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빌어먹을 촉
조회 : 1,193 추천 : 0 글자수 : 5,252 자 2022-12-15
43. 빌어먹을 촉
그럴 줄 알았다. 내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특히 나쁜 촉은 언제나 기분 나쁘리만치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부디 내가 오버하는 거길, 놈과 엮이는 일 없게 피해가길 바랐는데 아니었다.
진수가 이경한을 도와주고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경찰을 통해 전화가 걸려왔다. 놈이 도움을 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사례를 하고 싶어 한다고 말이다.
그는 정중히 거절을 했다. 고맙지만 마음만 받겠노라고. 그렇게 마무리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후 경찰이 또 전화를 해왔다. 전화를 받는 그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는 걸 보았다. 전화를 끊자마자 내가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그래?”
“······.”
그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불안한 듯 눈동자만 굴렸다. 급한 마음에 난 채근을 해댔다.
“진수야! 왜 그러는데? 그 경찰이 왜 또 전화 한 건데?”
“이경한이 날 신고했대. 끼고 있던 명품 시계가 없어졌다고.”
“뭐라고? 그런 미친놈을 봤나? 사례한다고 할 땐 언제고? 싸이코 새끼! 경찰도 웃긴다. 사람 구해준 사람을 한순간에 그 놈 말만 믿고 도둑으로 몰아? 시시티브이 있을게 아냐? 거기 보면 다 나올 텐데.”
“거기가 외진 곳이라 없대. 근처 한 대 있던 것도 고장 난 상태고.”
“아니 외진 곳이면 더 달아야지 위험하게 뭐야?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그 놈 말만 듣고 그러는 개 같은 경우가 어딨어?”
“이경한이 그랬대. 첨에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없더라고. 그날 분명 시계를 차고 있었대. 내가 옆에 있을 때도 지가 차고 있었다고. 지가 시계를 본 기억이 있다고.”
“아파 다 죽어가던 새끼가 시계 볼 정신이 있었대? 미친 새끼! 그 새끼 혹시 니 얼굴 알아본 거 아냐?”
“아냐. 분명 나한테 존댓말 했어.”
“맹추야! 속지 말랬잖아? 그 놈 사악하다니까. 악마라고! 악마!”
난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쳤다.
“잘못은 지가 해놓고 이제 와서 나한테 왜 또 그러는지 모르겠어. 정말 이해가 안 돼.”
“그니까! 이경한이 그런 놈이라고! 언젠 이유 있어서 그 놈이 그랬어? 지 멋대로 지 기분대로인 싸이코 새끼야! 이제 알았어? 니가 외면하고 왔어야 하는 이유? 이래서 절대 엮이면 안 된다고 했던 거야. 그래서 내가 길길이 난리쳤던 거고.”
“후우우.”
그는 대답 대신 긴 한숨을 내뱉었다. 걱정의 그림자가 얼굴 전체를 덮고 있었다. 순간 안쓰러웠다. 나 역시 근심과 불안이 앞섰지만 그만해야 할 듯싶었다. 지금 그에겐 닦달보다는 위로가 필요해 보였다.
“그렇다고 넘 걱정할 건 없어. 죄 없는데 설마 잡아놓겠어? 신고가 들어왔으니까 전화했을 거야. 요식 행위 알지?”
“응.”
“그 놈이 미친놈이라 화나는 거지, 살면서 누구나 남한테 오해 받는 일 생기잖아? 그런 해프닝쯤으로 여겨. 알았지? 괜히 쫄아있는 거 박진수 답지 않아. 어깨 펴!”
“어, 그럴게. 고마워.”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기가 눌린 표정이었다. 놈에게 당했던 기억들이 새삼 떠오르는 듯 했다. 내가 아무리 화가 난들 본인만큼은 아닐 터였다. 그 혹독한 기억을 가지고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그가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그를 웃겨줄 겸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울 애인 정말 대견해. 이건 애 취급이 아니라 격려 차원이야. 그니까 구시렁대기 없기 있기? 응?”
그제야 그는 나를 향해 빙그시 웃으며 대답했다.
“없기.”
****
급기야 경찰서에서 진수와 이경한이 만났다. 난 그의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었다. 물론 놈의 눈엔 내가 보이지 않겠지만 그에게 혹여 해코지라도 할까봐 그야말로 껌딱지처럼 달라붙어있었다.
