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회 - 찌라시의 위력
조회 : 1,014 추천 : 0 글자수 : 4,580 자 2023-01-04
다음 주 수요일 아침 9시. 경북 울진중학교 2학년 2반 교실.
담임선생님과 거의 동시에 교실에 들어선 희정과 진수는 헐레벌떡 자리로 뛰어가 앉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교문에서부터 전속력으로 뛰어온 덕분에 다행히 지각을 면했다.
교실을 한번 쭉 훑어본 담임은 어두운 표정으로 출석부를 내려다보았다.
어제 몇몇 학생들이 무단결석을 하자 학교에서 급히 가정통신문까지 만들어 학부모들에게 보냈지만 오늘은 빈자리가 더 많아졌다.
총 30명 정원인 2학년 2반은 3명의 자리가 비어있다.
반 학생의 10분의 1이 결석을 한 셈인데 다른 반들도 이런 상황이라면 무단결석한 학생 수는 전교생으로 집계했을 때 50명이 넘을 것이다
지난 월요일 밤 자정 무렵.
미국 증시가 월요일 개장과 동시에 급락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의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백두산 대폭발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100년을 주기로 대폭발을 하는 백두산이 이제 곧 폭발을 앞두고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내용인데 백두산 중턱의 나무들이 말라죽은 사진과 온천수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간 온도계의 모습을 담은 게시물이 SNS를 통해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백두산 인근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공안의 지시에 따라 대피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자 일부 네티즌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새벽 시간임에도 사람들은 제각기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며 밤새 온라인상에서 열띤 토론을 펼쳤다.
잠시 후 화요일 오전.
한국증시는 개장과 함께 무서운 속도로 급락하기 시작하더니 10분 만에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온라인에서 여의도 증권가에 '한반도 대재앙'이라는 제목의 찌리시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이제 막 출근을 한 일부 시민들은 업무가 시작되기도 전에 병가를 내 집으로 돌아갔고 각 학교에서도 일부 학생들의 조퇴 신청이 이어졌다.
울진중학교도 어제 하루에만 500여 명의 전교생 중 30여 명이 집안 사정을 이유로 조퇴를 신청했는데 학교에서 각 가정에 가정통신문을 발송했음에도 오늘은 그 수가 배로 늘었다.
온 나라가 백두산 폭발 공포에 떨며 '집단멘붕 상태'에 빠지자 정부는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결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경찰과 전 군에 비상령을 발동했다.
미 증시의 하락과 백두산 화산활동을 연관시킬 근거를 찾기 힘들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고 월가 현지 금융전문가의 발언이 보도되자 분위기가 다소 진정되었지만 경찰은 '백두산 대폭발론'의 최초 유포자를 찾기 위해 은밀히 수사에 착수했다.
군도 북한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북한의 움직임을 살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이상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행위를 엄단하겠다는 경찰의 발표에 온라인상의 자극적인 게시물들이 모두 사라지며 국민들은 다소 안정을 찾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오늘 아침 울진중학교를 비롯한 전국의 각 학교에서는 등교를 하지 않은 학생 수가 어제보다 많아졌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1교시가 시작되자 희정과 진수는 수학 교과서를 꺼냈다. 우병장 님의 수학 시간이다.
반장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형철은 빈자리를 훑어보며 말했다.
"오늘 이 반은 세 명 결석이야?"
"네."
학생들이 대답하자 형철은 불만 섞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우리 반은 네 명인데...아 진짜."
"선생님 오늘 수업 안 하면 안 돼요?"
맨 뒤에 앉아있던 철웅이 불쑥 큰소리로 외치자 형철은 그를 쳐다봤다.
"너 오늘은 안 자?"
"지금 잠잘 때가 아니죠. 쌤."
"하하하."
교실 분위기가 다소 밝아지자 형철은 손에 들고 있는 책을 펼치다가 말했다.
"너희들은 백두산이 폭발하는 게 무서워?"
"당연하죠. 쌤. 용암이 남한까지 내려오면 어떡해요?"
철웅이 대답하자 주위에 있던 남학생들이 그를 보며 말했다.
"저 미친놈. 무슨 용암이 하늘에서 떨어지나?"
"그래도 혹시 모르지. 남쪽까지 내려올지..."
"진짜 개무식하네."
아이들이 웅성거리자 형철이 교탁을 탁탁 치며 말했다.
"뉴스에서 백두산이 폭발해도 반경 60km까지만 피해를 주고 남쪽은 괜찮다고 하잖아."
형철이 말하자 또 다른 남학생이 말했다.
