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조회 : 1,424 추천 : 0 글자수 : 2,759 자 2022-11-02
다시 말하지만, 내 이름은 조가 아니다. 물론 마녀나 악의 축 따위도 아니고, 악마숭배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개중 가장 나은 별칭을 꼽자면 단연 ‘조’였다.
나는 이 사태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마녀 재판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게 겨우 사흘 전이었다. 이변이 없었다면 바로 오늘 재판이 열렸어야 했다. 그랬다면 나는 재판 도중에 죽거나, 재판이 끝나자마자 죽었을 것이다. 어찌되던 재판이 정상적으로 열렸다면 꼼짝없이 오늘을 넘기지 못했을 신세였다.
마녀로 낙인 찍힌 사흘 전부터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나는 재판 같지도 않은 재판과 그에 따를 고문을 두려워하느라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이 더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 남자가 나를 오두막에서 끌고 나오면서 말하기를, 나를 죽이지는 않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죽이지만은 않겠다고 말이다. 남부 경작지의 악명이 그렇게 자자하던데, 혹시 그곳으로 팔아 넘기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마침 당장 내가 처한 상황의 주도권을 가진 남자가 느긋하게 걸어왔다. 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내 몸은 긴장으로 굳어졌다.
바닥에 꿇어앉은 내 무릎 바로 앞까지 남자의 발이 다가왔다. 나는 광이 나는 그의 가죽 구두를 쳐다봤다.
“불한당을 거북이로 만들었다라…. 꽤 마음에 드는 능력입니다. 어디서도 그런 웃기는 마법은 들어보지 못했거든.”
바닥과 발을 쳐다보고 있느라 남자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방법은 없었으나, 들리는 목소리로 미루어 보아 즐거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즐거워하는 편이 내게 이득이 될 지 알 수 없었으나, 마녀에 대한 증오나 경멸로 불타오르는 꼴보다는 나았다. 그는 내 바로 앞에 딱 멈춰 섰다.
“아, 내 소개를 할까요? 내 이름은 에드먼드 웬트워스입니다.”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구면은 아니었다. 아는 사이였다면 내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 아닌가?
“설마 날 모르는 인간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뭐, 이런 경험도 나름대로 신선하군.”
저 남자를 모르는 인간이 없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릿속을 뒤졌다. 에드먼드 웬트워스라….
“아!”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소리를 내고 한 박자 늦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황급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코끝이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기억이 났다. 그 에드먼드 웬트워스를 모른다면 브레틀랜드에 산다고 할 수 없었다.
그는 월폴의 공작으로, 브레틀랜드에서 제일 가는 부자였다. 하지만 그의 유명세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그의 미모에 관한 소문이었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본 적은 없지만, 외양에 관한 소문 중 틀린 것은 없었다.
듣기로는 본인보다 낮은 신분인 사람들에게도 존대를 하는 등, 매우 신사적이고 상냥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내 귀에 들리는 그의 말투는 소문과 약간의 거리가 있는 것 같았다.
혹시 내 마음이 너무 배배 꼬인 탓에 따사로운 단어조차 삐딱하게 들리는 것일까?
“나를 압니까? 그것참 부끄럽군요.”
물론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 태도였다. 빳빳한 셔츠 원단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돌연 내 턱 아래에 긴 손가락이 닿았다. 내 손은 고급 목재로 짜인 바닥을 짚고 있으므로 그 손이 내 신체의 일부일 리는 없었다.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다가 남의 손이 닿으니 무척 따뜻하게 느껴졌다.
따뜻한 손이 내 턱을 느리지만 강한 힘으로 들어올렸다. 자연스레 나는 그 힘에 딸려 올라가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들자, 마치 금속처럼 시린 냉기가 흐르는 청회색 눈과 마주쳤다.
그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다른 쪽은 굽힌 채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물론 그래도 나는 한참 시선을 들어야 했다.
진한 눈매가 살짝 찌푸려지며 나를 탐색하듯이 훑었다.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습니까?”
마치 추파처럼 들리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추파일 리가 없었다. 그런 말을 한 주체가 월폴 공작이라면, 더더욱.
그는 소문 그 이상으로 굉장한 미남이었다. 그 같이 인상적인 외모를 가진 남자를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나는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아니요!”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그가 눈썹을 쓱 들어올렸다.
“그렇게까지 부정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어디서 거절당할 외모는 아닌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 같았으면 어디서 난 자신감이냐고 되묻고 싶었겠지만, 이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군말 없이 응수할 만했다.
가만가만 턱을 쓰다듬듯 잡고 있던 그가 손을 내렸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조.”
모두가 나를 그렇게 부르기는 하지만, 내 이름은 조가 아니다. 그렇다고 잘못된 점을 짚어줄 용기는 없었다.
“내게 고용될 의향이 있습니까?”
진지한 표정의 에드먼드 웬트워스가 제안했다.
***
브레틀렌드 최고의 유명인사이자 대부호인 월폴 공작이 굳이 나를 고용하겠다고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으나, 그 제안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제공할 노동의 대가로 그가 내게 지불할 월급은 100페닝이었다. 통상적인 하녀가 받는 급여보다 많지만 일반적인 마법사를 고용하기에는 한참 모자란 금액이었다.
물론 나를 박봉으로, 혹은 무급으로 부려먹겠다고 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돈까지 주겠다고 하니 되려 고마운 일이었다. 내가 평소에 생활비로 쓰던 금액은 매달 30페닝을 넘기지 않았으므로 갑자기 사치를 즐기게 되지 않는다면 부족할 일도 없었다.
