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그녀는 왜 사라졌을까?
조회 : 1,151 추천 : 1 글자수 : 5,116 자 2022-10-04
Episode 4. 그녀는 왜 사라졌을까?
“참지 마! 너, 그러다 병 생겨. 울고 싶을 땐, 우는 거야. 나이도 어리면서 어른인 척 굴지 말고. 혹시 기댈 곳이 필요하면 그 어깨, 빌려줄 수도 있어.”
“……!”
여전히 고개 숙인 소율이 커다란 손을 제 손에서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경하는 소율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저씨가, 왜 어깨를 빌려줘요?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이 손, 놓죠.”
목소리가 잠긴 소율이 방금까지 운 적 없던 것처럼 건조하게 말했다.
“내 말은, 아, 아니다. 병원비는 안 갚아도 돼. 어차피 한 번은 도왔어야 하잖아. 그때 그 코, 때문이라도.”
“……. 그건, 갚….”
“아니, 안 갚아도 돼. 혹시라도 나중에 그 코, 탈이라도 나면. 괜히 문제 만들기 싫으니까. 이걸로 퉁치자. 됐다. 나, 간다.”
경하는 까칠해진 작은 손에 손수건을 건네주곤 뒤돌아섰다.
그녀식으로 말하길 잘한 것 같다.
친절하게 말했으면 소율은 분명 또 거절할 터였다.
법정에서의 만남을 끝으로 소율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 뒤로 이 과장에 대한 건 기억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강한 인상을 줬던 소녀는 그 후로도 가끔 생각났다.
머리가 맑아지는 향과 빠져드는 그 눈빛이.
*
그로부터 8년 뒤, 출근하던 경하가 인상을 팍 구겼다.
대체 무슨 일일까?
가빈 종합 병원 입구엔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장비를 체크 하며 기다리던 이들이 오지 않는 이를 애타게 기다리는데.
“왜 이렇게 안 와, 정보가 잘못된 거 아냐?”
답답함에 담배를 피우려던 기자가 병원임을 자각하곤 다시 집어넣었다.
그때 기자들 움직임이 빨라졌다.
곧이어 검은 차 행렬이 병원 입구 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 차라 기자들이 급히 차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네, 이제 막 ‘SG 그룹’ 김이경 씨 차량으로 예상되는 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김이경 씨는 내일 ‘SG 그룹’ 뇌물수수 관련 참고인 조사가 예정되었지만, 오늘 갑자기 가빈 종합 병원에 입원한다는 소식입니다.”
리포터의 멘트와 함께 긴장되는 취재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차량 문이 열리자 다수의 경호원이 기자들을 막았다.
잠시 뒤, 한 경호원의 경호를 받으며 이경이 내렸다.
유명 모델의 런웨이가 연상되는 듯한 그의 외모와 슈트발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찰칵찰칵찰칵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
“김이경 씨! 내일 참고인 조사가 예정됐는데, 병원엔 무슨 일입니까?”
“…….”
“이경 씨! 말씀해주시죠!”
“…….”
기자들이 취재에 열을 올리며 이경을 막아서자 경호원들이 강하게 저지했다.
이경의 걸음에 맞춰 다수의 사람이 그를 에워싸며 함께 이동하는 형국이 되었다.
“혹시 뇌물수수와 직접 연관돼서 입원하시는 건 아닙니까!?”
“……!”
이경은 기자들 질문 공세를 무시한 채 그대로 병원으로 들어갔다.
기자들이 집요하게 이경을 따라붙었으나 그들은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
기자들이 못다 한 취재를 위해 병원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경호원들이 막아섰다.
“여긴 병원입니다. 더는 취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취재한 게 없습니다! 정보 좀 주시죠.”
“저희는 아는 게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으려는 기자들이 경호원들과 몸싸움까지 불사했건만.
얻은 게 없어 다들 죽을상이었다.
“아, 정말 갑갑하게 구네. ‘SG 그룹’만 아니면 내가 진짜…. 아! 이 짓도 못하겠다.”
“자기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어째 한마디를 안 해!”
