현. 언제나처럼의 두 사람이었기에 그 둘을 바라보는 민우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세 사람은 곧 식당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인 만큼 붐비는 식당 안은 비어있는 자리가 몇 개 보이지 않았다. 수호와 지현이 먼저 식판을 들고 창가쪽에 자리를 잡았다.
"선배. 오늘따라 유난히 사람들이 민우선배보는거 같지 않아요?"
"아. 너 아직 못 들었나 보네. 오늘 저 녀석 고백받았거든."
수호의 엄지손가락이 식판을 들고 오는 민우를 가리켰다. 꽤나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사뭇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민우의 표정에는 불편함의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을 알아보고 다가오는 후배들이나 동기에게 인사를 나누는 여유까지 보였다.
"아...."
지현은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확실히 다른 사람도 아닌 민우선배면 이해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요?"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지현은 괜히 물컵에 담긴 물을 한 모금 홀짝였다. 그리곤 수호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는 무슨. 당연히 거절했지. 민우가 고백받아준 게 언젠지도 기억 안 난다. 아까도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나 뭐라나. 저녀석 은근히 알기 어렵다니까. 넌 안 할 거야?"
"네....?"
"그렇게 티를 팍팍 내는데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진 않을 테고."
지현은 걸어오는 민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그렇지만....'
식판을 들고 온 민우가 옆에 앉으려고 하자 수호가 눈짓했다. 저기 앉아. 저기 앉으라고. 턱 끝으로 지현의 옆자리를 가리키는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수호가 올려놓은 가방을 옆으로 밀어버리곤 자리에 앉았다.
....이러니 고백 할수 있을리 없지않은가.
지현의 눈동자에 아쉬움이 역력했다. 그녀의 살짝 끌어올린 입꼬리가 흔들거렸다.
"참. 후배 과제 가르쳐준다고 하던데. 진짜예요?"
지현의 말에 수호는 입안에 씹고 있던 돈가스를 대충 꿀꺽 삼키고는 민우를 쳐다봤다.
"뭐? 네가? 너 누구든 개인적으로 도와주거나 하지 않잖아. 그런 건 딱 선을 긋더니."
"지겹교수님한테 부탁받아서 도와주는것뿐이야."
자신이 생각해도 그 상황이 어이없이 느껴졌던 민우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지어진 민우의 웃음에 지현은 낯설고 어색하게 다가왔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한 선배였지만 어딘가 선을 긋는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앞에 놓인 비빔밥을 숟가락으로 끄적였다. 누구냐고 묻고싶었지만, 왠지 물어보면 안 될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세 사람은 식판을 반납하고 식당을 나섰다.
"강의 시간까지 시간도 있고 뭐 좀 마시고 갈까?"
민우가 시계를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문자를 확인하던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서준 : 과제에 필요한 책사야 하는데 좀 골라주세요.]
자신이 고백받던 그때 보았던 실루엣은 분명 이서준. 그 녀석이었다. 곁을 지나가도 모르던 서준의 존재를 어느새 익숙해지기라도 한 듯 쉽게 알 수 있게 된 모양이다. 고작 며칠사이 이렇게 될 수 있는 건가.
"미안. 난 먼저 가볼게. 다음에 보자."
아쉬움이 역력한 지현의 표정에도 아랑곳없이 민우는 그대로 도서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비탈길을 올라가던 민우의 시선 끝에 벤치에 앉아있는 남자가 보였다. 당연하다는 듯이 발길이 벤치로 향했다. 눈을 감은 채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이서준."
나지막이 울리던 목소리는 서준에게 닿지 않는 듯 미동이 없었다. 잠이 든 건가. 가만히 내려다보는 서준의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흔들거렸다. 그늘진 긴 속눈썹. 그리고 뽀얀 피부에 붉은 입술. 마치 붉은 체리처럼 달콤할 것만 같았다. 민우는 상체를 살짝 기울이며 팔을 뻗어 서준이 기댄 벤치 등받이를 잡았다. 정신이 든 건 자신의 입술에 부드러운 촉감이 전해진 뒤였다.
"......."
민우는 당황한 듯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올렸다. 그리곤 서준의 옆에 털썩 앉았다. 무슨 짓을 한거지라는 물음 앞에 먼저 떠오른 건 불쾌하지 않다였다. 민우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달콤함이 입술에 묻어있는 듯했다. 아무것도 모른채 색색거리는 일정한 숨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는 잊기라도 하듯 서준의 한쪽 귀에 꽂힌 이어폰을 살짝 빼냈다. 여전히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이 살짝 일렁이나 싶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귓속으로 스며드는 노랫소리에 민우는 조용히 하늘을 쳐다봤다. 구름이 바람에 끌려가듯 빠르게 지나갔다. 마치 자신처럼.
툭.
자신의 어깨에 닿는 따뜻한 무게에 하늘을 보던 그의 시선이 옮겨졌다. 진한 갈색의 머리카락이 사르르 앞머리가 쏟아졌다. 바람결에 살짝 흔들릴때마다 봄내음같은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샴푸 향인가. 서준에게 쏟아지는 자신의 시선을 끊은 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이었다. 동기와 전화통화를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던 민우의 시선과 서준의 시선이 맞닿았다.
