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조회 : 900 추천 : 0 글자수 : 6,446 자 2022-10-20
대문 앞에서 뒤를 돌아보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차에 올라타고 현주 시야에서 멀어지고 난 후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갔다.
다른 날보다 일찍 집에 온 현주를 보고 놀란 아버지는 그녀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지 못하고 묵묵히 방에 앉아 있었다.
항상 새벽에 해야 할 밀린 집안일을 일찍 끝내고 자신의 방에 들어가 벽에 등을 기대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하아.....”
길게 한숨을 쉬던 현주의 뺨 위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흑....”
방구석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현주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숨 숙여 울다가 죽을 때까지 열어보지 않으려고 했던 상자를 열었다.
조심스럽게 상자 뚜껑을 열자 다시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오빠.....”
버려야 했지만 차마 버릴 수 없었던 우빈이와의 소중한 추억이 있는 물건들이 들어 있는 상자였다.
물건들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자 서둘러 뚜껑을 닫고 원래 자리로 돌려놓은 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나 어떡하면 좋아요, 엄마.....오빠를...도저히 오빠를....흐흑.”
아버지 저녁 식사를 드리기 위해 방을 나와 음식을 만들어 상에 차린 뒤 아버지에게 식사를 가져다주고 나가려는데 아버지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현주야...”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물리치료 그만하자.”
“무슨 말씀이세요?”
“시간 낭비인 거 너도 알잖니.”
“안 움직이는 것보다 나으니까 그냥 받으세요.”
“네가 힘들어하는 거 보고 싶지 않단다, 그러려고 너 데려온 거...”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가을에 도훈이도 제대하잖아요, 그럼 식사하세요.”
현주 아버지이긴 하지만 같이 밥을 먹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19살에 만난 아버지라는 사람과 앉아 처음 밥을 먹고 나서부터는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소화가 되지 않았고 복통으로 응급실을 가기 일쑤였다.
자신의 방에서 조촐하게 밥을 먹은 후 식사를 끝낸 아버지 밥상을 치우고 방에 들어가 핸드폰에 저장된 음악을 들었다.
토요일과 마찬가지로 일요일 역시 1시가 되기 전 나와야 했고 싱크대에 있는 그릇을 씻고 다 먹은 반찬과 밥을 해 놓고 나오자 자신 앞에 다시 우빈이가 나타났다.
“갈까요?”
“대표님.”
“안 간다고요? 안 돼요.”
“아니요, 저하고 같이 가 주실 곳이 있어요.”
“좋아요, 가요.”
웃고 있는 그를 슬픈 미소를 짓고 바라보며 차에 탄 현주는 그에게 핸드폰에 보인 주소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핸드폰 화면에 보이는 주소를 보고 놀란 우빈이는 그녀와 핸드폰을 번갈아 봤다.
“여긴...”
“가보면 알아요.”
“현주 씨?”
“도착하면 말씀드릴게요.”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킨 우빈이는 그녀와 함께 도착한 곳은 납골 공원 주차장이었다.
차를 세워두고 그녀 뒤를 말없이 따라가다가 멈춰선 유골함 앞에 다가간 우빈이는 처음 보는 여자 사진과 처음 보는 이름이 보고 어리둥절했다.
“현주 씨?”
“이분이 누군지 궁금하죠?”
“누군데요?”
가만히 사진 속 여자를 보던 현주가 몸을 돌려 우빈이를 바라보며 아주 슬픈 미소를 짓고는 다시 사진 속 여자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제 어머니예요.”
“네?”
“절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어머니라고요.”
“.....”
아니다.
그녀를 낳고 키워준 어머니는 박 회장의 본처라고 알고 있는 우빈이는 지금 현주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현주가 사진 속에 초라한 모습의 여자가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주신 어머니라고 한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우빈이는 그녀 어깨를 잡아 돌려세우고 다그치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잖아!”
“맞아요.”
“현주 씨 어머니는 이분이 아니잖아요, 제가 아는 분이...”
“대표님이 말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박 민희겠죠.”
“정 현주!”
