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회 - 취중진담
조회 : 1,112 추천 : 0 글자수 : 4,648 자 2023-01-27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이윤영 작가가 반쯤 풀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형철은 그녀의 시선을 받으며 테이블 위의 벨을 눌렀다.
"네, 뭐 드릴까요?"
"여기 얼음물 좀 갖다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종업원이 큰 소리로 대답하며 몸을 돌리려 할 때 그녀가 다시 종업원을 불렀다.
"저기요! 소주도 한 병 주세요."
순간 형철은 식탁 위에 놓여있는 빈 술병들을 바라봤다.
벌써 소주 3병에 맥주 3병.
자신은 이미 주량을 넘어섰고 그녀도 겉으로 보기엔 만취한 상태이다.
"괜찮아요? 많이 마신 거 같은데..."
"제 걱정은 하지 말고 하던 얘기나 마저 해보세요."
로또 생방송 이후로 식당 안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라 목청을 꽤 높여야 대화를 할 수가 있다.
"작가님, 우리 한민족의 시조가 누군지 아시죠?"
"한민족의 시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세요?"
"원래는 곰이었는데 동굴 속에서 햇빛을 보지 않고 쑥과 마늘만 먹어 결국 여자로 환생한 사람이 웅녀라는 건 아시죠?"
"아니 갑자기 그건 왜요? 그건 초등학생들도 아는 이야기잖아요."
"웅녀와 환웅이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단군이에요. 우리 민족의 시조."
"그런데요?"
"단군이 4,300년 만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예?"
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되묻자 형철은 말없이 맥주병을 따서 맥주를 자신의 잔에 반쯤 따랐다.
그가 다시 소주병을 들어 맥주잔에 부은 후 급히 완성된 쏘맥을 단번에 들이키자 그녀는 가만히 그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
"아, 선생님 아니 어떻게 그런 말을...그렇게 진지하게...하하하."
그녀는 도저히 웃음을 멈출 수 없는 듯 배를 움켜쥐고 소리 내며 한참 동안 웃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중년 남성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어대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더니 마주 앉은 형철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형철은 그녀가 웃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마음먹은 듯 칠리새우 하나를 집어 입 안에 넣었다.
그녀가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하다가 겨우 진정을 하고 그를 향해 손바닥을 펴 보였다.
"서..선생님 죄송해요. 아, 갑자기 너무 웃겨서."
"아니에요. 계속 웃으셔도 돼요. 또 언제 이렇게 웃어보겠어요."
"아, 선생님이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이유를 알겠네요. 왜 이렇게 웃기죠?"
"예? 인기는 무슨..."
"그러니까 지금 선생님 말씀은 필승이 몸 안에 단군왕검의 영혼이 들어있다 뭐 이런 거 아니에요?"
"......"
"아니지. 단군의 부활? 재림이네요. 하하하."
또다시 그녀가 배를 움켜잡고 웃기 시작하자 그는 주위 손님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시 화장실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식당 밖으로 나간 그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일행들에게 다가가 공손히 담배 한 개비를 빌렸다.
담배 한 모금을 빨자 머리가 핑 돌았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다.
그는 대나무밭에서 땅을 파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갓장이(왕의 모자를 다루는 기술자)처럼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믿건 말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최근 며칠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답답함과 두려움이 자신이 지금 내뿜는 담배 연기와 함께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인구의 0.02%가 살고 있는 작은 섬에서 11주 연속 로또 1등 당첨자가 나온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백두산 폭발을 두려워하면서도 로또복권에는 열광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이 종교에서 얻으려 하는 건 구원이나 위안이 아닌 돈이다.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이 판국에 로또 추첨 생방송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
그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에 일어나는 기적을 체험하면서 그 절대자의 존재를 강하게 믿고 있고 그 기적이 계속 이어지면서 그 믿음은 확신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 그들에게 종교는 정신적인 쾌락을 넘어 말초적인 쾌락까지 느끼게 해주는 완전함 그 자체이다.
인간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기이한 현상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힘이 없다.
하지만 '종교'라는 두 글자만 넣으면 혹은 '신'이라는 한 글자만 넣으면 이 모든 것은 쉽게 설명되고 이 현상들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신의 능력이다.
