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조회 : 1,221 추천 : 1 글자수 : 6,638 자 2022-10-22
한 줌의 빛조차 드리지 않는 지하 하수구.
얇실하게 타오르는 횃불을 길잡이 삼아 제이슨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꾸물럭.
그런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미세한 끈적임.
터벅.
걸음을 멈춘 제이슨은 자연히 옆구리에 손을 얹었다.
'······.'
보이는 것이라고는 칠흑 같은 어둠.
하지만 제이슨의 머릿속에는 이미 한 존재를 훤히 떠올리고 있었다.
액체의 몸을 한 몬스터.
슬라임.
녀석이 분명히 저 어둠 속에 있을 것이다.
확신이 선 제이슨은 가만히 소리에 집중했다.
주룩.
쯘득함이 가득한 소리야 슬라임이라는 정체를 안 이상 더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제이슨이 소리에 집중한 이유에는 녀석들의 개체 수에 있었다.
꾸물럭.
'1마리라면 무시해도 좋다.'
녀석이라면 인간이 앞에 있는 것만으로 자리를 피할 테니까.
스윽. 꾸륵. 주룩.
'5마리라면 경계만 한다면 위험할 리가 없다.'
확실한 공격 의사만 보이지 않는다면 녀석들도 공격성을 들어내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10마리 그 이상이라면···.'
꾸물럭. 꾸물럭. 주욱. 주욱.
'생명을 잃을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해 녀석을 상대해야 한다.'
스릉!
그 생각과 함께 제이슨이 옆구리에서 단검을 꺼내자.
촤라라라락!
동시다발적으로 정면에는 무언가 접근해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약간의 탄성과 점성이 섞인 음성.
밝혀진 횃불의 영역은 연약했기에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제이슨의 머릿속에는 이미 앞으로의 상황이 머릿속에 상세히 떠올랐다.
마치 앞으로 일어날 미래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선명하게···.
촤악!
그건 정면에 불투명한 액체가 묽게 광각을 흐트러트리며 현재로 닥쳐왔다.
철퍼덕.
약간의 탄력이 느껴지는 묽은 액체는 제이슨의 온몸 퍼져오고.
사악.
때에 맞춰 휘두른 단검의 끝에는 마치 모래를 긁는 듯한 질감이 전해져 왔다.
'일단 한 마리···.'
제이슨의 시선에 투명한 구슬이 들어왔다.
구슬은 바스러지듯 반으로 갈라져 있었고.
그 주위에는 한눈에 보더라도 찐득함이 전해져 오는 액체가 가득했다.
예측한 대로 슬라임이 공격해 온 것이다.
하지만 예측대로 완벽히 들어맞았다는 쾌감을 제이슨은 즐기지 않았다.
아니 즐길 수 없었다.
이제.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쾌감이라고는 떠올릴 수 없는 고난이 닥쳐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흡."
제이슨은 최대한 숨을 참았다.
'숨구멍을 우선 막겠지.'
예상과 함께 온몸에 들러붙은 점액질의 액체가 물결치듯 코와 입에 덮쳐왔다.
'그리곤 시야를 차단하려고 하겠지.'
눈앞은 어느새 불투명하게 주위를 흐리고 있었다.
'이제 기다리겠지···.'
분명히 녀석들은 그럴 것이라 제이슨은 확신하고 있었다.
천천히 숨구멍을 막아 질식시키고.
시야를 흐려 혼란을 주고.
천천히 양분이 되기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게 슬라임.
아니 정확히는 수십 마리의 슬라임들이 뭉친, 슬라임 군체가 사냥하는 방식이다.
'예상대로다.'
슬라임 군체에 둘러싸인 제이슨은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녀석들의 산성이 띠는 육체에 온몸이 녹아내릴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녀석들의 본체인 핵을 제거해야만 한다.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제이슨은 최대한 빨리 단검을 휘둘렀다.
보이면 가르고.
