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조회 : 907 추천 : 0 글자수 : 5,053 자 2022-11-19
두사람은 학교근처 대형 서점으로 향했다. 어제 민우와 갔던 서점하고는 들어가는 입구마저 틀렸다. 끼익거리던 미닫이문 대신 자동문이 활짝 열렸고, 사락사락 책장 넘기는 소리가 가득하던 공간은 시끄럽게 울리는 음악 소리가 대신했다. 정겨움보다는 학생들이 가득해서일까. 마치 도서관을 보는듯한 느낌 마저 들었다. 하지만 딱딱하고, 건조하게만 느껴졌던 공간이 오늘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왜일까. 서준은 한 걸음 앞에 서 있던 민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선배 때문인가....'
마침 뒤로 돌아 자신을 쳐다보는 민우의 시선과 허공에서 마주쳤다. 서준의 어깨가 살짝 움찍 거렸다.
"책 뭐가 필요해?"
"아, 광고 기획 관련 책이요.
"그 책이라면..."
"저기서 컴퓨터로 찾으면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서준은 서점 한쪽에 마련되어있는 도서 검색대로 방향을 틀었다. 한 걸음을 내딛던 서준의 발걸음이 뒤로 휘청거렸다. 도하가 잡았던 그 위치에 민우의 손이 겹쳐졌다. 서준은 팔목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시선을 떨궜다. 왠지 그때와 다른 감각이 느껴졌다.
"저쪽에 있어."
민우는 서준을 이끌고 D라고 쓰여 있는 책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주위의 시선이 전부 자신을 지나쳐 민우에게 닿았다. 쏟아지는 시선에 서준은 귓불에 옅은 열감이 느껴졌다. 몇 걸음도 될 것 같지도 않던 책장은 십리만큼이나 멀었다. 민우가 서준의 손목을 놓은 것은 책장 앞이었다. 도착한 그곳엔 확실히 광고 기획 관련된 책들이 꽂혀있었다.
"너 어디 아프냐?"
민우의 눈동자에 서준의 살짝 붉어진 귓불이 담겼다.
"안 아픈데요."
"얼굴이 빨간데."
민우는 서준의 반응이 재밌다는듯 손끝으로 그의 귓불을 매만졌다. 갑작스레 닿은 차가움에 정면을 바라보던 서준의 고개가 옆으로 향했다. 부드럽게 휘어져 있는 눈매가 눈에 들어왔다. 서준은 민우가 자신에게 장난을 치는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듯 그 눈매에 시선을 땔수가 없었다. 심박수가 살짝 빨라지는 느낌마져들었다.
"서점 안이 너무 더워서요."
서준이 옆으로 한 걸음 물러나자 귓불에 닿았던 촉감이 사라졌다. 하지만 민우가 옆으로 다가오는 탓에 거리는 벌어지지 않았다.
"왜 자꾸 옆으로 다가와요."
"넌 왜 옆으로 가는데."
"옆으로 간 거 아니고 책 고르고 있는데요. 선배도 얼른 골라주세요."
민우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로의 시선이 책위로 떨어지자 둘 사이로 잔잔한 팝송이 내려앉았다. 매번 혼자 책을 사러 왔던 서준은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게 왠지 신경 쓰였다. 책을 살펴보던 서준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민우를 힐끗 봤다. 살짝 내리 깐 시선은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어제 서점에서도 그렇고 책을 보는 선배의 모습은 티끌 하나 없는 새하얀 백지 위에 그려놓은 그림처럼 보였다. 지적으로 보인다던가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냥 잘어울렸다. 책 CF라도 찍으면 잘 팔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서준이 민우의 얼굴을 훑었을 때였다. 민우가 고개를 돌렸다.
"이 책....."
서준은 자신을 바라보는 민우의 눈과 마주치고도 몇 초가 흘렀을 즘에야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망했다.'
서준의 귓가가 붉게 물들었다. 아무래도 선배의 얼굴은 사람을 홀리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자꾸 자신이 누군가의 얼굴을 훔쳐보는 일 따위 할 리가 없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손에든 책위로 시선을 떨궜다. 민우는 자신을 향하던 시선이 지워지자 끌어당기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서준의 어깨에 자신의 어깨를 부딪쳤다. 그리곤 그의 귓가에 중얼거리듯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보고는 책 골라달라고 하더니 누군 사람 얼굴이나 쳐다보고."
