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조회 : 794 추천 : 0 글자수 : 4,529 자 2022-07-22
“어처구니가 없군.”
“김반장, 이걸 지금 보고서라고 들고 온 겐가? 말이 될 법한 소리를 가지고 와야지!! 어?!”
“다른 세상에서 지구를 침공할 거라니, 심지어 근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바쁜 사람들 불러놓고 이게 참...허허허”
헌터 협회 회의장은 생각보다 협소했다. 대한민국 헌터 전체들을 아우르는 협회의 회의장치고는 정말 작았다. 오로지 다섯 자리, 그리고 위에서 모두를 내려다보는 단 한 자리. 협회가 발족한 이후로 절대 저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는, 권력에 찌들대로 찌들은 협잡꾼들. 김남인은 내심 조용히 이를 갈았다. 권력에 안주하는 이들이 대체로 그렇듯 그들은 변화를 매우 싫어했다.
“아니, 일단 다들 진정하고 말을 들어봅시다. 직접 대면해본 사람의 말을 들어봐야지. 안 그런가? 자자.”
김남인은 안다. 자애로운 척하는 저 목소리의 주인공이야말로 제일 저열하고 무서운 인물이라는 걸. 그렇기에 그는 고개 숙였다.
“감사합니다. 협회장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구를 침공한다는 말 자체는 차치하더라도, 이 여우영이라는 사람이 의심되는 바가 여럿 있다는 점입니다.”
“흐음, 계속 이야기해보세요.”
협회장은 흥미로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여우영이 발견된 상황부터 간략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첨부해드린 파일을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동두천 소요산의 오크 군락지 인근에서 탐사를 나섰던 박철호 헌터팀이 그를 구조하였습니다. 다만 박철호 팀이 나서기 전에 여우영 혼자 오크 순찰대와 전투를 벌인 듯한 정황을 포착하였습니다. 조사가 맞다면 그 혼자 오크 둘을 처치한 셈입니다. 실종 전 불과 E급에 불과한 헌터가 말입니다.”
김남인의 말에 협회의 다섯 이사 중, 성격이 제일 급하기로 유명한 이정선이 말했다.
“16년간 실종되었다면서? 그동안 레벨업 좀 하고 그랬나 보지.”
김남인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역시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다.
“제가 아까 나눠드린 파일을 보시면 여우영 그는 실종되기 전 20대 초반 그대로의 신체입니다. 혈액, 조직 검사까지 다 마쳤지만 아무런 노화도 진행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16년간 시계가 멈춰있었던 셈입니다. 이는 당연히 더 강해질 수도 없다는 말일 것입니다.”
“크흠...흠..”
이정선은 멋쩍은 듯 헛기침을 했고, 김남인은 덤덤하게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E급에 불과한 신체로 개별로는 D급, 무리 지으면 C급으로 판정되는 오크들과 전투를 벌여 살아남았을뿐더러 둘을 처치하기까지 했습니다. 의심을 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의 말투와 행동, 모든 것이 갓 스무 살 청년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와 얘기하고 함께 움직이면서 받은 느낌은 저와 비슷한 연배...같다고 할까요? 연륜이 느껴졌습니다.”
“재밌는 이야기네요. 그런데...사실 이것만으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기에는 쉽지는 않겠는데 말입니다...아시다시피 지금 협회가 여유가 없지 않습니까. 유명무실한 실종자 수색반도 없애니 마니 하는 판인데 말이죠. 김남인 반장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협회장이 싱긋 웃으며 김남인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뱀 같은 늙은이. 김남인은 망설였다. 머릿속에 맴도는 말을 꺼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때 기둥에서 보였던 여우영의 모습은 단순한 시스템 창의 모습을 보는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약간 망설이는 듯한...뭔가를 선택한다는 느낌이 들었지. 다만 이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그저 내 육감일 뿐..’
때문에 김남인은 선뜻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심증만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에는 물어뜯기기 딱 좋았다. 눈앞에 있는 다섯 마리 늑대와 한 마리의 호랑이에게. 계속 망설이는 김남인, 그때 그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수신되었다. 슬며시 떠오른 미리보기 알림 메시지에 김남인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오른다.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여우영, 제게 맡겨주십시오. 낱낱이 파헤쳐보겠습니다!”
