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7. 또 그 변태다
조회 : 1,183 추천 : 0 글자수 : 5,307 자 2022-10-07
Episode 7. 또 그 변태다
‘아… 아냐, 어쩌면, 내 눈웃음에 눈치를 채고 그럴 수도.’
입술을 잘근 깨문 채 잠시 생각하던 그녀 눈빛이 아주 잠깐 반짝였다.
‘오버해서 문제지.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다시 만날 것도 아닌데. 아무려면 어때. 그래, 나만 당할 순 없지.’
“니, 그래서, 내 배웅 나왔나? 으, 내 그리 말렸는데도.”
은근슬쩍 품에서 빠져나온 그녀가 은은한 향기를 풍겼다.
코로 스며든 향기에 머리가 맑아진 경하는 순간 눈에서 빛이 났다.
‘어, 이 향기? 그때, 그, 향기와… 같다.’
경하는 그녀를 눈으로 좇으며 또 다른 이를 떠올렸다.
오래전 몇 번 만났던 그녀.
어깨를 빌려준다는 말에 발끈하던 소율을 떠올린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그녀에게도 이런 향기가 났었지.
왜 갑자기 소율이 생각나는지 경하는 의아했다.
그때 장갑 낀 손이 흐뭇한 표정으로 다가와 ‘옜다, 이거나 받아라.’ 하듯이 그의 궁둥이를 톡톡! 두드렸다.
마치 귀여운 손자 녀석을 대하는 양 두드린 손이 이상야릇했다.
일순간 경하 몸이 돌덩이처럼 굳었다.
‘잘했다. 그렇게 장단 맞춰야지. 에그! 기특한 것!’ 하는 느낌으로 남의 궁둥이를 또다시 톡톡!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다 큰 사내의 그것을 아기 다루듯 하는 그녀 행동에 주변인의 눈이 커졌다.
물론 당사자도 그녀의 아연한 행동에 어이가 없어 입술만 달싹였다.
저를 당황하게 한 그에게 소심한 복수를 했다는 사실에 할머니는 그저 기분이 좋았더랬다.
바보같이!
그녀는 이런 돌발 행동이 가져올 미래의 일은 상상조차 못 한 듯 몰래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뚜 두두
할머니의 돌발 행동에 혼을 빼고 있던 경호원이 급히 무전을 받았다.
- 아직 못 찾았어?
“……비슷한 사람을 찾았는데. 아닌 거 같습니다.”
- 시간 없어, 빨리 찾아!
“예.”
지석과 무전을 끊은 경호원이 급히 자리를 뜨려 할머니께 사과했다.
“저, 실례 많았습니다. 그럼.”
“아이다, 니도 내 매력에 푹~ 빠졌다, 아이가. 나도 니 맘 다 안데이. 와 모르겠노. 나도 다 해 봤다, 아이가.”
할머니가 살갑게 경호원을 팔꿈치로 툭 치며 웃어 보였다.
그녀 행동에 경호원이 놀란 눈으로 얼른 뒤로 물러났다.
“아,…예, 제가 잠시 미쳤나 봅니다.”
“니, 나랑 좀 더, 놀끼가?”
“아, 아뇨. 그… 그럼.”
끔찍한 말을 들은 경호원이 손을 가로저으며 달아나듯 뛰어갔다.
‘무슨 놈의 할머니가, 저렇게 웃으면서 사람을 때려. 더 있다간 뼈가 부러지지. 오늘 일진이 아주 더럽네, 으, 꿈에 나올까 두렵다.’
경호원은 할머니와의 일을 떠올리곤 머리를 잘게 흔들었다.
그들이 다른 곳으로 떠난 뒤에야 긴장이 풀렸는지 길게 심호흡하는 할머니.
“어휴-!”
“할머니, 어디 불편하십니까?”
벌써 갔으리라 생각한 경하가 아직 옆에 있음을 확인한 할머니는 한쪽 눈썹을 삐뚜름히 올렸다.
