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조회 : 950 추천 : 0 글자수 : 6,210 자 2022-10-06
갑자기 현주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심장이 가까운 가슴에 가져다 대자 깜짝 놀란 현주가 빨개진 얼굴로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놔....놔줘요.”
“느껴지죠? 내 심장이 어떻게 뛰는지?”
“......”
“현주 씨만 보면 심장이 아플 정도로 빨리 뛰어서 제대로 숨을 쉬기가 힘들어요.”
“그...그건 나 때문이 아니라 대표님이 아픈 건지도 모르잖아요.”
“말했잖아요, 현주 씨만 보면 이렇게 된다고.”
“그럼 절 안 보면 되겠네요.”
그녀의 대답에 웃음 터트리며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 그녀 손목을 잡아당겨 자신 옆에 앉혔다.
“전혀 괜찮지가 않으니까 문제죠.”“앞뒤가 맞는 말을...”
“현주 씨를 안 보면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거 같고 현주 씨를 보면 숨을 못 쉴 정도로 심장이 뛰기는 하지만 이렇게 옆에 있으면 편안해요.”
“......”
“그러니까 대역도 아니고 대신도 아니에요, 내 심장은 딱 한 여자한테만 반응하니까.”
“마....말도 안 돼요! 전 박 민희가 아니라고 대체 몇 번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그녀 손목을 잡고 그도 일어서며 현주 앞에 바짝 다가섰다.
“이제 상관없다고, 내가 다 밝혀내고 알아낼 테니까 그때까지 기대해요, 지금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 거 같네.”
“대표님!”
“가요, 내가 너무 시간을 오래 뺏었네요.”
다정히 현주 손을 잡고 샵에 내려온 우빈이는 그녀 어깨를 살며시 잡고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나 현주 씨 때문에 금욕생활하고 있는 거 알아요?”
“네?”
“훗! 그러니까 너무 애태우지 말아요, 설마 다른 남자하고 벌써 첫키스 한 건 아니죠?”
“대....대표님!”
귀까지 빨개진 그녀를 본 우빈이는 고개를 들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샵으로 그녀 등을 밀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현주는 작업대로 들어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어쩌면 좋아, 그만둘 수도 없고...’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고 주저앉아 있는 현주에게 다가온 다영이가 등을 두드리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 있었어?”
“네? 아니요.”
“그런데 왜 얼굴이 빨개? 또 아파?”
“아...아니요, 안 아파요.”
“그래? 대표님하고 무슨 얘기 하고 왔어?”
“그게....”
“그냥 웬만하면 받아줘.”
“네?”
“대표님 현주 씨한테 마음 있는 거 같은데 뭐 어때? 현주 씨도 싫지 않잖아.”“.....퇴근해도 되죠?”
“어? 그래.”
샵에서 나온 현주는 다른 날과 똑같이 아버지를 보살폈고 편의점 일이 끝나 집에 돌아와 남은 집안일을 마치고 쉬려고 겨우 몸을 누웠지만, 그마저 악몽이 현주를 괴롭혔다.
“하아.....”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 현주는 채 두 시간도 못 자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샵으로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동생이 군대 간 것 빼고 현주의 일상에 특별한 일이 없었다.
우빈이가 회사를 인수하고 자꾸 자신 앞에 나타나는 그가 없었다면 죽을 때까지 적어도 힘든 생활에서 벗어날 때까지 머리가 복잡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한숨을 쉬며 샵 문을 열고 앞치마를 입으려고 할 때 샵 안으로 우빈이가 들어왔다.
“아직 문 안 열었습니다.”
“상관없어요, 현주 씨 보러 온 거니까.”
“대표님!”
“청소 도와줄까요?”
“아니요, 그냥 가주시는 게 도와주시는 거예요. 대표님 이러는 거 부담...”
“그럼 그냥 가죠, 대신 이거 받아요.”
“!”
그녀 손에 작은 쇼핑백을 들려주고 샵을 나가면서 뒤를 돌아 씨익 웃으며 달콤한 협박을 하고 나갔다.
