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조회 : 806 추천 : 1 글자수 : 6,114 자 2022-10-29
제이슨은 가만히 길드 안내원 펠로니가 건넨 의뢰서를 읽어내렸다.
[모험가 동료를 찾습니다.]
- 모험가 지식이 부족한 초보 모험가 리브 마르텔은 자신과 함께 다닐 모험가를 찾고 있다.
보상금 : 월 5골드 이상 (협상 가능)
"······."
'어처구니가 없군.'
의뢰서의 내용을 훑은 제이슨은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의뢰서가 가짜가 아닌지 의심했다.
모험가가 같이 다닐 동료를 모집하다니.
그것도 의뢰금을 지불하면서 까지.
모험가 경력 5년 차인 제이슨으로써 어처구니가 없는 짓이었다.
동료.
그것은 용병과 같이 이렇게 돈을 지불하면서 모으는 것이 아니다.
직접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 다음.
몇 번 같이 의뢰를 수행하며 서로를 살피고.
신뢰를 쌓은 다음에야 동료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떤 사람이 어떤 심보를 가질지 모른 채 동료가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어처구니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이슨은 의뢰서를 붙들고 있었다.
- 월 5골드 이상(협상 가능) -
'호구다.'
호구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의뢰금이 떡하니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5골드라면 아끼면 2달.
풍족하게 1달을 보낼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런 금액을 매달 같이 모험가 동료가 되는 것으로 준다고?
제이슨의 머릿속에는 의뢰인이 호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당연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모험가에게 동료는 돈을 주고 얻는 것이 아니니까.
자신이 소속된 모험가 길드에서 발품만 팔면 언제라도 얻을 수 있는 게 동료니까.
그런데 그런 짓을 5골드나 주고 구한다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돈을 이렇게 헤프게 쓰다니.
'혹시 의뢰인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인가?'
자연히 그런 생각이 드는 제이슨이었지만.
모든 의뢰는 길드 안내원인 펠로니의 검수를 통과한 것이기에 그럴 확률은 적었다.
"그래서. 할 거야 안 할 거야."
때마침 들려온 펠로니의 물음에 제이슨은 그제야 의뢰서에서 시선을 뗐다.
"하겠습니다."
안 할 이유가 있을까?
의심이야 가기야 한다만.
자그마치 달마다 5골드다.
그것도 모험가 동료가 되는 것만으로 말이다.
거절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럴 줄 알았어."
펠로니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랍에 도장을 꺼내 들었다.
손잡이 위로 사납게 이빨을 드러낸 늑대의 두상이 조각된 도장이었다.
"서명해."
펠로니의 말에 제이슨은 옆에 마련되어 있는 깃펜을 집어 들어 사인했다.
스슥.
제이슨이 거침없이 의뢰서에 서명하자.
턱.
펠로니는 지체 없이 의뢰서 위로 도장을 짓눌렀다.
의뢰를 받겠다는 모험가 본인의 사인과 그것을 허락한다는 길드 도장.
이로써 이 의뢰는 제이슨의 것으로 된 것이다.
쩍.
"자 받아."
제이슨은 펠로니로 부터 도장이 찍힌 의뢰서를 건네받았다.
의뢰서 오른쪽 아래로는 자신의 사인과 함께 제이슨이 속한 길드인 '미링 길드'를 나타내는 늑대의 두상이 새겨져 있었다.
주둥이에 잔뜩 주름을 진 채 송곳니를 드러낸 늑대의 옆태가 빨간색 지장을 통해 새겨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의뢰를 전하는 게 안내원의 일인데. 그건 그렇고···."
펠로니는 천천히 시선을 내려 제이슨의 하체 쪽을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그렇고 있을 거니?"
그녀의 말에 시선을 내린 제이슨은 휑한 자신의 아랫도리를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의복 구실을 하고 있던 천 쪼가리가 바닥에 흘러내려 있었다.
"······."
"······."
"언제부터 벗겨져 있었습니까?"
"꽤 됐지."
"······왜 말을."
"그보다."
펠로니는 하찮다는 표정과 함께 제이슨의 말에 끼어들었다.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져주기나 해줄래? 이래 봐도 나도 여자거든."