"화산재가 일본까지 간다고 하던데요?"
"그건 최악의 상황이고 그렇게 되면 뭔가 조치가 취해지겠지. 과학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그는 아이들을 안심시키려 말했는데 엄청난 자연재해에는 기술이나 첨단과학도 속수무책이라고 말해줄 수는 없다.
"쌤, 그럼 화산재가 하늘로 올라가 햇빝을 막으면 지구에 빙하기가 오는 건 맞아요?"
이는 '백두산 대폭발론'의 핵심 내용 중 하나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다.
"야, 설마 빙하기가 오겠어? 그거면 100년마다 한 번씩 빙하기가 와야 하는데...말이 안 되잖아."
"근데 왜 인터넷에 그런 내용이 자꾸 떠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려고 그러는 거지. 장난일 수도 있고..."
그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사실 이것도 그가 바라는 희망 사항이다.
"와 만약에 누가 장난친 거면 그 사람 사형시키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개 열받네."
"지금 아마 경찰이 찾고 있을걸. 우리나라 사람이면 잡히면 바로 구속이야."
"구속 가지고 안 되죠, 쌤. 바로 사형시키야죠."
"그냥 징역을 한 100년으로 때리든지...."
"하하하."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자 형철은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쌤. 근데 아침에 우리 아빠가 엄마랑 존...아니 엄청 심하게 싸우던데 주가가 내려가면 우리나라 망해요?"
"그게 아니고 아마 너희 아버지가 주식을 엄청 가지고 계실 거야."
"푸하하하."
"엄마가 개 열받아서 밥도 안 차려주던데요."
형철이 그 남학생을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아침도 못 먹고 왔어?"
"예."
"크하하하."
아이들이 계속 웃자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야, 웃지 마라. 사람 배고파 뒤지겠는데..."
그때 앞쪽에 앉아있던 한 여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그런데 찌라시가 뭐예요?"
"응? 증권가 찌라시?"
"예."
"그러니까...그게...증권은 뭔지 알지?"
"예."
"세상에 돌아다니는 중요한 정보들은 보통 증권가에서 맨 먼저 포착되거든."
"왜요?"
"사람들이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잖아. 정보 하나하나가 주가에 큰 영향을 주니까. 안 좋은 정보를 미리 알면 빨리 팔고, 좋은 정보를 알면 빨리 사야지. 그래야 돈을 벌겠지?"
"그러면 그게 찌라시에요?"
"그런 정보들이 적힌 종이쪽지가 찌라시야. 아마 일본말일걸."
"아하."
"옛날에는 나라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도박사들한테 물어봤어."
"왜요?"
"도박하는 사람들은 돈에 환장해서 그 사람한테 베팅할 기회를 주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정보를 귀신같이 찾아내거든."
"그래요? 돈에 미친 놈들이네요. 근데 그걸 믿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프랑스하고 아르헨티나하고 축구 결승전 할 때 도박사들한테 이기는 쪽에 베팅해라 그러면 돈이 몰리는 쪽이 실제로 이길 확률이 높아."
"진짜요? 존...아니 개...아니 엄청 신기하네요."
그 여학생이 말을 더듬자 그 옆에 있던 여학생이 책상에 엎드려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냥 존나 개 신기하다고 말해."
"하하하."
"선생님."
창가 쪽에 앉은 한 남학생이 손을 들자 형철은 그를 바라밨다.
"왜?"
"울릉도에서 로또 1등 계속 나오고 있잖아요. 로또 사려고 거기에 가는 어른들도 도박사예요?"
"음."
형철은 순간 어떻게 말을 할지 고민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뭐 도박사는 아니고 그냥 이번에 또 나오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가는 거겠지."
"인터넷에 보니까 거기 무슨 귀신이 빙의한 아이가 살고 있다는데 그것도 사실이에요?"
형철은 순간 뜨끔한 마음에 앞자리에 앉은 희정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그거? 니네들은 빙의하면 꼭 마귀나 마녀 같은 것만 생각하는데 좋은 귀신도 있어.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이 빙의하면 얼마나 좋겠어."
"그럼 그 아이한테 훌륭한 위인이 빙의된 거예요?"
"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어. 난 로또에 관심 없어서 잘 모르겠어.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
"쌤, 그럼 애국가 부를 때 동해물과 백두산 다음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할 때 하느님은 누구를 말하는 거예요? 부처님이에요?"
"음..그건 종교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겠지. 초자연적인 절대자? 그런 뜻이라고 보면 돼."
"아, 그래요?"
교실에서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형철은 고개를 돌려 창가 쪽을 바라보았다.