“말했잖아요, 전 박 민희가 아니고 정 현주라고.”
“이 여자가 누군지는 몰라, 하지만 네 어머니는 네가 잘 알아. 따라와!”
“앗! 왜 이래요.”
성난 사람처럼 그녀 손목을 거칠게 잡아끈 우빈이는 박 회장의 본처 유골 앞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같은 납골 공원에 박 회장 본처 유골이 있다는 것을 우빈이가 모를 리가 없었다.
“!”
“이분이 누군지 알지!”
“모....몰라요.”
“사진 보고 똑바로 말해, 진짜 몰라?”
“몰라요! 모른다고요! 대체 저한테 왜...!”
진실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눈가가 촉촉해진 현주는 눈을 부릅뜨고 박 회장의 본처 사진과 우빈을 똑바로 바라보자
그녀 팔을 세게 잡은 우빈이는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말해봐, 진짜 몰라요?!”
“.......”
“말해보라니까!”
“몰라요.”
“하! 너 진짜! 어머님이 하늘에서 보고 계실 텐데 네 말 듣고 슬퍼하실 거란 생각 안 들어?”
“!”
“여기로 날 데려온 거 네 실수야.”
“......”
“네 표정 보고 더 확실해졌으니까.”
애써 눈물을 참고 빨개진 눈으로 아랫입술을 꽉 깨문 현주 손을 잡고 납골 공원을 나와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다가갔다.
“내게 일부러 여기 온 이유를 알겠는데 현주 씨가 그럴수록 더 확신이 드는 거 모르죠?”
“!....”
“현주 씨가 보여준 여자도 누군지 알아낼 수 있는데, 그러길 원해요?”
“대표님!”
“그러니까 제발 그만하자, 7년 전도 지금도 난 널...”
“가요.”
“하아....”
“아니면 혼자 갈게요.”
“가죠.”
차에 태운 뒤 그녀 집이 아닌 그녀와 그녀 어머니가 좋아한 절벽이 있는 바다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차에서 내린 우빈이는 차 문을 열고 그녀를 차에서 내리게 했다.
“여긴 왜 왔어요?”
“모른다는 현주 씨 말을 듣고 어머님이 슬퍼할 거 같아서 그리고 여기서라면 솔직해지지 않을까 해서 데리고 왔어요.”
“.......”
“7년 전에 말없이 떠난 거 용서해줄게, 아니 상관없어.”
“집에 갈래요.”
“현주 씨!”
자신의 차가 아닌 인도로 가려는 현주 팔을 거세게 잡아 돌려세우자 현주도 미간을 구기며 그의 가슴을 세게 내리쳤다.
“난 박 민희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왜 사람 말을 안 믿어요!”
“안 믿는 게 아니야. 사실이니까.”
“그만! 제발 그만 하세요.”
“뭘 그만 해요? 대체 이유가 뭐야? 내가 알아선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거야?”
“!...내....내가 아니라는데 나한테 왜 이래요?”
바닥에 주저앉은 현주를 부축해 차시트에 앉힌 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었다.
“알았어, 넌 그냥 내 옆에만 있어.”
“......”
“도망만 가지 마, 말했지, 박 회장님보다 내 아버지 세력이 더 세,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널 보호해줄게, 난 너 아니면 누구도 필요 없어.”
“제발....”
“오늘 재미있게 해주려고 했는데 실패했네.”
슬픈 미소를 지으며 집에 데려다준 뒤 오피스텔로 돌아온 우빈이는 핸드폰을 꺼내 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미안한데 하나만 더 알아봐 줘.
-뭡니까?
-** 납골 공원에 가면 양미자라는 이름의 유골이 있을 거야.
-대표님?
-그 여자에 대해서 알아봐 줘.
-누굽니까?
-지금 정 현주가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여자. 그러니까 알아봐 줘. 어렵진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자꾸 부탁해서 미안해.
-아닙니다, 대신 보상하십시오.
-두둑이 해줄게.
통화를 마치고 난 우빈이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뭘 두려워하는지 그게 내가 알아선 왜 안 되는 건지 알아야 할 거 같아.’