"안... 안 봤거든요."
꿋꿋이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 달리 햐얀 목선을 따라 붉어지는 걸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군가의 시선에 익숙해지는 것과 달갑지 않은 건 다르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과 녀석은 뭐가 다른 걸까. 여전히 책에 시선을 두고 있는 서준의 붉어진 귀끝이 눈에 들어왔다. 민우의 입꼬리가 말아 올라갔다.
"그 책보다 이 책이 더 과제에 도움이 많이 될 텐데."
서준은 도움이 많이 된다는 말에 고개를 민우 쪽으로 향했다. 자신을 보는 그의 시선과 맞부딪혔다.
'너무 가까운데.'
흔들림 없이 바라보는 민우의 짙은 눈동자에 괜히 온몸에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힐끔힐끔 쳐다본 적은 몇 번인가 있었다. 몰래 쳐다보거나 엇박자로 마주치듯 바라본 게 전부였다. 이렇게 서로의 시선이 곧게 얽힌 적이 있었던가. 가까운 거리만큼 느껴지는 선배의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며칠 동안 느낀 거지만 은은하게 퍼지는 과일 향은 민우와 잘 어울렸다. 무 슨향수를 쓰는 걸까. 엄청 비싸겠지. 왠지 자신이 같은 향수를 써도 선배만큼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민우는 자신을 바라보는 서준의 눈동자를 지나 붉은 입술에 시선이 멈췄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도망가려나.'
아니, 이번에는 녀석의 반응보다 자신이 느꼈던 감각을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 불쾌감이 들지 않는 건지. 아니면 토할 만큼 역겨움이 밀려들지 궁금했다.
"그 책 괜찮....."
서준은 자신의 입술위로 부드러운 온기를 품은 따스함이 닿자 말끝이 흐려졌다. 민우는 입술을 떼어내고 서준을 쳐다봤다. 붉은 노을처럼 벌겋게 물들어버린 얼굴. 입술은 짙은 발간색을 띠고 있었다. 놀란 듯 커져 있는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민우는 마음 한켠에 저릿함이 느껴졌다.
"설마 처음은 아니겠지?"
싱긋 웃으며 자신에게 물어보는 민우를 쳐다봤다. 서준은 긴 속눈썹을 느리게 깜박였다. 몇 초인지 샐 수 없을 만큼 번개처럼 순식간에 훅하고 지나갔다. 처음? 뭐가? 꿈이라고 하기엔 조금 전 닿았던 따스함이 자꾸 입술위에 맴돌았다. 놀라서일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당연하죠!"
그 모습에 민우의 입술 사이로 풋하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놀리는 재미란 게 이런 걸 말하는 걸까. 다른 누구와 있을 때와 느꼈던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 한 번 더 할까? 좀 더 진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민우의 시선에 서준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게임 속에서도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벌어지지 않던가. 무덤덤하게 넘기면 그만이다.
"...그 책 주세요."
"어떤 책 인줄 알고."
"도움 되는 책이겠죠. 선배가 골라준 거니까."
서준은 민우의 손에 들려있는 책을 뺏어 들고는 계산대로 향했다. 아련히 남아있는 온기가 입술 끝에 매달린 채 사라지지 않는 듯했다. 사귄다는 게 이런 걸 말하는거였던건가. 손잡는 거야 뭐 친구끼리라도....
'진수랑도...'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는 듯했다. 근데 민우와의 일은 크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귄다는 조건하에 행해졌던 일이라서일까.
민우는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서준을 쳐다봤다. 직원이랑 얘기라도 하듯 살짝살짝 움직이는 붉은 입술에 시선이 머물렀다. 분명 역겨움보다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싫지 않았다는 거였다. 어째서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민우는 가볍게 뒷머리를 털었다. 더 깊이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서준을 쳐다보던 시선을 거둠과 동시에 핸드폰이 울렸다.
지이잉.
