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조회 : 808 추천 : 0 글자수 : 6,402 자 2022-10-18
우빈이를 따라 대표 회의실에 들어서자 긴장한 듯 현주가 몸을 움츠리자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 어깨에 손을 살며시 올렸다.
“대...대표님?”
“내가 누구 아들이고 내가 어떤 남자인지 알죠?”
“.......”
“아직 박 회장님보다 내 힘이 미약하지만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아.”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널 떠나게 놔두지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지도 않을 거야.”
“.......”
“만약 내 힘으로도 안 된다면 아버지 힘을 빌려서라도 널 꼭 돌려놓을 거야.”
“대표님, 그러니까 그런 말을 왜 저한테 하시는 건데요?”
어깨를 잡은 우빈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미간을 좁히며 몸을 비틀었지만 오히려 그가 괴로운 듯 인상을 찌푸렸다.
“난 절대 포기 못 해.”
“누구한테 말하는 건데요? 전 대표님이 생각하는...앗!”
어깨를 잡고 있던 그가 그녀 손목을 잡아당겨 몸을 밀착시키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한 손으로 그녀 얼굴을 쓰다듬었다.
“대...대표님?”
“학생일 때는 제대로 유혹하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번엔 제대로 현주를 유혹해 볼 작정이야.”
“유....유혹이라니...”
“현주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대표님, 이것 좀 놔주세요.”
“난 박 회장님 딸이라 민희를 좋아한 게 아니야, 그냥 한 여자로 박 민희 아니 정 현주를 좋아하고 사랑한 거였으니까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왜 내가 박 민희라고 생각해요? 아니라고 몇 번을....”
“네가 고아였어도 사랑했을 거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내가 빼앗아오면 되니까 그것도 상관없어.”
쏟아내는 우빈이의 말들을 듣는 중 현주의 얼굴이 조금씩 빨개져 가자 풉하고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품에 안았다.
“!”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아도 상관없어, 내가 다 갖고 있고 내가 다 해줄 수 있으니까.”
“대...대표님 제발 전...”
“기다린다고 했으니까 기다릴게,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진 않아.”
“네?”
“난 한다면 하는 놈인거 네가 잘 알잖아, 내가 어떻게든 다 알아낸다고 했잖아요. 그 전에 먼저 말해주면 더 좋고.”
현주의 어깨를 살며시 잡아 떨어뜨린 후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이마를 맞대고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이렇게 내가 보이는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긴 해.”
“!”
“오래 걸리지 않게 나를 사랑하도록 제대로 유혹해 볼게.”
“대....대표님!”
“겁나면 지금 내 유혹에 넘어올래?”
“!”
“풉! 얼굴 터질 거 같아.”
그녀 손을 잡은 채 회의실을 나가려고 하자 자신의 손을 빼내고 먼저 대표실을 나가려고 했지만, 다시 그에게 손목이 붙잡혔다.
“놔...놔주세요.”
“하나만 더 말하고 놔줄게.”
“뭐...뭔데요?”
“7년 전 네가 힘들었던 거 몰라줘서 미안해.”
“!”
“너만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네가 힘들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어.”
“무슨...”
“미안해, 늦었지만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제부터 다를 거야. 알아 둬.”
자신을 확실히 민희라고 생각하는 우빈이가 반말을 하자 머리가 복잡해진 현주는 손을 뿌리치고 샵으로 뛰어 내려갔다.
삼 일 뒤에 편의점에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을 구했고 다음 날부터 샵 일이 끝나면 곧바로 집에 가서 조금은 여유롭게 쉴 수 있었다.
주소대로 찾아간 오피스텔에 들어가자 생각한 것보다 너무 넓은 내부에 멍하게 서 있다가 거실 소파로 다가가자 테이블 위에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말씀드린 대로 서재만 빼고 다른 곳은 청소해도 상관없습니다, 빨래는 가져가는 사람이 있으니까 청소만 해주시면 됩니다.]
청소하려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매일 청소한 것처럼 먼지도 없었고 어지럽혀있지도 않고 오히려 깔끔한 오피스텔 내부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 진짜 청소해 달라고 부른 거 맞아?”
