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해피엔딩
조회 : 1,372 추천 : 0 글자수 : 6,381 자 2022-12-19
47. 해피엔딩
진수의 말이 맞았다. 이정문은 날 건드리지 못했다. 얼마 후, 놈은 법적인 절차를 마치고 병원에서 날 안락사 시킬 꼼수를 부렸지만 뜻대로 되지를 않았다. 지가 아무리 잔머리로 난다 긴다 해도 염라대왕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난 진수의 예견대로 연명 장치를 풀어도 죽지 않았다. 이미 몇 십 년이 흘러도 늙지 않는 환자로 소문이 자자한데다 죽여도 죽지 않는 날 보며 의사들도 위름했다. 더이상 날 건드리지 못했다. 나란 존재의 유무를 신의 영역쯤으로 치부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반 혼령이 된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씨발! 왜, 못하냐고? 보호자인 내가 허락했는데 왜 못하는 건데? 그러고도 니들이 의사야? 무능한 놈들! 나도 의사니까 내가 하면 되지. 저리 비켜!”
“보호자 분! 이러시면 안 됩니다.”
놈은 병원 측의 만류에도 제 뜻대로 되지 않자 황소처럼 날뛰며 지랄 발광을 해댔다.
그러더니 결국, 만취 상태로 진수의 집까지 찾아와서 행패를 부렸다. 놈에겐 경우고 나발이고 없었다. 그저 늙은 광인만 있을 뿐이었다. 놈은 억지를 부려가며 소리쳤다.
“니들이 귀신이면 난 불사조야. 하늘은 내 편이라고! 덤빌 테면 다 덤벼봐!”
“당장 나가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신고? 니가 할 수 있을 거 같아?”
놈은 순식간에 달려들어 그의 핸드폰을 뺏어들더니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신고해!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
“뭐하는 짓이에요? 내 집에서 나가요! 안 나가면 힘으로 밀어낼 거니까.”
“바라던 바야. 얼른 밀어내 봐! 니들이 뭔데 날 건드려?”
“이정문씨! 대체 뭐가 무서워서 이러는 건지 몰겠지만 나가요, 어서!”
“무서워? 씨발! 웃기고 자빠졌네. 니들은 최하위 등급이야. 그런 것들이 감히 내 아들을 건드려? 다음 차례는 나일게 뻔한데 내가 손 놓고 당할 거 같아? 벌써 잊었어? 씨발! 난 먼저 치면 쳤지, 넋 놓고 있다가 당하지 않아, 절대!”
놈은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난동을 부렸다. 몸에 좋다는 것만 먹고 살았는지 기력이 남달랐다. 웬만한 젊은 사람 못지않았다. 그 뿐 아니라 말투까지 시정잡배나 다름없었다. 젊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저게 소위 엘리트라고 말하는 의사라는 사람의, 환갑인 노친네의 언행일까 싶을 만큼 천박했다.
“씨발! 귀신이든 사람이든 다 덤벼! 씨발! 다 죽여버릴 거야.”
놈의 발악을 지켜보며 난 입이 바짝 타들어갈 정도로 애가 터졌다. 진수가 놈에 의해 해라도 당할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어떤 도움도 줄 수가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누구라도 신고를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집주인은 외출을, 진영인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월차를 쓰고 나와 같이 쉬고 있던 참이었다. 물론 기운으로 하자면 장정인 그가 놈을 몰아내고도 남았다. 그러나 술에 취해 미친 황소처럼 날뛰는 인간이라 제어가 어려웠고 잘못 건드렸다가 덤터기를 쓸까봐 내가 극구 말렸다. 놈은 그러고도 남았다. 예전 재호도 놈의 농간에 의해 실형까지 살았으니까. 놈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별난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난 계속 그에게 숙지시켰다.
“절대 놈의 술수에 넘어가지 마. 건드리지 마. 헐리웃 액션을 해서라도 또 너한테 뒤집어씌울 거야. 그래서 일부러 찾아온 거라고. 알았지? 때리면 그냥 맞아.”
“알았어, 안 그래.”