액정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한껏 구겨졌다. 아버지라는 세글자가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듯했다. 졸업할 날이 점점 다가오면서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자리를 물려받으라는 재촉도 날로 심해졌다. 처음에는 그저 빨리 졸업하고 이어받자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손바닥 안에서 울려대는 진동 소리에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속이 갑갑하다. 묵직하게 내려앉는 어깨 위로 쇳덩이라도 짓누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보세요."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시퍼런 칼날처럼 내려꽂혔다. 전화를 왜 늦게 받았냐는 잔소리부터 시작됐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민우는 카운터 앞에 서 있는 서준을 쳐다보고는 서점 밖으로 발길을 옮겼다. 서준은 자신 앞에 서 있던 5명이 사라지고 나서야 계산대 앞에 설 수 있었다. 책을 봉지 안에 넣어 건네주는 걸 받아 들고는 민우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가신 거지. 화장실이라도 가신 건가."
괜스레 베스트셀러 가판대로 걸어가 위에 진열되어있는 책 한 권을 들었다.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며 훑어 내려가면서도 간간히 주위를 살폈다. 다른 책을 집으려던 차, 자동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민우의 모습이 보였다. 서점 안의 시선들이 일제히 문으로 향하는 느낌이 들었다. 늘씬하게 쭉 뻗은 다리로 성큼성큼 걷는 걸음은 마치 런웨이 위를 활보하는 모델처럼 보였다. 주위에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자신만을 바라보며 곧게 뻗어왔다. 자신이 진짜 애인이었다면 심쿵 할 만한 포인트가 아닐까. 괜히 민망해진 서준이 고개를 떨궜다.
"책 다 샀으면 가자."
옆으로 다가온 선배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 달리 차분하지만 지친듯 보였다. 앞서 걸어가는 민우의 뒷모습조차 왠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무슨일이 있으신 건가. 서점을 나온 그의 눈에 커피숍이 눈에 들어왔다. 이대로 보내면 왠지 눈에 아른거릴 것만 같았다. 기분 나쁘다고 과제를 안 가르쳐주면 안 되니까. 단지 그것뿐.
"카페 안 가실래요?"
"데이트 신청인가?
"아니거든요. 이걸로 과제해도 좋을 것 같아서요."
서준은 민우를 쳐다보며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검은 봉지를 들어 보였다. 그의 살짝 올라간 입꼬리에 시선이 닿았다.
"데이트는 내일 하자."
뒤돌아 걸어가며 손을 들어 인사한 민우는 그대로 멀어졌다. 서준은 성큼성큼 멀어지는 민우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선배 때문인가....'
마침 뒤로 돌아 자신을 쳐다보는 민우의 시선과 허공에서 마주쳤다. 서준의 어깨가 살짝 움찍 거렸다.
"책 뭐가 필요해?"
"아, 광고 기획 관련 책이요.
"그 책이라면..."
"저기서 컴퓨터로 찾으면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서준은 서점 한쪽에 마련되어있는 도서 검색대로 방향을 틀었다. 한 걸음을 내딛던 서준의 발걸음이 뒤로 휘청거렸다. 도하가 잡았던 그 위치에 민우의 손이 겹쳐졌다. 서준은 팔목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시선을 떨궜다. 왠지 그때와 다른 감각이 느껴졌다.
"저쪽에 있어."
민우는 서준을 이끌고 D라고 쓰여 있는 책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주위의 시선이 전부 자신을 지나쳐 민우에게 닿았다. 쏟아지는 시선에 서준은 귓불에 옅은 열감이 느껴졌다. 몇 걸음도 될 것 같지도 않던 책장은 십리만큼이나 멀었다. 민우가 서준의 손목을 놓은 것은 책장 앞이었다. 도착한 그곳엔 확실히 광고 기획 관련된 책들이 꽂혀있었다.
"너 어디 아프냐?"
민우의 눈동자에 서준의 살짝 붉어진 귓불이 담겼다.
"안 아픈데요."
"얼굴이 빨간데."
민우는 서준의 반응이 재밌다는듯 손끝으로 그의 귓불을 매만졌다. 갑작스레 닿은 차가움에 정면을 바라보던 서준의 고개가 옆으로 향했다. 부드럽게 휘어져 있는 눈매가 눈에 들어왔다. 서준은 민우가 자신에게 장난을 치는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듯 그 눈매에 시선을 땔수가 없었다. 심박수가 살짝 빨라지는 느낌마져들었다.