"아···예."
그녀의 말에 제이슨은 일단 인적이 드문 길드 구석으로 향했다.
***
다음날 제이슨은 우선 의뢰 장소로 향했다.
의뢰장소는 도시 외곽의 한 별장.
규모만 보았을 때 귀족이나 될법한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데.
오랜 시간 관리되지 않은 것인지.
널찍한 창문에는 얼룩과 먼지가 물들어 있었고.
벽 곳곳에는 넝쿨 식물이 그물처럼 퍼져 있었다.
"······뭐지 이 불안한 예감은."
거대한 규모이지만 최근까지 관리되지 않은 듯한 외관.
달마다 의뢰금으로 5골드를 준다는 사람의 별장치고는 약간의 애매함이 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세상 보기를 추측만으로 살아가겠는가.
제이슨은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문을 두들겼다.
텅텅.
"미링 길드에서 왔습니다."
"······."
잠잠한 반응.
이 정도 규모의 별장이라면 이미 문 앞에서 고용인들이 사람을 맞이하고도 남았어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문 앞에 사람을 맞이하기는커녕 안쪽에서는 어떠한 인기척이 들려오지 않았다.
"······."
한참이 지나도 묵묵부답이자 제이슨은 다시 한번 문을 두들겼다.
쿵! 쿵!
"미링 길드에서 왔습니다!!"
이번엔 조금 전보다 목소리에 힘을 들여 소리치자.
"@#!"
별장 안으로 알 수 없는 소음이 흘러들어왔다.
알아들을 순 없지만, 사람의 목소리라는 것을 파악한 제이슨은 천천히 문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으악!"
안쪽으로 미세하게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쿵!
다음으로는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으며.
타다다다닥!
곧이어 문 너머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읍! 후!"
갚은 숨을 가다듬고.
툭. 툭.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소리가 들려오고.
"큼큼."
목을 가다듬고서야.
끽.
별장의 대문이 움찔거렸다.
제이슨은 허리를 세워 의뢰인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이내.
끽기기기긱.
활짝 열려야 할 대문은 귀에 거슬릴듯한 기괴한 소리와 함께 느릿하게 열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는 은회색 머리에 남색 눈동자를 가진 여자가 낑낑거리며 대문을 밀어내고 있는 모습이 제이슨의 눈에 들어왔다.
"······."
'도와줘야 하나?'
누군가 힘겨워하는 모습이 보이면 당연히 도움을 주려는 게 사람의 심정.
하지만 제이슨의 손이 올라가려는 순간.
낑낑거리며 조그마한 틈을 만들어낸 의뢰인이 허리를 세웠다.
"어서 오세요! 미링 길드에서 오셨다고요!"
***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리브 마르텔입니다."
가까스로 갚아오는 숨을 참아내며 인사를 건네는 리브에 제이슨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미링 길드에서 온 제이슨이라고 합니다."
"환영해요. 정신없는 모습 보여서 죄송합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제이슨이였지만.
리브의 말대로 그녀의 응대는 정신이 없었다.
대문을 통과해 별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자기 혼자 응접실로 뛰어가더니.
쿠당탕 소음과 함께 다시 헐레벌떡 뛰어와 소리가 났던 응접실로 응대했다.
그뿐인가.
곧바로 어딘가로 뛰어가 가벼운 다과와 차를 내왔는데, 그것마저도 무언가를 빼놓고 온 것인지 몇 번을 왔다 갔다를 반복했으니.
응접실에서 홀로 앉아있던 제이슨에게는 정신없는 응대였다.
'하녀들을 고용하지 않는 건가?'
별장의 내부는 외관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방과 방을 연결하는 복도는 길었고.
그 사이사이 배치된 창문은 꽤나 컷으며, 그 수도 만만치 않았다.
하녀를 고용하지 않고서야 도저히 감당이 안 될 규모의 별장이었다.
하지만 하녀로 보이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집사도 보이지 않고···.'
의구심은 솟구쳤지만, 제이슨은 우선 마주 앉아 애써 숨을 고르고 있는 리브에게 물었다.
"동료를 구하신다고요."
"예!"
