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조회 : 734 추천 : 1 글자수 : 4,737 자 2022-07-16
우영은 아버지와의 해후를 마친 후 퇴원 수속을 밟기로 했다.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병원비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초라한 행색으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지금 집안 살림이 여의치 않을 것이다. 다만 귀한 사례인 자신을 병원에서 과연 쉽게 퇴원시켜 줄 것인가가 문제였는데.
"네, 여우영씨. 퇴원하셔도 좋습니다."
너무 흔쾌히 받아들였다. 우영이 자신을 이렇게 쉽게 퇴원시켜도 되느냐 물어보았더니, 담당의가 한숨을 푹 쉬면서 아쉬운 듯 말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이런저런 실허..아니 검사를 계속 해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네요. 우영씨 편의를 최대한 봐주라고.."
무언가 이상한 단어가 나온 것 같았지만 우영은 잊기로 했다. 그것보단 자신을 신경써주는 듯한 상부가 미심쩍었다. 무슨 이유로 우영을 도와주는 것일까. 까닭 없는 호의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을 우영은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제 병원비는.."
"아..그것도 무료입니다. 이미 정부 차원에서 지원이 나와서 원무과 가셔서 그냥 퇴원 수속만 밟으시면 됩니다."
우영은 때로는 까닭 없는 호의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네 엄마도 지금 기차 타고 거의 다 올라왔다니까 우리는 집에서 마중을 해주자꾸나."
퇴원을 마친 우영은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16년의 세월이 흐른 서울은 생각보다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만 군데군데 바리게이트로 봉쇄된 곳이 눈에 띄었다. 무장을 한 채 거리를 다니는 사람도 여럿 보인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우영아. 정말 너...지난 시간 동안 기억이 없는 거니?"
창밖을 보며 궁금해하는 우영을 본 아버지가 안타까운 듯 말했다. 세상을 낯설어 하는 것을 느끼신 것일까.
"네...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더라구요.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 우영의 말에 아버지는 연신 눈시울을 붉히시며 훌쩍이셨다.
"그래. 괜찮다. 우영아. 몸 건강히 돌아왔잖아. 그럼 됐어. 됐어...아빠랑 엄마는 믿고 있었다. 네가 꼭 돌아올 거라고.."
우영은 아랫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버지께 자신이 우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다. 차안의 공기가 먹먹해지기 전에 우영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아 그런데 밖에 저기 바리게이트는 왜 쳐둔 거에요? 대로에서 무기 들고 다니는 사람도 많고..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아버지는 감정을 다스리시는지 잠시 말씀이 없으셨다. 이윽고.
"던전 브레이크 때문이란다."
"던전 브레이크요?"
생소한 용어였다. 물론 16년 전 당시에도 던전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다. 그때 헌터들은 지구와 던전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었지만, 몬스터들은 던전에서 지구로 결코 나올 수 없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던전을 크게 두려워 하지 않았고, 그저 재료와 경험치를 얻는 훈련장 정도로 생각할 뿐이었다.
"네가 실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세계에 알 수 없는 기둥들이 생겼는데, 그 이후부터 던전에서 일정 주기마다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지.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다들 저 기둥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야."
아버지가 흘깃 눈짓을 했다. 마침 차창 밖 멀리 큰 기둥이 하나 보인다. 기둥 인근의 건물들은 다 철거해두었는지 탁 트여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한 듯했다. 그런데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어...저기 혹시 그...ㅇㅇ동 아니에요?"
"음 아마 맞을 거다. 예전 기억은 잊지 않았구나. 다행이다."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막차를 놓치고 걸어 돌아오던 길에 마주쳤던 보랏빛의 구체. 기억이 맞다면 분명 저 기둥이 있는 곳이었다.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자 이제 도착했다. 얼른 집에 들어가자꾸나."
생각에 잠겨있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지, 어느 새 벌써 집앞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집은 변함이 없었다. 색이 바래지고 사이사이 외벽이 갈라지긴 했어도 우영이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꼬리를 살랑이며 자신을 반겨주던 그 녀석도 있었는데.
냐옹-.
그래. 이렇게 냐옹거리며 반겨줬었지.
"응?"
우영의 발밑까지 다가와 부비적거리는 얼룩 고양이.
"미노야? 미노 맞니??"
냐아옹-.
살짝 등을 쓸어주자 기분 좋은 듯 갸르릉거린다.
"아니 16년이나 지났는데 어떻게 네가..."
