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9. 드디어… 만났네요
조회 : 1,184 추천 : 0 글자수 : 5,214 자 2022-10-09
Episode 9. 드디어… 만났네요
경하 마음이 급해졌다.
3층 정도면 할머니와 만나기 딱 적당한 곳이라 여겼건만.
이곳이 아니었다.
병원에 있는 비상구만 해도 총 아홉 군데.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분명 이쪽 비상구로 가는 걸 봤는데, 이곳이 아니면 저쪽인가.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걷던 경하는 어느 순간 뛰기 시작했다.
다다다!
얼마나 그렇게 뛰었을까?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라라라라 라라라 ♫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경하는 허둥지둥 핸드폰을 꺼냈다.
- 서 선생님!
“네, 서경하입니다.”
- 어디세요?
“병원입니다. 급한 환자… 있나요?”
- 1시간 뒤에 수술 예정이라,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후,… 아, 그렇군요. 수술에 필요한… 검사부터, 해 주세요. 후-! 수술 시간 전에… 허, 허… 헉, 도착할, 겁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경하의 거친 호흡에 김 간호사는 덩달아 호흡이 가빠지는 듯했다.
-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뇨.… 후-! 헉헉!”
- 그런데, 선생님! 지금, 다 죽어가요!
‘……!!’
경하는 저도 모르게 끙 소릴 냈다.
“아, 지금… 뛰어가고, 있어서. 허, 있다, 뵙죠.”
뚝!
다 죽어가는 호흡을 마지막으로 들은 김 간호사는 저도 모르게 이를 드러내고 크게 웃었다.
“음, 하하하하!”
요란한 웃음에, 옆에 있던 간호사가 의아한 듯 쳐다봤다.
다른 이들 시선에 얼른 입술을 꾹 다문 김 간호사가 웃음을 참아보려는데.
그녀의 노력에도 조금씩 삐져나오는 웃음을 다 막기엔 불가항력이었다.
‘으흐흐, 그 완벽주의자가 좀 뛰었다고, 그렇게 숨을 헐떡이게. 흐흐흐! 누가 보면 오해하겠다.’
전화를 끊은 경하는 숨을 헐떡이는 저 자신을 원망했다.
‘후! 바빠서 운동 안 했더니, 겨우 이 정도로… 힘들어하네. 내가 이런데, 할머니는……?’
갑자기 불안했다.
그는 왜 이리 불안한진 모르겠으나 무작정 뛰고 있었다.
뛰고 또 뛰고, 미친놈처럼 비상구 계단을 헤매고 다녔다.
한동안 아무것에도 관심도 없던 경하가 어제 나타난 할머니 때문에 이리 달리다니.
잠잘 시간도 부족한 경하가 왜 이리 맹목적으로 그녀를 찾아 헤매고 있을까?
누가 보면 진짜 할머니를 좋아하는 것처럼.
아무리 약한 이를 돕고 싶은 마음이라도.
지금 그의 행동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
다다다!
경호원들의 빠른 발놀림에 할머니는 괜히 나섰다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개고생인지.
병원에 오자마자 볼일은 시작도 못 하고, 이리 뜀박질하게 생겼다.
비상계단을 달리는 할머니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아, 진짜 미치겠다. 내가 왜, 거기서 나서는데!?’
계단을 달리던 그녀는 위·아래에서 좁혀오는 포위망을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사전에 병원 구조를 미리 파악해 두길 잘했더랬다.
아니었으면 지금쯤 어찌 되었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다다다 다다
위쪽으로 달려오는 경호원들의 우렁찬 발소리가 밀폐된 공간에서 점점 크게 들렸다.
어느덧 그들과 그녀와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다.
‘나도 뜀박질 좀… 해야겠다. 다리가 저들보다 짧아서 그런가?’
위쪽으로 올라가던 할머니는 위에서 내려오는 여러 명의 구둣발 소리에 방향을 틀었다.
할머니가 급히 문에 손을 댄 순간, 벌컥!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그 순간 할머니는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어휴-! 허, 허… 드디어… 만났네요.”
문이 열림과 동시에 뛰어 들어온 경하는 숨을 헐떡이며 할머니를 쳐다봤다.
“……!”
‘이 변태는 또, 왜?’
