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조회 : 724 추천 : 1 글자수 : 4,424 자 2022-07-18
'또다. 차원을 이동할 때마다 서버니 접속이니 하는 말들이 나왔어. 그때마다 정신을 잃어서 그래서 제대로 생각 못 했었는데...'
눈앞에 메세지창들이 주르륵 나타났다. 우영은 메세지를 유심히 읽어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동화' 스킬의 쓰임새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차원을 넘을 때 그 차원에 육체를 맞춰주는 스킬인건가?'
접속이 거부됐다는 말 뒤에 '동화' 스킬이 발동했고 이후엔 접속을 성공했다는 말이 보이는 걸 보니 대충 맞는 듯했다. 처음 스킬을 얻었을 때만 해도 이걸 어디다 쓰나 했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정체를 알았다. 그것도 모르고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이라도 띄는 스킬인 줄 알고 연습하다 망신을 당한 기억도 떠올랐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동기화라.. 이건 또 뭘까.'
- Y / N
'에라 모르겠다. 한번 눌러보자. 까짓것 다시 저쪽으로 돌아가기 밖에 더 하겠어?'
우영은 Y를 꾹 눌렀다. 그러자 또 다른 메세지창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 메인서버 '지구'와 '아판타시아' 단말 간 연결을 시도합니다.
- 사용자 '여우영'님을 확인하였습니다.
- 연결을 성공하였습니다.
-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 동기화를 완료하였습니다.
메세지를 제대로 읽기도 전에 무언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아니 뭐가 이리 빨라? 요란하기만 했지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은...어?'
우영은 갑자기 몸에 활력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마력이 끓어오르는 것 같다. 상태창을 외치려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김남인이 눈을 부릅뜨고 뚫어져라 우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영은 괜히 멋쩍게 웃어주고는 열심히 단서를 찾는 척 하며 작은 목소리로 상태창을 불렀다.
- 성명 : 여우영, 테일 드 실버폭스
- 서버 : 지구, 아판타시아
- 칭호 : E급 헌터, 아카이 대공의 그림자 기사
- 레벨 : 1(86)
- 근력 : 20(163)
- 체력 : 20(132)
- 순발력 : 20(149)
- 정신력 : 20(131)
- 마력 : 20(127)
- 고유 스킬 : 동화
"와!.....아...음..."
우영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지를 뻔 했다. 뒤통수가 따갑도록 느껴지는 김남인의 시선에 애써 하품인 척 무마했지만. 동기화가 무엇인가 싶었는데 지구의 육체와 아판타시아에서의 능력을 연동 시켜주는 것이었던 듯하다. 다만 능력치만 상승했을 뿐 외관은 그대로였다.
'으음..내 남자로서의 훈장들이..'
아쉬웠지만 우영은 한번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내고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해보았다. 힘을 되찾았으니 소극적으로 정보만 수집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대담하게 아예 협회와 협상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물론 정보를 다 주어선 안 될 것이다. 지구와 아판타시아, 이 두 세계 사이에서 우영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기에.
'일단은 맛보기용 정보만 주는 것이 좋겠어. 경각심 정도는 가질 수 있도록 말이지...'
당장 모든 걸 털어놓는다고 해서 '아 알겠습니다. 즉시 지구의 힘을 하나로!' 할 리도 없고, 되려 차원 이동자란 명목으로 억류하려 하거나 귀찮은 감시만 잔뜩 붙을 게 뻔했다. 어쩌면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무리 우영이 강하다 해도 가족을 지키면서 다수를 상대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아, 망할 대공 전하 때문에 내가 진짜 이게 무슨 고생인지. 이랬는데 이번에 나 안 챙겨주면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속으로 계속 투덜대던 우영은 자신의 옷에 덮여 감춰져 있던 펜던트가 미약한 빛을 내는 것을 미처 알지 못 했다. 우영이 잠시간의 생각을 마치고 뒤돌아섰을 때 이미 그 빛은 사라진 뒤였다. 김남인은 우영이 돌아내려오는 것을 보고 다급한 듯 질문을 던졌다.
"어땠습니까? 뭔가 수확은 있었습니까? 계속 무언가를 보시는 것 같았는데 기둥의 문자들이 어떤 의미인지 아시는 건가요?"
속사포 같은 질문에 우영은 질린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보니 메세지창만 본다고 정작 기둥 글자를 제대로 안 봤네? 뭐...담에 또 와서 보면 되겠지.'