하지만 청소하기로 약속한 현주는 외투를 벗고 가져온 앞치마를 두르고 걸레로 가구와 선반을 닦았다.
수월했던 청소가 끝내고 주방에 들어가 냉장고를 열어 그 안을 보고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밥은 먹고 사나?”
냉장고 안에는 물과 약간의 술은 있었지만, 반찬이나 음식 재료들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필요한 것이 있으면 쓰라며 메모와 함께 있던 카드가 생각나자 외투를 입고 오피스텔을 나갔다.
근처 마트에서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장을 본 뒤 다음 날 음식 재료들을 손질하고 일요일에는 오피스텔 주인이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만들어 놓고 메모를 식탁에 놓아두었다.
그날 저녁 오피스텔 현관문을 열자 맛있는 냄새에 놀라 구두를 벗고 주방에 가자 식탁에 현주가 쓴 것처럼 보이는 메모가 보였다.
[허락도 없이 카드 써서 죄송해요, 냉장고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서 만들어 봤어요, 맛있을지 모르겠지만...하지 말라고 하시면 하지 않을게요, 그래도 식사는 하셔야 할 거 같아서 그럼 담 주말에 올게요.]
“참, 그냥 쉬게 하려고 했는데 요리까지 할 줄은 몰랐네.”
가스레인지 위에는 그녀가 만든 찌개와 냉장고에는 몇 가지 반찬이 눈에 들어오자 기분이 좋은 우빈이는 반찬을 꺼내 찌개와 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다 먹은 후 소파에 앉아 자신이 없는 동안 그녀가 오피스텔에서 뭐를 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궁금했다.
“하아....이것도 미치겠네.”
주말 동안 본가에 가기는 하지만 매번 가는 건 아니었기에 차에서 기다렸다가 그녀가 나오고 나서야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청소할 것이 없어 일찍 갈 줄 알았지만, 오후가 되도록 나오지 않자 차에서 기다리는 것이 힘들었던 그는 고민 끝에 오피스텔에서 빨리 내보낼 방법을 생각해 냈다.
쉬게도 해주고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는 은밀한 계획을 세웠다.
“이러면 너도 어쩔 수 없겠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다음날 대표실에서 김 비서를 통해 민희와 같은 반이었던 친구의 말을 전해주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유학 갔다는 말만 전해줬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담임 선생님 행방은?”
“그게....”
“왜?”
“박 민희가 유학 가고 몇 달 뒤 해외로 이민 갔습니다.”
“뭐야! 무슨 수를 써서 알아내, 만나지 않아도 좋으니까 연락처라도 알아내.”
“알겠습니다.”
민희를 알고 있거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행방이 이상했다.
유학이라고 했지만, 학교에는 그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고 어디에도 그녀가 해외로 간 기록은 발견하지 못했다.
현재 자신이 회사 건물 디저트 샵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학, 유학이라....”
다시 그녀가 보고 싶은 그는 샵으로 내려가 계산대에 다가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커피 주문을 했다.
“포장...”
“아니요, 마시고 갈게요.”
“알겠습니다. 다 되면 가져다드릴게요.”
“그러죠.”
다른 손님의 음료를 가져다준 뒤 우빈이의 커피를 가지고 그가 앉은 테이블에 커피를 주고 가려는 자신의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왜...왜 이러세요.”
“잠깐 앉으면 안 돼요?”
“안 돼요.”
“사장님은 손님하고 앉아서 얘기하던데.”
“전 직원이잖아요, 놔주세요.”
“그렇구나.”
“!”
손을 살며시 놓으며 그가 자신의 손가락 끝을 입가로 가져가 입을 맞추고 나서야 놓아주었다.
“무슨 짓을....”
“아무 짓 안 했는데요.”
“......”
“풉! 얼굴 또 빨개지네요.”
“!”
쟁반으로 얼굴을 가리고 작업대에 들어가 그를 힐끗 쳐다보다가 다시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획 돌렸다.
그가 웃는 소리가 약하게 들리는 것 같아 창피하고 부끄러워 작업대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열심히 일하는 현주 모습을 지켜보다가 커피를 다 마시고 직접 빈 커피잔을 건네주면서 샵을 나갔다.