사악!
잡히면 부수고.
파삭!
최대한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불투명해지던 시야는 점점 뭉개지듯 하더니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온몸에 느껴져 오던 따가움은 어느새 신경 하나하나를 찢어내는 고통으로 전해져 왔다.
무엇보다.
"읍!"
폐까지 들어찬 슬라임의 체액 탓에 막혀오는 숨이 가장 큰 문제였다.
공기를 탐하는 본능은 살기 위해 헛구역질을 해댔고.
"끄억."
그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슬라임의 체액은 다시 한 움큼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괴롭다.'
고통이 온 신경을 타고 뇌를 자극한다.
제이슨의 머릿속은 이미 고통으로 도배된 상태였다.
그러나.
콰득!
슬라임의 핵을 움켜쥔 제이슨은 손을 휘둘러 다음 슬라임의 핵을 찾았다.
눈은 이미 기능을 잃은 상태.
보이는 것이라고는 흑색 배경에 형형색색 빛나는 광채뿐이었고, 전해져오는 것은 고통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는가.
콰득!
아직 굳은살이 배긴 손가락과 손바닥 감각은 살아 있는데.
'13마리···.'
슬라임의 핵을 깨부순 제이슨은 자신이 처치한 슬라임의 수를 헤아렸다.
탁.
지금 손에 잡힌 것까지 합하여. 총 14마리.
슬라임이 군체를 이루는 수는 약 10마리 이상부터 추측이 되고 있다.
그 말이라면.
14마리 정도라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도 남을 숫자란 말이다.
하지만.
피부에 전해져 오는 고통은 여전했고.
폐에 들어찬 찐득한 액체는 완강히 공기를 접하는 것을 저항하고 있었다.
도대체 몇 마리길래···.
"커흑!"
목구멍마저도 슬라임의 산성에 녹아내린 것인지 제이슨의 입 밖으로 걸쭉한 검은 피가 터져 나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제이슨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태까지와 같이 동요하지 않았다.
시야를 잃어도.
온몸에 느껴져 오는 고통이 격해져도.
끝이 예측되지 않는 적과 상대하고 있어도.
제이슨은 절대로 동요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끝나겠지.'
무엇이든 간에 끝은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터득한 마법사라도.
무의 경지에 도달한 기사라도.
모든 것을 압도하는 드래곤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건 지금 제이슨의 온몸에 붙어 있는 슬라임이라고 다른 바 없었다.
다만.
단 한 가지.
제이슨의 머릿속에 단 한 가지 예외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끝이 존재하지 않는 존재.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끝에 도달하지 않을 존재.
죽음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을 존재.
본인조차 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존재.
제이슨.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콰득!
제이슨은 다시 손바닥 안에 감겨온 슬라임 핵을 부쉈다.
그런 그의 모습은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녹아내린 피부 가죽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속살.
그 사이로는 드러난 흰색 뼈.
이미 생을 포기하고 땅속에 제 무덤을 파야 할 듯한 처지라고 해도 무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제이슨은 담담히 슬라임의 핵을 깨트리는 데에 열중했다.
어차피 자신은 죽지 않을 테니까.
피부가 녹아내려도.
며칠을 숨을 쉬지 않아도.
심지어 목이 잘려도.
절대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으니까.
콰득!
다시 한번 슬라임의 핵을 깨부순 제이슨은 온몸에 사무쳐오는 고통이 점점 덜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는 전해져 오는 고통의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
그 소식은 제이슨이 기다려왔던 소식이고.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제이슨은 바닥에 손을 얹었다.
찰팍.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미 슬라임의 체액에 고막이 녹아내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점이 얼마 없는 손바닥 신경에는 슬라임의 찐득한 육체가 들리듯 느껴져 왔다.
사악!
제이슨은 바닥에 떨어진 보물이라도 쓸어 담는 것 마냥 바닥을 훑었다.