만사가 귀찮아진 우영은 일단 핑계를 대고 자리를 옮기면서 천천히 궁리를 해보기로 했다.
"잠깐 생각 정리할 시간을 좀 주실 수 있을까요? 뭔가 계속 떠오르는데 어지러워서.. 우선 협회로 가서 쉬면서 얘기해드리겠습니다."
우영의 말에 안색이 일변한 김남인은 조수석에 우영을 구겨 넣더니 바로 시동을 걸었다. 눈 깜빡 할 사이 어느 새 기둥을 저만치 뒤로 하고 차는 맹렬하게 질주하고 있었다. 우영은 다급하게 벨트를 찾으며 연신 '잠깐만요'를 외쳤고 말이다.
같은 시각.
대공관저 집무실로 향하는 바쁜 발걸음이 있었다. 한참을 달린 발걸음은 집무실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곤 힘차게 문을 두드렸다.
똑-또독똑똑-. 똑-또독똑똑-.
잠시 후 안에서 나지막한 신음과 함께 목소리가 울린다.
"끙...그렇게 말을 해도.. 샤를로트 공. 일단 들어오게나."
"헤헤헷. 아니 저인 줄 어떻게 아셨어요. 대공 전하?"
살며시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금발 머리의 곱상한 아가씨가 종종걸음으로 들어왔다. 펑퍼짐한 로브와 묘한 빛을 발하는 보석이 박힌 스태프를 지닌 것으로 보아 그녀는 마법사인 듯했다. 헤실헤실 웃는 모습이 퍽 귀여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웃음 짓게 했지만, 대공에게만은 예외였다.
"제발 노크는 똑똑똑, 정도로 해주면 안 되겠나. 집중이 흐트러진단 말이야..그 노크소리. 아무튼 무슨 일로 아니, 무슨 사고를 쳐서 이리 오셨는가?"
자주 골머리를 썩혔는지 대공은 벌써부터 지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공의 얼굴을 본 샤를로트는 삐친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 이번엔 아니거든요?! 실버 경의 연락이 들어와서 열심히 뛰어 왔더니... 저 그냥 갈게요! 안녕히 계세...꺅!"
"드디어! 테일...아니 실버 경이 연락을 보냈는가?! 어서 말해보게!"
순식간에 달려들어 샤를로트의 어깨를 붙잡고 대답을 재촉하는 대공. 샤를로트는 반짝이는 대공의 눈을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엣헴..제가 제일 먼저 대공 전하께 말씀드리러 왔답니다. 대신 제 연구 예산 조금만 더 부탁드려도..?"
그저 계속 고개만 끄덕이는 대공을 보며 샤를로트는 찡긋 윙크했다.
"실버경 연락이 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달려온 거예요~. 아참 그리고 단말기를 통해 전달된 상념이라 약간 끊길 수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려요~."
샤를로트는 수정구를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두고 짧은 주문을 외웠다. 이윽고 스태프로 수정구를 가리키자 허공에 글자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샤를로트는 그 글자를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어디 보자~. 우리 실버 경이 뭐라고 했을까~. 음...어..망할 대공...내가 진짜...이번에.. 가만 안 둘 거야..아..?"
"......"
잠깐 정적이 흐르고, 뒤로 슬그머니 빠져 나가려던 샤를로트.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뒷목을 붙잡아 꾸욱 눌러주는 대공.
"아야야야!! 전하! 잘못 했어요. 저 좀 놔주세요.."
아픔에 몸부림치는 샤를로트를 보며 대공은 싱긋 미소 지었다.
"샤를로트 경. 잠깐 나랑 대화 좀 나누지?"
"저..전 더이상 할 얘기 없는ㄷ....아야야야야!"
그렇게 한동안 대공 관저는 앓는 소리로 가득했다.
"정말입니까?!"
쾅-. 하고 요란한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놀란 나머지 손으로 책상을 내려친 것뿐인데 그 소리가 꽤나 매웠다. 철제 책상인데 아프진 않을까? 잠깐 쓸데없는 생각을 한 우영은 고막이 울리는 것을 느끼며 김남인의 질문에 대답했다.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기둥을 만졌을 때 흐릿한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화려한 갑옷을 입은 기사들과 온갖 마법을 쓰는 마법사들, 그들이 지구를 공격했습니다. 지구를 공격한 이유까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그들은 아주 강했고, 헌터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막연한 말이지만 분명 언젠가 일어날 일 일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우영은 최대한 진지하고 힘 있게 말했다. 당장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확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자신이 유일한 귀환자인만큼 조금은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있었다.