현주가 보여준 유골이 그녀와 전혀 상관없는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라고 하는 그녀의 음성이 떨리긴 했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아 그 여자를 조사해야 할 것 같았다.
오전부터 쉴 틈 없이 일을 내주는 김 비서 때문에 샵에 가지 못한 우빈 얼굴이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이걸 꼭 지금 줘야 해?”
“네, 대표님이 오늘까지 꼭! 가져오라고 지시하신 겁니다.”
“하아....”
“대표님?”
“알았으니까 나가 봐.”
“네.”
“잠깐만.”
책상에 쌓인 자료들을 보다가 대표실을 나가려는 김 비서를 급히 불러 세웠다.
“어제 내가 말한 양 미자라는 여자 조사는 어떻게 됐어?”
“내일 조사 결과 가져다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급히 처리할 서류는 끝났으니까 다녀오십시오.”
“!”
눈이 커진 우빈이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김 비서가 대표실을 나가자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벗어 두었던 재킷을 걸치고 대표실을 나갔다.
샵 안으로 들어가자 손님과 즐겁게 얘기하는 현주를 보자 안심하며 다가가려고 할 때 한 여자가 그의 앞을 막았다.
“뭡니까?”
“혹시 혼자 오셨어요?”
“네.”
“그럼 저랑 합석하실래요?”
“안 합니다, 당신 여기 회사 직원입니까?”
“네, 왜요?”
갑자가 여자에게 다가가 목에 걸려있는 사원증을 본 우빈이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걸고 있는 사원증을 빼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회사 직원이면서 대표도 몰라보나?”
“네?”
“회사에 일하러 왔습니까? 남자 만나러 왔습니까?”
“....”
“사무실로 돌아가십시오, 차후 연락이 갈 겁니다.”
대표인 우빈이를 알아보지 못한 여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도망치듯 샵을 나가는 여자를 보지도 않았다.
여자 목에서 빼낸 사원증을 주머니에 넣고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현주에게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커피 줄래요?”
“네?...네.”
“오늘은 달콤한 커피로 부탁할게요.”
“앉아 계세요.”
회사 직원인 여자와 자신에게 하는 행동이 너무 다른 우빈이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현주는 작업대로 들어가 그가 주문한 커피를 가지고 테이블로 갔다.
“카페 모카덴 싫으시면...”
“괜찮아요.”
“그럼...!”
“나랑도 얘기 좀 해요.”
“전 대표님하고 할 얘기가...”
“지금까지 서류만 보고 왔어요, 난 현주 씨 보고 싶었는데 현주 씨는 나 안 보고 싶었어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우빈에게 손목이 붙잡히고 부끄러운 말을 들어야 하는 현주는 조금씩 빨개지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놔...놔주세요.”
“솔직하게 말하면 놔줄게요.”
“뭐...뭘 말하라는 건데요?”
“나 보고 싶었어요?”
“아니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우빈이는 고개를 돌린 현주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아닌데 왜 얼굴이 빨개졌어요?”
“더....더워서 그런 것뿐이에요.”
“음? 아닌 거 같은데.”
“사...사람들이 쳐다봐요.”
“난 상관없어요, 오히려 잘 된 걸지도 모르고.”
“네?”
“내가 현주 씨를 좋아하는 걸 알게 되면 아무도 현주 씨한테 접근을 못 하잖아요.”
“대...대표님!”
“훗! 아직 일이 남아서 커피는 가져갈게요.”
그녀 손끝에 입을 맞추고 커피를 들고 샵을 나가는 그를 보지 않은 채 작업대로 들어가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하아.....진짜 왜 이래.”
외출하고 돌아온 다영이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현주에게 다가가 그녀 어깨를 두드렸다.
“뭐해?”
“오...오셨어요.”
“왜 그러고 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이 나간 테이블을 치우며 우빈이가 앉았던 테이블을 힐끗 보다가 화끈해진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나 이러면 안 되는데 왜 이래.’
한편 대표실에 돌아온 우빈이는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사원증을 김 비서에게 건네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여자 어떻게 입사했는지 알 수 있나?”
