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조회 : 1,108 추천 : 0 글자수 : 5,706 자 2022-10-01
어느 한 고등학교 축제 날 한 여학생이 치마가 짧은 오픈 숄더 원피스와 구두 신고 나타나자 축제를 즐기고 있던 학생들이 그녀를 알아본 듯 수군거리며 바라봤다.
“진짜야?”
“정말 저 애가 박 민희라고?”
“말도 안 돼.”
“그 공부 귀신 박 민희?”
사람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걸어가 축제장에 설치된 무대에 올라가자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 밴드가 올라와 각자 악기 앞에 앉았다.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민희는 마이크를 잡은 그녀의 음성이 마이크를 타고 흐르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한 사람을 위해 노래를 하기 위해서 조금 부끄럽지만, 무대에 섰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내 노래를 잘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부를게요.”
반주가 시작되고 민희가 노래를 부르자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녀의 노래에 빠져들어 갈 때쯤 멀리서 그녀를 빤히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첫사랑에 대한 노래를 시작으로 최신 노래를 불렀고 작별 발라드 노래를 마지막으로 무대를 내려왔다.
멀리서 민희를 지켜보던 남자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민희에게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노래 잘 부르네.”
“고마워요.”
“한 사람을 위해서 불렀다고 했는데 누굴 위해서 부른 거야?”
“비밀이에요.”
“나 말고 다른 남자를 위해서 부른 거면 용서 못 해.”
“그래요? 하지만 마지막 노래는 작별 인사인데?”
“어차피 다 사랑에 대한 노래잖아, 넌 나만 사랑하면 돼.”
“......”
“민희야, 대학교 입학해서 다른 남자 만나면 안 돼.”
“안 만나요.”
민희 뺨에 입을 맞춘 남자는 축제에 있는 여자들의 시선이 집중될 만큼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188cm 큰 키에 운동선수 못지않은 몸을 가지고 있어 어떤 옷을 입어도 남자가 입으면 화보가 되었다.
그녀가 입은 옷을 본 그는 인상을 쓰며 자신이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그녀 어깨에 걸쳐주었다.
“이런 옷 다시는 입지 마.”
“안 예뻐요?”
“예뻐, 그런데 네 하얀 살결이 다 보이잖아.”
“이제 입을 일도 없어요.”
“다행이네. 가자.”
그의 손을 잡고 축제가 열리는 학교를 나오는 동안 남자를 보며 학교 안 사람들은 수군거렸고 여자들은 그와 잠깐 시선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학교 학생들도 민희가 집으로 돌아간 뒤 다시는 민희를 어디에서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라진 민희를 만나려고 집을 찾아갔지만, 그녀의 아버지도 재혼녀도 모른다는 말만 할 뿐 가르쳐주질 않았다.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민희를 만나려고 집 현관문에 들어설 때부터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민희가 사라져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민희가 사라진 후 7년 후 그는 국내에서 서열 1위에 가까운 대기업을 이끄는 부회장이 되어있었다.
7년 동안 민희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는 아버지의 압력에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 간 뒤 회장인 아버지와 회사를 이끌어갔다.
부도 직전인 작은 회사를 그가 인수하기 위해 건물 입구를 들어설 때 1층 작은 디저트샵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를 보고 그의 몸이 굳어졌다.
“부 회장님?”
“.....”
“부 회장님!”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네. 알겠습니다.”
작은 디저트 샵에 들어간 그는 자신이 본 여자에게 다가가 팔을 붙잡고 돌려세워 그녀 얼굴을 보고 눈이 커다래졌다.
“민희?”
“.....”“너 박 민희지? 민희 맞지!”
“죄송하지만 누구세요?”
“박 민희!”
“사람 잘못 보셨어요, 전 정 현주라고 하는데요.”
“!”
“놔주세요, 사람을 착각하셨나 봐요.”
붙잡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멈추었던 자신 일을 하는 현주를 보며 그의 미간이 구겨지기 시작하자 현주가 몸을 움찔거렸다.
그를 수행하는 비서가 달려와 데리고 나가자 현주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고 디저트 샵에 오는 손님에게 주문을 받았다.