신은 절대자이기 때문에 인간이 감히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사람들은 극도로 불안한 마음을 종교의 힘으로 해소하려 하고 있다.
"뭐 하세요?"
이윤영 작가가 식당 문을 열고 나오자 형철은 얼른 담배를 바닥에 비벼끄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들어가시죠. 이제 막 들어가려던 참이었는데..."
"담배 피우셨어요?"
"네. 술만 마시면 저도 모르게..."
"저도 하나 주시지."
"작가님도 담배 피세요?"
"네."
"어쩌지? 전 저 사람들한테 하나 빌린 건데...평소에는 안 피거든요."
"그럼 그냥 들어가요."
"근데 왜 나오셨어요?"
"혹시 도망갔나 싶어서..."
"예?"
그녀가 다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뒤따라 들어갔다.
"이제는 제가 선생님을 웃겨볼까요?"
"제 이야기만큼 웃긴가요?"
"뭐 들어보시고 판단해 보세요."
"그래요."
조금 전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던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가라앉아 이제는 창백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그는 자신이 밖에 나가 있는 동안 그녀가 화장을 고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외계생명체가 필승이와 교신을 원하고 있어요."
"......"
그는 몽롱한 상태에서도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 이야기에 외계인 이야기로 응수하려는 작전이다.
"제가 얼마 전 CIA 직원에게 부탁을 받았어요."
"......"
"필승이 어머니를 설득해 달라는 부탁이요."
"......"
그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그녀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NASA에서 필승이를 간절히 원하고 있어요."
"......"
그가 맥주병을 들어 자신의 잔에 따랐지만 그녀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외계에서 어떤 존재가 인류에게 메시지를 주려고 하고 있어요."
그는 잠자코 이야기를 들으며 소주병을 들어 맥주잔에 소주를 섞었다.
아까보다 소주의 비율이 많다.
"필승이 어머니가 결국 며칠 전 허락을 하셨대요."
맥주잔을 들어 진한 쏘맥을 들이키던 형철은 잔을 식탁에 탁 내려놓더니 거침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외계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짬뽕 국물을 입에 넣은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테이블 위의 벨을 눌렀다.
"아 짜. 죄송해요. 잠시만요."
종업원이 달려오자 그는 짬뽕 그릇을 들어 그에게 건넸다.
"이거 좀 데워주세요. 나 살면서 차가운 짬뽕 국물은 처음 먹어보네."
종업원이 짬뽕 그릇을 들고 주방 쪽으로 다가가자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해요. 계속하세요."
그녀는 그의 행동이 아주 거슬렸지만 이야기를 멈추진 않았다.
"그리고 이건 외계생명체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인데...지구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 반대편에 필승이와 완전히 대립되는 소녀가 살고 있어요."
"대립되는?"
그는 이제야 조금 흥미가 생긴다는 듯 처음으로 입을 열어 대답을 했다.
"필승이랑 동갑인 6살 여자아이인데 가위바위보를 하면 항상 져요."
"......"
"CIA에서 그 여자아이를 감시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 어떤 범죄 조직이 그 아이의 불운을 이용해서 파워볼에서 1등을 노리려다 몰살당했어요."
"저기 잠시만요. 작가님."
"......"
"일단 한잔 받으세요."
그가 소주병을 들자 술을 따르는 시늉을 하자 그녀는 자신의 빈 소주잔을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무슨 스토리 라인은 있어야죠. 갑자기 CIA, 파워볼. 좀 천천히..."
그녀는 잔에 가득 담긴 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더니 젓가락으로 칠리새우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알았어요. 어디부터 다시 할까요? CIA?"
형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칠리새우를 삼키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CIA에서는 이미 백두산 폭발로 인한 지구의 종말을 예견하고 있어요. 우리 정부와도 긴밀한 대화 중이고..."
"......"
"그런데 중요한 건..."
"중요한 건?"
"그 외계생명체가 지구의 종말을 막아줄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 중심에 필승이가 있어요."
"......"
"그 외계생명체는 오직 필승이와의 교신을 원하고 있어요."
"브라보!"