그런 그의 팔뚝 안으로 무언가 몰려 들어오며 머릿속이 아찔해지는 고통이 전해져 왔다.
당장이라도 손을 절단해 버리고 싶은 고통.
하지만 제이슨은 이빨을 부슬 듯 깨물며 버텼다.
지금 자신의 팔뚝 안쪽으로 몰려든 것들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당연한데···.
어찌 여기서 포기하겠는가.
쾅!
제이슨은 격하게 팔뚝 안으로 모여있을 것들에 망치질하듯 주먹 쥔 손을 내리찍었다.
쾅! 쾅! 쾅!
단단한 바닥 사이로 무언가 바스러지는 촉감이 손바닥 전체에 비명을 지를 듯한 고통과 함께 전해져 왔다.
‘고통스럽다···.’
하지만.
'뻔하다.'
지금 자신의 손에 전해져 오는 고통이.
신경 하나하나를 바늘로 후비는 고통이.
너무나도 뻔했다.
뻔하지 않은가.
재생되려는 너덜너덜한 살가죽을 슬라임의 핵을 부순다고 바닥에 무식하게 내려치는데.
어찌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그랬기에 제이슨은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주먹 쥔 손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아마도···.
눈이 완전히 회복된다면은 뻔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분명히 눈앞에는 수십 개의 핵 조각들이 널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탄력을 잃은 묽은 슬라임 체액이 널려 있을 터다.
그렇게 몇 분가량의 시간이 지났을 때일까.
서서히.
제이슨이 어두운 시야 속 몽롱한 광채가 아닌 선명한 붉은색 점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무언가 판단하기에는 부족한 시야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시야라고 해도 슬라임의 핵이나 액체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서서히 시야는 잡혀가는 와중 제이슨은 붉은색 점이 빛나는 물체를 만지고 나서야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횃불."
그건 어둠을 밝히던 횃불이었다.
슬라임이 덮치고 나서 꺼진 줄 알았더니, 용케도 조그마한 불씨로 위태롭게 살아 있었다.
저 위태로운 불씨를 살리면 다시 밝은 시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위를 훑어본 제이슨은 이내 생각을 접었다.
'저 조그마한 불씨를 키울만한 도구는 이 자리에 있을까?'
불을 키울 만한 천 쪼가리? 장작?
있다고 한들 수십 마리의 슬라임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습기를 머금지 않은 물건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픽.
결국, 위태로웠던 불씨마저도 꺼지고 다시 완벽한 어둠이 되자.
제이슨은 낙담하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팔을 앞으로 천천히 뻗어보고.
발을 뻗었다 굽히기를 반복해 보고.
양쪽 귀에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감지했다.
"모두 이상 없네."
분명히 조금 전만 해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삐걱거리던 육체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피부는···."
제이슨은 천천히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스윽.
찌릿한 고통 대신 건조한 피부조직이 느껴져 왔다.
"······회복됐구나."
모든 감각이 살아나는 것을 느낀 제이슨은 하수가 흐르는 방향을 통해 위치를 조정했다.
기억을 되짚어 본다면은···.
이 하수를 따라가면 하수구 입구까지 어렵지 않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문제라면······.
제이슨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여전히 어둡기만 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지만.
제이슨은 정확히 가랑이 사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나 나체지 않나?"
산성이 가득한 슬라임의 체액이 온몸을 훑었으니 당연한 결과일터다.
그 생각과 함께 몸 전체를 가볍게 손으로 쓸어본 제이슨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어떡하지?”
***
천쪼가리로 어떻게든 중요 부위를 가린 제이슨은 묵직한 보자기와 함께 도시 외각 모험가 길드 안으로 들어섰다.
끼익.
극히 평범한 나무 문을 열자.
푸근한 주황빛 마력석으로 밝혀진 내부가 펼쳐졌다.
통일화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제멋대로 배치된 테이블.