놈은 흘낏 그를 보자마자 한눈에 알아보며 특유의 비열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몇 년이 흘러선지 그의 얼굴엔 흐른 세월만큼 사악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얼굴에 자신의 살아온 인생이 보인다고 했던 어른들의 말씀이 맞았다. 얼핏 보면 이경한의 외모는 야리야리한 여자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누구든 단 몇 초라도 놈을 자세히 살핀다면 그와는 정반대의 말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놈의 눈빛은 초점이 흐린데다 음험해 보였다. 입꼬리를 비틀며 웃을 때는 섬뜩하기까지 했고. 놈에게 당한 기억이 많은 우리에겐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놈은 경찰서에 들어서면서부터 생쇼를 부렸다. 많은 경찰들이 지켜보는데 그에게 넙죽 절을 하면서 읍소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목숨 구해주신 은인 분을 감히 도둑으로 몰았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모욕한 죄 달게 받겠습니다. 좀 전에 알았어요. 집안에서 부리는 사람이 실토를 하더군요. 병원에서 챙겨온 소지품 가방에서 시계에 손을 댔다고요. 경찰서에 간다니까 겁이 났었나 보더라고요. 오랜 세월 저희 집에서 일하던 사람이라 전혀 의심하지 않았어요. 믿었거든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혀서 배은망덕하게도 은인 분을 의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 시계는 단순히 명품이 아니라 저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제 손목에 직접 채워주신 유품이거든요. 그래서 그랬습니다. 첨엔 그저 감사한 마음에 사례하고 싶어서 경찰 분을 통해 연락처를 힘들게 알아내 연락드린 건데 거절을 하셔서 훌륭한 분인 거 이미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 알아보지도 않고 경거망동을 해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할아버지 유품을 찾겠다는 생각만으로 실수를 해도 크나큰 실수를 했습니다. 발 받겠습니다. 형사님! 부디 절 벌하세요. 그래야만 은인 분을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하마터면 박수를 칠 뻔했다. 놈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아도 손색없는 연기를 선보였다. 며칠 달달 외운 대본으로 놈은 메소드 연기를 펼쳤다. 경찰들이야 속았을지 몰라도 그와 나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놈의 하는 짓이 쇼라는 게 팍팍 티가 나는 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를 보자마자 알아보고 슬쩍 웃은 게 가장 먼저였다. 뿐만 아니라 한자 성어까지 섞어서 말할 정도로 놈은 유식하지 않았다. 더구나 가장 결정적인 건 이거였다. 난 할아버지 유품 소리에 기가 막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놈의 할아버지라면 내 방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 내 아버지 이재석을 말하는 거였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시절 죽었던 내 아버지가 어떻게 태어나지도 않은 놈의 손목에 시계를 채워준단 말인가. 놈은 전문 사기꾼 같았다. 거짓말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구구절절 털어놓는 통에 나 역시도 잠시 속을 뻔했다.
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내 손을 꼭 잡고 있는데 그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난 아무도 보지 못하지만 그의 등을 감싸 안으며 진정을 시켰다.
사실 그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살인자든 이경한이든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게 결코 나쁜 일은 아니었다. 단지 그게 이경한이라는 게 문제였을 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가고 있을지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결국 경찰들의 중재와 회유로 그와 놈은 어정쩡한 상태로 화해의 액션을 취해보였고 그렇게 경찰서를 나왔다. 나 또한 그의 손을 잡고 따라 나왔다.
그런데 뒤에서 놈이 그를 불렀다.
“잠깐만요, 박진수님! 박진수님!”
그가 돌아보려고 하는데 내가 막았다.
“돌아보지 마. 무시해. 아는 척 말고 그냥 가자.”
“응, 그럴게.”
그와 난 못 들은 척 서둘러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우리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손을 잡고 걸었다. 집 근처에 다 와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대체 이경한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걸까? 분명 날 알아봤어. 그럼 그때 쓰러졌을 때도 날 알아봤던 거잖아? 일부러 경찰한테 내 연락처를 물은 거겠지??”
“아마도.”
“왜? 날 왜 만나려고?”
“그거야 나도 모르지.”
“후우우.”
또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어수선한 마음이 느껴지며 짠해왔다.
“진수야! 힘들지?”
