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조회 : 579 추천 : 0 글자수 : 4,481 자 2022-07-20
김남인을 따라 들어온 등급 측정실은 생각보다 혼잡했다. 몬스터를 흔하게 볼 수 있게 된 만큼 헌터란 직종에 몸을 던지는 이들이 많이 증가했기 때문인 듯하다. 우영은 옛날 한산했던 대기실을 떠올리며 새삼 세상이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급이시네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멘트. 물론 16년 전, 그때 그 사무원 아가씨일 리는 없었지만 우영은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그 당시엔 정말 얼마나 우울했는지..'
그랬었는데 생각지도 못 하게 차원을 넘어가 버리고, 이런저런 고생 끝에 결국은 아판타시아에서도 손 꼽히는 강자의 위치까지 올라간 자신이 아니던가. 물론 지금은 스파이 임무를 띠고 온 적국의 첩자가 된 셈이긴 하지만.
'어라? 잘 생각해보니까 나 일제강점기 때 앞잡이 같은 거 아니야?'
문득 어쩐지 자괴감이 들었다. 힘없이 김남인의 뒤를 털레털레 따라가는 우영의 모습이 어쩐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다.
"우영씨, 여깁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시면 곧 우영씨 이름을 부를 겁니다."
마침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김남인이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예전 우영씨가 했던 검사와는 좀 달라졌을 겁니다. 당시엔 그냥 근력이나 순발력 정도만 등급을 측정할 수가 있었습니다만, 이젠 마력까지 측정 가능한 기계가 개발됐거든요. 담당 직원이 잘 설명해줄테니 그대로 따라하시면 될 겁니다."
"오, 그런가요? 세상 참 많이 좋아졌네요. 정말 신기합니다. 하하하."
신문물을 처음 보고 놀라는 아저씨마냥 신기해 하는 우영, 그 모습을 보며 빙긋 웃는 김남인. 김남인은 우영에게 악수를 청하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죄송하지만 아까 얘기 나눈 것을 상부에 보고하러 전 먼저 올라가 봐야 할 듯합니다. 측정이 끝나신 후 1층 로비에서 잠시 기다리시면 제 부하 직원이 집까지 모셔드리러 올 겁니다. 모쪼록 좋은 결과 얻으시길 바랍니다."
"배려 정말 감사합니다. 꼭 잘 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영은 정말 간절했다. 자신의 말을 믿고 협회 차원에서 준비해준다면 일이 참 쉬워질텐데. 만약 그냥 웃고 넘긴다면 그만큼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늘어날테니 말이다. 우영은 내심 그것 때문에라도 이번 측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조금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네, 제가 잘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김남인은 정중히 인사하고 뒤돌아 측정실을 빠져나갔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던 우영은 문득 어쩐지 자신이 세상에 혼자 내팽겨쳐진 아기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잇...좀만 더 있다가 가라고 할 걸 그랬나. 여기 너무 부담스러운데.."
낯선 환경에 낯선 사람들, 심지어 어째 다 험상궂고 우락부락한 남자들 뿐인 것 같다. 아판타시아에서의 본래 자신의 육체였다면! 그때를 떠올리던 우영은 거울에 비친 여리여리하고 왜소한 지금의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해보였다.
'그립구나.. 내 남자의 훈장들이여..'
또르르..
"여우영님. 여우영님. 계신가요?"
마침 우영을 찾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른 눈물을 훔친 우영은 손을 들고 직원에게 다가갔다. 생각보다 직원이 예쁘다.
"네네, 여우영 여기 갑니다~."
******
"이팀장님. 이팀장님? 이은선 팀장님!"
자신을 찾는 다급한 목소리에 낮잠을 청하던 이은선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째 잠이 덜 깨어 그런지 불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 진짜..내가 어제 새벽까지 달려서 오늘은 시체처럼 있을 거라 했냐, 안 했냐? 왜 또 날 볶지 못 해서 야단이야! 어?!"
이은선의 고함에 급하게 그녀를 찾던 부하 직원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그래도 그게...S급이 나온 거 같아서요.."
"뭐..뭣...?!"
얼굴을 찬물로 맞기라도 한 듯 이은선은 술기운이 확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S급이라니! S급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통틀어서 서른 명이 채 안 되었다. 어느 나라를 가든 국빈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충분했다.
"현재 이 일을 아는 사람은?"
"지금은 저랑 팀장님, 그리고 측정 기계를 담당했던 김어진씨 뿐입니다. 당연히 함구하라는 말은 해두고 왔구요. 저기 그런ㄷ..."