“네?”
“샵에서 나한테 작업 걸더라고.”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몇 분 뒤 김 비서는 여직원이 디자인실에 팀장이고 입사 당시 디지인 팀 부장의 추천으로 입사하자마자 팀장이 되었다고 했다.
사늘하게 표정이 식은 우빈이는 김 비서에게 대표실로 부장과 팀장을 바로 호출했다.
“부장님이 추천하셨다고요?”
“네? 네...”
“그럼 실력이 출중하다는 건데 제가 알기론 대학교도 겨우 졸업했고 디자인에 대한 지식도 별로 없던데 어떻게 디자인 팀장으로 추천했는지 부장님이 말씀해보시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게...”
“대표님, 아까는 제가...”
“여 팀장한테 묻지 않았습니다.”
“.......”
“부장님이 추천하실 정도면 그만큼 실력이 좋다는 얘기겠죠?”
“......”
“두 분 사무실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대표님...”
“대표님, 전...”
“김 비서.”
“그만 나가시죠.”
대표실에 호출했다는 소리에 부장과 여 팀장은 용서를 빌려고 했지만, 그냥 보내려고 하자 당황한 두 사람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대표실을 나갔다.
두 사람을 내보내고 난 뒤 대표실 문을 닫고 우빈이에게 다가온 김 비서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냥 보내십니까?”
“왜일 거 같아?”
“네?”
“이번 신제품 디자인은 디자인 팀뿐만 아니라 회사 전 직원 다 참여할 수 있게 공고하고 상금도 걸어.”
“네, 알겠습니다.”
우빈이 생각을 알아챈 김 비서는 대표실을 나가 회사 홈페이지에 공고문을 올렸고 하루 사이에 회사 전 직원이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부장과 여 팀장이었다.
공모 기간은 2주일이었다.
다음 날 우빈이는 현주와 같이 간 납골 공원에서 본 여자를 조사한 자료를 보고 있었다.
‘현주를 낳은 건 사실이고 암으로 9년 전에 죽었다....그럼 현주가 15살 때라는 건데 그때는 현주가 민희일 때고 그전에는 고생 많이했네...그런데....!’
다른 날보다 일찍 집에 온 현주를 보고 놀란 아버지는 그녀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지 못하고 묵묵히 방에 앉아 있었다.
항상 새벽에 해야 할 밀린 집안일을 일찍 끝내고 자신의 방에 들어가 벽에 등을 기대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하아.....”
길게 한숨을 쉬던 현주의 뺨 위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흑....”
방구석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현주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숨 숙여 울다가 죽을 때까지 열어보지 않으려고 했던 상자를 열었다.
조심스럽게 상자 뚜껑을 열자 다시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오빠.....”
버려야 했지만 차마 버릴 수 없었던 우빈이와의 소중한 추억이 있는 물건들이 들어 있는 상자였다.
물건들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자 서둘러 뚜껑을 닫고 원래 자리로 돌려놓은 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나 어떡하면 좋아요, 엄마.....오빠를...도저히 오빠를....흐흑.”
아버지 저녁 식사를 드리기 위해 방을 나와 음식을 만들어 상에 차린 뒤 아버지에게 식사를 가져다주고 나가려는데 아버지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현주야...”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물리치료 그만하자.”
“무슨 말씀이세요?”
“시간 낭비인 거 너도 알잖니.”
“안 움직이는 것보다 나으니까 그냥 받으세요.”
“네가 힘들어하는 거 보고 싶지 않단다, 그러려고 너 데려온 거...”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가을에 도훈이도 제대하잖아요, 그럼 식사하세요.”
현주 아버지이긴 하지만 같이 밥을 먹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19살에 만난 아버지라는 사람과 앉아 처음 밥을 먹고 나서부터는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소화가 되지 않았고 복통으로 응급실을 가기 일쑤였다.
자신의 방에서 조촐하게 밥을 먹은 후 식사를 끝낸 아버지 밥상을 치우고 방에 들어가 핸드폰에 저장된 음악을 들었다.