“아니, 바쁠 텐데…. 이제 너도 가봐라. 나도 이제 집에 가야지.”
‘어? 사투리 안 쓰시네.’
“혼자 가실 수 있… 겠… 어요? 보호자는 어디……?”
혼자 가려는 할머니 걱정에 보호자를 찾던 경하 눈이 점점 커졌다.
좀 전까지만 해도 다리를 조금씩 절던 할머니가 너무도 편하게 그것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뭐야? 저렇게 잘 걸으셨어?’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상황에 그는 넋 놓고 바라봤다.
무언가에 홀린 듯 경하는 병원 회전문을 빠져나와 할머니의 뒷모습을 급히 쫓았다.
없다. 분명, 그녀를 쫓아 곧장 따라 나왔는데.
대체 노인이 어디 갔단 말인가?
날도 어두워지는데….
치매 노인이 보호자도 없이 퇴원했다는 사실에 그는 소름 돋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경하는 곧장 9층 치매 센터로 달려갔다.
잠시 뒤 치매 센터를 나오는 경하 표정이 몹시 어두웠다.
‘뭐야, 할머니가 여기 환자가 아니라고? 그럼, 내가 만난 사람은 뭔데! 대체 나는, 오늘, 뭘 한 거야?’
치매 환자인 줄 알았던 할머니가 그것도 아니었고.
다리를 절던 사람이 멀쩡히 걸었다.
게다가 사투리 쓰던 사람이 갑자기 표준어를 쓰는 게,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할머니가 젊은 사람보다 더 빨리 걷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오늘 겪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조차 혼란스러운 그였다.
‘잠을 너무 못 잤나? 그래서 오늘, 헛것을 본 건가? 아-!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걔는 잘 지내고 있나? 벌써, 이십 대 중반은 되었을 텐데.’
실로 오랜만에 소율이 생각났다.
왠지 아픈 손가락처럼 아주 드물게 떠올랐던 그녀가 지금은 뭘 하고 있을지.
얼굴에 있던 눈물을 거칠게 닦던 손길이 안타까웠던 경하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웠다.
*
다음 날, 병원으로 출근하던 경하는 앞에서 걷고 있는 할머니가 몹시 불안했다.
지팡이를 짚고 가는 할머니의 허리가 어찌나 구부러졌는지.
저러다 땅에 그대로 꼬꾸라질 거 같았다.
저렇게 작은 덩치에 너무도 큰 흰색 배낭을 메고 가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중풍에 걸렸을까?
몸을 조금씩 떠는 모습에 경하는 그도 모르게 한숨 쉬었다.
“하-! 어떻게 보호자도 없이 저렇게 가셔?”
은발의 그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그녀는 병원에 처음 왔으리라.
어디로 갈지 몰라 망설이던 그녀는 경하와 눈이 마주치자 도움을 구하는 듯했다.
어제 일이 그에겐 너무 충격이었을까?
그의 발이 할머니에게 가려다 멈춰섰다.
딱 봐도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사람을 그는 뒤에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지켜보기만 했다.
경하는 어제 만났던 할머니를 떠올리곤 얼른 시선을 돌려 버렸다.
‘신경 꺼. 다 알아서 하실 거야. 보호자도 없이 혼자 오실 정도면, 괜찮으니까 오셨겠지.’
하룻밤 사이에 그는 딴사람이 되었다.
잠시 할머니를 보던 경하가 그녀를 지나쳐 앞질러 갔다.
그가 몇 발짝, 그렇게 걸었을까?
긴 다리로 쭉쭉 뻗어가던 걸음이 점점 속도를 줄여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여전히 병원 로비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지들이 경찰이야, 뭐야!? 사건이 터진 것도 아닌데, 뭘 저렇게까지 난리야. 사람들 귀찮게시리.’
조폭이 아닌데도, 건장한 사내들이 주는 위압감에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해 갔다.
