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과장에게 전화해 죽는 시늉을 했더니 한숨을 팍! 쉬었지만 짧게 알았어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밤샘 고민끝에 난 부자가 될거야라며 수많은 방법을 생각해봤지만.
'... 등처먹힐 돈도 없네.'
하루 한 번 국밥값 모아서 언제 부자가 되냐구요.
큰거 한방 할려면 장기밀매 사기라도 당해야 할 판이다.
통장에 있는 돈이라고는 카드값이 닦고 남은 현금 백만원.
아, 청약 적금 넣어놓은거 삼백.
'이건 안되지...'
월세 보증금 삼백.
도합 칠백.
이걸 몽땅 넣으면 하루에 두 배씩이면... 이틀이면 천사백, 삼일이면 이천팔백 오천육백...
민우새끼가 빌려간 8천만원이 눈에 밟힌다.
"호구 잡히는게 정확하게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좋아서 밥사줄 수도 있는건데... 경계선을 누가 정하는건데."
"참, 그거 알아내려고 테스터 구한거였지..."
환웅의 태도를 가만히 떠올려 보면 국밥집에서 '손해'에 대해 어느정도 파악을 하고 있었다.
유추해보자고,
만약 재단법인이나 불우이웃 돕기 같은 데다 돈을 넣는다면?
정답은 알 수 없다.
가설을 세워보면 이렇다.
환웅은 대놓고 국밥을 얻어 먹을 생각.
즉 나한테 사기를 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반면에 기부재단 같은 경우는 돈이 올바른 곳에 쓰일때도 있을거고 아닐때도 있을거고.
기부금을 후려쳐서 횡령하거나 개인용도로 쓰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투명하게 운영하는 곳도 있다.
첫번째 룰.
고의성.
"사기 처줄 사람이라도 찾아야 하나..."
사기꾼 새끼들도 돈이 있어야 들러붙지.
나같이 다발라먹고 남은 고등어 뼈 같은 새끼한테 누가...
환웅의 말대로 며칠 겪어보자.
삽질하다가 전재산 꼬라박고 싶지 않으면 테스트에 대한 정확한 룰도 필요하다.
환웅과 나눴던 대화를 곰곰히 떠올려 본다.
'기회는 하루 한 번.'
'아니야. 혼자 고민하지 말자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지?'
뚜르르르르.
-여보세요?
"환웅대리님, 궁금한게 있는데."
-그렇긴 한데...
"허? 벌써 발빼요?"
-데이트중이라.
"... 평일인데?"
-이렇게 바로 연락이 올 줄은 몰랐네요. 출근도 안하셨나봐?
-지금 찾아뵙죠.
당황한 것 같아 대충 괜찮아요 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내일 물어봐야 할 것들을 메모장에 하나 둘 정리하던 중.
딩동.
원룸의 벨이 울렸다.
집밖으로 나가보니 예의 미남이 서있다.
깔끔하게 말아올린 앞머리에 깨끗하고 뽀얀 피부.
큰눈에 오똑한 코.
그나마 위안인건 키가 평범했다.
175? 6? 나랑 비슷하네. 비율은... 아주 조금 다르지만 말이야.
저 키로 8등신이라니...
거기다 수트핏이 얼마나 잘 받는지? 벌어진 어깨와 달리 잘록한 허리.
셔츠를 들쳐보면 분명히 식스팩이 툭~ 하고 튀어 나올 것 같다.
"건우씨."
살짝 미소지으면 손을 흔드는 모습이... 예술이다 예술.
"...."
"?"
"집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옥부장님이 알려주시던데요."
'미친새끼 술처먹고 다 불었구나... 에휴. 술을 끊던지 해야지.'
"받으시죠."
씻지도 않고 수면바지를 입고 나온 나에게 환웅이 차키를 내밀었다.
삐빅.
외제차는 생전 처음 타봤다.
신기해서 이것 저것 만지는 나를 보고 환웅이 물었다.
"이제 계속 타실건데 천천히 보세요."
"계속이요?"
"예, 이거 법인 차량입니다."
"오늘부터 건우씨한테 제공 될 거에요."
"중요한 테스터 분이시라 회사에서 제공 되는 복지는 모두 동일하게 혜택받으세요."
"저, 저한테요... 준다고요!?"
"... 중도 포기만 안하시면요."
"이제 계약서에 싸인 할까요?"
"계약서?"
"거창한건 아니고 비밀유지 계약서 같은, 아시죠?"
"말 새어 나가면 건우씨도 저희도 곤란하니까."
그렇다.
직장을 미래도 없는 겸업 따위를 하다가 날려먹을 수는 없으니까.
서로 최소한의 잠금장치라고 생각하는게 맞겠지.
한적한 카페에 들러 계약서를 작성했다.
내용은 별게 없었다만... 환웅이 건네준 서류는 대 여섯장 되었다.
"별지는 계약내용에 대한 겁니다."
"잘 숙지하도록 하세요 도움이 될테니까."
끄덕끄덕.
탁.
"계약서 다 됐고, 수고하셨습니다. 전 이만."
"차 주고 가시면 대리님은 어떻게 가시게요. 태워다 드려?"
씨익.
웃어 보이며 검지를 들곤 손을 대각선으로 뻗어 창밖을 가리킨다.
새빨간 오픈카가 막 도착하곤 타고있던 여자가 천천히 내리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와...
긴머리를 찰랑거리며 허리가 쏙 들어간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라인은 진짜 예술이었다.
"데이트중이라고 했잖아요."
'개새끼.'
다가진 새끼를 보니 솔직히 배알이 조금 꼴렸다.
밉다기 보다는 부러워서.
손을 흔들며 먼저 일어난 환웅을 보며 필살의 주문을 외웠다.
제꼬삼 제꼬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