숨을 토해내듯 답하는 리브에 제이슨은 물었다.
"모험가로서 말이죠."
"네!"
"······."
그 대답에 제이슨은 리브를 빤히 바라보았다.
꽤나 값이 나가 보이기는 하지만, 어딘가 후줄근함이 보이는 옷차림.
새하얀 살결에 드문드문 보이는 잔 상처.
호화로워로움 속 어울리지 않는 잡티는 관리되지 않은 이 별장과 같았다.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제이슨이 예상한 의뢰인의 모습은 귀한 집 자제로써 귀하게 자라왔을 영애의 모습이었다.
의뢰금으로 무려 5골드를 줄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자라면. 이런 잡티가 드러나는 모습을 하고 있을 리 없을 테니까.
그랬기에 제이슨은 리브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의뢰자님."
"네!"
"의뢰금을 주실 수 있는 겁니까?"
갑작스러운 제이슨의 물음에 리브의 두 눈을 깜박였다.
마치 지금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반응.
그러나 이내 주위를 살핀 리브는 그제야 제이슨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아!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의뢰금을 충분히 낼 수 있으니까."
저 말이 사실일까.
제이슨은 아무 말도 없이 잠시 리브를 바라보았다.
대개 사람의 말은 주위 환경과 맞아 들었을 때 믿음이 가는 법이었다.
그 사실을 리브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럼!"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난 리브는 홀로 방을 나서더니 묵직한 보자기를 들고 돌아왔다.
촤락!
들려오는 소리만으로 내용물을 알 수 있는 소리.
그와 동시에 보자기의 속내를 확인한 제이슨의 눈빛이 번뜩였다.
찬란한 광채가 퍼져나오는 수십 개의 금화가 그 정체였다.
"어때요."
"······."
어떨 게 있을까?
금화가 가득한 보자기.
저것으로 이미 설명이 충분했다.
세어보지 않아도 몇 달은커녕 몇 년은 충분히 금화를 내어주고도 남을 양.
적어도 의뢰금을 받지 못할 불상사는 발생할 리 없었다.
"제가 실례를 했군요. 죄송합니다."
제이슨은 좀 전과는 달리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돈을 줄 의뢰인인데.
아니, 동료에게 결례를 보였으니 당연히 예의를 가지고 속죄하는 게 당연했다.
“이제 믿음이 가시죠?”
리브의 물음에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또 물어보실 게 있습니까?”
오우 그런 게 있을 리가.
리브의 물음에 제이슨은 급히 고개를 좌우로 휘저었다.
“그럼··· 이번엔 제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무렴.
이미 눈앞에 리브를 동료로 인식한 제이슨으로써 거절할 권리를 자체적으로 박탈한 상태였다.
“물론이죠.”
대답을 들은 리브의 눈빛이 순간 가라앉았다.
“모험가님은 저를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
감당이 가능하냐고?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일까.
질문에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제이슨이 눈을 깜박이자 리브는 자리에 일어나 창가 쪽으로 향했다.
“폭주성마저항장애라고 아십니까?”
‘폭주성마저항장애?’
낯선 단어의 조화에 제이슨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리브는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으며 창가로 향했다.
“간단합니다.”
끼기기긱.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창문을 연 리브는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마저항장애.”
창밖으로 내민 리브의 손 주위로 새하얀 빛이 돋아났다.
빛은 점점 거세졌고.
하얀색은 점점 연한 하늘색이 띠기 시작했다.
마력을 뭉친 덩어리. 마력구라는 것을 제이슨은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거기에 폭주가 붙었으면 어떻게 될까요?”
리브의 말에 제이슨의 머릿속에 단어들이 빠르게 짜 맞혀져 갔다.
‘마저항이라면 마력 저항을 말하는 것일 텐데···.’
근데 거기에 장애가 따라붙고 폭주가 덧붙여진다고?
설마.
제이슨은 설마 하는 마음에 리브가 서 있는 창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하늘 위로 떠오른 태양빛 마저도 밀어내는 거센 빛줄기를 쏟아내는 마력구를.
방안을 한순간에 집어 삼키고도 남을 거대한 크기의 마력구를.