그 위로 어지럽게 각종 무기와 갑옷들이 놓여 있었고,
사람들은 맥주를 안주삼아 대화에 취해있었다.
모험가라면 누구라도 모험가 길드의 지극히 평범한 풍경이었다.
'······.'
하지만.
제이슨은 평소와는 달리 경계가 가득 담긴 시선으로 주위를 살피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중요 부위만 가린 나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어찌 당당히 걸음을 옮기겠는가.
그렇게 조심히 제이슨이 향한 곳은 길드 구석에 있는 길드 안내소였다.
조그마한 책상 하나와 개집 간판과 비교될 '길드 안내소'라는 팻말.
그곳에 뜨개질을 하며 앉아있던 여자에게 제이슨은 다가갔다.
"펠로니씨."
"음?"
여자의 시선은 자연히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제이슨과 눈을 마주쳤다.
"······뭐냐?"
"······."
턱!
변명하듯 설명하기보단 제이슨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보자기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조금이라도 옷을 걸치는 것을 포기하고 주어든 옷자락에 모은 조각난 슬라임의 핵이었다.
"임무 완수했습니다."
"아~ 그래서."
보자기 내부를 확인한 길드 안내원은 상황이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어. 보수는 하루 정도 걸릴 거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의뢰 있냐고?"
제이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끼어든 길드 안내원 펠로니는 약간의 경외감이 섞인 시선으로 답했다.
"너는 그 꼴인 상태에서도 의뢰를 받고 싶니?"
"온 김에 받으려고요."
"괜찮은 의뢰가 있긴 한데···."
그녀의 말에 초췌했던 제이슨의 눈이 번뜩 떠졌다.
"그렇습니까?"
"응. 근데··· 좀 특이해."
"어떤 의뢰인데요?"
제이슨의 물음에 펠로니는 책상 밑 서랍에서 의뢰서를 꺼내 건넸다.
차분히 책상 위에 올라간 의뢰서.
그 내용을 살피던 제이슨은 잠시 눈을 깜박였다.
"······이거 호구 아닙니까?"
얇실하게 타오르는 횃불을 길잡이 삼아 제이슨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꾸물럭.
그런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미세한 끈적임.
터벅.
걸음을 멈춘 제이슨은 자연히 옆구리에 손을 얹었다.
'······.'
보이는 것이라고는 칠흑 같은 어둠.
하지만 제이슨의 머릿속에는 이미 한 존재를 훤히 떠올리고 있었다.
액체의 몸을 한 몬스터.
슬라임.
녀석이 분명히 저 어둠 속에 있을 것이다.
확신이 선 제이슨은 가만히 소리에 집중했다.
주룩.
쯘득함이 가득한 소리야 슬라임이라는 정체를 안 이상 더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제이슨이 소리에 집중한 이유에는 녀석들의 개체 수에 있었다.
꾸물럭.
'1마리라면 무시해도 좋다.'
녀석이라면 인간이 앞에 있는 것만으로 자리를 피할 테니까.
스윽. 꾸륵. 주룩.
'5마리라면 경계만 한다면 위험할 리가 없다.'
확실한 공격 의사만 보이지 않는다면 녀석들도 공격성을 들어내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10마리 그 이상이라면···.'
꾸물럭. 꾸물럭. 주욱. 주욱.
'생명을 잃을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해 녀석을 상대해야 한다.'
스릉!
그 생각과 함께 제이슨이 옆구리에서 단검을 꺼내자.
촤라라라락!
동시다발적으로 정면에는 무언가 접근해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약간의 탄성과 점성이 섞인 음성.
밝혀진 횃불의 영역은 연약했기에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제이슨의 머릿속에는 이미 앞으로의 상황이 머릿속에 상세히 떠올랐다.
마치 앞으로 일어날 미래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선명하게···.
촤악!
그건 정면에 불투명한 액체가 묽게 광각을 흐트러트리며 현재로 닥쳐왔다.
철퍼덕.