“그거 다시 돌려주면 내가 현주 씨 첫 키스 뺏을 겁니다.”
“!”
화르륵 달아오르는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리며 손에 들린 쇼핑백을 열어보자 비싼 영양제와 작은 카드가 들어 있었다.
테이블에 쇼핑백을 내려놓고 카드를 꺼내 읽었다.
[또 쓰러지지 말고 하루에 한 알씩 영양제 꼭 챙겨 먹어요, 다 떨어질 때 되면 다시 사줄 테니까 안 먹으면 매일 병원 데리고 갈 거니까 병원 가기 싫으면 꼭 먹어요.]
“......”
[카드 봤죠? 다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확인할 거니까 꼭 먹어요. 아까 그 말 빈말 아니니까 잘 생각해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핸드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우빈이의 문자를 받고 당황한 현주는 털썩 의자에 앉아 한동안 쇼핑백을 쳐다보기만 했다.
오픈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자 쇼핑백을 작업대 안에 넣고 청소를 끝낸 뒤 손님이 들어오자 계산대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되어갈 때쯤 다영이가 들어와 현주와 나란히 의자에 앉아 도시락을 꺼냈다.
“웬 도시락이에요?”
“어?”
“사장님 도시락 잘 안 드시잖아요.”
“여기 유명하다고 해서 사와 봤어, 먹어.”
“제 것도 있어요?”
“그럼, 의리 없이 내 것만 사 왔을까 봐? 그리고 영양제 있지?”
“네?”
“대표님이 현주 씨 영양제 먹는 거 확인해 달라고 연락 왔어.”
“......”
“영양제부터 먹고 먹자.”
영양제를 다영이에게 선물하려고 했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리자 한숨을 쉬며 다영 앞에서 영양제를 먹고 도시락을 먹었다.
그녀가 영양제와 도시락을 깨끗이 먹었다는 연락받은 우빈이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거래처와의 식사를 무사히 마쳤다.
금전적으로 현주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자신을 더 싫어하고 경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샵 퇴근 시간에 맞춰 그녀 앞에 나타나 자신의 차로 편의점까지 데려다줬다.
“내일부터 오지 마세요, 버스 타고 다니는 게 편해요.”
“싫어요.”
“대표님!”
“아니면 편의점 일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올까요?”
“대표님!”
“생각 같아선 둘 다 하고 싶은데 현주 씨가 싫어할 거 같으니까 편의점에 데려다주는 거로 만족 하는 거니까 현주 씨가 포기해요.”
“......”
“시간 다 되어가는데 안 내려요? 나야 좋긴 하지만.”
“!”
“풉!”
서둘러 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린 현주는 허겁지겁 편의점에 들어가 점장에게 인사한 후 일을 시작했다.
멀리서 가만히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다가 핸드폰 벨 소리에 전화를 받고 바로 차에 시동을 걸었다.
현재 따로 나와 고급 오피스텔에 살고 있지만 전화를 받고 온 본가에는 부모님이 사는 본가 주택이었다.
“그렇게 알아듣게 얘기했는데도....”
사납게 인상 쓰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기는 우빈 어머니와 우빈이와 마찬가지로 인상 쓰고 있는 우빈이의 아버지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우빈아, 어서 오렴.”
“어머니.”
“우빈아, 이거 어떻게 된 거냐?”
“그러게요, 알아듣게 얘기한 거 같은데...”
우빈 부모 앞에 긴장한 듯 앉아 있는 지영이와 여자의 부모로 보이는 남녀를 보며 점점 눈매가 날카롭게 변해갔다.
“얘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여보 당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빈이한테 직접 들어요, 난 할 말 없으니 들어간다.”
“여보!”
“어머니.”
“그래, 우빈아, 네가 말해봐, 대체 무슨 얘기인데 그래?”
“여기 이 여자랑 파혼했어요.”
“뭐?”
우빈이 말에 놀란 우빈 어머니는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자 어머니를 부축하며 소파에 앉히고 세 사람을 노려보다가 지영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뭐지?”