반갑지 않은 그의 등장에 몸을 옆으로 한 그녀가 그를 피해 얼른 지나가려 했다.
그때 경하가 그녀 팔을 확, 잡아당겼다.
“이런 미친……!!”
그의 순간적인 힘에 열 받은 할머니는 거친 말을 뱉으려다 뒷말을 잇지 못했다.
폭!
작은 몸이 그만, 넓은 품으로 빨려 들어갔다.
위~잉! 무슨 진공청소기도 아니고.
쏙 들어간 몸이 그대로 돌덩이처럼 굳었다.
너무 놀란 그녀는 그저 커다래진 눈만 데구루루 굴린 채 눈만 깜빡였다.
경하의 날쌘 몸이 그녀의 팔을 제 어깨에 턱 올린 순간, 그녀 몸이 공중에 붕 떠버렸다.
잽싸게 열린 문이 닫힘과 동시에 경하는 제 품에 안긴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 뛰기 시작했다.
다다다다
‘뭐야, 왜 이렇게 가벼워? 키도 크고, 몸이 꽤 통통한데. 어디 아프신가?’
할머니를 안고 뛰던 그는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감에 잠시 걱정했다.
한편 의도치 않게 공주님처럼 안긴 할머니는 덜컹거리는 기차를 탄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가 어찌나 빨리 뛰는지 흔들리는 시야만큼 정신없었다.
그의 품에 안긴 찰나에, 어찌 된 영문인지 그녀의 혀와 몸은 이미 제 것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야, 당장 내려!!’라고 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그에게 안겨 있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바보같이! 나무토막처럼 덜렁거리기만 했다.
오늘 왜 이렇게 일이 꼬일까?
그녀답지 않게 나선 거 하며, 남자에게 안겼다고 이리 멍청하게 있다니.
이 녀석은 오늘 날 잡은 게 분명했다.
그러니 할머니를 상대로 이런 짓 하겠지.
괘씸한 놈! 속 좁은 놈. 성질 사나운 놈!!
그녀는 경하의 이런 돌발 행동이 어제 궁둥이를 톡톡, 건드린 것에 대한 복수하는 거라 여겨 화가 났다.
키는 저리 크면서 속은 콩알만 한 게 틀림없으리라.
그가 이런 치졸한 방법으로 복수하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던 그녀.
무엇보다 그를 이렇게 다시 만날 거라 꿈에도 생각 못 한 탓에 그녀는 경하가 이런 식으로 죗값을 받아내려는 것으로 오해했다.
너무도 치욕스럽다고 느낀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녀가 언제 이런 걸 원했다고 이런 식으로 저를 옮긴단 말인가.
물론 경하의 의도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리 받아들였다.
다다다 다다!
뒤에선 아직도 경호원들이 그들을 쫓아 오고 있었다.
“야! 너는 왼쪽으로 가! 나는 오른쪽으로 갈게.”
경하는 멀리 도망치려다 턱밑까지 쫓아온 그들을 피해 얼른 할머니를 벽 사이 틈에 숨겼다.
할머니를 천천히 내려놓는 손이 참으로 다정했다.
그에게서 벗어난 그녀 낯빛이 무척 창백했다.
그러고 보니 손을 바들바들 떠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나 다를까. 비틀!
균형을 잃은 듯 잠시 비틀거리는 그녀. 그 순간 단단한 손이 얼른 부축해왔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 으… 응.”
걱정하는 그의 표정에 할머니는 한마디도 힘겹게 뱉었다.
잠시 할머니 상태를 살피려던 경하는 누군가의 발소리에 얼른 뒤돌아섰다.
경하가 앞에 막아서자 다행히도 퉁퉁한 체격의 그녀가 사라졌다.
지나가던 경호원이 벽에 살짝 기댄 경하를 봤다.
“좀 전에 혹시 지나가는 할머니 못 봤습니까?”
“아… 아… 뇨.”
경호원의 질문에 대답하는 경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어이그! 거짓말 처음 하나? 겨우 한마디 하는데 저렇게 떨게.’
뒤에 있던 할머니가 못마땅한 듯 코웃음 쳤다.
방금까지만 해도 경하의 부축하는 손에 몸을 떨었던 그녀가 할 생각은 아닌 듯했다.
