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8. 똑같은 얼굴인데 왜 다른 사람 같을까?
조회 : 1,241 추천 : 1 글자수 : 5,164 자 2022-10-08
Episode 8. 똑같은 얼굴인데 왜 다른 사람 같을까?
‘후-! 어쩐다? 할머니께 저리 심하게 대하는데.’
경하는 이번엔 결코 나설 생각이 없었다.
어제 귀신에게 홀린 듯 당한 까닭에 그저 무시하려 했다.
헌데, 그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불안한 눈빛에 경하는 또다시 나서고 말았다.
그렇게 도와주고 고맙다는 말은커녕 그런 일을 당하고도.
그는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경하가 변신했던 할머니가 그를 ‘변태’라 여기는 걸 알면 어떤 기분일까?
야, 변태! 너, 떨어져! 그녀는 네게 별 도움이 안 돼.
그러다 너 다친다. 내 말 들어! 그녀는 네 도움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런 충고를 그에게 날리고 싶은 순간이었다.
‘아, 나, 참! 자기가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계속 저렇게 나서? 맨날 공부만 하느라 힘도 제대로 못 쓸 거면서. 허우대만 멀쩡해서는. 혹시 말발로 이길 건가? 그렇담, 정말 그 용기가 대단하다.’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가 경호원에게 다가가는 경하를 보며 짧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흔들었다.
“잠깐!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왜 할머니를 그렇게 모셔가죠? 그것도 강제로! 그쪽이 경찰이라도 됩니까!?”
경호원을 막아선 경하 말이 차갑게 내리꽂혔다.
“……!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이 할머니는 저희가 아는 사람이라.”
갑자기 막아선 경하의 제지에 경호원이 잠시 예민해졌다.
“아는 사람이라니. 할머니! 이 사람들 아세요?”
“아… 아니, 나, 이 사람들 몰라. 오늘 처음 봤어.”
경하 말에 구세주라도 만난 양 할머니 대답이 빨랐다.
“들었습니까!? 할머니께서 그쪽 처음 본다는데. 그 손 놓고 가시죠!”
경하의 따져 묻는 말에 경호원은 잠시 당황했으나 할머니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순간 경하의 큰 손이 경호원 팔을 비틀어 할머니에게서 떨어뜨렸다.
그리곤 급히 할머니를 그의 뒤쪽으로 숨겼다.
생각지도 못한 경하의 재빠른 동작에 어떤 경호원은 눈이 커졌고, 또 어떤 이는 저도 모르게 방어 자세를 취했다.
찰나의 시간 동안 경하와 경호원들의 살벌한 기(氣) 싸움이 불꽃 튀겼다.
긴장감에 소매를 풀어헤친 거구가 다가왔지만.
경하 또한 190cm의 장신인 까닭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들이 체력으로 경하를 밀어붙이려는 시도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대표로 나온 경호원도 체구나 키가 경하와 맞먹었어도 경하에겐 알 수 없는 강인함이 뿜어 나왔다.
결코, 공부만 하던 범생이에겐 볼 수 없는 그런 기운이랄까.
무술로 다져진 경호원들이 체력으로 범생이에게 진 꼴이라니.
참으로 우스웠다.
“할머니는 제가 모셔가죠! 그쪽을 모른다고 하니.”
거의 통보식으로 내뱉는 경하의 말에 경호원은 입매를 비틀며 그를 저지했다.
“안 됩니다! 이 할머니는 어제 VIP 병실에 침입한 사람입니다. 해서, 저희 쪽에서 조사할 겁니다.”
‘VIP 병실? 그럼, 그것 때문에 거기 있었던 건가?’
경하는 이제야 이해가 된 할머니 행동에 힘주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와 동시에 경호원들이 그의 보호 속에 있던 할머니를 급히 데려갔다.
“총각,… 총…각!
“…….”
“총각!!”
할머니의 다급한 소리에 정신을 차린 경하가 급히 그들을 불러 세웠다.
“사람이 VIP 병실을 지나쳐 갈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럼, 근무하는 직원들도 다 조사해야지.”
“그런 게 아닙니다. 이 할머니는 어제 우리가 중요한 얘기를 할 때 귀가 안 들리는 척하고 엿들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엿들으려고 했던 게 아닐 겁니다. 다리가 아파서 그렇게 있었을 뿐이지.”