병원 직원들도 매번 오갈 때마다 훑어보는 시선에 기분 나쁜 건 매한가지.
환자와 보호자들도 기분 나쁜 시선에 노출되면서 불만이 쏟아졌으나 경호원들에겐 한마디도 못 했다.
그저 병원 직원에게 불만을 토로할 뿐.
결국, 그들 불만은 모두 경하에게 쏟아졌다.
그가 담당하는 VIP 환자의 경호원이라 당연한 결과였다.
해서 출근길부터 마주한 검은 정장 무리가 경하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경호원들이 할머니를 유심히 살펴보는 거랄까.
허나 그 대상이 할머니라는 게 더 문제였지만.
경하는 그들에게 관심을 거두곤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때 회전문 앞에서 한참 망설이는 허리 굽은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대체 무슨 일일까?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녀 허리가 어째 더 구부러진 거 같다.
그러고 보니 몸도 더 떠는 것이 발작의 전조증상인 것 같아 경하는 망설이던 걸 잊고 급히 다가갔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어? 또 그 변태다.’
“어… 어. 내 이 정도는… 괜찮다.”
“할머니 혼자선, 회전문 통과하기 힘드실 거예요.”
“총각, 내… 괜찮다는… 데도. 하,… 하, 에고,… 힘드네.”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할머니는 말하는 동안에도 힘든지 몇 번이나 쉬었다 말했다.
그녀는 말은 괜찮다면서도 굳이 떨리는 손을 숨기지 않았다.
마치 ‘너 이래도 나, 안 도와줄 거야? 내가 이렇게 힘든데.’ 하는 것 같아 경하는 굳게 다문 입가를 살짝 올렸다.
‘심장이 안 좋으신가? 저렇게 힘들어하시는데, 어떻게 안 도와.’
“정 싫으시면, 여기 통과할 때까지라도 함께 가시죠.”
‘싫을 리가 있나. 함께 가면 저기 통과하기가 훨씬 쉬울 건데.’
경하는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여 긴 팔로 작은 어깨를 감쌌다.
회전문을 통과한 뒤, 로비를 가득 채운 소란스러움에 그들은 절로 인상 쓰게 되었다.
‘저 녀석들 왜 입구부터 저러고 있어? 엄청, 까다롭게 보네. 할머니들을 상대하니 이렇게 시끄럽지. 아무리 그래 봐라. 나를 잡을 수 있나. 흐!’
헛다리 짚고 있던 경호원을 보자 허리 굽은 할머니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경하에게 고마움을 표한 할머니는 그보다 앞서 걸었다.
하지만 그녀 걸음이 불안한 탓에 다른 이들에게 선두를 다 내줬다.
‘후-! 허리가 저렇게 구부러져서 그런가? 여태 내가 본 할머니 중에서도 제일 심하네.’
경하는 구붓이 허리 숙인 그녀 뒤를 따라 걸었다.
오롯이 그녀만 보며 걷던 경하의 걸음이 누군가를 따라 한곳에 머물렀다.
의아함에 시선을 돌린 순간, 어제 그 할머니를 보곤 그의 눈이 커졌다.
축지법을 쓴 건지.
갑자기 사라졌던 그 할머니가 보이자 경하 눈이 그녀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한편 경하를 앞질러 가던 허리 굽은 할머니도 누군가를 보곤 흠칫했다.
‘저 할머니는 대체 왜 여기 온 거야? 병원이 어디 여기밖에 없나. 아, 미치겠다, 진짜! 분명 경호원들이 잡을 텐데.’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가 하필 같은 장소에서 만난 어제 변신했던 얼굴에 마음이 복잡했다.
그녀가 머뭇거리다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에 경호원이 누군가를 불렀다.
*
“할머니, 잠시만요. 할머니!!”
병원을 이제 막, 나가려던 어제 변신한 얼굴의 할머니는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천천히 뒤돌아봤다.
“?”