토요일과 마찬가지로 일요일 역시 1시가 되기 전 나와야 했고 싱크대에 있는 그릇을 씻고 다 먹은 반찬과 밥을 해 놓고 나오자 자신 앞에 다시 우빈이가 나타났다.
“갈까요?”
“대표님.”
“안 간다고요? 안 돼요.”
“아니요, 저하고 같이 가 주실 곳이 있어요.”
“좋아요, 가요.”
웃고 있는 그를 슬픈 미소를 짓고 바라보며 차에 탄 현주는 그에게 핸드폰에 보인 주소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핸드폰 화면에 보이는 주소를 보고 놀란 우빈이는 그녀와 핸드폰을 번갈아 봤다.
“여긴...”
“가보면 알아요.”
“현주 씨?”
“도착하면 말씀드릴게요.”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킨 우빈이는 그녀와 함께 도착한 곳은 납골 공원 주차장이었다.
차를 세워두고 그녀 뒤를 말없이 따라가다가 멈춰선 유골함 앞에 다가간 우빈이는 처음 보는 여자 사진과 처음 보는 이름이 보고 어리둥절했다.
“현주 씨?”
“이분이 누군지 궁금하죠?”
“누군데요?”
가만히 사진 속 여자를 보던 현주가 몸을 돌려 우빈이를 바라보며 아주 슬픈 미소를 짓고는 다시 사진 속 여자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제 어머니예요.”
“네?”
“절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어머니라고요.”
“.....”
아니다.
그녀를 낳고 키워준 어머니는 박 회장의 본처라고 알고 있는 우빈이는 지금 현주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현주가 사진 속에 초라한 모습의 여자가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주신 어머니라고 한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우빈이는 그녀 어깨를 잡아 돌려세우고 다그치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잖아!”
“맞아요.”
“현주 씨 어머니는 이분이 아니잖아요, 제가 아는 분이...”
“대표님이 말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박 민희겠죠.”
“정 현주!”
“말했잖아요, 전 박 민희가 아니고 정 현주라고.”
“이 여자가 누군지는 몰라, 하지만 네 어머니는 네가 잘 알아. 따라와!”
“앗! 왜 이래요.”
성난 사람처럼 그녀 손목을 거칠게 잡아끈 우빈이는 박 회장의 본처 유골 앞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같은 납골 공원에 박 회장 본처 유골이 있다는 것을 우빈이가 모를 리가 없었다.
“!”
“이분이 누군지 알지!”
“모....몰라요.”
“사진 보고 똑바로 말해, 진짜 몰라?”
“몰라요! 모른다고요! 대체 저한테 왜...!”
진실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눈가가 촉촉해진 현주는 눈을 부릅뜨고 박 회장의 본처 사진과 우빈을 똑바로 바라보자
그녀 팔을 세게 잡은 우빈이는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말해봐, 진짜 몰라요?!”
“.......”
“말해보라니까!”
“몰라요.”
“하! 너 진짜! 어머님이 하늘에서 보고 계실 텐데 네 말 듣고 슬퍼하실 거란 생각 안 들어?”
“!”
“여기로 날 데려온 거 네 실수야.”
“......”
“네 표정 보고 더 확실해졌으니까.”
애써 눈물을 참고 빨개진 눈으로 아랫입술을 꽉 깨문 현주 손을 잡고 납골 공원을 나와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다가갔다.
“내게 일부러 여기 온 이유를 알겠는데 현주 씨가 그럴수록 더 확신이 드는 거 모르죠?”
“!....”
“현주 씨가 보여준 여자도 누군지 알아낼 수 있는데, 그러길 원해요?”
“대표님!”
“그러니까 제발 그만하자, 7년 전도 지금도 난 널...”
“가요.”
“하아....”
“아니면 혼자 갈게요.”
“가죠.”
차에 태운 뒤 그녀 집이 아닌 그녀와 그녀 어머니가 좋아한 절벽이 있는 바다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차에서 내린 우빈이는 차 문을 열고 그녀를 차에서 내리게 했다.
“여긴 왜 왔어요?”