인수할 회사 사장을 통해 1층에 있는 샵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민희와 얼굴이 똑같은 현주를 생각하자 그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사장실에서 내려와 1층을 지나가면서 손님에게 미소 짓고 있는 현주를 보며 그는 바로 회사로 돌아와 비서를 불렀다.
“당장 그 정 현주라는 여자에 대해서 알아봐!”
“네?”
“내가 찾고 있는 여자하고 똑같아서 그래,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5년 동안 찾지 못했던 민희 얼굴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현주에 대해서 알아봐야 했다.
쌍둥이가 아니라면 얼굴과 목소리까지 똑같을 수는 없었다.
현주가 민희라는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지만, 만약 정말 민희라면 자신을 몰라본다는 게 말이 되질 않았다.
‘왜? 대체 왜 나를 모르지?’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우선 정 현주라는 여자와 민희가 사라진 7년 전부터 다시 조사하고 싶었다.
그는 다시 비서를 불렀다.
“7년 전에 박 민희라고 19살 여고생이었는데 갑자기 사라졌어, 어디로 사라졌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조사할 수 있는 만큼 조사해.”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네.”
다음 날 그는 다시 디저트 샵으로 찾아가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차 안에서 지켜봤다.
디저트 가게를 찾아오는 남녀를 가리지 않았고 밝게 웃어주며 인사하고 주문을 받은 뒤 즐겁게 얘기까지 주고받았다.
남자 손님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 모습에 미간에 주름이 하나씩 생겨났지만, 현주 앞에 나설 수는 없어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젠장!’
단순히 민희와 닮아서 현주가 신경 쓰이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때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널 잡을 수 있었을까?’
사라지기 마지막 날 민희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서려고 할 때 그를 애처롭게 부르는 그녀의 음성에 몸을 돌리자 그녀가 자신의 품에 안겨들었다.
“왜 그래?”
“좋아서요.”
“나도 네가 좋아, 그러니까 나 말고 다른 남자는 좋아하면 안 돼.”
“그럴게요.”
“말 잘 들어서 착하네.”
“이제 가요.”
“내일 뭐 할지 생각해 둬.”
“네, 잘....”
“응?”
“아....아니에요, 잘 가라고요.”
그때 민희의 미소는 행복한 미소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지치고 힘들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게 아니었어, 잘 가라 라는 말이 아니라 혹시 잘 지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박 민희 진짜 그런 거야?’
왜 몰랐을까?
그녀의 슬픈 미소만 알아차렸더라면 그녀를 그렇게 쉽게 놓쳐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민희를 찾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는 현재 다른 여자와 약혼을 한 상태였다.
‘아니야, 그래도 찾아야 해.’
비서에게 조사를 부탁한 뒤로 일주일 뒤에 비서는 그에게 조사한 결과를 부 회장실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보시면 정 현주는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했고 그 이후에 여러 곳에 아르바이트하고 있습니다. 일을 못 하는 아버지 병원비와 어린 동생을 보살폈고 지금은 부 회장님이 보시는 대로 그 샵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다른 거는?”
“네?”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졸업했다며 초등학교는? 중학교는? 조사 안 했어?”
“그게....어디에도 정 현주 이름으로 졸업한 학교가 없었습니다.”
“뭐? 그게 말이 돼?”
격분한 그를 진정시킨 비서는 얼른 그가 말한 박 민희에 대한 조사도 얘기했다.
“박 민희에 대한 것도 전혀 없습니다.”
“뭐?”
“그러니까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박 민희가 다녔다던 학교에 가 봤지만, 어디에도 박 민희에 대한 기록이 없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래서 더 조사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박 민희는 유령처럼 사라지고 정 현주는 고등학교 전 기록이 없다?”
“.......”
“이거 어떻게 생각해?”
김 비서의 조사한 결과에 황당한 그가 손안에 들린 종이를 구겨 바닥에 집어 던지자 김 비서가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부 회장님, 무례인 줄 알지만 지금 약혼녀가 계시는데 다른 여자분을 찾는다는 걸 아신다면...”
“상관없어, 민희를 찾으면 파혼할 거니까.”
그의 파혼 얘기에 화들짝 놀란 김 비서가 커진 눈으로 그를 보자 당연하다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원래 나한테 여자는 박 민희 하나였어.”