할머니는 그녀를 둘러싼 경호원의 움직임에 의아한 듯 쳐다봤다.
그리곤 덩둘해진 눈동자가 저를 둘러싼 이들을 빠르게 훑었다.
경호원은 사진과 불러 세운 할머니를 비교해 보곤 그녀에게 다가왔다.
“할머니! 저희와 함께 가시죠.”
“…… 어딜? 내가 왜?”
할머니의 질문에도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양쪽에서 팔을 잡은 이들이 그녀를 데려가려 했다.
그들의 갑작스런 행동에 할머니는 놀라 입만 달싹였다.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입을 대신해, 그녀는 엉덩이를 뒤로 살짝 빼는 거로 거부 의사를 표했다.
허나 그들은 그녀의 어떤 행동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팔을 힘주어 잡았다.
그들의 거센 악력에 어제 변신한 얼굴의 할머니는 인상을 구겼다.
그들 행동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그녀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해지는 거친 행동에 할머니는 놀라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두려워진 할머니는 용기를 내 그들에게 저항했다.
“왜,… 나를, 왜, 데려가는데? 왜……!?”
나이 든 할머니의 가냘픈 저항이 계속되었으나 돕기 위해 나선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마치 나 아니면 아무려면 어때! 하는 심리로 그녀를 보는 것 같아 할머니는 그들이 너무 야속했다.
로비에 있던 두 사람을 제외하곤.
그녀를 관심 있게 보는 이가 없었다.
‘후-! 어쩐다? 할머니께 저리 심하게 대하는데.’
‘아… 아냐, 어쩌면, 내 눈웃음에 눈치를 채고 그럴 수도.’
입술을 잘근 깨문 채 잠시 생각하던 그녀 눈빛이 아주 잠깐 반짝였다.
‘오버해서 문제지.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다시 만날 것도 아닌데. 아무려면 어때. 그래, 나만 당할 순 없지.’
“니, 그래서, 내 배웅 나왔나? 으, 내 그리 말렸는데도.”
은근슬쩍 품에서 빠져나온 그녀가 은은한 향기를 풍겼다.
코로 스며든 향기에 머리가 맑아진 경하는 순간 눈에서 빛이 났다.
‘어, 이 향기? 그때, 그, 향기와… 같다.’
경하는 그녀를 눈으로 좇으며 또 다른 이를 떠올렸다.
오래전 몇 번 만났던 그녀.
어깨를 빌려준다는 말에 발끈하던 소율을 떠올린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그녀에게도 이런 향기가 났었지.
왜 갑자기 소율이 생각나는지 경하는 의아했다.
그때 장갑 낀 손이 흐뭇한 표정으로 다가와 ‘옜다, 이거나 받아라.’ 하듯이 그의 궁둥이를 톡톡! 두드렸다.
마치 귀여운 손자 녀석을 대하는 양 두드린 손이 이상야릇했다.
일순간 경하 몸이 돌덩이처럼 굳었다.
‘잘했다. 그렇게 장단 맞춰야지. 에그! 기특한 것!’ 하는 느낌으로 남의 궁둥이를 또다시 톡톡!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다 큰 사내의 그것을 아기 다루듯 하는 그녀 행동에 주변인의 눈이 커졌다.
물론 당사자도 그녀의 아연한 행동에 어이가 없어 입술만 달싹였다.
저를 당황하게 한 그에게 소심한 복수를 했다는 사실에 할머니는 그저 기분이 좋았더랬다.
바보같이!
그녀는 이런 돌발 행동이 가져올 미래의 일은 상상조차 못 한 듯 몰래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뚜 두두
할머니의 돌발 행동에 혼을 빼고 있던 경호원이 급히 무전을 받았다.
- 아직 못 찾았어?
“……비슷한 사람을 찾았는데. 아닌 거 같습니다.”
- 시간 없어, 빨리 찾아!
“예.”
지석과 무전을 끊은 경호원이 급히 자리를 뜨려 할머니께 사과했다.