사라져가는 알림 위로 새로운 메시지가 또 덧씌워진다.
-반장님! 여우영 S급 판정 떴습니다!! 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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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인이 한참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무렵, 우영의 집에도 한바탕 폭풍이몰아치고 있었다. 자신을 헌터 협회의 이은선 팀장이라 소개한 그녀는 아니나다를까 영입의사를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아버님, 어머님. 저를 믿고 우영씨..아니 우영님을 제게 맡겨주세요! 저희 헌터 협회에서 최고의 인재로 육성해드리겠습니다!!”
“아...아니 저..그..그게 말입니다.”
칼같이 매서운 이은선의 기세에 부모님은 쩔쩔매며 맥을 못 추고 있었다. 굶주린 늑대 앞에서 벌벌 떠는 토끼마냥, 생각하지도 못 했던 상황에 쉴 새 없이 동공만 이리저리 흔들렸다. 결국 한숨만 내쉬던 우영이 대답했다.
“죄송합니다만...제가 어디 소속되거나 그러고 싶은 마음이 아직 없습니다.”
부드러운 거절. 그러나 이은선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하이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그러실 수 있어요! 실례지만 개인정보를 조금 알아보았는데 대실종 때 사라지셨다 최근에 다시 돌아오셨더군요.. 얼마나 놀라셨고 당황스러운 상황인지 저도 짐작한답니다! 그러니 세상 모든 것이 어색하고 경계가 되실 거예요! 하지만 저희는 대한민국의 기둥! 모든 길드들을 아우르고 가운데 우뚝 선 헌터 협회랍니다!! 오로지 국민의 안전과 권익만을 생각하는 기관이지요. 부디 저희를 믿고 힘을 빌려주실 순 없으실까요?!”
“아..저...그..그게...”
망했다. 우영의 동공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냥 늑대 정도인 줄 알았는데 이건 이건 숫제 사자가 아닌가. 우영은 침을 꿀꺽 삼키고 소심한 반항을 시작했다.
“그...말씀하신 대로 제가 아직 돌아온지 얼마 안 되어서 지금 현재 상황도 잘 모르고 적응이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천천히 생각해 볼 시간을...”
“바로 그거예요!”
아, 잽을 좀 날려보려 했는데 카운터가 들어왔다.
“저희 헌터 협회에서 자체적으로 주관하는 한달짜리 속성 아카데미가 있답니다. 그곳에서 헌터에 대한 소양과, 몬스터의 정보, 던전에 관련한 사항들까지 교육받을 수 있지요! 그리고 고위 헌터들과의 친분, 인맥까지도 쌓을 수 있습니다. 음..물론 우영님 경우엔 그들이 더 친해지고 싶어하겠지만요. 호호호.”
우영은 약간 솔깃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정보를 어디서 구하나 생각 중이었는데 의외로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구미가 당기는 듯한 우영의 표정을 본 이은선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결정타를 꽂았다.
“그리고...협회에 들어오신다면 우영님의 군 병역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해드릴 수 있어요.”
“네?? 군대요? 아니 제 나이가 37살인데 무슨 군대를...”
갑작스런 이은선의 말에 우영의 눈이 동그래졌고, 그녀는 놀란 척 연기하며 말을 이었다.
“아 모르셨군요. 아시다시피 요새 시국이 시국인지라 40살까지는 현역이랍니다..”
“.....헐..”
우영은 정신이 멍해졌다.
‘아니 그쪽에서도 16년을 군대에서 굴렀는데, 여기서도...그것도 심지어 신병으로 입대해야 한다고..?’
이은선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하지만 우영님이 협회에 들어오신다면 저희가 대체 복무로 처리해드릴 수 있습니다! 협회에서 우영님께 요구하는 것은 거의 없을 거예요. 그냥 소속만 저희 헌터 협회로 해주시면 됩니다!!”
우영은 이은선의 말을 곱씹어 생각해보았다. 자신에게 너무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었다. 요구하는 것도 없는데 이런 대우를 해준다는 것은..