울릉도와 필승, 그리고 단군이 차례대로 떠오르자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담임선생님과 거의 동시에 교실에 들어선 희정과 진수는 헐레벌떡 자리로 뛰어가 앉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교문에서부터 전속력으로 뛰어온 덕분에 다행히 지각을 면했다.
교실을 한번 쭉 훑어본 담임은 어두운 표정으로 출석부를 내려다보았다.
어제 몇몇 학생들이 무단결석을 하자 학교에서 급히 가정통신문까지 만들어 학부모들에게 보냈지만 오늘은 빈자리가 더 많아졌다.
총 30명 정원인 2학년 2반은 3명의 자리가 비어있다.
반 학생의 10분의 1이 결석을 한 셈인데 다른 반들도 이런 상황이라면 무단결석한 학생 수는 전교생으로 집계했을 때 50명이 넘을 것이다
지난 월요일 밤 자정 무렵.
미국 증시가 월요일 개장과 동시에 급락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의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백두산 대폭발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100년을 주기로 대폭발을 하는 백두산이 이제 곧 폭발을 앞두고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내용인데 백두산 중턱의 나무들이 말라죽은 사진과 온천수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간 온도계의 모습을 담은 게시물이 SNS를 통해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백두산 인근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공안의 지시에 따라 대피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자 일부 네티즌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새벽 시간임에도 사람들은 제각기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며 밤새 온라인상에서 열띤 토론을 펼쳤다.
잠시 후 화요일 오전.
한국증시는 개장과 함께 무서운 속도로 급락하기 시작하더니 10분 만에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온라인에서 여의도 증권가에 '한반도 대재앙'이라는 제목의 찌리시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이제 막 출근을 한 일부 시민들은 업무가 시작되기도 전에 병가를 내 집으로 돌아갔고 각 학교에서도 일부 학생들의 조퇴 신청이 이어졌다.
울진중학교도 어제 하루에만 500여 명의 전교생 중 30여 명이 집안 사정을 이유로 조퇴를 신청했는데 학교에서 각 가정에 가정통신문을 발송했음에도 오늘은 그 수가 배로 늘었다.
온 나라가 백두산 폭발 공포에 떨며 '집단멘붕 상태'에 빠지자 정부는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결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경찰과 전 군에 비상령을 발동했다.
미 증시의 하락과 백두산 화산활동을 연관시킬 근거를 찾기 힘들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고 월가 현지 금융전문가의 발언이 보도되자 분위기가 다소 진정되었지만 경찰은 '백두산 대폭발론'의 최초 유포자를 찾기 위해 은밀히 수사에 착수했다.
군도 북한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북한의 움직임을 살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이상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행위를 엄단하겠다는 경찰의 발표에 온라인상의 자극적인 게시물들이 모두 사라지며 국민들은 다소 안정을 찾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오늘 아침 울진중학교를 비롯한 전국의 각 학교에서는 등교를 하지 않은 학생 수가 어제보다 많아졌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1교시가 시작되자 희정과 진수는 수학 교과서를 꺼냈다. 우병장 님의 수학 시간이다.
반장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형철은 빈자리를 훑어보며 말했다.
"오늘 이 반은 세 명 결석이야?"
"네."
학생들이 대답하자 형철은 불만 섞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우리 반은 네 명인데...아 진짜."
"선생님 오늘 수업 안 하면 안 돼요?"
맨 뒤에 앉아있던 철웅이 불쑥 큰소리로 외치자 형철은 그를 쳐다봤다.
"너 오늘은 안 자?"
"지금 잠잘 때가 아니죠. 쌤."
"하하하."
교실 분위기가 다소 밝아지자 형철은 손에 들고 있는 책을 펼치다가 말했다.
"너희들은 백두산이 폭발하는 게 무서워?"
"당연하죠. 쌤. 용암이 남한까지 내려오면 어떡해요?"
철웅이 대답하자 주위에 있던 남학생들이 그를 보며 말했다.
"저 미친놈. 무슨 용암이 하늘에서 떨어지나?"
"그래도 혹시 모르지. 남쪽까지 내려올지..."
"진짜 개무식하네."
아이들이 웅성거리자 형철이 교탁을 탁탁 치며 말했다.
"뉴스에서 백두산이 폭발해도 반경 60km까지만 피해를 주고 남쪽은 괜찮다고 하잖아."
형철이 말하자 또 다른 남학생이 말했다.
"화산재가 일본까지 간다고 하던데요?"
