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행복해질 자격 (12)
조회 : 1,144 추천 : 0 글자수 : 5,127 자 2023-07-23
3시간 전.
"수호자시여."
테시엘과 함께 카페테리아에 들어가려던 찰나,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이스티나는 고개를 돌렸다.
테시엘과 에멜리타 역시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분홍색 머리에 연두빛 눈동자. 순간적으로 스텔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스텔라와..."
"정식으로 인사하겠습니다. 마녀 일족의 첫번째 수장, 올리비아 루미너스가 남쪽 수호자를 뵙습니다."
자신을 올리비아라 소개한 여자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이스티나에게 예를 표했다.
'첫번째'라는 말을 묘하게 강조한 것 같은 건 착각일까.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인사였지만, 이스티나는 왠지 모르게 위화감을 느꼈다.
무표정한 얼굴은 차가워 보였고, 목소리는 칼을 품은 듯 날이 서 있었다.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 듯, 에멜리타가 움찔했다. 무서웠는지 에멜리타는 고개를 돌려 이스티나의 품에 묻었다.
게다가 스텔라에 대해 물어보려고 할 때,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기 싫다는 듯 말을 돌린 것 같았다.
'루미너스라...'
분명 스텔라와 똑같은 성이었다. 그렇다는 건 올리비아가 스텔라의 친모가 맞다는 소리인데.
마녀 일족은 모계 사회로, 딸이 태어나면 무조건 어머니 쪽으로 들어와야 한다.
게다가 소속감도 강해 그들에게 가족과 일족은 동일어였다.
그래서 각자 누구의 핏줄인지 구분하게 하는 건 바로 성(Family name)이었다.
문득 병실에서 스텔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내가 1등을 할 때마다 웃어 주시고, 날 칭찬해 주셨어. 그런 나를 키워준 어머니에게 보답하고 싶어서 1등을 유지하려고 아등바등 노력했어.
-너한테 그 자리를 빼앗겼을 때, 그때 내가 두려웠던 건 다른 애들이나 선생님들의 실망이 아니었어. 그건...더 이상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거였어.
스텔라가 한 말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올리비아는 진심으로 스텔라를 사랑하는 게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있는 그대로의 스텔라가 아닌 1등, 즉 최고를 가진 스텔라를 사랑한 것이었다.
'자신이 최고이기에 딸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스텔라가 대신 꿈을 이루어주길 바라는 건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사자들만 알 것이다.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제 3자가 끼어들 이유는 없었다.
"그래. 마녀 일족의 수장이 내게 무슨 볼일인가?"
"미리 약속 잡지 못한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다름이 아니라,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이렇게 찾아 뵈었습니다."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냐?"
"수호자 님이 들고 계신 아이입니다."
이스티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에멜리타에 대한 것이라?"
"네. 잠깐이면 되니, 부디 귀한 시간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겉으로는 양해를 구하는 말이었지만,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니 협박처럼 들렸다.
이스티나는 잠시 고민했다. 올리비아는 분명 예의바른 사람이지만, 그와 별개로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았다.
베르세크가 예의를 차릴 때는 딱딱해 보일 지언정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세심함이 느껴져 편안했다.
하지만 올리비아가 예의를 차렸을 땐 적대심이 느껴져 왠지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물론 스텔라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건 개인적인 생각일 뿐, 아직 판단을 내리긴 일렀다.
세상은 넓고 저마다 성격도 가치관도 다양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스티나는 편견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자신을 더러운 핏줄이라 부르며 핍박하던 이들과 뭐가 다르겠는가.
'그래도 같은 일족인데, 아이한테까지 죄를 묻지는 않겠지.'
아이의 어미를 미워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로엔 때문에 일족 전체가 욕을 먹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이는 아니다. 그저 태어나 어미의 저주를 받았을 뿐인데, 뭘 알겠는가.
소속감 강한 마녀 일족이라면, 아이만은 받아주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마녀 일족이 어떤 일족인가. 마법에 능한 일족이 아니던가.
분명 로엔의 저주를 풀 방법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다면 큰 수확이었다.
에멜리타의 반응이 신경쓰이긴 했지만, 지금은 저주를 푸는 게 우선이었다.
"좋네. 그럼 카페테리아 안에서 얘기를 나누는 건 어떤가?"
"네. 그렇다면 프라이빗 룸(Private room)으로 가시죠."
고개를 끄덕인 이스티나는 테시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테스, 먼저 가는 건 어떻겠느냐?"
"응? 아냐. 에멜리타에 관한 거라면 나도 들을래. 그리고..."
