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악마 퇴치
조회 : 1,223 추천 : 0 글자수 : 3,866 자 2022-12-16
44. 악마 퇴치
한동안 미친 듯이 웃어대던 이경한 놈은 마치 중국의 변검 공연이라도 하듯 얼굴을 바꾸며 입을 열었다. 아주 잔약한 목소리로, 얼핏 속을 수도 있을 만큼 애처롭게 말이다.
“진수야! 그러지 말고 우리 술 한 잔 하자. 응? 꺼지라는 말이 웃겨서 웃었어. 너 원래 그런 험한 말 쓰던 사람 아니었잖아? 세월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구나.”
“······.”
진수는 별 대꾸 없이 놈을 쳐다만 보았다. 난 속지 말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가 자신 있다고 했으니 믿어보기로 했다. 그저 그의 옆에서 지켜만 보는 게 좋을 듯싶었다.
“응? 내가 살게. 너한테 할 말 많아. 가자, 응? 아니면 니네 집에서 한 잔 할까?”
“아니. 난 아무하고나 술 안 마셔.”
“아무? 그게 친구한테 할 소린 아닌 거 같다. 하지만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게 많아서 그런 거 같으니까 우리 오해 풀자. 응?”
“아니. 풀고 말고 할 거 없어. 그런 건 친구하고나 하는 거지. 너랑 내가 뭔 사이라고 그런 걸 해? 그만 가라. 나 피곤해.”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대문을 열었다. 그런데 놈의 인내심은 그새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의 등 뒤에 대고 놈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너, 또 거절하면 진짜 후회할 일 생길거야. 고딩 때부터 쭉 내 경고 개무시하는데 안 그러는 게 좋을 걸?”
그래도 그가 들은 척 만 척 무시하고 들어가려고 하자 놈은 쏜살같이 다가와서는 그의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뭐하는 짓이야? 이거 놔!”
그는 힘으로 놈의 팔을 꺾더니 가볍게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놈은 더 용천지랄을 해대며 소리쳤다.
“니가 뭔데 날 미치게 해? 왜 졸라 내 신경 긁는 거냐고? 박진수 니가 졸라 대단해? 졸라 나 자극하지 마. 내 경고 무시하지 말라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 대답은 같아. 니 맘대로 해.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그 또한 만만치 않았다. 난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느꼈는지 그가 날 돌아보며 빙긋 웃어보였다. 그가 집 안으로 들어가서 대문을 닫아버리자 놈이 또 제 분에 못 이겨 말을 쏟아냈다. 현관문을 열려는데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똥멍청이 씹새야! 대가리가 있으면 생각 좀 해라. 공부 잘하면 뭐하냐? 존나 돌대가리인데. 크크크. 거기 내가 왜 자빠져 있었겠냐? 내가 너처럼 뚜벅이냐? 나 버스비 지하철비도 얼만지 모르거든? 내 차만 타고 다니는 사람이 거기에 왜 자빠져 있었을까? 크크크.”
“아뿔사!”
내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왜 그걸 생각 못했을까. 맞았다. 놈이 그 시간 그곳에 쓰러져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일부러 넘어져 있었다는 소리였다.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짜낸 놈의 철저한 계획이었다.
“천하 븅신 씹새야! 넌 죽기 전엔 나한테서 못 벗어나! 크크크. 졸라 힘들면 차라리 죽든가! 살려달라고 졸라 빌든가. 크크크.”
발악하는 놈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잠시 서있었다. 나 또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하도 어이 상실이라 말조차 나오지를 않았다. 싸움도 인간과 하는 거였다. 놈은 인간이 아니었다. 모기약으로 모기를 때려잡듯 한 번에 놈을 박멸할 수 있는 약이 없을까.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까지 들 게 만들었다.
“왜 못했지?”
그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어찌 보면 겁에 질려서 그랬던 거 같다. 조금만 다각도로 생각해 봤다면 그날의 진수도, 얘기를 전해들은 나도 충분히 알아차렸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더 유연하게 대처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들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자꾸만 자책이 들었다.