"하..정말 생각지도 못 한 말을 들었군요.. 알겠습니다. 구체 건도 그렇고..하아..우선 정리해서 보고해두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다른 실종자에 관련된 정보는 없으십니까?"
우영은 김남인의 눈빛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안타까웠지만 우영도 다른 실종자들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다.
"네.. 죄송합니다.. 현재로선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이게 다예요. 도움이 되지 못 해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습니까..."
김남인은 고개를 떨군다. 이럴 땐 침묵이 더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알기에 우영은 그저 묵묵히 있었다. 얼마 간 정적이 흘렀을까. 짧은 노크 소리와 함께 상담실 문이 열리고 김남인의 부하 직원 전찬성이 들어왔다.
"반장님. 우영씨. 이제 상담 끝나셨습니까? 그...측정 예약 시간이 다 되어서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어쩐지 분위기가 영 싸한 것을 느꼈는지 말을 마친 전찬성은 살짝 쭈뼛거리다 슥 나가버렸다. 잠시 후, 김남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싱긋 웃으며 우영에게 말했다.
"우영씨, 말씀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등급 측정만 하시면 끝입니다. 결과가 나오면 거기에 맞춰서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해드릴 겁니다."
우영은 어쩐지 김남인의 미소가 처연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안타까웠다. 그 때문일까. 우영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어쩌면...!"
우영의 말에 문을 나서려던 김남인이 돌아본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에 놀란 우영은 횡설수설 했다.
"아니...그..어쩌면 다른 어디 먼 곳에서 동생 분이 살아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그러니까 희망을 버리지 마시라는 거죠."
김남인이 피식 웃는다.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온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봐야지요. 자, 이쪽으로 가실까요? 등급 측정 준비가 되었다 하니 얼른 가보시죠. 늦으면 제가 또 잔소리를 듣거든요. 하하."
"아 네네, 알겠습니다."
갑작스레 튀어나온 자신의 말 실수를 잘 무마했다 생각한 우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남인을 뒤따라갔다. 때문에 우영은 알지 못 했다. 앞서 걸어가는 김남인의 눈매가 싸늘하게 식어 있다는 것을.
눈앞에 메세지창들이 주르륵 나타났다. 우영은 메세지를 유심히 읽어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동화' 스킬의 쓰임새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차원을 넘을 때 그 차원에 육체를 맞춰주는 스킬인건가?'
접속이 거부됐다는 말 뒤에 '동화' 스킬이 발동했고 이후엔 접속을 성공했다는 말이 보이는 걸 보니 대충 맞는 듯했다. 처음 스킬을 얻었을 때만 해도 이걸 어디다 쓰나 했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정체를 알았다. 그것도 모르고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이라도 띄는 스킬인 줄 알고 연습하다 망신을 당한 기억도 떠올랐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동기화라.. 이건 또 뭘까.'
- Y / N
'에라 모르겠다. 한번 눌러보자. 까짓것 다시 저쪽으로 돌아가기 밖에 더 하겠어?'
우영은 Y를 꾹 눌렀다. 그러자 또 다른 메세지창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 메인서버 '지구'와 '아판타시아' 단말 간 연결을 시도합니다.
- 사용자 '여우영'님을 확인하였습니다.
- 연결을 성공하였습니다.
-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 동기화를 완료하였습니다.
메세지를 제대로 읽기도 전에 무언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아니 뭐가 이리 빨라? 요란하기만 했지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은...어?'
우영은 갑자기 몸에 활력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마력이 끓어오르는 것 같다. 상태창을 외치려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김남인이 눈을 부릅뜨고 뚫어져라 우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영은 괜히 멋쩍게 웃어주고는 열심히 단서를 찾는 척 하며 작은 목소리로 상태창을 불렀다.
- 성명 : 여우영, 테일 드 실버폭스
- 서버 : 지구, 아판타시아
- 칭호 : E급 헌터, 아카이 대공의 그림자 기사
- 레벨 : 1(86)
- 근력 : 20(163)
- 체력 : 20(132)
- 순발력 : 20(149)
- 정신력 : 20(131)
- 마력 : 20(127)
- 고유 스킬 : 동화
"와!.....아...음..."