샵 안에 있던 여자 손님들은 우빈이의 등장에 수군거리기도 했고 그와 잠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하루에 한 번 그가 왔다 가면 피곤 해진 현주는 작업대 의자에 앉아 한숨을 푹 쉬고 있을 때 다영이가 그녀 어깨를 톡톡 다독였다.
“그만 애태우고 받아줘.”
“네?”
“능력 있고 외모도 빠지지 않잖아, 현주 씨가 뭐가 부족해서 자꾸 밀어내?”
“사장님....”
“아버지도 물리치료만 하면 되고 저번에 동생 보니까 듬직하던데 뭘, 그냥 받아줘. 저렇게 현주 씨 좋아하는데.”
“......”
“너무 애태우면 나중에 현주 씨만 힘들어.”
“네?”
“호호호 그런 게 있어.”
유혹할 거란 그의 말에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조금씩 그의 행동이 대담해지자 7년 전에 감춰놨던 그를 좋아한 감정이 되살아나려고 했다.
‘안 돼, 제발 나오지 마.’
박 민희가 아닌 정 현주로 살아 가기로 결정할 때부터 한 우빈이라는 남자를 잊기로 했다.
아니 잊어야 정 현주로 살아갈 수 있고 그를 지킬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집에서 나올 때 박 회장의 말을 대신 전한 재혼녀의 말이 생각나자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꽉 쥐었다.
‘절대 흔들려선 안 돼. 난 박 민희가 아니야, 정 현주야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을 거야.’
하지만 매번 현주의 그런 결심을 쉽게 무너뜨리는 사람이 바로 우빈이었다.
토요일에 오피스텔에 들어가 청소하려고 들어가려고 할 때 그녀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앞으로 오후 1시 전에 청소를 끝내주세요, 제가 당분간 본가에 못 갈 거 같아 그러니까 부탁합니다.]
“아....뭐 청소할 것도 없으니까.”
청소기를 돌리려고 할 때 그녀 핸드폰 벨 소리에 화면에 보이는 모르는 번호에 고민했다가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현주 씨.
- 네, 맞는데, 누구세요?
- 우빈이에요.
- 대...대표님?
- 오늘 뭐 해요?
- 지금 오피스텔에서 청소하고...
- 끝나고 나랑 데이트해요.
- 네?
- 오피스텔 앞에서 기다릴 테니까 끝나면 나와요.
- 대표..
그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핸드폰이 끊어지자 한숨을 길게 내쉬며 주머니에 넣은 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했다.
오후 1시가 되기 전에 오피스텔을 입구로 나오자 우빈이가 다가왔다.
“어....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주소 내가 말해준 거 잊었어요?”
“!”
“가요, 오늘 내가 재미있게 해줄게요.”
“앗! 대...대표님, 전...”
“일단 타고 얘기해요.”
머뭇거리는 그녀를 차에 태우고 벨트까지 메준 뒤 차에 시동을 걸어 한적한 길을 오랫동안 달렸다.
점점 도심 속에서 멀어지자 놀란 현주가 눈을 크게 뜨며 바라봤다.
“대체 어딜 가는 거예요?”
“이제야 날 보네요.”
“대표님!”
“밖에서까지 대표라는 소리 듣고 싶지 않은데.”
“....어디 가는 거냐고요.”
“데이트하러 간다니까요.”
차가 멈추자 우빈이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차에서 내려 차 문을 열고 그녀를 차에서 내릴 수 있도록 손을 내밀었다.
“안 내릴 거예요?”
“.......”
“그럼 할 수 없네.”
“?”
“안아서 내려줄 수밖에.”
“!”
“설마 그걸 원한 건...”
“아...아니요, 내려요. 내릴게요.”
“훗!”
차에서 내려 주위를 풍경에 깜짝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어깨를 으쓱거리고 미소를 지으며 그녀 손을 덥석 잡고 들어갔다.
“이런 곳 좋아하죠.”
“.......”
“좀 걷다가 배고프면 말해요, 근처에 맛집 있으니까.”