"그건 최악의 상황이고 그렇게 되면 뭔가 조치가 취해지겠지. 과학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그는 아이들을 안심시키려 말했는데 엄청난 자연재해에는 기술이나 첨단과학도 속수무책이라고 말해줄 수는 없다.
"쌤, 그럼 화산재가 하늘로 올라가 햇빝을 막으면 지구에 빙하기가 오는 건 맞아요?"
이는 '백두산 대폭발론'의 핵심 내용 중 하나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다.
"야, 설마 빙하기가 오겠어? 그거면 100년마다 한 번씩 빙하기가 와야 하는데...말이 안 되잖아."
"근데 왜 인터넷에 그런 내용이 자꾸 떠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려고 그러는 거지. 장난일 수도 있고..."
그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사실 이것도 그가 바라는 희망 사항이다.
"와 만약에 누가 장난친 거면 그 사람 사형시키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개 열받네."
"지금 아마 경찰이 찾고 있을걸. 우리나라 사람이면 잡히면 바로 구속이야."
"구속 가지고 안 되죠, 쌤. 바로 사형시키야죠."
"그냥 징역을 한 100년으로 때리든지...."
"하하하."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자 형철은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쌤. 근데 아침에 우리 아빠가 엄마랑 존...아니 엄청 심하게 싸우던데 주가가 내려가면 우리나라 망해요?"
"그게 아니고 아마 너희 아버지가 주식을 엄청 가지고 계실 거야."
"푸하하하."
"엄마가 개 열받아서 밥도 안 차려주던데요."
형철이 그 남학생을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아침도 못 먹고 왔어?"
"예."
"크하하하."
아이들이 계속 웃자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야, 웃지 마라. 사람 배고파 뒤지겠는데..."
그때 앞쪽에 앉아있던 한 여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그런데 찌라시가 뭐예요?"
"응? 증권가 찌라시?"
"예."
"그러니까...그게...증권은 뭔지 알지?"
"예."
"세상에 돌아다니는 중요한 정보들은 보통 증권가에서 맨 먼저 포착되거든."
"왜요?"
"사람들이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잖아. 정보 하나하나가 주가에 큰 영향을 주니까. 안 좋은 정보를 미리 알면 빨리 팔고, 좋은 정보를 알면 빨리 사야지. 그래야 돈을 벌겠지?"
"그러면 그게 찌라시에요?"
"그런 정보들이 적힌 종이쪽지가 찌라시야. 아마 일본말일걸."
"아하."
"옛날에는 나라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도박사들한테 물어봤어."
"왜요?"
"도박하는 사람들은 돈에 환장해서 그 사람한테 베팅할 기회를 주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정보를 귀신같이 찾아내거든."
"그래요? 돈에 미친 놈들이네요. 근데 그걸 믿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프랑스하고 아르헨티나하고 축구 결승전 할 때 도박사들한테 이기는 쪽에 베팅해라 그러면 돈이 몰리는 쪽이 실제로 이길 확률이 높아."
"진짜요? 존...아니 개...아니 엄청 신기하네요."
그 여학생이 말을 더듬자 그 옆에 있던 여학생이 책상에 엎드려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냥 존나 개 신기하다고 말해."
"하하하."
"선생님."
창가 쪽에 앉은 한 남학생이 손을 들자 형철은 그를 바라밨다.
"왜?"
"울릉도에서 로또 1등 계속 나오고 있잖아요. 로또 사려고 거기에 가는 어른들도 도박사예요?"
"음."
형철은 순간 어떻게 말을 할지 고민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뭐 도박사는 아니고 그냥 이번에 또 나오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가는 거겠지."
"인터넷에 보니까 거기 무슨 귀신이 빙의한 아이가 살고 있다는데 그것도 사실이에요?"
형철은 순간 뜨끔한 마음에 앞자리에 앉은 희정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그거? 니네들은 빙의하면 꼭 마귀나 마녀 같은 것만 생각하는데 좋은 귀신도 있어.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이 빙의하면 얼마나 좋겠어."
"그럼 그 아이한테 훌륭한 위인이 빙의된 거예요?"
"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어. 난 로또에 관심 없어서 잘 모르겠어.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
"쌤, 그럼 애국가 부를 때 동해물과 백두산 다음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할 때 하느님은 누구를 말하는 거예요? 부처님이에요?"
"음..그건 종교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겠지. 초자연적인 절대자? 그런 뜻이라고 보면 돼."
"아, 그래요?"
교실에서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형철은 고개를 돌려 창가 쪽을 바라보았다.
울릉도와 필승, 그리고 단군이 차례대로 떠오르자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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