"선배가 왜 여기 있어요?"
"책 골라달라며."
"아...!"
그제야 떠오르기라도 한 듯 볼을 긁적이는 서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민망하긴 한 건가. 어깨 위를 누르던 무게가 사라지자 왠지 허전함이 묻어났다.
"가자."
"저기. 민우야. 나랑 사귈래?"
"우리 계속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는데."
"친구....왜? 여자친구도 없잖아."
'여자친구...'
여자친구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다가왔다. 민우는 언제부터인지 연애라는 단어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누군가와 오래 사귀어본 적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그녀들이 뒤돌아서며 자신에게 내뱉은 말들 때문일까.
'민우 넌 사귀기 전과 사귀고 난 후 너무 다른 거 같아.'
대체 뭐가 다르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들이 자신에게 고백한 이유조차 이젠 모르겠다. 그녀들을 아꼈고 하고 싶은 대로 따라줬지만 기대치에 못 미쳤던 걸 수도 있다. 이젠 사귄다는 것 자체에 흥미조차 일지 않았다. 자신이 고백한다면 또 다를까....
'아....'
민우는 서준을 떠올렸다. 자신이 처음 고백한 상대. 장난으로 내뱉은 고백을 서준이 받아준 건 예상 밖이었다. 과제가 그만큼 녀석에게 중요한 모양이다. 식당으로 오라고 했다고 바로 온 것도 그렇고. 사실 처음 만났던 그날 밤부터 녀석은 흥미 그 자체였다. 물론 아주 짧은 호기심일 거라고. 7일이면 충분히 즐길만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처음처럼 제자리에 머물러있는 듯한 건 기분 탓일까. 아니. 아직 발걸음도 떼지 않은듯했다. 수호도 간 적 없는 서점까지 데려간걸 보면 말이다. 대체 뭐가 이렇게까지 녀석에게 끌리는 거지.
"민우야?"
민우는 자신을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에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안. 가볼게."
민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지. 무슨 얘기를 나눌 건지 아무 관심도 없다. 어느 정도 선까지 친절을 베풀면 흥밋거리는 사라질 테니까.
"대체 누구랑 사귀려고 매번 거절하냐? 이제 적당히 타협 할때도 된 거 같은데."
고개를 좌우로 젓던 수호가 민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귀는 걸 타협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지금은 누구와 사귈 마음도 없고."
"왜?.... 아. 뭐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그런 헛소리는 하지 마라. 넌 집중 안 해도 충분히 여유롭게 학점 딸 놈인 거 알고 있으니까"
"그냥...."
무심코 도서관 건물 쪽을 바라보던 민우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 도서관 쪽으로 걸어가는 서준의 뒷모습이 보였다. 문득 어제 서점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보며 헤실헤실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가로등 불빛만 가득한 그 아래 서준의 뽀얀 얼굴이 반짝였다. 자신의 한마디에 삐쭉 내민 붉은 입술. 고작 손 하나 잡았다고 움찔거리는 어깨. 만약 키스라도 하면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해졌다. 도망갈까. 아니면 받아줄까.
"지금은 이대로도 재밌을 것 같아서."
"재미?"
옆에서 물어보는 수호의 질문에도 민우의 시선은 서준의 작아지는 등을 바라봤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둘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향한 건 민우를 부르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건물을 빠져나오는 무리 속에서 손을 흔드는 지현이 보였다.
"민우선배. 안녕하세요."
살짝 상체를 숙이자 앞으로 흘러 내려온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녀의 눈가엔 웃음이 점점 짙어졌다.
"안녕."
"밥 먹으러 가시는 거예요?"
"어. 너는?"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수호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지현의 얼굴 가까이로 가져갔다. 놀란 지현이 꺅하는 외침과 함께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야. 이지현 너는 볼 때마다 날 투명 인간 취급하냐? 네 눈에는 이 자식밖에 안 보이지?"
"선배도 있었어요?"
민우 앞에서 활짝 웃던 미소는 사라지고 밋밋한 눈동자로 수호를 쳐다봤다. 티격태격하는 두사람을 내버려 두고 민우가 식당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어? 선배 같이 가요."
멀어지는 민우의 모습을 발견한 지현이 먼저 빠른 걸음으로 민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뒤이어 따라온 수호와 다시 시작된 유치한 싸움이 또 시작되었다. 자신이랑 먼저 밥 먹기로 했다는 수호. 저랑 먹을거라는 지현. 언제나처럼의 두 사람이었기에 그 둘을 바라보는 민우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세 사람은 곧 식당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인 만큼 붐비는 식당 안은 비어있는 자리가 몇 개 보이지 않았다. 수호와 지현이 먼저 식판을 들고 창가쪽에 자리를 잡았다.
"선배. 오늘따라 유난히 사람들이 민우선배보는거 같지 않아요?"
"아. 너 아직 못 들었나 보네. 오늘 저 녀석 고백받았거든."
