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병실 안,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이 희미하게 울려 퍼지고,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따스한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와 텅 비었던 공간을 부드럽게 채웠다. 지호는 침대에 누워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이전처럼 텅 비어 있지 않았고, 희미하게나마 온기가 감돌았다.



몸은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정신은 조금씩 맑아지고 있었다. 그는 지난 며칠간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끔찍한 폭행과 수치스러운 기억들, 그리고 낯선 남자… 그는 고통스러운 기억에 몸서리쳤지만, 곧이어 그의 곁을 지켜준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최인규.



지호는 그의 이름을 속삭이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인규는 그를 빗속에서 발견하고 병원으로 데려왔으며, 곁에서 헌신적으로 간호해주었다. 그는 지호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의 상처를 보듬어주었다. 인규의 따뜻한 보살핌 덕분에, 지호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잘 잤어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지호는 고개를 돌려 인규를 바라봤다. 인규는 그의 곁에 앉아 정성스럽게 죽을 떠먹여 주고 있었다.



"응… 고마워요, 인규 씨…"



지호는 약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자, 지호 씨. 천천히 드세요.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드실 수 있을 거예요. 몸에 좋은 영양분이 가득한 죽이니까 꼭꼭 씹어서 드세요."



인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눈빛은 따뜻했고, 그의 손길은 부드러웠다.



지호는 인규가 건네는 죽을 천천히 삼켰다. 그의 목은 여전히 따끔거렸지만, 음식물이 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인규의 정성에 감동하며, 죽을 더욱 맛있게 먹었다.



"고마워요, 인규 씨… 인규 씨가 이렇게 정성껏 해주시는 죽이라서 그런지, 오늘은 왠지 더 맛있게 느껴져요."



지호는 약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인규가 없었다면, 그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환자분, 많이 좋아지셨네요. 얼굴색도 훨씬 좋아지시고, 식사도 잘 하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계속 이렇게 잘 드시고, 푹 쉬시면 금방 회복하실 수 있을 거예요."



간호사가 들어와 지호의 상태를 체크하며 미소 지었다. 그녀는 그의 호전된 모습에 기뻐하며, 그를 격려했다.



"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인규는 간호사에게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는 의료진에게도 깍듯이 대하며, 그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지호는 인규의 따뜻한 보살핌에 감동하며, 점점 편안함을 느꼈다. 그는 인규의 곁에 있으면, 모든 걱정과 불안이 사라지는 듯했다.



며칠 후, 지호는 병실에서 책을 읽으며 인규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인규의 도움을 받아, 다시 학업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여기 이 구절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어요.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는 거죠.”



인규는 책을 읽으며 지호에게 설명했다.



“와, 인규 씨는 정말 아는 게 많네요. 이렇게 깊은 뜻까지 다 알고 있다니…”



지호는 감탄하며 인규를 바라봤다. 그는 인규의 박학다식함과 깊이에 놀랐고,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아니에요, 저도 그냥 아는 대로 이야기해 주는 것뿐이에요. 하지만 지호 씨처럼 이렇게 집중해서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저도 더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인규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지호와 인규는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들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갔다. 그들 사이에는 점점 더 깊은 유대감이 형성되었다.



어느 날 밤, 간호사가 나가고 지호와 인규만이 병실에 남았다. 지호는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그의 마음속에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지호는 머뭇거리며 깊게 숨을 쉬었다. 그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그의 손은 차갑게 식어갔다. 그는 인규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두려움과 망설임 때문에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그는 인규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었고, 그가 자신을 떠나갈까 봐 두려웠다.



인규는 지호의 불안한 모습을 눈치채고,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지호의 손을 잡고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지호 씨, 혹시 힘든 일이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당신 혼자 아파하지 마시고, 제가 당신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게 해 주세요. 당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시든, 저는 당신 편이니까요.”



인규는 차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호는 인규의 따뜻한 말에 용기를 얻어, 자신의 과거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인규 씨… 사실은… 저는… 저는… 그 자들에게… 아주 끔찍한 일을 당했어요…”



지호의 목소리는 떨렸고,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들은 저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어요… 그저 그들의 욕망을 해소하는 도구로만… 이용하고… 마음대로 했어요… 매일 밤… 그들에게 짓밟히는 기분이었어요…”



지호는 힘겹게 자신이 겪었던 성착취와 학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몸을 떨었지만, 인규는 그의 손을 잡고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인규의 눈에는 안타까움과 분노가 동시에 맺혔다.



지호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인규는 그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제 괜찮아요, 지호 씨… 이제 당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제가 당신 곁에 있을 거예요. 당신의 아픔을 모두 제가 껴안아 줄게요. 당신은 혼자서 싸워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이제 당신은 더 이상 혼자 아파하지 않아도 돼요. 제가 항상 당신과 함께 할 테니까.”



인규는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호는 인규의 따뜻한 품에 안겨 그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을 터뜨렸다. 그는 인규의 다정한 위로에 안도감을 느끼고, 그에게 더욱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지호와 인규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함께 미래를 그려나갔다. 그들의 사랑은 깊고 애틋했고, 그들의 삶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밤, 인규는 지호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지호 씨…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어요. 당신에게 깊이 끌리고 있다는 것을요. 빗속에서 힘들어하던 당신을 발견했을 때, 저는 당신을 꼭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고, 당신을 지켜주고 싶어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지호 씨.”



인규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지호는 인규의 진심 어린 고백에 감동했다. 그는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저도… 인규 씨를… 사랑해요…"



지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처음에는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인규 씨를 만나고 난 후로, 제 삶에 다시 빛이 들어온 것 같아요. 인규 씨 덕분에 다시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고, 인규 씨가 있어서… 저는 정말 행복해요…”



“그럼 우리 이제부터 서로 편하게 형, 동생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요? 지호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인규는 지호의 손을 잡고 애원하듯 말했다.



지호는 눈물을 글썽이며 활짝 웃었다.



“좋아요... 인규야. 그럼 나도 너 편하게 동생이라고 불러도 되지..?”



지호와 인규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이를 확인한 후 편안하게 형, 동생으로 호칭을 부르기로 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서로를 향한 사랑과 애정이 가득 차 있었다. 지호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요한 병실에는 그들의 따뜻한 숨결만이 감돌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앞으로 함께 걸어갈 행복한 미래를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