“부 회장님...”
“민희가 사라진 날 그 집에 일했던 사람을 찾아봐.”
“네?”
“지금 일하는 사람 말고 7년 전에 민희 집에서 일했던 사람을 찾아서 만나면 뭔가 알 수 있겠지, 당장 찾아서 내 앞으로 데리고 와.”
“하지만...”
“얼른, 김 비서가 걱정할 일 없어.”
부 회장실을 나온 김 비서는 긴 한숨을 내쉬고 다시 핸드폰을 꺼내 아주 긴 통화를 해야만 했다.
며칠이 지나 부 회장실 그가 앉은 맞은 편에 긴장한 듯 몸이 굳은 채로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아시죠?”
“그....그럼요, 한 우빈 도련님 맞으시죠?”
“네, 맞아요.”
“그런데 절 왜 찾으셨어요?”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뭔데요?”
“민희가 사라진 날 집에 계셨죠?”“아....”
여자의 짧은 탄식에 우빈이는 조심스럽게 여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가정부로 있으셨으니까 민희가 왜 사라졌는지 혹시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시나 해서 불렀어요.”
“죄...죄송합니다. 저도 잘 몰라요.”
“그럼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다만...”
5년 전에 민희 집에서 가정부였던 여자는 그날 우빈이가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들어온 민희를 재혼녀가 집에서 내쫓았다고 했다.
그녀가 집을 나가기 전 재혼녀가 박 회장에게 은밀한 얘기한 뒤로 당일 민희는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집에서 모두 앞에서 사라졌다.
그 뒤로 재혼녀의 딸이 민희가 사용했던 모든 것을 차지했고 민희가 나가는 걸 본 집에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입단속까지 시켰다.
“그럼 왜 내쫓았는지 모르십니까?”
“네, 그것까지는....”
“알겠습니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혹시 민희 아가씨 찾으시는 거라면 제발 찾아주세요.”
“네, 꼭 찾을 겁니다.”
“박 회장님은 민희 아가씨가 사용하던 물건들을 가져가라고 했는데 새 사모님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게 하셔서 그날 아가씨는 입고 있던 옷하고 몇만원이 전부였어요.”
“.......”
“제가 바로 따라나갔는데....”
가정부였던 여자는 민희 얘기에 눈물을 흘리며 당시 그녀가 누구의 도움을 받지도 구하지도 못한 채 사라졌다고 했다.
민희가 사라지고 7년이 지난 지금 그녀와 닮은 현주를 본 우빈이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박 민희가 정 현주라면....’
민희에 대한 모든 기록이 사라졌고 정 현주라는 여자는 고등학교 전에 기록이 없다고 했다.
알아봐야 했지만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주가 있는 디저트 샵으로 찾아갔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현주에게 다가가 팔을 잡아당기며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자 그녀는 인상을 쓰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뭐 하는 짓이에요!”
“너 박 민희 맞지?”
“아니라고 했잖아요!”
“어떻게 민희하고 얼굴하고 목소리가 같을 수 있지!”
“세상에는 닮은 사람은 많아요, 일 방해하지 마시고 나가세요.”
우빈의 등을 세게 밀치며 디저트 샵에서 내보낸 뒤 가게 안에 있는 손님에게 사과한 후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유심히 보다가 그는 핸드폰을 꺼내 차에 올라타며 김 비서를 다시 부 회장실로 불렀다.
“또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정 현주 다시 조사해, 가족까지 싹 다.”
“네?”
“최대한 알아볼 수 있는 데까지 조사해.”
“부 회장님.”
“걱정할 거 없다니까.”“하.....알겠습니다.”
다시 샵을 찾아가 현주를 보고 우빈은 확신에 차 있었다.
‘틀림없이 박 민희야, 그런데 왜 정 현주라고 하는 거야?’
민희가 사라지고 난 이후부터 그는 어느 여자를 만나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현주를 처음 본 날부터 그의 심장이 민희를 만날 때와 같은 반응을 했다.
항상 규칙적으로 뛰던 심장이 민희를 만났을 때와 똑같이 숨이 막힐 뜻 뛰어댔다.
‘뭐 때문에 이름이 바뀌고 왜 날 못 알아보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알아낼 거야.’