“어! 아까 1층에 있던 분 아닙니까? 김 전무님 담당 선생님이시고.”
“아, 예, 운동 삼아, 여기까지 뛰어왔더니, 후, 조금, 힘드네요. 어…어휴!”
“당연하죠. 운동도 꾸준히 해야 덜 힘듭니다. 그럼.”
숨을 몰아쉬는 경하의 행동에 경호원이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딴 곳으로 갔다.
이제야 안심이 된 경하는 뒤에서 긴장하고 있을 할머니를 걱정하며 뒤돌아섰다.
“할머니, 이제 갔어… 요. 할머니?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할머니가 긴장하기는 개뿔!
뒤에서 딴짓하느라 급급했다.
뒤돌아선 경하는 그녀 행동에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런 곳에서 갑자기 왜, 단추를 푼단 말인가.
미치지 않고서야.
경하는 어떻게든 그녀 행동을 말리려 급히 그녀 손을 잡았다.
“할머니! 옷은 방에서 갈아입으셔야죠!”
“나…, 너무 놀라서… 바지에…….”
말도 안 되는 실수에 경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치욕을 들킨 까닭일까?
그녀 어깨가 떨렸다.
잠시 미간을 찡그린 경하가 얼른 표정을 풀곤 다정하게 할머니를 부축했다.
“할머니, 괜찮아요. 나이가 들면 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병원에서 주는 약 제때 드시면, 나으실 겁니다.”
“정말…, 정말이야?”
‘뭐지? 이런 상황인데도… 위로해 주게. 정말 나를 위해서, 그랬나?’
“예, 그러니까 저랑 같이 가세요. 옷을 갈아입으실 만한 곳으로 모셔다드릴게요. 아, 잠시만요.”
많이 놀랐을 할머니를 대하는 경하 태도가 한없이 상냥했다.
눈빛이나 그녀를 부축하는 것조차 상대에 대한 배려가 느껴질 정도로.
천천히 걷는 그녀를 위해 보폭을 조절해 주는 섬세함까지 느껴져 할머니는 잠시 그를 쳐다봤다.
경하의 리드로 탈의실로 가려던 그들은 채 2분도 못 가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아, 왜 또 이리로 오는데? 후-!’
그는 다시 돌아오는 부담스러운 존재에 옅은 한숨과 함께 입바람을 이마 쪽으로 날렸다.
제 딴엔 자연스러워 보이려 여러 번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꽤 우스웠다.
고심 끝에, 옆 몸을 벽에 기댄 그는 팔짱을 낀 채 생각하는 연기에 들어갔다.
지나갔던 경호원이 다시 뒤돌아오며 그를 쳐다봤다.
‘어? 왜 아직 저기 있지? 의사라면, 바쁠 텐데. 왜 저래? 내게 뭐 할 말 있나? 설마…….’
경호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의심스러운지 그를 관찰하는 경호원의 눈이 날카로웠다.
경호원과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경하 행동은 점점 어색해졌다.
생각하는 척할 거면 아예 경호원을 쳐다보지나 말 것이지.
안 보는 척, 보긴 왜 보는데?
그러니 저리 어색할 수밖에.
괜히 흘낏 보다가 경호원과 몇 번씩이나 눈이 마주치곤 허둥대니 의심 안 하는 게 바보겠다.
그러면서도 경하는 저의 어색함을 전혀 몰랐다.
평소 거짓말할 리 없던 경하는 무의식적으로 경호원을 슬쩍 쳐다보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왜 안 가! 빨리 가라. 좀.’
그는 그저 왜 자꾸 경호원과 눈이 마주치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답지 않게 머쓱해서 그도 모르게 실실 웃었다.
그것도 아주 어색하게.
그렇게 웃으려면 차라리 웃지나 말지!
어느 틈에 그들 앞으로 온 경호원이 경하 뒤쪽의 공간을 눈으로 가늠하기 시작했다.
살벌한 경호원의 눈빛이 그에게 쏟아지면서 경하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가라, 제발 가라, 가. 후-! 큰일 났네. 어쩌지?’
경하는 긴장감에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으…으 윽, 딸꾹, 딸꾹!”
허, 이젠 딸꾹질까지 하고 있다.
‘어색해. 그것도 아주 많이.’