테시엘은 잠시 머뭇거리다 뒷목을 문지르며 이스티나를 쳐다보았다.
"네가 걱정되기도 하고."
"내가 그 정도로 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건 너도 알텐데."
"알아! 알지만...왠지 네 일이면 마냥 안심할 수 없으니까."
이스티나는 피식- 웃었다. 자신에 대해 자세한 사실을 모르는 이가 듣는다면 경악할 말이었다.
어린애 취급받는 게 귀찮을 법도 하건만, 테시엘에게는 오히려 고마운 마음만 들었다.
아카데미를 다닐 때에도, 스승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도 테시엘은 항상 자신을 생각해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남쪽 수호자'로만 생각할 뿐, '한 명의 인간'으로서는 생각해주는 건 테시엘 뿐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자신뿐만 아니라 에멜리타도 생각해주고 있었다.
'이 일이 끝나면 테스랑 에멜이랑 셋이서 다과회 가지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좋은 징조라 생각한 이스티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올리비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실례지만 내 일행도 대화에 참여해도 되겠나? 이 일과 무관하지 않은데다 믿을 만한 사람이니, 괜찮다네."
올리비아는 잠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얼굴을 갈무리하고는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십시오."
수호자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반대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렇게 이스티나와 에멜리타, 그리고 테시엘은 올리비아를 따라 카페테리아로 들어갔다.
딸랑-
"어서 오세...아, 또 오셨군요!"
올리비아를 알아본 쥐 점원이 반색했다. 서빙하고 온 건지 쟁반을 들고 있었다.
"어라? 손님이 더 오셨...어머나, 수호자 님!"
쥐 점원은 아까 왔을 때보다 손님이 많아진 것에 의아했다. 하지만 뒤에 있는 손님들 중 한 명을 알아보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땅-
쟁반 떨어진 소리가 컸던 건지, 아니면 쥐 점원의 목소리가 컸던 건지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안 그래도 들어올 때부터 힐끗힐끗-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긴 했지만, 이렇게 한번에 노골적인 주목을 받으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테시엘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이스티나의 어깨를 팔꿈치로 툭툭- 쳤다.
"이야, 너 인기가 장난 아닌데?"
"테스, 그만하면 안되겠나."
이스티나와 테시엘이 투닥거리든지 말든지, 올리비아는 품에서 쥐와 찻잔이 그려진 보석을 꺼내어 쥐 점원에게 보여주었다.
"안내해 주시죠."
"아, 앗, 네!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수호자 님."
올리비아의 목소리에 테시엘과 이스티나는 행동을 멈추고 올리비아를 따라갔다.
"프라이빗 룸이라...이 카페테리아의 단골 손님인가보구나."
올리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끝나면 케이크를 먹으러 자주 오곤 합니다."
"그런가, 부럽군."
프라이빗 룸(Private room)
말 그대로 개인실로, 단골 손님들만 가질 수 있는 특권 중 하나였다.
커튼을 치면 바로 방음 마법이 발동되는데, 이게 개인실이 가진 장점 중 하나였다.
게다가 계산대로 직접 가지 않아도 테이블에 있는 특수한 통신석으로 음료와 디저트를 주문할 수 있다.
"수호자 님이랑 일행 분은 뭘 드시겠습니까?"
"흠, 잠시만 있어보게."
이스티나는 통신석으로 메뉴를 쭉- 훑어보았다. 옆에 앉은 테시엘도 메뉴를 같이 보았고, 에멜리타 역시 고개를 돌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메뉴를 바라보았다.
"난 이걸 먹을래."
테시엘이 메뉴에 있는 무지개 파르페를 가리켰다.
"난 카모마일 차로 하겠네. 에멜, 딸기 슈를 주문해도 되겠느냐?"
"네! 아, 그, 그리고...딸기 주스도 마시고 싶어요."
해맑게 대답하던 에멜리타는 올리비아를 의식하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추가 주문을 했다. 이스티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비아는 일행의 몫까지 통신석으로 주문을 하고는 두 손으로 깍지를 꼈다.
진지해진 분위기에 테시엘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저 마녀, 아까부터 왠지 기분이 나빴다.
'설마 이스티나를 해치려고 온 건 아니겠지.'
물론 수호자를 해코지할 정도로 간이 큰 자가 있겠냐마는, 수도라고 해서 마음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여긴 고립된 공간이라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테시엘은 오른손을 의자 위에, 그리고 검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올렸다.
"수호자 님, 저 아이가 정말로 로엔 리시드의 아이가 맞습니까?"