“그게....”
“저 우리 애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파혼을 그렇게 쉽게...”
“쉽다고 했습니까?”
“결혼하기 전에는 다 그렇게 싸우기도 하고...”
“싸운 적 없습니다.”
“그럼 대체 이유가 뭔가? 왜 파혼을 한다고..”
“따님한테 얘기 못 들으셨습니까?”
지영이의 부모가 지영이를 쳐다봤지만 입을 꾹 다물고 말을 하지 않자 답답했던 우빈 어머니가 우빈이 팔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그래, 이유가 뭐니? 대체 이유가 뭐길래 파혼한다는 거야?”
“사실이 알려지는 게 두렵지 않은가 보군, 좋아, 당신 부모님은 충격받아도 상관없지만 내 어머니는 좀 다르거든.”
“우빈아.”
“어머니 일단 방에 들어가 계세요, 제가 있다가 다 말씀드릴게요.”
“.....그래, 알았다.”
주위에 있던 도우미를 불러 부축해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본 뒤 우빈이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세 사람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 딸이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고 싶으신가요?”
“대체 무슨 소리야.”
“우빈 씨, 제발...”
“왜? 여기까지 온 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온 거 아닌가?”
“좋아, 나도 파혼 이유가 타당하다면 받아들이지, 하지만 이유가...”
“타당이요? 지금 타당이라고 하셨습니까?”
“.......”
“내일 제가 직접 회사로 찾아갈 테니 그만 돌아가 주시죠.”
세 사람을 겨우 돌려보낸 우빈이는 어머니가 계신 방으로 들어가 의자를 가져와 어머니 앞에 앉아 파혼하게 된 이유를 충격을 받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우빈이 얘기를 다 듣고 난 우빈 어머니는 우빈 손을 다정히 잡아주며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구나.”
“어머니가 왜요.”
“내가 사람을 잘못 보는 바람에 네가...”
“그런 말씀 마세요, 지금이라도 알아서 파혼했잖아요. 더 좋은 여자 데리고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누구 있는 거니?”
“나중에요, 아직은 제가 매달리는 중이거든요.”
“그래, 알았다. 난 네가 선택한 여자라면 믿는다.”“네, 쉬세요.”
“자고 가지 그러니.”
“그럴게요.”
인사하고 방을 나와 아버지가 계신 서재로 들어가 마주 앉아 살짝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깨끗하게 끝냈어야지.”
“알아듣도록 얘기했는데 내일 제가 찾아가서 얘기하고 끝낼게요.”
“알았다. 자고 가는 거니?”
“그럴 거예요.”
“그래, 알았다.”
“네. 안녕히 주무세요.”
서재를 나와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문을 열자 매일 청소한 것처럼 깨끗한 자신의 방을 보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다른 날보다 늦게 대표실에 들어온 우빈이를 보고 김 비서는 의아해하며 그의 앞에 검토해야 할 자료들을 내려놓았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네?”
“집에서 자고 와서 늦은 거니까 그만 쳐다봐.”
“아...”
“점심시간 비워놔.”
“네, 어디로 가실 겁니까?”
“그 여자 아버지 회사에 갈 거야.”
“끝난 거 아니었습니까?”
“내가 어제 집에 간 게 그 여자가 부모를 데리고 집까지 찾아왔더라고.”
“......”
“그 자료 복사해 놔.”
“네, 알겠습니다.”
원본을 보여줘서 그 자리에서 없애버린다면 다시 조사하기 힘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빈이는 원본이 아닌 복사본을 들고 전 약혼녀인 지영이 아버지 회사에 찾아갔다.
그가 들어오자 반갑게 반겨주려고 하다가 인상을 쓰고 있는 우빈이 표정에 움찔거리며 우빈이를 반겼다.
“파혼한 이유가 뭔가?”
“이유야 많지만, 입 아프게 말하는 것보다 보는 것이 빠를 거 같아 준비했습니다, 김 비서.”
“이게 뭔가?”
“일단 보시죠.”