"서점 안이 너무 더워서요."
서준이 옆으로 한 걸음 물러나자 귓불에 닿았던 촉감이 사라졌다. 하지만 민우가 옆으로 다가오는 탓에 거리는 벌어지지 않았다.
"왜 자꾸 옆으로 다가와요."
"넌 왜 옆으로 가는데."
"옆으로 간 거 아니고 책 고르고 있는데요. 선배도 얼른 골라주세요."
민우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로의 시선이 책위로 떨어지자 둘 사이로 잔잔한 팝송이 내려앉았다. 매번 혼자 책을 사러 왔던 서준은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게 왠지 신경 쓰였다. 책을 살펴보던 서준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민우를 힐끗 봤다. 살짝 내리 깐 시선은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어제 서점에서도 그렇고 책을 보는 선배의 모습은 티끌 하나 없는 새하얀 백지 위에 그려놓은 그림처럼 보였다. 지적으로 보인다던가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냥 잘어울렸다. 책 CF라도 찍으면 잘 팔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서준이 민우의 얼굴을 훑었을 때였다. 민우가 고개를 돌렸다.
"이 책....."
서준은 자신을 바라보는 민우의 눈과 마주치고도 몇 초가 흘렀을 즘에야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망했다.'
서준의 귓가가 붉게 물들었다. 아무래도 선배의 얼굴은 사람을 홀리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자꾸 자신이 누군가의 얼굴을 훔쳐보는 일 따위 할 리가 없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손에든 책위로 시선을 떨궜다. 민우는 자신을 향하던 시선이 지워지자 끌어당기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서준의 어깨에 자신의 어깨를 부딪쳤다. 그리곤 그의 귓가에 중얼거리듯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보고는 책 골라달라고 하더니 누군 사람 얼굴이나 쳐다보고."
"안... 안 봤거든요."
꿋꿋이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 달리 햐얀 목선을 따라 붉어지는 걸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군가의 시선에 익숙해지는 것과 달갑지 않은 건 다르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과 녀석은 뭐가 다른 걸까. 여전히 책에 시선을 두고 있는 서준의 붉어진 귀끝이 눈에 들어왔다. 민우의 입꼬리가 말아 올라갔다.
"그 책보다 이 책이 더 과제에 도움이 많이 될 텐데."
서준은 도움이 많이 된다는 말에 고개를 민우 쪽으로 향했다. 자신을 보는 그의 시선과 맞부딪혔다.
'너무 가까운데.'
흔들림 없이 바라보는 민우의 짙은 눈동자에 괜히 온몸에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힐끔힐끔 쳐다본 적은 몇 번인가 있었다. 몰래 쳐다보거나 엇박자로 마주치듯 바라본 게 전부였다. 이렇게 서로의 시선이 곧게 얽힌 적이 있었던가. 가까운 거리만큼 느껴지는 선배의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며칠 동안 느낀 거지만 은은하게 퍼지는 과일 향은 민우와 잘 어울렸다. 무 슨향수를 쓰는 걸까. 엄청 비싸겠지. 왠지 자신이 같은 향수를 써도 선배만큼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민우는 자신을 바라보는 서준의 눈동자를 지나 붉은 입술에 시선이 멈췄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도망가려나.'
아니, 이번에는 녀석의 반응보다 자신이 느꼈던 감각을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 불쾌감이 들지 않는 건지. 아니면 토할 만큼 역겨움이 밀려들지 궁금했다.
"그 책 괜찮....."
서준은 자신의 입술위로 부드러운 온기를 품은 따스함이 닿자 말끝이 흐려졌다. 민우는 입술을 떼어내고 서준을 쳐다봤다. 붉은 노을처럼 벌겋게 물들어버린 얼굴. 입술은 짙은 발간색을 띠고 있었다. 놀란 듯 커져 있는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민우는 마음 한켠에 저릿함이 느껴졌다.
"설마 처음은 아니겠지?"
