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날 울게 하소서 - Lascia ch'io pianga
조회 : 1,782 추천 : 1 글자수 : 5,441 자 2022-10-01
Episode 1. Lascia ch'io pianga - 날 울게 하소서
비가 몹시도 내리던 밤이었다.
차에서 내린 엄마와 요한이 별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가 알던 분위기와 달랐다.
항상 밝은 조명이 켜져 있던 그곳은 모든 조명이 꺼져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 성안의 그것은 잠들어 있었다.
“어머! 왜 아무도 없지?”
이곳이 이렇게 어두웠나? 항상 밝게 켜진 곳만 다녀서일까?
스위치가 있는 곳을 모르던 엄마는 잠시 헤매고 있었다.
두려워할 아들 한쪽 손을 꼭 잡은 엄마는 손을 더듬으며 스위치를 찾았다.
띡!
주변이 밝아졌다.
어느새 어둠에 익숙했던 눈이 밝은 빛에 적응할 때쯤, 키 큰 집사 아줌마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 소리 없이 우리 앞에 바짝 다가선 그녀는 왠지 모르게 서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연락도 없이… 오셨네요.”
목소리에 감정이라곤 없었다.
그녀는 비에 젖은 우리 옷을 보곤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데.
귀찮은 주인 때문에 할 일이 또 생겼다는 듯 차가운 시선이 모자(母子)에게 내리꽂혔다.
잠시 그녀 분위기에 압도당한 엄마는 몸을 살짝 움츠렸다.
요한도 그녀 눈빛에 주눅 들어 엄마 뒤쪽으로 몸을 숨긴 채 손을 꼭 잡았다.
“아, 미안해요. 미리 연락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됐어요.”
오히려 주인이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건 아니었다, 주인이 집사에게 이리 굽신거려서야.
어린 요한이 보기에도 이건 아니다 싶었으나 그녀에게 대들 용기가 없었다.
“아시면 됐어요. 다음부턴……. 음.”
입매를 비틀며 할 말을 숨길 것 같은 모습이 어찌나 가증스러운지.
딱히 그럴 뜻도 없으면서 제 딴엔 참는 듯한 인상을 각인시키려는 것 같아 그녀가 싫었다.
시선을 내리깐 저 눈빛이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걸 그녀는 알까?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 그녀를 쳐다보기에도 편할 텐데.
굳이 가까이 다가와 주인이 그녀를 올려다보게 했다.
마치 큰 키를 자랑하듯 제 주인을 내리깐 시선으로 바라보는 집사가 요한은 싫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집사는 벌써 스무 번은 더 죽었더랬다.
요한은 집사의 저런 무례한 태도와 말이 싫었고, 그녀에게 아무 말도 못 하는 나약한 엄마도 싫었다.
“예, 미리 연락할….”
엄마가 채 뒷말을 끝내기도 전에 집사 아줌마가 뒤돌아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주인이 말하고 있는데 자기 방에 가는 꼬락서니가 기가 찼지만, 엄마는 애써 감정을 숨겼다.
그녀와 헤어진 우리가 막 거실로 갔을 때였다.
그곳엔 이미 다른 이들이 소파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더럽게!! 감히, 요한의 소파에서 나뒹굴어!? 그것도 내 아들 별장에서!’
엄마는 한눈에 보기에도 화가 잔뜩 난 얼굴로 그들을 매섭게 쳐다봤다.
그러다 무엇 때문인지 손을 부르르 떨며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어린 요한이 눈 앞에 펼쳐진 살빛 향연을 넋 놓고 바라봤으나 그들은 그들만의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주변인을 물린 채 그들만의 단출한 파티를 즐기던 남자 하나, 여자 하나.
아빠 품에 있던 젊은 여자가 옷을 거의 벗은 채 우리를 바라봤다.
요한을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던 여자는 갑자기 부끄러운 척 제 몸을 품던 사내를 밀어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발정 난 사내가 인상을 구기며 여자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왜 이래?”
그와 동시에 그들 시선이 우리와 부딪쳤다.
여자는 우리의 방문에 부끄러움을 가장하며 사내를 달아오르게 했다.
젊은 여자가 급히 옷을 챙기려던 순간, 그녀 손을 막은 남자의 거친 손이 그녀 몸을 더듬었다.
“으~응!”