이제 이야기가 다 끝났냐는 표정을 짓던 형철이 크게 박수를 치며 브라보를 외치자 옆 테이블에 있던 중년남성이 형철을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지금 이 식당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상이 아니다.
"네, 뭐 드릴까요?"
"여기 얼음물 좀 갖다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종업원이 큰 소리로 대답하며 몸을 돌리려 할 때 그녀가 다시 종업원을 불렀다.
"저기요! 소주도 한 병 주세요."
순간 형철은 식탁 위에 놓여있는 빈 술병들을 바라봤다.
벌써 소주 3병에 맥주 3병.
자신은 이미 주량을 넘어섰고 그녀도 겉으로 보기엔 만취한 상태이다.
"괜찮아요? 많이 마신 거 같은데..."
"제 걱정은 하지 말고 하던 얘기나 마저 해보세요."
로또 생방송 이후로 식당 안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라 목청을 꽤 높여야 대화를 할 수가 있다.
"작가님, 우리 한민족의 시조가 누군지 아시죠?"
"한민족의 시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세요?"
"원래는 곰이었는데 동굴 속에서 햇빛을 보지 않고 쑥과 마늘만 먹어 결국 여자로 환생한 사람이 웅녀라는 건 아시죠?"
"아니 갑자기 그건 왜요? 그건 초등학생들도 아는 이야기잖아요."
"웅녀와 환웅이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단군이에요. 우리 민족의 시조."
"그런데요?"
"단군이 4,300년 만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예?"
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되묻자 형철은 말없이 맥주병을 따서 맥주를 자신의 잔에 반쯤 따랐다.
그가 다시 소주병을 들어 맥주잔에 부은 후 급히 완성된 쏘맥을 단번에 들이키자 그녀는 가만히 그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
"아, 선생님 아니 어떻게 그런 말을...그렇게 진지하게...하하하."
그녀는 도저히 웃음을 멈출 수 없는 듯 배를 움켜쥐고 소리 내며 한참 동안 웃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중년 남성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어대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더니 마주 앉은 형철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형철은 그녀가 웃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마음먹은 듯 칠리새우 하나를 집어 입 안에 넣었다.
그녀가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하다가 겨우 진정을 하고 그를 향해 손바닥을 펴 보였다.
"서..선생님 죄송해요. 아, 갑자기 너무 웃겨서."
"아니에요. 계속 웃으셔도 돼요. 또 언제 이렇게 웃어보겠어요."
"아, 선생님이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이유를 알겠네요. 왜 이렇게 웃기죠?"
"예? 인기는 무슨..."
"그러니까 지금 선생님 말씀은 필승이 몸 안에 단군왕검의 영혼이 들어있다 뭐 이런 거 아니에요?"
"......"
"아니지. 단군의 부활? 재림이네요. 하하하."
또다시 그녀가 배를 움켜잡고 웃기 시작하자 그는 주위 손님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시 화장실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식당 밖으로 나간 그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일행들에게 다가가 공손히 담배 한 개비를 빌렸다.
담배 한 모금을 빨자 머리가 핑 돌았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다.
그는 대나무밭에서 땅을 파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갓장이(왕의 모자를 다루는 기술자)처럼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믿건 말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최근 며칠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답답함과 두려움이 자신이 지금 내뿜는 담배 연기와 함께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인구의 0.02%가 살고 있는 작은 섬에서 11주 연속 로또 1등 당첨자가 나온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백두산 폭발을 두려워하면서도 로또복권에는 열광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이 종교에서 얻으려 하는 건 구원이나 위안이 아닌 돈이다.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이 판국에 로또 추첨 생방송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
그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에 일어나는 기적을 체험하면서 그 절대자의 존재를 강하게 믿고 있고 그 기적이 계속 이어지면서 그 믿음은 확신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 그들에게 종교는 정신적인 쾌락을 넘어 말초적인 쾌락까지 느끼게 해주는 완전함 그 자체이다.
인간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기이한 현상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힘이 없다.
하지만 '종교'라는 두 글자만 넣으면 혹은 '신'이라는 한 글자만 넣으면 이 모든 것은 쉽게 설명되고 이 현상들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신의 능력이다.