지영이 아버지 앞에 복사본이 들어 있는 종이봉투를 건네주었고 떨리는 손으로 자료들을 보자 지영이 아버지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져 갔다.
“제가 따님하고 만나는 남자를 몇 명이나 만났는지 아십니까?”
“.......”
“그것도 모자라 따님하고 놀았다던 친구들이 제게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도 아십니까?”
“아닐 게야, 누가 우리 딸을 시기해서 이 같은 말도 안 되는 짓을...”
“다 확인한 사실입니다. 따님도 변명 못 했습니다. 파혼 이유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사실인지 아닌지 한 대표가 어떻게 확인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럼 사실인지 아닌지 조사하시길 바라십니까?”
“그건....”
“이 사장님뿐만 아니라 사모님, 따님도 바라지 않을 텐데요.”
“.......”
“제가 이것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제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시진 않으실 텐데요, 잘 생각하십시오, 어제 같은 일이 또 생긴다면 저도 조용히 끝내진 않을 겁니다. 누가 더 피해가 심할지는 이 사장님이 더 잘 아실 테니까요.”
우빈이 말에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이 사장이라는 남자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 건물을 나와 자신의 회사로 가는 길에 큰 꽃집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대표님?”
“기다려.”
“네.”
한참을 생각한 우빈이는 차에서 내려 꽃집으로 들어가 빨간 튤립꽃다발을 들고 웃음을 머금고 차에 탔다.
회사 주차장에 들어가려고 하는 차를 정문에 세우고 차에서 내린 우빈이는 현주가 일하는 샵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항상 현주보다 다영이가 먼저 우빈이를 반갑게 반겨주었다.
“대표님? 어머, 웬 튤립이에요?”
“현주 씨는 어디 있습니까?”
“손님이 와서요, 어? 저기 오네요.”
샵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남자와 나란히 걸으며 웃고 있는 현주를 보고 들고 있던 꽃다발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저 자식은 누구야.’
꽃다발을 들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었지만 차마 현주에게 줄 꽃다발을 내리칠 수 없었던 우빈이는 꾹 참고 현주가 다가올 때까지 미간을 좁혔다.
“놔....놔줘요.”
“느껴지죠? 내 심장이 어떻게 뛰는지?”
“......”
“현주 씨만 보면 심장이 아플 정도로 빨리 뛰어서 제대로 숨을 쉬기가 힘들어요.”
“그...그건 나 때문이 아니라 대표님이 아픈 건지도 모르잖아요.”
“말했잖아요, 현주 씨만 보면 이렇게 된다고.”
“그럼 절 안 보면 되겠네요.”
그녀의 대답에 웃음 터트리며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 그녀 손목을 잡아당겨 자신 옆에 앉혔다.
“전혀 괜찮지가 않으니까 문제죠.”“앞뒤가 맞는 말을...”
“현주 씨를 안 보면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거 같고 현주 씨를 보면 숨을 못 쉴 정도로 심장이 뛰기는 하지만 이렇게 옆에 있으면 편안해요.”
“......”
“그러니까 대역도 아니고 대신도 아니에요, 내 심장은 딱 한 여자한테만 반응하니까.”
“마....말도 안 돼요! 전 박 민희가 아니라고 대체 몇 번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그녀 손목을 잡고 그도 일어서며 현주 앞에 바짝 다가섰다.
“이제 상관없다고, 내가 다 밝혀내고 알아낼 테니까 그때까지 기대해요, 지금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 거 같네.”
“대표님!”
“가요, 내가 너무 시간을 오래 뺏었네요.”
다정히 현주 손을 잡고 샵에 내려온 우빈이는 그녀 어깨를 살며시 잡고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나 현주 씨 때문에 금욕생활하고 있는 거 알아요?”
“네?”
“훗! 그러니까 너무 애태우지 말아요, 설마 다른 남자하고 벌써 첫키스 한 건 아니죠?”
“대....대표님!”