하루도 안 된 다음 날 김 비서는 부 회장실에 들어와 그에게 현주에 대한 조사 결과를 얘기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졸업했습니다.”
“또?”
“아버지는 그녀가 16살에 교통사고를 당해 현재까지 일하지 못하고 후유증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
“그래서 그때부터 아르바이트를 밤낮없이 일하면서 아버지 병원비와 동생을 보살피다가 동생도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하며 정 현주 씨를 도와주었지만 1년 전 군대에 입대하면서 다시 정 현주 씨가 받은 돈이 전부 생활비에 쓰이고 있습니다.”
“다른 건?”
“지금은 오전엔 그 샵에서 일하고 새벽에는 편의점에서 일하다가 3시간 정도 자고 난 뒤 다시 샵으로...”“뭐?”
갑자기 그가 두 손으로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김 비서가 안경 끝을 끌어 올리며 헛기침 몇 번을 한 뒤 다시 조사한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샵 사장님이 좋은 분이어서 정 현주 씨 아버지가 병원 가야 할 때는 시간을 내어준다고 합니다.”
“어...어떻게 그 작은 몸으로 한 번도 힘든 일을 한 적 없었는데...”
“부 회장님?”
“김 비서.”
“네.”
“정 현주 아버지가 얼마나 다친 건지 앞으로 얼마나 더 치료해야 하는지 돈이 얼마 드는지, 그리고 동생은 제대하려면 얼마나 남았...아니 이건 알 필요 없을 거 같으니까 됐고 다시 조사해.”
“제발 부 회장님.”
“부탁해.”
그가 부회장이 되기 전부터 옆에서 지켜 봐왔던 김 비서는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허리를 숙이고 부 회장실을 나가며 다시 한 손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민희가 현주라는 것을 확신한 그는 인수하려는 회사 건물에 드나들면서 그녀의 일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남자 손님을 향해 웃어주면 그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나 말고 딴 놈한테는 안 웃기로 한 약속 잊어버린 거야!’
당장 현주에게 다가가 끌고 나오고 싶었지만, 아직 현주 앞에 당당히 나설 수는 없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 작은 회사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과 1층 그녀가 일하는 디저트 샵까지 그대로 우빈이가 인수했다.
“진짜야?”
“정말 저 애가 박 민희라고?”
“말도 안 돼.”
“그 공부 귀신 박 민희?”
사람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걸어가 축제장에 설치된 무대에 올라가자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 밴드가 올라와 각자 악기 앞에 앉았다.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민희는 마이크를 잡은 그녀의 음성이 마이크를 타고 흐르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한 사람을 위해 노래를 하기 위해서 조금 부끄럽지만, 무대에 섰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내 노래를 잘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부를게요.”
반주가 시작되고 민희가 노래를 부르자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녀의 노래에 빠져들어 갈 때쯤 멀리서 그녀를 빤히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첫사랑에 대한 노래를 시작으로 최신 노래를 불렀고 작별 발라드 노래를 마지막으로 무대를 내려왔다.
멀리서 민희를 지켜보던 남자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민희에게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노래 잘 부르네.”
“고마워요.”
“한 사람을 위해서 불렀다고 했는데 누굴 위해서 부른 거야?”
“비밀이에요.”
“나 말고 다른 남자를 위해서 부른 거면 용서 못 해.”
“그래요? 하지만 마지막 노래는 작별 인사인데?”
“어차피 다 사랑에 대한 노래잖아, 넌 나만 사랑하면 돼.”
“......”
“민희야, 대학교 입학해서 다른 남자 만나면 안 돼.”
“안 만나요.”
민희 뺨에 입을 맞춘 남자는 축제에 있는 여자들의 시선이 집중될 만큼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188cm 큰 키에 운동선수 못지않은 몸을 가지고 있어 어떤 옷을 입어도 남자가 입으면 화보가 되었다.
그녀가 입은 옷을 본 그는 인상을 쓰며 자신이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그녀 어깨에 걸쳐주었다.
“이런 옷 다시는 입지 마.”
“안 예뻐요?”
“예뻐, 그런데 네 하얀 살결이 다 보이잖아.”
“이제 입을 일도 없어요.”
“다행이네. 가자.”