약간의 탄력이 느껴지는 묽은 액체는 제이슨의 온몸 퍼져오고.
사악.
때에 맞춰 휘두른 단검의 끝에는 마치 모래를 긁는 듯한 질감이 전해져 왔다.
'일단 한 마리···.'
제이슨의 시선에 투명한 구슬이 들어왔다.
구슬은 바스러지듯 반으로 갈라져 있었고.
그 주위에는 한눈에 보더라도 찐득함이 전해져 오는 액체가 가득했다.
예측한 대로 슬라임이 공격해 온 것이다.
하지만 예측대로 완벽히 들어맞았다는 쾌감을 제이슨은 즐기지 않았다.
아니 즐길 수 없었다.
이제.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쾌감이라고는 떠올릴 수 없는 고난이 닥쳐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흡."
제이슨은 최대한 숨을 참았다.
'숨구멍을 우선 막겠지.'
예상과 함께 온몸에 들러붙은 점액질의 액체가 물결치듯 코와 입에 덮쳐왔다.
'그리곤 시야를 차단하려고 하겠지.'
눈앞은 어느새 불투명하게 주위를 흐리고 있었다.
'이제 기다리겠지···.'
분명히 녀석들은 그럴 것이라 제이슨은 확신하고 있었다.
천천히 숨구멍을 막아 질식시키고.
시야를 흐려 혼란을 주고.
천천히 양분이 되기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게 슬라임.
아니 정확히는 수십 마리의 슬라임들이 뭉친, 슬라임 군체가 사냥하는 방식이다.
'예상대로다.'
슬라임 군체에 둘러싸인 제이슨은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녀석들의 산성이 띠는 육체에 온몸이 녹아내릴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녀석들의 본체인 핵을 제거해야만 한다.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제이슨은 최대한 빨리 단검을 휘둘렀다.
보이면 가르고.
사악!
잡히면 부수고.
파삭!
최대한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불투명해지던 시야는 점점 뭉개지듯 하더니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온몸에 느껴져 오던 따가움은 어느새 신경 하나하나를 찢어내는 고통으로 전해져 왔다.
무엇보다.
"읍!"
폐까지 들어찬 슬라임의 체액 탓에 막혀오는 숨이 가장 큰 문제였다.
공기를 탐하는 본능은 살기 위해 헛구역질을 해댔고.
"끄억."
그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슬라임의 체액은 다시 한 움큼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괴롭다.'
고통이 온 신경을 타고 뇌를 자극한다.
제이슨의 머릿속은 이미 고통으로 도배된 상태였다.
그러나.
콰득!
슬라임의 핵을 움켜쥔 제이슨은 손을 휘둘러 다음 슬라임의 핵을 찾았다.
눈은 이미 기능을 잃은 상태.
보이는 것이라고는 흑색 배경에 형형색색 빛나는 광채뿐이었고, 전해져오는 것은 고통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는가.
콰득!
아직 굳은살이 배긴 손가락과 손바닥 감각은 살아 있는데.
'13마리···.'
슬라임의 핵을 깨부순 제이슨은 자신이 처치한 슬라임의 수를 헤아렸다.
탁.
지금 손에 잡힌 것까지 합하여. 총 14마리.
슬라임이 군체를 이루는 수는 약 10마리 이상부터 추측이 되고 있다.
그 말이라면.
14마리 정도라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도 남을 숫자란 말이다.
하지만.
피부에 전해져 오는 고통은 여전했고.
폐에 들어찬 찐득한 액체는 완강히 공기를 접하는 것을 저항하고 있었다.
도대체 몇 마리길래···.
"커흑!"
목구멍마저도 슬라임의 산성에 녹아내린 것인지 제이슨의 입 밖으로 걸쭉한 검은 피가 터져 나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제이슨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태까지와 같이 동요하지 않았다.
시야를 잃어도.
온몸에 느껴져 오는 고통이 격해져도.