그날 이경한 놈은 작정하고 그를 유인하기 위해 길에 쓰러져 있었던 거였다. 당연히 아픈 것도 다 쇼였고. 놈이 왜 그렇게까지 해서 그를 만나고자 했는지 그건 놈만이 아는 일일 것이다. 놈은 보통 사람의 머리에선 나올 수도 없는 엄청난 범죄를 잘도 꾸며댔고 어떤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애당초 놈에게 그런 걸 바란다는 게 한심할 지경이었다. 놈은 본인이 저질렀던 수많은 악행들은 다 잊은 듯 오로지 거절당했다는 사실에만 분노하고 있었다. 놈이야말로 이 사회에서 격리 당해야 마땅한 사이코패스였다.
****
“박진수! 니가 이겼다고 생각해? 졸라 착각하지 마. 내가 이대로 끝일 거 같아? 아니, 넌 내 손에 죽어. 난 갖지 못하는 건 졸라 박살내야 신경이 안 거슬려. 기다려, 너 죽이러 올 테니까. 아 윌 비 백. 크크크. ”
이경한은 경찰에게 연행되어 가는 순간에도 약에 취해 횡설수설하며 진수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그래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놈이 잡혀가는 걸 지켜보았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한껏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봐, 자신 있다고 했지? 이제 이경한은 살아서는 못 나와. 교도소에서 늙어 죽을 거야.”
“정말 그렇겠지?”
내 말투에서 의심이 묻어났는지 그가 다그치듯 물었다.
“의심해? 안 믿겨?”
“그게 아니라 왜 영화 같은데 보면 형집행정지, 뭐 이런 거로 나오기도 하고 그러잖아.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
“어, 단언컨데 절대 없어. 우리 죽을 때까지 이경한 얼굴 볼일 없어. 그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알았어, 너야말로 이젠 좀 쉬어. 얼굴이 반쪽이 됐어.”
“그래, 그러자.”
“근데 진수야! 어떻게 된 건지, 다 말해 줄 거지?”
“응.”
****
진수는 이경한이 집 앞까지 쫓아와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간 후 보름 동안 별말 없이 일상을 살았다. 직장을 다니고 초등생인 진영이를 보살피고 집안 살림을 하는 등 바쁘게. 사람들 눈엔 안보여도 애인인 나까지 살뜰히 챙겨주었다.
그렇지만 밤만 되면 잠을 안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게 보였다. 무언가 은밀히 준비하는 거 같은데 내겐 도통 말하지 않았다. 문득문득 골똘히 생각에 잠긴 그를 보며 왜 그러느냐고 캐물었지만 그래도 그는 답하지 않았다. 고냥 줄곧 자기를 믿고 지켜만 봐달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보름이 흘렀고 그가 말했다.
“나, 이경한 만나러 가.”
“왜? 또 연락 왔어?”
내가 깜짝 놀라서 물었더니 그는 날 안심시키려는 듯 웃으며 답했다.
“아니, 내가 했어.”
“왜, 일부러? 피하기로 했잖아? 니가 상대할 놈이 아냐. 인간이 아닌데 니가 어떻게 상대하려고? 가지 마. 취소하고 가지 마. 응?”
“괜찮아. 언제까지 피하고만 살 거야? 지난번처럼 내 손에 피 묻히기 싫어 피할까 생각도 했지만 이젠 결단을 내리려고. 끝낼 거야. 이미 이경한이 날 타깃으로 삼은 이상 끝을 봐야 끝나. 난 계속 도망 다니면서 살기 싫어. 그럴 이유도 없고. 내가 죄은 죄가 없는데 왜 그래야 하는데? 또 죽일까봐? 설령 그런다 해도 이젠 피하지 않을 거야. 놈을 죽이든 내가 살든 둘 중에 하나는 할 거야.”
“진수야······.”
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불안감에 좌불안석이 되었다. 그의 말이 다 맞았다. 틀린 말도 잘못된 생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안했다. 지 맘대로 안 된다는 이유로 그를 파리 죽이듯 차로 짓이겨버린 놈을 생각하면 살이 떨렸다. 저승 문턱까지 갔던 그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그와 영영 이별할 뻔했다.
그런데 또 그런 일을 당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무조건 말려야했다.
“자기야, 가지 마. 너무 불길해. 힘들어도 귀찮아도 피하자. 응?”
“아무 걱정 하지 마. 다시 말해 줄까? 자신 있으니까 믿고 기다려. 나 믿지?”
그의 결의에 찬 말투에 난 그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나도 같이 갈래. 옆에 있을래.”
그는 잠시 머뭇하다가 답했다.