“뭐야, 너? 지금 누구랑 말해? 누구랑 말하는 거냐고?”
그가 나와 대화 하는 걸 본 놈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놈의 눈에만 안 보일 뿐 난 그의 곁에서 딱 붙어 있었다.
“왜, 알고 싶어요? 내가 누구랑 말하는지?”
“씨발! 수작부리 마! 내가 무서워서 도망칠까봐? 왜, 한영미라도 옆에 있어?”
“네, 맞아요.”
그의 막힘없는 대답에 놈은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다시 목에 핏대를 세웠다.
“잘됐네. 그 년한테 할말 있었는데. 아마 이 말 들으면 그 년도 놀랄걸? 크크.”
놈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미친 듯이 웃어댔다. 그 모습이 추악했다. 이경한은 마약에 취해 지 무덤을 파더니 그 애비인 이정문은 술에 취해 추태를 부렸다. 그것도 부전자전인가. 남의 집에 찾아와서 강포지욕 하는 것도 같았다. 악마들은 하는 짓거리도 비슷한가, 생뚱맞은 생각까지 들게 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놈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너, 아버지가 어디서 죽었는지 알아? 니 방? 아니. 서재에서 목매단 걸 내가 니 방으로 옮겨놓은 거다. 크크크.”
난 비명도 못 지른 채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도 놀랐는지 꿈쩍을 안하고 있었다.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저 말이 맞다면 이정문은 인간이길 포기한 놈이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아버지가 비참하게 죽었는데 통곡을 해도 모자랄 시간에 어떻게 그런 흉악한 짓을 한단 말인가. 단순히 날 겁주기 위해서라면 놈 또한 이경한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맞았다.
“왜 그랬냐고? 난 아무 잘못 없어. 전부 아버지 탓이고 니 잘못이야. 넌 태어난 게 죄라고 했잖아. 너 같은 삼류를 우리 집에 끌어들인 것도 모자라서 어떻게 죽는 순간에 엄마도 나도 아닌 너한테 유서를 남겨? 그게 말이 돼? 잘못은 지가 다 해놓고 지만 편하자고 명줄 끊어낸 것도 부족해서 감히 니 년한테 유서를 남겨? 그것도 전 재산 구십이만 원이랑 같이? 이게 말이 되냐고? 나랑 엄마가 원하지도 않은 더러운 피를 끌어들인 것도 열 받는데 죽는 순간에도 니 년만 생각해? 그런 인간은 애비도 아냐. 사자 모욕? 당해도 싸.”
“악랄한 인간! 당신이야말로 사람도 아냐.”
멍하니 서있던 진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가 대신 해준 셈이었다. 살면서 내내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다. 날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사람이 나란 존재를 부정한 것도 모자라 늘 쌀쌀맞고 차가웠기에 아무 감정도 느낄 수가 없었다. 악귀 모자한테 시달림을 받을 때도 언제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내 편 한번을 들어주지 않던 아버지였다. 그러던 사람이 죽는 순간에도 내 방에서 목을 매달았기에 난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다. 아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었다. 그게 이정문 놈이 벌인 악행이었다니······. 천인공노할 놈이었다.
놈은 죽은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면서 동시에 날 경기로 쓰러지게 했고 나로 하여금 아버지를 증오하게 만들었다. 역시 악마다운 짓거리였다. 하지만 거기에 속아 넘어간 나 역시 한심했다. 왜 한 번쯤은 의심해보지 않았을까 후회가 들었다. 세상 어떤 부모가 자식 앞에서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고, 누군가 일부러 그래놓았다고 한번만 의심해 보았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 내 아버지를 저주하며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쳐 죽일 놈! 육시할 놈!”
난 이를 갈며 같은 말을 뇌까렸다. 문득 아버지가 내게 남겼다는 유서의 내용이 궁금했다. 아버지는 과연 내게 어떤 말을 남겼을까.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했을까. 살면서 단 한 번도 보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가 느닷없이 보고 싶었다. 그런 내 생각을 놈이 깨부수고 말았다.