그 모습을 흐뭇한 듯 지켜보시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걔는 미노가 아니고 미니란다. 미노가 남기고 간 아이지. 둘이 참 많이 닮았지? 어떻게 신기한게 처음 보는데도 너를 잘 따르는구나. 하하하."
어느 사이 미니가 우영의 품에 쏙 안겨 들었다. 따듯하다. 그 온기를 온몸 가득 받으며 우영은 생각했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노라고.
어머니와의 상봉도 무사히 마무리지었다. 우당탕탕 넘어질 듯 뛰어들어오신 어머니는 거실에서 뒹굴던 우영을 보고 달려들었다. '아이고 내 새끼'를 연신 목 놓아 부르며 우시는 어머니를, 우영은 그저 안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냐?"
겨우 어머니를 달래드리고 가족들끼리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아버지가 물어보셨다. 어머니도 궁금하신 듯 우영을 바라본다.
"일단 내일 협회를 가볼 생각이에요. 어차피 헌터 등급 검사도 새로 받아야 하고, 그 경위서? 써야 할 것도 있다 하더라구요."
"아니 실종됐다가 겨우 돌아온 사람한테 경위서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아버지가 버럭 화를 내셨다. 그도 그럴 것이 16년 만에 돌아온 자식인만큼 예민하게 받아들이셨을 것이다. 우영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걱정마세요. 가벼운 사정청취 정도래요. 그리고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실종됐다던데, 어쩌면 제 말이 도움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잖아요?"
번듯한 우영의 말에 아버지는 썩 대견해하는 눈치였다.
"아니 우리 아들이 어느 새 이렇게 다 컸지..."
"그러게 말예요. 우리 우영이가 생각이 아주 깊어요!"
부모님께서 흡족해하시는 모습을 보며 우영은 내심 생각했다.
'아빠 엄마...저 이제 37살이에요...철 없던 스무 살 그때의 제가 아니랍니다..'
다음 날 10시 경 쯤 갑작스런 손님이 방문했다. 헌터협회 수사과 반장 김남인. 우영에게는 탐탁치 않은 손님이었지만, 그의 양손 가득 안겨있는 각종 과자와 음료들을 보곤 마음을 넓게 쓰기로 했다.
"우물우물...그러니까..같이 우물..협회로 가시자는 건가요?"
우영은 오랜만에 접해보는 지구의 문물을 만끽했다. 얼마 만의 단짠단짠이란 말인가! 행복해하는 우영을 보며 김남인은 싱긋 웃었다.
"네, 마침 지나가는 길이기도 하고 어젠 제 용무 때문에 제대로 대화도 못 나누었으니 오늘 편하게 얘기해보시면 어떨까 해서요. 제가 협회까지 모시겠습니다. 하하하."
"음...어차피 경위서도 반장님과 써야 할테니.. 그러시죠. 제가 다른 실종자 분들을 찾기 위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요."
바른 생활 청년 같이 입바른 소리를 하는 우영에게는 물론 또다른 꿍꿍이속이 있었다.
'협회 관계자를 통해 현재 지구의 헌터 전력을 알아둬야겠어. 최대한 지구의 전력을 키우고 모아둬야 그나마 '그곳'과 협상을 얘기해볼 수 있을테니..'
물론 지구의 힘이 가당찮게 미약하다면 부모님만 모시고 잽싸게 대공 전하한테 빌붙을 예정이었지만. 그런 우영의 속마음은 모른 채 김남인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멋지십니다. 정말 훌륭한 청년...? 아 실례했습니다. 나이는 37세시지만 겉만 보면 전혀 아니라 이게 참..어쩐지 부럽습니다.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하.. 저도 영 어색하네요.."
순간 김남인의 눈빛이 번뜩였지만 우영은 눈치채지 못 했다. 김남인은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며 우영을 채근했다.
"자자 이제 준비하실까요? 얼른 일 끝내시고 제가 다시 모셔드리겠습니다. 아버님께서도 너무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 그냥 얘기만 나누다 오는 거니까요."
아버지는 마뜩찮은 표정을 지으셨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셨다. 우영은 과자 두 어 봉지를 고르더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 걱정마세요. 얼른 다녀올테니까 이따가 엄마랑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가요~."
"원 녀석도...알겠다. 저녁에 고기 배터지게 먹으러 가보자!"
"오 아빠 최고!"
겉은 스무 살이지만 속은 찌들대로 찌든 37세 남 독신의 눈물 겨운 애교 덕분에 아버지는 걱정을 덜고 우영을 배웅해주었다. 차에 시동을 켜고 준비 중이던 김남인은 우영이 차에 타자 웃으며 말을 건넸다.