“저, 실례 많았습니다. 그럼.”
“아이다, 니도 내 매력에 푹~ 빠졌다, 아이가. 나도 니 맘 다 안데이. 와 모르겠노. 나도 다 해 봤다, 아이가.”
할머니가 살갑게 경호원을 팔꿈치로 툭 치며 웃어 보였다.
그녀 행동에 경호원이 놀란 눈으로 얼른 뒤로 물러났다.
“아,…예, 제가 잠시 미쳤나 봅니다.”
“니, 나랑 좀 더, 놀끼가?”
“아, 아뇨. 그… 그럼.”
끔찍한 말을 들은 경호원이 손을 가로저으며 달아나듯 뛰어갔다.
‘무슨 놈의 할머니가, 저렇게 웃으면서 사람을 때려. 더 있다간 뼈가 부러지지. 오늘 일진이 아주 더럽네, 으, 꿈에 나올까 두렵다.’
경호원은 할머니와의 일을 떠올리곤 머리를 잘게 흔들었다.
그들이 다른 곳으로 떠난 뒤에야 긴장이 풀렸는지 길게 심호흡하는 할머니.
“어휴-!”
“할머니, 어디 불편하십니까?”
벌써 갔으리라 생각한 경하가 아직 옆에 있음을 확인한 할머니는 한쪽 눈썹을 삐뚜름히 올렸다.
“아니, 바쁠 텐데…. 이제 너도 가봐라. 나도 이제 집에 가야지.”
‘어? 사투리 안 쓰시네.’
“혼자 가실 수 있… 겠… 어요? 보호자는 어디……?”
혼자 가려는 할머니 걱정에 보호자를 찾던 경하 눈이 점점 커졌다.
좀 전까지만 해도 다리를 조금씩 절던 할머니가 너무도 편하게 그것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뭐야? 저렇게 잘 걸으셨어?’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상황에 그는 넋 놓고 바라봤다.
무언가에 홀린 듯 경하는 병원 회전문을 빠져나와 할머니의 뒷모습을 급히 쫓았다.
없다. 분명, 그녀를 쫓아 곧장 따라 나왔는데.
대체 노인이 어디 갔단 말인가?
날도 어두워지는데….
치매 노인이 보호자도 없이 퇴원했다는 사실에 그는 소름 돋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경하는 곧장 9층 치매 센터로 달려갔다.
잠시 뒤 치매 센터를 나오는 경하 표정이 몹시 어두웠다.
‘뭐야, 할머니가 여기 환자가 아니라고? 그럼, 내가 만난 사람은 뭔데! 대체 나는, 오늘, 뭘 한 거야?’
치매 환자인 줄 알았던 할머니가 그것도 아니었고.
다리를 절던 사람이 멀쩡히 걸었다.
게다가 사투리 쓰던 사람이 갑자기 표준어를 쓰는 게,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할머니가 젊은 사람보다 더 빨리 걷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오늘 겪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조차 혼란스러운 그였다.
‘잠을 너무 못 잤나? 그래서 오늘, 헛것을 본 건가? 아-!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걔는 잘 지내고 있나? 벌써, 이십 대 중반은 되었을 텐데.’
실로 오랜만에 소율이 생각났다.
왠지 아픈 손가락처럼 아주 드물게 떠올랐던 그녀가 지금은 뭘 하고 있을지.
얼굴에 있던 눈물을 거칠게 닦던 손길이 안타까웠던 경하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웠다.
*
다음 날, 병원으로 출근하던 경하는 앞에서 걷고 있는 할머니가 몹시 불안했다.
지팡이를 짚고 가는 할머니의 허리가 어찌나 구부러졌는지.
저러다 땅에 그대로 꼬꾸라질 거 같았다.
저렇게 작은 덩치에 너무도 큰 흰색 배낭을 메고 가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중풍에 걸렸을까?