"잘 했어!!"
이은선은 오랜만에 부하 직원의 등을 두드리며 진심으로 칭찬해주었다. S급 인재만 협회 소속으로 만들면 자신의 앞길도 탄탄대로이리라! 물론 큰일을 해준 부하녀석의 앞길도 책임져줘야겠지.
"아직도 측정실에 있어? 너무 기다리게 하면 맘 상할 수도 있으니까, 얼른 가자구!"
이은선은 발을 동동 구르며 당장이라도 달려갈 태세였다. 자신의 찬란하고도 찬란한 미래를 향해서. 그런 이은선을 보고 부하 직원이 더욱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그런데..그 사람 측정 끝나자마자 가버렸어요. 늦었다고.. 가족끼리 고기 먹으러 가야 한다고..."
".....응?"
어이없는 소리에 정말 어이가 없어지고만 이은선이었다. 초점이 나가버린 이은선을 보며 부하 직원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저도 진짜 잡으려고 했는데 늦었다면서 쌩하니 가버려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S급 심기를 거스르겠습니까.. 일단 인적사항에 주소는 있으니 직접 찾아가서 얘기 해보시는게..."
계속 눈치를 보면서 쭈뼛거리는게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이은선의 불호령을 겁내는 듯하다. 하지만 부하 직원의 말마따나 S급을 함부로 대할 수도 없는 노릇.
"하..."
이은선은 한숨을 쉬며 인적사항이 적힌 종이를 넘겨 받았다. 퀭한 눈으로 종이를 훑어보던 이은선의 시선이 문득 멈춘 곳이 있었다.
- 특이사항 : 16년 전 대실종을 겪고 귀환한 최초의 1인. 실종 전 측정 결과 E급 헌터였었으나, 이번에 그가 발견된 위치 인근에서 오크 순찰대의 사체 다섯 구를 발견. 그를 구조한 박철호 헌터들의 말에 따르면 자신들이 처치한 것은 셋 뿐이라고 함. 실종된 기간 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 여겨짐.
잠시 눈을 반짝이던 이은선은 주섬주섬 종이를 파일에 챙겨 넣고는 부하 직원에게 말했다.
"일단 이 건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넌 가서 김씨 아저씨 입 단속 다시 한번 시키고! 얼른 가서 업무 봐."
돌아가는 부하 직원을 보며 이은선도 자켓을 주섬주섬 챙겼다. 영업 하러 갈 시간이다. 헌터 잡는 헌터라 불릴 정도로 그녀는 노련한 스카우터였다. 이은선은 이번에도 역시 자신의 손으로 낚아올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다려라. S급. 내 화려한 인생의 발판이 되어주렴! 오호호호호~.˚
*******
"푸엣취!"
우영은 어쩐지 갑작스레 재채기가 나왔다. 어머니가 옆에서 휴지를 몇 장 떼어주시면서 한소리하신다.
"아이구.. 감기 걸린 거 아니야? 우리 아들.. 몸도 약한데 옷도 좀 잘 챙겨 입구 다니고 해야지!"
"그렇지 그렇지. 당신 말이 맞네. 우영이 내일 아빠 엄마랑 옷 좀 사러 가자꾸나."
아버지도 옆에서 맞장구치신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부모님의 잔소리였건만 막상 계속 듣다 보니 우영은 벌써 진이 다 빠진 것 같았다.
"하하... 괜찮아요. 갑자기 코가 간질거려서 그랬어요. 누가 제 얘기하나본데요?"
"벌써 우리 아들 잘 생긴 거 다 소문났나보다. 하하하하."
오붓하게 가족 식사가 끝나갈 무렵, 어머니가 미처 말하는 걸 잊었다는 듯 물으셨다.
"아 참, 아들. 등급 측정 본 거 어떻게 됐어? 괜찮았어?"
"어허 당신도 참. 우영이가 어련히 말 안 해줄까봐. 조금만 기다려봐요."
부모님이 투닥거리시는 모습을 보던 우영이 싱긋 웃었다.
"음..생각보다 검사가 오래 걸려서 급하게 나오느라 결과를 못 듣고 나왔는데 아마 B나 A급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사실 우영은 지구 헌터들의 정확한 등급 간 힘의 차이를 미처 몰랐다. 그래서 별 수 없이 대기실 내에 좀 강하다 싶은 사람의 기감을 읽고, 그 사람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로 측정을 마쳤다. 괜찮은 결과를 거둬야 우영 자신이 했던 말에 무게가 더 실릴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 정도면 아마 C급이나 B급 정도는 됐겠지? 생각보다 지구 헌터들의 수준이 낮은 것 같아 걱정인데...갈 길이 멀다 참..'