“대표님....”
“대표라는 거 아니까 그만 불러요, 여기 오랜만에 오는 거 아닌가?”
“!”
우빈이 손을 잡고 걸어간 곳은 곧게 뻗은 나무들과 야생화가 잘 가꾸어진 수목원이었다.
7년 전에 마음이 울적하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 우빈이와 함께 와서 산책하다가 가곤 했던 곳이었다.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생활고에 시달려 잊고 살았던 7년전의 여유였다.
마음이 울적할 틈도 머리가 복잡해서 생각할 틈도 없이 그저 아픈 아버지와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살아갔다.
그가 잡은 손을 빼내려다가 조금씩 옛날 일이 떠오르자 움직임이 멈추며 말없이 그와 나란히 걸었다.
그녀의 저항이 없어지자 한시라도 떨어지기 싫은 사람처럼 그녀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두 사람 앞에 보이는 벤치에 그녀를 앉히고 근처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를 가져와 건네주었다.
“마셔요.”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온 소감은 어때요?”
“전...”
그가 준 음료를 만지작거리며 옆에 앉은 우빈이를 힐끗 바라보다가 자신 발아래로 고개를 숙이며 나지막이 물었다.
“제가 많이 닮았나요?”
“아니요.”
“그것도 아니면서 자꾸 왜 저한테 이러세요?”
“알면서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네.”
“.......”
“잘 들어요.”
“!”
자리에서 일어난 우빈이는 그녀 앞에 앉아 무릎 꿇고 앉아 그녀 손을 감싸며 애틋한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닮아서가 아니라 같은 사람이니까.”
“아니라고...”“당장 현주 씨 아버님이나 동생을 만나서 확인하면 끝나지만.”
“!”
“난 현주가 직접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
“.......”
“7년 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아요?”
“죄송하지만 그만 가요.”
“....알았어요, 오늘은 그만 가죠. 앞으로 시간은 충분하니까.”
식사하지 않고 집에 데려다준 우빈이는 울적해 보이는 현주를 잡고 싶었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만족했다.
“푹 쉬고 내일 또 데이트해요.”
“네?”
“끝날 때 오피스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대...대표님?”
“내가 누구 아들이고 내가 어떤 남자인지 알죠?”
“.......”
“아직 박 회장님보다 내 힘이 미약하지만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아.”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널 떠나게 놔두지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지도 않을 거야.”
“.......”
“만약 내 힘으로도 안 된다면 아버지 힘을 빌려서라도 널 꼭 돌려놓을 거야.”
“대표님, 그러니까 그런 말을 왜 저한테 하시는 건데요?”
어깨를 잡은 우빈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미간을 좁히며 몸을 비틀었지만 오히려 그가 괴로운 듯 인상을 찌푸렸다.
“난 절대 포기 못 해.”
“누구한테 말하는 건데요? 전 대표님이 생각하는...앗!”
어깨를 잡고 있던 그가 그녀 손목을 잡아당겨 몸을 밀착시키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한 손으로 그녀 얼굴을 쓰다듬었다.
“대...대표님?”
“학생일 때는 제대로 유혹하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번엔 제대로 현주를 유혹해 볼 작정이야.”
“유....유혹이라니...”
“현주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대표님, 이것 좀 놔주세요.”
“난 박 회장님 딸이라 민희를 좋아한 게 아니야, 그냥 한 여자로 박 민희 아니 정 현주를 좋아하고 사랑한 거였으니까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왜 내가 박 민희라고 생각해요? 아니라고 몇 번을....”
“네가 고아였어도 사랑했을 거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내가 빼앗아오면 되니까 그것도 상관없어.”
쏟아내는 우빈이의 말들을 듣는 중 현주의 얼굴이 조금씩 빨개져 가자 풉하고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품에 안았다.
“!”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아도 상관없어, 내가 다 갖고 있고 내가 다 해줄 수 있으니까.”
“대...대표님 제발 전...”
“기다린다고 했으니까 기다릴게,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진 않아.”
“네?”