병원 입구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고도 어느 것 하나 알아낸 게 없던 기자들이 불만을 토로하며 돌아갔다.
VVIP 병실.
경하는 팔짱을 낀 채 입원한 이경에게 퉁명스레 말했다.
“너는 아무 증상도 없는데 병원엔 왜 왔냐?”
“증상이 없기는. 마음이 아프다. 쓸데없는 소문 때문에.”
“소문이 이유 없이 나냐? 너, 기자들 말대로 뇌물수수에 직접 연관돼서 도망왔지?”
“하, 말하는 꼴 봐라. 너 기자나 하지 왜 의사했어? 내가 뭐가 아쉬워서 뇌물 주는데! 그 검사가 유명세 타고 싶어서 괜히 나를 들쑤시지. 그 성질 사나운 검사 때문에 내가, 이 나이에 심장이 다 아프다. 윽!”
경하의 의심스런 눈초리에 이경이 답답한 듯 제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러면서 부러 아픈 티를 팍팍 냈으나 돌아오는 말은 여전히 차가웠다.
“검사가 할 일 없냐? 유명해지려고 SG 그룹 후계자를 건들게.”
“그러니까 웃기지. 갑자기 공문서 보내곤 참고인 조사한다며 나오라니. 이게 말이 되냐?”
“그럼, 그냥 참고인 조사받으면 되지. 뭘 그래? 피의자로 부른 것도 아니고.”
“그거야… 귀찮으니까 그렇지.”
“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환자 노릇하는 게 더 힘들겠다.”
“야, 조사받는 게 얼마나 신경 쓰이는데. 이참에 여기서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 건강 검진도 받고.”
“조사받는 게 뭐가 힘들어서?”
“모르면 가만히 있어.”
‘조사 들어가면…. 아, 이게 다 그 녀석이, 일을 그따위로 처리해서.’
경하는 미간을 찡그리는 이경을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뭐 찔리는 게 있나? 아니면, 조사 못 받을 이유가 없지.’
“알았다. 특별한 게 나올 것도 없겠지만, 건강 검진하는 것도 좋겠지. 너는 의사 필요 없으니까, 혼자서 검사받아. 결과는 내가 천천히 볼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마지못해 허락하려니 경하 말투가 절로 딱딱해졌다.
“야, 그래도 명색이 환잔데, 담당 의사가 누군지는 정해야지.”
“이미 정해졌잖아. 나 아니면, 누가 하냐? 너 같은 나이롱 환자를 다른 의사에게 맡기기도 부끄럽다.”
“너도 참, 꼭 그렇게 말해야 속이 시원하지.”
경하는 이경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안 했다.
그저 옅은 웃음만 흘릴 뿐.
“아, 혹시 기자나 다른 사람이 물으면, 당분간 요양이 꼭 필요하다고 해라. 나는 여기서 일할 거니까. 그 정돈, 해 줄 수 있지?”
“그러던지. 근데, 나 바쁘니까 자주 올 수 없다. 시간 나면 아주 가끔 올 거야. 그래도 너무 서운해하진 마라.”
못마땅한 듯 건성으로 대답하는 경하의 태도에 이경은 욱하는 성질이 나올 뻔했다.
‘저 성질머리하고는! 하여튼 저게, 아는 집안만 아니면, 내가 상대도 안 하는데. 내 주변에 저 녀석만, 내게 저런 식이지.’
“그래라. 대신 퇴원은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거다.”
경하의 불퉁한 태도에도 그답지 않게 대충 넘어갔다.
“여기가 놀이터냐?”
“어차피 상관없잖아. 비는 병실 내가 쓰면, 병원에 더 좋은 거 아냐? VVIP 하루 병실료가 얼만데. 게다가 너희 병원은 더 많이 받잖아.”
“그래, 맞는 말이다. 너처럼 돈 많은 애가 이런 곳에라도 실컷 써야지. 경제가 팍팍, 돌아가지. 안 그래?”
“그 녀석! 참!”