그와 동시에 젊은 여자는 야릇한 표정으로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그때 요한을 돌려세운 엄마가 급히 아들 손을 이끌었다.
아들에게 차마 보이고 싶지 않던 모습을 들킨 엄마는 얼른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요한이 이렇게 열심히 달렸던 적이 있었던가?
어린아이가 어른과 함께 뛰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할 수 있나.
그녀 마음을 모를 리 없었기에 어린 아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묵묵히 따랐다.
자식 보기 부끄러워 마음 추스를 틈도 없이 엄마는 작은 손을 잡아끌다시피 방으로 이끌었다.
슬픈 눈빛으로 아이 머리를 쓰다듬는 엄마.
조용히 방문을 닫는 그녀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개새끼! 아들에게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여? 저건 인간도 아냐! 내가 저런 인간을 남편이라고. 하-!’
분노가 폭발할 법도 한데, 그녀는 감정을 꾹꾹 눌렀다.
그때 볼일을 끝낸 사내가 성난 모습으로 다가와 그녀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짝!
사내 힘이 어찌나 강한지 여자 뺨이 금세 붉어졌다.
깜짝 놀란 여자가 사내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것도 잠시. 또다시 거친 손이 여자 뺨을 후려쳤다.
그의 힘에 여자가 힘을 잃고 철퍼덕, 넘어졌다.
문틈으로 이런 모습을 본 아이 눈이 커졌다.
처음이었다, 누군가 이렇게 분노를 표출하는 걸 본 건.
그래서 요한은 조금 놀랐다.
‘사람을 이렇게 해도 돼? 상상이 아니라 이. 렇. 게. 때. 려. 도. 된. 다. 고!?’
요한은 문틈으로 아빠 행동을 유심히 쳐다봤다.
이상했다, 남편 외도에도 찍소리 못하는 엄마.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오히려 역정 내는 아빠가.
부풀어 오른 뺨을 손으로 감싼 엄마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남편을 원망 섞인 눈으로 쳐다보던 그녀가 문틈으로 놀란 아들이 보이자 입술을 깨물곤 힘들게 사과했다.
“여보… 미안해요. 당신이… 여기 있는지 정말… 몰랐어요.”
“몰랐다고!? 거짓말! 알았으니까 요한을 여기 데려온 거 아냐!”
아내를 쳐다보는 눈빛에 애정이라곤 한 티스푼도 없어 보였다.
그저 분노만 가득할 뿐.
너무도 험상궂게 쳐다보는 그 눈빛에 그녀가 아내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저… 정말이에요. 여보! 몰랐어요. 정말, 몰랐어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아내 뺨을 또다시 때리려던 사내가 문틈으로 보인 눈과 마주친 순간, 눈썹이 사납게 올라갔다.
어느새 문 앞까지 온 사내의 거친 손이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헉!”
아이가 저도 모르게 뒤로 나자빠졌다.
“김요한! 지금부터 엄마가 이 방에 들어올 때까지 절대, 문틈으로 쳐다보지 마! 알았어!?”
“…….”
“대답, 안 해!?”
놀란 요한이 미처 말은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대답해! 너 바보냐!?”
“…… 아… 노.”
“똑바로 말해! 나이가 몇인데, 아. 직. 도. 발. 음. 이. 그. 따. 위. 야! 절. 대. 밖으로 보지 않는다! 대답!!”
아들에게 하는 말이 참으로 매서웠다.
대답을 재촉하는 아빠 말에 어찌나 살기가 번뜩이는지.
아이는 오금을 저리며 턱을 덜덜 떨었다.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듯 다섯 살 아이가 고사리손을 말아쥐며 힘겹게 버텼다.
“대답!!”
아이의 늦은 대답에 그가 얼마나 힘주어 말하는지 목에 힘줄이 잔뜩 불거졌다.
“……내… 네.”
너무 놀랐을까?
다섯 살 치곤 꽤 발음이 좋았음에도 오늘따라 많이 더듬거렸다.
사내는 아이의 어눌한 대답이 귀에 거슬렸으나 이번엔 대충 넘어갔다.
방문을 열어 밖으로 나가려던 그는 턴테이블에 LP판을 올리곤 전축 바늘을 올렸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오페라 선율을 따라 아름다운 목소리가 아이 방에 울려 퍼졌다.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È che sospiri la libertà! ♫
Handel의 오페라 리날도(Linaldo) 중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의 음률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어린 그에게 노랫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 곡이 주는 분위기만 느낄 뿐.