“난 한다면 하는 놈인거 네가 잘 알잖아, 내가 어떻게든 다 알아낸다고 했잖아요. 그 전에 먼저 말해주면 더 좋고.”
현주의 어깨를 살며시 잡아 떨어뜨린 후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이마를 맞대고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이렇게 내가 보이는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긴 해.”
“!”
“오래 걸리지 않게 나를 사랑하도록 제대로 유혹해 볼게.”
“대....대표님!”
“겁나면 지금 내 유혹에 넘어올래?”
“!”
“풉! 얼굴 터질 거 같아.”
그녀 손을 잡은 채 회의실을 나가려고 하자 자신의 손을 빼내고 먼저 대표실을 나가려고 했지만, 다시 그에게 손목이 붙잡혔다.
“놔...놔주세요.”
“하나만 더 말하고 놔줄게.”
“뭐...뭔데요?”
“7년 전 네가 힘들었던 거 몰라줘서 미안해.”
“!”
“너만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네가 힘들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어.”
“무슨...”
“미안해, 늦었지만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제부터 다를 거야. 알아 둬.”
자신을 확실히 민희라고 생각하는 우빈이가 반말을 하자 머리가 복잡해진 현주는 손을 뿌리치고 샵으로 뛰어 내려갔다.
삼 일 뒤에 편의점에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을 구했고 다음 날부터 샵 일이 끝나면 곧바로 집에 가서 조금은 여유롭게 쉴 수 있었다.
주소대로 찾아간 오피스텔에 들어가자 생각한 것보다 너무 넓은 내부에 멍하게 서 있다가 거실 소파로 다가가자 테이블 위에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말씀드린 대로 서재만 빼고 다른 곳은 청소해도 상관없습니다, 빨래는 가져가는 사람이 있으니까 청소만 해주시면 됩니다.]
청소하려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매일 청소한 것처럼 먼지도 없었고 어지럽혀있지도 않고 오히려 깔끔한 오피스텔 내부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 진짜 청소해 달라고 부른 거 맞아?”
하지만 청소하기로 약속한 현주는 외투를 벗고 가져온 앞치마를 두르고 걸레로 가구와 선반을 닦았다.
수월했던 청소가 끝내고 주방에 들어가 냉장고를 열어 그 안을 보고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밥은 먹고 사나?”
냉장고 안에는 물과 약간의 술은 있었지만, 반찬이나 음식 재료들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필요한 것이 있으면 쓰라며 메모와 함께 있던 카드가 생각나자 외투를 입고 오피스텔을 나갔다.
근처 마트에서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장을 본 뒤 다음 날 음식 재료들을 손질하고 일요일에는 오피스텔 주인이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만들어 놓고 메모를 식탁에 놓아두었다.
그날 저녁 오피스텔 현관문을 열자 맛있는 냄새에 놀라 구두를 벗고 주방에 가자 식탁에 현주가 쓴 것처럼 보이는 메모가 보였다.
[허락도 없이 카드 써서 죄송해요, 냉장고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서 만들어 봤어요, 맛있을지 모르겠지만...하지 말라고 하시면 하지 않을게요, 그래도 식사는 하셔야 할 거 같아서 그럼 담 주말에 올게요.]
“참, 그냥 쉬게 하려고 했는데 요리까지 할 줄은 몰랐네.”
가스레인지 위에는 그녀가 만든 찌개와 냉장고에는 몇 가지 반찬이 눈에 들어오자 기분이 좋은 우빈이는 반찬을 꺼내 찌개와 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다 먹은 후 소파에 앉아 자신이 없는 동안 그녀가 오피스텔에서 뭐를 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궁금했다.
“하아....이것도 미치겠네.”
주말 동안 본가에 가기는 하지만 매번 가는 건 아니었기에 차에서 기다렸다가 그녀가 나오고 나서야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청소할 것이 없어 일찍 갈 줄 알았지만, 오후가 되도록 나오지 않자 차에서 기다리는 것이 힘들었던 그는 고민 끝에 오피스텔에서 빨리 내보낼 방법을 생각해 냈다.
쉬게도 해주고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는 은밀한 계획을 세웠다.