귀까지 빨개진 그녀를 본 우빈이는 고개를 들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샵으로 그녀 등을 밀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현주는 작업대로 들어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어쩌면 좋아, 그만둘 수도 없고...’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고 주저앉아 있는 현주에게 다가온 다영이가 등을 두드리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 있었어?”
“네? 아니요.”
“그런데 왜 얼굴이 빨개? 또 아파?”
“아...아니요, 안 아파요.”
“그래? 대표님하고 무슨 얘기 하고 왔어?”
“그게....”
“그냥 웬만하면 받아줘.”
“네?”
“대표님 현주 씨한테 마음 있는 거 같은데 뭐 어때? 현주 씨도 싫지 않잖아.”“.....퇴근해도 되죠?”
“어? 그래.”
샵에서 나온 현주는 다른 날과 똑같이 아버지를 보살폈고 편의점 일이 끝나 집에 돌아와 남은 집안일을 마치고 쉬려고 겨우 몸을 누웠지만, 그마저 악몽이 현주를 괴롭혔다.
“하아.....”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 현주는 채 두 시간도 못 자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샵으로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동생이 군대 간 것 빼고 현주의 일상에 특별한 일이 없었다.
우빈이가 회사를 인수하고 자꾸 자신 앞에 나타나는 그가 없었다면 죽을 때까지 적어도 힘든 생활에서 벗어날 때까지 머리가 복잡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한숨을 쉬며 샵 문을 열고 앞치마를 입으려고 할 때 샵 안으로 우빈이가 들어왔다.
“아직 문 안 열었습니다.”
“상관없어요, 현주 씨 보러 온 거니까.”
“대표님!”
“청소 도와줄까요?”
“아니요, 그냥 가주시는 게 도와주시는 거예요. 대표님 이러는 거 부담...”
“그럼 그냥 가죠, 대신 이거 받아요.”
“!”
그녀 손에 작은 쇼핑백을 들려주고 샵을 나가면서 뒤를 돌아 씨익 웃으며 달콤한 협박을 하고 나갔다.
“그거 다시 돌려주면 내가 현주 씨 첫 키스 뺏을 겁니다.”
“!”
화르륵 달아오르는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리며 손에 들린 쇼핑백을 열어보자 비싼 영양제와 작은 카드가 들어 있었다.
테이블에 쇼핑백을 내려놓고 카드를 꺼내 읽었다.
[또 쓰러지지 말고 하루에 한 알씩 영양제 꼭 챙겨 먹어요, 다 떨어질 때 되면 다시 사줄 테니까 안 먹으면 매일 병원 데리고 갈 거니까 병원 가기 싫으면 꼭 먹어요.]
“......”
[카드 봤죠? 다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확인할 거니까 꼭 먹어요. 아까 그 말 빈말 아니니까 잘 생각해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핸드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우빈이의 문자를 받고 당황한 현주는 털썩 의자에 앉아 한동안 쇼핑백을 쳐다보기만 했다.
오픈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자 쇼핑백을 작업대 안에 넣고 청소를 끝낸 뒤 손님이 들어오자 계산대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되어갈 때쯤 다영이가 들어와 현주와 나란히 의자에 앉아 도시락을 꺼냈다.
“웬 도시락이에요?”
“어?”
“사장님 도시락 잘 안 드시잖아요.”
“여기 유명하다고 해서 사와 봤어, 먹어.”
“제 것도 있어요?”
“그럼, 의리 없이 내 것만 사 왔을까 봐? 그리고 영양제 있지?”
“네?”
“대표님이 현주 씨 영양제 먹는 거 확인해 달라고 연락 왔어.”
“......”
“영양제부터 먹고 먹자.”
영양제를 다영이에게 선물하려고 했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리자 한숨을 쉬며 다영 앞에서 영양제를 먹고 도시락을 먹었다.
그녀가 영양제와 도시락을 깨끗이 먹었다는 연락받은 우빈이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거래처와의 식사를 무사히 마쳤다.
금전적으로 현주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자신을 더 싫어하고 경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샵 퇴근 시간에 맞춰 그녀 앞에 나타나 자신의 차로 편의점까지 데려다줬다.