불 꺼진 방 안에 홀로 남은 아이에게 그 음악은 더욱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우르르 쾅 쾅!
귀가 터질듯한 천둥소리와 쏟아지는 빗소리.
그와 함께 애잔한 ‘알미레나’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는 아이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다.
고막을 찢을 듯한 효과음이 아이의 공포를 최대치로 끌어올렸으나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나갈 거면 불이라도 켜주고 가지.
까치발을 들어 스위치를 켜려 해도 키보다 높은 스위치가 좀처럼 닿지 않았다.
번개가 칠 때마다 보였다 사라지는 그림자가 공포심을 더욱 조장하는데.
아무리 요한이 무서운 상상을 즐기는 아이여도 소리에 민감한 아이에겐 음악도, 천둥소리도 다 고문이었다.
그날 아이를 공포로 몰아놓은 것들은 밤새도록 곁에 있었다.
쾅! 우르르 쩍!
선율과 함께 들리는 천둥소리에 아이는 귀를 감싸 쥐었다.
방안이 번쩍일 때마다 어룽거리는 그림자에 아이는 급히 침대에 ‘쏙’ 들어가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다 어떤 소리에 살며시 문 쪽으로 다가갔다.
“잘못했어요. 여보!”
퍼버퍽!
아내의 사정에도 가차 없이 휘두르는 매질.
연약한 여자에게 어디 때릴 데가 있다고. 남편은 옆에 있던 골프채를 휘둘렀다.
“아 아 아~!”
무릎을 꿇고 싹싹 빌어도 온몸으로 가해지는 폭행에 아내는 신음을 뱉었다.
저런 인간 말종 쓰레기를 남편으로 두다니!
아내는 대체 왜 이렇게 맞고만 있을까?
대체 뭘 잘못했다고 죄지은 놈이 이리 매질한단 말인가.
퍼 퍽 퍽!
매질의 강도가 더욱 세졌다.
고통에 아내 몸이 바닥으로 꼬꾸라져도 그때마다 어김없이 골프채가 날아왔다.
“내가 너, 내 눈앞에 알짱대지 말랬지! 너 같은 건, 내가 거둬 준 것만 해도, 감사히 여겨! 내가 너희 집에 들어간 돈이 얼만 줄 알아!?”
탁탁 퍼버퍽!
그렇게 맞아도 매질을 버티는 아내.
남편의 역정에 고개를 힘겹게 끄덕이는 아내 목이 아래로 축 처졌다.
아내가 저리 꼬리 내리면 이제 그만 할 법도 하건만.
잔뜩 인상 구긴 남편의 사나운 말이 참으로 미웠다.
“네 아들 살리고 싶으면 알아서 기어! 그 정도 머린 돌아가야지. 안 그래? 그 이름뿐인 자리라도 지키려면! 알았어!?”
“흐 윽! 여보! 앞으로… 윽! 잘할게요.”
끊임없이 골프채를 휘두르던 남편이 아끼던 골프채가 부러지자 아내에게 휙, 던졌다.
"……윽!"
“너 같은 건 이것도 아까워.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남편 명령에 사라지려던 아내가 온몸이 성치 못해 그대로 주저앉았다.
남편은 그녀 몸짓에 잔뜩 못마땅해 성난 눈으로 째려보다 그녀를 지나쳐 가려 했다.
그러다 지갑에서 돈을 몇 장 빼내 바닥에 있던 아내에게 툭, 툭, 던져주는 남편.
"너, 돈 좋아하지? 이걸로 네 친정집에나 갖다줘. 그리고 지금처럼 살아? 입 닥치고. 흐! 그게 너잖아! 안 그래?"
아내에게 하는 말이라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남긴 남편은 젊은 여자를 끌어안은 채 아내를 비웃으며 그곳을 떠났다.
바닥에 있던 돈을 쳐다본 아내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흐느껴 울었다.
그녀의 서글픈 울음과 함께 턴테이블이 리플레이되었다.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È che sospiri la libertà!
È che sospiri ♫
우르르 쾅쾅!
“흐흐흐…흑!”
혹여라도 자식이 들을까 싶어 그녀 입을 막은 흐느낌이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 더 슬펐다.
그날의 슬픈 연주곡은 엄마가 쓰러지면서 자연스레 끝났다.