몸을 조금씩 떠는 모습에 경하는 그도 모르게 한숨 쉬었다.
“하-! 어떻게 보호자도 없이 저렇게 가셔?”
은발의 그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그녀는 병원에 처음 왔으리라.
어디로 갈지 몰라 망설이던 그녀는 경하와 눈이 마주치자 도움을 구하는 듯했다.
어제 일이 그에겐 너무 충격이었을까?
그의 발이 할머니에게 가려다 멈춰섰다.
딱 봐도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사람을 그는 뒤에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지켜보기만 했다.
경하는 어제 만났던 할머니를 떠올리곤 얼른 시선을 돌려 버렸다.
‘신경 꺼. 다 알아서 하실 거야. 보호자도 없이 혼자 오실 정도면, 괜찮으니까 오셨겠지.’
하룻밤 사이에 그는 딴사람이 되었다.
잠시 할머니를 보던 경하가 그녀를 지나쳐 앞질러 갔다.
그가 몇 발짝, 그렇게 걸었을까?
긴 다리로 쭉쭉 뻗어가던 걸음이 점점 속도를 줄여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여전히 병원 로비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지들이 경찰이야, 뭐야!? 사건이 터진 것도 아닌데, 뭘 저렇게까지 난리야. 사람들 귀찮게시리.’
조폭이 아닌데도, 건장한 사내들이 주는 위압감에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해 갔다.
병원 직원들도 매번 오갈 때마다 훑어보는 시선에 기분 나쁜 건 매한가지.
환자와 보호자들도 기분 나쁜 시선에 노출되면서 불만이 쏟아졌으나 경호원들에겐 한마디도 못 했다.
그저 병원 직원에게 불만을 토로할 뿐.
결국, 그들 불만은 모두 경하에게 쏟아졌다.
그가 담당하는 VIP 환자의 경호원이라 당연한 결과였다.
해서 출근길부터 마주한 검은 정장 무리가 경하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경호원들이 할머니를 유심히 살펴보는 거랄까.
허나 그 대상이 할머니라는 게 더 문제였지만.
경하는 그들에게 관심을 거두곤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때 회전문 앞에서 한참 망설이는 허리 굽은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대체 무슨 일일까?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녀 허리가 어째 더 구부러진 거 같다.
그러고 보니 몸도 더 떠는 것이 발작의 전조증상인 것 같아 경하는 망설이던 걸 잊고 급히 다가갔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어? 또 그 변태다.’
“어… 어. 내 이 정도는… 괜찮다.”
“할머니 혼자선, 회전문 통과하기 힘드실 거예요.”
“총각, 내… 괜찮다는… 데도. 하,… 하, 에고,… 힘드네.”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할머니는 말하는 동안에도 힘든지 몇 번이나 쉬었다 말했다.
그녀는 말은 괜찮다면서도 굳이 떨리는 손을 숨기지 않았다.
마치 ‘너 이래도 나, 안 도와줄 거야? 내가 이렇게 힘든데.’ 하는 것 같아 경하는 굳게 다문 입가를 살짝 올렸다.
‘심장이 안 좋으신가? 저렇게 힘들어하시는데, 어떻게 안 도와.’
“정 싫으시면, 여기 통과할 때까지라도 함께 가시죠.”
‘싫을 리가 있나. 함께 가면 저기 통과하기가 훨씬 쉬울 건데.’
경하는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여 긴 팔로 작은 어깨를 감쌌다.
회전문을 통과한 뒤, 로비를 가득 채운 소란스러움에 그들은 절로 인상 쓰게 되었다.
‘저 녀석들 왜 입구부터 저러고 있어? 엄청, 까다롭게 보네. 할머니들을 상대하니 이렇게 시끄럽지. 아무리 그래 봐라. 나를 잡을 수 있나. 흐!’
헛다리 짚고 있던 경호원을 보자 허리 굽은 할머니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경하에게 고마움을 표한 할머니는 그보다 앞서 걸었다.
