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회 - NPS 구원회
조회 : 1,224 추천 : 0 글자수 : 3,647 자 2023-01-11
다음날 (목요일) 오전 10시. 서울특별시 양천구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팀 회의실.
"제보에 따르면 정식명칭은 'NPS 구원회'라고 합니다."
얼마 전 새로 들어온 서브 작가 신예솔이 당찬 표정으로 대답하자 자료를 살펴보던 정철원 CP는 고개를 들었다.
"NPS 구원회? 그게 무슨 뜻이지? 한자야?"
"제가 지금 알아보는 중인데 아직 정확히는...제 추측으로는 아마 무엇을 구원한다는 뜻인 거 같은데..."
그녀가 고개를 떨구며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자 바로 옆에 앉아있던 이윤영 작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6개월 전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입사 후 첫 제작 회의 때의 그 긴장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제작진들은 신입 작가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 일부러 딱딱한 분위기를 만든다.
지난 한 주간 홈페이지에 올라온 제보들을 간추려 브리핑할 때 PD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 하면 따가운 시선이 쏟아진다.
"그러니까 지금 학생들까지 그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단 말이지?"
"네. 단순히 온라인으로 가입한 회원이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 모임에 가면 기도를 한다고?"
"친구를 따라서 다녀왔다는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교주 같은 사람이 앞에서 무슨 주문을 외우면 신도들은 그것을 따라 외치면서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기도할 때 소리 내어 우는 사람도 있어서 제보자가 무서웠다고..."
"참 나, 가입비가 달랑 1,000원이란 말이지?"
"네."
"그럼 사실상 신도들의 돈을 뜯는 건 아니잖아?"
"네. 제보는 일단 그런 걸로..."
최근 백두산 대폭발론이 퍼지는 동안 각종 사이비 종교가 세상에 고개를 드러내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고 있었다.
지금까지 은밀하게 포교작업을 하던 사이비 종교들은 이제 아예 온라인상에 드러내놓고 광고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피라미드식으로 회원을 확보한 후 각종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고 요구를 거절하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게 만드는 수법이다.
지구의 종말이 오면 1순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그들의 유혹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재산을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이비 종교들 사이에서 단돈 1,000원의 입회비만 내면 구원을 받게 해준다는 신흥 종교가 경북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었다.
신도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이제 수도권에도 지부가 생겼는데 서울에서 오프라인 모임에 참가했던 한 시민이 방송국에 제보를 한 것이다.
"그럼 일단 신 작가가 가입해서 직접 현장에 나가봐."
"예?"
"뭐 당장 돈을 요구하지도 않는다면서?"
"아니 그래도..."
"왜 무서워? 신도 수가 100만이면 분명 뭔가가 있어."
"저기...전 교회를 다니는데..."
"누가 그 종교를 믿으래? 그냥 한번 둘러보고 오라고..."
"예..."
"그럼 서 PD가 같이 가 주든지?"
그가 갑자기 자신을 쳐다보며 묻자 서정훈 PD는 질색을 하면서 손을 저었다.
"안 됩니다. 전 중국 백두산 피난민 취재 때문에 지금도 정신이 없는데..."
"제가 같이 다녀올게요."
갑자기 이윤영 작가가 손을 들고 말하자 정 CP는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오 그래? 역시 우리 이 작가. 우리 팀에 이 작가가 없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 다들 좀 배워. 응?"
그가 제작진들을 쭉 훑어보며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하자 몇몇 스텝들은 고개를 숙이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속으로 그를 향해 쌍욕을 하고 있는 스텝들이다.
신 작가가 구세주를 만난 듯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자 이 작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위바위보 신동'편 결방 사건 이후로 정 CP는 그녀에게 어떤 부탁이나 지시를 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요즘 회사에 놀러 나오는 기분을 느끼고 있던 참이다.
----------------------------------------------------
같은 시각. 경북 울진중학교 2학년 2반 교실.
"야 임마. 천원도 없나?"
"내가 거지가? 천원도 없게. 난 그냥 가입 안 한다."
"아이고, 그래 니는 평생 아싸로 살아라."
"뭐라고? 죽을래? 이 개놈이."
"나중에 지구 개 폭망하면 지옥 가서 후회나 하지 마라."
"근데 이 새끼가.."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교실 뒤쪽에서 남학생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난리를 피우자 책상에 엎드린 채 스마트폰 화면을 보던 희정이 옆에 있는 진수에게 말했다.
"야, 근데 진짜 여기 가입하면 지구 망해도 살 수 있을까?"
"설마 천원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겠나? 그냥 천 원 내고 위로받는 거지."