끝이 예측되지 않는 적과 상대하고 있어도.
제이슨은 절대로 동요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끝나겠지.'
무엇이든 간에 끝은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터득한 마법사라도.
무의 경지에 도달한 기사라도.
모든 것을 압도하는 드래곤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건 지금 제이슨의 온몸에 붙어 있는 슬라임이라고 다른 바 없었다.
다만.
단 한 가지.
제이슨의 머릿속에 단 한 가지 예외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끝이 존재하지 않는 존재.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끝에 도달하지 않을 존재.
죽음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을 존재.
본인조차 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존재.
제이슨.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콰득!
제이슨은 다시 손바닥 안에 감겨온 슬라임 핵을 부쉈다.
그런 그의 모습은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녹아내린 피부 가죽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속살.
그 사이로는 드러난 흰색 뼈.
이미 생을 포기하고 땅속에 제 무덤을 파야 할 듯한 처지라고 해도 무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제이슨은 담담히 슬라임의 핵을 깨트리는 데에 열중했다.
어차피 자신은 죽지 않을 테니까.
피부가 녹아내려도.
며칠을 숨을 쉬지 않아도.
심지어 목이 잘려도.
절대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으니까.
콰득!
다시 한번 슬라임의 핵을 깨부순 제이슨은 온몸에 사무쳐오는 고통이 점점 덜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는 전해져 오는 고통의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
그 소식은 제이슨이 기다려왔던 소식이고.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제이슨은 바닥에 손을 얹었다.
찰팍.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미 슬라임의 체액에 고막이 녹아내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점이 얼마 없는 손바닥 신경에는 슬라임의 찐득한 육체가 들리듯 느껴져 왔다.
사악!
제이슨은 바닥에 떨어진 보물이라도 쓸어 담는 것 마냥 바닥을 훑었다.
그런 그의 팔뚝 안으로 무언가 몰려 들어오며 머릿속이 아찔해지는 고통이 전해져 왔다.
당장이라도 손을 절단해 버리고 싶은 고통.
하지만 제이슨은 이빨을 부슬 듯 깨물며 버텼다.
지금 자신의 팔뚝 안쪽으로 몰려든 것들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당연한데···.
어찌 여기서 포기하겠는가.
쾅!
제이슨은 격하게 팔뚝 안으로 모여있을 것들에 망치질하듯 주먹 쥔 손을 내리찍었다.
쾅! 쾅! 쾅!
단단한 바닥 사이로 무언가 바스러지는 촉감이 손바닥 전체에 비명을 지를 듯한 고통과 함께 전해져 왔다.
‘고통스럽다···.’
하지만.
'뻔하다.'
지금 자신의 손에 전해져 오는 고통이.
신경 하나하나를 바늘로 후비는 고통이.
너무나도 뻔했다.
뻔하지 않은가.
재생되려는 너덜너덜한 살가죽을 슬라임의 핵을 부순다고 바닥에 무식하게 내려치는데.
어찌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그랬기에 제이슨은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주먹 쥔 손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아마도···.
눈이 완전히 회복된다면은 뻔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분명히 눈앞에는 수십 개의 핵 조각들이 널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탄력을 잃은 묽은 슬라임 체액이 널려 있을 터다.
그렇게 몇 분가량의 시간이 지났을 때일까.
서서히.
제이슨이 어두운 시야 속 몽롱한 광채가 아닌 선명한 붉은색 점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무언가 판단하기에는 부족한 시야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시야라고 해도 슬라임의 핵이나 액체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서서히 시야는 잡혀가는 와중 제이슨은 붉은색 점이 빛나는 물체를 만지고 나서야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횃불."
그건 어둠을 밝히던 횃불이었다.
슬라임이 덮치고 나서 꺼진 줄 알았더니, 용케도 조그마한 불씨로 위태롭게 살아 있었다.