새하얀 빛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짙은 파란색의 마력구를.
그런 마력구에 태연하게 서 있는 리브를.
[모험가 동료를 찾습니다.]
- 모험가 지식이 부족한 초보 모험가 리브 마르텔은 자신과 함께 다닐 모험가를 찾고 있다.
보상금 : 월 5골드 이상 (협상 가능)
"······."
'어처구니가 없군.'
의뢰서의 내용을 훑은 제이슨은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의뢰서가 가짜가 아닌지 의심했다.
모험가가 같이 다닐 동료를 모집하다니.
그것도 의뢰금을 지불하면서 까지.
모험가 경력 5년 차인 제이슨으로써 어처구니가 없는 짓이었다.
동료.
그것은 용병과 같이 이렇게 돈을 지불하면서 모으는 것이 아니다.
직접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 다음.
몇 번 같이 의뢰를 수행하며 서로를 살피고.
신뢰를 쌓은 다음에야 동료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떤 사람이 어떤 심보를 가질지 모른 채 동료가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어처구니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이슨은 의뢰서를 붙들고 있었다.
- 월 5골드 이상(협상 가능) -
'호구다.'
호구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의뢰금이 떡하니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5골드라면 아끼면 2달.
풍족하게 1달을 보낼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런 금액을 매달 같이 모험가 동료가 되는 것으로 준다고?
제이슨의 머릿속에는 의뢰인이 호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당연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모험가에게 동료는 돈을 주고 얻는 것이 아니니까.
자신이 소속된 모험가 길드에서 발품만 팔면 언제라도 얻을 수 있는 게 동료니까.
그런데 그런 짓을 5골드나 주고 구한다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돈을 이렇게 헤프게 쓰다니.
'혹시 의뢰인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인가?'
자연히 그런 생각이 드는 제이슨이었지만.
모든 의뢰는 길드 안내원인 펠로니의 검수를 통과한 것이기에 그럴 확률은 적었다.
"그래서. 할 거야 안 할 거야."
때마침 들려온 펠로니의 물음에 제이슨은 그제야 의뢰서에서 시선을 뗐다.
"하겠습니다."
안 할 이유가 있을까?
의심이야 가기야 한다만.
자그마치 달마다 5골드다.
그것도 모험가 동료가 되는 것만으로 말이다.
거절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럴 줄 알았어."
펠로니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랍에 도장을 꺼내 들었다.
손잡이 위로 사납게 이빨을 드러낸 늑대의 두상이 조각된 도장이었다.
"서명해."
펠로니의 말에 제이슨은 옆에 마련되어 있는 깃펜을 집어 들어 사인했다.
스슥.
제이슨이 거침없이 의뢰서에 서명하자.
턱.
펠로니는 지체 없이 의뢰서 위로 도장을 짓눌렀다.
의뢰를 받겠다는 모험가 본인의 사인과 그것을 허락한다는 길드 도장.
이로써 이 의뢰는 제이슨의 것으로 된 것이다.
쩍.
"자 받아."
제이슨은 펠로니로 부터 도장이 찍힌 의뢰서를 건네받았다.
의뢰서 오른쪽 아래로는 자신의 사인과 함께 제이슨이 속한 길드인 '미링 길드'를 나타내는 늑대의 두상이 새겨져 있었다.
주둥이에 잔뜩 주름을 진 채 송곳니를 드러낸 늑대의 옆태가 빨간색 지장을 통해 새겨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의뢰를 전하는 게 안내원의 일인데. 그건 그렇고···."
펠로니는 천천히 시선을 내려 제이슨의 하체 쪽을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그렇고 있을 거니?"
그녀의 말에 시선을 내린 제이슨은 휑한 자신의 아랫도리를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의복 구실을 하고 있던 천 쪼가리가 바닥에 흘러내려 있었다.
"······."
"······."
"언제부터 벗겨져 있었습니까?"
"꽤 됐지."
"······왜 말을."
"그보다."
펠로니는 하찮다는 표정과 함께 제이슨의 말에 끼어들었다.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져주기나 해줄래? 이래 봐도 나도 여자거든."
"아···예."
그녀의 말에 제이슨은 일단 인적이 드문 길드 구석으로 향했다.
