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넘었지만 원룸방은 아직 못벗어났다.
이제는 그냥 내 집 같다.
민경이와는 아직도 잘 지낸다.
서로 취업을 한 덕에 조금 소홀해 지긴 했지만.
"어 민경아 이번주도 못와?"
-응... 일이 바빠서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많이 바쁘면 내가 갈까?"
-그냥 다음주에 봐 내가 갈게.
"... 알겠어. 보고싶다."
-나두.
달칵.
"아쉽다... 월급이... 아쉬워!!"
이제는 슬슬 결혼도 생각할 나이.
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건만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다.
꼬박 꼬박 나가는 월세도 부담인데 학자금 대출을 아직도 갚고 있다.
'이새끼는 이번주는 돈 줘야 되는데...'
제법 목돈도 모으긴 모았다.
월세가 아까워 조그만한 아파트라도 대출껴서 살려고 악착같이 모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방이라 집값이 싸다는 거 정도?
그럴려고 모아 놓은 돈인데.
이른 나이에 사업하는 친구가 급전이 필요하다고 애걸복걸 하는 바람에 빌려줬다.
원래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턱턱 빌려줄 만큼 여유는 없기에 꺼려했지만 중, 고등학교를 같이나온 철천지 원수 같은 부랄 친구 새끼가 하도 부탁을 하니.
후우.
연락이 안되는 건 아닌데 약속을 안지키니 조금 답답하다.
입에서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걱정이 앞선다.
띠리리링.
"어? 민준이 이새끼? 내가 지 생각하는 거 어떻게 알았지?"
-여보세요?
"어 전화했네?"
-어... 부재중 와 있길래.
"아~ 그거 때문에 전화했지..."
-야 미안하다. 야 내가 챙겨줘야 되는데... 거래처에서 돈이 안들어오네?
"그래? 괜찮아?"
-내가 할말이 없다. 어떻게든 해결해서 담주에는 꼭...
"알았어 알았어, 일단 일부터 잘 해결해."
-... 고맙다.
"그래 새끼야 해결되면 소주나 한잔하자."
-그래. 연락할께.
달칵.
"하...."
닦달한다고 돈이 나오는 건 아니니까.
라고 스스로 자위했다.
"월세 나간거야 이자 달라고 하면 되지."
"가자..."
시계를 보니 12시 55분.
일터로 돌아가야 할 시간.
취직은 제법 잘 됐다.
지방이라 건실한 일자리가 없어서 나도 타지를 가야 하나 했는데?
뜬금없이 들어선 대기업 공장덕에 합격했다.
지역시민 우선채용이라나 뭐라나?
조건이 조금 다른것 같긴했지만 학교나 성적이 딱히 내세울 것도 없었기에 완전히! 만족했다.
그래도 대기업 직원아니냐?
'빌려준 돈 받고, 집 계약하고 민경이 한테 가서 얘기하자.'
'이제... 연애는 그만하자고.'
'장거리부부는 싫긴 하지만 결혼하면 돈 모인다니까... 금방 해결되겠지.'
금방 괜찮아 질거라 생각했다.
아니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갑자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
시작은 도민준 이였다.
-전화기가 꺼져있어...
"x발!"
보름째 연락이 안된다.
다른 친구들과 통화를 해봐도 비슷한 애기 뿐.
돈 빌려간게 한둘이 아니다.
쨍.
"아 x발새끼."
"넌 얼마 빌려줬냐?"
"....."
"아니 그래도 우리한테는 연락해야 되는거 아니냐?"
"남들은 몰라도 x발..."
쨍.
며칠 뒤 들려온 소식은 더 충격적이었다.
-그 새끼... 외국으로 텼대.
"뭐!?"
"아니 돈 몇푼 된다고 그걸 들고 외국으로?"
-.... 우리만 그런게 아니고 거래처고 나발이고 다 해처먹고 날랐단다.
-10억 정도 해먹었데.
10억.
인간관계를 버리기에는 작은 돈.
물론 그건 사람 나름이다.
어차피 망할 거 주변에서 있는 거 없는 거 다 땡겨서 도망간거다.
그런 새끼 한테는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지, 물론 나도.
머리속이 하얘졌다.
데이트 비용도 아껴가며 차도 안사고 뚜벅이로 8천 모았는데.
차라리 불우이웃돕기를 했어도 이렇게 아깝진 않겠다.
왈칵 울음이 터졌다.
키보드를 두드리다 엉엉 울어대는 나를 보고 과장님이 깜짝 놀라 다가왔다.
"뭐하냐?"
"죄, 죄송합니다."
"이 미친새끼가... 부장님 보시면 어쩔려고? 옥상으로 따라와."
"흑.. 흐흑..."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재빨리 과장뒤를 따랐다.
치이이익.
후우.
"그러니까... 친구 돈 빌려줬는데... 먹고 튀었다?"
".... 예."
"하아... 미친새끼 차용증도 하나 없이?"
"....."
"하긴 차용증 있어봐야... 작정하고 튀면 답이 있나."
"... 죄송합니다."
"니가 왜 죄송해 새꺄?"
"내일 연차써."
"예?"
"하루 쉬라고 새끼야."
"그래 갖고 뭔 일이 되겠냐? 사고치지 말고 여친이나 보러 가던가."
"... 감사합니다."
"감사는 시발, 먼저 간다. 한대 더 피고 와."
말은 참 거지같이 하지만 그래도 챙겨주는 인간은 과장밖에 없다.
답답해서 담배를 빨아봐도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퉤.
그저 긴... 한숨만이 입에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