"그래. 그렇구나 B급 정도면 괜찮...뭐? B급?!"
우영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씀하시다 깜짝 놀라 소리치셨다. 어머니도 많이 놀라셨는지 눈이 동그래지셨다.
"에...? B급이 왜요? 그냥 적당한 거 아니에요?"
우영의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저으시고는 말씀하셨다.
"허허...대한민국을 통틀어서 B급은 약 만 명 정도 밖에 안 된단다. 던전 브레이크 초기 때 우리나라 인구가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거의 사천만 명 중에서 만 명만이 B급 헌터 등급을 받았지. 그런데 너가 B급이라 하니 아빠가 놀랄 수밖에 없지 않겠니?"
우영은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그러면 A급은 몇 명 정도...?"
"음.. 아마 A급이 이천 명이 되던가, 안 되던가...할 게다."
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어떻게든 우겨볼 만한 비율이다.
"기왕 묻는 김에 그럼 S급은요?"
"S급? 흠..S급은 우리나라에 딱 셋밖에 없...."
띵-동. 띵-동.
갑작스레 울린 초인종에 아버지가 얘기를 멈추셨다. 우영이 인터폰을 보니 화면은 고장 나서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하이톤의 목소리로 '계신가요.'를 연신 외쳤기에 방문자가 여성임을 알 수 있었다.
"누구세요?"
-혹시 여우영씨 댁 맞나요?
우영은 자신을 찾아올 사람이 또 누가 있나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네, 제가 여우영인데 무슨 일이신가요?
갑작스레 상대방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진다.
-꺅! 반갑습니다! 우영씨!! S급 헌터가 되신 것을 축하해요! 저는 이은선 팀장 ...그래서 제가....협회 어쩌고 저쩌고..
순간 우영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상대가 계속 무슨 말을 하고 있지만 S급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머지들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고를 아주 거하게 쳐버렸다.
'X 됐다...'
문득 우영은 뒤를 돌아보았다. 부모님 두 분 다 갑작스런 일에 우영보다 더 놀라신 듯 충격에 얼어 계셨다. 그 모습을 보던 우영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이젠 넷이네요.."
"E급이시네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멘트. 물론 16년 전, 그때 그 사무원 아가씨일 리는 없었지만 우영은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그 당시엔 정말 얼마나 우울했는지..'
그랬었는데 생각지도 못 하게 차원을 넘어가 버리고, 이런저런 고생 끝에 결국은 아판타시아에서도 손 꼽히는 강자의 위치까지 올라간 자신이 아니던가. 물론 지금은 스파이 임무를 띠고 온 적국의 첩자가 된 셈이긴 하지만.
'어라? 잘 생각해보니까 나 일제강점기 때 앞잡이 같은 거 아니야?'
문득 어쩐지 자괴감이 들었다. 힘없이 김남인의 뒤를 털레털레 따라가는 우영의 모습이 어쩐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다.
"우영씨, 여깁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시면 곧 우영씨 이름을 부를 겁니다."
마침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김남인이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예전 우영씨가 했던 검사와는 좀 달라졌을 겁니다. 당시엔 그냥 근력이나 순발력 정도만 등급을 측정할 수가 있었습니다만, 이젠 마력까지 측정 가능한 기계가 개발됐거든요. 담당 직원이 잘 설명해줄테니 그대로 따라하시면 될 겁니다."
"오, 그런가요? 세상 참 많이 좋아졌네요. 정말 신기합니다. 하하하."
신문물을 처음 보고 놀라는 아저씨마냥 신기해 하는 우영, 그 모습을 보며 빙긋 웃는 김남인. 김남인은 우영에게 악수를 청하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죄송하지만 아까 얘기 나눈 것을 상부에 보고하러 전 먼저 올라가 봐야 할 듯합니다. 측정이 끝나신 후 1층 로비에서 잠시 기다리시면 제 부하 직원이 집까지 모셔드리러 올 겁니다. 모쪼록 좋은 결과 얻으시길 바랍니다."