하지만 그녀 걸음이 불안한 탓에 다른 이들에게 선두를 다 내줬다.
‘후-! 허리가 저렇게 구부러져서 그런가? 여태 내가 본 할머니 중에서도 제일 심하네.’
경하는 구붓이 허리 숙인 그녀 뒤를 따라 걸었다.
오롯이 그녀만 보며 걷던 경하의 걸음이 누군가를 따라 한곳에 머물렀다.
의아함에 시선을 돌린 순간, 어제 그 할머니를 보곤 그의 눈이 커졌다.
축지법을 쓴 건지.
갑자기 사라졌던 그 할머니가 보이자 경하 눈이 그녀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한편 경하를 앞질러 가던 허리 굽은 할머니도 누군가를 보곤 흠칫했다.
‘저 할머니는 대체 왜 여기 온 거야? 병원이 어디 여기밖에 없나. 아, 미치겠다, 진짜! 분명 경호원들이 잡을 텐데.’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가 하필 같은 장소에서 만난 어제 변신했던 얼굴에 마음이 복잡했다.
그녀가 머뭇거리다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에 경호원이 누군가를 불렀다.
*
“할머니, 잠시만요. 할머니!!”
병원을 이제 막, 나가려던 어제 변신한 얼굴의 할머니는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천천히 뒤돌아봤다.
“?”
할머니는 그녀를 둘러싼 경호원의 움직임에 의아한 듯 쳐다봤다.
그리곤 덩둘해진 눈동자가 저를 둘러싼 이들을 빠르게 훑었다.
경호원은 사진과 불러 세운 할머니를 비교해 보곤 그녀에게 다가왔다.
“할머니! 저희와 함께 가시죠.”
“…… 어딜? 내가 왜?”
할머니의 질문에도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양쪽에서 팔을 잡은 이들이 그녀를 데려가려 했다.
그들의 갑작스런 행동에 할머니는 놀라 입만 달싹였다.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입을 대신해, 그녀는 엉덩이를 뒤로 살짝 빼는 거로 거부 의사를 표했다.
허나 그들은 그녀의 어떤 행동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팔을 힘주어 잡았다.
그들의 거센 악력에 어제 변신한 얼굴의 할머니는 인상을 구겼다.
그들 행동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그녀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해지는 거친 행동에 할머니는 놀라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두려워진 할머니는 용기를 내 그들에게 저항했다.
“왜,… 나를, 왜, 데려가는데? 왜……!?”
나이 든 할머니의 가냘픈 저항이 계속되었으나 돕기 위해 나선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마치 나 아니면 아무려면 어때! 하는 심리로 그녀를 보는 것 같아 할머니는 그들이 너무 야속했다.
로비에 있던 두 사람을 제외하곤.
그녀를 관심 있게 보는 이가 없었다.
‘후-! 어쩐다? 할머니께 저리 심하게 대하는데.’
작가의 말
ㅎㅎ 경하가 엄청 당황했을 것 같네요.
닫기가면 속의 그녀
10.Episode 10. 제발……. 그냥 좀, 있어요조회 : 1,24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68 9.Episode 9. 드디어… 만났네요조회 : 1,18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14 8.Episode 8. 똑같은 얼굴인데 왜 다른 사람 같을까?조회 : 1,246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164 7.Episode 7. 또 그 변태다조회 : 1,19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07 6.Episode 6. 저 변태가 왜 이쪽으로 와!?조회 : 1,31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36 5.Episode 5. 사라진 할머니조회 : 1,085 추천 : 2 댓글 : 0 글자 : 5,267 4.Episode 4. 그녀는 왜 사라졌을까?조회 : 1,153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116 3.Episode 3. 덫에 걸리다(2)조회 : 1,289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383 2.Episode 2. 덫에 걸리다(1)조회 : 820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473 1.Episode 1. 날 울게 하소서 - Lascia ch'io pianga조회 : 1,784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