경하의 반복된 불손한 태도에 이경 눈빛이 사나워졌다가 이내 부드러워졌다.
삐비비 삐비비
호출 신호를 받은 경하가 아무 말 없이 나가려다 뒤돌아섰다.
“이경아! 너 아무리 그래도, 병원에서 뛰어다니진 마라. 환자 노릇 제대로 하려거든. 나, 간다.”
병실에서 경하가 나오자 밖에 있던 경호원들이 습관적으로 그를 쳐다봤다.
경호원들은 으레 자기 일을 할 뿐인데도 당하는 경하는 그들 눈빛에 다소 불편했다.
분명 아무 죄도 없건만 몸이 움츠러든달까.
아마 사람을 예리하게 훑어보는 그들 습관 때문이리라.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허투루 보지 않으니 더욱 그랬다.
‘참! 별나게 군다. 경호원이 왜 이렇게 많아? 하긴 저 녀석, 예전부터 그랬지.’
이경과의 첫 만남이 생각난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걸었다.
*
다수의 경호원이 지키고 있는 병실 앞, 환자복을 입은 노인이 다리를 절며 걸어갔다.
잠시 뒤, 조금 전에 지나갔던 노인이 코너를 돌아 다시 오고 있었다.
그녀가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경호원들은 그녀가 단순히 산책할 거라 여겼다.
처음 그녀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경계 어린 시선으로 봤건만.
어느 순간 그들은 그녀와 눈인사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녀가 그곳을 한 서른 바퀴 돌았을까?
어느새 경호원들은 그녀가 지나가도 거리낌 없이 저들끼리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인이 귀가 어두운 건 당연할 터.
그들은 그녀 존재를 배제한 채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얘기했다.
그때 그들 앞을 지나가던 할머니가 잠시 멈춰서더니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너무 가까이 있자 경호원이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 여기 계시면 안 돼요.”
그의 말에도 할머니는 아픈 다리를 주무르기만 할 뿐, 경호원이 다가오는 것도 몰랐다.
“할머니! 여기 계시면….”
열심히 다리를 주무르던 할머니가 경호원이 그녀 어깨에 손을 올리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엄마야! 니 뭐꼬?”
그녀 반응에 당황한 경호원이 큰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으? 뭐라꼬?”
말이 안 들리는지 할머니는 귀까지 후비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할머니!! 여기! 있으면 안 돼요!!”
경호원이 하는 말을 안에 있던 이경이 들을 정도였으나 할머니는 전혀 안 들리는 듯했다.
앞에 있던 사내의 입 모양을 유심이 들여다보던 할머니는 온갖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니가 암만 그케도, 안 들린다! 보청기를 저 두고 와서. 에고, 다리야!”
경호원은 할머니의 말에 포기하고 그대로 가버렸다.
병실 앞에 있던 경호원들도 그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은 탓에 별다른 말이 없었다.
하긴 안 들린다는데 달리 뭐랄까.
방금까지만 해도 할머니를 의식해서 조심하던 이들이 이젠 꽤 자유롭게 소문을 언급했다.
“그 소문이 사실일까? 정치가에게 뇌물을 줬다는 게.”
“글쎄.”
“그나저나 쇼핑몰에서 밀어주던 쇼호스트는 갑자기 왜 안 나온대?”
“뭐,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런 얘기는 또 어디서 들었데?”
“내 동생이 거기 물건 담당이거든. 방송 하루 전에 사라져서 연락도 안 된다고 난리 났어.”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그렇게 잘나가던 쇼호스트가 왜 그래? 책임감 없이.”
“그러게 말야.”
옆에서 열심히 다리를 주무르던 할머니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그리곤 무슨 일인지 고개를 갸웃하는데.
잠시 뒤, 경하가 병실에서 나오자 할머니가 힘겹게 일어났다.
“어 구구! 에고, 허리야.”
할머니는 허리에 통증이 있는지 신음과 함께 허리를 짚었다.
육십에서 칠십 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어쩐 일인지 경하와 일정 거리를 두고 다리를 절며 뒤따랐다.