“그건 또,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금은 딱 봐도 귀도 잘 들리시고 이렇게 잘 걸으시는데, 어째서 그땐 그랬단 말입니까?”
경호원과 경하의 시선이 그들 얘기에 집중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쏟아졌다.
그러자 당황한 할머니가 경기하듯 말을 쏟아냈다.
“내… 내가 언제 귀가 안 들린다고 했는데!? 나, 귀 잘 들려! 다리가 아파서 그렇지. 그래도 다리를 절 정돈 아냐. 무엇보다 나는, 어제 병원에 온 적도 없다니까.”
“할머니, 여기 증거가 있는데도 발뺌하실 겁니까?”
옆에 있던 경호원이 폰에 있는 사진을 보여 주며 위압적으로 말했다.
사진을 본 할머니는 저와 똑같은 모습의 사람이 있자 저도 모르게 놀라 입을 가렸다.
경하는 경호원이 건넨 핸드폰에 있던 사진을 짐작한 탓에 표정 변화가 없었다.
“증거! 이제 됐습니까? 할머니는 저희가 모셔갑니다.”
경하라는 방해꾼을 걷어낸 경호원들은 속이 후련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데려갔다.
“총각, 총각! 아냐, 나 아니라고. 총각!!”
“……!”
어제 변신한 듯한 얼굴의 할머니가 낯빛이 하얘져선 그를 애타게 불렀다.
건장한 사내에게 끌려가는 할머니의 연약한 몸이 축 처져선 세상을 다 잃은 듯했다.
경하의 눈이 할머니에게 닿은 순간, 그는 다시 경호원의 발목을 잡았다.
“잠깐, 그 사진은 증거가 안 돼.”
뒤돌아보던 경호원은 그의 말 같지 않은 소리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게 지금, 무슨 말입니까!?”
“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많습니다. 할머니 외모는 다들 비슷해서 옷에 따라 달라질 뿐이지. 내가 보기에 사진 속의 인물은 지금 그 할머니와 닮았지만, 말투가 완전히 달라! 아닌가?”
“말투가 다르다니!”
“내가 알기론 사진 속의 할머니는 사투리를 썼던 거 같은데. 아닙니까!?”
경하가 던진 질문에 경호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내 말이 믿기 힘들면, VIP 병실에서 그녀를 상대했던 이에게 물어보죠. 아마 내 말이 맞을 겁니다.”
경호원들이 무전기로 할머니에 대해 알아보기 바쁠 때였다.
그들에게 끌려가던 할머니는 머리에서 어떤 신기한 소리가 들렸다.
딸랑딸랑! 아, 이거 아닌가?
댕~ 댕 댕! 어디선가 들리는 종소리!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을 때나 울릴 법한 그런 소리가 할머니 귀에 들린 순간이었다.
한 여자만을 위한 잘생긴 수호천사가 그녀 앞에 나타났으니.
구원받기 일보 직전이라.
어제 변장한 얼굴의 할머니가 그를 쳐다보는 눈길이 달라졌다.
한없이 휘어진 눈으로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이미 현생의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곧 가실 수 있을 겁니다.”
목소리는 또 어쩜 저리 부드러운지.
그녀에게 다가온 손길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두려웠던 마음을 사르르, 녹여 버렸다.
할머니는 그의 얼굴에 취하고, 목소리에 녹아들고, 다정한 말에 빠져들었다.
그랬던 그녀가 제게 다가온 귓속말을 듣곤 꿈에서 확 깨버렸다.
“할머니, 어젠 어떻게 된 겁니까?”
‘……?’
“에이, 할머니,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자꾸 연기하실 겁니까? 자꾸 이러시면 저들에게 일러줄 겁니다.”
“……! 뭘?”
“할머님이 저들이 찾는 사람이라고.”
‘……! 뭐야? 저 녀석이, 이제껏 그랬던 게 다른 할망구 때문이었어? 이런 남사스럽게시리.’
몇몇 경호원이 VIP 병실 앞에서의 일을 다른 경호원에게 듣는 동안 이들은 작게 속삭였다.
사실 이들 대화의 끝이 한쪽의 일방적인 실망으로 끝났지만.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할머니가 그를 불편하게 바라봤다.