“뭐가 악랄해? 씨발! 니 놈이 뭘 안다고 아가릴 놀려? 당한 만큼 갚아준 건데 뭐가 잘못이야?”
놈은 또 그에게 시비를 붙었다. 하지만 그 또한 결코 지지 않았다.
“그게 당신을 낳아준 아버지에게 할 짓이야? 이경한이 왜 그렇게 비뚤어졌나 했는데 당신 판박이었네.”
“뭐야? 이 새끼가!”
삽시간이었다. 놈은 진수에게 미친 소처럼 달려들더니 창가로 밀어붙였다. 불로초를 삶아먹은 게 분명했다. 아님 이경한처럼 마약이라도 했던지. 악에 받쳐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놈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힘으로 그를 제압했다. 너무 엉겁결에 벌어진 일이라 그는 방어할 틈조차 없었다. 놈의 기운에 의해 그의 상체가 창틀에 걸쳐진 채 깔려있었다. 놈은 그의 목을 누르기 시작했다. 급소를 누른 탓인지 장정인 그는 맥을 못 추고 발버둥을 쳐댔다.
“어떡해! 진수야! 진수야!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난 발을 구르며 애가 터져라 소리쳤으나 소용없었다. 그 누구도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달려가 놈을 뜯어말리려 했지만 그것 또한 부질없었다. 내 손은 허공에서 헛스윙만 해댈 뿐이었다. 날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건 오로지 연인인 진수와 조력자인 박수뿐이었다. 그렇기에 내 능력으로는 놈을 막지 못했다. 놈은 눈에 핏발까지 선 채 그의 목을 누르며 이기죽거렸다.
“귀신이면 빠져나가 봐? 흐흐흐. 니가 귀신이든 사람이든 니 놈은 날 못 이겨.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흐흐흐. 난 널 죽이고 이 상황을 정당방위로 만들 거거든. 흐흐흐.”
“으으윽······.”
“흐흐흐. 죽어버려,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한영미한테 도와달라고 하든지. 걔 귀신이잖아? 크크크.”
놈은 미친 듯이 조롱하며 손에 힘을 가했다. 그는 손을 뻗어 놈의 손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듯 기를 쓰고 있었다.
“진수야······.”
저러다가 그가 곧 죽을 것만 같았다. 놈은 악마가 맞았다. 육십 대 늙은이의 힘으로 이십 대 중반의 남자를 압도한다는 걸 누가 믿겠는가. 놈이 악마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볼 수가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속수무책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신을 향해 부르짖는 거뿐이었다. 진심을 다해, 죽을힘을 다해. 저승길에서 그를 데리고 왔을 때처럼.
“신이시여! 염라대왕님! 들리나요? 천 년 동안 반 혼령으로 살아도 좋습니다. 부디 그를 살려주세요. 악마의 손에서 구해주세요. 그의 기억이 돌아와 제가 긴 잠에서 깨어나길 빌었지만 이젠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그를 살려만 주세요. 반 혼령인 채로 구천을 떠돌아도 좋으니 그를 살려주세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가 밉습니다. 그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좋으니 그를 살려주세요. 제발 선처해 주세요. 그를 구해주세요.”
“아악!”
그때였다. 그의 목을 조르던 놈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눈을 뜨고 보니 경찰이 놈에게 ‘테이저 건’을 발사한 거였다. 그 옆에 진영이 놀란 눈으로 서있었다.
“꼼짝 마!”
경찰은 쓰러진 놈에게 다가가서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그리고는 축 늘어진 놈을 끌고 나갔다.
“오빠!”
그제야 진영이 그를 부르며 달려갔다. 그는 몸을 세우며 숨이 넘어갈 듯 기침을 해댔다. 그의 얼굴과 목엔 피멍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나 역시 그에게로 다가갔다.
“진수야! 괜찮아?”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빠! 안 아파? 오빠!”
진영이 울면서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진영이를 감싸 안으며 다독거렸다. 잔뜩 쉰 목소리로 동생을 달랬다.
“진영아······. 울, 울지 마······. 오······. 오빠 괜찮아.”