"배려 정말 감사합니다. 꼭 잘 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영은 정말 간절했다. 자신의 말을 믿고 협회 차원에서 준비해준다면 일이 참 쉬워질텐데. 만약 그냥 웃고 넘긴다면 그만큼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늘어날테니 말이다. 우영은 내심 그것 때문에라도 이번 측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조금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네, 제가 잘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김남인은 정중히 인사하고 뒤돌아 측정실을 빠져나갔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던 우영은 문득 어쩐지 자신이 세상에 혼자 내팽겨쳐진 아기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잇...좀만 더 있다가 가라고 할 걸 그랬나. 여기 너무 부담스러운데.."
낯선 환경에 낯선 사람들, 심지어 어째 다 험상궂고 우락부락한 남자들 뿐인 것 같다. 아판타시아에서의 본래 자신의 육체였다면! 그때를 떠올리던 우영은 거울에 비친 여리여리하고 왜소한 지금의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해보였다.
'그립구나.. 내 남자의 훈장들이여..'
또르르..
"여우영님. 여우영님. 계신가요?"
마침 우영을 찾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른 눈물을 훔친 우영은 손을 들고 직원에게 다가갔다. 생각보다 직원이 예쁘다.
"네네, 여우영 여기 갑니다~."
******
"이팀장님. 이팀장님? 이은선 팀장님!"
자신을 찾는 다급한 목소리에 낮잠을 청하던 이은선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째 잠이 덜 깨어 그런지 불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 진짜..내가 어제 새벽까지 달려서 오늘은 시체처럼 있을 거라 했냐, 안 했냐? 왜 또 날 볶지 못 해서 야단이야! 어?!"
이은선의 고함에 급하게 그녀를 찾던 부하 직원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그래도 그게...S급이 나온 거 같아서요.."
"뭐..뭣...?!"
얼굴을 찬물로 맞기라도 한 듯 이은선은 술기운이 확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S급이라니! S급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통틀어서 서른 명이 채 안 되었다. 어느 나라를 가든 국빈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충분했다.
"현재 이 일을 아는 사람은?"
"지금은 저랑 팀장님, 그리고 측정 기계를 담당했던 김어진씨 뿐입니다. 당연히 함구하라는 말은 해두고 왔구요. 저기 그런ㄷ..."
"잘 했어!!"
이은선은 오랜만에 부하 직원의 등을 두드리며 진심으로 칭찬해주었다. S급 인재만 협회 소속으로 만들면 자신의 앞길도 탄탄대로이리라! 물론 큰일을 해준 부하녀석의 앞길도 책임져줘야겠지.
"아직도 측정실에 있어? 너무 기다리게 하면 맘 상할 수도 있으니까, 얼른 가자구!"
이은선은 발을 동동 구르며 당장이라도 달려갈 태세였다. 자신의 찬란하고도 찬란한 미래를 향해서. 그런 이은선을 보고 부하 직원이 더욱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그런데..그 사람 측정 끝나자마자 가버렸어요. 늦었다고.. 가족끼리 고기 먹으러 가야 한다고..."
".....응?"
어이없는 소리에 정말 어이가 없어지고만 이은선이었다. 초점이 나가버린 이은선을 보며 부하 직원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저도 진짜 잡으려고 했는데 늦었다면서 쌩하니 가버려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S급 심기를 거스르겠습니까.. 일단 인적사항에 주소는 있으니 직접 찾아가서 얘기 해보시는게..."
계속 눈치를 보면서 쭈뼛거리는게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이은선의 불호령을 겁내는 듯하다. 하지만 부하 직원의 말마따나 S급을 함부로 대할 수도 없는 노릇.
"하..."
이은선은 한숨을 쉬며 인적사항이 적힌 종이를 넘겨 받았다. 퀭한 눈으로 종이를 훑어보던 이은선의 시선이 문득 멈춘 곳이 있었다.
- 특이사항 : 16년 전 대실종을 겪고 귀환한 최초의 1인. 실종 전 측정 결과 E급 헌터였었으나, 이번에 그가 발견된 위치 인근에서 오크 순찰대의 사체 다섯 구를 발견. 그를 구조한 박철호 헌터들의 말에 따르면 자신들이 처치한 것은 셋 뿐이라고 함. 실종된 기간 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 여겨짐.
잠시 눈을 반짝이던 이은선은 주섬주섬 종이를 파일에 챙겨 넣고는 부하 직원에게 말했다.
"일단 이 건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넌 가서 김씨 아저씨 입 단속 다시 한번 시키고! 얼른 가서 업무 봐."