그의 손을 잡고 축제가 열리는 학교를 나오는 동안 남자를 보며 학교 안 사람들은 수군거렸고 여자들은 그와 잠깐 시선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학교 학생들도 민희가 집으로 돌아간 뒤 다시는 민희를 어디에서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라진 민희를 만나려고 집을 찾아갔지만, 그녀의 아버지도 재혼녀도 모른다는 말만 할 뿐 가르쳐주질 않았다.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민희를 만나려고 집 현관문에 들어설 때부터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민희가 사라져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민희가 사라진 후 7년 후 그는 국내에서 서열 1위에 가까운 대기업을 이끄는 부회장이 되어있었다.
7년 동안 민희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는 아버지의 압력에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 간 뒤 회장인 아버지와 회사를 이끌어갔다.
부도 직전인 작은 회사를 그가 인수하기 위해 건물 입구를 들어설 때 1층 작은 디저트샵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를 보고 그의 몸이 굳어졌다.
“부 회장님?”
“.....”
“부 회장님!”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네. 알겠습니다.”
작은 디저트 샵에 들어간 그는 자신이 본 여자에게 다가가 팔을 붙잡고 돌려세워 그녀 얼굴을 보고 눈이 커다래졌다.
“민희?”
“.....”“너 박 민희지? 민희 맞지!”
“죄송하지만 누구세요?”
“박 민희!”
“사람 잘못 보셨어요, 전 정 현주라고 하는데요.”
“!”
“놔주세요, 사람을 착각하셨나 봐요.”
붙잡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멈추었던 자신 일을 하는 현주를 보며 그의 미간이 구겨지기 시작하자 현주가 몸을 움찔거렸다.
그를 수행하는 비서가 달려와 데리고 나가자 현주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고 디저트 샵에 오는 손님에게 주문을 받았다.
인수할 회사 사장을 통해 1층에 있는 샵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민희와 얼굴이 똑같은 현주를 생각하자 그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사장실에서 내려와 1층을 지나가면서 손님에게 미소 짓고 있는 현주를 보며 그는 바로 회사로 돌아와 비서를 불렀다.
“당장 그 정 현주라는 여자에 대해서 알아봐!”
“네?”
“내가 찾고 있는 여자하고 똑같아서 그래,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5년 동안 찾지 못했던 민희 얼굴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현주에 대해서 알아봐야 했다.
쌍둥이가 아니라면 얼굴과 목소리까지 똑같을 수는 없었다.
현주가 민희라는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지만, 만약 정말 민희라면 자신을 몰라본다는 게 말이 되질 않았다.
‘왜? 대체 왜 나를 모르지?’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우선 정 현주라는 여자와 민희가 사라진 7년 전부터 다시 조사하고 싶었다.
그는 다시 비서를 불렀다.
“7년 전에 박 민희라고 19살 여고생이었는데 갑자기 사라졌어, 어디로 사라졌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조사할 수 있는 만큼 조사해.”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네.”
다음 날 그는 다시 디저트 샵으로 찾아가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차 안에서 지켜봤다.
디저트 가게를 찾아오는 남녀를 가리지 않았고 밝게 웃어주며 인사하고 주문을 받은 뒤 즐겁게 얘기까지 주고받았다.
남자 손님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 모습에 미간에 주름이 하나씩 생겨났지만, 현주 앞에 나설 수는 없어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젠장!’
단순히 민희와 닮아서 현주가 신경 쓰이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때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널 잡을 수 있었을까?’
사라지기 마지막 날 민희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서려고 할 때 그를 애처롭게 부르는 그녀의 음성에 몸을 돌리자 그녀가 자신의 품에 안겨들었다.
“왜 그래?”
“좋아서요.”
“나도 네가 좋아, 그러니까 나 말고 다른 남자는 좋아하면 안 돼.”
“그럴게요.”
“말 잘 들어서 착하네.”
“이제 가요.”
“내일 뭐 할지 생각해 둬.”
“네, 잘....”
“응?”
“아....아니에요, 잘 가라고요.”
그때 민희의 미소는 행복한 미소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지치고 힘들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게 아니었어, 잘 가라 라는 말이 아니라 혹시 잘 지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박 민희 진짜 그런 거야?’