"가족분들끼리 사이가 참 좋으시군요. 하긴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으니..얼마나 기쁘실까요. 부럽습니다. 하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가족의 소중함을 이제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아.. 아쉽게도 지금까지의 기억은 아직 나지 않지만요.."
안타까운 듯 말하는 우영의 너스레에 김남인은 쓰게 웃었다.
"그래도 우영씨의 말에 기대하는 바가 없다고는 못 하겠군요. 사실 제 동생도 그 날 실종되었거든요."
"아.. 그렇군요. 걱정이 많이 되시겠네요. 꼭 돌아오실 수 있을 겁니다. 저도 돌아왔잖아요?"
김남인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차 안에는 정적이 맴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제 보았던 기둥이 다시 보였다.
"반장님. 죄송한데 혹시 저 기둥을 한번 볼 수 있을까요? 확실한건 아닌데 구체를 본 게 저 기둥이 있는 곳인 것 같아서.."
끼기이이익-.
김남인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왼쪽으로 틀었다. 갑작스런 방향전환에 우영은 창문에 머리를 찧고는 억울한 듯 김남인을 바라보았다.
"미안합니다. 많이 놀라셨나요? 이 길로 가는 게 가장 빠르거든요. 우영씨의 말에 저도 모르게 맘이 급해져선.. 하하하."
아무렇지도 않게 무덤덤하게 말하는 그. 우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운전에 열중하는 김남인을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도 정상은 아니구나..'
보이는 것보다 기둥은 가까이 있었다. 교통이 통제되어 있어 차가 없었기 때문인지 김남인의 차는 금세 기둥에 다다랐다. 김남인은 감시원에게 신분증을 제시하고는 우영에게 다가왔다.
"이야기해두었으니 한번 천천히 살펴보시죠. 얻는 것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우영은 조심스레 기둥으로 걸어갔다. 사진으로 본 것과 같다. 분명 '그곳'의 문자였다. 우영은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보았는데, 생각보다 관리가 철저하진 않았는지 먼지가 잔뜩 끼어있었다. 우영이 먼지를 털어내려 기둥을 만지자 띠링 소리와 함께 메세지창이 떠올랐다.
- 사용자 '여우영'님이 '아판타시아' 단말에 접속하였습니다.
- 접속이 거부되었습니다.
- 고유스킬 '동화'가 활성화 되었습니다.
- 접속을 성공하였습니다.
- 동기화 하시겠습니까?
- Y / N
"네, 여우영씨. 퇴원하셔도 좋습니다."
너무 흔쾌히 받아들였다. 우영이 자신을 이렇게 쉽게 퇴원시켜도 되느냐 물어보았더니, 담당의가 한숨을 푹 쉬면서 아쉬운 듯 말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이런저런 실허..아니 검사를 계속 해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네요. 우영씨 편의를 최대한 봐주라고.."
무언가 이상한 단어가 나온 것 같았지만 우영은 잊기로 했다. 그것보단 자신을 신경써주는 듯한 상부가 미심쩍었다. 무슨 이유로 우영을 도와주는 것일까. 까닭 없는 호의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을 우영은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제 병원비는.."
"아..그것도 무료입니다. 이미 정부 차원에서 지원이 나와서 원무과 가셔서 그냥 퇴원 수속만 밟으시면 됩니다."
우영은 때로는 까닭 없는 호의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네 엄마도 지금 기차 타고 거의 다 올라왔다니까 우리는 집에서 마중을 해주자꾸나."
퇴원을 마친 우영은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16년의 세월이 흐른 서울은 생각보다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만 군데군데 바리게이트로 봉쇄된 곳이 눈에 띄었다. 무장을 한 채 거리를 다니는 사람도 여럿 보인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우영아. 정말 너...지난 시간 동안 기억이 없는 거니?"
창밖을 보며 궁금해하는 우영을 본 아버지가 안타까운 듯 말했다. 세상을 낯설어 하는 것을 느끼신 것일까.
"네...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더라구요.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 우영의 말에 아버지는 연신 눈시울을 붉히시며 훌쩍이셨다.
"그래. 괜찮다. 우영아. 몸 건강히 돌아왔잖아. 그럼 됐어. 됐어...아빠랑 엄마는 믿고 있었다. 네가 꼭 돌아올 거라고.."
우영은 아랫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버지께 자신이 우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다. 차안의 공기가 먹먹해지기 전에 우영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아 그런데 밖에 저기 바리게이트는 왜 쳐둔 거에요? 대로에서 무기 들고 다니는 사람도 많고..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아버지는 감정을 다스리시는지 잠시 말씀이 없으셨다. 이윽고.