“아냐, 괜찮아.”
“오래 생각하지 마. 그냥 피하면 돼. 피하자, 우리.”
“응.”
그에겐 그렇게 말해놓고 내 머릿속도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내 빌어먹을 촉이 맞았다. 놈은 그날 쓰러진 상태에서 그를 알아봤던 거였다. 그렇기에 사례를 핑계로 경찰을 통해 연락을 해왔던 거고. 그런데 그가 거절을 하자 이런 말도 안 되는 치사한 방법까지 동원해서 그를 만나고자 했다.
‘왜지?’
의문이 들었다. 또 무슨 가괴한 짓을 꾸미려고 그러는 걸까. 차로 치고 민 것도 모자라서 또 무슨 짓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려고 저러는 걸까.
‘대체 왜?’
문득 예전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범죄 심리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사이코패스들의 생각을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으로 단정 짓지 말라고 했던. 일반인에겐 왜라는 이유가 있지만 사이코패스들에겐 이유가 없단다. 일말의 양심이나 죄의식 자체가 없기 때문에 사람 죽이는 일을 벌레 죽이는 일과 동일시한다고.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놈의 행동은 그 범죄 심리학자의 말을 증명해 보였다. 그런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그의 집 앞이었다.
“아악!”
그런데 앞을 보고 그와 내 입에서 동시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다름 아닌 이경한 놈이 차 안에서 내리며 이기죽거렸다.
“진수야, 안녕?”
“······.”
놈이 다가오자 그는 뒷걸음질을 쳐대며 떨었다. 난 최대한 힘을 주어 그의 손을 꼭 잡아주며 안심을 시켰다.
“진수야, 괜찮아. 떨지 마. 별일 없어.”
“······응.”
대답을 하는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 또한 놈에게 당했던 악몽이 떠오르는 듯했다. 놈은 실실 웃어가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마치 어제 보고 헤어진 친구처럼 살갑게 굴었다.
“반갑다, 그치? 넌 여전하네? 힘든 일 많이 겪었다며? 현철이가 그러더라. 그럼 연락 좀 하지 그랬어?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서로 돕고 살아야지. 안 그래? 낄낄낄.”
그는 놈을 빤히 쳐다보다가 숨을 한번 크게 내쉬더니 입을 떼었다.
“우리가 친구였니?”
“그럼 아냐? 우리 고등학교 때 절친이었잖아? 벌써 잊었어?”
놈은 뻔뻔하다싶게 그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한번 주더니 단호하게 내뱉었다.
“이경한! 니가 왜 또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알고 싶지도 않지만 한 가지만 알아둬라. 나 또한 이젠 호락호락 당하지 않아! 그니까 내 앞에서 꺼져주라.”
“잘했어, 진수야! 정말 잘했어!”
옆에서 내가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런데 그때 놈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어댔다.
“푸 하하하.”
놈의 음산하다 못해 괴기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이번엔 그가 내게 힘주어 말했다.
“쫄지 마, 자기야! 나 이제 자신 있어.”
그럴 줄 알았다. 내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특히 나쁜 촉은 언제나 기분 나쁘리만치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부디 내가 오버하는 거길, 놈과 엮이는 일 없게 피해가길 바랐는데 아니었다.
진수가 이경한을 도와주고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경찰을 통해 전화가 걸려왔다. 놈이 도움을 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사례를 하고 싶어 한다고 말이다.
그는 정중히 거절을 했다. 고맙지만 마음만 받겠노라고. 그렇게 마무리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후 경찰이 또 전화를 해왔다. 전화를 받는 그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는 걸 보았다. 전화를 끊자마자 내가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그래?”
“······.”
그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불안한 듯 눈동자만 굴렸다. 급한 마음에 난 채근을 해댔다.
“진수야! 왜 그러는데? 그 경찰이 왜 또 전화 한 건데?”
“이경한이 날 신고했대. 끼고 있던 명품 시계가 없어졌다고.”
“뭐라고? 그런 미친놈을 봤나? 사례한다고 할 땐 언제고? 싸이코 새끼! 경찰도 웃긴다. 사람 구해준 사람을 한순간에 그 놈 말만 믿고 도둑으로 몰아? 시시티브이 있을게 아냐? 거기 보면 다 나올 텐데.”