"맞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근데 NPS가 무슨 뜻인지 아나?"
"몰라 한번 검색해볼까."
인터넷에 접속한 희정은 검색 결과가 나오자 화면을 스크롤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국민연금?"
"국민연금? 그게 뭔데?"
"몰라. 잠시만."
계속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희정은 놀라서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 찾았다. 하느님 이름이라는데?"
"맞나? 이름이 뭔데?"
"몰라."
그때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희정은 아쉬운 듯 인터넷 창을 닫고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었다.
"야, 이번 시간 뭐고?"
"도덕."
"도덕쌤한테 한번 물어볼까?"
복도 쪽 맨 앞자리에 앉은 둘은 교실 앞문으로 도덕 선생님이 들어오자 인상을 펴며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학생들이 반장의 구령에 맞춰 인사를 하자 그녀는 언제나처럼 밝게 인사를 하고 교실 앞 화이트보드에 PPT 화면을 띄웠다.
"선생님."
진수가 갑자기 손을 들자 수업을 시작하려던 그녀가 진수를 쳐다봤다.
"응. 왜?"
"선생님 국민연금이 뭐예요?"
"국민연금? 그건 갑자기 왜?"
"그냥 궁금해서요."
"아, 그건 어른들이 젊었을 때 나라에다가 돈을 맡겼다가 나중에 늙어서 일을 안 할 때 다달이 받는 돈이야."
"국민연금이 NPS에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국민연금 약자가 뭐지? 영어 선생님한테 한번 물어봐."
"예 고맙습니다."
그때 뒤에서 책을 똑바로 세우고 잘 준비를 하던 철웅이 궁시렁거렸다.
"그것도 모르나. 나필승이지."
순간 희정은 귀에 아주 익은 이름이 들리자 몸을 휙 돌려 철웅을 쳐다봤다.
벌써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희정은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자 가방에서 몰래 스마트폰을 꺼내서 카톡 창을 열었다.
단톡방에서 겨우 그의 이름을 찾은 희정은 몸을 숙인 채 책상 밑에서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야 철웅 방금 뭐라고 했노?
그때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을 느낀 철웅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스마트폰을 꺼냈다.
-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방금 뭐라고 해잖아
-뭐라카노 아무 말도 안 했다니까
-진수가 엔피에스 물어보니까 니가 뭐라고 씨부렸잖아?
-뭐 나필승?
순간 희정이 두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지며 액정화면이 산산조각 나자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제보에 따르면 정식명칭은 'NPS 구원회'라고 합니다."
얼마 전 새로 들어온 서브 작가 신예솔이 당찬 표정으로 대답하자 자료를 살펴보던 정철원 CP는 고개를 들었다.
"NPS 구원회? 그게 무슨 뜻이지? 한자야?"
"제가 지금 알아보는 중인데 아직 정확히는...제 추측으로는 아마 무엇을 구원한다는 뜻인 거 같은데..."
그녀가 고개를 떨구며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자 바로 옆에 앉아있던 이윤영 작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6개월 전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입사 후 첫 제작 회의 때의 그 긴장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제작진들은 신입 작가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 일부러 딱딱한 분위기를 만든다.
지난 한 주간 홈페이지에 올라온 제보들을 간추려 브리핑할 때 PD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 하면 따가운 시선이 쏟아진다.
"그러니까 지금 학생들까지 그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단 말이지?"
"네. 단순히 온라인으로 가입한 회원이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 모임에 가면 기도를 한다고?"
"친구를 따라서 다녀왔다는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교주 같은 사람이 앞에서 무슨 주문을 외우면 신도들은 그것을 따라 외치면서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기도할 때 소리 내어 우는 사람도 있어서 제보자가 무서웠다고..."
"참 나, 가입비가 달랑 1,000원이란 말이지?"
"네."
"그럼 사실상 신도들의 돈을 뜯는 건 아니잖아?"
"네. 제보는 일단 그런 걸로..."
최근 백두산 대폭발론이 퍼지는 동안 각종 사이비 종교가 세상에 고개를 드러내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고 있었다.
지금까지 은밀하게 포교작업을 하던 사이비 종교들은 이제 아예 온라인상에 드러내놓고 광고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피라미드식으로 회원을 확보한 후 각종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고 요구를 거절하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게 만드는 수법이다.
지구의 종말이 오면 1순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그들의 유혹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재산을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이비 종교들 사이에서 단돈 1,000원의 입회비만 내면 구원을 받게 해준다는 신흥 종교가 경북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었다.
신도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이제 수도권에도 지부가 생겼는데 서울에서 오프라인 모임에 참가했던 한 시민이 방송국에 제보를 한 것이다.