신은 절대자이기 때문에 인간이 감히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사람들은 극도로 불안한 마음을 종교의 힘으로 해소하려 하고 있다.
"뭐 하세요?"
이윤영 작가가 식당 문을 열고 나오자 형철은 얼른 담배를 바닥에 비벼끄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들어가시죠. 이제 막 들어가려던 참이었는데..."
"담배 피우셨어요?"
"네. 술만 마시면 저도 모르게..."
"저도 하나 주시지."
"작가님도 담배 피세요?"
"네."
"어쩌지? 전 저 사람들한테 하나 빌린 건데...평소에는 안 피거든요."
"그럼 그냥 들어가요."
"근데 왜 나오셨어요?"
"혹시 도망갔나 싶어서..."
"예?"
그녀가 다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뒤따라 들어갔다.
"이제는 제가 선생님을 웃겨볼까요?"
"제 이야기만큼 웃긴가요?"
"뭐 들어보시고 판단해 보세요."
"그래요."
조금 전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던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가라앉아 이제는 창백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그는 자신이 밖에 나가 있는 동안 그녀가 화장을 고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외계생명체가 필승이와 교신을 원하고 있어요."
"......"
그는 몽롱한 상태에서도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 이야기에 외계인 이야기로 응수하려는 작전이다.
"제가 얼마 전 CIA 직원에게 부탁을 받았어요."
"......"
"필승이 어머니를 설득해 달라는 부탁이요."
"......"
그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그녀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NASA에서 필승이를 간절히 원하고 있어요."
"......"
그가 맥주병을 들어 자신의 잔에 따랐지만 그녀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외계에서 어떤 존재가 인류에게 메시지를 주려고 하고 있어요."
그는 잠자코 이야기를 들으며 소주병을 들어 맥주잔에 소주를 섞었다.
아까보다 소주의 비율이 많다.
"필승이 어머니가 결국 며칠 전 허락을 하셨대요."
맥주잔을 들어 진한 쏘맥을 들이키던 형철은 잔을 식탁에 탁 내려놓더니 거침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외계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짬뽕 국물을 입에 넣은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테이블 위의 벨을 눌렀다.
"아 짜. 죄송해요. 잠시만요."
종업원이 달려오자 그는 짬뽕 그릇을 들어 그에게 건넸다.
"이거 좀 데워주세요. 나 살면서 차가운 짬뽕 국물은 처음 먹어보네."
종업원이 짬뽕 그릇을 들고 주방 쪽으로 다가가자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해요. 계속하세요."
그녀는 그의 행동이 아주 거슬렸지만 이야기를 멈추진 않았다.
"그리고 이건 외계생명체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인데...지구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 반대편에 필승이와 완전히 대립되는 소녀가 살고 있어요."
"대립되는?"
그는 이제야 조금 흥미가 생긴다는 듯 처음으로 입을 열어 대답을 했다.
"필승이랑 동갑인 6살 여자아이인데 가위바위보를 하면 항상 져요."
"......"
"CIA에서 그 여자아이를 감시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 어떤 범죄 조직이 그 아이의 불운을 이용해서 파워볼에서 1등을 노리려다 몰살당했어요."
"저기 잠시만요. 작가님."
"......"
"일단 한잔 받으세요."
그가 소주병을 들자 술을 따르는 시늉을 하자 그녀는 자신의 빈 소주잔을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무슨 스토리 라인은 있어야죠. 갑자기 CIA, 파워볼. 좀 천천히..."
그녀는 잔에 가득 담긴 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더니 젓가락으로 칠리새우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알았어요. 어디부터 다시 할까요? CIA?"
형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칠리새우를 삼키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CIA에서는 이미 백두산 폭발로 인한 지구의 종말을 예견하고 있어요. 우리 정부와도 긴밀한 대화 중이고..."
"......"
"그런데 중요한 건..."
"중요한 건?"
"그 외계생명체가 지구의 종말을 막아줄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 중심에 필승이가 있어요."
"......"
"그 외계생명체는 오직 필승이와의 교신을 원하고 있어요."
"브라보!"
이제 이야기가 다 끝났냐는 표정을 짓던 형철이 크게 박수를 치며 브라보를 외치자 옆 테이블에 있던 중년남성이 형철을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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