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이자 마지막 하룻밤
조회 : 1,651 추천 : 0 글자수 : 5,212 자 2022-11-01
“원래 계약한 대로 이제 그만 이혼하지.”
서윤은 태진이 내민 합의이혼서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어차피 이런 결말일 줄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끝이 부디 비참하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나마 어쭙잖은 자존심을 내세워 눈앞의 그를 붙잡기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를 여태 속으로 좋아했노라고 그렇게 말하면 그의 마음이 달라질까.
그러나 서윤은 그가 그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는 모든 일에 있어서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서윤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이것밖에 없는 것이다.
서윤은 안타까운 마음을 애써 부여잡으며 힘겹게 서류에 서명했다.
그녀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명하는 것을 지켜보던 태진은 서명이 끝나자 곧바로 서류를 집어 들었다.
“이혼서류는 내가 제출하지. 위자료는 이혼처리 끝나는 대로 곧바로 입금될 거야.”
태진은 마치 사업 업무보고를 하듯 무감한 말투로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에게 등을 내보이는 태진을 보면서도 서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그와의 인연은 이제 끝이 나는 건가 싶었다.
어차피 이 모든 걸 다 감당하겠노라 생각하고 한 결혼이었다.
그러니 그의 결혼 전부터 지독히도 일관됐던 저 무감한 태도도 그녀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이제 더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차피 그는 적당히 정략결혼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서윤을 이용했을 뿐이다.
그러니 결혼 2년간 임신이 되지 않으면 이혼이라는 조건을 걸고, 단 한 번도 그녀와 동침하지 않은 것일 테지.
서윤은 어느새 붉어진 눈시울을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마지막 남은 그녀의 자존심을 바닥에 팽개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조용히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맞을 것이다.
서윤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 어지러운 마음을 달리기 위해 조용히 원두를 갈아 내렸다.
향긋한 원두향기가 그나마 괴로운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서윤은 헤이즐넛 커피가 든 머그컵을 들고 조용히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그런 서윤의 눈에 베란다에 서서 혼자 양주를 홀짝이는 태진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고개를 돌린 태진과 서윤의 시선이 한데 부딪혔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 서윤에게는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그 어색한 눈맞춤으로부터 서윤은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침실로 들어섰다.
“이제…여기도 안녕이구나.”
결혼 초부터 그녀 혼자서 잠이 들었던 공간이었다.
이젠 이 집에서 그 어느 곳보다 익숙해진 그녀의 침실이었다.
그러나 이곳도 내일이면 자리를 비워줘야 할 것이다.
그와 이혼하고 모든 게 다 정리되면, 그녀는 조용히 제주도로 내려가 카페를 차릴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으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못내 지금 이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녀가 조금만 더 벌어진 마음의 간극을 줄이려는 노력을 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그러나 이내 서윤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 바람에 그녀가 들고 있던 머그컵 속 커피가 찰랑이더니 이윽고 그녀의 손등에 일부 흘러넘쳐버렸다.
“앗, 뜨거워….”
결국 서윤은 머그컵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조용히 거실로 나왔다.
“구급키트를 어디다 뒀더라…?”
서윤이 한참 이곳저곳 찬장을 뒤지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등 뒤에서 묵직하고도 낮은 울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찾는 건가?”
서윤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태진이 키트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서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태진이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그녀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어쩌다가 손은 데인거야. 흐르는 물에 대고 열은 뺐어?”
“네. 키트 이리 주세요.”
“됐어. 오른손잡이 아니야? 오른손을 다쳐놓고는 혼자서 처치를 어떻게 하려고 그래.”
태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를 식탁 의자에 앉혔다.
결국 서윤은 그에 의해 손목을 붙잡혀 자리에 앉고 말았다.
태진은 익숙한 솜씨로 그녀의 데인 손을 치료했다.
소독을 마치고 약을 바른 뒤 붕대까지 꼼꼼하게 감싸주었다.
“당분간 손에 물 대지 마.”
태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자신이 붙잡고 있는 서윤의 손을 바라보았다.
서윤은 그런 그의 시선이 순간 낯설어서 얼른 붙잡혀있던 손을 확 빼버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태진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날 제대로 쳐다보는 법이 없군. 차라리 아까 베란다에 있던 날 보던 시선은 그나마 마음에 들었는데 말이야.”