“모른다는 현주 씨 말을 듣고 어머님이 슬퍼할 거 같아서 그리고 여기서라면 솔직해지지 않을까 해서 데리고 왔어요.”
“.......”
“7년 전에 말없이 떠난 거 용서해줄게, 아니 상관없어.”
“집에 갈래요.”
“현주 씨!”
자신의 차가 아닌 인도로 가려는 현주 팔을 거세게 잡아 돌려세우자 현주도 미간을 구기며 그의 가슴을 세게 내리쳤다.
“난 박 민희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왜 사람 말을 안 믿어요!”
“안 믿는 게 아니야. 사실이니까.”
“그만! 제발 그만 하세요.”
“뭘 그만 해요? 대체 이유가 뭐야? 내가 알아선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거야?”
“!...내....내가 아니라는데 나한테 왜 이래요?”
바닥에 주저앉은 현주를 부축해 차시트에 앉힌 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었다.
“알았어, 넌 그냥 내 옆에만 있어.”
“......”
“도망만 가지 마, 말했지, 박 회장님보다 내 아버지 세력이 더 세,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널 보호해줄게, 난 너 아니면 누구도 필요 없어.”
“제발....”
“오늘 재미있게 해주려고 했는데 실패했네.”
슬픈 미소를 지으며 집에 데려다준 뒤 오피스텔로 돌아온 우빈이는 핸드폰을 꺼내 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미안한데 하나만 더 알아봐 줘.
-뭡니까?
-** 납골 공원에 가면 양미자라는 이름의 유골이 있을 거야.
-대표님?
-그 여자에 대해서 알아봐 줘.
-누굽니까?
-지금 정 현주가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여자. 그러니까 알아봐 줘. 어렵진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자꾸 부탁해서 미안해.
-아닙니다, 대신 보상하십시오.
-두둑이 해줄게.
통화를 마치고 난 우빈이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뭘 두려워하는지 그게 내가 알아선 왜 안 되는 건지 알아야 할 거 같아.’
현주가 보여준 유골이 그녀와 전혀 상관없는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라고 하는 그녀의 음성이 떨리긴 했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아 그 여자를 조사해야 할 것 같았다.
오전부터 쉴 틈 없이 일을 내주는 김 비서 때문에 샵에 가지 못한 우빈 얼굴이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이걸 꼭 지금 줘야 해?”
“네, 대표님이 오늘까지 꼭! 가져오라고 지시하신 겁니다.”
“하아....”
“대표님?”
“알았으니까 나가 봐.”
“네.”
“잠깐만.”
책상에 쌓인 자료들을 보다가 대표실을 나가려는 김 비서를 급히 불러 세웠다.
“어제 내가 말한 양 미자라는 여자 조사는 어떻게 됐어?”
“내일 조사 결과 가져다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급히 처리할 서류는 끝났으니까 다녀오십시오.”
“!”
눈이 커진 우빈이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김 비서가 대표실을 나가자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벗어 두었던 재킷을 걸치고 대표실을 나갔다.
샵 안으로 들어가자 손님과 즐겁게 얘기하는 현주를 보자 안심하며 다가가려고 할 때 한 여자가 그의 앞을 막았다.
“뭡니까?”
“혹시 혼자 오셨어요?”
“네.”
“그럼 저랑 합석하실래요?”
“안 합니다, 당신 여기 회사 직원입니까?”
“네, 왜요?”
갑자가 여자에게 다가가 목에 걸려있는 사원증을 본 우빈이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걸고 있는 사원증을 빼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회사 직원이면서 대표도 몰라보나?”
“네?”
“회사에 일하러 왔습니까? 남자 만나러 왔습니까?”
“....”
“사무실로 돌아가십시오, 차후 연락이 갈 겁니다.”
대표인 우빈이를 알아보지 못한 여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도망치듯 샵을 나가는 여자를 보지도 않았다.
여자 목에서 빼낸 사원증을 주머니에 넣고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현주에게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커피 줄래요?”
“네?...네.”
“오늘은 달콤한 커피로 부탁할게요.”
“앉아 계세요.”