돌아가는 부하 직원을 보며 이은선도 자켓을 주섬주섬 챙겼다. 영업 하러 갈 시간이다. 헌터 잡는 헌터라 불릴 정도로 그녀는 노련한 스카우터였다. 이은선은 이번에도 역시 자신의 손으로 낚아올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다려라. S급. 내 화려한 인생의 발판이 되어주렴! 오호호호호~.˚
*******
"푸엣취!"
우영은 어쩐지 갑작스레 재채기가 나왔다. 어머니가 옆에서 휴지를 몇 장 떼어주시면서 한소리하신다.
"아이구.. 감기 걸린 거 아니야? 우리 아들.. 몸도 약한데 옷도 좀 잘 챙겨 입구 다니고 해야지!"
"그렇지 그렇지. 당신 말이 맞네. 우영이 내일 아빠 엄마랑 옷 좀 사러 가자꾸나."
아버지도 옆에서 맞장구치신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부모님의 잔소리였건만 막상 계속 듣다 보니 우영은 벌써 진이 다 빠진 것 같았다.
"하하... 괜찮아요. 갑자기 코가 간질거려서 그랬어요. 누가 제 얘기하나본데요?"
"벌써 우리 아들 잘 생긴 거 다 소문났나보다. 하하하하."
오붓하게 가족 식사가 끝나갈 무렵, 어머니가 미처 말하는 걸 잊었다는 듯 물으셨다.
"아 참, 아들. 등급 측정 본 거 어떻게 됐어? 괜찮았어?"
"어허 당신도 참. 우영이가 어련히 말 안 해줄까봐. 조금만 기다려봐요."
부모님이 투닥거리시는 모습을 보던 우영이 싱긋 웃었다.
"음..생각보다 검사가 오래 걸려서 급하게 나오느라 결과를 못 듣고 나왔는데 아마 B나 A급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사실 우영은 지구 헌터들의 정확한 등급 간 힘의 차이를 미처 몰랐다. 그래서 별 수 없이 대기실 내에 좀 강하다 싶은 사람의 기감을 읽고, 그 사람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로 측정을 마쳤다. 괜찮은 결과를 거둬야 우영 자신이 했던 말에 무게가 더 실릴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 정도면 아마 C급이나 B급 정도는 됐겠지? 생각보다 지구 헌터들의 수준이 낮은 것 같아 걱정인데...갈 길이 멀다 참..'
"그래. 그렇구나 B급 정도면 괜찮...뭐? B급?!"
우영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씀하시다 깜짝 놀라 소리치셨다. 어머니도 많이 놀라셨는지 눈이 동그래지셨다.
"에...? B급이 왜요? 그냥 적당한 거 아니에요?"
우영의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저으시고는 말씀하셨다.
"허허...대한민국을 통틀어서 B급은 약 만 명 정도 밖에 안 된단다. 던전 브레이크 초기 때 우리나라 인구가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거의 사천만 명 중에서 만 명만이 B급 헌터 등급을 받았지. 그런데 너가 B급이라 하니 아빠가 놀랄 수밖에 없지 않겠니?"
우영은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그러면 A급은 몇 명 정도...?"
"음.. 아마 A급이 이천 명이 되던가, 안 되던가...할 게다."
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어떻게든 우겨볼 만한 비율이다.
"기왕 묻는 김에 그럼 S급은요?"
"S급? 흠..S급은 우리나라에 딱 셋밖에 없...."
띵-동. 띵-동.
갑작스레 울린 초인종에 아버지가 얘기를 멈추셨다. 우영이 인터폰을 보니 화면은 고장 나서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하이톤의 목소리로 '계신가요.'를 연신 외쳤기에 방문자가 여성임을 알 수 있었다.
"누구세요?"
-혹시 여우영씨 댁 맞나요?
우영은 자신을 찾아올 사람이 또 누가 있나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네, 제가 여우영인데 무슨 일이신가요?
갑작스레 상대방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진다.
-꺅! 반갑습니다! 우영씨!! S급 헌터가 되신 것을 축하해요! 저는 이은선 팀장 ...그래서 제가....협회 어쩌고 저쩌고..
순간 우영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상대가 계속 무슨 말을 하고 있지만 S급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머지들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고를 아주 거하게 쳐버렸다.
'X 됐다...'
문득 우영은 뒤를 돌아보았다. 부모님 두 분 다 갑작스런 일에 우영보다 더 놀라신 듯 충격에 얼어 계셨다. 그 모습을 보던 우영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이젠 넷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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