“그래, 오지 말란다고 안 올 것도 아니고······. 근데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마. 알았지?”
한동안 미친 듯이 웃어대던 이경한 놈은 마치 중국의 변검 공연이라도 하듯 얼굴을 바꾸며 입을 열었다. 아주 잔약한 목소리로, 얼핏 속을 수도 있을 만큼 애처롭게 말이다.
“진수야! 그러지 말고 우리 술 한 잔 하자. 응? 꺼지라는 말이 웃겨서 웃었어. 너 원래 그런 험한 말 쓰던 사람 아니었잖아? 세월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구나.”
“······.”
진수는 별 대꾸 없이 놈을 쳐다만 보았다. 난 속지 말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가 자신 있다고 했으니 믿어보기로 했다. 그저 그의 옆에서 지켜만 보는 게 좋을 듯싶었다.
“응? 내가 살게. 너한테 할 말 많아. 가자, 응? 아니면 니네 집에서 한 잔 할까?”
“아니. 난 아무하고나 술 안 마셔.”
“아무? 그게 친구한테 할 소린 아닌 거 같다. 하지만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게 많아서 그런 거 같으니까 우리 오해 풀자. 응?”
“아니. 풀고 말고 할 거 없어. 그런 건 친구하고나 하는 거지. 너랑 내가 뭔 사이라고 그런 걸 해? 그만 가라. 나 피곤해.”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대문을 열었다. 그런데 놈의 인내심은 그새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의 등 뒤에 대고 놈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너, 또 거절하면 진짜 후회할 일 생길거야. 고딩 때부터 쭉 내 경고 개무시하는데 안 그러는 게 좋을 걸?”
그래도 그가 들은 척 만 척 무시하고 들어가려고 하자 놈은 쏜살같이 다가와서는 그의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뭐하는 짓이야? 이거 놔!”
그는 힘으로 놈의 팔을 꺾더니 가볍게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놈은 더 용천지랄을 해대며 소리쳤다.
“니가 뭔데 날 미치게 해? 왜 졸라 내 신경 긁는 거냐고? 박진수 니가 졸라 대단해? 졸라 나 자극하지 마. 내 경고 무시하지 말라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 대답은 같아. 니 맘대로 해.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그 또한 만만치 않았다. 난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느꼈는지 그가 날 돌아보며 빙긋 웃어보였다. 그가 집 안으로 들어가서 대문을 닫아버리자 놈이 또 제 분에 못 이겨 말을 쏟아냈다. 현관문을 열려는데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똥멍청이 씹새야! 대가리가 있으면 생각 좀 해라. 공부 잘하면 뭐하냐? 존나 돌대가리인데. 크크크. 거기 내가 왜 자빠져 있었겠냐? 내가 너처럼 뚜벅이냐? 나 버스비 지하철비도 얼만지 모르거든? 내 차만 타고 다니는 사람이 거기에 왜 자빠져 있었을까? 크크크.”
“아뿔사!”
내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왜 그걸 생각 못했을까. 맞았다. 놈이 그 시간 그곳에 쓰러져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일부러 넘어져 있었다는 소리였다.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짜낸 놈의 철저한 계획이었다.
“천하 븅신 씹새야! 넌 죽기 전엔 나한테서 못 벗어나! 크크크. 졸라 힘들면 차라리 죽든가! 살려달라고 졸라 빌든가. 크크크.”
발악하는 놈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잠시 서있었다. 나 또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하도 어이 상실이라 말조차 나오지를 않았다. 싸움도 인간과 하는 거였다. 놈은 인간이 아니었다. 모기약으로 모기를 때려잡듯 한 번에 놈을 박멸할 수 있는 약이 없을까.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까지 들 게 만들었다.
“왜 못했지?”
그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어찌 보면 겁에 질려서 그랬던 거 같다. 조금만 다각도로 생각해 봤다면 그날의 진수도, 얘기를 전해들은 나도 충분히 알아차렸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더 유연하게 대처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들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자꾸만 자책이 들었다.