"그럼 일단 신 작가가 가입해서 직접 현장에 나가봐."
"예?"
"뭐 당장 돈을 요구하지도 않는다면서?"
"아니 그래도..."
"왜 무서워? 신도 수가 100만이면 분명 뭔가가 있어."
"저기...전 교회를 다니는데..."
"누가 그 종교를 믿으래? 그냥 한번 둘러보고 오라고..."
"예..."
"그럼 서 PD가 같이 가 주든지?"
그가 갑자기 자신을 쳐다보며 묻자 서정훈 PD는 질색을 하면서 손을 저었다.
"안 됩니다. 전 중국 백두산 피난민 취재 때문에 지금도 정신이 없는데..."
"제가 같이 다녀올게요."
갑자기 이윤영 작가가 손을 들고 말하자 정 CP는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오 그래? 역시 우리 이 작가. 우리 팀에 이 작가가 없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 다들 좀 배워. 응?"
그가 제작진들을 쭉 훑어보며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하자 몇몇 스텝들은 고개를 숙이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속으로 그를 향해 쌍욕을 하고 있는 스텝들이다.
신 작가가 구세주를 만난 듯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자 이 작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위바위보 신동'편 결방 사건 이후로 정 CP는 그녀에게 어떤 부탁이나 지시를 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요즘 회사에 놀러 나오는 기분을 느끼고 있던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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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경북 울진중학교 2학년 2반 교실.
"야 임마. 천원도 없나?"
"내가 거지가? 천원도 없게. 난 그냥 가입 안 한다."
"아이고, 그래 니는 평생 아싸로 살아라."
"뭐라고? 죽을래? 이 개놈이."
"나중에 지구 개 폭망하면 지옥 가서 후회나 하지 마라."
"근데 이 새끼가.."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교실 뒤쪽에서 남학생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난리를 피우자 책상에 엎드린 채 스마트폰 화면을 보던 희정이 옆에 있는 진수에게 말했다.
"야, 근데 진짜 여기 가입하면 지구 망해도 살 수 있을까?"
"설마 천원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겠나? 그냥 천 원 내고 위로받는 거지."
"맞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근데 NPS가 무슨 뜻인지 아나?"
"몰라 한번 검색해볼까."
인터넷에 접속한 희정은 검색 결과가 나오자 화면을 스크롤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국민연금?"
"국민연금? 그게 뭔데?"
"몰라. 잠시만."
계속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희정은 놀라서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 찾았다. 하느님 이름이라는데?"
"맞나? 이름이 뭔데?"
"몰라."
그때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희정은 아쉬운 듯 인터넷 창을 닫고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었다.
"야, 이번 시간 뭐고?"
"도덕."
"도덕쌤한테 한번 물어볼까?"
복도 쪽 맨 앞자리에 앉은 둘은 교실 앞문으로 도덕 선생님이 들어오자 인상을 펴며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학생들이 반장의 구령에 맞춰 인사를 하자 그녀는 언제나처럼 밝게 인사를 하고 교실 앞 화이트보드에 PPT 화면을 띄웠다.
"선생님."
진수가 갑자기 손을 들자 수업을 시작하려던 그녀가 진수를 쳐다봤다.
"응. 왜?"
"선생님 국민연금이 뭐예요?"
"국민연금? 그건 갑자기 왜?"
"그냥 궁금해서요."
"아, 그건 어른들이 젊었을 때 나라에다가 돈을 맡겼다가 나중에 늙어서 일을 안 할 때 다달이 받는 돈이야."
"국민연금이 NPS에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국민연금 약자가 뭐지? 영어 선생님한테 한번 물어봐."
"예 고맙습니다."
그때 뒤에서 책을 똑바로 세우고 잘 준비를 하던 철웅이 궁시렁거렸다.
"그것도 모르나. 나필승이지."
순간 희정은 귀에 아주 익은 이름이 들리자 몸을 휙 돌려 철웅을 쳐다봤다.
벌써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희정은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자 가방에서 몰래 스마트폰을 꺼내서 카톡 창을 열었다.
단톡방에서 겨우 그의 이름을 찾은 희정은 몸을 숙인 채 책상 밑에서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야 철웅 방금 뭐라고 했노?
그때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을 느낀 철웅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스마트폰을 꺼냈다.
-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방금 뭐라고 해잖아
-뭐라카노 아무 말도 안 했다니까
-진수가 엔피에스 물어보니까 니가 뭐라고 씨부렸잖아?
-뭐 나필승?
순간 희정이 두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지며 액정화면이 산산조각 나자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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