***
다음날 제이슨은 우선 의뢰 장소로 향했다.
의뢰장소는 도시 외곽의 한 별장.
규모만 보았을 때 귀족이나 될법한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데.
오랜 시간 관리되지 않은 것인지.
널찍한 창문에는 얼룩과 먼지가 물들어 있었고.
벽 곳곳에는 넝쿨 식물이 그물처럼 퍼져 있었다.
"······뭐지 이 불안한 예감은."
거대한 규모이지만 최근까지 관리되지 않은 듯한 외관.
달마다 의뢰금으로 5골드를 준다는 사람의 별장치고는 약간의 애매함이 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세상 보기를 추측만으로 살아가겠는가.
제이슨은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문을 두들겼다.
텅텅.
"미링 길드에서 왔습니다."
"······."
잠잠한 반응.
이 정도 규모의 별장이라면 이미 문 앞에서 고용인들이 사람을 맞이하고도 남았어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문 앞에 사람을 맞이하기는커녕 안쪽에서는 어떠한 인기척이 들려오지 않았다.
"······."
한참이 지나도 묵묵부답이자 제이슨은 다시 한번 문을 두들겼다.
쿵! 쿵!
"미링 길드에서 왔습니다!!"
이번엔 조금 전보다 목소리에 힘을 들여 소리치자.
"@#!"
별장 안으로 알 수 없는 소음이 흘러들어왔다.
알아들을 순 없지만, 사람의 목소리라는 것을 파악한 제이슨은 천천히 문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으악!"
안쪽으로 미세하게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쿵!
다음으로는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으며.
타다다다닥!
곧이어 문 너머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읍! 후!"
갚은 숨을 가다듬고.
툭. 툭.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소리가 들려오고.
"큼큼."
목을 가다듬고서야.
끽.
별장의 대문이 움찔거렸다.
제이슨은 허리를 세워 의뢰인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이내.
끽기기기긱.
활짝 열려야 할 대문은 귀에 거슬릴듯한 기괴한 소리와 함께 느릿하게 열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는 은회색 머리에 남색 눈동자를 가진 여자가 낑낑거리며 대문을 밀어내고 있는 모습이 제이슨의 눈에 들어왔다.
"······."
'도와줘야 하나?'
누군가 힘겨워하는 모습이 보이면 당연히 도움을 주려는 게 사람의 심정.
하지만 제이슨의 손이 올라가려는 순간.
낑낑거리며 조그마한 틈을 만들어낸 의뢰인이 허리를 세웠다.
"어서 오세요! 미링 길드에서 오셨다고요!"
***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리브 마르텔입니다."
가까스로 갚아오는 숨을 참아내며 인사를 건네는 리브에 제이슨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미링 길드에서 온 제이슨이라고 합니다."
"환영해요. 정신없는 모습 보여서 죄송합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제이슨이였지만.
리브의 말대로 그녀의 응대는 정신이 없었다.
대문을 통과해 별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자기 혼자 응접실로 뛰어가더니.
쿠당탕 소음과 함께 다시 헐레벌떡 뛰어와 소리가 났던 응접실로 응대했다.
그뿐인가.
곧바로 어딘가로 뛰어가 가벼운 다과와 차를 내왔는데, 그것마저도 무언가를 빼놓고 온 것인지 몇 번을 왔다 갔다를 반복했으니.
응접실에서 홀로 앉아있던 제이슨에게는 정신없는 응대였다.
'하녀들을 고용하지 않는 건가?'
별장의 내부는 외관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방과 방을 연결하는 복도는 길었고.
그 사이사이 배치된 창문은 꽤나 컷으며, 그 수도 만만치 않았다.
하녀를 고용하지 않고서야 도저히 감당이 안 될 규모의 별장이었다.
하지만 하녀로 보이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집사도 보이지 않고···.'
의구심은 솟구쳤지만, 제이슨은 우선 마주 앉아 애써 숨을 고르고 있는 리브에게 물었다.
"동료를 구하신다고요."
"예!"
숨을 토해내듯 답하는 리브에 제이슨은 물었다.
"모험가로서 말이죠."