그때 누군가 뒤쪽에서 그녀를 불렀다.
“참지 마! 너, 그러다 병 생겨. 울고 싶을 땐, 우는 거야. 나이도 어리면서 어른인 척 굴지 말고. 혹시 기댈 곳이 필요하면 그 어깨, 빌려줄 수도 있어.”
“……!”
여전히 고개 숙인 소율이 커다란 손을 제 손에서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경하는 소율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저씨가, 왜 어깨를 빌려줘요?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이 손, 놓죠.”
목소리가 잠긴 소율이 방금까지 운 적 없던 것처럼 건조하게 말했다.
“내 말은, 아, 아니다. 병원비는 안 갚아도 돼. 어차피 한 번은 도왔어야 하잖아. 그때 그 코, 때문이라도.”
“……. 그건, 갚….”
“아니, 안 갚아도 돼. 혹시라도 나중에 그 코, 탈이라도 나면. 괜히 문제 만들기 싫으니까. 이걸로 퉁치자. 됐다. 나, 간다.”
경하는 까칠해진 작은 손에 손수건을 건네주곤 뒤돌아섰다.
그녀식으로 말하길 잘한 것 같다.
친절하게 말했으면 소율은 분명 또 거절할 터였다.
법정에서의 만남을 끝으로 소율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 뒤로 이 과장에 대한 건 기억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강한 인상을 줬던 소녀는 그 후로도 가끔 생각났다.
머리가 맑아지는 향과 빠져드는 그 눈빛이.
*
그로부터 8년 뒤, 출근하던 경하가 인상을 팍 구겼다.
대체 무슨 일일까?
가빈 종합 병원 입구엔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장비를 체크 하며 기다리던 이들이 오지 않는 이를 애타게 기다리는데.
“왜 이렇게 안 와, 정보가 잘못된 거 아냐?”
답답함에 담배를 피우려던 기자가 병원임을 자각하곤 다시 집어넣었다.
그때 기자들 움직임이 빨라졌다.
곧이어 검은 차 행렬이 병원 입구 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 차라 기자들이 급히 차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네, 이제 막 ‘SG 그룹’ 김이경 씨 차량으로 예상되는 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김이경 씨는 내일 ‘SG 그룹’ 뇌물수수 관련 참고인 조사가 예정되었지만, 오늘 갑자기 가빈 종합 병원에 입원한다는 소식입니다.”
리포터의 멘트와 함께 긴장되는 취재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차량 문이 열리자 다수의 경호원이 기자들을 막았다.
잠시 뒤, 한 경호원의 경호를 받으며 이경이 내렸다.
유명 모델의 런웨이가 연상되는 듯한 그의 외모와 슈트발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찰칵찰칵찰칵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
“김이경 씨! 내일 참고인 조사가 예정됐는데, 병원엔 무슨 일입니까?”
“…….”
“이경 씨! 말씀해주시죠!”
“…….”
기자들이 취재에 열을 올리며 이경을 막아서자 경호원들이 강하게 저지했다.
이경의 걸음에 맞춰 다수의 사람이 그를 에워싸며 함께 이동하는 형국이 되었다.
“혹시 뇌물수수와 직접 연관돼서 입원하시는 건 아닙니까!?”
“……!”
이경은 기자들 질문 공세를 무시한 채 그대로 병원으로 들어갔다.
기자들이 집요하게 이경을 따라붙었으나 그들은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
기자들이 못다 한 취재를 위해 병원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경호원들이 막아섰다.
“여긴 병원입니다. 더는 취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취재한 게 없습니다! 정보 좀 주시죠.”
“저희는 아는 게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으려는 기자들이 경호원들과 몸싸움까지 불사했건만.
얻은 게 없어 다들 죽을상이었다.
“아, 정말 갑갑하게 구네. ‘SG 그룹’만 아니면 내가 진짜…. 아! 이 짓도 못하겠다.”
“자기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어째 한마디를 안 해!”
병원 입구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고도 어느 것 하나 알아낸 게 없던 기자들이 불만을 토로하며 돌아갔다.