태진의 그 말에 서윤의 몸이 흠칫 굳었다.
“치료해준 건 고마워요. 이제 들어가서 쉬어요.”
서윤은 굳이 그와 말을 더 섞고 싶지 않았기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윤이 자신의 침실로 향하려는데, 그런 그녀의 어깨를 태진이 붙잡았다.
“우리에게 오늘이 마지막 밤일 텐데…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이 자는 건 어때…?”
서윤은 그의 말도 안 되는 제안에 흠칫 몸이 굳어버렸다.
분명 그녀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같이 자자니.
순간 서윤의 머릿속에 그녀가 감당하기 힘든 낯부끄러운 장면이 설핏 떠올랐다.
도무지 그와 단 한 번도 같이 자본 적이 없던 서윤으로서는 그와 그런 짓을 한다는 게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서윤이 답변을 하지 못하고 침묵하자, 태진은 이내 냉정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난 또…날 그렇게 유혹하듯 쳐다보기에 혹시 하고 싶은 건가 했지. 그럼 쉬어.”
태진은 말을 마치고는 그대로 뒤돌아섰다.
그가 신은 슬리퍼가 바닥에 이끌리며 소리가 나는 걸 듣고 있던 서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해요.”
그녀가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슬리퍼 소리가 뚝 멈췄다.
어느새 태진은 그녀의 앞에 와 서 있었다.
“뭘 하자는 거지?”
“당신이 먼저 말 꺼냈을 테니, 알거 아닌가요?”
서윤의 대답에 태진이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끝까지 본인 입으로는 죽어도 말 안할 모양이네. 뭐 아무래도 좋아. 그럼 이제부턴 입이 아니라 몸으로 대화를 나눠볼까.”
말을 마친 태진이 그대로 서윤을 번쩍 안아들었다.
그 바람에 서윤은 저도 모르게 그의 목덜미를 꽉 끌어안았다.
어느새 그의 가슴팍에 상체가 밀착되자,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지금 이 박동은 그녀의 것일까, 아니면 태진의 것일까.
그걸 더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태진은 그녀의 침실로 들어가더니 그대로 그녀를 침대 위에 눕혔다.
그리고는 곧바로 조명을 꺼버렸다.
순간 갑작스런 어둠에 놀란 서윤의 동공이 정처 없이 여기저기를 헤맸다.
그러나 곧 창을 통해 비쳐드는 어슴푸레한 달빛으로 주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어디선가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서윤은 태진이 바로 코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저기…이렇게 갑작스럽게 하면….”
“충분히 예고는 된 것 아닌가. 아까 내가 말을 꺼냈고, 당신이 동의했지.”
“그렇긴 하지만…,”
서윤은 도저히 그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태진이 부드럽게 손으로 감싸더니 다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어쩐 일인지 지금 그녀를 어루만지는 태진의 손길은 그의 평소 냉랭한 태도와는 달리 무척 정중하고 부드러웠다.
마치 그가 그녀에게 마음이 있다는 착각이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서윤은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들면서 입 안쪽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그가 그녀를 좋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좋아했다면 지난 2년간, 그녀를 이렇게 방치하듯 가만 놔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매사 그녀가 움츠러들게 사무적이고 딱딱한 태도로 일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지금 어쩌다보니, 마지막 밤이라는 그 분위기에 휩쓸려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리라.
“한서윤, 날 보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의 물음에 서윤은 그제야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그의 뜨거운 눈빛은 그대로 그녀를 태워 버리기라도 할 것 같았다.
마치 그녀의 내면을 다 꿰뚫어볼 것만 같은 그 눈빛에 서윤은 압도당해버렸다.
“아뇨, 아무런 생각도….”
서윤은 말을 더 이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그가 그녀의 입술을 점령해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서윤은 저도 모르게 그를 밀쳤지만, 탄탄한 가슴근육이 자리 잡은 그의 상체는 딱 버틴 채 견고한 성벽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태진은 바르작대는 그녀의 몸을 지그시 누른 채 한 손으로 그녀의 뒷머리를 받쳤다.
그리고 슬며시 그녀의 고개를 들어 더욱 깊숙이 제 얼굴에 가져다댔다.