우영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지를 뻔 했다. 뒤통수가 따갑도록 느껴지는 김남인의 시선에 애써 하품인 척 무마했지만. 동기화가 무엇인가 싶었는데 지구의 육체와 아판타시아에서의 능력을 연동 시켜주는 것이었던 듯하다. 다만 능력치만 상승했을 뿐 외관은 그대로였다.
'으음..내 남자로서의 훈장들이..'
아쉬웠지만 우영은 한번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내고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해보았다. 힘을 되찾았으니 소극적으로 정보만 수집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대담하게 아예 협회와 협상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물론 정보를 다 주어선 안 될 것이다. 지구와 아판타시아, 이 두 세계 사이에서 우영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기에.
'일단은 맛보기용 정보만 주는 것이 좋겠어. 경각심 정도는 가질 수 있도록 말이지...'
당장 모든 걸 털어놓는다고 해서 '아 알겠습니다. 즉시 지구의 힘을 하나로!' 할 리도 없고, 되려 차원 이동자란 명목으로 억류하려 하거나 귀찮은 감시만 잔뜩 붙을 게 뻔했다. 어쩌면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무리 우영이 강하다 해도 가족을 지키면서 다수를 상대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아, 망할 대공 전하 때문에 내가 진짜 이게 무슨 고생인지. 이랬는데 이번에 나 안 챙겨주면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속으로 계속 투덜대던 우영은 자신의 옷에 덮여 감춰져 있던 펜던트가 미약한 빛을 내는 것을 미처 알지 못 했다. 우영이 잠시간의 생각을 마치고 뒤돌아섰을 때 이미 그 빛은 사라진 뒤였다. 김남인은 우영이 돌아내려오는 것을 보고 다급한 듯 질문을 던졌다.
"어땠습니까? 뭔가 수확은 있었습니까? 계속 무언가를 보시는 것 같았는데 기둥의 문자들이 어떤 의미인지 아시는 건가요?"
속사포 같은 질문에 우영은 질린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보니 메세지창만 본다고 정작 기둥 글자를 제대로 안 봤네? 뭐...담에 또 와서 보면 되겠지.'
만사가 귀찮아진 우영은 일단 핑계를 대고 자리를 옮기면서 천천히 궁리를 해보기로 했다.
"잠깐 생각 정리할 시간을 좀 주실 수 있을까요? 뭔가 계속 떠오르는데 어지러워서.. 우선 협회로 가서 쉬면서 얘기해드리겠습니다."
우영의 말에 안색이 일변한 김남인은 조수석에 우영을 구겨 넣더니 바로 시동을 걸었다. 눈 깜빡 할 사이 어느 새 기둥을 저만치 뒤로 하고 차는 맹렬하게 질주하고 있었다. 우영은 다급하게 벨트를 찾으며 연신 '잠깐만요'를 외쳤고 말이다.
같은 시각.
대공관저 집무실로 향하는 바쁜 발걸음이 있었다. 한참을 달린 발걸음은 집무실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곤 힘차게 문을 두드렸다.
똑-또독똑똑-. 똑-또독똑똑-.
잠시 후 안에서 나지막한 신음과 함께 목소리가 울린다.
"끙...그렇게 말을 해도.. 샤를로트 공. 일단 들어오게나."
"헤헤헷. 아니 저인 줄 어떻게 아셨어요. 대공 전하?"
살며시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금발 머리의 곱상한 아가씨가 종종걸음으로 들어왔다. 펑퍼짐한 로브와 묘한 빛을 발하는 보석이 박힌 스태프를 지닌 것으로 보아 그녀는 마법사인 듯했다. 헤실헤실 웃는 모습이 퍽 귀여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웃음 짓게 했지만, 대공에게만은 예외였다.
"제발 노크는 똑똑똑, 정도로 해주면 안 되겠나. 집중이 흐트러진단 말이야..그 노크소리. 아무튼 무슨 일로 아니, 무슨 사고를 쳐서 이리 오셨는가?"
자주 골머리를 썩혔는지 대공은 벌써부터 지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공의 얼굴을 본 샤를로트는 삐친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 이번엔 아니거든요?! 실버 경의 연락이 들어와서 열심히 뛰어 왔더니... 저 그냥 갈게요! 안녕히 계세...꺅!"
"드디어! 테일...아니 실버 경이 연락을 보냈는가?! 어서 말해보게!"