“으앙! 얼마나 무서웠다고. 오빠도 엄마랑 아빠처럼 죽을까봐 무서웠어. 진영이 혼자 남을까봐. 으앙! 오빠 죽지 마. 내가 그 아저씨가 소리치는 거 보고 경찰에 신고했어. 누가 우리오빠 때리려고 한다고.”
“잘했어, 우리 진영이 정말 잘했어.”
그는 여전히 힘든 기색이었지만 진영이를 칭찬하며 나를 쳐다봤다. 나 또한 조심스럽게 그의 품에 안기며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진수야······. 아무것도 못해줘서 정말 미안해.”
그는 아무 말 없이 한 팔엔 진영이를, 한 팔엔 나를 안아주며 웃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힘을 주어 말했다.
“영미야! 울지 마. 엘리베이터 안에서처럼 그렇게 안하려고 기를 쓰고 참았어.”
진영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작게 들렸으나 난 분명히 들었다. ‘엘리베이터’라고 한 그의 목소리를. 그곳은 재호가 이정문의 농간에 의해 놈을 폭행한 곳이었다. 그것으로 재호는 실형을 선고받았고. 그 사실을 진수가 복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갑자기 온몸이 떨려왔다. 난 진수에게서 떨어지며 그의 눈을 바라봤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신혼여행 다시 가야지. 너무 오래 기다렸지? 미안해.”
“재······. 재호야.”
“거기에 점 있는 남자가 세다며? 오랜만에 니 로망 들어줄게. 하하.”
그는 농담까지 하며 슬그머니 웃었다.
“재······. 재호야······.”
너무 놀라고 감격스러운 나머지 난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다.
“울지 마, 영미야! 순전히 니 능력이야. 아까 니 기도 소리 들었어. 그게 날 살린 거야. 그와 동시에 기억이 돌아온 거고. 갑자기 많은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더라. 나도 놀랐어. 모두 니 사랑의 힘이야. 고마워.”
난 울면서도 띄엄띄엄 대답했다.
“한영미는······. 민재호가······. 완전 소중해.”
“민재호는 한영미가 지금 이 순간도 소중하고 내일도 모레도 소중하고 죽을 때까지 소중할거야.”
진수의 말이 맞았다. 이정문은 날 건드리지 못했다. 얼마 후, 놈은 법적인 절차를 마치고 병원에서 날 안락사 시킬 꼼수를 부렸지만 뜻대로 되지를 않았다. 지가 아무리 잔머리로 난다 긴다 해도 염라대왕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난 진수의 예견대로 연명 장치를 풀어도 죽지 않았다. 이미 몇 십 년이 흘러도 늙지 않는 환자로 소문이 자자한데다 죽여도 죽지 않는 날 보며 의사들도 위름했다. 더이상 날 건드리지 못했다. 나란 존재의 유무를 신의 영역쯤으로 치부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반 혼령이 된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씨발! 왜, 못하냐고? 보호자인 내가 허락했는데 왜 못하는 건데? 그러고도 니들이 의사야? 무능한 놈들! 나도 의사니까 내가 하면 되지. 저리 비켜!”
“보호자 분! 이러시면 안 됩니다.”
놈은 병원 측의 만류에도 제 뜻대로 되지 않자 황소처럼 날뛰며 지랄 발광을 해댔다.
그러더니 결국, 만취 상태로 진수의 집까지 찾아와서 행패를 부렸다. 놈에겐 경우고 나발이고 없었다. 그저 늙은 광인만 있을 뿐이었다. 놈은 억지를 부려가며 소리쳤다.
“니들이 귀신이면 난 불사조야. 하늘은 내 편이라고! 덤빌 테면 다 덤벼봐!”
“당장 나가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신고? 니가 할 수 있을 거 같아?”
놈은 순식간에 달려들어 그의 핸드폰을 뺏어들더니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신고해!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
“뭐하는 짓이에요? 내 집에서 나가요! 안 나가면 힘으로 밀어낼 거니까.”
“바라던 바야. 얼른 밀어내 봐! 니들이 뭔데 날 건드려?”
“이정문씨! 대체 뭐가 무서워서 이러는 건지 몰겠지만 나가요, 어서!”
