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반 친구중에 잘 지내고 있냐고 물어봐 준 유일한 사람.
그 엽서 한 통에 몇날 며칠을 다시 봤다는 건 비밀로 하자.
당시에는 부모님이 없어서 놀림을 꽤 당하던 때였는데 주현이는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했다.
문제는 그 나이때의 아이들은 여자랑 놀면... 더 놀림 받는다는게 문제지.
"울산에 있는거야?"
"어... 아니, 아니 뭐. 일이 좀 있어서."
"그렇구나."
"너는?"
"다니는 연구소가 여기 근처에 있어서."
"아~"
털썩.
자연스레 말을 튼 그녀가 내 앞의 의자에 앉는다.
"어? 볼일있어 온거 아냐?"
"맞아. 근데 너 보니까 너무 반가워서 못 가겠다."
피식.
평소라면 미친듯이 웃어 제낄텐데.
가슴이 꽉 막혀서 피식거리는게 전부다.
"혼자 먹냐? 한잔 줘봐."
여전히 시원시원 하구만.
얼굴은 어릴적 얼굴이 꽤 남아있다.
얼굴은 평범한데... 몸매가 사나워졌네.
운동 열심히 하나봐.
쪼르륵.
"너 키 엄청컸다?"
"170."
"쫄리냐?"
"뭐래..."
"뭐 운동 같은거 해?"
"응, 좋아해 운동. 연구소에 하루종일 처박혀 있음 답답하거든."
"자전거도 타고 러닝도 하고 헬스도 하고."
"그래도... 술이 제일 좋다."
"마셔~"
쨍~
그녀의 어릴 적 별명은 옥장판 이었다.
애들이 별명 만드는 게 그렇지 뭐.
성이 옥씨라고 옥장판 이라니...!
어릴때도 그랬나...? 싶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
크게 깔깔 웃어대는 모습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정확히는 민경이랑 민우를 어떻게든 잊고 싶었겠지.
"운동 많이하면 튼튼해지냐? 술 졸라 쎈데?"
"니가 약한거지."
"조심해라 그러다 업혀간다?"
"풉, 업혀? 누가? 내가?"
"업어 줄 사람이~~ 없는데~~?"
"그래? 그럼... 내가 업고 갈까?"
"....."
"아 뭐야? 왜 얼굴 빨개져!"
"술, 술먹어서 그래."
"수줍어하기는 마셔, 마셔."
주현이가 권해주는 술잔이 왜이리 달콤~ 한지.
개 x같은 기분에 단비다 단비.
결국 주는대로 처먹다가 골로 가버렸다.
그리고... 실제로 반쯤 업혀왔다.
풀썩.
"....어?"
처음 보는 방.
티비 있고 침대 있고 작은 의자랑 식탁, 화장실.
자그만한 냉장고위에 탁자에는 요런저런 일회용품이...
'모텔이네.'
치이익.
주현이가 담배를 물고는 불을 붙여 입에 물려준다.
"...."
"더럽냐?"
"아니. 아닌데. 좋은데."
"푸하하핫! 취했냐~"
"좋다고? 이 변태새끼...!"
"히히..."
내 말이 그렇게 웃기나?
즐거워 해주는 모습을 보니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지.
변태 까짓거 되어주마. 에라.
"쓰으으읍, 하!"
"야, 니가 붙여주니까 담배도 꿀맛이다~"
"줘봐."
내가 빨아댕긴 담배를 쏙, 뺏어가더니 입에 물고 빨아 댕긴다.
눈을 살짝 내리깔고 담배를 빠는 모습에 마른침이 삼켜졌다.
꿀꺽.
후우, 가볍게 내 얼굴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그리곤 천천히 담배를 다시 내 입에 물려줬다.
솔직히... 흥분됐다.
환하게 웃던 주현이가 너무 섹시해 보였다.
마주 앉은 주현이가 다리를 꼰 모습을 곁눈질로 훔쳐보고있었다.
꽤 큰 가슴은 물론.
생각해보니 뒤돌아 있을 때 빵빵한 엉덩이에도 눈길이 갔던 것 같다.
'미친새끼... 방금 여친 바람핀거 보고 와놓고.'
스스로가 한심했다.
다시 입에 물린 담배를 쭈욱 빨아 당겼다.
연기를 내뿜자 주현이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뉘이더니 나를 바라봤다.
"...?"
시선이 약간 아래로 향한다.
그 시선의 끝에는 우뚝 서있는 나의 그...
'이새끼 왜 이래? 정신차려!!'
당황한 나를 보며 귀엽다는 듯이 살짝 미소짓더니 주현이 손을 내민다.
'... 어차피 끝난 건데 나도 모르겠다 시발.'
그녀의 손이 닿는 순간 나도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곤 천천히 입술을 포갰고 우린 그렇게 밤을 함께 했다.
*
"... 헉! 회사!"
"아...."
금요일에 연차썼지.
그러면 오늘은 일요일이구나.
눈을 뜨자마자 어젯밤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회사 다음으로.
얼굴이 화끈거린다.
운동하는 애들... 장난 아니구나.
반면 침상이나 의자는 너무 깨끗하다.
주현이와 함께 한 게 꿈인가 싶을 정도로.
"얘기도 많이 한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나네."
숙취에 머리가 띵해와 인상을 쓰는 와중 눈에 들어온 명함하나.
생각해보니 연락처도 몰라 벌떡 일어나 명함을 줏어 들었다.
TAKE LUCKY STRIKE
개발부 부장 옥주현
010-XXXX-XXXX
"와... 개발부 부장?"
"처음듣는 회산데?"
일단 전화번호부터. 명함을 주고 간 걸보면 원나잇은 아니겠지?
사실 민경이 말고 여자라곤 만나본 적도 없었는데.
"생각하니 또 열받네."
주현이랑 잘되면 보란듯이 얘기하고 먼저 헤어지자고 하고 싶다만, 그건 주현이 한테 예의가 아니지.
어차피 이렇게 된거 조용히 정리하자.
같은 같잖은 생각을 할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김건우씨?"
30대? 정도? 되 보이는 남자 목소리.
설마...
'남편!????'
부, 불륜인가!
어쩐지 갑자기 나한테 이런일이 생길리가 없지.
아니지 그럼 명함을 왜 주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