“거기가 외진 곳이라 없대. 근처 한 대 있던 것도 고장 난 상태고.”
“아니 외진 곳이면 더 달아야지 위험하게 뭐야?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그 놈 말만 듣고 그러는 개 같은 경우가 어딨어?”
“이경한이 그랬대. 첨에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없더라고. 그날 분명 시계를 차고 있었대. 내가 옆에 있을 때도 지가 차고 있었다고. 지가 시계를 본 기억이 있다고.”
“아파 다 죽어가던 새끼가 시계 볼 정신이 있었대? 미친 새끼! 그 새끼 혹시 니 얼굴 알아본 거 아냐?”
“아냐. 분명 나한테 존댓말 했어.”
“맹추야! 속지 말랬잖아? 그 놈 사악하다니까. 악마라고! 악마!”
난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쳤다.
“잘못은 지가 해놓고 이제 와서 나한테 왜 또 그러는지 모르겠어. 정말 이해가 안 돼.”
“그니까! 이경한이 그런 놈이라고! 언젠 이유 있어서 그 놈이 그랬어? 지 멋대로 지 기분대로인 싸이코 새끼야! 이제 알았어? 니가 외면하고 왔어야 하는 이유? 이래서 절대 엮이면 안 된다고 했던 거야. 그래서 내가 길길이 난리쳤던 거고.”
“후우우.”
그는 대답 대신 긴 한숨을 내뱉었다. 걱정의 그림자가 얼굴 전체를 덮고 있었다. 순간 안쓰러웠다. 나 역시 근심과 불안이 앞섰지만 그만해야 할 듯싶었다. 지금 그에겐 닦달보다는 위로가 필요해 보였다.
“그렇다고 넘 걱정할 건 없어. 죄 없는데 설마 잡아놓겠어? 신고가 들어왔으니까 전화했을 거야. 요식 행위 알지?”
“응.”
“그 놈이 미친놈이라 화나는 거지, 살면서 누구나 남한테 오해 받는 일 생기잖아? 그런 해프닝쯤으로 여겨. 알았지? 괜히 쫄아있는 거 박진수 답지 않아. 어깨 펴!”
“어, 그럴게. 고마워.”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기가 눌린 표정이었다. 놈에게 당했던 기억들이 새삼 떠오르는 듯 했다. 내가 아무리 화가 난들 본인만큼은 아닐 터였다. 그 혹독한 기억을 가지고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그가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그를 웃겨줄 겸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울 애인 정말 대견해. 이건 애 취급이 아니라 격려 차원이야. 그니까 구시렁대기 없기 있기? 응?”
그제야 그는 나를 향해 빙그시 웃으며 대답했다.
“없기.”
****
급기야 경찰서에서 진수와 이경한이 만났다. 난 그의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었다. 물론 놈의 눈엔 내가 보이지 않겠지만 그에게 혹여 해코지라도 할까봐 그야말로 껌딱지처럼 달라붙어있었다.
놈은 흘낏 그를 보자마자 한눈에 알아보며 특유의 비열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몇 년이 흘러선지 그의 얼굴엔 흐른 세월만큼 사악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얼굴에 자신의 살아온 인생이 보인다고 했던 어른들의 말씀이 맞았다. 얼핏 보면 이경한의 외모는 야리야리한 여자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누구든 단 몇 초라도 놈을 자세히 살핀다면 그와는 정반대의 말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놈의 눈빛은 초점이 흐린데다 음험해 보였다. 입꼬리를 비틀며 웃을 때는 섬뜩하기까지 했고. 놈에게 당한 기억이 많은 우리에겐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놈은 경찰서에 들어서면서부터 생쇼를 부렸다. 많은 경찰들이 지켜보는데 그에게 넙죽 절을 하면서 읍소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목숨 구해주신 은인 분을 감히 도둑으로 몰았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모욕한 죄 달게 받겠습니다. 좀 전에 알았어요. 집안에서 부리는 사람이 실토를 하더군요. 병원에서 챙겨온 소지품 가방에서 시계에 손을 댔다고요. 경찰서에 간다니까 겁이 났었나 보더라고요. 오랜 세월 저희 집에서 일하던 사람이라 전혀 의심하지 않았어요. 믿었거든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혀서 배은망덕하게도 은인 분을 의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 시계는 단순히 명품이 아니라 저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제 손목에 직접 채워주신 유품이거든요. 그래서 그랬습니다. 첨엔 그저 감사한 마음에 사례하고 싶어서 경찰 분을 통해 연락처를 힘들게 알아내 연락드린 건데 거절을 하셔서 훌륭한 분인 거 이미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 알아보지도 않고 경거망동을 해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할아버지 유품을 찾겠다는 생각만으로 실수를 해도 크나큰 실수를 했습니다. 발 받겠습니다. 형사님! 부디 절 벌하세요. 