“무서워? 씨발! 웃기고 자빠졌네. 니들은 최하위 등급이야. 그런 것들이 감히 내 아들을 건드려? 다음 차례는 나일게 뻔한데 내가 손 놓고 당할 거 같아? 벌써 잊었어? 씨발! 난 먼저 치면 쳤지, 넋 놓고 있다가 당하지 않아, 절대!”
놈은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난동을 부렸다. 몸에 좋다는 것만 먹고 살았는지 기력이 남달랐다. 웬만한 젊은 사람 못지않았다. 그 뿐 아니라 말투까지 시정잡배나 다름없었다. 젊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저게 소위 엘리트라고 말하는 의사라는 사람의, 환갑인 노친네의 언행일까 싶을 만큼 천박했다.
“씨발! 귀신이든 사람이든 다 덤벼! 씨발! 다 죽여버릴 거야.”
놈의 발악을 지켜보며 난 입이 바짝 타들어갈 정도로 애가 터졌다. 진수가 놈에 의해 해라도 당할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어떤 도움도 줄 수가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누구라도 신고를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집주인은 외출을, 진영인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월차를 쓰고 나와 같이 쉬고 있던 참이었다. 물론 기운으로 하자면 장정인 그가 놈을 몰아내고도 남았다. 그러나 술에 취해 미친 황소처럼 날뛰는 인간이라 제어가 어려웠고 잘못 건드렸다가 덤터기를 쓸까봐 내가 극구 말렸다. 놈은 그러고도 남았다. 예전 재호도 놈의 농간에 의해 실형까지 살았으니까. 놈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별난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난 계속 그에게 숙지시켰다.
“절대 놈의 술수에 넘어가지 마. 건드리지 마. 헐리웃 액션을 해서라도 또 너한테 뒤집어씌울 거야. 그래서 일부러 찾아온 거라고. 알았지? 때리면 그냥 맞아.”
“알았어, 안 그래.”
“뭐야, 너? 지금 누구랑 말해? 누구랑 말하는 거냐고?”
그가 나와 대화 하는 걸 본 놈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놈의 눈에만 안 보일 뿐 난 그의 곁에서 딱 붙어 있었다.
“왜, 알고 싶어요? 내가 누구랑 말하는지?”
“씨발! 수작부리 마! 내가 무서워서 도망칠까봐? 왜, 한영미라도 옆에 있어?”
“네, 맞아요.”
그의 막힘없는 대답에 놈은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다시 목에 핏대를 세웠다.
“잘됐네. 그 년한테 할말 있었는데. 아마 이 말 들으면 그 년도 놀랄걸? 크크.”
놈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미친 듯이 웃어댔다. 그 모습이 추악했다. 이경한은 마약에 취해 지 무덤을 파더니 그 애비인 이정문은 술에 취해 추태를 부렸다. 그것도 부전자전인가. 남의 집에 찾아와서 강포지욕 하는 것도 같았다. 악마들은 하는 짓거리도 비슷한가, 생뚱맞은 생각까지 들게 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놈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너, 아버지가 어디서 죽었는지 알아? 니 방? 아니. 서재에서 목매단 걸 내가 니 방으로 옮겨놓은 거다. 크크크.”
난 비명도 못 지른 채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도 놀랐는지 꿈쩍을 안하고 있었다.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저 말이 맞다면 이정문은 인간이길 포기한 놈이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아버지가 비참하게 죽었는데 통곡을 해도 모자랄 시간에 어떻게 그런 흉악한 짓을 한단 말인가. 단순히 날 겁주기 위해서라면 놈 또한 이경한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맞았다.
“왜 그랬냐고? 난 아무 잘못 없어. 전부 아버지 탓이고 니 잘못이야. 넌 태어난 게 죄라고 했잖아. 너 같은 삼류를 우리 집에 끌어들인 것도 모자라서 어떻게 죽는 순간에 엄마도 나도 아닌 너한테 유서를 남겨? 그게 말이 돼? 잘못은 지가 다 해놓고 지만 편하자고 명줄 끊어낸 것도 부족해서 감히 니 년한테 유서를 남겨? 그것도 전 재산 구십이만 원이랑 같이? 이게 말이 되냐고? 나랑 엄마가 원하지도 않은 더러운 피를 끌어들인 것도 열 받는데 죽는 순간에도 니 년만 생각해? 그런 인간은 애비도 아냐. 사자 모욕? 당해도 싸.”