그 바람에 서윤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느새 그에게서 늘 풍겨오던 짙은 머스크향이 그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분명 서윤이 이 행위에 동의하긴 했지만, 그의 행위가 격렬해질수록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로선 이렇게 남자와 같은 침대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차마 그렇다고 그에게 처음이니 살살 해달라는 그런 말을 꺼내기도 낯부끄러웠다.
해서 그녀는 두 주먹을 꼭 말아 쥐었다.
어느새 입술을 뗀 태진이 손끝으로 그녀의 붉은 아랫입술을 슬며시 쓸어내렸다.
“한서윤…넌 그동안 내가 얼마나 널 원해왔는지…아마 모를 거야, 그렇지?”
“그게 대체 무슨…소리예요.”
서윤은 도무지 그가 내뱉는 말을 알 길이 없어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고개를 더욱 아래로 내렸다.
계속되는 그의 격렬한 몸짓에 서윤은 어느새 주체할 길 없는 뜨거운 감각에 온 몸이 확 달궈지는 기분이었다.
“제발…태진씨….”
어느새 서윤은 그를 끌어안은 채 제멋대로 울부짖고 있었다.
*
그렇게 이혼 전, 처음으로 그와 함께 밤을 지새운 서윤은 새벽에 일어나 곁에 잠들어있는 태진을 잠시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태진의 얼굴은 평소와 다르게 편안하고 부드러워보였다.
서윤은 잠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이윽고 작게 말을 내뱉었다.
어쩌면 지금이 아니라면 더는 영영 보지 못할 그에게 제 진심을 조금은 털어놔도 괜찮지 않을까.
“사실 나…당신 많이 좋아했어요. 이젠 다 소용없겠지만…. 그럼 태진씨…잘 지내요.”
말을 마친 서윤은 조용히 침실에서 나갔다.
어느새 흘러내린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툭 떨어져 오른손 붕대를 적셨다.
서윤은 잠시 고개를 내려 손을 바라보았다.
그가 꼼꼼하게 싸주었던 붕대자국을 보자, 서윤의 마음이 더 시려왔다.
그러나 어제 이혼서류에 서명해버렸으니 더는 구질구질하게 여기 머물 수 없었다.
서윤은 왼손으로 힘겹게 붕대를 풀어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린 뒤, 챙겨둔 캐리어를 끌었다.
이젠 약속대로 그 앞에서 영영 사라져야 할 시간이었다.
서윤은 태진이 내민 합의이혼서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어차피 이런 결말일 줄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끝이 부디 비참하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나마 어쭙잖은 자존심을 내세워 눈앞의 그를 붙잡기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를 여태 속으로 좋아했노라고 그렇게 말하면 그의 마음이 달라질까.
그러나 서윤은 그가 그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는 모든 일에 있어서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서윤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이것밖에 없는 것이다.
서윤은 안타까운 마음을 애써 부여잡으며 힘겹게 서류에 서명했다.
그녀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명하는 것을 지켜보던 태진은 서명이 끝나자 곧바로 서류를 집어 들었다.
“이혼서류는 내가 제출하지. 위자료는 이혼처리 끝나는 대로 곧바로 입금될 거야.”
태진은 마치 사업 업무보고를 하듯 무감한 말투로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에게 등을 내보이는 태진을 보면서도 서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그와의 인연은 이제 끝이 나는 건가 싶었다.
어차피 이 모든 걸 다 감당하겠노라 생각하고 한 결혼이었다.
그러니 그의 결혼 전부터 지독히도 일관됐던 저 무감한 태도도 그녀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이제 더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차피 그는 적당히 정략결혼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서윤을 이용했을 뿐이다.
그러니 결혼 2년간 임신이 되지 않으면 이혼이라는 조건을 걸고, 단 한 번도 그녀와 동침하지 않은 것일 테지.
서윤은 어느새 붉어진 눈시울을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마지막 남은 그녀의 자존심을 바닥에 팽개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조용히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맞을 것이다.
서윤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 어지러운 마음을 달리기 위해 조용히 원두를 갈아 내렸다.
향긋한 원두향기가 그나마 괴로운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서윤은 헤이즐넛 커피가 든 머그컵을 들고 조용히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그런 서윤의 눈에 베란다에 서서 혼자 양주를 홀짝이는 태진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고개를 돌린 태진과 서윤의 시선이 한데 부딪혔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 서윤에게는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그 어색한 눈맞춤으로부터 서윤은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침실로 들어섰다.