비가 몹시도 내리던 밤이었다.
차에서 내린 엄마와 요한이 별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가 알던 분위기와 달랐다.
항상 밝은 조명이 켜져 있던 그곳은 모든 조명이 꺼져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 성안의 그것은 잠들어 있었다.
“어머! 왜 아무도 없지?”
이곳이 이렇게 어두웠나? 항상 밝게 켜진 곳만 다녀서일까?
스위치가 있는 곳을 모르던 엄마는 잠시 헤매고 있었다.
두려워할 아들 한쪽 손을 꼭 잡은 엄마는 손을 더듬으며 스위치를 찾았다.
띡!
주변이 밝아졌다.
어느새 어둠에 익숙했던 눈이 밝은 빛에 적응할 때쯤, 키 큰 집사 아줌마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 소리 없이 우리 앞에 바짝 다가선 그녀는 왠지 모르게 서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연락도 없이… 오셨네요.”
목소리에 감정이라곤 없었다.
그녀는 비에 젖은 우리 옷을 보곤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데.
귀찮은 주인 때문에 할 일이 또 생겼다는 듯 차가운 시선이 모자(母子)에게 내리꽂혔다.
잠시 그녀 분위기에 압도당한 엄마는 몸을 살짝 움츠렸다.
요한도 그녀 눈빛에 주눅 들어 엄마 뒤쪽으로 몸을 숨긴 채 손을 꼭 잡았다.
“아, 미안해요. 미리 연락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됐어요.”
오히려 주인이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건 아니었다, 주인이 집사에게 이리 굽신거려서야.
어린 요한이 보기에도 이건 아니다 싶었으나 그녀에게 대들 용기가 없었다.
“아시면 됐어요. 다음부턴……. 음.”
입매를 비틀며 할 말을 숨길 것 같은 모습이 어찌나 가증스러운지.
딱히 그럴 뜻도 없으면서 제 딴엔 참는 듯한 인상을 각인시키려는 것 같아 그녀가 싫었다.
시선을 내리깐 저 눈빛이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걸 그녀는 알까?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 그녀를 쳐다보기에도 편할 텐데.
굳이 가까이 다가와 주인이 그녀를 올려다보게 했다.
마치 큰 키를 자랑하듯 제 주인을 내리깐 시선으로 바라보는 집사가 요한은 싫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집사는 벌써 스무 번은 더 죽었더랬다.
요한은 집사의 저런 무례한 태도와 말이 싫었고, 그녀에게 아무 말도 못 하는 나약한 엄마도 싫었다.
“예, 미리 연락할….”
엄마가 채 뒷말을 끝내기도 전에 집사 아줌마가 뒤돌아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주인이 말하고 있는데 자기 방에 가는 꼬락서니가 기가 찼지만, 엄마는 애써 감정을 숨겼다.
그녀와 헤어진 우리가 막 거실로 갔을 때였다.
그곳엔 이미 다른 이들이 소파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더럽게!! 감히, 요한의 소파에서 나뒹굴어!? 그것도 내 아들 별장에서!’
엄마는 한눈에 보기에도 화가 잔뜩 난 얼굴로 그들을 매섭게 쳐다봤다.
그러다 무엇 때문인지 손을 부르르 떨며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어린 요한이 눈 앞에 펼쳐진 살빛 향연을 넋 놓고 바라봤으나 그들은 그들만의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주변인을 물린 채 그들만의 단출한 파티를 즐기던 남자 하나, 여자 하나.
아빠 품에 있던 젊은 여자가 옷을 거의 벗은 채 우리를 바라봤다.
요한을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던 여자는 갑자기 부끄러운 척 제 몸을 품던 사내를 밀어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발정 난 사내가 인상을 구기며 여자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왜 이래?”
그와 동시에 그들 시선이 우리와 부딪쳤다.
여자는 우리의 방문에 부끄러움을 가장하며 사내를 달아오르게 했다.
젊은 여자가 급히 옷을 챙기려던 순간, 그녀 손을 막은 남자의 거친 손이 그녀 몸을 더듬었다.
“으~응!”
그와 동시에 젊은 여자는 야릇한 표정으로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그때 요한을 돌려세운 엄마가 급히 아들 손을 이끌었다.
아들에게 차마 보이고 싶지 않던 모습을 들킨 엄마는 얼른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요한이 이렇게 열심히 달렸던 적이 있었던가?