왜 몰랐을까?
그녀의 슬픈 미소만 알아차렸더라면 그녀를 그렇게 쉽게 놓쳐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민희를 찾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는 현재 다른 여자와 약혼을 한 상태였다.
‘아니야, 그래도 찾아야 해.’
비서에게 조사를 부탁한 뒤로 일주일 뒤에 비서는 그에게 조사한 결과를 부 회장실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보시면 정 현주는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했고 그 이후에 여러 곳에 아르바이트하고 있습니다. 일을 못 하는 아버지 병원비와 어린 동생을 보살폈고 지금은 부 회장님이 보시는 대로 그 샵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다른 거는?”
“네?”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졸업했다며 초등학교는? 중학교는? 조사 안 했어?”
“그게....어디에도 정 현주 이름으로 졸업한 학교가 없었습니다.”
“뭐? 그게 말이 돼?”
격분한 그를 진정시킨 비서는 얼른 그가 말한 박 민희에 대한 조사도 얘기했다.
“박 민희에 대한 것도 전혀 없습니다.”
“뭐?”
“그러니까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박 민희가 다녔다던 학교에 가 봤지만, 어디에도 박 민희에 대한 기록이 없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래서 더 조사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박 민희는 유령처럼 사라지고 정 현주는 고등학교 전 기록이 없다?”
“.......”
“이거 어떻게 생각해?”
김 비서의 조사한 결과에 황당한 그가 손안에 들린 종이를 구겨 바닥에 집어 던지자 김 비서가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부 회장님, 무례인 줄 알지만 지금 약혼녀가 계시는데 다른 여자분을 찾는다는 걸 아신다면...”
“상관없어, 민희를 찾으면 파혼할 거니까.”
그의 파혼 얘기에 화들짝 놀란 김 비서가 커진 눈으로 그를 보자 당연하다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원래 나한테 여자는 박 민희 하나였어.”
“부 회장님...”
“민희가 사라진 날 그 집에 일했던 사람을 찾아봐.”
“네?”
“지금 일하는 사람 말고 7년 전에 민희 집에서 일했던 사람을 찾아서 만나면 뭔가 알 수 있겠지, 당장 찾아서 내 앞으로 데리고 와.”
“하지만...”
“얼른, 김 비서가 걱정할 일 없어.”
부 회장실을 나온 김 비서는 긴 한숨을 내쉬고 다시 핸드폰을 꺼내 아주 긴 통화를 해야만 했다.
며칠이 지나 부 회장실 그가 앉은 맞은 편에 긴장한 듯 몸이 굳은 채로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아시죠?”
“그....그럼요, 한 우빈 도련님 맞으시죠?”
“네, 맞아요.”
“그런데 절 왜 찾으셨어요?”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뭔데요?”
“민희가 사라진 날 집에 계셨죠?”“아....”
여자의 짧은 탄식에 우빈이는 조심스럽게 여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가정부로 있으셨으니까 민희가 왜 사라졌는지 혹시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시나 해서 불렀어요.”
“죄...죄송합니다. 저도 잘 몰라요.”
“그럼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다만...”
5년 전에 민희 집에서 가정부였던 여자는 그날 우빈이가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들어온 민희를 재혼녀가 집에서 내쫓았다고 했다.
그녀가 집을 나가기 전 재혼녀가 박 회장에게 은밀한 얘기한 뒤로 당일 민희는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집에서 모두 앞에서 사라졌다.
그 뒤로 재혼녀의 딸이 민희가 사용했던 모든 것을 차지했고 민희가 나가는 걸 본 집에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입단속까지 시켰다.
“그럼 왜 내쫓았는지 모르십니까?”
“네, 그것까지는....”
“알겠습니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혹시 민희 아가씨 찾으시는 거라면 제발 찾아주세요.”
“네, 꼭 찾을 겁니다.”
“박 회장님은 민희 아가씨가 사용하던 물건들을 가져가라고 했는데 새 사모님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게 하셔서 그날 아가씨는 입고 있던 옷하고 몇만원이 전부였어요.”
“.......”
“제가 바로 따라나갔는데....”
가정부였던 여자는 민희 얘기에 눈물을 흘리며 당시 그녀가 누구의 도움을 받지도 구하지도 못한 채 사라졌다고 했다.