“헌터 협회가 생각보다 입지가 약한가 보군요.”
우영의 말에 이은선의 눈가에 잔떨림이 스쳐 지나갔다. 의외로 이은선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리하시네요. 맞아요. 우리나라의 S급 헌터 셋이 각기 길드를 세우면서 언제부터인가 헌터 협회의 이름 앞에 3대 길드의 이름이 놓이기 시작했어요. S급 헌터가 없는 협회로서는 마땅히 손을 쓸 방도가 없었죠. 그만큼 S급의 힘은 강대하고, 때문에 저희는 이번에 꼭 그 타이틀을 보유하고 싶은 겁니다.”
“솔직하시군요.”
우영은 꽤 놀랐다.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이렇게 솔직하게 터놓고 상대에게 말하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어차피 나중에 다 알게 될 일들이니까요.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미움은 사지 말아야지 생각했어요. 혹시 동정심으로 도와줄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이은선이 살짝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어쩐지 그녀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다. 잠깐 말없이 고민하던 우영이 피식 웃었다.
“좋습니다. 하지요. 계약! 다만 조건이 몇 가지 있습니다.”
“뭐든 말씀만 하세요. 저희가 수용할 수 있는 건 모두 들어드릴게요!”
우영의 말에 이은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네, 그럼 첫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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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네.”
우영의 집을 나온 이은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영이 말한 조건이 예상 외로 까다로웠다. 겉보기와는 확실히 달랐다. 처음에 자신한테 휘둘릴 때는 그저 스무 살 언저리의 어수룩한 청년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예리한 점 하며 제시한 조건을 보면 닳고 닳은 능구렁이의 느낌이 있다.
“하아..영감챙이들한테 어떻게 말해야 욕을 덜 들어 먹으려나~.”
사실 우영이 어떤 조건을 제시하든 협회로서는 최대한 수용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3대 길드에게 머지 않아 먹힐 것이 뻔했다. 다만 협회장을 위시한 이사들이 자존심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고 있을 뿐. 차에 시동을 걸고 생각에 빠져 있던 이은선의 휴대폰이 갑자기 요란스레 울린다. 이은선의 휴대폰에 김남인의 이름이 찍혀있다. 그녀는 살짝 고민하는 듯하다 이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네, 전화 받았습니다. 남인씨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전화를 했을까~. 역시 우영씨 건 때문이려나~?”
“훗..역시 이 팀장님하고는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요. 우영씨.. 어떻게 됐습니까.”
“내가 누구야? 바로 헌터 잡는 헌터. 이은선이 아니겠어? 오호호홋~.”
이은선의 경쾌한 웃음에 김남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상대가 보이진 않지만 김남인이 미간을 찌푸리는 표정이 그려졌다.
“농담이야 농담. 어휴, 진짜 사람이 그렇게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야..!”
“이 팀장님 텐션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후...아무튼 우영씨와 계약을 하셨단 말씀이지요?”
“네에~. 마침 계약 딱 마치고 나오는 길이지. 그런데 우영씨 생각보다 만만치 않더라구? 처음엔 세상물정 모르는 호구인 줄 알았는데, 계약 조건을 얘기하다 보니 하마터면 나도 말려들 뻔한 거 있지? 사실 반은 털리긴 했지만..호호호...”
이은선의 말에 김남인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이 팀장님 역시 우영씨가 그 나이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거군요.”
“응? 당연한 거 아니야? 우영씨 겉보기는 그래도 37살이잖아.”
조사 결과를 미처 몰랐던 이은선은 김남인의 말에 새삼스럽다는 듯 말했다.
“우선 협회로 돌아오시죠. 만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뚝-.
“어? 남인씨? 야?! 이씨...”
이은선은 갑자기 먼저 끊어버린 김남인을 괜히 욕해본다. 영감들한테 보고해야한다는 생각은 어느 새 뒤로 던져버렸다. 일단 가보자. 그녀는 궁금증은 못 참는 편이었기에 악셀을 꾸욱 즈려밟았다. 배기음이 아주 요란하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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