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우
1984년 6월 15일생
모날 것 없는 평범한 집안이었지만 교통사고로 인해 내 삶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몸이 작은 덕인지... 뒷자석에 탄 덕분인지.
고작 다섯 살 밖에 안된 나를 남기고 부모님은 그렇게 가셨다.
보상금이 꽤 나왔기에 나를 키우겠다는 친척들이 있었지만 나는 할머니와 살고 싶다고 한사코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왜 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할머니는 말 그대로 보통 사람이었다.
평범하게 자랐다.
부모님이 안계셔서 놀림을 당한적도 있었지만 내성적인 성격의 나는 혼자 집에서 울었지 싸우거나 하진 않았다. 그럴때마다 꼭 안아서 재워주신 할머니의 품이 너무 따뜻했다.
고등학교 3학년때의 일이다.
안겨서 자는 일은 이미 중학생이 된 이후로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그 품이 너무 그립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형제들이 찾아와 집에서 나가라고 얘길했다.
난 그말 뜻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유산이란 그런 거라더라.
할머니가 나한테 집을 물려준 건 아니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모님에게 나온 보상금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
그리고 그건 할머님이 내 통장에 개인적으로 넣어두셨다는 것.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아 생활비에 사용하시기는 하셨지만 그건 모두 나를 위한 것 이었다.
5천만원 이란 돈은 20세가 된 나에게는 아주 큰 돈이었지만.
집을 구하기에는 작은 돈 이었다.
작은 원룸에서 시작된 혼자만의 생활이 길어졌다.
어릴적부터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일까... 애정에 결핍이 있던 나는 사람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사람이 그립기도 했지만 대학은 꼭 한번 가보고 싶었기에 전세방을 대신하고 월세를 택했다.
꼬박꼬박 나가는 생활비와 월세가 부담이긴 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학교를 마치면 쪼르르 달려가 바코드를 찍어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제일 싫은 건....
퇴근하고 돌아온 집이 희미한 온기마저 없다는 것.
보지도 않는 티비라도 틀어놓지 않고서는 하염없는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다.
중, 고등학교 때도 만나는 친구는 있었지만 대학에 입학하고부터는 뿔뿔이 흩어져 얼굴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같은 과에 절친이 생겼다.
꽤 예쁘장한 얼굴.
같이 밥도 먹고 영화도보고 지내다 보니 어느새 입술을 포개고 있었다.
고민경.
한 살 후배인 그녀는 다정하고 말을 참하게 하는 내가 착해서 너무 좋다고 했다.
자취방에 놀러온 그녀와 꿈같은 시간을 보내니 외로움 따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장님!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시재를 확인하는 사장님을 보곤 재빨리 짐을 챙겼다.
"건우~ 요즘 좋은 일 있나봐?"
"예? 아... 여자친구 기다리고 있어서요. 히히."
"입 찢어지겠다. 이거 가져가."
"어?"
까만 봉지에 들은 맥주 두 캔.
앙증맞게 소세지도 두 개.
"...잘 먹겠습니다."
"예쁜 사랑하세요~"
참 좋은 사람.
받아든 봉지를 들고 재빨리 뛰었다.
원룸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민경에게 전화를 건다.
-오빠~!
"마쳤어, 금방갈게"
-그거 사와야되.
"아..."
일하는 편의점으로 다시 돌아가긴 좀.
발걸음을 재촉해 다른 편의점에 들려 '물건'을 샀다.
돌아가는 길이 한층 설렌다.
"이제는 좀 춥네."
쌀쌀한 바람을 밀어내며 내 딛는 걸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살았으면 좋겠다.
내 바램은 이루어졌다.
10년 동안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