“악랄한 인간! 당신이야말로 사람도 아냐.”
멍하니 서있던 진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가 대신 해준 셈이었다. 살면서 내내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다. 날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사람이 나란 존재를 부정한 것도 모자라 늘 쌀쌀맞고 차가웠기에 아무 감정도 느낄 수가 없었다. 악귀 모자한테 시달림을 받을 때도 언제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내 편 한번을 들어주지 않던 아버지였다. 그러던 사람이 죽는 순간에도 내 방에서 목을 매달았기에 난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다. 아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었다. 그게 이정문 놈이 벌인 악행이었다니······. 천인공노할 놈이었다.
놈은 죽은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면서 동시에 날 경기로 쓰러지게 했고 나로 하여금 아버지를 증오하게 만들었다. 역시 악마다운 짓거리였다. 하지만 거기에 속아 넘어간 나 역시 한심했다. 왜 한 번쯤은 의심해보지 않았을까 후회가 들었다. 세상 어떤 부모가 자식 앞에서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고, 누군가 일부러 그래놓았다고 한번만 의심해 보았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 내 아버지를 저주하며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쳐 죽일 놈! 육시할 놈!”
난 이를 갈며 같은 말을 뇌까렸다. 문득 아버지가 내게 남겼다는 유서의 내용이 궁금했다. 아버지는 과연 내게 어떤 말을 남겼을까.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했을까. 살면서 단 한 번도 보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가 느닷없이 보고 싶었다. 그런 내 생각을 놈이 깨부수고 말았다.
“뭐가 악랄해? 씨발! 니 놈이 뭘 안다고 아가릴 놀려? 당한 만큼 갚아준 건데 뭐가 잘못이야?”
놈은 또 그에게 시비를 붙었다. 하지만 그 또한 결코 지지 않았다.
“그게 당신을 낳아준 아버지에게 할 짓이야? 이경한이 왜 그렇게 비뚤어졌나 했는데 당신 판박이었네.”
“뭐야? 이 새끼가!”
삽시간이었다. 놈은 진수에게 미친 소처럼 달려들더니 창가로 밀어붙였다. 불로초를 삶아먹은 게 분명했다. 아님 이경한처럼 마약이라도 했던지. 악에 받쳐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놈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힘으로 그를 제압했다. 너무 엉겁결에 벌어진 일이라 그는 방어할 틈조차 없었다. 놈의 기운에 의해 그의 상체가 창틀에 걸쳐진 채 깔려있었다. 놈은 그의 목을 누르기 시작했다. 급소를 누른 탓인지 장정인 그는 맥을 못 추고 발버둥을 쳐댔다.
“어떡해! 진수야! 진수야!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난 발을 구르며 애가 터져라 소리쳤으나 소용없었다. 그 누구도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달려가 놈을 뜯어말리려 했지만 그것 또한 부질없었다. 내 손은 허공에서 헛스윙만 해댈 뿐이었다. 날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건 오로지 연인인 진수와 조력자인 박수뿐이었다. 그렇기에 내 능력으로는 놈을 막지 못했다. 놈은 눈에 핏발까지 선 채 그의 목을 누르며 이기죽거렸다.
“귀신이면 빠져나가 봐? 흐흐흐. 니가 귀신이든 사람이든 니 놈은 날 못 이겨.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흐흐흐. 난 널 죽이고 이 상황을 정당방위로 만들 거거든. 흐흐흐.”
“으으윽······.”
“흐흐흐. 죽어버려,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한영미한테 도와달라고 하든지. 걔 귀신이잖아? 크크크.”
놈은 미친 듯이 조롱하며 손에 힘을 가했다. 그는 손을 뻗어 놈의 손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듯 기를 쓰고 있었다.