그녀의 급달라진 태도에 경하는 잠시 얼떨떨했다.
‘뭐지, 이 느낌? 똑같은 얼굴에 체격도 비슷한데, 왜 다른 사람 같을까? 말투야 원래 사투리도 쓰고, 표준어도 썼다지만. 이상해.’
눈앞에 있는 사람을 유심히 보던 경하는 그녀가 너무 낯설어 혼란스러웠다.
‘와, 내가 그리 좋나? 어이그, 보는 눈은 또 있어 가꼬. 내가 좋으면, 좋다, 말해라. 찝쩍대지 말고.’
‘맞지… 나 좋아하는 거… 으~응 응?’
‘니, 그래서 내, 배웅 나왔나. 으, 내, 그리 말렸는데도.’
어제 일을 떠올린 경하는 저를 부르는 호칭이 ‘니’에서 ‘총각’으로 바뀐 것에 놀랐다.
사람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 그리 쉽게 바뀔 리가.
‘꾸미지 않은 노인이 향수를 쓰지 않았을 텐데, 그녀에겐 특별한 향이 났다. 소율이처럼. 그런데, 이 할머니는 이렇게 차려입었는데도, 그 향이 안 나.’
그녀를 의심하던 경호원이 있어도 농담까지 건네며 여유 부리던 모습이 그의 눈에 선했다.
그녀 고유의 흐드러진 눈웃음도.
‘이 할머니는 어제 그 할머니가 아냐. 경호원을 대하는 태도에 전혀 여유도 없고. 뭐지, 그냥 닮은 사람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경하는 손으로 목을 감싼 채 깊은 생각에 빠졌다.
무전을 끝내고 온 경호원이 그에게 뭐라 하는 걸 못 들을 정도로.
“음, 제가 알아보니, 사투리 쓴 건 맞습니다. 하지만 사투리 정도야, 고향이 그쪽이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고, 안 쓸 수도 있으니. 어쨌든, 이분을 모셔가서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
경호원은 말하면서 혹여라도 경하가 또 토 달까 싶어 그의 눈치를 봤다.
그런데, 그들 예상을 깨고 그가 반응이 없자 그들은 반색하며 할머니를 데려갔다.
또다시 거친 사내에게 잡힌 할머니는 사색이 되어 바르르 떨었다.
*
허리 굽은 할머니는 로비 앞에서의 소동을 본 뒤, 조용히 어디론가 사라졌더랬다.
그로부터 몇 분 뒤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로비 앞에서의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요, 그 일을 해결할 유일한 사람.
어제 VIP 병실 앞에서 본 복장 그대로의 그녀였다.
2층 난간에서 양팔을 짚고 있던 할머니는 경호원을 내려다보며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하! 뭐야? 아직도 저러고 있어?’
“니들, 거 뭐하노? 내, 여 있는데. 거는 아이다. 딱 보면 모르겄나. 빙시 아이가!”
그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몸짓과 표정에서 비아냥거림이 잔뜩 묻어났다.
그들 자존심을 박박 긁는 말투에 경호원들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야, 빨리 쫓아!!”
그들을 자극한 그녀의 말 때문일까?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경호원들은 일제히 그녀를 향해 내달렸다.
다다다 다다
한편 소리 나는 쪽으로 올려다본 경하는 괜히 그녀가 반가웠다.
‘어? 저 목소리다.’
그때 경하는 할머니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어디론가 급히 가는 걸 봤다.
‘음, 아냐, 분명 연기일 거야. 저래 놓고 또 갑자기 사라지지.’
그는 이미 그녀에게 한번 속았다.
한번 속아봤기에 두 번 다신 당하고 싶지 않았다.
해서 무시하려 했다. 무시하고 싶었다.
마음은 분명 그럴진대.
그의 눈이 계속 그녀가 사라진 곳을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뭐야, 할머니 한 사람 잡겠다고, 저렇게 많이 쫓아가? 이건 너무 하잖아!’
그의 마음이 급해졌다.
경하는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3층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그답지 않게 닫힘 버튼을 계속 누르는데.
오늘따라 문은 왜 이리 늦게 닫히는지.
엘리베이터에서 뛰어내리다시피 나온 그는 비상구 문을 거칠게 벌컥, 열었다.