“이제…여기도 안녕이구나.”
결혼 초부터 그녀 혼자서 잠이 들었던 공간이었다.
이젠 이 집에서 그 어느 곳보다 익숙해진 그녀의 침실이었다.
그러나 이곳도 내일이면 자리를 비워줘야 할 것이다.
그와 이혼하고 모든 게 다 정리되면, 그녀는 조용히 제주도로 내려가 카페를 차릴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으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못내 지금 이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녀가 조금만 더 벌어진 마음의 간극을 줄이려는 노력을 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그러나 이내 서윤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 바람에 그녀가 들고 있던 머그컵 속 커피가 찰랑이더니 이윽고 그녀의 손등에 일부 흘러넘쳐버렸다.
“앗, 뜨거워….”
결국 서윤은 머그컵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조용히 거실로 나왔다.
“구급키트를 어디다 뒀더라…?”
서윤이 한참 이곳저곳 찬장을 뒤지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등 뒤에서 묵직하고도 낮은 울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찾는 건가?”
서윤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태진이 키트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서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태진이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그녀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어쩌다가 손은 데인거야. 흐르는 물에 대고 열은 뺐어?”
“네. 키트 이리 주세요.”
“됐어. 오른손잡이 아니야? 오른손을 다쳐놓고는 혼자서 처치를 어떻게 하려고 그래.”
태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를 식탁 의자에 앉혔다.
결국 서윤은 그에 의해 손목을 붙잡혀 자리에 앉고 말았다.
태진은 익숙한 솜씨로 그녀의 데인 손을 치료했다.
소독을 마치고 약을 바른 뒤 붕대까지 꼼꼼하게 감싸주었다.
“당분간 손에 물 대지 마.”
태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자신이 붙잡고 있는 서윤의 손을 바라보았다.
서윤은 그런 그의 시선이 순간 낯설어서 얼른 붙잡혀있던 손을 확 빼버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태진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날 제대로 쳐다보는 법이 없군. 차라리 아까 베란다에 있던 날 보던 시선은 그나마 마음에 들었는데 말이야.”
태진의 그 말에 서윤의 몸이 흠칫 굳었다.
“치료해준 건 고마워요. 이제 들어가서 쉬어요.”
서윤은 굳이 그와 말을 더 섞고 싶지 않았기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윤이 자신의 침실로 향하려는데, 그런 그녀의 어깨를 태진이 붙잡았다.
“우리에게 오늘이 마지막 밤일 텐데…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이 자는 건 어때…?”
서윤은 그의 말도 안 되는 제안에 흠칫 몸이 굳어버렸다.
분명 그녀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같이 자자니.
순간 서윤의 머릿속에 그녀가 감당하기 힘든 낯부끄러운 장면이 설핏 떠올랐다.
도무지 그와 단 한 번도 같이 자본 적이 없던 서윤으로서는 그와 그런 짓을 한다는 게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서윤이 답변을 하지 못하고 침묵하자, 태진은 이내 냉정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난 또…날 그렇게 유혹하듯 쳐다보기에 혹시 하고 싶은 건가 했지. 그럼 쉬어.”
태진은 말을 마치고는 그대로 뒤돌아섰다.
그가 신은 슬리퍼가 바닥에 이끌리며 소리가 나는 걸 듣고 있던 서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해요.”
그녀가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슬리퍼 소리가 뚝 멈췄다.
어느새 태진은 그녀의 앞에 와 서 있었다.
“뭘 하자는 거지?”
“당신이 먼저 말 꺼냈을 테니, 알거 아닌가요?”
서윤의 대답에 태진이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끝까지 본인 입으로는 죽어도 말 안할 모양이네. 뭐 아무래도 좋아. 그럼 이제부턴 입이 아니라 몸으로 대화를 나눠볼까.”
말을 마친 태진이 그대로 서윤을 번쩍 안아들었다.
그 바람에 서윤은 저도 모르게 그의 목덜미를 꽉 끌어안았다.
어느새 그의 가슴팍에 상체가 밀착되자,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지금 이 박동은 그녀의 것일까, 아니면 태진의 것일까.
그걸 더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태진은 그녀의 침실로 들어가더니 그대로 그녀를 침대 위에 눕혔다.