그래야만 은인 분을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하마터면 박수를 칠 뻔했다. 놈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아도 손색없는 연기를 선보였다. 며칠 달달 외운 대본으로 놈은 메소드 연기를 펼쳤다. 경찰들이야 속았을지 몰라도 그와 나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놈의 하는 짓이 쇼라는 게 팍팍 티가 나는 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를 보자마자 알아보고 슬쩍 웃은 게 가장 먼저였다. 뿐만 아니라 한자 성어까지 섞어서 말할 정도로 놈은 유식하지 않았다. 더구나 가장 결정적인 건 이거였다. 난 할아버지 유품 소리에 기가 막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놈의 할아버지라면 내 방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 내 아버지 이재석을 말하는 거였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시절 죽었던 내 아버지가 어떻게 태어나지도 않은 놈의 손목에 시계를 채워준단 말인가. 놈은 전문 사기꾼 같았다. 거짓말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구구절절 털어놓는 통에 나 역시도 잠시 속을 뻔했다.
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내 손을 꼭 잡고 있는데 그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난 아무도 보지 못하지만 그의 등을 감싸 안으며 진정을 시켰다.
사실 그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살인자든 이경한이든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게 결코 나쁜 일은 아니었다. 단지 그게 이경한이라는 게 문제였을 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가고 있을지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결국 경찰들의 중재와 회유로 그와 놈은 어정쩡한 상태로 화해의 액션을 취해보였고 그렇게 경찰서를 나왔다. 나 또한 그의 손을 잡고 따라 나왔다.
그런데 뒤에서 놈이 그를 불렀다.
“잠깐만요, 박진수님! 박진수님!”
그가 돌아보려고 하는데 내가 막았다.
“돌아보지 마. 무시해. 아는 척 말고 그냥 가자.”
“응, 그럴게.”
그와 난 못 들은 척 서둘러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우리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손을 잡고 걸었다. 집 근처에 다 와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대체 이경한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걸까? 분명 날 알아봤어. 그럼 그때 쓰러졌을 때도 날 알아봤던 거잖아? 일부러 경찰한테 내 연락처를 물은 거겠지??”
“아마도.”
“왜? 날 왜 만나려고?”
“그거야 나도 모르지.”
“후우우.”
또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어수선한 마음이 느껴지며 짠해왔다.
“진수야! 힘들지?”
“아냐, 괜찮아.”
“오래 생각하지 마. 그냥 피하면 돼. 피하자, 우리.”
“응.”
그에겐 그렇게 말해놓고 내 머릿속도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내 빌어먹을 촉이 맞았다. 놈은 그날 쓰러진 상태에서 그를 알아봤던 거였다. 그렇기에 사례를 핑계로 경찰을 통해 연락을 해왔던 거고. 그런데 그가 거절을 하자 이런 말도 안 되는 치사한 방법까지 동원해서 그를 만나고자 했다.
‘왜지?’
의문이 들었다. 또 무슨 가괴한 짓을 꾸미려고 그러는 걸까. 차로 치고 민 것도 모자라서 또 무슨 짓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려고 저러는 걸까.
‘대체 왜?’
문득 예전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범죄 심리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사이코패스들의 생각을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으로 단정 짓지 말라고 했던. 일반인에겐 왜라는 이유가 있지만 사이코패스들에겐 이유가 없단다. 일말의 양심이나 죄의식 자체가 없기 때문에 사람 죽이는 일을 벌레 죽이는 일과 동일시한다고.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놈의 행동은 그 범죄 심리학자의 말을 증명해 보였다. 그런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그의 집 앞이었다.
“아악!”
그런데 앞을 보고 그와 내 입에서 동시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다름 아닌 이경한 놈이 차 안에서 내리며 이기죽거렸다.
“진수야, 안녕?”
“······.”