‘후-! 어쩐다? 할머니께 저리 심하게 대하는데.’
경하는 이번엔 결코 나설 생각이 없었다.
어제 귀신에게 홀린 듯 당한 까닭에 그저 무시하려 했다.
헌데, 그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불안한 눈빛에 경하는 또다시 나서고 말았다.
그렇게 도와주고 고맙다는 말은커녕 그런 일을 당하고도.
그는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경하가 변신했던 할머니가 그를 ‘변태’라 여기는 걸 알면 어떤 기분일까?
야, 변태! 너, 떨어져! 그녀는 네게 별 도움이 안 돼.
그러다 너 다친다. 내 말 들어! 그녀는 네 도움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런 충고를 그에게 날리고 싶은 순간이었다.
‘아, 나, 참! 자기가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계속 저렇게 나서? 맨날 공부만 하느라 힘도 제대로 못 쓸 거면서. 허우대만 멀쩡해서는. 혹시 말발로 이길 건가? 그렇담, 정말 그 용기가 대단하다.’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가 경호원에게 다가가는 경하를 보며 짧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흔들었다.
“잠깐!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왜 할머니를 그렇게 모셔가죠? 그것도 강제로! 그쪽이 경찰이라도 됩니까!?”
경호원을 막아선 경하 말이 차갑게 내리꽂혔다.
“……!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이 할머니는 저희가 아는 사람이라.”
갑자기 막아선 경하의 제지에 경호원이 잠시 예민해졌다.
“아는 사람이라니. 할머니! 이 사람들 아세요?”
“아… 아니, 나, 이 사람들 몰라. 오늘 처음 봤어.”
경하 말에 구세주라도 만난 양 할머니 대답이 빨랐다.
“들었습니까!? 할머니께서 그쪽 처음 본다는데. 그 손 놓고 가시죠!”
경하의 따져 묻는 말에 경호원은 잠시 당황했으나 할머니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순간 경하의 큰 손이 경호원 팔을 비틀어 할머니에게서 떨어뜨렸다.
그리곤 급히 할머니를 그의 뒤쪽으로 숨겼다.
생각지도 못한 경하의 재빠른 동작에 어떤 경호원은 눈이 커졌고, 또 어떤 이는 저도 모르게 방어 자세를 취했다.
찰나의 시간 동안 경하와 경호원들의 살벌한 기(氣) 싸움이 불꽃 튀겼다.
긴장감에 소매를 풀어헤친 거구가 다가왔지만.
경하 또한 190cm의 장신인 까닭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들이 체력으로 경하를 밀어붙이려는 시도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대표로 나온 경호원도 체구나 키가 경하와 맞먹었어도 경하에겐 알 수 없는 강인함이 뿜어 나왔다.
결코, 공부만 하던 범생이에겐 볼 수 없는 그런 기운이랄까.
무술로 다져진 경호원들이 체력으로 범생이에게 진 꼴이라니.
참으로 우스웠다.
“할머니는 제가 모셔가죠! 그쪽을 모른다고 하니.”
거의 통보식으로 내뱉는 경하의 말에 경호원은 입매를 비틀며 그를 저지했다.
“안 됩니다! 이 할머니는 어제 VIP 병실에 침입한 사람입니다. 해서, 저희 쪽에서 조사할 겁니다.”
‘VIP 병실? 그럼, 그것 때문에 거기 있었던 건가?’
경하는 이제야 이해가 된 할머니 행동에 힘주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와 동시에 경호원들이 그의 보호 속에 있던 할머니를 급히 데려갔다.
“총각,… 총…각!
“…….”
“총각!!”
할머니의 다급한 소리에 정신을 차린 경하가 급히 그들을 불러 세웠다.
“사람이 VIP 병실을 지나쳐 갈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럼, 근무하는 직원들도 다 조사해야지.”
“그런 게 아닙니다. 이 할머니는 어제 우리가 중요한 얘기를 할 때 귀가 안 들리는 척하고 엿들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엿들으려고 했던 게 아닐 겁니다. 다리가 아파서 그렇게 있었을 뿐이지.”
“그건 또,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금은 딱 봐도 귀도 잘 들리시고 이렇게 잘 걸으시는데, 어째서 그땐 그랬단 말입니까?”