점점 경하의 몸에 밀착해 오는 경호원.
경하 마음이 급해졌다.
3층 정도면 할머니와 만나기 딱 적당한 곳이라 여겼건만.
이곳이 아니었다.
병원에 있는 비상구만 해도 총 아홉 군데.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분명 이쪽 비상구로 가는 걸 봤는데, 이곳이 아니면 저쪽인가.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걷던 경하는 어느 순간 뛰기 시작했다.
다다다!
얼마나 그렇게 뛰었을까?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라라라라 라라라 ♫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경하는 허둥지둥 핸드폰을 꺼냈다.
- 서 선생님!
“네, 서경하입니다.”
- 어디세요?
“병원입니다. 급한 환자… 있나요?”
- 1시간 뒤에 수술 예정이라,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후,… 아, 그렇군요. 수술에 필요한… 검사부터, 해 주세요. 후-! 수술 시간 전에… 허, 허… 헉, 도착할, 겁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경하의 거친 호흡에 김 간호사는 덩달아 호흡이 가빠지는 듯했다.
-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뇨.… 후-! 헉헉!”
- 그런데, 선생님! 지금, 다 죽어가요!
‘……!!’
경하는 저도 모르게 끙 소릴 냈다.
“아, 지금… 뛰어가고, 있어서. 허, 있다, 뵙죠.”
뚝!
다 죽어가는 호흡을 마지막으로 들은 김 간호사는 저도 모르게 이를 드러내고 크게 웃었다.
“음, 하하하하!”
요란한 웃음에, 옆에 있던 간호사가 의아한 듯 쳐다봤다.
다른 이들 시선에 얼른 입술을 꾹 다문 김 간호사가 웃음을 참아보려는데.
그녀의 노력에도 조금씩 삐져나오는 웃음을 다 막기엔 불가항력이었다.
‘으흐흐, 그 완벽주의자가 좀 뛰었다고, 그렇게 숨을 헐떡이게. 흐흐흐! 누가 보면 오해하겠다.’
전화를 끊은 경하는 숨을 헐떡이는 저 자신을 원망했다.
‘후! 바빠서 운동 안 했더니, 겨우 이 정도로… 힘들어하네. 내가 이런데, 할머니는……?’
갑자기 불안했다.
그는 왜 이리 불안한진 모르겠으나 무작정 뛰고 있었다.
뛰고 또 뛰고, 미친놈처럼 비상구 계단을 헤매고 다녔다.
한동안 아무것에도 관심도 없던 경하가 어제 나타난 할머니 때문에 이리 달리다니.
잠잘 시간도 부족한 경하가 왜 이리 맹목적으로 그녀를 찾아 헤매고 있을까?
누가 보면 진짜 할머니를 좋아하는 것처럼.
아무리 약한 이를 돕고 싶은 마음이라도.
지금 그의 행동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
다다다!
경호원들의 빠른 발놀림에 할머니는 괜히 나섰다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개고생인지.
병원에 오자마자 볼일은 시작도 못 하고, 이리 뜀박질하게 생겼다.
비상계단을 달리는 할머니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아, 진짜 미치겠다. 내가 왜, 거기서 나서는데!?’
계단을 달리던 그녀는 위·아래에서 좁혀오는 포위망을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사전에 병원 구조를 미리 파악해 두길 잘했더랬다.
아니었으면 지금쯤 어찌 되었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다다다 다다
위쪽으로 달려오는 경호원들의 우렁찬 발소리가 밀폐된 공간에서 점점 크게 들렸다.
어느덧 그들과 그녀와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다.
‘나도 뜀박질 좀… 해야겠다. 다리가 저들보다 짧아서 그런가?’
위쪽으로 올라가던 할머니는 위에서 내려오는 여러 명의 구둣발 소리에 방향을 틀었다.
할머니가 급히 문에 손을 댄 순간, 벌컥!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그 순간 할머니는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어휴-! 허, 허… 드디어… 만났네요.”
문이 열림과 동시에 뛰어 들어온 경하는 숨을 헐떡이며 할머니를 쳐다봤다.
“……!”
‘이 변태는 또, 왜?’
반갑지 않은 그의 등장에 몸을 옆으로 한 그녀가 그를 피해 얼른 지나가려 했다.