올리비아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로엔의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답을 받고 나가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아닐 가능성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올리비아의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었다.
하지만,
"그렇다네. 에멜리타는 파스칼 유포리아와 내 친우, 로엔 리시드의 혈육이라네."
"...하하, 하하하하!"
불안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고 했던가.
이스티나의 대답을 들은 올리비아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소름끼치던지 기가 센 테시엘마저 움찔했다.
에멜리타는 안그래도 올리비아의 차가운 태도에 무서워하고 있었는데, 더 겁먹고 이스티나의 품 속으로 깊숙히 파고들었다. 이스티나는 양팔로 에멜리타의 귀를 가려주었다.
반응을 보인 둘과 다르게 이스티나는 무덤덤했으나, 지팡이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익숙한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로엔도 저런 모습으로 파스칼을 저주했지.'
피범벅인 채로 기괴하게 웃으며 제 남편을 저주했던 푸른 마녀.
문득 금지된 동굴에서 보았던 파스칼이 떠올랐다. 그는 정말로 괜찮은 걸까.
그 사이, 웃음을 멈춘 올리비아가 고개를 내리고 이스티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연두빛 눈동자가 광기와 분노로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수호자시여."
테시엘과 함께 카페테리아에 들어가려던 찰나,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이스티나는 고개를 돌렸다.
테시엘과 에멜리타 역시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분홍색 머리에 연두빛 눈동자. 순간적으로 스텔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스텔라와..."
"정식으로 인사하겠습니다. 마녀 일족의 첫번째 수장, 올리비아 루미너스가 남쪽 수호자를 뵙습니다."
자신을 올리비아라 소개한 여자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이스티나에게 예를 표했다.
'첫번째'라는 말을 묘하게 강조한 것 같은 건 착각일까.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인사였지만, 이스티나는 왠지 모르게 위화감을 느꼈다.
무표정한 얼굴은 차가워 보였고, 목소리는 칼을 품은 듯 날이 서 있었다.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 듯, 에멜리타가 움찔했다. 무서웠는지 에멜리타는 고개를 돌려 이스티나의 품에 묻었다.
게다가 스텔라에 대해 물어보려고 할 때,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기 싫다는 듯 말을 돌린 것 같았다.
'루미너스라...'
분명 스텔라와 똑같은 성이었다. 그렇다는 건 올리비아가 스텔라의 친모가 맞다는 소리인데.
마녀 일족은 모계 사회로, 딸이 태어나면 무조건 어머니 쪽으로 들어와야 한다.
게다가 소속감도 강해 그들에게 가족과 일족은 동일어였다.
그래서 각자 누구의 핏줄인지 구분하게 하는 건 바로 성(Family name)이었다.
문득 병실에서 스텔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내가 1등을 할 때마다 웃어 주시고, 날 칭찬해 주셨어. 그런 나를 키워준 어머니에게 보답하고 싶어서 1등을 유지하려고 아등바등 노력했어.
-너한테 그 자리를 빼앗겼을 때, 그때 내가 두려웠던 건 다른 애들이나 선생님들의 실망이 아니었어. 그건...더 이상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거였어.
스텔라가 한 말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올리비아는 진심으로 스텔라를 사랑하는 게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있는 그대로의 스텔라가 아닌 1등, 즉 최고를 가진 스텔라를 사랑한 것이었다.
'자신이 최고이기에 딸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스텔라가 대신 꿈을 이루어주길 바라는 건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사자들만 알 것이다.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제 3자가 끼어들 이유는 없었다.
"그래. 마녀 일족의 수장이 내게 무슨 볼일인가?"
"미리 약속 잡지 못한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다름이 아니라,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이렇게 찾아 뵈었습니다."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냐?"
"수호자 님이 들고 계신 아이입니다."
이스티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에멜리타에 대한 것이라?"
"네. 잠깐이면 되니, 부디 귀한 시간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겉으로는 양해를 구하는 말이었지만,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니 협박처럼 들렸다.
이스티나는 잠시 고민했다. 올리비아는 분명 예의바른 사람이지만, 그와 별개로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았다.
베르세크가 예의를 차릴 때는 딱딱해 보일 지언정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세심함이 느껴져 편안했다.
하지만 올리비아가 예의를 차렸을 땐 적대심이 느껴져 왠지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물론 스텔라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건 개인적인 생각일 뿐, 아직 판단을 내리긴 일렀다.
세상은 넓고 저마다 성격도 가치관도 다양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스티나는 편견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자신을 더러운 핏줄이라 부르며 핍박하던 이들과 뭐가 다르겠는가.