“내일부터 오지 마세요, 버스 타고 다니는 게 편해요.”
“싫어요.”
“대표님!”
“아니면 편의점 일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올까요?”
“대표님!”
“생각 같아선 둘 다 하고 싶은데 현주 씨가 싫어할 거 같으니까 편의점에 데려다주는 거로 만족 하는 거니까 현주 씨가 포기해요.”
“......”
“시간 다 되어가는데 안 내려요? 나야 좋긴 하지만.”
“!”
“풉!”
서둘러 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린 현주는 허겁지겁 편의점에 들어가 점장에게 인사한 후 일을 시작했다.
멀리서 가만히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다가 핸드폰 벨 소리에 전화를 받고 바로 차에 시동을 걸었다.
현재 따로 나와 고급 오피스텔에 살고 있지만 전화를 받고 온 본가에는 부모님이 사는 본가 주택이었다.
“그렇게 알아듣게 얘기했는데도....”
사납게 인상 쓰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기는 우빈 어머니와 우빈이와 마찬가지로 인상 쓰고 있는 우빈이의 아버지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우빈아, 어서 오렴.”
“어머니.”
“우빈아, 이거 어떻게 된 거냐?”
“그러게요, 알아듣게 얘기한 거 같은데...”
우빈 부모 앞에 긴장한 듯 앉아 있는 지영이와 여자의 부모로 보이는 남녀를 보며 점점 눈매가 날카롭게 변해갔다.
“얘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여보 당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빈이한테 직접 들어요, 난 할 말 없으니 들어간다.”
“여보!”
“어머니.”
“그래, 우빈아, 네가 말해봐, 대체 무슨 얘기인데 그래?”
“여기 이 여자랑 파혼했어요.”
“뭐?”
우빈이 말에 놀란 우빈 어머니는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자 어머니를 부축하며 소파에 앉히고 세 사람을 노려보다가 지영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뭐지?”
“그게....”
“저 우리 애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파혼을 그렇게 쉽게...”
“쉽다고 했습니까?”
“결혼하기 전에는 다 그렇게 싸우기도 하고...”
“싸운 적 없습니다.”
“그럼 대체 이유가 뭔가? 왜 파혼을 한다고..”
“따님한테 얘기 못 들으셨습니까?”
지영이의 부모가 지영이를 쳐다봤지만 입을 꾹 다물고 말을 하지 않자 답답했던 우빈 어머니가 우빈이 팔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그래, 이유가 뭐니? 대체 이유가 뭐길래 파혼한다는 거야?”
“사실이 알려지는 게 두렵지 않은가 보군, 좋아, 당신 부모님은 충격받아도 상관없지만 내 어머니는 좀 다르거든.”
“우빈아.”
“어머니 일단 방에 들어가 계세요, 제가 있다가 다 말씀드릴게요.”
“.....그래, 알았다.”
주위에 있던 도우미를 불러 부축해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본 뒤 우빈이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세 사람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 딸이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고 싶으신가요?”
“대체 무슨 소리야.”
“우빈 씨, 제발...”
“왜? 여기까지 온 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온 거 아닌가?”
“좋아, 나도 파혼 이유가 타당하다면 받아들이지, 하지만 이유가...”
“타당이요? 지금 타당이라고 하셨습니까?”
“.......”
“내일 제가 직접 회사로 찾아갈 테니 그만 돌아가 주시죠.”
세 사람을 겨우 돌려보낸 우빈이는 어머니가 계신 방으로 들어가 의자를 가져와 어머니 앞에 앉아 파혼하게 된 이유를 충격을 받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우빈이 얘기를 다 듣고 난 우빈 어머니는 우빈 손을 다정히 잡아주며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구나.”
“어머니가 왜요.”
“내가 사람을 잘못 보는 바람에 네가...”
“그런 말씀 마세요, 지금이라도 알아서 파혼했잖아요. 더 좋은 여자 데리고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누구 있는 거니?”
“나중에요, 아직은 제가 매달리는 중이거든요.”