“이러면 너도 어쩔 수 없겠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다음날 대표실에서 김 비서를 통해 민희와 같은 반이었던 친구의 말을 전해주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유학 갔다는 말만 전해줬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담임 선생님 행방은?”
“그게....”
“왜?”
“박 민희가 유학 가고 몇 달 뒤 해외로 이민 갔습니다.”
“뭐야! 무슨 수를 써서 알아내, 만나지 않아도 좋으니까 연락처라도 알아내.”
“알겠습니다.”
민희를 알고 있거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행방이 이상했다.
유학이라고 했지만, 학교에는 그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고 어디에도 그녀가 해외로 간 기록은 발견하지 못했다.
현재 자신이 회사 건물 디저트 샵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학, 유학이라....”
다시 그녀가 보고 싶은 그는 샵으로 내려가 계산대에 다가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커피 주문을 했다.
“포장...”
“아니요, 마시고 갈게요.”
“알겠습니다. 다 되면 가져다드릴게요.”
“그러죠.”
다른 손님의 음료를 가져다준 뒤 우빈이의 커피를 가지고 그가 앉은 테이블에 커피를 주고 가려는 자신의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왜...왜 이러세요.”
“잠깐 앉으면 안 돼요?”
“안 돼요.”
“사장님은 손님하고 앉아서 얘기하던데.”
“전 직원이잖아요, 놔주세요.”
“그렇구나.”
“!”
손을 살며시 놓으며 그가 자신의 손가락 끝을 입가로 가져가 입을 맞추고 나서야 놓아주었다.
“무슨 짓을....”
“아무 짓 안 했는데요.”
“......”
“풉! 얼굴 또 빨개지네요.”
“!”
쟁반으로 얼굴을 가리고 작업대에 들어가 그를 힐끗 쳐다보다가 다시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획 돌렸다.
그가 웃는 소리가 약하게 들리는 것 같아 창피하고 부끄러워 작업대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열심히 일하는 현주 모습을 지켜보다가 커피를 다 마시고 직접 빈 커피잔을 건네주면서 샵을 나갔다.
샵 안에 있던 여자 손님들은 우빈이의 등장에 수군거리기도 했고 그와 잠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하루에 한 번 그가 왔다 가면 피곤 해진 현주는 작업대 의자에 앉아 한숨을 푹 쉬고 있을 때 다영이가 그녀 어깨를 톡톡 다독였다.
“그만 애태우고 받아줘.”
“네?”
“능력 있고 외모도 빠지지 않잖아, 현주 씨가 뭐가 부족해서 자꾸 밀어내?”
“사장님....”
“아버지도 물리치료만 하면 되고 저번에 동생 보니까 듬직하던데 뭘, 그냥 받아줘. 저렇게 현주 씨 좋아하는데.”
“......”
“너무 애태우면 나중에 현주 씨만 힘들어.”
“네?”
“호호호 그런 게 있어.”
유혹할 거란 그의 말에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조금씩 그의 행동이 대담해지자 7년 전에 감춰놨던 그를 좋아한 감정이 되살아나려고 했다.
‘안 돼, 제발 나오지 마.’
박 민희가 아닌 정 현주로 살아 가기로 결정할 때부터 한 우빈이라는 남자를 잊기로 했다.
아니 잊어야 정 현주로 살아갈 수 있고 그를 지킬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집에서 나올 때 박 회장의 말을 대신 전한 재혼녀의 말이 생각나자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꽉 쥐었다.
‘절대 흔들려선 안 돼. 난 박 민희가 아니야, 정 현주야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을 거야.’
하지만 매번 현주의 그런 결심을 쉽게 무너뜨리는 사람이 바로 우빈이었다.
토요일에 오피스텔에 들어가 청소하려고 들어가려고 할 때 그녀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앞으로 오후 1시 전에 청소를 끝내주세요, 제가 당분간 본가에 못 갈 거 같아 그러니까 부탁합니다.]
“아....뭐 청소할 것도 없으니까.”
청소기를 돌리려고 할 때 그녀 핸드폰 벨 소리에 화면에 보이는 모르는 번호에 고민했다가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현주 씨.
- 네, 맞는데, 누구세요?