어린아이가 어른과 함께 뛰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할 수 있나.
그녀 마음을 모를 리 없었기에 어린 아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묵묵히 따랐다.
자식 보기 부끄러워 마음 추스를 틈도 없이 엄마는 작은 손을 잡아끌다시피 방으로 이끌었다.
슬픈 눈빛으로 아이 머리를 쓰다듬는 엄마.
조용히 방문을 닫는 그녀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개새끼! 아들에게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여? 저건 인간도 아냐! 내가 저런 인간을 남편이라고. 하-!’
분노가 폭발할 법도 한데, 그녀는 감정을 꾹꾹 눌렀다.
그때 볼일을 끝낸 사내가 성난 모습으로 다가와 그녀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짝!
사내 힘이 어찌나 강한지 여자 뺨이 금세 붉어졌다.
깜짝 놀란 여자가 사내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것도 잠시. 또다시 거친 손이 여자 뺨을 후려쳤다.
그의 힘에 여자가 힘을 잃고 철퍼덕, 넘어졌다.
문틈으로 이런 모습을 본 아이 눈이 커졌다.
처음이었다, 누군가 이렇게 분노를 표출하는 걸 본 건.
그래서 요한은 조금 놀랐다.
‘사람을 이렇게 해도 돼? 상상이 아니라 이. 렇. 게. 때. 려. 도. 된. 다. 고!?’
요한은 문틈으로 아빠 행동을 유심히 쳐다봤다.
이상했다, 남편 외도에도 찍소리 못하는 엄마.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오히려 역정 내는 아빠가.
부풀어 오른 뺨을 손으로 감싼 엄마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남편을 원망 섞인 눈으로 쳐다보던 그녀가 문틈으로 놀란 아들이 보이자 입술을 깨물곤 힘들게 사과했다.
“여보… 미안해요. 당신이… 여기 있는지 정말… 몰랐어요.”
“몰랐다고!? 거짓말! 알았으니까 요한을 여기 데려온 거 아냐!”
아내를 쳐다보는 눈빛에 애정이라곤 한 티스푼도 없어 보였다.
그저 분노만 가득할 뿐.
너무도 험상궂게 쳐다보는 그 눈빛에 그녀가 아내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저… 정말이에요. 여보! 몰랐어요. 정말, 몰랐어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아내 뺨을 또다시 때리려던 사내가 문틈으로 보인 눈과 마주친 순간, 눈썹이 사납게 올라갔다.
어느새 문 앞까지 온 사내의 거친 손이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헉!”
아이가 저도 모르게 뒤로 나자빠졌다.
“김요한! 지금부터 엄마가 이 방에 들어올 때까지 절대, 문틈으로 쳐다보지 마! 알았어!?”
“…….”
“대답, 안 해!?”
놀란 요한이 미처 말은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대답해! 너 바보냐!?”
“…… 아… 노.”
“똑바로 말해! 나이가 몇인데, 아. 직. 도. 발. 음. 이. 그. 따. 위. 야! 절. 대. 밖으로 보지 않는다! 대답!!”
아들에게 하는 말이 참으로 매서웠다.
대답을 재촉하는 아빠 말에 어찌나 살기가 번뜩이는지.
아이는 오금을 저리며 턱을 덜덜 떨었다.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듯 다섯 살 아이가 고사리손을 말아쥐며 힘겹게 버텼다.
“대답!!”
아이의 늦은 대답에 그가 얼마나 힘주어 말하는지 목에 힘줄이 잔뜩 불거졌다.
“……내… 네.”
너무 놀랐을까?
다섯 살 치곤 꽤 발음이 좋았음에도 오늘따라 많이 더듬거렸다.
사내는 아이의 어눌한 대답이 귀에 거슬렸으나 이번엔 대충 넘어갔다.
방문을 열어 밖으로 나가려던 그는 턴테이블에 LP판을 올리곤 전축 바늘을 올렸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오페라 선율을 따라 아름다운 목소리가 아이 방에 울려 퍼졌다.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È che sospiri la libertà! ♫
Handel의 오페라 리날도(Linaldo) 중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의 음률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어린 그에게 노랫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 곡이 주는 분위기만 느낄 뿐.
불 꺼진 방 안에 홀로 남은 아이에게 그 음악은 더욱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우르르 쾅 쾅!