'그래도 같은 일족인데, 아이한테까지 죄를 묻지는 않겠지.'
아이의 어미를 미워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로엔 때문에 일족 전체가 욕을 먹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이는 아니다. 그저 태어나 어미의 저주를 받았을 뿐인데, 뭘 알겠는가.
소속감 강한 마녀 일족이라면, 아이만은 받아주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마녀 일족이 어떤 일족인가. 마법에 능한 일족이 아니던가.
분명 로엔의 저주를 풀 방법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다면 큰 수확이었다.
에멜리타의 반응이 신경쓰이긴 했지만, 지금은 저주를 푸는 게 우선이었다.
"좋네. 그럼 카페테리아 안에서 얘기를 나누는 건 어떤가?"
"네. 그렇다면 프라이빗 룸(Private room)으로 가시죠."
고개를 끄덕인 이스티나는 테시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테스, 먼저 가는 건 어떻겠느냐?"
"응? 아냐. 에멜리타에 관한 거라면 나도 들을래. 그리고..."
테시엘은 잠시 머뭇거리다 뒷목을 문지르며 이스티나를 쳐다보았다.
"네가 걱정되기도 하고."
"내가 그 정도로 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건 너도 알텐데."
"알아! 알지만...왠지 네 일이면 마냥 안심할 수 없으니까."
이스티나는 피식- 웃었다. 자신에 대해 자세한 사실을 모르는 이가 듣는다면 경악할 말이었다.
어린애 취급받는 게 귀찮을 법도 하건만, 테시엘에게는 오히려 고마운 마음만 들었다.
아카데미를 다닐 때에도, 스승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도 테시엘은 항상 자신을 생각해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남쪽 수호자'로만 생각할 뿐, '한 명의 인간'으로서는 생각해주는 건 테시엘 뿐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자신뿐만 아니라 에멜리타도 생각해주고 있었다.
'이 일이 끝나면 테스랑 에멜이랑 셋이서 다과회 가지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좋은 징조라 생각한 이스티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올리비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실례지만 내 일행도 대화에 참여해도 되겠나? 이 일과 무관하지 않은데다 믿을 만한 사람이니, 괜찮다네."
올리비아는 잠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얼굴을 갈무리하고는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십시오."
수호자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반대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렇게 이스티나와 에멜리타, 그리고 테시엘은 올리비아를 따라 카페테리아로 들어갔다.
딸랑-
"어서 오세...아, 또 오셨군요!"
올리비아를 알아본 쥐 점원이 반색했다. 서빙하고 온 건지 쟁반을 들고 있었다.
"어라? 손님이 더 오셨...어머나, 수호자 님!"
쥐 점원은 아까 왔을 때보다 손님이 많아진 것에 의아했다. 하지만 뒤에 있는 손님들 중 한 명을 알아보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땅-
쟁반 떨어진 소리가 컸던 건지, 아니면 쥐 점원의 목소리가 컸던 건지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안 그래도 들어올 때부터 힐끗힐끗-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긴 했지만, 이렇게 한번에 노골적인 주목을 받으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테시엘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이스티나의 어깨를 팔꿈치로 툭툭- 쳤다.
"이야, 너 인기가 장난 아닌데?"
"테스, 그만하면 안되겠나."
이스티나와 테시엘이 투닥거리든지 말든지, 올리비아는 품에서 쥐와 찻잔이 그려진 보석을 꺼내어 쥐 점원에게 보여주었다.
"안내해 주시죠."
"아, 앗, 네!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수호자 님."
올리비아의 목소리에 테시엘과 이스티나는 행동을 멈추고 올리비아를 따라갔다.
"프라이빗 룸이라...이 카페테리아의 단골 손님인가보구나."
올리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끝나면 케이크를 먹으러 자주 오곤 합니다."
"그런가, 부럽군."
프라이빗 룸(Private room)
말 그대로 개인실로, 단골 손님들만 가질 수 있는 특권 중 하나였다.
커튼을 치면 바로 방음 마법이 발동되는데, 이게 개인실이 가진 장점 중 하나였다.
게다가 계산대로 직접 가지 않아도 테이블에 있는 특수한 통신석으로 음료와 디저트를 주문할 수 있다.
"수호자 님이랑 일행 분은 뭘 드시겠습니까?"
"흠, 잠시만 있어보게."
이스티나는 통신석으로 메뉴를 쭉- 훑어보았다. 옆에 앉은 테시엘도 메뉴를 같이 보았고, 에멜리타 역시 고개를 돌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메뉴를 바라보았다.