싱긋 웃으며 자신에게 물어보는 민우를 쳐다봤다. 서준은 긴 속눈썹을 느리게 깜박였다. 몇 초인지 샐 수 없을 만큼 번개처럼 순식간에 훅하고 지나갔다. 처음? 뭐가? 꿈이라고 하기엔 조금 전 닿았던 따스함이 자꾸 입술위에 맴돌았다. 놀라서일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당연하죠!"
그 모습에 민우의 입술 사이로 풋하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놀리는 재미란 게 이런 걸 말하는 걸까. 다른 누구와 있을 때와 느꼈던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 한 번 더 할까? 좀 더 진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민우의 시선에 서준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게임 속에서도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벌어지지 않던가. 무덤덤하게 넘기면 그만이다.
"...그 책 주세요."
"어떤 책 인줄 알고."
"도움 되는 책이겠죠. 선배가 골라준 거니까."
서준은 민우의 손에 들려있는 책을 뺏어 들고는 계산대로 향했다. 아련히 남아있는 온기가 입술 끝에 매달린 채 사라지지 않는 듯했다. 사귄다는 게 이런 걸 말하는거였던건가. 손잡는 거야 뭐 친구끼리라도....
'진수랑도...'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는 듯했다. 근데 민우와의 일은 크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귄다는 조건하에 행해졌던 일이라서일까.
민우는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서준을 쳐다봤다. 직원이랑 얘기라도 하듯 살짝살짝 움직이는 붉은 입술에 시선이 머물렀다. 분명 역겨움보다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싫지 않았다는 거였다. 어째서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민우는 가볍게 뒷머리를 털었다. 더 깊이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서준을 쳐다보던 시선을 거둠과 동시에 핸드폰이 울렸다.
지이잉.
액정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한껏 구겨졌다. 아버지라는 세글자가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듯했다. 졸업할 날이 점점 다가오면서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자리를 물려받으라는 재촉도 날로 심해졌다. 처음에는 그저 빨리 졸업하고 이어받자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손바닥 안에서 울려대는 진동 소리에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속이 갑갑하다. 묵직하게 내려앉는 어깨 위로 쇳덩이라도 짓누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보세요."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시퍼런 칼날처럼 내려꽂혔다. 전화를 왜 늦게 받았냐는 잔소리부터 시작됐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민우는 카운터 앞에 서 있는 서준을 쳐다보고는 서점 밖으로 발길을 옮겼다. 서준은 자신 앞에 서 있던 5명이 사라지고 나서야 계산대 앞에 설 수 있었다. 책을 봉지 안에 넣어 건네주는 걸 받아 들고는 민우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가신 거지. 화장실이라도 가신 건가."
괜스레 베스트셀러 가판대로 걸어가 위에 진열되어있는 책 한 권을 들었다.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며 훑어 내려가면서도 간간히 주위를 살폈다. 다른 책을 집으려던 차, 자동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민우의 모습이 보였다. 서점 안의 시선들이 일제히 문으로 향하는 느낌이 들었다. 늘씬하게 쭉 뻗은 다리로 성큼성큼 걷는 걸음은 마치 런웨이 위를 활보하는 모델처럼 보였다. 주위에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자신만을 바라보며 곧게 뻗어왔다. 자신이 진짜 애인이었다면 심쿵 할 만한 포인트가 아닐까. 괜히 민망해진 서준이 고개를 떨궜다.
"책 다 샀으면 가자."
옆으로 다가온 선배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 달리 차분하지만 지친듯 보였다. 앞서 걸어가는 민우의 뒷모습조차 왠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무슨일이 있으신 건가. 서점을 나온 그의 눈에 커피숍이 눈에 들어왔다. 이대로 보내면 왠지 눈에 아른거릴 것만 같았다. 기분 나쁘다고 과제를 안 가르쳐주면 안 되니까. 단지 그것뿐.
"카페 안 가실래요?"
"데이트 신청인가?
"아니거든요. 이걸로 과제해도 좋을 것 같아서요."
서준은 민우를 쳐다보며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검은 봉지를 들어 보였다. 그의 살짝 올라간 입꼬리에 시선이 닿았다.
"데이트는 내일 하자."
뒤돌아 걸어가며 손을 들어 인사한 민우는 그대로 멀어졌다. 서준은 성큼성큼 멀어지는 민우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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