“그래, 알았다. 난 네가 선택한 여자라면 믿는다.”“네, 쉬세요.”
“자고 가지 그러니.”
“그럴게요.”
인사하고 방을 나와 아버지가 계신 서재로 들어가 마주 앉아 살짝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깨끗하게 끝냈어야지.”
“알아듣도록 얘기했는데 내일 제가 찾아가서 얘기하고 끝낼게요.”
“알았다. 자고 가는 거니?”
“그럴 거예요.”
“그래, 알았다.”
“네. 안녕히 주무세요.”
서재를 나와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문을 열자 매일 청소한 것처럼 깨끗한 자신의 방을 보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다른 날보다 늦게 대표실에 들어온 우빈이를 보고 김 비서는 의아해하며 그의 앞에 검토해야 할 자료들을 내려놓았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네?”
“집에서 자고 와서 늦은 거니까 그만 쳐다봐.”
“아...”
“점심시간 비워놔.”
“네, 어디로 가실 겁니까?”
“그 여자 아버지 회사에 갈 거야.”
“끝난 거 아니었습니까?”
“내가 어제 집에 간 게 그 여자가 부모를 데리고 집까지 찾아왔더라고.”
“......”
“그 자료 복사해 놔.”
“네, 알겠습니다.”
원본을 보여줘서 그 자리에서 없애버린다면 다시 조사하기 힘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빈이는 원본이 아닌 복사본을 들고 전 약혼녀인 지영이 아버지 회사에 찾아갔다.
그가 들어오자 반갑게 반겨주려고 하다가 인상을 쓰고 있는 우빈이 표정에 움찔거리며 우빈이를 반겼다.
“파혼한 이유가 뭔가?”
“이유야 많지만, 입 아프게 말하는 것보다 보는 것이 빠를 거 같아 준비했습니다, 김 비서.”
“이게 뭔가?”
“일단 보시죠.”
지영이 아버지 앞에 복사본이 들어 있는 종이봉투를 건네주었고 떨리는 손으로 자료들을 보자 지영이 아버지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져 갔다.
“제가 따님하고 만나는 남자를 몇 명이나 만났는지 아십니까?”
“.......”
“그것도 모자라 따님하고 놀았다던 친구들이 제게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도 아십니까?”
“아닐 게야, 누가 우리 딸을 시기해서 이 같은 말도 안 되는 짓을...”
“다 확인한 사실입니다. 따님도 변명 못 했습니다. 파혼 이유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사실인지 아닌지 한 대표가 어떻게 확인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럼 사실인지 아닌지 조사하시길 바라십니까?”
“그건....”
“이 사장님뿐만 아니라 사모님, 따님도 바라지 않을 텐데요.”
“.......”
“제가 이것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제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시진 않으실 텐데요, 잘 생각하십시오, 어제 같은 일이 또 생긴다면 저도 조용히 끝내진 않을 겁니다. 누가 더 피해가 심할지는 이 사장님이 더 잘 아실 테니까요.”
우빈이 말에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이 사장이라는 남자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 건물을 나와 자신의 회사로 가는 길에 큰 꽃집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대표님?”
“기다려.”
“네.”
한참을 생각한 우빈이는 차에서 내려 꽃집으로 들어가 빨간 튤립꽃다발을 들고 웃음을 머금고 차에 탔다.
회사 주차장에 들어가려고 하는 차를 정문에 세우고 차에서 내린 우빈이는 현주가 일하는 샵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항상 현주보다 다영이가 먼저 우빈이를 반갑게 반겨주었다.
“대표님? 어머, 웬 튤립이에요?”
“현주 씨는 어디 있습니까?”
“손님이 와서요, 어? 저기 오네요.”
샵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남자와 나란히 걸으며 웃고 있는 현주를 보고 들고 있던 꽃다발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저 자식은 누구야.’
꽃다발을 들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었지만 차마 현주에게 줄 꽃다발을 내리칠 수 없었던 우빈이는 꾹 참고 현주가 다가올 때까지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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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거부할 수 없는 아찔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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