그때 경하가 그녀 팔을 확, 잡아당겼다.
“이런 미친……!!”
그의 순간적인 힘에 열 받은 할머니는 거친 말을 뱉으려다 뒷말을 잇지 못했다.
폭!
작은 몸이 그만, 넓은 품으로 빨려 들어갔다.
위~잉! 무슨 진공청소기도 아니고.
쏙 들어간 몸이 그대로 돌덩이처럼 굳었다.
너무 놀란 그녀는 그저 커다래진 눈만 데구루루 굴린 채 눈만 깜빡였다.
경하의 날쌘 몸이 그녀의 팔을 제 어깨에 턱 올린 순간, 그녀 몸이 공중에 붕 떠버렸다.
잽싸게 열린 문이 닫힘과 동시에 경하는 제 품에 안긴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 뛰기 시작했다.
다다다다
‘뭐야, 왜 이렇게 가벼워? 키도 크고, 몸이 꽤 통통한데. 어디 아프신가?’
할머니를 안고 뛰던 그는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감에 잠시 걱정했다.
한편 의도치 않게 공주님처럼 안긴 할머니는 덜컹거리는 기차를 탄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가 어찌나 빨리 뛰는지 흔들리는 시야만큼 정신없었다.
그의 품에 안긴 찰나에, 어찌 된 영문인지 그녀의 혀와 몸은 이미 제 것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야, 당장 내려!!’라고 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그에게 안겨 있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바보같이! 나무토막처럼 덜렁거리기만 했다.
오늘 왜 이렇게 일이 꼬일까?
그녀답지 않게 나선 거 하며, 남자에게 안겼다고 이리 멍청하게 있다니.
이 녀석은 오늘 날 잡은 게 분명했다.
그러니 할머니를 상대로 이런 짓 하겠지.
괘씸한 놈! 속 좁은 놈. 성질 사나운 놈!!
그녀는 경하의 이런 돌발 행동이 어제 궁둥이를 톡톡, 건드린 것에 대한 복수하는 거라 여겨 화가 났다.
키는 저리 크면서 속은 콩알만 한 게 틀림없으리라.
그가 이런 치졸한 방법으로 복수하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던 그녀.
무엇보다 그를 이렇게 다시 만날 거라 꿈에도 생각 못 한 탓에 그녀는 경하가 이런 식으로 죗값을 받아내려는 것으로 오해했다.
너무도 치욕스럽다고 느낀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녀가 언제 이런 걸 원했다고 이런 식으로 저를 옮긴단 말인가.
물론 경하의 의도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리 받아들였다.
다다다 다다!
뒤에선 아직도 경호원들이 그들을 쫓아 오고 있었다.
“야! 너는 왼쪽으로 가! 나는 오른쪽으로 갈게.”
경하는 멀리 도망치려다 턱밑까지 쫓아온 그들을 피해 얼른 할머니를 벽 사이 틈에 숨겼다.
할머니를 천천히 내려놓는 손이 참으로 다정했다.
그에게서 벗어난 그녀 낯빛이 무척 창백했다.
그러고 보니 손을 바들바들 떠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나 다를까. 비틀!
균형을 잃은 듯 잠시 비틀거리는 그녀. 그 순간 단단한 손이 얼른 부축해왔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 으… 응.”
걱정하는 그의 표정에 할머니는 한마디도 힘겹게 뱉었다.
잠시 할머니 상태를 살피려던 경하는 누군가의 발소리에 얼른 뒤돌아섰다.
경하가 앞에 막아서자 다행히도 퉁퉁한 체격의 그녀가 사라졌다.
지나가던 경호원이 벽에 살짝 기댄 경하를 봤다.
“좀 전에 혹시 지나가는 할머니 못 봤습니까?”
“아… 아… 뇨.”
경호원의 질문에 대답하는 경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어이그! 거짓말 처음 하나? 겨우 한마디 하는데 저렇게 떨게.’
뒤에 있던 할머니가 못마땅한 듯 코웃음 쳤다.
방금까지만 해도 경하의 부축하는 손에 몸을 떨었던 그녀가 할 생각은 아닌 듯했다.
“어! 아까 1층에 있던 분 아닙니까? 김 전무님 담당 선생님이시고.”