"네!"
"······."
그 대답에 제이슨은 리브를 빤히 바라보았다.
꽤나 값이 나가 보이기는 하지만, 어딘가 후줄근함이 보이는 옷차림.
새하얀 살결에 드문드문 보이는 잔 상처.
호화로워로움 속 어울리지 않는 잡티는 관리되지 않은 이 별장과 같았다.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제이슨이 예상한 의뢰인의 모습은 귀한 집 자제로써 귀하게 자라왔을 영애의 모습이었다.
의뢰금으로 무려 5골드를 줄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자라면. 이런 잡티가 드러나는 모습을 하고 있을 리 없을 테니까.
그랬기에 제이슨은 리브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의뢰자님."
"네!"
"의뢰금을 주실 수 있는 겁니까?"
갑작스러운 제이슨의 물음에 리브의 두 눈을 깜박였다.
마치 지금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반응.
그러나 이내 주위를 살핀 리브는 그제야 제이슨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아!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의뢰금을 충분히 낼 수 있으니까."
저 말이 사실일까.
제이슨은 아무 말도 없이 잠시 리브를 바라보았다.
대개 사람의 말은 주위 환경과 맞아 들었을 때 믿음이 가는 법이었다.
그 사실을 리브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럼!"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난 리브는 홀로 방을 나서더니 묵직한 보자기를 들고 돌아왔다.
촤락!
들려오는 소리만으로 내용물을 알 수 있는 소리.
그와 동시에 보자기의 속내를 확인한 제이슨의 눈빛이 번뜩였다.
찬란한 광채가 퍼져나오는 수십 개의 금화가 그 정체였다.
"어때요."
"······."
어떨 게 있을까?
금화가 가득한 보자기.
저것으로 이미 설명이 충분했다.
세어보지 않아도 몇 달은커녕 몇 년은 충분히 금화를 내어주고도 남을 양.
적어도 의뢰금을 받지 못할 불상사는 발생할 리 없었다.
"제가 실례를 했군요. 죄송합니다."
제이슨은 좀 전과는 달리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돈을 줄 의뢰인인데.
아니, 동료에게 결례를 보였으니 당연히 예의를 가지고 속죄하는 게 당연했다.
“이제 믿음이 가시죠?”
리브의 물음에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또 물어보실 게 있습니까?”
오우 그런 게 있을 리가.
리브의 물음에 제이슨은 급히 고개를 좌우로 휘저었다.
“그럼··· 이번엔 제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무렴.
이미 눈앞에 리브를 동료로 인식한 제이슨으로써 거절할 권리를 자체적으로 박탈한 상태였다.
“물론이죠.”
대답을 들은 리브의 눈빛이 순간 가라앉았다.
“모험가님은 저를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
감당이 가능하냐고?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일까.
질문에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제이슨이 눈을 깜박이자 리브는 자리에 일어나 창가 쪽으로 향했다.
“폭주성마저항장애라고 아십니까?”
‘폭주성마저항장애?’
낯선 단어의 조화에 제이슨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리브는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으며 창가로 향했다.
“간단합니다.”
끼기기긱.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창문을 연 리브는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마저항장애.”
창밖으로 내민 리브의 손 주위로 새하얀 빛이 돋아났다.
빛은 점점 거세졌고.
하얀색은 점점 연한 하늘색이 띠기 시작했다.
마력을 뭉친 덩어리. 마력구라는 것을 제이슨은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거기에 폭주가 붙었으면 어떻게 될까요?”
리브의 말에 제이슨의 머릿속에 단어들이 빠르게 짜 맞혀져 갔다.
‘마저항이라면 마력 저항을 말하는 것일 텐데···.’
근데 거기에 장애가 따라붙고 폭주가 덧붙여진다고?
설마.
제이슨은 설마 하는 마음에 리브가 서 있는 창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하늘 위로 떠오른 태양빛 마저도 밀어내는 거센 빛줄기를 쏟아내는 마력구를.
방안을 한순간에 집어 삼키고도 남을 거대한 크기의 마력구를.
새하얀 빛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짙은 파란색의 마력구를.
그런 마력구에 태연하게 서 있는 리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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