- 우빈이에요.
- 대...대표님?
- 오늘 뭐 해요?
- 지금 오피스텔에서 청소하고...
- 끝나고 나랑 데이트해요.
- 네?
- 오피스텔 앞에서 기다릴 테니까 끝나면 나와요.
- 대표..
그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핸드폰이 끊어지자 한숨을 길게 내쉬며 주머니에 넣은 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했다.
오후 1시가 되기 전에 오피스텔을 입구로 나오자 우빈이가 다가왔다.
“어....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주소 내가 말해준 거 잊었어요?”
“!”
“가요, 오늘 내가 재미있게 해줄게요.”
“앗! 대...대표님, 전...”
“일단 타고 얘기해요.”
머뭇거리는 그녀를 차에 태우고 벨트까지 메준 뒤 차에 시동을 걸어 한적한 길을 오랫동안 달렸다.
점점 도심 속에서 멀어지자 놀란 현주가 눈을 크게 뜨며 바라봤다.
“대체 어딜 가는 거예요?”
“이제야 날 보네요.”
“대표님!”
“밖에서까지 대표라는 소리 듣고 싶지 않은데.”
“....어디 가는 거냐고요.”
“데이트하러 간다니까요.”
차가 멈추자 우빈이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차에서 내려 차 문을 열고 그녀를 차에서 내릴 수 있도록 손을 내밀었다.
“안 내릴 거예요?”
“.......”
“그럼 할 수 없네.”
“?”
“안아서 내려줄 수밖에.”
“!”
“설마 그걸 원한 건...”
“아...아니요, 내려요. 내릴게요.”
“훗!”
차에서 내려 주위를 풍경에 깜짝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어깨를 으쓱거리고 미소를 지으며 그녀 손을 덥석 잡고 들어갔다.
“이런 곳 좋아하죠.”
“.......”
“좀 걷다가 배고프면 말해요, 근처에 맛집 있으니까.”
“대표님....”
“대표라는 거 아니까 그만 불러요, 여기 오랜만에 오는 거 아닌가?”
“!”
우빈이 손을 잡고 걸어간 곳은 곧게 뻗은 나무들과 야생화가 잘 가꾸어진 수목원이었다.
7년 전에 마음이 울적하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 우빈이와 함께 와서 산책하다가 가곤 했던 곳이었다.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생활고에 시달려 잊고 살았던 7년전의 여유였다.
마음이 울적할 틈도 머리가 복잡해서 생각할 틈도 없이 그저 아픈 아버지와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살아갔다.
그가 잡은 손을 빼내려다가 조금씩 옛날 일이 떠오르자 움직임이 멈추며 말없이 그와 나란히 걸었다.
그녀의 저항이 없어지자 한시라도 떨어지기 싫은 사람처럼 그녀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두 사람 앞에 보이는 벤치에 그녀를 앉히고 근처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를 가져와 건네주었다.
“마셔요.”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온 소감은 어때요?”
“전...”
그가 준 음료를 만지작거리며 옆에 앉은 우빈이를 힐끗 바라보다가 자신 발아래로 고개를 숙이며 나지막이 물었다.
“제가 많이 닮았나요?”
“아니요.”
“그것도 아니면서 자꾸 왜 저한테 이러세요?”
“알면서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네.”
“.......”
“잘 들어요.”
“!”
자리에서 일어난 우빈이는 그녀 앞에 앉아 무릎 꿇고 앉아 그녀 손을 감싸며 애틋한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닮아서가 아니라 같은 사람이니까.”
“아니라고...”“당장 현주 씨 아버님이나 동생을 만나서 확인하면 끝나지만.”
“!”
“난 현주가 직접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
“.......”
“7년 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아요?”
“죄송하지만 그만 가요.”
“....알았어요, 오늘은 그만 가죠. 앞으로 시간은 충분하니까.”
식사하지 않고 집에 데려다준 우빈이는 울적해 보이는 현주를 잡고 싶었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만족했다.
“푹 쉬고 내일 또 데이트해요.”
“네?”
“끝날 때 오피스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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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거부할 수 없는 아찔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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