순식간에 달려들어 샤를로트의 어깨를 붙잡고 대답을 재촉하는 대공. 샤를로트는 반짝이는 대공의 눈을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엣헴..제가 제일 먼저 대공 전하께 말씀드리러 왔답니다. 대신 제 연구 예산 조금만 더 부탁드려도..?"
그저 계속 고개만 끄덕이는 대공을 보며 샤를로트는 찡긋 윙크했다.
"실버경 연락이 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달려온 거예요~. 아참 그리고 단말기를 통해 전달된 상념이라 약간 끊길 수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려요~."
샤를로트는 수정구를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두고 짧은 주문을 외웠다. 이윽고 스태프로 수정구를 가리키자 허공에 글자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샤를로트는 그 글자를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어디 보자~. 우리 실버 경이 뭐라고 했을까~. 음...어..망할 대공...내가 진짜...이번에.. 가만 안 둘 거야..아..?"
"......"
잠깐 정적이 흐르고, 뒤로 슬그머니 빠져 나가려던 샤를로트.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뒷목을 붙잡아 꾸욱 눌러주는 대공.
"아야야야!! 전하! 잘못 했어요. 저 좀 놔주세요.."
아픔에 몸부림치는 샤를로트를 보며 대공은 싱긋 미소 지었다.
"샤를로트 경. 잠깐 나랑 대화 좀 나누지?"
"저..전 더이상 할 얘기 없는ㄷ....아야야야야!"
그렇게 한동안 대공 관저는 앓는 소리로 가득했다.
"정말입니까?!"
쾅-. 하고 요란한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놀란 나머지 손으로 책상을 내려친 것뿐인데 그 소리가 꽤나 매웠다. 철제 책상인데 아프진 않을까? 잠깐 쓸데없는 생각을 한 우영은 고막이 울리는 것을 느끼며 김남인의 질문에 대답했다.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기둥을 만졌을 때 흐릿한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화려한 갑옷을 입은 기사들과 온갖 마법을 쓰는 마법사들, 그들이 지구를 공격했습니다. 지구를 공격한 이유까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그들은 아주 강했고, 헌터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막연한 말이지만 분명 언젠가 일어날 일 일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우영은 최대한 진지하고 힘 있게 말했다. 당장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확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자신이 유일한 귀환자인만큼 조금은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있었다.
"하..정말 생각지도 못 한 말을 들었군요.. 알겠습니다. 구체 건도 그렇고..하아..우선 정리해서 보고해두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다른 실종자에 관련된 정보는 없으십니까?"
우영은 김남인의 눈빛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안타까웠지만 우영도 다른 실종자들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다.
"네.. 죄송합니다.. 현재로선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이게 다예요. 도움이 되지 못 해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습니까..."
김남인은 고개를 떨군다. 이럴 땐 침묵이 더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알기에 우영은 그저 묵묵히 있었다. 얼마 간 정적이 흘렀을까. 짧은 노크 소리와 함께 상담실 문이 열리고 김남인의 부하 직원 전찬성이 들어왔다.
"반장님. 우영씨. 이제 상담 끝나셨습니까? 그...측정 예약 시간이 다 되어서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어쩐지 분위기가 영 싸한 것을 느꼈는지 말을 마친 전찬성은 살짝 쭈뼛거리다 슥 나가버렸다. 잠시 후, 김남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싱긋 웃으며 우영에게 말했다.
"우영씨, 말씀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등급 측정만 하시면 끝입니다. 결과가 나오면 거기에 맞춰서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해드릴 겁니다."
우영은 어쩐지 김남인의 미소가 처연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안타까웠다. 그 때문일까. 우영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어쩌면...!"
우영의 말에 문을 나서려던 김남인이 돌아본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에 놀란 우영은 횡설수설 했다.
"아니...그..어쩌면 다른 어디 먼 곳에서 동생 분이 살아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그러니까 희망을 버리지 마시라는 거죠."
김남인이 피식 웃는다.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온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봐야지요. 자, 이쪽으로 가실까요? 등급 측정 준비가 되었다 하니 얼른 가보시죠. 늦으면 제가 또 잔소리를 듣거든요. 하하."
"아 네네, 알겠습니다."
갑작스레 튀어나온 자신의 말 실수를 잘 무마했다 생각한 우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남인을 뒤따라갔다. 때문에 우영은 알지 못 했다. 앞서 걸어가는 김남인의 눈매가 싸늘하게 식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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