“진수야······.”
저러다가 그가 곧 죽을 것만 같았다. 놈은 악마가 맞았다. 육십 대 늙은이의 힘으로 이십 대 중반의 남자를 압도한다는 걸 누가 믿겠는가. 놈이 악마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볼 수가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속수무책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신을 향해 부르짖는 거뿐이었다. 진심을 다해, 죽을힘을 다해. 저승길에서 그를 데리고 왔을 때처럼.
“신이시여! 염라대왕님! 들리나요? 천 년 동안 반 혼령으로 살아도 좋습니다. 부디 그를 살려주세요. 악마의 손에서 구해주세요. 그의 기억이 돌아와 제가 긴 잠에서 깨어나길 빌었지만 이젠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그를 살려만 주세요. 반 혼령인 채로 구천을 떠돌아도 좋으니 그를 살려주세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가 밉습니다. 그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좋으니 그를 살려주세요. 제발 선처해 주세요. 그를 구해주세요.”
“아악!”
그때였다. 그의 목을 조르던 놈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눈을 뜨고 보니 경찰이 놈에게 ‘테이저 건’을 발사한 거였다. 그 옆에 진영이 놀란 눈으로 서있었다.
“꼼짝 마!”
경찰은 쓰러진 놈에게 다가가서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그리고는 축 늘어진 놈을 끌고 나갔다.
“오빠!”
그제야 진영이 그를 부르며 달려갔다. 그는 몸을 세우며 숨이 넘어갈 듯 기침을 해댔다. 그의 얼굴과 목엔 피멍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나 역시 그에게로 다가갔다.
“진수야! 괜찮아?”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빠! 안 아파? 오빠!”
진영이 울면서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진영이를 감싸 안으며 다독거렸다. 잔뜩 쉰 목소리로 동생을 달랬다.
“진영아······. 울, 울지 마······. 오······. 오빠 괜찮아.”
“으앙! 얼마나 무서웠다고. 오빠도 엄마랑 아빠처럼 죽을까봐 무서웠어. 진영이 혼자 남을까봐. 으앙! 오빠 죽지 마. 내가 그 아저씨가 소리치는 거 보고 경찰에 신고했어. 누가 우리오빠 때리려고 한다고.”
“잘했어, 우리 진영이 정말 잘했어.”
그는 여전히 힘든 기색이었지만 진영이를 칭찬하며 나를 쳐다봤다. 나 또한 조심스럽게 그의 품에 안기며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진수야······. 아무것도 못해줘서 정말 미안해.”
그는 아무 말 없이 한 팔엔 진영이를, 한 팔엔 나를 안아주며 웃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힘을 주어 말했다.
“영미야! 울지 마. 엘리베이터 안에서처럼 그렇게 안하려고 기를 쓰고 참았어.”
진영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작게 들렸으나 난 분명히 들었다. ‘엘리베이터’라고 한 그의 목소리를. 그곳은 재호가 이정문의 농간에 의해 놈을 폭행한 곳이었다. 그것으로 재호는 실형을 선고받았고. 그 사실을 진수가 복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갑자기 온몸이 떨려왔다. 난 진수에게서 떨어지며 그의 눈을 바라봤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신혼여행 다시 가야지. 너무 오래 기다렸지? 미안해.”
“재······. 재호야.”
“거기에 점 있는 남자가 세다며? 오랜만에 니 로망 들어줄게. 하하.”
그는 농담까지 하며 슬그머니 웃었다.
“재······. 재호야······.”
너무 놀라고 감격스러운 나머지 난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다.
“울지 마, 영미야! 순전히 니 능력이야. 아까 니 기도 소리 들었어. 그게 날 살린 거야. 그와 동시에 기억이 돌아온 거고. 갑자기 많은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더라. 나도 놀랐어. 모두 니 사랑의 힘이야. 고마워.”
난 울면서도 띄엄띄엄 대답했다.
“한영미는······. 민재호가······. 완전 소중해.”
“민재호는 한영미가 지금 이 순간도 소중하고 내일도 모레도 소중하고 죽을 때까지 소중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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