"던전 브레이크 때문이란다."
"던전 브레이크요?"
생소한 용어였다. 물론 16년 전 당시에도 던전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다. 그때 헌터들은 지구와 던전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었지만, 몬스터들은 던전에서 지구로 결코 나올 수 없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던전을 크게 두려워 하지 않았고, 그저 재료와 경험치를 얻는 훈련장 정도로 생각할 뿐이었다.
"네가 실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세계에 알 수 없는 기둥들이 생겼는데, 그 이후부터 던전에서 일정 주기마다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지.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다들 저 기둥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야."
아버지가 흘깃 눈짓을 했다. 마침 차창 밖 멀리 큰 기둥이 하나 보인다. 기둥 인근의 건물들은 다 철거해두었는지 탁 트여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한 듯했다. 그런데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어...저기 혹시 그...ㅇㅇ동 아니에요?"
"음 아마 맞을 거다. 예전 기억은 잊지 않았구나. 다행이다."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막차를 놓치고 걸어 돌아오던 길에 마주쳤던 보랏빛의 구체. 기억이 맞다면 분명 저 기둥이 있는 곳이었다.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자 이제 도착했다. 얼른 집에 들어가자꾸나."
생각에 잠겨있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지, 어느 새 벌써 집앞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집은 변함이 없었다. 색이 바래지고 사이사이 외벽이 갈라지긴 했어도 우영이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꼬리를 살랑이며 자신을 반겨주던 그 녀석도 있었는데.
냐옹-.
그래. 이렇게 냐옹거리며 반겨줬었지.
"응?"
우영의 발밑까지 다가와 부비적거리는 얼룩 고양이.
"미노야? 미노 맞니??"
냐아옹-.
살짝 등을 쓸어주자 기분 좋은 듯 갸르릉거린다.
"아니 16년이나 지났는데 어떻게 네가..."
그 모습을 흐뭇한 듯 지켜보시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걔는 미노가 아니고 미니란다. 미노가 남기고 간 아이지. 둘이 참 많이 닮았지? 어떻게 신기한게 처음 보는데도 너를 잘 따르는구나. 하하하."
어느 사이 미니가 우영의 품에 쏙 안겨 들었다. 따듯하다. 그 온기를 온몸 가득 받으며 우영은 생각했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노라고.
어머니와의 상봉도 무사히 마무리지었다. 우당탕탕 넘어질 듯 뛰어들어오신 어머니는 거실에서 뒹굴던 우영을 보고 달려들었다. '아이고 내 새끼'를 연신 목 놓아 부르며 우시는 어머니를, 우영은 그저 안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냐?"
겨우 어머니를 달래드리고 가족들끼리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아버지가 물어보셨다. 어머니도 궁금하신 듯 우영을 바라본다.
"일단 내일 협회를 가볼 생각이에요. 어차피 헌터 등급 검사도 새로 받아야 하고, 그 경위서? 써야 할 것도 있다 하더라구요."
"아니 실종됐다가 겨우 돌아온 사람한테 경위서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아버지가 버럭 화를 내셨다. 그도 그럴 것이 16년 만에 돌아온 자식인만큼 예민하게 받아들이셨을 것이다. 우영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걱정마세요. 가벼운 사정청취 정도래요. 그리고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실종됐다던데, 어쩌면 제 말이 도움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잖아요?"
번듯한 우영의 말에 아버지는 썩 대견해하는 눈치였다.
"아니 우리 아들이 어느 새 이렇게 다 컸지..."
"그러게 말예요. 우리 우영이가 생각이 아주 깊어요!"
부모님께서 흡족해하시는 모습을 보며 우영은 내심 생각했다.
'아빠 엄마...저 이제 37살이에요...철 없던 스무 살 그때의 제가 아니랍니다..'
다음 날 10시 경 쯤 갑작스런 손님이 방문했다. 헌터협회 수사과 반장 김남인. 우영에게는 탐탁치 않은 손님이었지만, 그의 양손 가득 안겨있는 각종 과자와 음료들을 보곤 마음을 넓게 쓰기로 했다.
"우물우물...그러니까..같이 우물..협회로 가시자는 건가요?"
우영은 오랜만에 접해보는 지구의 문물을 만끽했다. 얼마 만의 단짠단짠이란 말인가! 행복해하는 우영을 보며 김남인은 싱긋 웃었다.