저 위태로운 불씨를 살리면 다시 밝은 시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위를 훑어본 제이슨은 이내 생각을 접었다.
'저 조그마한 불씨를 키울만한 도구는 이 자리에 있을까?'
불을 키울 만한 천 쪼가리? 장작?
있다고 한들 수십 마리의 슬라임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습기를 머금지 않은 물건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픽.
결국, 위태로웠던 불씨마저도 꺼지고 다시 완벽한 어둠이 되자.
제이슨은 낙담하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팔을 앞으로 천천히 뻗어보고.
발을 뻗었다 굽히기를 반복해 보고.
양쪽 귀에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감지했다.
"모두 이상 없네."
분명히 조금 전만 해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삐걱거리던 육체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피부는···."
제이슨은 천천히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스윽.
찌릿한 고통 대신 건조한 피부조직이 느껴져 왔다.
"······회복됐구나."
모든 감각이 살아나는 것을 느낀 제이슨은 하수가 흐르는 방향을 통해 위치를 조정했다.
기억을 되짚어 본다면은···.
이 하수를 따라가면 하수구 입구까지 어렵지 않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문제라면······.
제이슨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여전히 어둡기만 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지만.
제이슨은 정확히 가랑이 사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나 나체지 않나?"
산성이 가득한 슬라임의 체액이 온몸을 훑었으니 당연한 결과일터다.
그 생각과 함께 몸 전체를 가볍게 손으로 쓸어본 제이슨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어떡하지?”
***
천쪼가리로 어떻게든 중요 부위를 가린 제이슨은 묵직한 보자기와 함께 도시 외각 모험가 길드 안으로 들어섰다.
끼익.
극히 평범한 나무 문을 열자.
푸근한 주황빛 마력석으로 밝혀진 내부가 펼쳐졌다.
통일화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제멋대로 배치된 테이블.
그 위로 어지럽게 각종 무기와 갑옷들이 놓여 있었고,
사람들은 맥주를 안주삼아 대화에 취해있었다.
모험가라면 누구라도 모험가 길드의 지극히 평범한 풍경이었다.
'······.'
하지만.
제이슨은 평소와는 달리 경계가 가득 담긴 시선으로 주위를 살피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중요 부위만 가린 나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어찌 당당히 걸음을 옮기겠는가.
그렇게 조심히 제이슨이 향한 곳은 길드 구석에 있는 길드 안내소였다.
조그마한 책상 하나와 개집 간판과 비교될 '길드 안내소'라는 팻말.
그곳에 뜨개질을 하며 앉아있던 여자에게 제이슨은 다가갔다.
"펠로니씨."
"음?"
여자의 시선은 자연히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제이슨과 눈을 마주쳤다.
"······뭐냐?"
"······."
턱!
변명하듯 설명하기보단 제이슨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보자기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조금이라도 옷을 걸치는 것을 포기하고 주어든 옷자락에 모은 조각난 슬라임의 핵이었다.
"임무 완수했습니다."
"아~ 그래서."
보자기 내부를 확인한 길드 안내원은 상황이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어. 보수는 하루 정도 걸릴 거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의뢰 있냐고?"
제이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끼어든 길드 안내원 펠로니는 약간의 경외감이 섞인 시선으로 답했다.
"너는 그 꼴인 상태에서도 의뢰를 받고 싶니?"
"온 김에 받으려고요."
"괜찮은 의뢰가 있긴 한데···."
그녀의 말에 초췌했던 제이슨의 눈이 번뜩 떠졌다.
"그렇습니까?"
"응. 근데··· 좀 특이해."
"어떤 의뢰인데요?"
제이슨의 물음에 펠로니는 책상 밑 서랍에서 의뢰서를 꺼내 건넸다.
차분히 책상 위에 올라간 의뢰서.
그 내용을 살피던 제이슨은 잠시 눈을 깜박였다.
"······이거 호구 아닙니까?"
작가의 말
부족한 작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