VVIP 병실.
경하는 팔짱을 낀 채 입원한 이경에게 퉁명스레 말했다.
“너는 아무 증상도 없는데 병원엔 왜 왔냐?”
“증상이 없기는. 마음이 아프다. 쓸데없는 소문 때문에.”
“소문이 이유 없이 나냐? 너, 기자들 말대로 뇌물수수에 직접 연관돼서 도망왔지?”
“하, 말하는 꼴 봐라. 너 기자나 하지 왜 의사했어? 내가 뭐가 아쉬워서 뇌물 주는데! 그 검사가 유명세 타고 싶어서 괜히 나를 들쑤시지. 그 성질 사나운 검사 때문에 내가, 이 나이에 심장이 다 아프다. 윽!”
경하의 의심스런 눈초리에 이경이 답답한 듯 제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러면서 부러 아픈 티를 팍팍 냈으나 돌아오는 말은 여전히 차가웠다.
“검사가 할 일 없냐? 유명해지려고 SG 그룹 후계자를 건들게.”
“그러니까 웃기지. 갑자기 공문서 보내곤 참고인 조사한다며 나오라니. 이게 말이 되냐?”
“그럼, 그냥 참고인 조사받으면 되지. 뭘 그래? 피의자로 부른 것도 아니고.”
“그거야… 귀찮으니까 그렇지.”
“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환자 노릇하는 게 더 힘들겠다.”
“야, 조사받는 게 얼마나 신경 쓰이는데. 이참에 여기서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 건강 검진도 받고.”
“조사받는 게 뭐가 힘들어서?”
“모르면 가만히 있어.”
‘조사 들어가면…. 아, 이게 다 그 녀석이, 일을 그따위로 처리해서.’
경하는 미간을 찡그리는 이경을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뭐 찔리는 게 있나? 아니면, 조사 못 받을 이유가 없지.’
“알았다. 특별한 게 나올 것도 없겠지만, 건강 검진하는 것도 좋겠지. 너는 의사 필요 없으니까, 혼자서 검사받아. 결과는 내가 천천히 볼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마지못해 허락하려니 경하 말투가 절로 딱딱해졌다.
“야, 그래도 명색이 환잔데, 담당 의사가 누군지는 정해야지.”
“이미 정해졌잖아. 나 아니면, 누가 하냐? 너 같은 나이롱 환자를 다른 의사에게 맡기기도 부끄럽다.”
“너도 참, 꼭 그렇게 말해야 속이 시원하지.”
경하는 이경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안 했다.
그저 옅은 웃음만 흘릴 뿐.
“아, 혹시 기자나 다른 사람이 물으면, 당분간 요양이 꼭 필요하다고 해라. 나는 여기서 일할 거니까. 그 정돈, 해 줄 수 있지?”
“그러던지. 근데, 나 바쁘니까 자주 올 수 없다. 시간 나면 아주 가끔 올 거야. 그래도 너무 서운해하진 마라.”
못마땅한 듯 건성으로 대답하는 경하의 태도에 이경은 욱하는 성질이 나올 뻔했다.
‘저 성질머리하고는! 하여튼 저게, 아는 집안만 아니면, 내가 상대도 안 하는데. 내 주변에 저 녀석만, 내게 저런 식이지.’
“그래라. 대신 퇴원은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거다.”
경하의 불퉁한 태도에도 그답지 않게 대충 넘어갔다.
“여기가 놀이터냐?”
“어차피 상관없잖아. 비는 병실 내가 쓰면, 병원에 더 좋은 거 아냐? VVIP 하루 병실료가 얼만데. 게다가 너희 병원은 더 많이 받잖아.”
“그래, 맞는 말이다. 너처럼 돈 많은 애가 이런 곳에라도 실컷 써야지. 경제가 팍팍, 돌아가지. 안 그래?”
“그 녀석! 참!”
경하의 반복된 불손한 태도에 이경 눈빛이 사나워졌다가 이내 부드러워졌다.