게다가 그는 원래 집에서 쓰던 물건을 가져오고 싶다는 부탁도 들어주었다.
“도착했습니다.”
나는 이 사태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마녀 재판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게 겨우 사흘 전이었다. 이변이 없었다면 바로 오늘 재판이 열렸어야 했다. 그랬다면 나는 재판 도중에 죽거나, 재판이 끝나자마자 죽었을 것이다. 어찌되던 재판이 정상적으로 열렸다면 꼼짝없이 오늘을 넘기지 못했을 신세였다.
마녀로 낙인 찍힌 사흘 전부터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나는 재판 같지도 않은 재판과 그에 따를 고문을 두려워하느라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이 더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 남자가 나를 오두막에서 끌고 나오면서 말하기를, 나를 죽이지는 않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죽이지만은 않겠다고 말이다. 남부 경작지의 악명이 그렇게 자자하던데, 혹시 그곳으로 팔아 넘기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마침 당장 내가 처한 상황의 주도권을 가진 남자가 느긋하게 걸어왔다. 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내 몸은 긴장으로 굳어졌다.
바닥에 꿇어앉은 내 무릎 바로 앞까지 남자의 발이 다가왔다. 나는 광이 나는 그의 가죽 구두를 쳐다봤다.
“불한당을 거북이로 만들었다라…. 꽤 마음에 드는 능력입니다. 어디서도 그런 웃기는 마법은 들어보지 못했거든.”
바닥과 발을 쳐다보고 있느라 남자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방법은 없었으나, 들리는 목소리로 미루어 보아 즐거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즐거워하는 편이 내게 이득이 될 지 알 수 없었으나, 마녀에 대한 증오나 경멸로 불타오르는 꼴보다는 나았다. 그는 내 바로 앞에 딱 멈춰 섰다.
“아, 내 소개를 할까요? 내 이름은 에드먼드 웬트워스입니다.”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구면은 아니었다. 아는 사이였다면 내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 아닌가?
“설마 날 모르는 인간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뭐, 이런 경험도 나름대로 신선하군.”
저 남자를 모르는 인간이 없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릿속을 뒤졌다. 에드먼드 웬트워스라….
“아!”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소리를 내고 한 박자 늦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황급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코끝이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기억이 났다. 그 에드먼드 웬트워스를 모른다면 브레틀랜드에 산다고 할 수 없었다.
그는 월폴의 공작으로, 브레틀랜드에서 제일 가는 부자였다. 하지만 그의 유명세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그의 미모에 관한 소문이었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본 적은 없지만, 외양에 관한 소문 중 틀린 것은 없었다.
듣기로는 본인보다 낮은 신분인 사람들에게도 존대를 하는 등, 매우 신사적이고 상냥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내 귀에 들리는 그의 말투는 소문과 약간의 거리가 있는 것 같았다.
혹시 내 마음이 너무 배배 꼬인 탓에 따사로운 단어조차 삐딱하게 들리는 것일까?
“나를 압니까? 그것참 부끄럽군요.”
물론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 태도였다. 빳빳한 셔츠 원단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돌연 내 턱 아래에 긴 손가락이 닿았다. 내 손은 고급 목재로 짜인 바닥을 짚고 있으므로 그 손이 내 신체의 일부일 리는 없었다.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다가 남의 손이 닿으니 무척 따뜻하게 느껴졌다.
따뜻한 손이 내 턱을 느리지만 강한 힘으로 들어올렸다. 자연스레 나는 그 힘에 딸려 올라가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들자, 마치 금속처럼 시린 냉기가 흐르는 청회색 눈과 마주쳤다.
그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다른 쪽은 굽힌 채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물론 그래도 나는 한참 시선을 들어야 했다.
진한 눈매가 살짝 찌푸려지며 나를 탐색하듯이 훑었다.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습니까?”
마치 추파처럼 들리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추파일 리가 없었다. 그런 말을 한 주체가 월폴 공작이라면, 더더욱.
그는 소문 그 이상으로 굉장한 미남이었다. 그 같이 인상적인 외모를 가진 남자를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나는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아니요!”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그가 눈썹을 쓱 들어올렸다.
“그렇게까지 부정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어디서 거절당할 외모는 아닌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 같았으면 어디서 난 자신감이냐고 되묻고 싶었겠지만, 이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군말 없이 응수할 만했다.
가만가만 턱을 쓰다듬듯 잡고 있던 그가 손을 내렸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조.”
모두가 나를 그렇게 부르기는 하지만, 내 이름은 조가 아니다. 그렇다고 잘못된 점을 짚어줄 용기는 없었다.
“내게 고용될 의향이 있습니까?”
진지한 표정의 에드먼드 웬트워스가 제안했다.
***
브레틀렌드 최고의 유명인사이자 대부호인 월폴 공작이 굳이 나를 고용하겠다고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으나, 그 제안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제공할 노동의 대가로 그가 내게 지불할 월급은 100페닝이었다. 통상적인 하녀가 받는 급여보다 많지만 일반적인 마법사를 고용하기에는 한참 모자란 금액이었다.
물론 나를 박봉으로, 혹은 무급으로 부려먹겠다고 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돈까지 주겠다고 하니 되려 고마운 일이었다. 내가 평소에 생활비로 쓰던 금액은 매달 30페닝을 넘기지 않았으므로 갑자기 사치를 즐기게 되지 않는다면 부족할 일도 없었다.
게다가 그는 원래 집에서 쓰던 물건을 가져오고 싶다는 부탁도 들어주었다.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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