"네, 마침 지나가는 길이기도 하고 어젠 제 용무 때문에 제대로 대화도 못 나누었으니 오늘 편하게 얘기해보시면 어떨까 해서요. 제가 협회까지 모시겠습니다. 하하하."
"음...어차피 경위서도 반장님과 써야 할테니.. 그러시죠. 제가 다른 실종자 분들을 찾기 위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요."
바른 생활 청년 같이 입바른 소리를 하는 우영에게는 물론 또다른 꿍꿍이속이 있었다.
'협회 관계자를 통해 현재 지구의 헌터 전력을 알아둬야겠어. 최대한 지구의 전력을 키우고 모아둬야 그나마 '그곳'과 협상을 얘기해볼 수 있을테니..'
물론 지구의 힘이 가당찮게 미약하다면 부모님만 모시고 잽싸게 대공 전하한테 빌붙을 예정이었지만. 그런 우영의 속마음은 모른 채 김남인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멋지십니다. 정말 훌륭한 청년...? 아 실례했습니다. 나이는 37세시지만 겉만 보면 전혀 아니라 이게 참..어쩐지 부럽습니다.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하.. 저도 영 어색하네요.."
순간 김남인의 눈빛이 번뜩였지만 우영은 눈치채지 못 했다. 김남인은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며 우영을 채근했다.
"자자 이제 준비하실까요? 얼른 일 끝내시고 제가 다시 모셔드리겠습니다. 아버님께서도 너무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 그냥 얘기만 나누다 오는 거니까요."
아버지는 마뜩찮은 표정을 지으셨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셨다. 우영은 과자 두 어 봉지를 고르더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 걱정마세요. 얼른 다녀올테니까 이따가 엄마랑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가요~."
"원 녀석도...알겠다. 저녁에 고기 배터지게 먹으러 가보자!"
"오 아빠 최고!"
겉은 스무 살이지만 속은 찌들대로 찌든 37세 남 독신의 눈물 겨운 애교 덕분에 아버지는 걱정을 덜고 우영을 배웅해주었다. 차에 시동을 켜고 준비 중이던 김남인은 우영이 차에 타자 웃으며 말을 건넸다.
"가족분들끼리 사이가 참 좋으시군요. 하긴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으니..얼마나 기쁘실까요. 부럽습니다. 하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가족의 소중함을 이제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아.. 아쉽게도 지금까지의 기억은 아직 나지 않지만요.."
안타까운 듯 말하는 우영의 너스레에 김남인은 쓰게 웃었다.
"그래도 우영씨의 말에 기대하는 바가 없다고는 못 하겠군요. 사실 제 동생도 그 날 실종되었거든요."
"아.. 그렇군요. 걱정이 많이 되시겠네요. 꼭 돌아오실 수 있을 겁니다. 저도 돌아왔잖아요?"
김남인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차 안에는 정적이 맴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제 보았던 기둥이 다시 보였다.
"반장님. 죄송한데 혹시 저 기둥을 한번 볼 수 있을까요? 확실한건 아닌데 구체를 본 게 저 기둥이 있는 곳인 것 같아서.."
끼기이이익-.
김남인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왼쪽으로 틀었다. 갑작스런 방향전환에 우영은 창문에 머리를 찧고는 억울한 듯 김남인을 바라보았다.
"미안합니다. 많이 놀라셨나요? 이 길로 가는 게 가장 빠르거든요. 우영씨의 말에 저도 모르게 맘이 급해져선.. 하하하."
아무렇지도 않게 무덤덤하게 말하는 그. 우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운전에 열중하는 김남인을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도 정상은 아니구나..'
보이는 것보다 기둥은 가까이 있었다. 교통이 통제되어 있어 차가 없었기 때문인지 김남인의 차는 금세 기둥에 다다랐다. 김남인은 감시원에게 신분증을 제시하고는 우영에게 다가왔다.
"이야기해두었으니 한번 천천히 살펴보시죠. 얻는 것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우영은 조심스레 기둥으로 걸어갔다. 사진으로 본 것과 같다. 분명 '그곳'의 문자였다. 우영은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보았는데, 생각보다 관리가 철저하진 않았는지 먼지가 잔뜩 끼어있었다. 우영이 먼지를 털어내려 기둥을 만지자 띠링 소리와 함께 메세지창이 떠올랐다.
- 사용자 '여우영'님이 '아판타시아' 단말에 접속하였습니다.
- 접속이 거부되었습니다.
- 고유스킬 '동화'가 활성화 되었습니다.
- 접속을 성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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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 /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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