삐비비 삐비비
호출 신호를 받은 경하가 아무 말 없이 나가려다 뒤돌아섰다.
“이경아! 너 아무리 그래도, 병원에서 뛰어다니진 마라. 환자 노릇 제대로 하려거든. 나, 간다.”
병실에서 경하가 나오자 밖에 있던 경호원들이 습관적으로 그를 쳐다봤다.
경호원들은 으레 자기 일을 할 뿐인데도 당하는 경하는 그들 눈빛에 다소 불편했다.
분명 아무 죄도 없건만 몸이 움츠러든달까.
아마 사람을 예리하게 훑어보는 그들 습관 때문이리라.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허투루 보지 않으니 더욱 그랬다.
‘참! 별나게 군다. 경호원이 왜 이렇게 많아? 하긴 저 녀석, 예전부터 그랬지.’
이경과의 첫 만남이 생각난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걸었다.
*
다수의 경호원이 지키고 있는 병실 앞, 환자복을 입은 노인이 다리를 절며 걸어갔다.
잠시 뒤, 조금 전에 지나갔던 노인이 코너를 돌아 다시 오고 있었다.
그녀가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경호원들은 그녀가 단순히 산책할 거라 여겼다.
처음 그녀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경계 어린 시선으로 봤건만.
어느 순간 그들은 그녀와 눈인사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녀가 그곳을 한 서른 바퀴 돌았을까?
어느새 경호원들은 그녀가 지나가도 거리낌 없이 저들끼리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인이 귀가 어두운 건 당연할 터.
그들은 그녀 존재를 배제한 채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얘기했다.
그때 그들 앞을 지나가던 할머니가 잠시 멈춰서더니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너무 가까이 있자 경호원이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 여기 계시면 안 돼요.”
그의 말에도 할머니는 아픈 다리를 주무르기만 할 뿐, 경호원이 다가오는 것도 몰랐다.
“할머니! 여기 계시면….”
열심히 다리를 주무르던 할머니가 경호원이 그녀 어깨에 손을 올리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엄마야! 니 뭐꼬?”
그녀 반응에 당황한 경호원이 큰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으? 뭐라꼬?”
말이 안 들리는지 할머니는 귀까지 후비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할머니!! 여기! 있으면 안 돼요!!”
경호원이 하는 말을 안에 있던 이경이 들을 정도였으나 할머니는 전혀 안 들리는 듯했다.
앞에 있던 사내의 입 모양을 유심이 들여다보던 할머니는 온갖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니가 암만 그케도, 안 들린다! 보청기를 저 두고 와서. 에고, 다리야!”
경호원은 할머니의 말에 포기하고 그대로 가버렸다.
병실 앞에 있던 경호원들도 그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은 탓에 별다른 말이 없었다.
하긴 안 들린다는데 달리 뭐랄까.
방금까지만 해도 할머니를 의식해서 조심하던 이들이 이젠 꽤 자유롭게 소문을 언급했다.
“그 소문이 사실일까? 정치가에게 뇌물을 줬다는 게.”
“글쎄.”
“그나저나 쇼핑몰에서 밀어주던 쇼호스트는 갑자기 왜 안 나온대?”
“뭐,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런 얘기는 또 어디서 들었데?”
“내 동생이 거기 물건 담당이거든. 방송 하루 전에 사라져서 연락도 안 된다고 난리 났어.”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그렇게 잘나가던 쇼호스트가 왜 그래? 책임감 없이.”
“그러게 말야.”
옆에서 열심히 다리를 주무르던 할머니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그리곤 무슨 일인지 고개를 갸웃하는데.
잠시 뒤, 경하가 병실에서 나오자 할머니가 힘겹게 일어났다.
“어 구구! 에고, 허리야.”
할머니는 허리에 통증이 있는지 신음과 함께 허리를 짚었다.
육십에서 칠십 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어쩐 일인지 경하와 일정 거리를 두고 다리를 절며 뒤따랐다.
그때 누군가 뒤쪽에서 그녀를 불렀다.
작가의 말
할머니는 대체 누굴까요?
닫기가면 속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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