그날 이경한 놈은 작정하고 그를 유인하기 위해 길에 쓰러져 있었던 거였다. 당연히 아픈 것도 다 쇼였고. 놈이 왜 그렇게까지 해서 그를 만나고자 했는지 그건 놈만이 아는 일일 것이다. 놈은 보통 사람의 머리에선 나올 수도 없는 엄청난 범죄를 잘도 꾸며댔고 어떤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애당초 놈에게 그런 걸 바란다는 게 한심할 지경이었다. 놈은 본인이 저질렀던 수많은 악행들은 다 잊은 듯 오로지 거절당했다는 사실에만 분노하고 있었다. 놈이야말로 이 사회에서 격리 당해야 마땅한 사이코패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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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수! 니가 이겼다고 생각해? 졸라 착각하지 마. 내가 이대로 끝일 거 같아? 아니, 넌 내 손에 죽어. 난 갖지 못하는 건 졸라 박살내야 신경이 안 거슬려. 기다려, 너 죽이러 올 테니까. 아 윌 비 백. 크크크. ”
이경한은 경찰에게 연행되어 가는 순간에도 약에 취해 횡설수설하며 진수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그래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놈이 잡혀가는 걸 지켜보았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한껏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봐, 자신 있다고 했지? 이제 이경한은 살아서는 못 나와. 교도소에서 늙어 죽을 거야.”
“정말 그렇겠지?”
내 말투에서 의심이 묻어났는지 그가 다그치듯 물었다.
“의심해? 안 믿겨?”
“그게 아니라 왜 영화 같은데 보면 형집행정지, 뭐 이런 거로 나오기도 하고 그러잖아.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
“어, 단언컨데 절대 없어. 우리 죽을 때까지 이경한 얼굴 볼일 없어. 그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알았어, 너야말로 이젠 좀 쉬어. 얼굴이 반쪽이 됐어.”
“그래, 그러자.”
“근데 진수야! 어떻게 된 건지, 다 말해 줄 거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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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는 이경한이 집 앞까지 쫓아와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간 후 보름 동안 별말 없이 일상을 살았다. 직장을 다니고 초등생인 진영이를 보살피고 집안 살림을 하는 등 바쁘게. 사람들 눈엔 안보여도 애인인 나까지 살뜰히 챙겨주었다.
그렇지만 밤만 되면 잠을 안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게 보였다. 무언가 은밀히 준비하는 거 같은데 내겐 도통 말하지 않았다. 문득문득 골똘히 생각에 잠긴 그를 보며 왜 그러느냐고 캐물었지만 그래도 그는 답하지 않았다. 고냥 줄곧 자기를 믿고 지켜만 봐달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보름이 흘렀고 그가 말했다.
“나, 이경한 만나러 가.”
“왜? 또 연락 왔어?”
내가 깜짝 놀라서 물었더니 그는 날 안심시키려는 듯 웃으며 답했다.
“아니, 내가 했어.”
“왜, 일부러? 피하기로 했잖아? 니가 상대할 놈이 아냐. 인간이 아닌데 니가 어떻게 상대하려고? 가지 마. 취소하고 가지 마. 응?”
“괜찮아. 언제까지 피하고만 살 거야? 지난번처럼 내 손에 피 묻히기 싫어 피할까 생각도 했지만 이젠 결단을 내리려고. 끝낼 거야. 이미 이경한이 날 타깃으로 삼은 이상 끝을 봐야 끝나. 난 계속 도망 다니면서 살기 싫어. 그럴 이유도 없고. 내가 죄은 죄가 없는데 왜 그래야 하는데? 또 죽일까봐? 설령 그런다 해도 이젠 피하지 않을 거야. 놈을 죽이든 내가 살든 둘 중에 하나는 할 거야.”
“진수야······.”
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불안감에 좌불안석이 되었다. 그의 말이 다 맞았다. 틀린 말도 잘못된 생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안했다. 지 맘대로 안 된다는 이유로 그를 파리 죽이듯 차로 짓이겨버린 놈을 생각하면 살이 떨렸다. 저승 문턱까지 갔던 그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그와 영영 이별할 뻔했다.
그런데 또 그런 일을 당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무조건 말려야했다.
“자기야, 가지 마. 너무 불길해. 힘들어도 귀찮아도 피하자. 응?”
“아무 걱정 하지 마. 다시 말해 줄까? 자신 있으니까 믿고 기다려. 나 믿지?”
그의 결의에 찬 말투에 난 그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나도 같이 갈래. 옆에 있을래.”
그는 잠시 머뭇하다가 답했다.
“그래, 오지 말란다고 안 올 것도 아니고······. 근데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마.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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