경호원과 경하의 시선이 그들 얘기에 집중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쏟아졌다.
그러자 당황한 할머니가 경기하듯 말을 쏟아냈다.
“내… 내가 언제 귀가 안 들린다고 했는데!? 나, 귀 잘 들려! 다리가 아파서 그렇지. 그래도 다리를 절 정돈 아냐. 무엇보다 나는, 어제 병원에 온 적도 없다니까.”
“할머니, 여기 증거가 있는데도 발뺌하실 겁니까?”
옆에 있던 경호원이 폰에 있는 사진을 보여 주며 위압적으로 말했다.
사진을 본 할머니는 저와 똑같은 모습의 사람이 있자 저도 모르게 놀라 입을 가렸다.
경하는 경호원이 건넨 핸드폰에 있던 사진을 짐작한 탓에 표정 변화가 없었다.
“증거! 이제 됐습니까? 할머니는 저희가 모셔갑니다.”
경하라는 방해꾼을 걷어낸 경호원들은 속이 후련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데려갔다.
“총각, 총각! 아냐, 나 아니라고. 총각!!”
“……!”
어제 변신한 듯한 얼굴의 할머니가 낯빛이 하얘져선 그를 애타게 불렀다.
건장한 사내에게 끌려가는 할머니의 연약한 몸이 축 처져선 세상을 다 잃은 듯했다.
경하의 눈이 할머니에게 닿은 순간, 그는 다시 경호원의 발목을 잡았다.
“잠깐, 그 사진은 증거가 안 돼.”
뒤돌아보던 경호원은 그의 말 같지 않은 소리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게 지금, 무슨 말입니까!?”
“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많습니다. 할머니 외모는 다들 비슷해서 옷에 따라 달라질 뿐이지. 내가 보기에 사진 속의 인물은 지금 그 할머니와 닮았지만, 말투가 완전히 달라! 아닌가?”
“말투가 다르다니!”
“내가 알기론 사진 속의 할머니는 사투리를 썼던 거 같은데. 아닙니까!?”
경하가 던진 질문에 경호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내 말이 믿기 힘들면, VIP 병실에서 그녀를 상대했던 이에게 물어보죠. 아마 내 말이 맞을 겁니다.”
경호원들이 무전기로 할머니에 대해 알아보기 바쁠 때였다.
그들에게 끌려가던 할머니는 머리에서 어떤 신기한 소리가 들렸다.
딸랑딸랑! 아, 이거 아닌가?
댕~ 댕 댕! 어디선가 들리는 종소리!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을 때나 울릴 법한 그런 소리가 할머니 귀에 들린 순간이었다.
한 여자만을 위한 잘생긴 수호천사가 그녀 앞에 나타났으니.
구원받기 일보 직전이라.
어제 변장한 얼굴의 할머니가 그를 쳐다보는 눈길이 달라졌다.
한없이 휘어진 눈으로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이미 현생의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곧 가실 수 있을 겁니다.”
목소리는 또 어쩜 저리 부드러운지.
그녀에게 다가온 손길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두려웠던 마음을 사르르, 녹여 버렸다.
할머니는 그의 얼굴에 취하고, 목소리에 녹아들고, 다정한 말에 빠져들었다.
그랬던 그녀가 제게 다가온 귓속말을 듣곤 꿈에서 확 깨버렸다.
“할머니, 어젠 어떻게 된 겁니까?”
‘……?’
“에이, 할머니,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자꾸 연기하실 겁니까? 자꾸 이러시면 저들에게 일러줄 겁니다.”
“……! 뭘?”
“할머님이 저들이 찾는 사람이라고.”
‘……! 뭐야? 저 녀석이, 이제껏 그랬던 게 다른 할망구 때문이었어? 이런 남사스럽게시리.’
몇몇 경호원이 VIP 병실 앞에서의 일을 다른 경호원에게 듣는 동안 이들은 작게 속삭였다.
사실 이들 대화의 끝이 한쪽의 일방적인 실망으로 끝났지만.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할머니가 그를 불편하게 바라봤다.
그녀의 급달라진 태도에 경하는 잠시 얼떨떨했다.