수호의 엄지손가락이 식판을 들고 오는 민우를 가리켰다. 꽤나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사뭇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민우의 표정에는 불편함의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을 알아보고 다가오는 후배들이나 동기에게 인사를 나누는 여유까지 보였다.
"아...."
지현은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확실히 다른 사람도 아닌 민우선배면 이해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요?"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지현은 괜히 물컵에 담긴 물을 한 모금 홀짝였다. 그리곤 수호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는 무슨. 당연히 거절했지. 민우가 고백받아준 게 언젠지도 기억 안 난다. 아까도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나 뭐라나. 저녀석 은근히 알기 어렵다니까. 넌 안 할 거야?"
"네....?"
"그렇게 티를 팍팍 내는데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진 않을 테고."
지현은 걸어오는 민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그렇지만....'
식판을 들고 온 민우가 옆에 앉으려고 하자 수호가 눈짓했다. 저기 앉아. 저기 앉으라고. 턱 끝으로 지현의 옆자리를 가리키는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수호가 올려놓은 가방을 옆으로 밀어버리곤 자리에 앉았다.
....이러니 고백 할수 있을리 없지않은가.
지현의 눈동자에 아쉬움이 역력했다. 그녀의 살짝 끌어올린 입꼬리가 흔들거렸다.
"참. 후배 과제 가르쳐준다고 하던데. 진짜예요?"
지현의 말에 수호는 입안에 씹고 있던 돈가스를 대충 꿀꺽 삼키고는 민우를 쳐다봤다.
"뭐? 네가? 너 누구든 개인적으로 도와주거나 하지 않잖아. 그런 건 딱 선을 긋더니."
"지겹교수님한테 부탁받아서 도와주는것뿐이야."
자신이 생각해도 그 상황이 어이없이 느껴졌던 민우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지어진 민우의 웃음에 지현은 낯설고 어색하게 다가왔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한 선배였지만 어딘가 선을 긋는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앞에 놓인 비빔밥을 숟가락으로 끄적였다. 누구냐고 묻고싶었지만, 왠지 물어보면 안 될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세 사람은 식판을 반납하고 식당을 나섰다.
"강의 시간까지 시간도 있고 뭐 좀 마시고 갈까?"
민우가 시계를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문자를 확인하던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서준 : 과제에 필요한 책사야 하는데 좀 골라주세요.]
자신이 고백받던 그때 보았던 실루엣은 분명 이서준. 그 녀석이었다. 곁을 지나가도 모르던 서준의 존재를 어느새 익숙해지기라도 한 듯 쉽게 알 수 있게 된 모양이다. 고작 며칠사이 이렇게 될 수 있는 건가.
"미안. 난 먼저 가볼게. 다음에 보자."
아쉬움이 역력한 지현의 표정에도 아랑곳없이 민우는 그대로 도서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비탈길을 올라가던 민우의 시선 끝에 벤치에 앉아있는 남자가 보였다. 당연하다는 듯이 발길이 벤치로 향했다. 눈을 감은 채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이서준."
나지막이 울리던 목소리는 서준에게 닿지 않는 듯 미동이 없었다. 잠이 든 건가. 가만히 내려다보는 서준의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흔들거렸다. 그늘진 긴 속눈썹. 그리고 뽀얀 피부에 붉은 입술. 마치 붉은 체리처럼 달콤할 것만 같았다. 민우는 상체를 살짝 기울이며 팔을 뻗어 서준이 기댄 벤치 등받이를 잡았다. 정신이 든 건 자신의 입술에 부드러운 촉감이 전해진 뒤였다.
"......."
민우는 당황한 듯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올렸다. 그리곤 서준의 옆에 털썩 앉았다. 무슨 짓을 한거지라는 물음 앞에 먼저 떠오른 건 불쾌하지 않다였다. 민우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달콤함이 입술에 묻어있는 듯했다. 아무것도 모른채 색색거리는 일정한 숨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는 잊기라도 하듯 서준의 한쪽 귀에 꽂힌 이어폰을 살짝 빼냈다. 여전히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이 살짝 일렁이나 싶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귓속으로 스며드는 노랫소리에 민우는 조용히 하늘을 쳐다봤다. 구름이 바람에 끌려가듯 빠르게 지나갔다. 마치 자신처럼.
툭.
자신의 어깨에 닿는 따뜻한 무게에 하늘을 보던 그의 시선이 옮겨졌다. 진한 갈색의 머리카락이 사르르 앞머리가 쏟아졌다. 바람결에 살짝 흔들릴때마다 봄내음같은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샴푸 향인가. 서준에게 쏟아지는 자신의 시선을 끊은 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이었다. 동기와 전화통화를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던 민우의 시선과 서준의 시선이 맞닿았다.
"선배가 왜 여기 있어요?"
"책 골라달라며."
"아...!"
그제야 떠오르기라도 한 듯 볼을 긁적이는 서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민망하긴 한 건가. 어깨 위를 누르던 무게가 사라지자 왠지 허전함이 묻어났다.
"가자."
작가의 말
글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닫기그날밤 잡은 동아줄의 끝은. [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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