민희가 사라지고 7년이 지난 지금 그녀와 닮은 현주를 본 우빈이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박 민희가 정 현주라면....’
민희에 대한 모든 기록이 사라졌고 정 현주라는 여자는 고등학교 전에 기록이 없다고 했다.
알아봐야 했지만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주가 있는 디저트 샵으로 찾아갔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현주에게 다가가 팔을 잡아당기며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자 그녀는 인상을 쓰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뭐 하는 짓이에요!”
“너 박 민희 맞지?”
“아니라고 했잖아요!”
“어떻게 민희하고 얼굴하고 목소리가 같을 수 있지!”
“세상에는 닮은 사람은 많아요, 일 방해하지 마시고 나가세요.”
우빈의 등을 세게 밀치며 디저트 샵에서 내보낸 뒤 가게 안에 있는 손님에게 사과한 후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유심히 보다가 그는 핸드폰을 꺼내 차에 올라타며 김 비서를 다시 부 회장실로 불렀다.
“또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정 현주 다시 조사해, 가족까지 싹 다.”
“네?”
“최대한 알아볼 수 있는 데까지 조사해.”
“부 회장님.”
“걱정할 거 없다니까.”“하.....알겠습니다.”
다시 샵을 찾아가 현주를 보고 우빈은 확신에 차 있었다.
‘틀림없이 박 민희야, 그런데 왜 정 현주라고 하는 거야?’
민희가 사라지고 난 이후부터 그는 어느 여자를 만나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현주를 처음 본 날부터 그의 심장이 민희를 만날 때와 같은 반응을 했다.
항상 규칙적으로 뛰던 심장이 민희를 만났을 때와 똑같이 숨이 막힐 뜻 뛰어댔다.
‘뭐 때문에 이름이 바뀌고 왜 날 못 알아보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알아낼 거야.’
하루도 안 된 다음 날 김 비서는 부 회장실에 들어와 그에게 현주에 대한 조사 결과를 얘기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졸업했습니다.”
“또?”
“아버지는 그녀가 16살에 교통사고를 당해 현재까지 일하지 못하고 후유증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
“그래서 그때부터 아르바이트를 밤낮없이 일하면서 아버지 병원비와 동생을 보살피다가 동생도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하며 정 현주 씨를 도와주었지만 1년 전 군대에 입대하면서 다시 정 현주 씨가 받은 돈이 전부 생활비에 쓰이고 있습니다.”
“다른 건?”
“지금은 오전엔 그 샵에서 일하고 새벽에는 편의점에서 일하다가 3시간 정도 자고 난 뒤 다시 샵으로...”“뭐?”
갑자기 그가 두 손으로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김 비서가 안경 끝을 끌어 올리며 헛기침 몇 번을 한 뒤 다시 조사한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샵 사장님이 좋은 분이어서 정 현주 씨 아버지가 병원 가야 할 때는 시간을 내어준다고 합니다.”
“어...어떻게 그 작은 몸으로 한 번도 힘든 일을 한 적 없었는데...”
“부 회장님?”
“김 비서.”
“네.”
“정 현주 아버지가 얼마나 다친 건지 앞으로 얼마나 더 치료해야 하는지 돈이 얼마 드는지, 그리고 동생은 제대하려면 얼마나 남았...아니 이건 알 필요 없을 거 같으니까 됐고 다시 조사해.”
“제발 부 회장님.”
“부탁해.”
그가 부회장이 되기 전부터 옆에서 지켜 봐왔던 김 비서는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허리를 숙이고 부 회장실을 나가며 다시 한 손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민희가 현주라는 것을 확신한 그는 인수하려는 회사 건물에 드나들면서 그녀의 일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남자 손님을 향해 웃어주면 그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나 말고 딴 놈한테는 안 웃기로 한 약속 잊어버린 거야!’
당장 현주에게 다가가 끌고 나오고 싶었지만, 아직 현주 앞에 당당히 나설 수는 없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 작은 회사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과 1층 그녀가 일하는 디저트 샵까지 그대로 우빈이가 인수했다.
작가의 말
완결까지 잘 부탁드려요^^
닫기거부할 수 없는 아찔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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