‘뭐지, 이 느낌? 똑같은 얼굴에 체격도 비슷한데, 왜 다른 사람 같을까? 말투야 원래 사투리도 쓰고, 표준어도 썼다지만. 이상해.’
눈앞에 있는 사람을 유심히 보던 경하는 그녀가 너무 낯설어 혼란스러웠다.
‘와, 내가 그리 좋나? 어이그, 보는 눈은 또 있어 가꼬. 내가 좋으면, 좋다, 말해라. 찝쩍대지 말고.’
‘맞지… 나 좋아하는 거… 으~응 응?’
‘니, 그래서 내, 배웅 나왔나. 으, 내, 그리 말렸는데도.’
어제 일을 떠올린 경하는 저를 부르는 호칭이 ‘니’에서 ‘총각’으로 바뀐 것에 놀랐다.
사람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 그리 쉽게 바뀔 리가.
‘꾸미지 않은 노인이 향수를 쓰지 않았을 텐데, 그녀에겐 특별한 향이 났다. 소율이처럼. 그런데, 이 할머니는 이렇게 차려입었는데도, 그 향이 안 나.’
그녀를 의심하던 경호원이 있어도 농담까지 건네며 여유 부리던 모습이 그의 눈에 선했다.
그녀 고유의 흐드러진 눈웃음도.
‘이 할머니는 어제 그 할머니가 아냐. 경호원을 대하는 태도에 전혀 여유도 없고. 뭐지, 그냥 닮은 사람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경하는 손으로 목을 감싼 채 깊은 생각에 빠졌다.
무전을 끝내고 온 경호원이 그에게 뭐라 하는 걸 못 들을 정도로.
“음, 제가 알아보니, 사투리 쓴 건 맞습니다. 하지만 사투리 정도야, 고향이 그쪽이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고, 안 쓸 수도 있으니. 어쨌든, 이분을 모셔가서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
경호원은 말하면서 혹여라도 경하가 또 토 달까 싶어 그의 눈치를 봤다.
그런데, 그들 예상을 깨고 그가 반응이 없자 그들은 반색하며 할머니를 데려갔다.
또다시 거친 사내에게 잡힌 할머니는 사색이 되어 바르르 떨었다.
*
허리 굽은 할머니는 로비 앞에서의 소동을 본 뒤, 조용히 어디론가 사라졌더랬다.
그로부터 몇 분 뒤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로비 앞에서의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요, 그 일을 해결할 유일한 사람.
어제 VIP 병실 앞에서 본 복장 그대로의 그녀였다.
2층 난간에서 양팔을 짚고 있던 할머니는 경호원을 내려다보며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하! 뭐야? 아직도 저러고 있어?’
“니들, 거 뭐하노? 내, 여 있는데. 거는 아이다. 딱 보면 모르겄나. 빙시 아이가!”
그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몸짓과 표정에서 비아냥거림이 잔뜩 묻어났다.
그들 자존심을 박박 긁는 말투에 경호원들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야, 빨리 쫓아!!”
그들을 자극한 그녀의 말 때문일까?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경호원들은 일제히 그녀를 향해 내달렸다.
다다다 다다
한편 소리 나는 쪽으로 올려다본 경하는 괜히 그녀가 반가웠다.
‘어? 저 목소리다.’
그때 경하는 할머니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어디론가 급히 가는 걸 봤다.
‘음, 아냐, 분명 연기일 거야. 저래 놓고 또 갑자기 사라지지.’
그는 이미 그녀에게 한번 속았다.
한번 속아봤기에 두 번 다신 당하고 싶지 않았다.
해서 무시하려 했다. 무시하고 싶었다.
마음은 분명 그럴진대.
그의 눈이 계속 그녀가 사라진 곳을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뭐야, 할머니 한 사람 잡겠다고, 저렇게 많이 쫓아가? 이건 너무 하잖아!’
그의 마음이 급해졌다.
경하는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3층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그답지 않게 닫힘 버튼을 계속 누르는데.
오늘따라 문은 왜 이리 늦게 닫히는지.
엘리베이터에서 뛰어내리다시피 나온 그는 비상구 문을 거칠게 벌컥, 열었다.
작가의 말
앞으로 고생할 경하에게 기운을 팍팍 주세요.ㅎㅎ
닫기가면 속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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