그리고는 곧바로 조명을 꺼버렸다.
순간 갑작스런 어둠에 놀란 서윤의 동공이 정처 없이 여기저기를 헤맸다.
그러나 곧 창을 통해 비쳐드는 어슴푸레한 달빛으로 주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어디선가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서윤은 태진이 바로 코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저기…이렇게 갑작스럽게 하면….”
“충분히 예고는 된 것 아닌가. 아까 내가 말을 꺼냈고, 당신이 동의했지.”
“그렇긴 하지만…,”
서윤은 도저히 그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태진이 부드럽게 손으로 감싸더니 다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어쩐 일인지 지금 그녀를 어루만지는 태진의 손길은 그의 평소 냉랭한 태도와는 달리 무척 정중하고 부드러웠다.
마치 그가 그녀에게 마음이 있다는 착각이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서윤은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들면서 입 안쪽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그가 그녀를 좋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좋아했다면 지난 2년간, 그녀를 이렇게 방치하듯 가만 놔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매사 그녀가 움츠러들게 사무적이고 딱딱한 태도로 일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지금 어쩌다보니, 마지막 밤이라는 그 분위기에 휩쓸려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리라.
“한서윤, 날 보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의 물음에 서윤은 그제야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그의 뜨거운 눈빛은 그대로 그녀를 태워 버리기라도 할 것 같았다.
마치 그녀의 내면을 다 꿰뚫어볼 것만 같은 그 눈빛에 서윤은 압도당해버렸다.
“아뇨, 아무런 생각도….”
서윤은 말을 더 이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그가 그녀의 입술을 점령해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서윤은 저도 모르게 그를 밀쳤지만, 탄탄한 가슴근육이 자리 잡은 그의 상체는 딱 버틴 채 견고한 성벽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태진은 바르작대는 그녀의 몸을 지그시 누른 채 한 손으로 그녀의 뒷머리를 받쳤다.
그리고 슬며시 그녀의 고개를 들어 더욱 깊숙이 제 얼굴에 가져다댔다.
그 바람에 서윤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느새 그에게서 늘 풍겨오던 짙은 머스크향이 그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분명 서윤이 이 행위에 동의하긴 했지만, 그의 행위가 격렬해질수록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로선 이렇게 남자와 같은 침대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차마 그렇다고 그에게 처음이니 살살 해달라는 그런 말을 꺼내기도 낯부끄러웠다.
해서 그녀는 두 주먹을 꼭 말아 쥐었다.
어느새 입술을 뗀 태진이 손끝으로 그녀의 붉은 아랫입술을 슬며시 쓸어내렸다.
“한서윤…넌 그동안 내가 얼마나 널 원해왔는지…아마 모를 거야, 그렇지?”
“그게 대체 무슨…소리예요.”
서윤은 도무지 그가 내뱉는 말을 알 길이 없어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고개를 더욱 아래로 내렸다.
계속되는 그의 격렬한 몸짓에 서윤은 어느새 주체할 길 없는 뜨거운 감각에 온 몸이 확 달궈지는 기분이었다.
“제발…태진씨….”
어느새 서윤은 그를 끌어안은 채 제멋대로 울부짖고 있었다.
*
그렇게 이혼 전, 처음으로 그와 함께 밤을 지새운 서윤은 새벽에 일어나 곁에 잠들어있는 태진을 잠시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태진의 얼굴은 평소와 다르게 편안하고 부드러워보였다.
서윤은 잠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이윽고 작게 말을 내뱉었다.
어쩌면 지금이 아니라면 더는 영영 보지 못할 그에게 제 진심을 조금은 털어놔도 괜찮지 않을까.
“사실 나…당신 많이 좋아했어요. 이젠 다 소용없겠지만…. 그럼 태진씨…잘 지내요.”
말을 마친 서윤은 조용히 침실에서 나갔다.
어느새 흘러내린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툭 떨어져 오른손 붕대를 적셨다.
서윤은 잠시 고개를 내려 손을 바라보았다.
그가 꼼꼼하게 싸주었던 붕대자국을 보자, 서윤의 마음이 더 시려왔다.
그러나 어제 이혼서류에 서명해버렸으니 더는 구질구질하게 여기 머물 수 없었다.
서윤은 왼손으로 힘겹게 붕대를 풀어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린 뒤, 챙겨둔 캐리어를 끌었다.