“아, 예, 운동 삼아, 여기까지 뛰어왔더니, 후, 조금, 힘드네요. 어…어휴!”
“당연하죠. 운동도 꾸준히 해야 덜 힘듭니다. 그럼.”
숨을 몰아쉬는 경하의 행동에 경호원이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딴 곳으로 갔다.
이제야 안심이 된 경하는 뒤에서 긴장하고 있을 할머니를 걱정하며 뒤돌아섰다.
“할머니, 이제 갔어… 요. 할머니?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할머니가 긴장하기는 개뿔!
뒤에서 딴짓하느라 급급했다.
뒤돌아선 경하는 그녀 행동에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런 곳에서 갑자기 왜, 단추를 푼단 말인가.
미치지 않고서야.
경하는 어떻게든 그녀 행동을 말리려 급히 그녀 손을 잡았다.
“할머니! 옷은 방에서 갈아입으셔야죠!”
“나…, 너무 놀라서… 바지에…….”
말도 안 되는 실수에 경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치욕을 들킨 까닭일까?
그녀 어깨가 떨렸다.
잠시 미간을 찡그린 경하가 얼른 표정을 풀곤 다정하게 할머니를 부축했다.
“할머니, 괜찮아요. 나이가 들면 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병원에서 주는 약 제때 드시면, 나으실 겁니다.”
“정말…, 정말이야?”
‘뭐지? 이런 상황인데도… 위로해 주게. 정말 나를 위해서, 그랬나?’
“예, 그러니까 저랑 같이 가세요. 옷을 갈아입으실 만한 곳으로 모셔다드릴게요. 아, 잠시만요.”
많이 놀랐을 할머니를 대하는 경하 태도가 한없이 상냥했다.
눈빛이나 그녀를 부축하는 것조차 상대에 대한 배려가 느껴질 정도로.
천천히 걷는 그녀를 위해 보폭을 조절해 주는 섬세함까지 느껴져 할머니는 잠시 그를 쳐다봤다.
경하의 리드로 탈의실로 가려던 그들은 채 2분도 못 가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아, 왜 또 이리로 오는데? 후-!’
그는 다시 돌아오는 부담스러운 존재에 옅은 한숨과 함께 입바람을 이마 쪽으로 날렸다.
제 딴엔 자연스러워 보이려 여러 번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꽤 우스웠다.
고심 끝에, 옆 몸을 벽에 기댄 그는 팔짱을 낀 채 생각하는 연기에 들어갔다.
지나갔던 경호원이 다시 뒤돌아오며 그를 쳐다봤다.
‘어? 왜 아직 저기 있지? 의사라면, 바쁠 텐데. 왜 저래? 내게 뭐 할 말 있나? 설마…….’
경호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의심스러운지 그를 관찰하는 경호원의 눈이 날카로웠다.
경호원과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경하 행동은 점점 어색해졌다.
생각하는 척할 거면 아예 경호원을 쳐다보지나 말 것이지.
안 보는 척, 보긴 왜 보는데?
그러니 저리 어색할 수밖에.
괜히 흘낏 보다가 경호원과 몇 번씩이나 눈이 마주치곤 허둥대니 의심 안 하는 게 바보겠다.
그러면서도 경하는 저의 어색함을 전혀 몰랐다.
평소 거짓말할 리 없던 경하는 무의식적으로 경호원을 슬쩍 쳐다보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왜 안 가! 빨리 가라. 좀.’
그는 그저 왜 자꾸 경호원과 눈이 마주치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답지 않게 머쓱해서 그도 모르게 실실 웃었다.
그것도 아주 어색하게.
그렇게 웃으려면 차라리 웃지나 말지!
어느 틈에 그들 앞으로 온 경호원이 경하 뒤쪽의 공간을 눈으로 가늠하기 시작했다.
살벌한 경호원의 눈빛이 그에게 쏟아지면서 경하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가라, 제발 가라, 가. 후-! 큰일 났네. 어쩌지?’
경하는 긴장감에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으…으 윽, 딸꾹, 딸꾹!”
허, 이젠 딸꾹질까지 하고 있다.
‘어색해. 그것도 아주 많이.’
점점 경하의 몸에 밀착해 오는 경호원.
작가의 말
경하가 참, 고생이 많네요.ㅋㅋ
닫기가면 속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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