"난 이걸 먹을래."
테시엘이 메뉴에 있는 무지개 파르페를 가리켰다.
"난 카모마일 차로 하겠네. 에멜, 딸기 슈를 주문해도 되겠느냐?"
"네! 아, 그, 그리고...딸기 주스도 마시고 싶어요."
해맑게 대답하던 에멜리타는 올리비아를 의식하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추가 주문을 했다. 이스티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비아는 일행의 몫까지 통신석으로 주문을 하고는 두 손으로 깍지를 꼈다.
진지해진 분위기에 테시엘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저 마녀, 아까부터 왠지 기분이 나빴다.
'설마 이스티나를 해치려고 온 건 아니겠지.'
물론 수호자를 해코지할 정도로 간이 큰 자가 있겠냐마는, 수도라고 해서 마음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여긴 고립된 공간이라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테시엘은 오른손을 의자 위에, 그리고 검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올렸다.
"수호자 님, 저 아이가 정말로 로엔 리시드의 아이가 맞습니까?"
올리비아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로엔의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답을 받고 나가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아닐 가능성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올리비아의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었다.
하지만,
"그렇다네. 에멜리타는 파스칼 유포리아와 내 친우, 로엔 리시드의 혈육이라네."
"...하하, 하하하하!"
불안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고 했던가.
이스티나의 대답을 들은 올리비아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소름끼치던지 기가 센 테시엘마저 움찔했다.
에멜리타는 안그래도 올리비아의 차가운 태도에 무서워하고 있었는데, 더 겁먹고 이스티나의 품 속으로 깊숙히 파고들었다. 이스티나는 양팔로 에멜리타의 귀를 가려주었다.
반응을 보인 둘과 다르게 이스티나는 무덤덤했으나, 지팡이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익숙한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로엔도 저런 모습으로 파스칼을 저주했지.'
피범벅인 채로 기괴하게 웃으며 제 남편을 저주했던 푸른 마녀.
문득 금지된 동굴에서 보았던 파스칼이 떠올랐다. 그는 정말로 괜찮은 걸까.
그 사이, 웃음을 멈춘 올리비아가 고개를 내리고 이스티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연두빛 눈동자가 광기와 분노로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작가의 말
오, 올리비아...제발 에멜한테 상처는 주지 마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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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5 외전 1-마녀와 뱀의 독기어린 증오 (2)조회 : 96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25 35.#34 외전 1-마녀와 뱀의 독기어린 증오 (1)조회 : 1,00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37 34.#33 행복해질 자격 (14)조회 : 88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584 33.#32 행복해질 자격 (13)조회 : 1,12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28 32.#31 행복해질 자격 (12)조회 : 1,14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27 31.#30 행복해질 자격 (11)조회 : 25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67 30.#29 행복해질 자격 (10)조회 : 95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75 29.#28 행복해질 자격 (9)조회 : 30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28 28.#27 행복해질 자격 (8)조회 : 14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01 27.#26 행복해질 자격 (7)조회 : 17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84 26.#25 행복해질 자격 (6)조회 : 17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11 25.#24 행복해질 자격 (5)조회 : 12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05 24.#23 행복해질 자격 (4)조회 : 17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15 23.#22 행복해질 자격 (3)조회 : 25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68 22.#21 행복해질 자격 (2)조회 : 10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937 21.#20 행복해질 자격 (1)조회 : 28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76 20.#19 카오스톰 (11)조회 : 41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75 19.#18 카오스톰 (10)조회 : 10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72 18.#17 카오스톰 (9)조회 : 13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74 17.#16 카오스톰 (8)조회 : 17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67 16.#15 카오스톰 (7)조회 : 15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93 15.#14 카오스톰 (6)조회 : 18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02 14.#13 카오스톰 (5)조회 : 17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528 13.#12 카오스톰 (4)조회 : 17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71 12.#11 카오스톰 (3)조회 : 17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09 11.#10 카오스톰 (2)조회 : 19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15 10.#9 카오스톰 (1)조회 : 22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99 9.#8 재회 (4)조회 : 21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75 8.#7 재회 (3)조회 : 31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66 7.#6 재회 (2)조회 : 25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52 6.#5 재회 (1)조회 : 26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40 5.#4 저주의 시작 (4)조회 : 27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60 4.#3 저주의 시작 (3)조회 : 25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26 3.#2 저주의 시작 (2)조회 : 339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164 2.#1 저주의 시작 (1)조회 : 410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318 1.프롤로그조회 : 1,488 추천 : 1 댓글 : 0 글자 : 2,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