이젠 약속대로 그 앞에서 영영 사라져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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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7. 왜 널 지켜보는 내 가슴은 이렇게 쓰라리고 아픈 걸까.조회 : 98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99 56.#56. 언제부터 이랬던 거예요?조회 : 1,23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75 55.#55. 태진씨, 나 기억 안 나요?조회 : 1,03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69 54.#54. 이건 말도 안 돼….조회 : 1,09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96 53.#53. 대체 이 남자의 정체는 뭘까.조회 : 97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75 52.#52. 네 곁으로 갈 거야.조회 : 1,00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84 51.#51. 기대 이상이로군요.조회 : 1,07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07 50.#50. 우연한 만남조회 : 1,13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33 49.#49. 꿈이었을까.조회 : 17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06 48.#48.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순간조회 : 14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90 47.#47. 정말 다행이야.조회 : 13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07 46.#46. 당신 미쳤어?조회 : 13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06 45.#45. 위급한 순간!조회 : 28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77 44.#44. 갑작스레 닥친 일조회 : 13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03 43.#43. 홀로 서기조회 : 2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21 42.#42. 자업자득조회 : 11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62 41.#41. 정말 사람 미치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여자네.조회 : 10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60 40.#40. 우리, 한 번 더 해.조회 : 12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71 39.#39. 우리 사이에…할 말이 남아있던가요?조회 : 15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18 38.#38. 백이면 백, 넘어갈 겁니다.조회 : 34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65 37.#37. 사과하는 법을 몰라서조회 : 15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77 36.#36. 네 옆에 있는 남자를 보니까, 덜컥 겁이 났어.조회 : 26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73 35.#35. 이 자식이랑 잤어?조회 : 16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77 34.#34. 이 아이를...오빠 아이라고 하자고요?조회 : 12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56 33.#33. 서윤에게 접근하는 현재조회 : 20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81 32.#32. 피하고 싶었다.조회 : 13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24 31.#31. 나 몰래 어딘가로 내빼려는 모양이네.조회 : 16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57 30.#30. 갑작스럽게 한서윤씨에게 통보를 받았습니다조회 : 12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06 29.#29. 한서윤에게 다른 남자가 있었을 리가 없어.조회 : 10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31 28.#28. 서윤아…. 난 어떻게든 널 돕고 싶어.조회 : 8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89 27.#27. 감당할 수 있겠어?조회 : 17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83 26.#26. 언제까지 나한테 임신 사실을 숨길 생각이었어?조회 : 17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18 25.#25. 그럼 지금 이 자리에서 밝혀도 상관없어?조회 : 14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94 24.#24. 지켜주고 싶은 사람조회 : 24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27 23.#23. 숨겨진 계략조회 : 20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44 22.#22.고마우시면 언제 밥 한 끼 정돈 얻어먹어도 되겠죠?조회 : 20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17 21.#21. 제게 왜 이런 제안을 하시는거죠?조회 : 11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16 20.#20. 아무래도 사모님께서 임신을 하신 것으로 의심이 됩니다.조회 : 16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61 19.#19. 내가 잘 키울게.조회 : 16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24 18.#18. 임신한 거야?조회 : 97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02 17.#17. 옛 인연과의 우연한 만남조회 : 15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188 16.#16. 사모님께 건물 증여요..?조회 : 16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75 15.#15. 소개팅남과의 만남조회 : 12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82 14.#14. 급작스런 소개팅조회 : 17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07 13.#13. 급작스런 소개팅 제안조회 : 18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61 12.#12. 그의 제안조회 : 5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47 11.#11. 이혼 후, 재회조회 : 1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29 10.#10. 자꾸만 신경이 쓰여조회 : 2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67 9.#9. 서윤의 다짐조회 : 6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84 8.#8. 태진이 꾼 태몽조회 : 4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31 7.#7. 태진의 아이조회 : 3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41 6.#6. 임신입니다.조회 : 2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35 5.#5. 이제 완벽히 남남이야조회 : 4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29 4.#4. 어째서..태진씨가?조회 : 5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53 3.#3. 익숙한 그녀를 향한 그리움조회 : 9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73 2.#2. 그래,이혼이야.조회 : 15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052 1.#1. 처음이자 마지막 하룻밤조회 : 1,65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