회사 직원인 여자와 자신에게 하는 행동이 너무 다른 우빈이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현주는 작업대로 들어가 그가 주문한 커피를 가지고 테이블로 갔다.
“카페 모카덴 싫으시면...”
“괜찮아요.”
“그럼...!”
“나랑도 얘기 좀 해요.”
“전 대표님하고 할 얘기가...”
“지금까지 서류만 보고 왔어요, 난 현주 씨 보고 싶었는데 현주 씨는 나 안 보고 싶었어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우빈에게 손목이 붙잡히고 부끄러운 말을 들어야 하는 현주는 조금씩 빨개지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놔...놔주세요.”
“솔직하게 말하면 놔줄게요.”
“뭐...뭘 말하라는 건데요?”
“나 보고 싶었어요?”
“아니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우빈이는 고개를 돌린 현주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아닌데 왜 얼굴이 빨개졌어요?”
“더....더워서 그런 것뿐이에요.”
“음? 아닌 거 같은데.”
“사...사람들이 쳐다봐요.”
“난 상관없어요, 오히려 잘 된 걸지도 모르고.”
“네?”
“내가 현주 씨를 좋아하는 걸 알게 되면 아무도 현주 씨한테 접근을 못 하잖아요.”
“대...대표님!”
“훗! 아직 일이 남아서 커피는 가져갈게요.”
그녀 손끝에 입을 맞추고 커피를 들고 샵을 나가는 그를 보지 않은 채 작업대로 들어가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하아.....진짜 왜 이래.”
외출하고 돌아온 다영이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현주에게 다가가 그녀 어깨를 두드렸다.
“뭐해?”
“오...오셨어요.”
“왜 그러고 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이 나간 테이블을 치우며 우빈이가 앉았던 테이블을 힐끗 보다가 화끈해진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나 이러면 안 되는데 왜 이래.’
한편 대표실에 돌아온 우빈이는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사원증을 김 비서에게 건네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여자 어떻게 입사했는지 알 수 있나?”
“네?”
“샵에서 나한테 작업 걸더라고.”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몇 분 뒤 김 비서는 여직원이 디자인실에 팀장이고 입사 당시 디지인 팀 부장의 추천으로 입사하자마자 팀장이 되었다고 했다.
사늘하게 표정이 식은 우빈이는 김 비서에게 대표실로 부장과 팀장을 바로 호출했다.
“부장님이 추천하셨다고요?”
“네? 네...”
“그럼 실력이 출중하다는 건데 제가 알기론 대학교도 겨우 졸업했고 디자인에 대한 지식도 별로 없던데 어떻게 디자인 팀장으로 추천했는지 부장님이 말씀해보시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게...”
“대표님, 아까는 제가...”
“여 팀장한테 묻지 않았습니다.”
“.......”
“부장님이 추천하실 정도면 그만큼 실력이 좋다는 얘기겠죠?”
“......”
“두 분 사무실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대표님...”
“대표님, 전...”
“김 비서.”
“그만 나가시죠.”
대표실에 호출했다는 소리에 부장과 여 팀장은 용서를 빌려고 했지만, 그냥 보내려고 하자 당황한 두 사람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대표실을 나갔다.
두 사람을 내보내고 난 뒤 대표실 문을 닫고 우빈이에게 다가온 김 비서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냥 보내십니까?”
“왜일 거 같아?”
“네?”
“이번 신제품 디자인은 디자인 팀뿐만 아니라 회사 전 직원 다 참여할 수 있게 공고하고 상금도 걸어.”
“네, 알겠습니다.”
우빈이 생각을 알아챈 김 비서는 대표실을 나가 회사 홈페이지에 공고문을 올렸고 하루 사이에 회사 전 직원이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부장과 여 팀장이었다.
공모 기간은 2주일이었다.
다음 날 우빈이는 현주와 같이 간 납골 공원에서 본 여자를 조사한 자료를 보고 있었다.
‘현주를 낳은 건 사실이고 암으로 9년 전에 죽었다....그럼 현주가 15살 때라는 건데 그때는 현주가 민희일 때고 그전에는 고생 많이했네...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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