놈이 다가오자 그는 뒷걸음질을 쳐대며 떨었다. 난 최대한 힘을 주어 그의 손을 꼭 잡아주며 안심을 시켰다.
“진수야, 괜찮아. 떨지 마. 별일 없어.”
“······응.”
대답을 하는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 또한 놈에게 당했던 악몽이 떠오르는 듯했다. 놈은 실실 웃어가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마치 어제 보고 헤어진 친구처럼 살갑게 굴었다.
“반갑다, 그치? 넌 여전하네? 힘든 일 많이 겪었다며? 현철이가 그러더라. 그럼 연락 좀 하지 그랬어?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서로 돕고 살아야지. 안 그래? 낄낄낄.”
그는 놈을 빤히 쳐다보다가 숨을 한번 크게 내쉬더니 입을 떼었다.
“우리가 친구였니?”
“그럼 아냐? 우리 고등학교 때 절친이었잖아? 벌써 잊었어?”
놈은 뻔뻔하다싶게 그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한번 주더니 단호하게 내뱉었다.
“이경한! 니가 왜 또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알고 싶지도 않지만 한 가지만 알아둬라. 나 또한 이젠 호락호락 당하지 않아! 그니까 내 앞에서 꺼져주라.”
“잘했어, 진수야! 정말 잘했어!”
옆에서 내가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런데 그때 놈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어댔다.
“푸 하하하.”
놈의 음산하다 못해 괴기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이번엔 그가 내게 힘주어 말했다.
“쫄지 마, 자기야! 나 이제 자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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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8. 에필로그조회 : 2,06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1,652 47.47. 해피엔딩조회 : 1,32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381 46.46. 악의 대부조회 : 1,35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921 45.45. 악마 퇴치2조회 : 1,12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724 44.44. 악마 퇴치조회 : 1,22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3,866 43.43. 빌어먹을 촉조회 : 1,20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2 42.42. 상남자조회 : 1,40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47 41.41. 내가 보여?조회 : 1,11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79 40.40. 고통의 강도2조회 : 29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21 39.39. 우리는 연인조회 : 29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55 38.38. 키스해도 될까요조회 : 37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590 37.37. 손등에 마음이 닿다조회 : 28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36 36.36. 화해?조회 : 30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514 35.35. 이해가 안 돼조회 : 37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065 34.34. 악마네 집조회 : 32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6 33.33. 또 너니조회 : 35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809 32.32. 살아줘서 고마워조회 : 36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16 31.31. 가지 마, 진수야조회 : 27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66 30.30. 폭풍 전야조회 : 32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45 29.29. 사랑도 우정도조회 : 47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53 28.28. 질투는 반 혼령의 힘조회 : 25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41 27.27. 거짓말조회 : 34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907 26.26. 데이트조회 : 37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916 25.25. 진수와 나, 그리고 박수조회 : 37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48 24.24. 협력하여 선을 이루다조회 : 38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922 23.23. 믿어줘조회 : 31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00 22.22. 말 걸다조회 : 30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06 21.21. 박수야, 고마워조회 : 37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6,072 20.20. 악마의 자식조회 : 41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804 19.19. 이경한, 알 수 없는 아이조회 : 31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556 18.18. 이경한조회 : 42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13 17.17. 다정한 진수씨조회 : 44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520 16.16. 꿈결의 대화조회 : 41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69 15.15. 꿈속의 여인조회 : 37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12 14.14. 환생조회 : 41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29 13.13. 염라대왕의 선처조회 : 38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941 12.12. 애인 놀이 and 부부 놀이조회 : 51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85 11.11. 이혼녀 되기 싫어조회 : 44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44 10.10. 불행 소나타조회 : 34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76 9.9. 여전사 한영미조회 : 53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97 8.8. 이정문 , 지옥에나 떨어져라조회 : 53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90 7.7. 너와 함께라면조회 : 34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75 6.6. 소중해조회 : 41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19 5.5. 연인조회 : 497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502 4.4. 고통의 강도조회 : 430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865 3.3. 내 편조회 : 403 추천 : 1 댓글 : 0 글자 : 6,986 2.2. 중국집 배달원조회 : 471 추천 : 1 댓글 : 0 글자 : 5,453 1.1. 반 혼령조회 : 1,972 추천 : 1 댓글 : 0 글자 : 7,194