귀가 터질듯한 천둥소리와 쏟아지는 빗소리.
그와 함께 애잔한 ‘알미레나’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는 아이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다.
고막을 찢을 듯한 효과음이 아이의 공포를 최대치로 끌어올렸으나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나갈 거면 불이라도 켜주고 가지.
까치발을 들어 스위치를 켜려 해도 키보다 높은 스위치가 좀처럼 닿지 않았다.
번개가 칠 때마다 보였다 사라지는 그림자가 공포심을 더욱 조장하는데.
아무리 요한이 무서운 상상을 즐기는 아이여도 소리에 민감한 아이에겐 음악도, 천둥소리도 다 고문이었다.
그날 아이를 공포로 몰아놓은 것들은 밤새도록 곁에 있었다.
쾅! 우르르 쩍!
선율과 함께 들리는 천둥소리에 아이는 귀를 감싸 쥐었다.
방안이 번쩍일 때마다 어룽거리는 그림자에 아이는 급히 침대에 ‘쏙’ 들어가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다 어떤 소리에 살며시 문 쪽으로 다가갔다.
“잘못했어요. 여보!”
퍼버퍽!
아내의 사정에도 가차 없이 휘두르는 매질.
연약한 여자에게 어디 때릴 데가 있다고. 남편은 옆에 있던 골프채를 휘둘렀다.
“아 아 아~!”
무릎을 꿇고 싹싹 빌어도 온몸으로 가해지는 폭행에 아내는 신음을 뱉었다.
저런 인간 말종 쓰레기를 남편으로 두다니!
아내는 대체 왜 이렇게 맞고만 있을까?
대체 뭘 잘못했다고 죄지은 놈이 이리 매질한단 말인가.
퍼 퍽 퍽!
매질의 강도가 더욱 세졌다.
고통에 아내 몸이 바닥으로 꼬꾸라져도 그때마다 어김없이 골프채가 날아왔다.
“내가 너, 내 눈앞에 알짱대지 말랬지! 너 같은 건, 내가 거둬 준 것만 해도, 감사히 여겨! 내가 너희 집에 들어간 돈이 얼만 줄 알아!?”
탁탁 퍼버퍽!
그렇게 맞아도 매질을 버티는 아내.
남편의 역정에 고개를 힘겹게 끄덕이는 아내 목이 아래로 축 처졌다.
아내가 저리 꼬리 내리면 이제 그만 할 법도 하건만.
잔뜩 인상 구긴 남편의 사나운 말이 참으로 미웠다.
“네 아들 살리고 싶으면 알아서 기어! 그 정도 머린 돌아가야지. 안 그래? 그 이름뿐인 자리라도 지키려면! 알았어!?”
“흐 윽! 여보! 앞으로… 윽! 잘할게요.”
끊임없이 골프채를 휘두르던 남편이 아끼던 골프채가 부러지자 아내에게 휙, 던졌다.
"……윽!"
“너 같은 건 이것도 아까워.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남편 명령에 사라지려던 아내가 온몸이 성치 못해 그대로 주저앉았다.
남편은 그녀 몸짓에 잔뜩 못마땅해 성난 눈으로 째려보다 그녀를 지나쳐 가려 했다.
그러다 지갑에서 돈을 몇 장 빼내 바닥에 있던 아내에게 툭, 툭, 던져주는 남편.
"너, 돈 좋아하지? 이걸로 네 친정집에나 갖다줘. 그리고 지금처럼 살아? 입 닥치고. 흐! 그게 너잖아! 안 그래?"
아내에게 하는 말이라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남긴 남편은 젊은 여자를 끌어안은 채 아내를 비웃으며 그곳을 떠났다.
바닥에 있던 돈을 쳐다본 아내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흐느껴 울었다.
그녀의 서글픈 울음과 함께 턴테이블이 리플레이되었다.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È che sospiri la libertà!
È che sospiri ♫
우르르 쾅쾅!
“흐흐흐…흑!”
혹여라도 자식이 들을까 싶어 그녀 입을 막은 흐느낌이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 더 슬펐다.
그날의 슬픈 연주곡은 엄마가 쓰러지면서 자연스레 끝났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이번 공모전에 참가하게 된 '가빈'입니다.
아빠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율'. 낯선 여자에게서 그녀의 향기를 찾은 '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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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가면 속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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